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창고

[설교] 사도행전 16

yt1981 2023. 8. 3.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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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자훈련을 하고 또 목회를 하면서 제일 힘든 게 뭐냐면은 하나님 앞에 오랫동안 기도했던 것들을 또 바랬던 것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게 아니고 들어주지 않았던 분들을 만나는 겁니다. 10년 20년을 기도해도 안 들어주셨던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이 내가 어떻게 이렇게 나한테 하실 수 있는지 하나님께 상처 입은 분들을 만나면은 제자훈련을 하게 되면은 하소연을 듣는데 정말 몇 개월이 갑니다. 그럴 때마다 야 참 뭐 저라고 어떻게 그걸 알겠습니까? 그러면서 인제 굉장히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6절에 보면은 성령께서 바울 일행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 6절 함께 읽겠습니다. 6절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르기라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우리는 여기서 여러분 어떤 하나님을 봅니까 놀랍게도 막으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바울이 가려고 했던 아시아는 소아시아 지방을 말합니다. 오늘날 터키 서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에베소와 지역을 말합니다. 이 지역에서 다른 것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막으셨습니다. 여기서 맑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르 콜리오라는 말입니다. 그것은요, 6절처럼 못하게 하다 아니면 누가복음 6장 29절에서 거절하다 이런 뜻이 있습니다. 6장 누가 본 6장 29 줄 보면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며 내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소곡도 콜리오 거절하지 말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결국 이 단어는 하고자 하는 것 간절히 원했던 것 등을 막는 것 누가 보기에는 말씀대로 거절하는 거를 얘기합니다. 거절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어떤 느낌이 듭니까 우리가 본문을 보면서 의아해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첫째, 본문의 전 단락 사도 행전 16장 1절부터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더베와 루스트라에서 바오르게 많은 선교 외매를 얻게 하셨습니다. 5절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5절입니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아니 그런데 이렇게 좋으셨던 하나님이 지금 바울의 소아시와 전도는 막으시더라 이겁니다. 승낙하셨던 하나님이 이제 거절하신 것입니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둘째, 사도 바울과 일행이 소아시아에서 하고자 하는 것이 자신들의 사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마그시드라이 갑니다. 거절하셨다 이겁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사실은 제가 그냥 이 보통 부흥에 가면은 다 됩니다. 이러고서 그냥 말씀 전하면 좋아요. 저도 좋고. 성도도 좋고. 좋은데 제가 저희 식구들한텐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아요. 진짜 성경이 전하는 말을 하고 싶고 그렇게 한다고 믿음 생활이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여러분 특새도 안 나누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게으르지 게으름이 그럴 수도 있고 몸이 아파서 그럴 수도 있고 어떤 분은 상처를 입으신 거예요. 근데 다 해봤다. 다 해봤어 하나님한테 내 귀를 막으시더라 이런 분들 정말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수질 있는 성도들로서 나 자신이 그게 문 정말 질문이 되는 것이고.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대답할 준비가 돼야 됩니다. 이 새벽에 나오시는 분들이라면 제가 저희 교회의 리더분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 이 거절하시는 하나님 막으시는 하나님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최근 자신의 그 큰절히 원하는 것을 막으시는 하나님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길 바랬는데 하나님께 거절당한 느낌이 있냐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내 사업으로 물질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더 어렵게 하시더라 이겁니다. 교회 직분에 맡아 열심히 섬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절하시고 자꾸 낮게만 하시더라 이겁니다. 참 분위기 묘하네요. 아침부터 아니 제가 모경하는 데서 이게 진짜 실제 얘기를 하는 겁니다. 볼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교회를 정말 누구를 섬겼는데 상처만 돌아오더라 가족의 행복을 통해 모범이 되고, 좋은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 드리려고 했는데, 자녀 식기들 없어서 제가 하는 말인데 왜 이렇게 말 안 듣는 거예요. 그리고 믿었던 배우자까지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겁니까? 우리 젊은이도 오늘 어머니 손잡고 이렇게 또 우리 나온 젊은이들 너무 귀해요. 너무 귀합니다. 이 젊은이들 정말 미래를 믿음으로 결단하고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는데, 원서만 백 통 쓰는 사람도 많아요. 미래가 더 깜깜해지더라 이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되는 겁니다. 한국 교회가 진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되는 겁니다. 수준 있는 성도로 진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되는 겁니다. 이 새벽에 저희가 이게 진짜 수준 있는 성도니까 제가 묻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노력하고 계획하는 것 우리가 계획하고 노력하는 것을 거절할 수 있는 분입니까? 아우 새벽부터 묘합니다. 분위기 딴 데서는 제가 이거 주일 예배하지 새벽 기회 못 합니다. 그럼 우리는 제가 볼 때 수준 있는 성도들이 다시 한번 여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이나 노력을 거절할 수 있는 분입니까? 어떻게 이게 아면이 될까요? 이 지문에 대해 여러분은 아면 하셨는데 딱 성경의 답을 얘기하면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관자 되시고 주인 되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인정할 때 신앙의 한 단계 성숙한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성숙한 거를 아멘으로 대답했는데 OKR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노력하고 계획하는 거 여러분이 지금 기도하러 오신 거 온 힘을 다해서 기도해야 되거든요. 

근데 하나님이 거절할 수 있다. 이겁니다. 아프지만 그렇습니다. 아면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다음 단계로 나가야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한절히 원하고 기도하는 것 계획하는 거 하나님은 왜 막으시고 거절을 하냐? 이겁니다. 이게 핵심이죠. 우리가 부르짖을 때 바로 알고 부르짖어야 되겠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왜 우리가 그토록 원하고 바라시는데 거절하시는가 이건 여러분에게 던지는 얘기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제가 제자훈련을 수도 없이 하면서 우리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이게 뭐 달짝지근한 것만 매긴다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니고 보약이래도 성경의 말씀을 매겨야 된다. 이걸 깨달은 겁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칸지를 원하고 그렇도록 매달려 걸 왜 거절하시고 때로는 막으시는가 첫 번째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계획하고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가 되는 것이면은 거절하십니다. 

왜요 우리의 계획과 노력이 우리 삶에 해가 되고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하나님의 거절은요, 이 경우 하나님의 거절은 방향 전환의 신호입니다. 노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지만 위험한 칼을 달라고 하면은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빼앗습니다. 좋은 학벌이 교만해야 될 것 같으면요 우리 젊은이들 잘 들으셔야 돼요. 아무리 기도해도 안 주십니다. 그게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요. 직장을 위해서 여러분 기도하신 분 오실 텐데 좋은 직장 때문에 해가 되고 좋은 직장에 제가 신앙생활 벌이는 분들 많이 봤어요. 너무 바빠서 교회 못 나오겠다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은 노하십니다. 사람에게 휘둘려서 정신 못 차리게 것 같으면은 많은 경우에 혼자 있게 합니다. 

뼈에 사무치도록 외로움을 느끼게 하세요. 왜요 하나님은 우리가 계획하고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가 되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원하고 노력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가 돼서 해가 되고 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노 거절하시는 겁니다. 방향 전환의 신호죠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좌절할 게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사랑하시니까 노하시는 거고. 방향을 바꾸라고 하는 거잖아요. 저희 딸이 저랑 자전거 타다가 저는 큰길로 가고 얘는 모르고 말이죠. 이렇게 그 강물로 샛길로 그만 자전거를 접어들었어요. 남해 같으면은 위험해 이랬겠지만, 그러고 말았겠지만, 쟤니까 사랑하니까 하는 거예요. 

여러분 아퍼도 하나님이 노하면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 사랑하시는 거예요. 아멘 그게 진짜 신앙인인 거예요. 그게 진짜 하나님 자녀인 거예요. 하나님의 거절은 방향 전환의 신호 노뿐만 아니고 종종 두 번째 기다림의 신호입니다. 이 기다림의 신호는 웨이 기다리라 이겁니다. 이 경우는 하나님은 우리가 열심히 계획하고 노력하는 것을 완전히 안 된다고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때가 되지 않았다. 때가 되면 허락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거절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요, 교회나 사회에서 좋은 위치를 원합니다. 우리가 봐도 똑똑하고 잘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아직 좀 더 익어야 돼요. 성숙해야 합니다. 

숙성해야 합니다. 자기만 모르지요 주변 사람들 다 합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은 좋은 위치나 이런 거 주지 않으세요.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후에 높은 위치에 가도 교만하지 않도록 기다림과 훈련으로 원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요 아니 우리 교회 말고 다른 교회는 다른 교회는 우리도 뭐 부분적으로 잘 기다리질 못합니다. 그래 가지고요. 시간을 정해버려요 협박합니다. 하나님 올해 반드시 이루어지옵소서 이번 가을입니다. 결혼 뭐 이런 젊은이들부터 이런 습성에 올라가지고 이번 겨울 12월에 대박이 옵니다. 승진이 옵니다. 이렇게 정해버려요 근데 하나님은 절대 급한 분이 아닙니다. 1000년이 하루 갔다면서요 하나님은 급하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합니다. 나쁜 거 아니죠. 좋은 겁니다. 열심히 하는 거 좋은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과에 안절부절 못하고 내면이 부글부글 끓고 삶이 복잡하고 결과 따라서 온몸을 떨고 이러면 하나님께서 딱 보신 다음에 뭐라 그러시냐면 좀 기다려라 좀 기다려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영적 뜸을 들이시는 겁니다. 이 경우 하나님의 거절은 기다림에 신은 거예요. 왜 여러분 아직 때가 안 됐습니까? 그러면 밥솥 열면 안 되는 거예요. 열매 따면 안 되는 거예요. 더운 여름 견디고 기다릴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게 은혜 아닙니까 여러분 때가 아니면 기다리고 훈련되면서 하나님이 때를 기다릴 수 있는 그런 믿음 되기를 그런 믿음이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질명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 본문에 관심이 있는 거예요. 그러나 본문에서 봐올 일행이 겪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이 마그심과 거절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두 가지의 이유 방향 전환의 신호 노 아니면 기다림의 신호 웨잇 이런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어요. 왜요 첫 번째 바울 일행은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 뜻을 행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지금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죠. 두 번째는 적절한 때였습니다. 때도 적절했습니다. 훈련도 잘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겪는 하나님의 거절 하나님의 막으심은 도대체 뭐냐 이겁니다. 본문에 보니까, 우리 수아시에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막으셨죠 6절 우리가 봤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부르길라와 갈릴의 땅으로 다녀가 이렇게 막히자요 부르길라와 갈라디아 땅으로 인제 바울 일행이 우리가 읽은 것처럼 이렇게 올라가다가 북쪽 무시하러 올라갑니다. 이제 자꾸 이쪽으로 가도 안 되니까는 북쪽 무시하러 올라가요 올라가서 방향을 틀어서 동쪽 비두니아로 갑니다. 왜요 비두니아는 아주 문화가 잘 발달된 헬라 도시입니다. 헬라인들이 많아 가지고. 거기에 복음이 전파가 되면 전 세계로 복음이 전파될 가능성이 큽니다. 두 번째 유대인 정착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선교 정책은 항상 자기가 속해 있는 유대인들 정착민에 가서 거그것을 뿌리 삼아서 이방인 복음을 전한다고요. 그런데 여러분 얼마나 바울이 지혜로웠어요. 그쵸. 

완전히 이거는 자기가 생각하고 계획하기에는 딱인 거예요. 야 이거다 이거 그래 가지고 이쪽을 막으셨으니까. 위로 가서 인제 이렇게 해서 한번 가보면 되겠다. 비두니아로 가면 되겠다. 그랬는데 아유 하나님 너무하셔 솔랑 막으셔요 7절 함께 했겠습니다. 시작 무시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여러분 그래가지고요. 이번에는 아예 그냥 예수님의 영이 막으셨다는 거예요. 세상에 이제는 꽉 막으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동쪽이 막히자 바오는 이제 더 끝으로 가가지고요. 무시하를 지나서 드로와로 갑니다. 드로와 드로와 앞에 선 바울 여러분 바다거든요. 앞이 바다 앞입니다. 마치 인천과 같은 데예요. 하나님의 거절 때문에 이제 바다 앞에까지 쓴 겁니다. 

빠질 듯 순간입니다. 아프지요 이 말씀 1건 8절입니다. 시 무시하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이제는요 완전 막힌 겁니다. 드로와 앞에 섰다는 것은 자기의 한계에 섰다 막힘에 서 있다. 이런 거 아닙니까 여러분 간절히 내가 뭘 원했는데 번번이 막히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코너로 몰리면 어떻습니까? 제가 젊은이들 상당히 사랑하고 우리 어르신분들 상당히 사랑하는데 제가 우리 젊은이 지도할 때 이런 적이 있었어요. 어떤 여자 청년이 저를 찾아와서 옵니다. 울면서 여러분 집이 부도가 났어요. 아버지가 그래서 집을 팔고서 이제 저쪽 경기도 어디로 셋방으로 가야 되는 거예요. 진로가 막혔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사귀고 있던 형제가 있었는데, 깨져버렸어요. 

겪어비 격거비 하나님께서 노한 거 아닙니까 울면서 저한테 와서 목사님 하나님이 숨은 좀 쉬게 해주셔야죠 이 가운데도 그런 분이 있어요. 지금 이 얘기하자마자 눈물 흘리신 분인데 이 오직 답답했으면 새벽에 나왔겠어 하나님이 숨은 좀 쉬게 해 주셔야죠 여러분 최선을 다해서 계속하는데 계속 막히면 어떻습니까? 계속 바울의 일행을 거절하시면서 드로아까지 몰아가셨습니다. 여러분 드로아랑 어떤 도시입니까? 항구도시입니다. 그래서 멀리 마게드냐를 오가는 항로가 개선돼 배가 오가는 있었던 항구 도시입니다. 번번히 길이 막혀서 바올 일행이 드로와까지 왔습니다. 드로와 앞에 서 있습니다. 심정이 어떻습니까? 

드로와 앞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에게해입니다. 에게해 바다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습니다. 낯선 바다죠 밑으로 가면 얼마 전에 성리원께서 막으셨던 에베소 주변 소아시아 지역입니다. 앞에는 바다 밑에는 하나님께서 거절했던 소아시아 지방 계속 시계 반대 방향으로 칫바퀴 도는 것처럼 보여질 것입니다. 잘해보려고 했는데, 계속 하나님의 거절로 이렇게 길이 막혔습니다. 꼼짝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른 것이지요 원망해 되지 않습니까? 포기해야 되지 않습니까? 어려운 순간입니다. 절망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너무나도 놀랍게도 구절에서 봐올은 자기의 한계를 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개도냐 방향으로 가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틱셀을 통해서 여러분의 드로와를 뛰어넘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마개돈녀로 갈 수 있기를 질문하면 축원합니다. 여러분 그러면서 너무 놀라운 거예요. 그러면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가 이게 어떻게 가능해요. 우리도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하나님께서 예배한 곳으로 가야 되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해요. 이게 핵심이죠. 16장 10절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 16장 10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바울이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개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노라 바울이 자신의 한계 앞에서 그 유명한 마개도냐의 환상을 봅니다. 이 환상을 통해서 바울은 자기도 깨닫지 못했던 생각하지도 못했던 마개도냐를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있음을 깨달은 겁니다. 자신은 소아시야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마게도냐를 보고 계신 거예요. 

자기는 작은 선교를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하나님의 계획 선교를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이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깨닫고, 즉시 마게도냐로 행보를 옮기면서 유명한 유럽의 선교의 첫 관문이 열린 겁니다. 그렇죠. 바울은 소아시아를 계획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베스트 하나님의 최고인 유럽 선거의 중요한 시작이 될 마게도냐를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최선 하나님 베스트 소아시아 선교로 가게 소아시아를 막으시고 마개눈으로 가게 하신 겁니다. 

결국 바울의 계획보다 더 좋고 위대한 하나님의 최선 하나님의 베스트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노력해도 바울이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막으시고 거절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됐죠 여기서 우리는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거절이 방향 전환의 신호나 기다림의 신호가 아니고 여기여기 하나님의 최선 하나님의 베스트의 신호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깨닫는 것은요, 우리의 계획보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베스트 하나님의 최선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때로는 거절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드로와의 선 바울이 낯선 상황과 자신의 한계를 넘었어요. 하나님의 최선 하나님의 베스트로 가는 것을 보면서 정말 놀랍습니다. 

여러분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다시 믿음으로 고백하길 원하는데 여러분 여러분의 드로와 한계 상황 앞에서 하나님께서 음해해 주셔서 하나님의 베스트 하나님의 최선으로 우리의 마개돈으로 가실 걸 주민 업무 추곤합니다. 자 문제는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 저는 이 본문에 관심이 많은 거예요. 어떻게 가능한가 본문을 자세히 보면요 먼저 바울이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여요. 소아시아 지역이 막히자 부르길라와 갈라디아로 갑니다. 다시 막히자 무시하를 지나서 피두니아로 낑끙거리면서 갑니다. 길이 막히자 정말 이제 드로와까지 가는 거예요. 뭘 봅니까 정말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 가운데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하나님의 베스트를 경험하려면 우리가 이 바울처럼 우리가 주어진 것에서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가정 학교 직 직장 교회에서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겁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만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비정상적인 것이고.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특수에 나왔습니다. 우리가 이 틱스에 나올수록 이 틱셀에 다니면서 네 가정 내 학교 내 직장 내 교회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주민임으로 축원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최선으로 가는 길이고 그게 하나님께서 주심하신 베스트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따르면요 우리의 최선만으로 하나님의 베스트 하나님의 최선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베스트에 이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냐? 훨씬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최선 가지고 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더 중요한 건 뭐냐 우리의 최선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만 하나님의 이게 핵심이죠. 하나님의 개입하심입니다. 

개입 우리 한번 따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개입하심 하나님의 개입하심 이런 거예요.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뭘 못 해 가지고요. 낑끽거리고 있으면 아버지가 야 그게 뭐 어렵냐 해 가지고 다 끼어들어 가지고 해주는 거예요. 시집간 딸이 뭘 못하고 낑끙거리고 있을 때 엄마가 탁 나와 가지고. 야 이렇게 하면 돼 이렇게 끼어들어서 개입해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개입해 주었어야 되는 겁니다. 본문을 보면요 파울리딩은 최선을 다해서 선교 루트를 찾았습니다. 찾고 또 찾았습니다. 그러나 계속 얘기하지 못한 낯선 상황이 벌어집니다. 한계에 부딪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환상이라는 것 중에서 개입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개입을 통해서 뜻을 알려주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신 거예요. 10절에서 바울이 이 환상을 보았을 때 마게도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했다고 돼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인정하다는 단어는요 대부분 영어에서는 결론 내리다 이렇게 번역돼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인정하다고 되어 있는데, 원래 이 단어 뜻이 중요합니다. 이 단어는 신비바조라는 뜻이에요. 이건요 문자적으로 보면 함께 묶이다. 통합되다 결합되다 이런 뜻이에요. 실이 함께 묶여 가지고 되다 아니면 조각난 퍼즐이 맞춰지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스 4장 16절에 보면, 온몸이 각 마디가 연결되어 이때 신비 바주가 쓰입니다. 그렇죠. 골로스 2장이저 2조처럼 마음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이때 쓰입니다. 그러니까 낫스 낱개가 연합되고 각각이 전체적으로 합쳐지는 걸 말합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결론 내리다로 말했고 우리나라 말로는 잘 부분부분 보이지 않았는데 전체를 보니까, 이제 이해가 간다라고 번역을 한 겁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선교의 길을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나 자신의 최선을 다해도 하나님의 베스트 하나님의 최선을 이를 수 없는 겁니다. 뭔가 중요한 게 빠진 거예요. 아하 이거구나라는 분명한 인정함과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상황은 낯설어지고 어려워지고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찾아 들어오시면서 개입해 줬을 때 아하 내가 보지 못한 게 이거였구나 내가 보지 못한 게 이거였구나라고 말하면서 결론을 내리고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되면서 내가 갈 수 없었던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최선에 이르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놀라운 환상이 어떻게 온 것일까요? 사도행전에서 환상이라는 것을 다 찾아보십시오. 그러면 모든 환상은 기도와 연결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사도행전 9장 11절부터 12절에 보면, 바울이 다매색 도상에서 개종 후 3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할 때 안 하니 안수하여 다시 보게 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사도행정 10장 2절부터 3절에 보면, 고넬류가 기도 중의 환상을 봅니다. 4대 행전 10장 9절부터 16절을 보면 베드로가 기도하다가 뭘 보죠. 보자기가 내려와서 하나님이 이방선거에 대한 뜻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사도 바울이 환상을 본 것은 우연히 주어진 게 아니에요. 자기가 최선을 다했다고 보여준 게 아니고 정말 하나님 앞에서 한계 상황 가운데서 목숨을 걸고 기도해서 주어진 것임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특이하게 이 기도와 항상 환상을 함께 언급하는 모든 본문과는 다르게 오늘 본문에는 기도했다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아요. 

그냥 구절에 밤의 환상이 바오올에게 보이니라고 돼 있습니다. 왜 이렇게 돼 있습니까? 다른 데는 다 기도했다라고 돼 있는데, 여러분 이거는요 많은 성경학자를 저도 동의합니다. 이거는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바울은 기본적으로 기대했지만, 하남이 주권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는 거예요. 다 나타납니다. 기도 환상은 근데 여기서는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을 갖고 개입해 주신 거예요. 파울의 일행의 기도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여기 본문에서 강조하는 건 뭐냐면 너희가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찾아오는 거야. 믿으면 아멘 합시다. 이게 신앙이에요.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거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찾아와 주셔야 되는 거예요. 근데 그거는 하나님의 뜻에 갈린 거예요. 이걸 인정하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할 건 다해야 되는 거예요. 

최선을 다하면서 언제나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 내가 최선을 다했지만,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결정하지만 하나님은 많은 경우 찾아오시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젊은 학생들 보면서 제가 어저께도 대학생들 보면서 한번 안아주고 싶더라고. 요즘 그러기도 쉽지 않아요. 그래서 참 마음이 귀하고 우리 젊은 집사님들 부부끼리 나온 거 보면서 제가 기도해 드리고 싶더라고. 믿음의 어르신 분들 이 그냥 지친 몸 끌고 나올 때 제가 참 눈물이 다 나더라구요. 이러면 왜 이렇게 나옵니까 우리가 추천을 다하지만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기 원하시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으면요 젊은이들 미래가 안 보여요. 우리 가정의 길이 안 보인다니깐요. 우리 노후가 너무 불안한 거예요. 여러분 제가 대학생 때 너무너무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전혀 이렇게 안 보이시죠.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몇 명 있었는데, 이제 김1승 목사님 약간 찢어지고 박태양 목사님 가난했는데 여러분 공부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참 길 열리지 않더라고요. 지금 제가 청신대학 어디 강의하고 학생도 여기 한 명 있는데, 그 언덕에 올라갔었는데 그때는 건물이 없었어요. 올라가면은 김포공항에 비행기가 떠다녀요 그러면 여러분 저는 유학을 옛날부터 너무너무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유학 갈 때 돈이 없는 거예요. 유학은 무슨 유학이에요. 내 이번 달에 낼 당장 학비가 없는데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신문을 돌리고 그리고 뭐 과외를 하고 책을 사기 위해서 수돗물을 먹고 함께 아껴서 책을 사도 길이 열리지 않는 거예요. 급기야는 여러분 등록금 낼 날이 다가옵니다. 이 급하잖아요. 

아버지가 그때 당시에 과일 장수로 하셨는데 과일 이제 같이 좀 팔아야겠다. 그래서 여러분 공부 내려놓고 이제 아버지 니어커 끌고 같이 과일 팔러 가는 거예요. 20대 때 그것도 동네가 세상에 공항동이에요. 공항 걸리겠죠. 완전히 더 중요한 건 비행기가 날아다니잖아요. 얼마나 비행기가 크게 날아다니는지 밑바닥이 다 보여요. 여러분 비참하대요 유학은 그렇게 가고 싶은데 현실은 사과를 닦고 있어요. 팔기 위해서 이게 조각이 안 맞춰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도대체 왜 이러시냐 왜 이러시냐 조각이 맞춰지지가 않는 거예요. 결론이 안 나는 거예요. 내 인생 참 불행한 인생이다. 그래 가지고 낑깅 낀끙거리는데 또 신앙인이었어요. 그때는 좋은 신앙이었어요. 도저히 안 되겠어 마음이 안 좋아서 잠깐잠깐 잠깐 사과를 팔면서 기도하는 거예요. 닦다가 기도를 하는 거예요. 

한 손에는 원서를 보고 유학을 가고 싶어서 한 손에는 사과를 닦으면서 이래 기도하는데 아유 하면서 눈을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여러분 순간에 찾아오시는 거예요. 제 마음속에 기도할 때 아들아 힘들지 힘들지 그럼 뭐 그걸 왜 물어요. 차라리 그렇게 말 못 하고 삐쳐가지고 가만히 있어요. 근데 기도는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힘들지 왜 물어 근데 그다음 말이 중요하신 거예요. 고노야 니가 앞으로 많은 사람을 도울려고 하고 어려운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많은 젊은이들을 깨우려고 하면은 이런 어려움 정도는 견딜 수 있어야 된다. 

니가 어렵고 힘든 삶을 이해해야 가슴으로 그들의 품을 거 아니냐 아들아 힘들지 하는데 눈물이여 그냥 후 떨어지는 게 여러분 저는 공부를 마치고 지금 언덕에 선생으로 서 있어요. 쉬는 시간마다 제가 나가서 언덕을 바라보거든요. 건너갈 수가 없었어요. 미국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뒤따라보면 최선을 다한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때마다 무릎을 꿇었던 거 같애요. 하나님 도와달라고 하나님 도와달라고 하나님 내 혜모를 할 수가 없어 그때 거기서 길이 열리는 거예요. 더 중요한 건요 뭐 세상적인 거 이룬 거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다 이러고 났더니, 그게 보이는 게 아니고 내 삶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이 보이더라구요. 저보다 똑똑하고 저보다 좋은 사람들 많이 있어요. 근데 하나님이 보이더라 이거예요. 이래서 하나님께서 때로는 내가 한계를 맞게 하셨고 내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무릎 꿇어서 기도하게 만드셨구나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구나 하나님이 내 삶에 개입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구나 이것 안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거절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절망하지 마십시오. 거절보다 큰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삶 때문에 거절받았습니까? 그러면 돌이키십시오. 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요.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거절하셨습니까? 그럼 기다리고 훈련하세요. 때가 되면 이루어지십니다. 내 계획을 넘는 하나님의 베스트에 최선이 있어서 거절하셨습니까? 

최선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 힘으로 안 돼요. 그래서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그때의 길이 열리고 그때 하나님이 보이고 나를 넘어서 하나님의 최선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망하지 마세요. 거절보다 큰 하나님의 은혜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멘 여러분 2시간에 제가 우리 목사님께 허락도 안 받고 여러분 원래 성도들하고 함부로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찬양을 한번 하고 싶었어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 두 번 부르고 주유하고 저는 내려갈 테니까. 담임 목사님 나오실 때까지 왜냐면, 여러분이나 저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필요한 거 같애요. 이게 진짜로 저도 어제저녁부터 하나님 도와주세요. 저도 지금 기도 제목이 되게 많거든.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아멘 우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 찬양할게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 나를 고쳐주옵소서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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