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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히브리서 5장 3편

yt1981 2023. 9. 1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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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히브리스 5장 말씀 보겠습니다. 1절에서 14절까지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대 제4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이래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역에 휩싸여 있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로님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 제4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오.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내가 영원히 멜기 새댁의 반차를 따르는 제4장이라 하셨으니 그는 육지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능력이라고 말했다. 

구원하실 리에게 심한 토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조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 적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른 대제4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멜기세댁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함으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아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제4장이라는 존재는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중보자입니다. 

대제4장이 있어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대제4장의 제사를 통해서만 인간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근데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오해를 받은 것 중의 하나는 왜 대제4장의 반열에 그가 올 수 있느냐고 하는 의문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그는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는 제자도 아니고 예수님의 친히 부른 제자도 아닌데 그가 왜 사도라고 스스로를 칭하느냐 하는 오해를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죠 아마 오늘날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누가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뭐 목사 안수를 받지 않고 여전히 뭐 어디서 목회를 하다가 목회가 뭐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만약 교회가 부흥하면 당장 목사의 자격을 시비할 아마 그런 일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도대체 저분은 누구시길래 뭐 기적을 행사할 수도 있고 하지만은 어떻게 저분을 대제4장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런 자격심인 것이죠. 왜냐하면, 메시아다 그리스도다 하는 것은 그리스도스 메시아라고 하는 직책은 삼중직을 말합니다. 기름 보험을 받은 자의 첫 번째는 대제4장에게 기름을 부어 세웠기 때문에 그분이 메시아가 되기 위해서는 대제4장 직을 인정해야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대제4장은 예 아론의 반차 아론의 서열 아론의 집안에서만이 대제4장이라는 직책을 수행할 수 있는데, 어떻게 그에게 그런 직책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또한 메시아란 왕에게 기름을 부었는데 그래서 우리는 고레스에게도 이방왕이지만은 그게 메시아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어쨌건 기름을 부어 세운 자 중에서 왕인데 예수님이 무슨 왕일 수 있겠냐는 것이죠. 선지자 왕 대제4장 이런 분들에게 기름 부어 세웠기 때문에 자격 시비란 언제든지 그치지 않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히브리스 기자는 예수님은 그런 인간 족보를 따라오는 대제4장 이상의 대제4장이다. 이걸 이제 설명하기 위해서 오늘 멜기세댁이라고 하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멜기세대가 성경 전체를 통해서 세 군데 등장합니다. 창세기 14장에서 등장을 하고 10편 110편에 한번 등장을 하고 그리고 여기 히브리스 기자가 이 멜기 새댁이라는 서열 멜기 새댁이라고 하는 인간 족보를 따르지 않은 시작도 모르겠고 끝도 모르겠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떤 그런 족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족보를 이 히브리스 기자가 창세기의 아브라함이 만났던 멜기 새댁의 반차 멜기 새댁의 서열을 따라온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하는 그런 이 탁월한 해석을 내놓은 거예요. 어쨌건 오늘 한번 얘기를 들어보겠다. 그러니까 인간 대제4장 인간의 족보를 따라온 이 대사장과 아론의 서열이 아니라 레위 지파가 아니라 다윗의 지파를 따라 나온 이 예수 그리스도 다윗의 집하 가운데서는 대제4장이 나올 수 없는데 어떻게 다윗의 계를 따라온 예수님께서 대제4장일 수 있냐 하는 시비에 대한 답이기도 하고, 또한 독특한 해석이기도 한 것이죠. 자 1절 이 절입니다. 시작 대제4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습니다. 

대사장은 대제4장은 결국 사람 가운데서 택한 사람입니다. 사람 가운데서 나온 제4장이기 때문에 그가 비록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지만은 자신을 위해서도 제사를 드려야 했던 사람입니다. 여기 대제4장이 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기의 속죄제를 먼저 드려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누군가의 죄를 속할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대제4장은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어쨌건 그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런 장점도 있다는 것입니다. 뭐냐 하면,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게 된다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그런 연약함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용납할 수 있고 용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계속해서 읽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존귀는 암으로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서 대제4장이라고 하는 직분 어떻게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살 수 있습니까? 그가 아론의 반찬을 따라 나온 대제4장도 아닌데 하는 그런 지적이나 불 볼맨 소리에 대해서 대 인간 대세사장은 속죄제를 드릴려고 하면은 자신을 위해서도 드려야 마땅하지마는 또 이 자리는 스스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한다. 이걸 우리 뭐 히브리 백성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예요. 

누구도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냐 그분이 그리스도 되심 메시아 되심은 하나님께서 더 높은 어떤 서열을 따라서 대제4장직을 임명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대제4장이란 스스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스스로 대제4장이다라고 스스로 뭐 이렇게 기름 부어 세울 수 있는 자가 아닌데 하나님께서 친히 기름을 부어 세운 대제4장이라면은 이 계열은 도대체 어떤 계열인지를 설명 설명해야 되지 않습니까? 자 5절 이하입니다. 시작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4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오.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나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실 때 내가 영원히 멜기 새댁의 반찬을 따르는 제4장이라 하셨으니 자 여기 5절 6절을 보면은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4장이 되실 수 있고 인간의 모든 죄를 속하실 수 있는 대제4장직을 위에서 오셨는지를 어떤 계를 따라 어떤 근거로 오셨는지를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첫째는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아들이다. 시편 이 편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 것이죠.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낳으셨다는 것이고. 또한 시편 말씀을 듣게 됩니다마는 시편 110편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110편 사전을 자 10편 110편 한번 1절부터 4절까지를 같이 읽겠습니다. 다윗의 시입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원수들로 내 발판이 되기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연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귀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죄 권능의 날에 죄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절그이 헌신하니 새배기술 같은 죄 청년들이 죽게 나오는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러시기를 너는 멜기 새댁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4장이라 하셨도다 예수님께서 나중에 이 말씀을 가지고 바리스인들과 논쟁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마는 지금 도대체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추억의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내 주 내 주란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죠. 다윗의 주는 누굽니까 이게 지금 오실 메시아를 그가 예언하는 예언의 시로 우리가 알려져 있는 근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말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또 내 주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주님은 누구자고 하는 것입니까? 그게 4절에서 보면은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 이러시기를 너는 멜기새댁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4장이라 하셨다 이게 다윗이 메시아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받은 이 내용입니다. 멜기 새댁의 서열을 따라서 영원한 제4장이다. 오실 분은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첫 번째 멜기 새댁이 나오는 등장하는 창세기를 한번 더 읽어보십시다. 창세기 말 그담 14장 한번 보시죠. 14장 느닷없이 등장하는 이 멸기 새댁이라고 하는 사람은 도대체 가나안 땅에서 어디서도 족보를 찾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분이 그냥 뭐 영적인 존재라고 하는 그런 해석을 내놓기도 하죠. 4장 17절부터 21절까지입니다. 

시작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메가 그와 함께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 소돔왕이 사회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왕 멜기세댁이 덕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4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여르되 천지의 주제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내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성할지로다 하매 아브라함이 얻은 것에서 10분의 1을 멜기 세대에게 주었더라 멜기 세대 도대체 이 북부 가나안 북부 연합군을 쳐서 조카 롯 일행을 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도대체 축복하는 이 사람은 누구냐는 거예요. 살렘 왕 멜기 새댁이라고 되어 있는데, 멜기 새댁이라는 뜻은 의의 왕 정의의 왕 그러니까 평강의 왕으로 이 존재하는 멜기세댁은 신비한 존재로 잠시 등장했다가 한 번도 이름을 다시 오르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멜기세대계라는 왕이 도대체 가난 지방 어디에서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 그게 근거가 없어요. 도대체 족보를 알 수 없는 그런 왕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다윗이 이 멜기 새댁이라고 하는 이 의회왕 이 왕이 오시리라고 하는 그런 예언을 받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왕은 이 다윗 자기 집화를 통해서 올 것이라고 하는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 제4장은 도대체 아론 서열이고 이게 레비 지파를 따라오는 것이지. 이게 다윗 지파를 나와서 따라올 수는 없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우리가 나중에 역대기라든지. 여러 곳을 보면은 이 다윗의 지파 이 새에 싹이 날 것이다. 하는 이런 예언들을 듣게 됩니다. 

종합적으로 우리는 이 멜기세댁의 반찰을 따라오는 족보를 알 수 없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족보를 따라오는 친이 직접 오시는 어떤 그런 대제4장을 우리가 맡게 된다는 뜻이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직책을 이렇게 받으셔서 오신 분이다. 이 얘기를 지금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 7절 이하를 읽습니다. 시작 그는 육체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리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과 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비워서 온전하게 되실 선정 자기의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밀기세대기 반찬을 따른 대체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그는 육체로 오셔서 자기를 능히 죽음에서 구원하실리 하나님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관과 손을 올려드렸고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들이면서도 고난을 받기 받았고 그는 순종함을 배웠기에 그래서 온전하게 되셨다는 것을 지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그가 온전하게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그가 순종함으로써 아들이면서도 그는 모든 고난을 통과하셨기 때문에 그리하여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었다. 영원한 구원이 되었다.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분 자신이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산 재물로 당신 자신을 들였을 때 단 한 번의 제사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아들 되심 그분의 대제4장 되심 그의 속죄함은 온전한 제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제사도 온전한 제사는 없었습니다. 대제4장은 1년에 매번 드려야 되는 거예요. 

자기를 위해서도 드려야 하고 그리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속죄죄를 드렸지만 매번 대속죄일 때마다 해마다 가서 죄를 사함을 얻어야 되지만 그러나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댁 이 반체를 따라오셨기 때문에 그분의 제4장 됨 그분의 제사의 효력 이거는 인간 제4장과 인간 제사의 효력과는 게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스는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의 탁월함 그리스도의 우월함 그리스도의 온전하심 그리스도의 영원하심을 주제로 삼고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드리는 제사와 어떻게 본질적으로 다른지를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것이죠. 자 11절 이하를 읽습니다. 시작 멜기세댁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함으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지금 아니아니 여기까지 잠깐 할 말이 많지만 너희가 듣는 게 둔해서 말 안 하겠다는데 저는 여러분들이 둔하지 않기 때문에,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멜기 세댁에 대해서 여러분 다 알아들으시기 때문에 지금 이 히브리스 기자는 내가 멜기 세댁에 대해서 더 얘기를 해 봐야 못 알아듣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에서 잠깐 변죽만 울리지만은 그러나 그래 놓고 나서 그건 나중에 6장 7장에서 계속 이 멜기세대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멜기세대 얘기를 우리 며칠 들어야 돼요. 근데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니까 12절 13절이 재밌는 말씀이죠. 시작입니다. 

시작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내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더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달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너희가 지금 마땅히 선생이 되었어야 할 텐데 여러분 지금 이 기브니스 기자가 쓰고 있는 대상들은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에요. 이스라엘의 문제는 하나님을 모르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깊어진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자기가 옳은 대로 섬기기 시작하면서 생긴 일이란 말이죠. 

그리하여 그들은 정작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신 백성으로 부르신 목적과 소명을 놓쳐버린 백성들이 되고, 마는 것이죠. 그들을 위하여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예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부터 해방시킨 까닭은 노예로 살아가는 가나한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목적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신 까닭은 어둠 속에 있는 세상 가운데로 우리를 보내시기 위하며 이 땅 가운데 짙은 어둠 속에 있는 이 온 세상을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내라고 부른 것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 또한 배우는 목적이 있단 말이에요. 그리스도 된 그리스도인이 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평생 배우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는 배움의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이에요. 그는 배움 자체가 중요해서 날마다 배우기는 하는데 마치 평생 공부하다가 끝나는 인생 같애 예전에 제가 우리 사랑하던 목사님이 후배 목사가 찾아와 가지고 제가 좀 공부를 하겠다. 

그러면은 그냥 빙그레 웃어요. 또 바람났9만 지금 한참 사역을 해야 될 때인데 또 공부하러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유학을 가서 10년 동안 십몇 년씩 이렇게 또 유학을 하고 젊은 시절 다 보내는 거야. 유학하느라고 그 대개 보면 일하기 싫어서 가는 거예요. 그래서 바람났다고 그러는 거예요. 사역은 고되고 가서 공부하고 있으면 편하니까 물론 죽어라고 또 공부한 사람도 있고 거기서 또 신학을 마치고 오는 분도 있지만 그래서 배움이 끝이 없어요. 여러분 배워보면 끝이 있습니까? 그래서 또 배우고 또 배우고 또 배우고 또 배우다가 정작 배움을 살아낼 시간을 다 보내고 마는 거예요.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정말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배움이란 살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떠난 것입니다. 

배우고 또 배우고 또 배우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다 모여 있어요.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제자를 뽑지 않았습니다. 삶의 현장을 찾아가셔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삶의 자리에서 잠시 불러낸 것이죠. 그들은 열심히 업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고 그냥 세관에 앉아 가지고. 돈 걷는 사람이고 뭐 나름대로 다 살아가는 사람들이 삶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잠시 불러낸 까닭은 그들을 다시 세상 가운데로 파송하기 위한 것이지. 가르치고 또 알아지고 또 가르쳐서 평생 가르치다가 끝을 낼려고 한 건 아니란 말이에요. 문제는 이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또 배우고 배우기를 즐겨한다는 것 그게 나쁜 게 아니에요. 근데 배운 것을 살아내지 않고 또 배워서 배운 게 얹혀서 내려가질 않는 게 문제라는 거예요. 인도의 깐디는 선교사한테 성경을 배웠어요. 그러다가 한 1주일도 열흘이고 안 나타나는 거예요. 

그래서 선교사가 왜 안 나타나냐 제 시간에 또 안 나타나냐 그러면 당신이 가르쳐준 걸 살아보고 살아져야 또 배우지 그걸 못 사는데 또 배우면 뭐하냐? 도대체 그리고 선교사에게 결국은 실망하고 그거는 크리스찬이 되질 않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뭡니까? 말씀을 배우고 또 배우는 건 나쁜 게 아니지만, 말씀을 배운 대로 살지 않으면서 배우기만 하는 게 문제란 말이에요. 그 단 한마디라도 여러분 성경대로 살면 이 세상이 바뀔 텐데 배우는 시간에 대부분 시간을 들이고 말이죠. 절대로 그걸 살지 않는 거예요. 그걸 지금 이 히브리스 기자는 이렇게 비유한 거예요. 지금 밥을 먹을 때가 됐는데 아직도 젖을 먹고 있느냐 어쩌자고 이유식을 먹고 지금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고 계속 배우기만 하느냐 계속 우유만 먹고 전만 먹고 있느냐 말을 하는 것이죠.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배우고 유럽이에요. 

그랬더니, 또 누가 나보고 그러더라고요. 3년이 그게 같이 살았으니까. 주일 예배를 한 100년 드리는 겁니다. 뭐 그렇게 또 얘기를 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아침마다 예배를 드리고 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읽고 말이죠. 그 성경을 처월 3년에 성경통독을 한 댓 번 7번 했으면은 이제는 가르치는 사람이 돼야 된단 말이에요. 성경을 배우는 목적이 뭡니까? 여기 오늘 보면 가르치라는 거죠. 가르치 너가 오래되었으므로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이제는 성경을 가르쳐야 할 땐데 언제까지 배우고 또 배우고 또 배우느냐는 것이죠. 왜냐하면, 가르칠 목적을 가지고 성경을 배우지 않기 때문에, 안 가르치는 거예요. 제가 어떤 이 저기 1대1 이라는 과정을 전에 교회 섬길 때 거기서 했는데 그때 저는 이게 배우면서 몰래 가르치면 안 되게 돼 있어요. 

근데 제가 인제 16강가로 돼 있는 이 교재를 가지고 한 네 강과 배웠을 땐데 누가 찾아왔어요. 나한테 죽어도 이걸 배우겠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교회가 이걸 금합니다. 이걸 다 마쳐야 되고 이걸 마치고 나선 또 목회자들이 가르치는 또 이 티칭반이 또 있습니다. 그걸 다 끝내야 내가 당신을 가르치지 내가 어떻게 지금 배우기 시작했는데 당신을 가르치냐고 그랬더니, 그분께서 그냥 저를 못살게 구는 거예요. 나는 당신이 아니면 안 배우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몰래 시작했어요. 그분 집에서 그러니까 이제 한과를 배워와야 이게 가르치는 거예요. 그러니 배우는 태도가 다르잖아요. 다음 주 가르쳐야 되는데 다행히 인제 그분이 조금 인제 빠지고 하는 바람에 여유가 몇 가 생겨서 조금 느긋해졌지만은 이걸 당장 배워서 이걸 가르쳐야 되는데 그때 제가 느낀 게 그래요. 가르치는 것은 여러분 목적이 있어야 가르치는 것이고. 

배우는 것도 가르칠 목적이 있어야 제대로 배우는 거예요. 배우는 태도가 달라 그렇게 읽으라는 거예요. 이걸 읽을 때 그냥 읽는 게 아니라, 내가 한 권은 구약의 한 권 신약이 한 권은 내가 누군가를 가르쳐야 되겠다. 내 자녀가 되었건 내 친구가 되었건 구약에 한 권 신약에 한 권 정도는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그걸 읽으면은 성경통독을 하더라도 책은 10번 20번 100번 읽게 된다고요. 그러면 어느 날 그걸 가르치게 된단 말이에요. 가르치는 목적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가르칠 일을 만들어 주세요. 우리가 이걸 살아낼 목적으로 성경을 읽지 않고 이게 지식이 되면 이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것이죠. 그래서 도대체 이 예수님은 3년 만에 졸업장을 줬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게 전만 먹고 있을 것이냐 인제 이런 통탕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이죠. 올해 이 교회가 흩어져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교회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 가르치기 시작하면 내 부족함이 보여요. 그럼 나는 배우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고. 그리고 정말 가르치 그 목적 때문에 배우게 되는 것이지. 배움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나 가르치다가 사고 내는 사람 많기는 해요.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서 정말 순수하게 정말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르치기 시작하면 그때 성령의 능력을 보여주셔서 제대로 가르치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제 우리가 지금 이제 광주에 갔다 오지 않았어요. 오늘 지금 인제 천국 환송 예배를 할 텐데 지금 거기 하여튼 열몇 분이 거기 지금 안 올라오고 거기 올 지금 마지막까지 있겠다는 거예요. 근데 도대체 생면 부지의 사람에게 장례식이 났는데 우리가 지금 차를 한 대 빌려 가지고 내려간 이유가 뭐냐면 여기서 배운 사람이 말이죠. 예 그 가서 우리가 무별 예배 여기서 예배를 안 드리니까 병원에 환자를 찾아간 거예요. 

병원에 환자를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드리는 자리에서 또 눈물의 예배를 드리고 그래서 절대 예수 안 믿겠다는 남편이 또 예수를 믿기로 결정을 하고 그래서 아내가 광주에 다시 호스피스 병원에 있다가 엊그제 돌아가셨는데. 같이 어제 가서 장례 저기 어제 위로 예배를 드렸는데 그분이 그냥 뭐 어쩔 줄을 모르는 거예요. 근데 그분이 단순히 그냥 세례만 주고 끝난 절차가 아니라 성도님이 매일 자기한테 이 창세기 말씀을 개혁개정판하고 메시지를 읽어 가지고 그걸 매일 보내준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그래서 사람이 그냥 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렇게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이에요. 절대로 상종을 안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인데 마음을 열고 그리고는 아들보고 예수 믿어라 어제 온 동생보고도 예수 믿어라 온 집안에 예수 믿으라고 난리가 난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정말 배운 것을 누군가에게 전할 때 성경 말씀대로 살아낼 때 그때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정말 기적을 보게 하실 줄로 믿으십시오. 이분이 또 더 놀랜 거는 버스로 대절해 가지고 이게 무슨 그냥 성도 그들이 그냥 와 가지고 말죠 이때까지 어떤 장례 예배보다도 아름답고 거룩한 장례 예배가 치러진 거죠. 하여튼 이 교회도 돌긴 돌았어요. 뭐 여기 출석하는 교인도 아닌데 말이죠. 장례 놨다고 떼거리로 내려가 가지고 어제 올라오잖아. 같이 가자 그랬더니, 이것도 버스 타지도 않고 갈 때는 잔뜩 타고 왔는데 올 때는 텅텅 비어 왔어요. 거기 다 있겠다는 거예요. 감동이 되어 가지고 누가 뭐 있으라고 그랬습니까? 그런 여러분들이 믿음 생활하다가 이런 경험들이나 이런 기적들을 경험해야 이게 진짜 뭐 이렇게 불이 붙지 안 그러면은 그냥 라우딩해야 교인이 되는 거예요. 차지도 덥지도 않은 교인들이 되는 것이죠. 

하여튼 뭐 이이가 곁길로 빠진 거 같은데,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할 때가 됐단 말이에요. 우리는 지금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될 땐데 아직도 젖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반드시 가르치는 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자녀들이라도 친구들이라도 뚫고 가르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분명히 주십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이 있어야 배움은 가치가 있고 그런 목적을 가져야 배움이 배움다워지는 것이죠. 안 그러면 지적유희죠 여러분 세상에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 많습니까? 배움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박사학위를 두 개 받고도 감옥 가는 사람이 없나 뭐 하여튼 그런 세상 저는 여러분들이 성경을 통째로, 알아서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정말 들은 말씀 배운 말씀 먹은 말씀을 제대로 살다가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은혜를 경험하시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기도할 때 여러분들의 배움을 전해야 할 대상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선교지까지 가는 건 나중에 열방에 끝까지 흩어지는 건 나중 일이고 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마저도 제가 무심하게 지내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먹은 이 모든 것들 제 안에 소화불량이 걸리지 않고 체증이 걸리지 않고 누군가에게 쏟아놓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한번 그렇게 한번 같이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그렇습니다. 이제는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젖을 끊게 하시고 이렇게 이유식도 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지각 있는 행동으로 분별하게 하시고 그리하여 하나님 이 땅 가운데 물이 없어 가람이 아니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과 허기짐 가운데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들을 정말 윤택하게 하고 저희들의 삶을 새롭게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날마다 통로가 되게 해주옵소서 배운 것 흘러가게 하시고 가르치기 하셔서 교만한 선생이 아니라 그야말로 지극히 낮아져서 주님처럼 우리가 발에 무릎을 꿇고 발을 씻어 주는 가르침이 되게 하고 선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배운 대로 살게 하시고 배운 대로 가르칠 수 있게 하여 주옵시고 그리고 배움을 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이 땅에 처음으로 파송받아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배운 것 들은 것 다 쏟아놓고 가신 우리 9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날마다 배운 것을 누군가에게 전하고자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길은 부으심이 오늘 말씀을 따라 다시 한번 젖을 먹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단단한 음식을 먹고 누군가에게 삶으로 살아내고자 하는 이전에 고개 숙인 모든 성령의 지체들 믿음의 지체들 말씀의 형제자매들 위해 지금부터 영혼까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죽언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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