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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잠언 24장 2

yt1981 2023. 12. 1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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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문 24장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은 기도의 은총이 우리에게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잠원이 후반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점점 실제적인 우리의 삶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오늘 하루를 살 때 과연 우리는 어떠한 지혜로 살 것인가? 어떤 하나님 말씀을 의지해야 될 것인가? 초반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원칙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현실에 대한 부분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근데 현실이라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원리대로 되느냐 그렇지 않다는 거죠. 어찌 보면 원리와는 반대로 현실이 자꾸 이루어져요 그래서 헷갈리는 거예요. 

원리대로 되면 의의는 형통하고 악의는 망하고 우리 삶이 그게 눈앞에 이루어지면 우리가 헷갈릴 일이 없죠 그냥 하나님 말씀이 다 맞아 그래 의인으로 살아야지 하면 간단해요. 그런데 현실은 마치 반대인 것처럼 보일 때가 더 많다라고 하는 거죠. 우리 눈에 볼 때 분명히 의인인데 사람 의인인데 어려움을 당해요. 의인인데 아파요 의인인데 실패해요. 저 사람은 분명히 내가 볼 때 악인인데 잘 돼요. 사람은 병도 잘 낫고 자녀도 잘되는 것 같고, 덩떵거리며 살고 뭐 문제가 없어 보여요. 이쯤 되면 화가 나요? 그리고 분노가 치밀고 과연 하나님 말씀이 맞는 거야라고 하는 의심이 생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란 분이 과연 계시긴 계시는 거야라고 하는 우리 마음속에 의분이 올라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자 그러면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라고 하는 거죠. 실제적인 삶에서 부딪치는 갈등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가 오늘 말씀에 저는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지식과 명철과 지혜입니다. 여러분 지식과 명철과 지혜가 다 같은 말 같잖아요. 그냥 달라요.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 삶의 모순 내가 볼 때 정말 이건 말이 안 돼 라고 하는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해결책은 이 세 가지인데 지식과 명철과 지혜거든요. 그런데 지식은 과거형이에요. 과거형 지금까지 내가 듣고 보고 알아온 것들 내 경험과 정보를 모으면 그것이 지식이 돼요. 그래서 격언 교훈 사람들의 말들 지금까지 지내온 역사적인 일들의 종합이 지식이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 지식을 모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에요. 그래서 남들의 인생을 내가 살아보지 않은 인생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을 모을 수 있는 지식에 아주 중요한 부분들이 많아요. 자 그런데 지식만 가지고는 안 돼요. 지금 지식을 내 삶에 적용하는 명철이 필요합니다. 명철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형입니다. 현재형 그래서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지금 판단하고 결정하는 거죠. 그래서 지식이라고 하는 정보를 내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내가 어떻게 명절을 통해서 내 삶을 지금 어떻게 견뎌내고 어떻게 살아내고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가 명철이에요. 그러면 제일 중요한 게 뭐냐 이게 지혜예요. 지혜는 미래형이에요. 

미래형 아직 내가 겪지 못한 인생 아직 내가 만나지 못한 사건들 지금 내가 겪어내지도 못하고 있는 내 앞에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는 겁니다. 그리고 미래를 맡기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온 날 만큼만 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만큼은 잘 알아요. 내가 말이야. 내가 그게 지식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하는 부분을 현재 어떻게 살아내고 있느냐 아는 만큼 사는 게 아니에요. 깨달은 만큼 사는 게 아니에요. 사는 건 능력이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지식은 많은데 명철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지식을 가지고 사는 것까지는 해내요 그게 이제 우리가 볼 때 사람은 훌륭하게 사는 것 같아 사람은 그래도 살아가는 법을 알아 처세수를 알아 거기가 명철이에요. 

근데 정말 중요한 거 지금까지 겪지 못한 미래에 대한 앞으로 다가올 앞날에 대한 것을 얼마나 마음이 염두에 두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지혜예요. 여러분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는 매우 필요한데 그중에 제일 필요한 게 뭘까요? 그게 지혜예요. 지혜 여러분 살아온 날들까지만 안다 그러면 세상에서 많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 가장 훌륭해져야죠 근데 그렇지 않거든요. 6.25 겪고 보릿고개 겪고 많은 일들을 겪어오신 분들 정보가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때로는 그분들이 정보 때문에 삶이 굉장히 팍팍한 경우들이 있어요. 도리어 남에게 베풀 줄 모르고 도리어 자기만 생각하고 굉장히 우리가 볼 때는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그게 뭐냐면 정보가 그만큼 쌓여온 거죠. 

전쟁이라고 하는 기근이라고 하는 너무나 어려운 생활에 대한 정보가 그들의 삶을 더 위축되게 만드는 거죠. 명철을 넘어서는 지혜 우리가 겪어온 인생이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을 뛰어넘는 영원 하나님이 내 삶을 어떻게 평가하실까라고 하는 하나님의 시각까지 바라보는 게 지혜예요. 그래서 여기에 대한 우리가 기본적인 과거의 지식과 현재의 명절과 미래의 지혜라고 하는 부분을 먼저 정립을 하고 확립을 하고 그다음에 24장을 봐야 24장 이해가 돼요. 안 그러면 24장의 내용이 다 우리가 믿는 것이 엉터리고 세상이 맞고 세상이 말하는 세상의 이야기들이 전부 진리인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먼저 이것을 정리해 놓은 다음에 1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악인의 형통함 여러분 이게 현재라는 거예요. 현재 우리 삶이 악인회의 형통해요. 네 안 해야 되는데 분명히 하나님도 안 믿고 하나님을 없다고 하고 사람들도 사랑하지 않고 자기의 삶을 함부로 사는 사람이 형통하단 말이죠. 악인이 형통하단 말이죠. 이게 현실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화가 나죠. 왜 아기는 형통하지 근데 화가 나는 걸 넘어서서 우리 마음은요, 부러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렇지 저게 진짜 사는 거지 내가 하나님을 굳이 이렇게 알고 믿고 의지하는데 난 형통하지 않은데 사람은 하나님 없다고 그러는데 형통해 저게 맞지 않아 저게 진짜 사는 거 아니야라는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이게 어디까지는 맞냐면 지식까지는 맞아요. 어찌보면 명철까지도 이게 맞을 수 있어요. 그런데 지혜라고 하는 부분이 들어가면 그것은 틀린 말이 됩니다. 왜냐하면, 악의는 지금까지는 형통할 수 있어요. 이 땅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지금의 삶까지 형통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에게는 미래가 없어요. 중요한 건 미래예요. 미래에 뭐가 없어요. 미래에 하나님이 그를 지켜주신다는 확신이 없죠 더 중요한 게 있어요. 그에게는요 징계가 없어요. 악인이 왜 형통한가요 악인이 하나님 관심이 밖에 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 관심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악인은 하나님이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그의 삶을 인도할 이유가 없어요. 그래서 그에게는 하나님 징계가 없어요. 

징계받지 않는 삶은 우리가 볼 때 형통해 보이는 거예요. 사람 생각하는 대로 다 되고 말하는 대로 되고 꿈꾸는 대로 되네 야 형통하네 되게 좋다. 여러분 근데 그게 뭐예요? 결국 그거죠. 하나님이 야 니 맘대로 살아 난 너 관심 없 관심 없으니까. 내가 니 삶을 굳이 이래라저래라 할 이유가 없어 나 니 맘대로 살아 여러분 그런 집안을 전문 용어로 콩가루 집안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이 자녀의 삶에 관심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는 이미 내놓은 자식인 거예요. 니 맘대로 살아 그래 난 너에게 관심 없어 여러분 그게 부럽습니까? 우리 인생이 내 뜻대로 살아서 잘 될 수 있습니까? 잘 되는 게 맞습니까? 안 되는 게 맞거든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곰곰이 내 생각이라는 걸 한번 정리해 보세요. 내 생각대로 되면 다 될지 여러분 큰일 납니다. 내 생각대로 되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믿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지혜대로 돼야지 내 생각대로 되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될 거예요. 그런데 아이는 누구냐 내 생각대로 된단 말이에요. 그건 어망진창으로 가는 지름길이죠. 그것은 내 인생을 망치고 다른 사람까지 망치는 지름길이죠. 그런데 아기는 그렇게 산단 말이에요. 왜 하나님의 개입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대심이 없기 때문에 그거 어떻게 살아도 하나님이 그에게 징계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삶은 형통해 보입니다. 절대로 부러워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부러워해야 될 것은 뭐냐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삶이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이죠.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의 임재 아닙니까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은 잘못 가면 혼을 내고 때려서라도 바른 길 가도록 인도하는 게 하나님의 임도예요. 하나님의 임도예요. 하나님의 임재예요. 근데 악인에겐 그게 없단 말이죠. 

그래서 오늘 말씀에는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라 이 말은 뭐냐면 자꾸 우리가 악인이 부러워서 함께 있어 보려고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나도 좀 잘 되지 않을까라고 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과 함께 있지 않다는 말이 되는 거죠. 그래서 함께 있다는 개념이 중요한데 악인과 함께 있을 거냐 하나님과 함께 있을 거냐 선택하라는 거예요. 하나님 옆에 있으면 불편하고 힘들죠 바른 길을 가야 되니까. 그니까 똑바로 살아야 되니까. 이게 우리에게는 보통 일이 아니죠. 그런데 여러분 그러지 않으면 발전이 없어요. 그러지 않으면 우리 생은 항상 가라앉을 거예요. 겉보기에는 번드르르 하겠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점점 가라앉아서 사망에 이르고 맙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때때로 많이 혼나기도 할 거예요. 

때때로 하나님이 우리를 회초를 들기도 하실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든 바른 길을 가도록 하셔요 저도 새벽 기도를 나올 때 마음이 매일 달라요. 어떤 때는 제가 괜찮아 보여요. 이 정도면 괜찮지 이 정도면 오늘 설교하기를 무난할 거야. 마음은요, 근데 마음이 되게 편해야 되잖아요. 근데 오히려 안 편해요. 근데 어떤 때는 새벽 기도를 나올 때 마음이 굉장히 불안해요. 떨려요 야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 내가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 말씀을 전하는 게 맞나 이게 이래도 되나라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제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없죠 근데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 전하러 나올 때 토리의 은혜가 돼요. 왜 그러냐면 하나님께 제 마음이 다 드러나 보이고 그래서 하나님이 절 책망하시고 야 너 그래 가지고 되겠냐 너 그렇게 살면 안 되거든. 

이런 마음을 주실 때가 도리어 하나님과 함께 있는 때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내가 마음이 편하고 내가 마음이 너무 괜찮아 보이면 혹시 생각해 보셔야 돼요. 내가 지금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건 아닌가 내가 하나님의 책망을 받기 싫어서 지금 멀리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데 도리어 하나님이 나에게 양심의 가책을 주시고 나에게 때로는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주실 때 도리어 우리 마음이 안심이 돼요. 그렇지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구나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있느냐예요. 형통해 보이는 건 상관없어요. 지금 당장 형통해 보여도 그것은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미래까지도 생각하는 지혜를 갖는다면 현재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는 거죠. 오늘 이 일 절의 말씀을 이 잠원 24장은 계속 풀어갑니다. 19절을 한번 볼까요? 오늘 말씀을 1절을 거의 고대로 가져오는데 조금 달라요. 

19절 볼게요 19절 너는 행학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하셨어요. 자 그러니까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말은 1주일과 같죠 그런데 앞에 뭐가 있어요. 행학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라는 말씀이 들어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처음에 우리는 행학자들을 볼 때 부럽지 않아요. 처음에는 뭐가 되냐면 분인 나요? 분하게 돼요. 분노하게 돼요. 아니 사람들 행학자인데 왜 저렇게 잘 살아 분노가 먼저 일어나요? 근데 분노라는 것이 뭘로 이어지냐면 부러움으로 이어진다라고 하는 거죠. 이게 우리의 한계예요. 우리 현실인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마음 행학자들은 말미암아 분을 품는 것 자체가 부러움을 향하여 가게 된다. 그러니까 사람 저렇게 살면 안 되는데 저렇게 살면 망하는데라고 생각이 들어요. 근데 점점 사람을 우리가 그 나쁜 것을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거예요. 

마치 며느리가 시어머니 욕하면서 시어머니랑 똑같애지는 것처럼 그래서 시어머니 자리에 올랐을 때 며느리를 쥐잡듯이 하게 되는 것처럼 그게 우리는 욕하면서 닿는다는 거예요. 분을 품고 화를 내면서 부러워하며 살게 된다는 거예요. 우리 마음이 그래서 중요한 건 뭐냐면 행학자들의 부러움은 형통함을 우리가 바라보면 부럽게 되구요. 바라보면 분하게 되구요. 이게 섞여서 싫은데 달라지게 돼요. 그런 삶을 살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중요한 포인트는 뭐냐면 우리의 마음이 지금을 보는 게 아니라, 미래를 본다 지금까지의 정보가 축적된 지식에선 뭐 모를 것이 아니라 지식을 활용하는 명절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 지향적인 지혜라고 하는 것까지도 봐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20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대조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그랬어요. 이게 지혜예요.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는 것이죠. 장래 행학자는 장래가 없다. 이게 성경이 말씀하는 지혜예요. 지금은 행학자가 통통해 보이지만 아니 그들에게는 장래가 없어 미래가 없어 그걸 너희가 알아야 해 그리고 아기네 등불 지금은 등불이 타고 있어요. 너무 잘 타요 그래서 우리가 너무 부러워요 너무 굉장해 보여요. 그런데 등불은 꺼지리라 미래의 모습을 미리 알려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분명히 마음에 가져야 되는 지혜입니다. 중요한 건 미래의 사건입니다. 현재까지 어땠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가 더 중요해요. 여러분 점을 보러 가도 잘 맞혀요 왜요 과거의 지식의 차원은 귀신들도 알아요. 

그건 싹이 더 잘할 수도 있어요. 지금까지 어땠느냐 중요한 건 앞날이에요. 점장이들이 기독교인의 앞날을 못 맞춰요 그건 지혜이기 때문이에요. 그건 지혜의 부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어떻게 행하실지는 귀신은 알 수가 없어요. 점장이 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점 보러 가면 기독교인들 제일 싫어해요. 왜 앞날을 모르니까 그들은 과거에만 집착하니까 과거에 이랬죠 이런 일이 있었죠. 이런 사람 만났죠. 그럼 어우 맞다고 그런데 앞날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라요. 여러분 우리의 앞날을 여시는 분 지혜의 주님은 하나님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근데 하나님이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주셨어요. 앞날을 어떻게 말씀으로 하나님 말씀 속에는 우리 앞날에 대한 지혜가 들어있어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인 거예요.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고 우리 앞날까지 인도에 가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이 지혜의 말씀인 것이죠. 

그래서 이 절로 오늘 가봅니다. 오늘 말씀 이 절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 자 행학자들의 모습인데요. 이 행학자들은 항상 마음과 입술에 뭐가 있냐 강포와 재앙이 있다. 그들에겐 지혜가 없다는 거예요. 지혜가 없어요. 앞날에 대한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까 마음과 입술에 뭐만 있는가 강포와 재앙, 즉 말을 함부로 하고 말을 세게 하고 말을 거칠게 한다는 거예요. 근데 이게 어렸을 때는요 우리 신앙이 어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릴 때에는 되게 멋있어 보여요. 그래서 와 어린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깡패 영화입니다. 그래서 죽여버릴 거야. 다 나와 이러면서 우리가 해치우자 그러면 되게 열광을 해요. 되게 좋아해요. 네 저도 어렸을 때 홍콩 영화 되게 좋아했는데 홍콩 영화는 전부 다 깡패 영화거든요. 

맨날 총 쏘고 칼 휘두르고 도끼로 찍고 피 철철 흐르고 그러면 와 되게 멋있다. 그랬거든요. 비둘기 호르락 달고 총 쌍권총 쏘고 그러면 되게 멋있었어요. 근데 철이 드니까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건지 어리석은 건지를 알게 됐어요. 야 총이 맞으면 죽을 텐데 저 총에 맞아 죽으면 내 아내는 어떡하지 내 애들은 어떡하지 부모님 어떡하지 야 주변 사람들은 어떡하지 생각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영화에는 그런 게 아무것도 안 나타나요? 그리고 총 멋있게 쏘면 되게 멋있고 총에 맞아 죽는 사람들은 전부 다 그냥 엑스트라고 주인공은 항상 살잖아요. 한 대도 안 맞잖아요. 그니까 여러분 강포를 품고 재앙을 말하는 게 되게 멋있어 보인단 말이에요. 수준이 낮을 때 보면 근데 성숙한 거 보면 그거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그건 형통도 아니고 그건 멋있는 것도 아니고 그건 잘 되는 것도 아닌데 악인의 강포와 재앙이 수준이 낮을 때 현실밖에 못 볼 때는 되게 멋있어 보이고 형통한 것처럼 보인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걸 뛰어넘는 진짜 우리가 잡아야 되는 게 뭐냐면 3절에 나옵니다. 3절 같이 있습니다.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그랬어요. 지혜와 명철됩니다. 바로 집 24장은 잠원 24장은 우리의 인생을 집이라고 하는 비유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 집 인생이란 무엇으로 건축되느냐 지혜로 건축된다는 거예요. 지혜 미래에 대한 지혜 우리가 미래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미래가 올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 소망 이것이 믿음입니다. 나의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미래에 대한 소망 그러니까 과거에 대한 지식으로 끝나버리면 그것은 현재가 변하지 못하구요. 난 미래도 소망이 없는데 지혜란 미래에 대한 소망이다. 그래서 지혜의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말미암아 건축된다. 

우리 인생은 누군가 우리를 건축하는 건축자가 있어요. 그분이 하나님이신 거예요. 우리 집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건축하신다 그런데 무엇으로 지혜로 건축하신다 내 미래에 행학자가 만날 재앙이 아니라 나를 때로는 책명하시고 나를 때로는 징계하시고서라도 나를 온전하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지혜 그것이 날 건축가신다 그리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된다. 이 명철은 뭐라고 그랬어요. 현재형이라고 했어요. 현재형 현재의 내가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러니까 지혜를 현재에 적용하는 것이 명철이죠. 그래서 이 명철은 말미암아 견고하게 된다는 거예요. 지혜가 없으면 우리 인생은 건축되지 못하죠. 불가능하죠. 거기에 명철에 들어와서 견고하게 되죠. 그다음에 4절입니다.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그러니까 단계를 보면 지혜가 제일 먼저 필요하고 그다음 명절 그다음에 지식이에요. 지식은 우리 방들, 즉 삶에 있는 하나하나의 부분들 있죠. 부분들을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는 힘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도 잘 알아야 된다는 거죠. 역사도 필요하고 우리가 살면서 인류가 쌓아온 많은 것들을 잘 알면 우리의 방을 채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거꾸로 바뀌면 어떻게 되는가 지혜 명철 지식인데 이 미래의 현재 과거와 이 중요성이 뒤바뀌게 되면요 이게 엉키게 되면 지식은 중요하게 여기는데, 즉 방들에 대한 보석은 채우고 싶은데 문제는 뭐가 없어요. 집 자체가 없는 거예요. 집이 건축되지가 않아요. 지혜가 없으면 그러니까 미래에 대한 소방이 없으면 집 자체가 없어요. 

그러니까 방만 있고 방에 있는 보물만 있고 집은 견고하지도 못하고 집 자체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의 지식만 가지고 살면 과거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왕년에 과거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현재 집 자체가 없는 거죠. 그리고 명철이라고 하는 현재를 견고하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래서 항상 우리는 미래에 대한 지혜 현재에 대한 명절 과거에 대한 지식을 순서대로 순차적으로 알고 깨닫고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하기를 5절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라고 하셨어요. 

지혜 지식 명철 다 중요하지만 가운데 순위를 매겨보면 5절은 같이 읽어볼게요 5절 시작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요? 아니 자 지혜가 있어야 강하다는 거죠. 지혜가 없으면 헷갈려요 힘이 없어요. 지식만 과거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요, 지금까지 행학자들이 형통했던 것만 생각해요. 그러니까 하나님 믿을 필요가 없죠 하나님 안 믿어도 저렇게 잘 사는데 하나님 믿어도 저만큼 못 사는데 그럼 하나님 믿으면 안 되죠. 그러나 지혜 있는 자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 우리의 앞날에 대한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는 사람은 강하다는 거예요. 

진짜 강한 사람은 누구냐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 내 인생의 완성 내 앞날에 영생 구원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까지 바라보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식이 있는 자는 힘을 더한다. 과거에 살아온 날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있고 정확한 교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힘을 더한다. 그래서 우리가 지혜와 지식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하고 또 지혜와 지식을 골고루 붙잡는 우리의 삶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위와 지식을 잘 붙잡아 활용하는 삶을 뭐라고 표현하냐면 6절입니다.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시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바로 전략 또는 지략이라고 말합니다. 

전략과 지략 이것이 뭐냐면 과거에 살아온 날들에 대한 지식을 갖되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한 지혜를 더욱 붙잡는 것 그것이 전략 또는 지략이에요. 그래서 이 두 가지를 분명하게 오늘 이 시간 붙잡기를 원해요. 그래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는 것 필요하죠. 지식도 필요해요. 그러나 앞날에 다가올 일들을 중요 앞에 온전히 맡기고 위탁하는 지혜는 더욱 소중하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오늘 잘 가지고 지나온 날들 하나님 왜 그러셨어요. 하나님 왜 이거밖에 안 돼요. 하나님 왜 이럴 수밖에 없나요? 지식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일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도우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행하실 줄 믿습니다. 

지금 내 눈에 보기에는 내가 판단하기에는 내 수준에는 이거밖에 안 보이고 이거밖에 생각이 안 되고 이렇게밖에 안 믿어지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미래를 온전히 변화시켜 나가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앞으로의 내 앞날은 하나님 손에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온전한 결과와 하나님의 최종 완성하는 단계를 바라보면서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여러분 의는 믿음으로 사느니라라고 하셨어요. 의는 믿음으로 산다 이 말이 뭐예요? 과거에 살아온 일들로 사는 게 아니에요. 앞으로 다가올 하나님의 놀라운 앞으로 행하실 일들을 믿음으로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의인이 살아갈 힘이 없습니다. 세상만 바라보면 악한 사람들이 이기는 것 같고, 순 사기치고 순 자기 마음대로 남 등 치고 악하게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다 이기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결국에 손을 들어주시는 사람은 그러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행하실 것을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지식과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오늘날 내 삶에 버무리는 명철입니다. 이 지식과 명철과 지혜를 가지고 오늘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이 걸어가라 하시는 길을 힘차게 걸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우리 성민 가족들 될 수 있기를 우리 하나님 원하고 계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현실적인 눈으로 보면 과연 하나님 말씀이 어디까지 진리로 펼쳐지는가? 

과연 이 세상은 얼마나 하나님 말씀으로 되는가 우리는 혼란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지금까지 내 눈에 본 것 내 귀에 들은 것 내가 습득한 정보와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실 앞날에 놀라운 일들이 있음을 저희들 믿고 하나님의 약속이 말씀이 분명히 우리 삶에 이루어짐을 저희들 보는 믿음의 눈 지의 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지혜를 가지고 현실의 삶을 풀어내고 열어내는 명철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지식과 명철과 지혜로 말미암아 오늘도 하나님 주신 말씀을 꼭 붙잡고 우리 삶을 바른 길로 풀어나가는 저희들 모두가 되기를 소망하오니 이 시간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의 마음속에 모든 혼란과 잡음과 흔들리는 곳들이 하나님 말씀으로 균형 잡힌 삶이 되게 하시고 온전히 하나님 바라보는 믿음을 갖게 하시고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주여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오늘도 하나님 안에서 우리 삶이 온전해지게 하시고 하나님 주시는 지혜와 명철과 지식이 오늘도 우리를 든든히 세워나가는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복된 하나님의 은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도우심 가운데 살기를 소망하오니 하나님 우리의 과거의 지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으로 오늘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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