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0편 52편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에게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10편 52편은 정확하게 상황을 밝혀주고 있는 표제어가 있는 10편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의 표제어를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에도민 도액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다고 그에게 말하던 때에 라고 하는 표지어가 붙어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질투를 피해서 몸을 피해 도망가다가 아무도 자기를 받아주지 않으니까 아무도 자기를 선대해 주지 않으니까 결국 찾아간 곳은 제4장에 있는 산당이었습니다. 노비라고 하는 땅에 있는 아이멜렉이라고 하는 제4장을 찾아간 거예요. 그러고는 나라의 수배령이 떨어져서 왕인 사울이 명령을 내린 거죠.
다윗은 절대로 받아주지 마라 다윗은 당장 만나면 신고해라 죽일 거다 그러다 보니까 다윗이 피할 곳이 없어서 찾아간 제4장 아이멜렉에게 나 먹을 것 좀 달라고 했는데 먹을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성전에 하나님께 올리려고 나왔던 진설병 그것을 나누어 주죠 그것을 먹고 거기서 골리앗의 칼 보관해 놨던 칼도 받아서 다윗이 다시 한번 힘을 추스려서 이제 도망을 칩니다. 자 이때 여기 도액이라고 하는 에돔 사람 이 사람은 4월의 목자장이에요. 4월의 양을 치르는 목자인데 그것을 보고 있다가 나중에 그것을 고발합니다. 자 4월에 그것을 고발했어요. 고발했더니, 사울이 또 그런 거 들은 못 참잖아요. 굉장히 질투가 많은 사울인데 아니 다윗 그 원수를 제4장이 살려줬단 말야 다 불러와 그리고는 다 불러와요.
그때 아이밀렉만 온 게 아니라 아이밀렉과 함께 85명의 제4장들이 같이 끌려옵니다. 끌러 끌어다 놓고 4월이 신문을 너 왜 그랬냐 그랬더니, 아이밀리 그러는 거예요. 아니 다윗은 4월왕이 제일 아끼는 신하 아닙니까 제일 아끼는 신하가 찾아와서 좀 도와달라는데 어떻게 안 도와줍니까 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그런 겁니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랬더니, 옆에서 도액이 아니라고 거짓말이라고 왕에게 대한 반역심을 품고 저런 거라고 모함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왕이 그러면 제4장 아이멜렛과 85명을 다 죽여라 그런데 아무도 손을 못 대는 거예요. 하나님의 거룩한 제4장에게 그것도 모함을 당해서 억울한 피를 흘릴 수가 없으니까 아무도 칼을 휘두를 때 4월이 도액에게 명령합니다. 야 니가 죽여라 니가 증인이잖아. 니가 목격자잖아. 니가 고발했잖아.
니가 죽여라 그래서 도액이 아이밀립과 85명의 제4장을 다 죽입니다. 뿐만 아니라 높당에 있는 모든 남녀노소를 다 죽여버립니다. 한 도시를 멸망시켜 버려요 그랬던 사람이 도액입니다. 도액이 왜 그랬을까요? 물질이죠. 재물이죠. 성공이죠. 자기가 다윗을 미워하는 사울의 마음을 이용해서 사울의 질투심을 이용해서 자기가 높아져 보고자 한 것입니다. 여러분 근데 한 사람의 출세욕 때문에 치러야 될 대가는 너무나 컸죠 아이멜렛과 제4장 85명이 죽었고 그뿐 아니라 아무 죄도 없는 높 땅에 있는 모든 남녀노소가 다 죽었단 말이죠. 아이까지 다 죽었어요. 왜 반역자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로 여러분 너무 끔찍한 일 아닙니까 이 일을 겪으면서 다윗은 얼마나 마음속에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까요?
근데 분노와 함께 낙담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과연 이 세상이 살아갈 의미가 있는 것인가? 과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과연 의미가 있나 아니 하나님을 내가 믿는다는 믿음 하나로 이렇게 열심히 살아남고 있는데, 또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날 도와준 제4장이 저렇게 죽어가는데 그것도 억울한 죽음을 저렇게 수많은 생명들이 죽는데 과연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신 게 맞나 하나님이 정말 이 땅 가운데 계신 게 맞나라고 하는 굉장한 낙담 가운데 빠졌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나는 설한 뜻으로 했는데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 그런데 반대하는 사람은 취지도 불분명하고 마음에 왜 저러는지도 모르겠고 굳이 따져보면 결국은 물질이고 결국은 출세인데 성공해 보자고 저렇게 안달을 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 뜻대로 되는 것 같고, 내 뜻대로 안 되는 것 같고, 하나님은 안 계신 것 같고, 우리의 마음은 자꾸만 작아지는 것 같애요. 왜 그럴까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악의는 눈에 보인단 말이죠. 아기들 횡포는 지금 눈에 너무너무 잘 보여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여기서부터 우리 갈등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믿어야 할 대상인 거죠. 여기서부터 믿음이 등장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 거냐고 할 때 눈에 보이는 악인의 횡포를 보고 포기할 거냐 저들껏 타협할 거냐 아니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할 거냐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1절입니다. 포악한 자여 내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자 포악한 자여라고 시작을 합니다. 도획을 말하는 말이죠. 그런데 이 포악한 자가 여러분 원어를 보면 재미있는데, 기보르예요.
기보르라고 하는 이 원어가 가진 뜻이 뭐냐 용사입니다. 용사는 용사인데 자기 힘이 굉장히 많은 용사거든요. 그런데 힘을 자랑하는 용사예요. 흔히 말하는 나 조금 거물이야라고 할 때 기보르라는 표현을 씁니다. 굉장히 거만하고 자기의 힘을 자랑하고 뭔가 자기를 이렇게 드러내길 좋아하면서 자기의 힘으로 사람들을 휘두르는 걸 좋아하는 뭔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나타낼 때 기보르라는 표현을 써요 이 기보르를 뭐라고 번역했냐면 포악한 자라고 번역을 합니다. 포악한 자 왜냐하면, 힘은 있는데, 힘을 어디에 쓸 줄 모르는 거예요. 그 힘을 자기의 물질을 성공을 명예를 높이는 데 쓰고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그런 사람을 포악한 자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기모르 용사 거물 자 그런데 포악한 일은 어떤 사람이에요.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이죠.
악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그것을 자랑해요. 여러분 사람들 보시면 옛날에 나쁜 짓 한 거 자랑하는 사람 많습니다. 내가 말이야. 뭐 이랬던 사람이고 저랬던 사람이고 왕년에 말이야. 그거 무슨 자랑이라고 그걸 자랑으로 늘어놔요 왜냐하면, 볼 줄 모르는 거예요. 세상을 보는 눈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을 보는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남을 속이고 남을 빼앗고 갈취해서 모은 그 재산이 자라인 것처럼 그렇게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덩떵거리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에요.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이죠. 해세드 여호와의 해세드 인자하심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중일 예배 때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내 평생의 죄 선하심과 인재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라온다 이거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의 인재하심은 언제는 있다가 언제나 없다가 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항상 있다.
반드시 날 따라온다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인자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인자하심을 기대해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지하심을 놓치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놓치면 그때부터는 눈에 보이고 돈밖에 없죠 눈에 보이는 건 자리와 출세와 성공밖에 없죠 그러면 우리가 다 기보르가 되는 거예요. 포악한 자가 되는 거예요. 서로서로가 물고 물면서 죽고 죽이면서 무한 경쟁 속에서 서로 피 흘리는 관계가 되는 거예요. 다 포악한 자가 돼야 되니까. 그러나 거기에 하나의 백신이 있습니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치료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인사하심이 분명히 나를 따라온다고 믿는 사람들은 포악하게 되지 않는 거예요. 포악하게 살 수가 없는 거예요. 나를 포장하고 나를 치장해서 내가 뭐 굉장한 힘이 있는 것처럼 남에게 협박하고 밀어붙이고 남을 괴롭힐 수가 없는 겁니다.
오히려 나의 가진 힘으로 남을 도와주고 내가 가진 힘으로 남을 세워주고 봉사하는 일을 하는 거죠. 왜요 여호와의 인재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절입니다. 내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혀 여기서 말하는 혀는요 인격입니다. 성경에서 혀는 말이잖아요. 그건 말이 곧 인격이거든요. 아무리 자기를 포장하려고 해도 몇 마디만 말을 나눠보면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속이 가진 게 뭔지를 말은 다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인격이 뭐 같다고요. 날카로운 삭도 같다고 삭도는 뭐하는 거예요. 머리 미는 거죠. 머리 미는 날카로운 칼 그 삭도로 한 번 찌르면 사람이 죽죠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는 날카로운 칼 같다 너의 인격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구나라고 하는 거죠.
3절 내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자 도에게 행한 일이 바로 이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선보다 악을 사랑합니까? 왜 의를 말하기보다 거지를 사랑합니까? 바로 돈 때문이죠. 돈을 사랑한 거죠. 물질을 사랑하고 눈에 보이는 가치를 사랑한 것이죠. 4절 간사한 혀여 너는 마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역시 혀는 인격이죠. 너는 참 간사한 인격을 가지고 있구나 남을 해치면서도 너의 유익을 도모하는 아주 악한 인격이구나라고 지금 비난하는 것이죠. 5절 그런 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시며 너를 붙잡아 내 장막에서 뽑아내며 살아있는 땅에서 내 뿌리를 빼시리로다 자 그런 즉 어떤 일이 벌어지나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다 여러분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기준은 항상 영원히에요. 영원히 너를 멸하게 하실 것이다.
니가 이 땅에서는 잠깐 잘 되는 거 같지 잠깐 뭐 되는 것처럼 보이지 뽑아버리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너를 아예 그냥 쪼끔 조금 안 좋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너의 뿌리를 뽑아버릴 것이다. 이 너의 가문을 아예 없는 것처럼 만들어버릴 것이다라고 하는 이 저주가 어떻게 가능할까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들 하나님께 대하여 하나님을 업수이 여기면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지켜보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헤세드 인자 사심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같이 이야기해야 되는 게 하나님의 공의죠 하나님은 악을 해가는 자 그리하여 다른 사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하고 다른 사람을 짓밟는 자들을 결코 그냥 보지 않으시죠.
오늘 이 10편 52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지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이는 도액 보이는 강포한 자 보이는 기보르의 모든 악을 하나님께서 물리치시고 그를 이기실 것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6절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자 의인이 보고 두려워한대요 누굴 두려워할까요? 악인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그를 그는 누구예요? 강포한 자죠 악인이죠. 악인을 비웃으며 말합니다. 뭐라고 말하나 7절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여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여기서요 재밌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이라고 되어 있죠. 이 사람은의 원어가 게베르예요.
게베르 예베르란 말은 아주 별거 아닌 평범한 사람 정말 별것 아닌 사람을 나타낼 때 그냥 아무것도 아닌 사람 게베르라고 합니다. 그런데 1절에 저는 포악한 자여 기보르라고 시작했거든요. 근데 기보르가 알고 보니까 7절에선 누구예요? 게베르예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굉장히 뭔가 있는 것처럼 거물급인 것처럼 자기를 자랑하면서 남을 괴롭히려고 하던 기보르가 이제 보니까 게베르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구나 너 아무 힘도 없구나라고 지금 그를 비웃는 것이에요. 이 언어유의정 언어유희 우리가 볼 때는 뭔가 있어 보여서 두렵고 떨리고 왜 사람밖에 안 보이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뭐가 열린 겁니까? 눈이 열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영안이에요. 영안이 열린다는 말은 다른 게 아니에요.
영안이 열린다는 게 뭐 남들이 못 보는 신비한 무슨 뭐 환상을 보는 게 아니라 영안에 열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이 땅에 눈에 보이는 물질과 눈에 보이는 힘과 눈에 보이는 세상의 권력이 다인 것처럼 보일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마지막까지 끝내 이 세상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는 것이 영원히 열리는 것입니다. 지금 영화는 열리면 보이는 거예요. 사람 기보르가 아니라 게베르였네 포악한 용사 거물급인 줄 알았더니, 별거 아니네라는 문이 열리는 거예요. 그 별것 아닌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않는 사람이에요. 즉 하나님이 어디 있냐 난 나 혼자 먹고 산다 자기의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는 누구예요? 아무것도 아닌 자 예배를 하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게 누구를 의지하는가? 하는 겁니다.
크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큰 자구요. 별것 아닌 나를 의지하고 나의 재물과 나의 풍부함을 의지하여 스스로 든든하게 하면 그는 아무것도 아닌 자 개별이가 되는 겁니다. 자 이렇게 말하면서 8절과 9절은 이제 반전이 시작됩니다. 반전 그렇다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나는 누군가 비록 나는 지금 쫓기는 자고 비록 지금 나는 수세에 몰려 있고 지금 나는 모함을 당했고 지금 나는 괴로워 죽을 것 같아요. 나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내가 다 죄인인 것 같고, 내가 지금 이 모든 것의 원인인 것 같고, 나만 죽으면 해결될 것 같고, 점점 작아지는 자아 가운데 다윗은 힘을 내어 고백합니다. 영안이 열렸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겁니다. 8조랑 같이 있습니다. 시작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남나무 같으며 하나님의 인재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아멘 그러나 나는 이에요. 상황은 너무 좋지 않아요.
너무너무 괴롭고 너무너무 힘들고 나 하나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정말 안 좋은 마음 먹었으면 다윗은 못 살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래도 살아남은 이유는 뭡니까? 그러나 나는 때문이죠.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남나무 같음이여 감남나무가 올리브 나무거든요. 이 올리브 나무가 얼마나 잘 자랐는지 모릅니다. 이 올리브는요 기본인 수명이 몇백 년이고요. 몇천 년 된 것도 있어요. 지금도 여러분 이스라엘 가시면 지금도 갯세마르 동산이 있거든요. 예수님 기도하시던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기도할 때 옆에 있던 감남나무 지금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땀이 핏방울되어 떨어지던 자리에 있던 그걸 보던 나무들이 지금 있어요. 어마어마한 거죠. 감남나무가 그렇게 수명이 길어요. 그렇게 오래 살아요. 잘 살아요.
만약에 줄기가 무슨 일을 만나 썩거나 줄기를 상한다 그러면 가지 혼자 살아요. 정말 신기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나무예요. 올리브 나무가 그렇단 말이죠. 자 그러니까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낭나무 같다는 말은 뭐냐면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는 거죠. 왜요 하나님의 집에 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품에 있기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나는 살아야 한다는 거죠. 살아서 주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왜요 하나님의 인자하심 햇세드를 영원히 의지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사람의 유익이나 돈이나 출세를 의지했다면, 이렇게 될 수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인지하심을 영원히 의지하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남나무 푸른 올리브 나무가 될 것이라고 하는 거죠.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마무리합니다.
구절과 시작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아멘 여러분 주께서 일을 행하셨다 참 이 고백이 어려운 고백이죠. 지금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어요. 게다가 제4장이 죽었고 85명의 제4장이 죽었고 마을 사람들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어요. 이걸 어떻게 주께서 이루셨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영원히 죽게 감사한다고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주의 이름이 솔하시다고요. 어떻게 솔하시다고 할 수 있어요.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어떻게 사모할 수 있죠. 이 고백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러나 뭘 본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루실 궁극적인 승리 지금은 도액이 긴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은 도액의 간사한 혀와 삭도 같은 간사한 인격 모함하고 사람을 죽이는 인격이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예요. 결국에 승리는 하나님이 하신다 결국에 악인은 뽑힐 것이고. 결국에 하나님이 인재하시면 승리한다는 건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 차장을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위대한 신앙인일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는 거예요. 우리도 현실을 보면 감사가 안 나옵니다. 현실을 보면 낙망되고요. 아프고요.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우리가 붙잡아야 될 말씀이 무엇이에요. 바로 10편 제 이 권의 주제 말씀이죠.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고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오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권의 주제를 다시 붙잡아야 되는 이유가 뭐예요? 세상을 바라보면 찬양할 수 없어요. 감사할 수 없어요. 감사할 수 없어요. 찬송할 수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그가 나타나 도우심을 의지하여 내가 여전히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52편 구절의 고백이 딱 상황이죠. 너무너무 괴롭지만 너무너무 아프지만 눈물 나지만 그러나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내가 여전히 찬성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요. 믿음이요. 영안이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 우리의 영안이 열리기를 원합니다. 영화는 열려서 정말 봐야 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볼 수 있길 원합니다. 눈앞에 있는 어려움과 낭만과 악인의 횡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자하심이 그분의 영원한 선하심과 의지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라올 것입니다. 그것을 의지하고 기도할 때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 나와 함께해 주시고 내 마음에 있는 모든 소원을 응답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너무너무 말도 안 되는 상황 가운데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이게 다 내 책임이 아닌가 나는 과연 살아있을 이유가 있나 그 어려운 마음 가운데 찢어지는 마음 가운데 오늘 다윗은 이 시 편 52편을 썼습니다. 주님 우리에게도 이런 상황은 언제나 다가올 수 있습니다. 괴롭고 힘들고 눈물 날 때가 왜 없겠습니까? 저렇게 형편없는 자들이 잘되는 세상 가운데 저런 포악한 자들이 활개를 치른 세상 가운데 내가 어떻게 살아갈까 괴로움과 눈물 날 데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영환을 열어주셔서 저희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고 영원히 주를 찬양하며 영원히 주를 노래하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그러나 나는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지배에 있는 푸른 감남나무 같다고 고백하는 이 시편 기자의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눈물 나도 그러나 하나님 집에 푸르게 뻗어 있는 아름다운 감남나무처럼 저들 가지를 뻗게 하시고 오늘 열매 맺게 하시고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주의 자녀로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에도 이 추위 가운데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나와 기도하는 우리 모든 성인의 가족들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거룩한 영향력을 허락하여 주시며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