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가보건 8장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에게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마가보건 8장은 소위 칠병이여 사건에 등장하는 장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칠병이여 사건을 설교 시간에 들어보신 분이 혹시 계신가요? 아마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럼 오병이여는 들어보셨어요. 많이 들어보셨죠 그러면 비슷한 사건인데 오병여 설교는 많이 하는데 왜 칠병이여 사건에 대해서는 설교를 잘 안 할까요? 아마 비슷한 이야기니까 이 마테나 마가가 같은 사건을 착각해서 두 번 기록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아마 있을 것이고. 아마 칠병이어가 오병이어의 아류작 정도로 보이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아요. 여러분 어떠세요. 오병희 의원은 사복음서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죠.
화자 1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제외하면 사복음서에서 똑같이 다 기록하고 있는 공통된 사건은 오병이어가 유일합니다. 그만큼 당시에 이 오병2호 사건은 유명하고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먹이시는 생명의 떡이다. 그분이 모두를 먹이고 남는 구원을 베푸시는 우리의 왕이다.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죠. 당시 로마 식민지 사회에서 왕을 삼는다는 것은 반란인데 목숨 거는 반란을 할 정도로 그렇게 오병이여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는 거예요. 자 그런데 이 칠병2호 사건은 마태와 마가에만 기록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인지 오병2호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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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지만 칠병2호 사건은 오병2호의 아류작도 아니구요. 비슷한 사건을 착각해서 한 번 더 써 놓은 것도 아닙니다. 그중 마테는 또 세리 출신이죠. 정확도가 생명인 세리가 이 두 사건을 착각했을 리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 두 사건은 완전히 다른 사건이고 의미도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이 두 사건은 서로 비교해서 보면 칠병이여의 의미를 더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마가복음 6장 30절 이하의 오병여 사건이 나오거든요. 6장 30절부터 나오는 오병여 사건과 오늘 8장에 칠병2호 사건을 여러분이 왔다 갔다 하면서 보시면, 정확하게 알 수 있는데, 성경 한 장을 손에 쥐고 이렇게 6장 8장을 왔다 갔다 해 가면서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 좋겠습니다. 먼저 1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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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불러서 먹을 것이 없구나 이것을 예수님이 스스로 챙기십니다. 여러분 이렇게 예수님이 스스로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도 칠병여에만 나오는 장면이에요. 이 절 볼까요?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도라 그랬어요. 자 여기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불쌍하다 말씀하시죠. 근데 오병2호 때는 어땠어요. 6장 35절에 보시면, 한 장을 딱 뒤로 가면 제자들이 예수께 나와 여쩌우되 이렇게 시작을 해요. 제자들이 예수님 이제 좀 배가 고픈데 어떡할까요? 이렇게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누가 시작했냐가 다른 거예요. 칠병 의원은 예수님께서 물의를 책임지고 계시고 오병 이연은 제자들이 챙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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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라고 하는 거죠. 전체적으로 보면 여러분 오병의원은 무리들이에요. 무리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은 전하시지만 그들의 삶을 책임지진 않아요. 그런데 칠병 의원은 더 소수고 예수님이 그들을 더 관심을 가지고 더 챙겨줍니다. 볼까요? 왜 그런가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항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이렇게 기록을 합니다. 여러분 사흘을 함께 지냈어요. 이게 큰 거죠. 여러분 오병여 때는 6장 35절에 보시면, 내가 저물어 가매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얼마나 함께 있었나 그날 기껏해야 한나절 정도예요. 한나절 정도 말씀을 듣던 그냥 무리들에 불과해요. 그런데 이 칠병여 사건은 이미 함께 있은 지가 사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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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당일치기 여행을 간 사람과 2박3일 함께 여행한 사람 다르죠 사흘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머물면서 먹고 마시며 말씀을 들었다 훨씬 더 가까운 사회죠 칠병 의원은 훨씬 더 가깝고 예수님께 헌신된 제자 그룹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얼마나 관심 갖고 얼마나 한 번 더 말씀하시자면 3절인데요.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세요. 안 돼요. 여러분 예수님이 그들의 삶을 굉장히 많이 알고 계시고 그들을 관심을 갖고 걱정해주고 계시는 모습이 나오는데 게다가 여기서 먹이지 않으면 집에 가다가 길에서 기진한다. 이 말은 뭐예요? 사람 사는 마을에서 그만큼 멀리 떨어져 나왔다는 거예요. 훨씬 더 이 예수님과 함께 말씀을 수련하기 위해서 멀리 나왔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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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500명 때는 어땠냐면 6장 36절 함 볼까요? 한 장 전에 보시면, 36절에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옵소서 그랬어요. 그러니까 마을 인근이라는 얘기죠 바로 근처에 뭐 사 먹을 만한 촌과 마을이 있다는 얘기예요. 오병여 때는 그랬어요. 근데 칠병2호는 그게 없는 거예요. 그만큼 멀리 온 거죠. 3절 하반제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도 있느니라 이 반 누가 했어요. 예수님이 하신 거예요. 예수님이 그만큼 이 당시 사람들 제자들의 사정을 잘 알고 계셨던 거죠. 멀리서 온 사람도 있는데, 그냥 보려면 안 돼 안 돼 먹여야 돼 라고 하는 거죠. 자 그때 4절입니다.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까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장소가 어디예요. 광야예요. 광야 이게 큰 차인데 7절 이 칠병 의원은 오늘은 광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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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모스라는 말인데 에레모스는 아무것도 없단 말이에요. 사막 한가운데예요. 자 광양이에요. 그런데 오병연은 어디서 했는가 6장 39절에 보시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라는 말이 나와요.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셨다 그러니까 뭐라도 있는 거예요. 뭐라도 있는 빈들인데 거기 반해서 오늘의 칠병2호 사건은 광야다라고 하는 거죠. 자 그러니까 전혀 다른 사건이에요. 오병2호와 칠병2호는 전혀 다른데 하나 알 수 있는 건 뭐냐 오병희호 사건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친밀하지는 않다 말씀을 있고는 있지만 그리고 지금 이 자리는 완전히 불가능한 자리는 아니에요. 뭐라도 있으니까. 그러나 오늘 칠병여 사건은 예수님이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시고 멀리 나왔어요. 광야까지 나왔어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3일 동안 함께하면서 더 그들의 삶을 지금 챙겨주고 계신다 그들의 먹지 못함을 불쌍히 여기신다는 걸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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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 6절 7절 말씀은 오병영과 매우 유사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볼까요? 5절 예수께서 모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자 여기서 차이가 나요? 일곱 위로소이다. 이게 이제 7개죠 떡 7개 오병이어는 5개 칠병 이어는 7개 차이가 나죠. 여섯 6절입니다. 예수께서 물의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7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추어 나누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같은 방식으로 나눠줍니다. 오병이와 같은 방식이에요. 7절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자 작은 생선 두어 마리 딱 두 마리가 아니에요. 칠병 이여 사건은 사실 딱 이어는 아니에요. 두어 말이겠죠. 세 마리인지 한 마리인지 몰라요. 자 8절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를 거두었으며 그랬습니다. 여러분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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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여 때는 얼마 뭐 몇 개 거뒀죠 열두 바구니를 거뒀죠 자 그러면 누가 더 많이 거뒀어요. 일곱 광주리 열두 바구니 그러면 우리는 열두 바구니가 더 많이 걷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일곱 광주리 할 때 이 광주리는 스피리스라는 건데 스피리스는 뭐냐면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정도의 큰 광주리를 말해요. 성인 남자를 태울 수 있어요. 사도 바울이 자기를 죽인다고 유대인들이 쫓아왔을 때 성에서 달아내린 광주리가 바로 이 스피리스거든요. 그러니까 이거 이 광주리는 일곱 광주는 굉장히 많이 남은 거예요. 그러면 오병여 때 열두 바구니는요 바구니는 코피노스거든요. 코피노스는 손에 들고 다니는 작은 소쿠리를 말합니다. 그래서 왜 열두 바구니가 남았냐 열두 제자가 열심히 떡을 나눠주고 물고기 나눠주고 각자 손에 들고 있던 소쿠리만큼 남은 거예요. 각자 1인분만큼 남은 거예요. 각자 1인분만큼 남은 거예요. 그런데 오늘 칠병이요. 일곱 광주리는 넉넉히 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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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님이 사랑하고 챙겨주고 싶은 가까운 제자들이기 때문에 이 제자들이 멀리 가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광야에서 집까지 멀리 가야 되니까. 가는 동안에도 먹을 수 있도록 충분히 남겨주신 거죠. 굉장히 많은 양이 남았어요. 자 그리고 구절을 볼까요? 사람은 약 4000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보내시고 그랬습니다. 4000명 이 4000명은 굉장히 소수예요. 왜냐 5명여 때는 5000명이잖아요. 4000명 1000명 차이인데 왜 소수라고 하냐면 여기 약 4000명이죠. 약 4000명이 안 되는 숫자예요. 그런데 500여 때는 남자만 5000명이에요. 여러분 남자만 5000명이면 여자 뺐죠 애기 뺐죠 노인들 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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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대략만 잡아도 두 배인 만 명이라고 볼 수 있고 많게는 2만 명까지 얘기하는데 그건 너무 많은 것 같고, 남자만 5000명이면 조약금 만 명은 넘는다 그러니까 오병여 때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면서 예수님 말씀을 해주세요. 예수님 병고쳐주세요. 이랬던 사건을 말하는 거고. 칠병 의원은 소수의 사람들 택함 받은 소수의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오래 머물면서 말씀을 수양례를 한 거죠. 집중 인텐시브 코스를 한 거죠. 그러면서 그들에게 예수님 말씀을 전해 주시면서 그들을 챙겨주셨던 모습을 나타나고 있습니다. 10절의 마지막 고 지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 4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이렇게 사건이 마무리가 되는데요. 여러분 우리가 뭘 할 수 있냐면 이 칠병2호 사건은 오병2호 사건과는 전혀 다른 사건이라는 걸 알 수 있고 동시에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시고 계시는가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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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현 사건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모든 무리 예수님을 9주로 모시는 모든 무리들에게 선포하시는 사건이었다면 내가 생명의 떡이다. 나를 먹으면 너희가 구원받는다였다면 예수님을 선포하는 복음을 선포가 오병여 사건이었다면 칠병여 사건은 더 들어가서 그렇게 예수님을 9주로 모시고 예수님께 의탁하고 예수님을 헌신하고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내어드린 사람들 하나님의 제자로 택함 받은 백성을 예수님이 직접 챙겨주신다 그들의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그들의 필요를 예수님이 반드시 챙겨주신다라고 하는 것을 확신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 바로 7명이여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면 예수님은 앞에 가시고 우린 뒤에 따라가는 게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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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돌격 앞으로 하시는 분이 아니잖아요.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나와 함께 가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서 내가 너희를 먹이고 입히고 내가 너희를 책임지마 말씀하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몸 된 교회를 외롭게 두지 않으십니다. 지금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교회가 참 많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이러다가 또 영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겪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교회가 지탄을 받고 예배드리는 것이 사람들의 정말 눈 흘림을 받는 이런 시대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자기 백성인 교회를 반드시 살리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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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힘들어하는 교회가 많이 있고 지금 정말 이 위기를 못 견딜 것 같은 교회가 많이 있지만 반드시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그들을 챙겨주실 것입니다. 이 칠병여 사건이 증거입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어도 떡 7개 물고기 두어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시고 축복하시고 나누어 주셔서 우리가 먹고 일곱 광주리가 남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이 남아서 또 그것을 가지고 먹고 마시며 예수님을 따르게 하시는 예수님의 교원의 역사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 오늘날도 우리 한국 교회에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지고 우리 모두를 살리는 놀라운 역사가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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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님 칠병이여 사건을 통해서 자기 백성을 끝까지 돌보시고 챙기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지금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교회 예배드리는 일이 나라와 정부와 지자체의 경고가 되고 있고 지적이 되고 있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불안을 주는 요소 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많은 교회가 위축되고 많은 교회가 잘못하면 문을 닫는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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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이러한 사태 가운데에서 교회의 어려움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우리를 다시 한번 풍성케 하시고 칠병 이어의 기적이 나타나서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교회가 다시 한번 풍성케 되고 다시 한번 은혜 가운데 생명을 보존하고 말씀을 지키고 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말씀 맡은 자들로 굳건히 서게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실 주님을 찬양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