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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히브리서 7:23-28

yt1981 2023. 9. 1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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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대낮같이 밝아진 이후에는 상향등의 역할을 하던 율법은 소용도 없고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좋은 빛을 비춰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유대인들은 옛 언약인 율법의 굴레에 매여 더 좋은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자신을 얽어매는 육신의 법을 넘어 더 좋은, 아니 궁극적인 좋음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히브리서 기자는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사실입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아론으로부터 시작해서 기원 70년에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 83명의 대제사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일반 제사장의 수까지 합하면 엄청나게 많은 제사장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가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인간 제사장은 계속해서 죽어 나갔기 때문에 제사장 직분이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전달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율법이 그러하듯이 실체는 사라지고 형식만 남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모세를 통해 처음으로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는 아론 및 그 아들들의 영광스럽고 성스러운 모습과 세상의 욕구에 찌든 당시 제사장들의 모습 사이에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습니다. 또 훌륭하게 제사장직을 감당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죽음이 닥치면 그 사역을 무조건 마무리해야만 했습니다. 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죽음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병폐였습니다. 이처럼 죽기 때문에 항상 있지 못한다는 사실은 사람을 규정하는 가장 큰 특징입니다.

사람에게는 항상 있는 것, 즉 영원히 있는 것이란 도무지 없습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르고, 또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달라질 것입니다. 나의 외관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도 날마다 달라질뿐더러 생각과 감정도 다 달라집니다. 오늘 사랑했던 것을 내일 증오하기도 하고, 오늘 싫었던 것이 내일 좋아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엄밀한 의미로 한결같은 사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변화성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결국은 죽음입니다. 죽음은 사람을 끝장내고, 사람이 하나님이 아님을 입증합니다. 양화진선교사묘원에 있는 저 묘지는 우리가 당장이라도 죽을 존재임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24-25)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고, 항상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며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원어에 가까운 형식으로 된 영어로 옮기자면 I AM WHO I AM입니다. 공동번역과 새번역에서는 “나는 곧 나다”라고 옮깁니다. 더 풀어서 표현하자면 ‘나는 나이기를 멈추지 않는 나다.’ ‘나는 내가 되고 있는 나다.’ ‘나는 내가 되기로 선택할 내가 될 것이다.’ 등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있기를 멈출 수 없는 분으로서 항상 계시고, 소멸하는 다른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신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사람은 자신 있게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영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영원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알려주신 말씀이 바로 항상 있다 내지 항상 살아 계시다는 이 구절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시간도 하나님께서 태초를 창조하실 때 같이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영원과 시간은 질적으로 다르며,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가 아니라 언제나 영원한 현재에 계신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영원한 현재를 사시는 예수님이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온전한 구원이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로 완벽한 구원이라는 뜻으로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책임을 맡기지 않고 홀로 그 구원을 이루신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로 영원한 구원이라는 뜻으로서 우리를 태초 전부터 영원까지 구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멈추는 일이 없고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제사장 직을 담당하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자기를 힘입어’라고 옮긴 부분을 원문으로 보자면 자기를 통해서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자기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려고 하는 자들을 완벽하고 영원하게 구원하시는 참 제사장이 되신다는 말입니다. 인간 제사장은 항상 살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사역은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항상 살아계셔서 참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간구의 사역을 쉬시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가기만 한다면 우리의 구원은 완전합니다.

흔히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용서받고 구원받는 일이 과거 현재 미래에 구분되어 일어나는 것처럼 이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25절 말씀에서 구원하시다의 시제가 현재형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구원이란 영원한 현재에 일어나는 일로서, 현재형으로만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구원이란 칭의와 성화 및 영화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영원한 현재형인 하나님의 구속 사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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