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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행전 28:11-22

yt1981 2023. 8. 29.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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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데를 떠난 바울 일행은 수라구사에서 사흘을 보낸 후 레기온으로 가서 하루를 묵고 다시 남풍을 타고 보디올로 갔다고 말씀합니다(12-13절).
이는 바울 일행을 태운 배가 멜리데를 떠나서 곧바로 로마로 간 것이 아니라 여러 항구를 둘러서 갔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여행길에는 언제나 잠시 쉬기 위하여 머무는 곳이 있습니다.
잠시 머물면서 여행 중에 쌓인 피로를 풀고 계속해서 항해할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길도 생각해 보면 이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나라를 향해 가는 우리 인생길에도 잠시 머무는 곳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 품에 머물러야 하고, 좀 더 자라서는 학교에 머물러야 하며, 더 자라서는 직장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에 머물다가 주께서 부르시면 비로소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인생의 항해에서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나라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를 맞이하는 천국 잔치 때 입을 예복도 준비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내어 보일 믿음의 열매도 준비해야 하며,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인격도 준비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준비하라고 오늘 또 이 새 하루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이 땅을 떠날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 영원히 거할 것처럼 땅의 것에 소망을 두고 살 것이 아니라, 장차 우리가 돌아갈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준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처소, 곧 하나님나라를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삶의 소망을 굳게 붙드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이어서 바울과 그의 일행이 보디올에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고 7일 동안 함께 머물다가 로마로 갔다고 말씀합니다(14절).

여기서 형제들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사도바울은 보디올에 살고 있던 성도들의 청함을 받아 그곳에서 일 주일간 함께 지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죄인으로서 이송되고 있는 사람을 손님으로 초청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물론 죄인을 호송하는 자들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지만, 또한 그런 죄인을 초청하는 사람들은 자칫 그 죄인과 한패로 취급받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게 되면 가까운 사이, 심지어 친척이나 형제라도 모른 척하거나 멀리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보디올에 살던 성도들은 그런 위험을 개의치 않고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을 초청했습니다.
이는 보디올에 거하고 있던 성도들이 바울을 예수님의 피로 맺은 한 형제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15절에도, 로마에 살던 성도들이 바울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나와서 바울을 맞이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압비오 광장’은 로마에서 약 65km 떨어진 곳으로 로마로 연결되는 큰 대로가 통과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트레이스 타베르네’는 ‘세 오두막’이라는 뜻으로 로마에서 약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로마에 거주하고 있던 성도들은 바울이 죄수로 로마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수십 km에 달하는 먼 거리까지 나와서 그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환대였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맺어진 관계는 아무리 친밀할지라도 이권이 개입되고 오해가 생기면 쉽게 깨어집니다.
마치 자기 눈이라도 빼어줄 것처럼 친밀했던 사람들도 상대방으로 인해서 손해가 생기고 피해를 입게 되면 멀리하기 시작하고, 심한 경우 천하에 둘도 없는 원수가 되어버리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관계는 서로를 위해서 기꺼이 손해와 피해를 감수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심지어 서로를 위해서 생명이라도 내어줄 수 있는 관계가 바로 성도의 관계입니다.
게다가 이 관계는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까지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성도간의 관계를 세상 그 어떤 관계보다도 가깝고 친밀한 관계로 여겼습니다.
친척이나 친지, 심지어 한 부모의 피를 나눈 형제의 관계보다도 더욱 친밀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성도들에게서는 이러한 관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말로는 예수님의 피를 나눈 형제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낯모르는 사람처럼 여기고 살아가는 경우가 우리 성도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많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하늘의 영광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제자요, 예수님의 형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위해 희생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형제로 인정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진정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사랑에의 초대에 기꺼이 아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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