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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37-22:29

yt1981 2023. 8. 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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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다 보면은 누군가 우리 삶을 바꾸어 놓는 결정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만남이 그런 내 인생의 고비길 갈림길이 되셨습니까? 누구나 사실 부모를 만나는 것은 큰일이죠. 형제를 만나는 것도 중요한 만남입니다. 직장에 가서 동료를 만나는 것 또 상사를 만나는 것 어떤 멘토를 만나는 것 그런 일들이 중요하죠. 때로는 그런 만남을 통해서 우리가 내 인생의 길을 새롭게 결정하기도 하고, 또 지금까지 살아왔던 걸음을 한번 되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 인생 가운데서 단 한 분 내가 그분을 만나서 내 인생이 통째로, 바뀌었다. 그런 만남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런 만남이 있습니까? 저는 예수님이야말로 누구건 그분을 만나면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누구건 그분을 만난 분은 내 인생의 새로운 새로운 길을 걷게 되게 돼 있습니다. 아무 변화도 없다. 평생 교회를 다녀도 나는 그런 일이 없다. 단언하건대 예수님을 못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이에요. 우리가 뭐 아무리 성경 공부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왔다 갔다 하고 해도 내 인생에 아무 변화가 없다. 그건 그분을 안 만나서 그래요. 못 만나서 그렇습니다. 신앙의 목적은 그분을 만나는 거예요. 신앙의 목적이 여러분들 평생 교회 다니는 거 아닙니다. 교회 다니다가 무슨 장로 권사 되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님 만난 경험 만난 증은 만난 감정 그게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도바울의 얘기를 계속 읽어가는 까닭은 그가 예수인을 만나기 이전에 4월이 그분을 만남으로써 어떻게 바울 되었는지 삶을 돌아봄으로써 우리는 그런 변화가 있느냐 이걸 한번 다시 확인해 보자는 것이죠. 먼저 사도 행전 21장 마지막 부분 37절 38절 말씀 다시 읽습니다. 시작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때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내가 헬라 말을 아느냐 그러면 내가 이전에 소유를 일으켜 자격 4000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구빈이 아니냐 바울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의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시끄러워졌어요. 

아마 천 부장이 백 부장들을 데리고 내려오지 않았다면 바울은 자리에서 아마 맞아서 죽음을 맞았을지도 모르죠 어쨌건 그는 천 부장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천 부장이 지금 사슬을 메었기 때문에 영내로 가서 자초지중을 설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사도 바울은 그러지 않아요. 두들겨 맞아서 흠신 두들겨 맞아서 아마 어쩌면 정신이 몽롱할 수도 있을 텐데 그거는 경황 중에도 그런 이 사태를 어떻게 하면은 예수 증거하는 자리로 만들 수 있느냐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죠. 그런 이 소동을 일으키는 무리를 빨리 빠져나오는 게 급수무 아닙니까 제일 급한 일이 지금 여기 이 사람들에게서 풀려나는 것 차라리 로마 군의인들의 안토니오. 

안토니아 역내로 들어가는 것 그게 가장 안전한 길이고 그게 가장 급한 일 아니겠습니까? 근데 그는 그러지 않습니다. 지금 천 부장에게 다시 헬라 말로 묻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한마디 드릴 게 있는데, 내 말을 좀 들어보겠느냐 헬라 말을 하기 때문에 이 사람이 갑자기 주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천부장의 머릿속에는 지명 수배자가 자꾸 생각이 나요? 3년 전에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을 소동 가운데 빠뜨리고 애국으로 도망갔던 혹시 자가 아닐까 다시 소동을 불러 인구를 보니까, 혹시 사람은 아닌가 그런 의심을 가졌던 것이죠. 사도 바울이 대답합니다. 39절 40절입니다. 

시작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업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스의 시민이니 청하건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말로 말하니라 그런 지금 헬라어로 여러분 당시에 예루살렘 사람들은 주로 대부분 일상 용어인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를 보면은 예수님께서 아람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됩니다. 지금도 시리아의 일부 지역에서 아람어가 남아 있어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 헬라어를 썼습니다. 헬라어는 이른바 알렉산드 대제가 당시 제국을 건설하면서 공용어가 되었어요. 수많은 민족들이 헬라어를 사용하곤 했습니다. 어쩌면 상류층 사람들이거나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사람들이었겠죠. 그래서 헬라어를 쓴다는 것은 단순한 지방 언어와는 다른 격을 말할 수도 있는 것이죠

또한 로마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라틴어를 사용했는데 라틴어는 공식적인 정부 기관에서의 언어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헬라어를 쓰기 때문에 갑자기 주목을 한 것이죠. 그리고 그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합니다. 나는 유대인의 유대인이지만 여기 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게 아니고 길리기야 다소에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당시 다쏘 출신이라고 하는 말은 굉장한 어떤 배경을 말하는 거예요. 무슨 고린도라든지. 에베소라든지. 하는 큰 도시와 마찬가지로 다소는 그 당시에 교육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다소 출신이라 어떻게 보면 교양 있는 어떤 그런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는 단어이기도 해요. 나는 서울 사람입니다. 그럼 좀 나아 보이나요? 그래요. 그는 지금 길리기아 다소시의 시민인데 이 백성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이에요. 

어쩌면 천부장은 이를 연행해서 지금 데리고 갈 그런 상황인데 바울은 뜻밖에 빠져나가지 않고 자리에서 이 자기를 폭행한 무리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런 상황이면 어떨까요? 저와 여러분들이 만약 이런 상황에 지금 처해 있다면은 어떻게 하는 게 정상적인 생각이겠어요. 빨리 도망쳐야죠 빨리 안전한 데로 옮겨줘야죠 왜 여기 이 자리에 머무르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의 머릿속에는 지금 내 안전이 중요하지 않아요. 내 안전에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목숨을 건져야 된다. 이 생각이 아니에요.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예수님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보면 바울과 제 차이일 거예요. 바울과 여러분들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다 내 생각이 가득한 사람이에요. 내가 어떻게 되나 내가 무슨 일을 해야 되나 내가 너무 중요한 사람들이에요. 

그러나 바울은 내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어렵고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어떻게 제가 증거할 건가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게 바울이에요. 이런 바울의 모습을 보면은 정말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이럴 수가 있을까? 어떻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증거하겠다고 복음을 선포하겠다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루종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요. 잠시잠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종일 24시간 그분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위각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툭 튀어나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종일 생각하고 있는 그게 우리 인생 아닙니까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게 사실 내 인생이죠. 

뭐 바울은 하루 종일 예수님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는 그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예루살렘 성전을 빠져나가면은 안토니아 요새로도 올라가는 층계 계단 위에 올라서서 지금 이제 1장 연설을 시작하는 거예요. 22장 1절 이 절 3절입니다. 시작 부영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어라 그들이 그가 히브리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야 다소에서 났고 이송에서 자라 가말 리엘의 문화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에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라 부영들아 여러분 뭐 이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부형들아 아버님 그리고 형님들 굉장히 존칭으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여러분들한테 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실컷 두들겨 맞았어요. 지금 어떻게 보면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나야 정상 아닙니까 오해를 받아서 두들겨 맞은 거예요.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왔다는 아니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고 억울하게 맞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억울하다거나 분하다거나 이런 생각이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이렇게 아무 근거 없이 두들겨 맞아도 억울해하지 않는 것 저는 이게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무슨 조금만 그렇게 서운한 일이 있어도 서운을 못 견디는 게 아니라, 흠씬 오해받고 두들겨 맞아도 거기 섭섭한데 매달리지 않는 것 생각에 묶이지 않는 것 그거는 지금 단지 예수님 생각뿐이에요. 그래서 그는 이번에는 히브리말로 말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말로 신약에서 나올 때 히브리말로 했다는 건 곧 아람어로 얘기했다. 

뜻입니다. 모두가 알아듣는 말로 지금 얘기합니다. 나는 유대인이다. 나는 여덟과 같은 동족이다. 그렇지만 나는 길리기야 다소에서 태어났다 태어나기는 닷소에서 태어났지만은 자라기는 여기 예루살렘 성에서 나도 자랐다 그리고 나는 가말리엘 문화에서 율법의 교훈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다. 이게 자기 프로파일이에요. 바울이 자기 자신이 많은 유대인들 앞에서 나를 소개하는 짤막한 자기소개서가 이겁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짧은 자기소개 속에서 모든 게 다 들어 있어요. 자 유대인으로 왜 소개합니까? 

여러분들하고 나는 같은 피를 나눈 사람이다. 나를 적대시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이 말 아닙니까 다소에서 났다 그곳에서 나는 큰 도시에서 태어나서 어떻게 보면 그런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예루살렘에서 교육받았고 그리고 특별히 과말리엘의 문화생이다. 여러분 가말리엘 문화는 예루살렘에 있는 웬만한 집에서 자녀들이 가고 싶은 자녀들을 보내고 싶은 1순위가 가말리엘 문화예요. 힐렐 학파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양대 학파 중에서 가장 큰 학파 중에서도 이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은 중심 인물입니다. 사람한테 기엠한다면, 좀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줄을 늘어서 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지원했지만, 다 떨어졌습니다. 1년에 서너 명밖에 뽑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창세기 출연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다섯 골을 열세 살 나이에 통째로, 외워야 입학이 허가되는 곳이에요. 여러분이나 저나마 한 줄 외우는 것도 힘든데 책을 한 권도 아니고 5권이고 어떻게 외웁니까 그걸 외워야 그게 입학이 허가되는 거예요. 그래서 가말리엘 문화에서 공부했다. 이 얘기를 듣는 것은 여러분 더 이상 할 말이 필요가 없는 얘기예요.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 대해서 여러분들처럼 열심히 있는 사람이다. 그렇죠. 그는 하나님께 대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있었던 사람입니다. 사 올 만큼 하나님에 대해서 열심을 다했던 사람이 쉽지 않죠 그래서 그는 고린도 교회나 빌리퍼 교회에다가 자기 소개를 할 때 그들에게 편지를 써 보낼 때 나는 누구다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혔던 것이죠. 에베소스 한번 찾아볼 빌리버스 한번 찾아보시겠습니까? 빌리버스 3장 5절 6절 말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빌리버스 3장 5절 6절 같이 읽습니다. 시작 나는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라인 히브린 중에 히브린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스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받게 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래도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유대교에 있을 때는 율법을 지키는데 허위 의미 없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그렇게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겠어요. 그는 또한 바리스인이었다고 밝힙니다. 바리스인들이 가장 많을 때 이스라엘에는 한 6000명 정도의 바리세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회 중추적인 기능을 다 했던 사람들이에요. 핵심 세력들이죠. 그는 또한 산해드린 공회원이 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산해드린 공회원은 70명이에요. 사법기관이나 행정기관의 권력을 다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막강한 어떤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에요. 그는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11장 22절 보니 그들이 히브리니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그는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토록 당당하고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믿음의 후배들에게 당당히 말하는 것이죠. 저는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가르키는 손가락일 뿐이지 나를 본받아라 저는 이렇게 말 못 해요. 그러나 바울은 당당하게 말합니다. 나를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두려움 없이 이렇게 자기 소개를 할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들 다 한 몇 사람 앞에서도 말하기가 쉽지 않지 않습니까? 근데 많은 사람들 적대적인 지금 환경에서 그는 백성들의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는 자기의 증언 본인의 간증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 8절까지 말씀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이 돌을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4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매색 형제들에게 관한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국 투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받게 하려고 가더니, 가는 중 담의 석에 가까이 갔을 때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며 내가 땅에 엎드려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러되 사우라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까 하니 이러시되 나는 내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바울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그를 박해한 그를 폭행한 사람들 앞에 서서 얘기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간증이라고 말합니다. 간증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나는 누구였나 나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나 그걸 짤막하게 얘기해 줘야 돼요. 본론은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나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나 이게 핵심이에요. 그리고 뒤에 후반부는 뭡니까? 나는 그분을 만나서 어떻게 바뀌었나 어떻게 달라졌나를 얘기하는 것이죠. 길 필요 없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간증할 것도 없어요.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바울은 간단히 얘기합니다. 난 유대인이고 길리기야 다 쏘에서 태어났고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화에서 공부했고 율법의 교훈의 누구보다도 나는 열심히 얻고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난 열심히 사람이다. 그게 과거의 내 모습이에요. 그랬는데 그랬기 때문에 그런 산해들인 공해원의 전폭적인 권한 위임을 받고 체포 영장을 가지고 해외에 있는 다마스커스에 있는 크리스찬들을 체포하러 가는 길에 나는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을 이렇게 만났다 그게 그의 관정의 핵심입니다. 내가 이 돌을 받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그런 스테파를 죽이는 현장에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결박해서 체포해서 옥에 넘겨주는 일을 했다. 

그리고 가다가 다마스크스로 가다가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다가 홀연히 오정쯤 되어서 낮 열두 시에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더니, 사오라 왜 내가 나를 핍박하느냐 그런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나는 그렇게 예수님을 만났다 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지금 사울이라는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간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다마스크스의 크리찬을 잡으러 가는 길이에요. 지금 예수님은 사울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찾아오신 그분이 내 안에 오셔야 내가 그분을 만나야 크리스도인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얘기를 왜 못 전하느냐 그분한테 직접 듣고 그분을 직접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보고 들은 게 없는데 어떻게 얘기합니까? 보고 듣지 않고 얘기하면 거짓말하는 것이죠. 보고 듣지 않고 얘기하면 그건 사기 남을 속이는 것이죠. 보고 들은 바가 없는데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하고 남한테 소개를 하고 다니면 여러분들 거짓말하고 다니는 거예요. 여러분 안 보고 안 들었기 때문에 말 안 하는 것 불신자로 사는 건 죄가 아닙니다. 여러분 더 큰 죄는 안 보고 안 들었는데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으면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속이고 사는 게 그게 더 큰 죄인이지 못 보고 못 만났는데 무슨 그리스도를 안 사는 게 무슨 죄예요. 

그건 아주 수준 낮은 죄지요 죄질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죄지요 저는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죽을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따랐고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을 증거하려고 애썼고 그리고 하나님을 지킬려고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철두철미한 사람이에요. 그는 가말리엘 문화에서 죽도록 공부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공부 많이 하면 되게 행동력이 없어요. 생각이 많은 사람 말이 많은 사람 생각이 많고 말이 많고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은 행동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어요. 많이 공부했고 많이 생각했고 많이 가르쳤고 많이 배웠지만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 행동하는 지성이었던 것이죠. 그랬기 때문에 남들이 안 가는 길을 가는 거예요. 

체포영장까지 가지고 해외로까지 가서 그들을 잡아오겠다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죠. 그랬기 때문에 역으로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고 글을 만나주셨고 글을 쓰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제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내가 만나리라 말합니다. 바울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우를 찾아오신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신앙의 적은 불신이 아니에요. 신앙의 적은 불신이 절대 아닙니다. 신앙의 적은 건성이에요. 신앙의 적은 대충대충입니다. 만난 것도 아니고 안 만난 것도 아니고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리고 그게 큰 저기지 아이 몰라서 못 만나서 모르게 사는 게 그게 뭐 그렇게 나쁜 거예요. 주님께서 라우디 계약 교회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구나 이게 큰 문제구나 그러면 신앙의 문제는 미지근한 거예요. 왜 사도 바우를 쓰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미지근하게 하나님을 안 믿었어요. 잘못 믿었지만은 그는 목숨을 걸고 믿었다고요. 여러분 신앙은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이거 죽고 사는 문제예요. 여러분 911 때 테러 때 빌딩이 무너져 내리지 않습니까? 죽을 힘을 다해서 뛰어나오잖아요. 사는 길은 오직 하나 뛰어나오는 길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은 예수님께서 뛰어나오라고 우리를 부르신 거예요. 이 땅에 오셔서 교회 이름을 불러낸 자들 무너져 내리는 곳에서 우리를 불러낸 것을 교회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어디서 죽어가고 있는 게 안타깝기 때문에 주님께서 부르신 거예요. 근데 거기를 탐내고 거기가 부러워서 매일 기도를 하고 있다면 여기 그러면 그게 예수님 이해가 되시겠어요. 지금 사도 바울이 다마스크스로 가다가 홀연히 지금 빛이 임했는데 빛은 태양이 아닙니다.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에요. 우리는 지구상에서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을 경험하게 갈 수 있겠습니까? 근데 여러분 이 분은 태양보다 밝은 빛이라는 거예요. 부활하신 주님은 그런 빛으로 오셨습니다. 걸어 놓으셔서 나는 세상에 떡이다. 생명의 떡이다. 세상에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빛은 어떤 빛입니까? 태초의 창석에서 빛이 있으라 할 때 빛이에요. 여러분 빛이 있고 나서 태양이 만들어진 것이 태양이 빛임으로 빛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빛이라고 말씀하는 것이죠. 그분은 생명이다. 그분은 사랑이다. 그분은 말씀이다. 그분은 빛이다. 할 때 빛은 본질인 어둠 가운데로 오셔서 어둠을 쫓아내시는 그 빛의 근원 빛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왜 내가 나를 박해하느냐 음성을 듣고 나서 대 바올이 말합니다. 주님 누구십니까 주님은 누구십니까 그는 평생 주님을 따라왔어요. 

근데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드디어 그는 주님 앞에서 주님을 묻는 질문하는 이런 어이없는 사건을 겪게 됩니다. 주님은 누구십니까 인생 일대의 질문이에요. 저와 여러분들이 평생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은 누구십니까 이 질문을 진지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그리고 내 전 존재를 걸고 내 목숨을 걸고 한번 물어야 될 질문이에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이게 아니고 그분 누구십니까 도대체 여러분 이 분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내가 누군지를 알게 돼요. 이분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아야 인생의 방황이 끝나요? 그러면 교회를 다니고 방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분이 누군지를 분명히 알아야 우리 인생의 갈등이 사라져요 고민이 없어져요 그리고 그분 앞에서 더 이상 방황하지 않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방황이 끝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일 안타까운 건 교회 다니면서 방황하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주님 안에서 그분을 만났기 때문에 그러면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방황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누구십니까 이 질문을 주님께서는 평생 기다리고 계신 거예요. 주님은 누구십니까 아니 그분을 확실히 알아야 내가 누군지를 알죠 내가 나간 누군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내가 주인이다. 이렇게 가르치는 곳이에요. 이 세상에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주인들만 사는 곳이에요. 그래서 살 만합니까? 누가 주인 노릇을 더 세게 하게 됩니까? 가장 힘 있는 자가 주인 노릇하는 곳이죠. 

세상이란 그런 곳입니다. 회사란 그런 곳이에요. 그래서 가보면은 주인이 있기 때문에 내가 주인인 줄 알았는데 주인이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달아가는 게 세상 아닙니까 그리고 어느 날 나도 주인 되어야 하겠다. 그게 우리의 꿈 안이에요. 나도 주인 노릇 해야 될 텐데 여러분 인생의 주인 역사의 주인 인간의 주인 이 주인됨이 누군지를 몰라서 이렇게 시끄러운 거예요. 신앙이란 주인 만나는 일이고 주인을 인정하는 일이고 내가 주인 자리에서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내려오는 사건입니다. 주님 누구십니까 예수님이 주님이시군요. 그러면 나는 누구예요? 여러분 그래서 주님을 만날 때까지 진정한 주님을 알 때까지 우리는 고민과 갈등과 방황에서 못 벗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몬 본 못노 만난 사람들끼리 이렇게 만나면 이게 시끄러운 거예요. 어디를 가나 주인 노릇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전부 주인 노릇하기 위해서 가정은 어떻습니까? 남편이 주인이요. 아내가 주인이요. 아들이 주인이요. 딸이 주인이요. 그래요. 가정에 주님이 안 계시면 가정은 여러분 어떤 가정이 되는지 잘 알지 않습니까? 그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마지막에 이 질문을 하세요. 마태복음 16장 우리 다시 한번 가보십시다. 마태복음 16장 13절에서 16절까지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빌리포 가이샤라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드러는 세례 요한 드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들 지금 3년간 나를 따라다녔는데 나는 누구냐 나는 너희들에게 누구냐 이거를 대답하지 못하면 너희들 지금 따라다녀도 아무 소용이 없어 얘기를 하시는 것이죠. 너희들은 지금 누구를 따라다니고 있니 너희들이 따라다니는 나는 누구냐 세상이 누구라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중요하지 않고 너희들에게 나는 누구냐 먼저 물었어야 합니다. 주님은 누구 되십니까 어쩌면 익숙해졌기 때문에 묻지 않았겠죠.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 물었겠죠. 주님이 답답해서 물은 거예요. 십자가는 곧 져야 되는데 여전히 나를 모르니 너희들 도대체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고 따라다니느냐 그렇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입니다. 메시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 바요나 시모나 그걸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인간이 알게 하는 게 아니다. 

그건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만 알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 이걸 알아야 끝이 난단 말이에요. 방황이 끝나는 거예요. 신앙의 자리가 드디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뭘 믿고 다니는데요. 우리가 그 질문 답변이 끝나고 나면 그다음에 물어야 될 질문은 당연히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9절에서 11절까지입니다. 시작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내가 이러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러시되 일어나 담에 세고로 들어가라 내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잃으리라 하시거늘 나는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담의 세계에 들어갔노라 주님은 누구십니까 주님은 주님이시군요. 예수님이 주님이시군요. 

이걸 알게 되면 그다음에 물을 수 있는 질문 물어야 할 질문은 단 한 가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가 뭘 할까요? 이때까지는 그리스 않 잡으러 다닌 나는 지금부터 뭘 해야 합니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뭘 하고 살아야 합니까? 당연히 이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가던 길을 가라고 말합니다. 넌 담의 색으로 가지 않았느냐 담의 색으로 가라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때로 우리 길을 안 바꾸십니다. 하던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만나던 사람을 만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살던 집에서 그냥 살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나 목적은 완전히 달라지죠 그리스도인을 체포하러 가는 목적이 아니라 이제는 본인이 세례받으러 가는 길이에요. 사람 살리러 가는 길입니다. 증언하러 가는 길입니다. 

간증하러 가는 길이에요. 전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이죠. 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불러서 뭐 할 건데 그래요. 그는 이제 그곳에 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만나게 돼요. 여러분 신기합니다. 주님께 여러분들을 인생을 드리기로 작정하면 여러분들의 생활 반경을 차츰차츰 바꾸는데 첫째는 여러분들의 생각을 바꾸고 목적을 바꾸고 관점을 바꾸고 그리고는 관점에 따라서 점점 만나는 사람의 바운더리가 달라지게 돼 있어요. 그전에는 뭐 술 친구 골프 친구 뭐 이런 친구들 자꾸 만났는데 점점 다른 신앙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게 돼 있어요. 하나님께서 신기하게 만나는 범위를 바꿔놓기 시작하십니다. 

그전에는 사람들 만나는 게 그렇게 재밌고 그렇게 좋았는데 점점 사람 만나는 게 허망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지금 아나니아를 만났더니,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오라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 것을 알게 하시며 의인을 보게 하시고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내가 보고 들은 것의 증인이 되리라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아나니아라는 사람은 율법에 경건한 사람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받는 사람 아니 그때 예수 믿는 사람이 많지 않을 때입니다. 근데 다마스크서 큰 공동체에서 아나니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예수를 믿어도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들도 다 주변에서 칭찬받는 사람들이었어요. 사람들은 욕 얻어먹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욕 얻어먹고 나서 나는 예수 믿고 나서 욕 얻어먹게 되었습니다. 아니요. 예수 믿어서 욕 얻어먹은 게 아니라, 예수를 잘못 믿어서 욕 얻어먹게 된 거예요. 왜 예수 믿는데 욕만 그렇게 얻어먹게 됩니까? 여러분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가장 욕하는 게 뭔데요. 어떻게 넌 나보다 더 이기적이냐 그거 아니에요. 넌 어떻게 나보다도 너 자신밖에 더 모르냐 아나니아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예요. 칭찬받았다는 뜻은 주위 사람들하고 커넥티드 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단절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이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누군가 소통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칭찬이 목적이 아니에요. 

칭찬받는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닙니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사람 사람들과 연결이 가능한 사람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죠. 자 그랬더니, 그는 형제 사우라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다시 쳐다보게 됩니다. 강렬한 햇볕 때문에 눈이 멀었다가 이제 그는 다시 보게 되는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죠. 그리고 아나니아가 얘기해 줍니다.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의인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고 입에서 나오는 음성 듣게 하셨으니 이제는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내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이제 증인된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인란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바울은 이제 그렇게 살게 될 거라고 말해줍니다. 그러니 왜 주저하느냐 너 가서 세례받고 이제는 길을 가라는 것이죠. 그리고 오늘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9장에서 얘기하지 않았던 간증을 한 가지 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간증합니다. 증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기가 예루살렘 성전이거든요. 성전에서 본인이 겪었던 일 본인이 성전에서 들었던 음성 예수님이 성전 안에서도 본인 자신에게 찾아오셨던 놀라운 감정을 해 주고 있는 것이죠. 이게 유대인들만의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고 주님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주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죠. 17절부터 21절까지 읽습니다. 

시작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 황홀한 중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내가 네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테반이 피를 흘릴 때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나더러 또 이러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그도 베드로가 요파에서 지붕 위에 올라가 기도할 때 보았던 환상 같은 걸 보았어요. 환상 중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환상 중에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떠나라 이제 떠나라는 거예요. 예루살렘을 떠나라 그런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아니 예루살렘이야말로 자기 본마당 아닙니까 앞뜰 아닙니까 내가 여기서 간증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겠습니까? 내가 스테반을 죽이는 것도 현장에도 있었고,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카말리엘 문화에 있었다는 것도 다 알 것이고. 그리고 또한 공회원들도 나를 알 것이고

내가 여기서 신앙생활을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기로 돌이킬 수 있을 텐데 주님 가라고 하십니까? 그래 우리 생각은 그래요.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을 목적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는 그런 많은 전략자산 헬라어도 알고 유대인 말도 잘 알고 토라도 잘 알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의 모든 자산을 이방인을 위해서 쓰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나는 여기 있는 게 좋을 거 같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다른 곳에 쓰기로 결정하셨다는 것 여러분 이게 우리가 순종해야 할 이유예요. 우리는 합리적이고 우리는 객관적으로 평가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제가 언론인 출신이어서 제가 목회를 하면 언론인들이 버글버글 할 줄 알았어요. 안 옵니다. 안 옵니다. 왜요 제가 33년 술독에 같이 빠졌던 사람들이 믿겠습니까? 안 믿어요. 그들한테 증언해도 안 믿습니다. 제가 처음에 너무 은혜받고 간증이 하고 싶어 죽겠는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사무실에 나가면 참 책상 위에다가 성경 갖다 얹어놓고 남들 신물 볼 때 성경을 펴서 보고 난리를 쳤어요. 어느 날 우리 소천하시는 하용전 목사님께서 부르셨어요. 요새 직장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요새 전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웃으시더니, 전도는 무슨 전도입니까? 그냥 하던 대로 마세요. 지금 전도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당신 말을 누가 믿어 주겠습니까? 제가 잠시 혼동했어요. 나를 질투하나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는 길하고 달라요. 저는 이런 베이직 기회가 생긴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을 만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제 인생에 한 번도 삶의 바운다리가 겹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여기 와 계십니다. 어떻게 이런 소중한 분들이 제가 만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살았던 삶의 환경하고는 전혀 다른 곳에서 모이신 분들이에요. 어쩌면 는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죠. 제가 기대했던 사람들 제가 당연히 올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어쩌면 같이 신앙생활을 할 거라고 기대했던 사람들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길 여러분들의 생각 계획과는 다른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의 길이 높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길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우리의 신앙이에요. 떠나라 이런 말을 들었다는 거죠. 이방인에게 떠나라 이방인 소리 듣던 이 사람에게 또 흥분했어요. 

그래서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저런 세상에서 없애버리라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뒷걸을 공중에 날리니 천 부장이 바우를 국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되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들에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백 부장이 듣고 가서 천 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 천 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러되 그러하다 천 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신문 아래 든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여러분 이 마지막 이 장면이 너무 재미있지 않습니까? 

첫째는 천부장이 엄청 순진한 사람이구나 로마 시민이라고 큰일 났구나 근데 나는 돈 주고 사는데 너는 어떻게 된 거냐 당시에 로마 시민권이 막강한 힘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 시민권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이 생겼어요. 특별히 글라우디오 황제 때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루시아라는 천부장은 글라우디오 황제 때 그런 시민권을 얻었기 때문에 기념하느라고 황제 이름을 하나 덜썩 앞에다 갖다 붙인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당시에 그러나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면서 이미 아버지가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물려받은 것이죠. 그리고 로마 시민권은 해외에서 기본권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래서 법적인 사법적 보호막이 아주 두터웠던 것이죠. 

그래서 줄리안법 포르시안법 발레리안법 이런 법들을 가지고 로마 시민을 굉장한 사법적 특권을 준 거예요. 그러니까 유죄 판결을 받지 않고는 고문 못 받게 만들어 놨어요. 사도 바울이 그걸 얘기한 거죠. 내가 어떻게 지금 아직 유죄 확정도 판결되지 않았는데 나를 채찍질할려고 하느냐 난 로마 시민이다. 이 얘기를 한 것이죠. 갑자기 눈을 감고 주님 내가 이제 고난 가운데로 뛰어듭니다. 때리소서 맞겠습니다. 그러지 않았어요. 여러분 일 없이 만든 건 순교가 아니라 그건 메조키즘이라 그러나요? 그건 자학 하는 거예요. 안 맞아도 되는데 왜 맞습니까? 불가피하게 맞을 일도 있지만은 안 맞아도 될 때는 매를 안 맞아야죠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나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언하는 목적에 쓰기 위해서 그의 모든 전략 자산을 활용했다는 이 지혜를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어떤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건 나를 자랑하고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쓸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엊그제 제가 병원에 가서 80네 살 된 할머니 예수님 영접 기도를 하게 됐어요. 좀 와서 좀 제발 도와달라고 그래서 갔습니다. 그분이 보자마자 어우 MBC에 계셨9만 자기가 할 말이죠. 드라마는 안 봤지만 뉴스 열심히 봤대요 나를 잘 안대요 그렇습니다. 그런 기자가 지금 목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영접하시죠. 두말 않고 영접했어요. 그런 배경을 제가 자랑할려고 얘기한 게 아닙니다. 천하의 술꾼들을 만나면 제가 한마디로 기선을 제압합니다. 나도 33년 마셨습니다. 그거 한마디면 일단 커넥티드 된단 말이에요. 제가 그냥 어려서부터 정말 좋은 신앙의 집에서 된 목사님 된 사람들이 저를 보고 너무너무 억울하게 생각을 해요. 

자기들은 성도들을 너무 잘 아는데 모른다고 생각하고 사람은 성도를 잘 모르는데 성도들이 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억울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억울하면 좀 가봐라 세상을 좀 알아봐라 그런 농담 아닌 농담을 합니다마는 저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만이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을 부르신 거예요. 어느 누구도 아니고 당신이 아니고서는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먼저 부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삶의 배경이 주님을 증거하는 데 아낌없이 쓰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그때 여러분은 한없는 기쁨을 맛볼 겁니다. 나를 위해 쓰면 하나도 안 기뻐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까닭 없는 사람을 위해서 주님이 보내시는 사람 맡기는 사람한테 여러분들 자신을 내어드릴 때 여러분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이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 다시 채워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내 거 없습니다. 내 거 아닌 것 주인을 위해서 쓰는데 주인이 다시 안 채워주겠습니까? 여러분 일식주의에 주방장이 에 사시미 재료 다 썰어서 손님 줬는데 지 돈으로 사 채우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주인이 다시 채워줄 거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고난의 현장에 있기만 하면 버티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지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집 인그램이라는 목사님 계셨는데 제가 들었던 이해가 기억이 나는데 그분이 키가 커서 농구를 했어요. 학교 다닐 때 농구 선수가 됐는데 거기서 흑인 선수 고약한 선수를 만난 거예요. 그야말로 인격적인 모독을 받고 심지어 때로는 그냥 그냥 폭력적인 언사에 시달렸는데 3년을 그렇게 시달린 거예요. 근데 그런 주님을 믿었기 때문에 나는 악으로 악을 갚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야 된다. 한마디를 결심하고 그렇게 흑인 선수를 견뎌냈어요. 

헤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단 한마디를 했어요. 야 내가 그런다고 교회 나갈 건 아니지만, 그러나 내가 어느 날 교회를 나가게 되면 너 때문에 나가게 될 거야. 그렇게 얘기를 하고 헤어졌어요. 그때 이 칩 잉글의 목사님은 3년간 견뎠던 모든 고통이 한순간에 기쁨으로 변하는 걸 느꼈다고 증언합니다. 여러분 당장은 뿌린 씨앗이 열매가 되지 않을지 몰라도 여러분들이 정말 폭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낸 모든 자리마다 열매가 있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연휴 동안에 마음이 아픈 적도 있을 테고 힘든 시간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이 견뎌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때문에 교회 나온 사람 있습니까? 여러분 때문에 예수 믿게 된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 때문에 세례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 그게 인생의 열매예요. 

여러분들이 어려운 일이 풀리고 여러분 그들이 무슨 뭐 소득이 많아지고 자리가 높아지고 그런 열매를 열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는 생명의 열매 맺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한 주간 동안 그렇게 사시다가 다시 한번 이 자리에 모여서 생명의 열매 된 열매가 흩어진 열매가 담을 넘어간 귀한 간정들 고백들을 나누는 그런 하나님의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할 때 정말 사도 바울처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주님을 증거하게 하여 주옵소서 분노하고 화가 나고 억울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지만 일에 사로잡힌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언하고 예수님을 증언하고 보험을 증언하는데 내 인생 아름답게 쓰이게 하여 주옵소서 한번 그렇게 믿음의 결단의 기도 드리고 헤어지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신 크고 놀라운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제게 주신 모든 것들을 가지고 그분들 섬기는 데 쓰게 하여 주옵소서 내 것 가지고 주님을 섬기 주님이 주신 것으로 주님 섬기게 하였사오니 주님 대가진 모든 것들 추를 증가하고 복음을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증가하고 십자가를 증거할 때 하나님 언젠가 우리 때문에 교회를 나오게 되었다. 우리 때문에 세례받게 되었다. 너 때문에 예수 믿게 되었다. 그런 귀한 불안정 고백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그를 위하여 우리 인생이 아름답게 쓰임받게 하여 주옵소서 어디를 가나 주님을 증거하는 삶 가운데 맺히는 열매가 우리 인생의 유일한 열매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 열매를 기대고 바라고 그런 열매를 줄일 앞에 올려드리는 인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이 아름답게 흩어지는 것마다 생명에 열매가 맺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것을 올려드려 주님을 섬길 때 주님께서 친의금 맺으신 열매가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에 귀한 증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합니다. 

주님께서는 허락하신 모든 것으로 다시 한번 주님을 증거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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