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베드로 전서 1장 말씀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에게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부터 이제 베드로 전설을 시작합니다. 여러분 베드로 전설을 본다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이제 신약이 다 끝나가는구나라는 생각 들지 않으세요. 우리가 베드로 전서라고 하면 이미지가 어떠냐면 그냥 성경의 뒤에 있는 책 짧은 책 이런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 그런데 베드로 전서 누가 쓴 거예요. 베드로가 썼어요. 예수님과 3년을 동역했던 문제도 많았지만 그래서 예수님이 늘 옆에 챙겨 데리고 다녔던 베드로예요. 여러분 정도면 정말 성경의 저자 가운데에서 가장 주목받을 만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가장 우리가 볼 때 마음을 빼앗길 만한 사람인데 베드로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성경을 얼마 안 썼어요. 그리고 위치도 앞쪽이 아니에요. 복음서 사도행전 나오고 서신서 다 나오고 맨 뒤에 나와요. 용행기시록 다 와서 있어요. 왜 그럴까 여러분 왜 그런 거예요. 베드로는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고 예수님의 가장 옆을 지켰던 제자인데 왜 그의 쓴 이 서신서가 이렇게 뒤에 마치 찬밥처럼 있을까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성경을 우리가 읽을 때 이 순서를 너무 중요하게 여겨요 그래서 아 바울 서신이 앞에 있으니까 바울 서신이 제일 중요할 거야. 그리고 로마서 고른도 전원소 갈라디아서 2쪽 굉장히 열심히 읽거든요.
설교도 많이 하고 그런데 이 13편의 바울 서신 뒤에 나오는 일반 서신들 뭐 이를테면, 히브리서나 야구보서나 베드로 전우소 이런 책은요, 잘 읽지도 않고 잘 설교도 안 해요. 아마 지치기 때문이 아닐까 앞에 너무 보건소에서 힘을 다 쓰고 사도행전 잘 모르는 내용 열심히 읽다 보니까 이 서신서의 로마서나 고른도 전호선은 아는 내용이 많이 나오니까 막 열심히 읽다가 뒤로 가면 지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여러분 그렇지만 성경은 순서대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은 분량대로 중요한 게 또 아니에요. 베드로는 여러분은 왜 전후설을 합해도 8장밖에 안 됩니까? 베드로는 성경을 쓰라고 부름받은 사람이 아니에요. 누구였어요. 설교하라고 물어받았어요. 설교자였어요. 정말 탁월한 설교자였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 베드로 전후서가 짧게 기록된 이유 베드로는 성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전하는 4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4명이 다른 거예요. 그래서 반면에 요한이라는 제자는 얼마나 많이 썼습니까? 차분한 성격으로 많이 썼어요. 그렇게 쓴 요한이 있는 반면에 베드로는 그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는 실제 말씀으로 선포하는 일에 더 4명을 받았기 때문에 실제로 쓰여진 성경의 분량은 적지만 그러나 베드로의 말씀의 능력은 정말 탁월했죠. 여러분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볼 때 한 가지 기준으로만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한 가지 잣대 여러분 바울은 이렇게 많이 썼으니 13편을 썼으니 대단히 훌륭한 사도고 요한도 이렇게 많이 썼으니까 귀하고 베드로는 에이 몇 장 안 되네 그냥 넘어가자가 아니라 베드로는 그만큼 바울보다 훨씬 더 선포하는 일에 쓰임받았고 더 하나님이 귀 있으신 설교자였다는 거죠. 자 그러면 여기서 또 중요한 거 하나 그럼 베드로가 설교자인데 그럼 베드로 전호사는 왜 썼나 하는 거예요. 그럼 베드로 전호사도 안 썼으면 되잖아요. 그냥 말든 10만 원 전하면 되는데 왜 썼을까? 이유가 있어요. 오늘 베드로 전서가 쓰여진 이유 베드로 전서는요 쓰여진 배경이 너무나 확실한 책인데 여러분 오늘 1장 6절 한번 보겠습니다. 1장 6절 노란색 드식어 표시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매미암아 여러 가지 시험이 나오죠. 노란색으로 한번 쳐보세요. 여러 가지 시험이 나와요.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자 잠깐 근심도 노란색 쳐보세요. 자 여러 가지 시험이 다가와요. 여러 가지 시험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이게 한두 가지가 오고 그냥 해결되는 그건 시험이 아니라 굉장히 여러 가지 시험이 옵니다. 견디기 어려운 시험들이 몰려오는데 자 이 시험들이 잠깐 근심하게 한다는 거예요. 오래도록이 아니에요. 영원히가 아니에요. 잠깐 근심하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까지 노란색 쳐보세요. 자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났는데 이 여러 가지 시험이 뭐냐면 바로 이 당시에 에이디 65년 경인데 네로라고 하는 황제 로마에 가장 미친 황제죠 네로가 로마의 대화제를 일으키고 누명을 기독교인들에게 씌웁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의 씨를 말리려는 어마어마한 박해를 이제 하는데 고 시점인 거예요.
그런데 여러 가지 시험 황제를 황제가 죽이려고 하고 로마가 그들을 핍박하고 온갖 사방인 그들을 옥죄에 오는 이 상황이 여러 가지 시험인 거 맞죠. 그런데 눈에 보일 때는 여러 가지 시험만 보여요. 현상만 보이지만 그는 뭐라고 말해요. 성령의 감동으로 잠깐 근심한다는 거예요. 근심이 오래가지 않는다.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 자 그러면 어떻게 이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에서 근심은 잠깐 하고 크게 기뻐할 수 있는가 그게 7절이에요. 7절이 이제 이 베드로 전설을 쓴 이유인데 같이 있습니다. 7절 시작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교를 얻게 할 것이니라 아멘 자 이거예요. 이게 베드로 전설을 쓴 이유예요.
베드로 저서를 왜 썼나 믿음의 확실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믿음의 확실함 이게 이유예요. 당장은 핍박받고 어렵고 죽을 것 같아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상황은 불안하고 상황은 두려운데 뭐가 확실하나 믿음은 확실하다는 거예요. 믿음 그래서 베드로 전선은 믿음을 강조하는 책이고 믿음의 확실함이 얼마나 확실하냐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대요 불로 연달한 금이 왜 없어집니까 금은 불로 연단하지만 무게는 언젠간 사라지고 말죠 불로 연달한 금도 24번 도가니에 들어갔다 나온 24 케이 순금도 언젠간 사라져요 그러나 믿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즉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믿음은 확실해서 그날에 뭘 얻게 해요. 동그라미 해보세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라 자 이것이 베드로가 확실하게 당시 교인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는 장면이에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했겠어요. 베드로가 얼마나 많이 선포했겠어요. 그런데 선포를 하다가 보니까 다 갈 수가 없잖아요. 당시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다 갈 수 없으니까 이야기를 책으로 편지로 적어서 이제 전달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베드로 전서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6절과 7절에서 우리가 베드로 전설 쓴 이유를 봤고 1절로 와볼게요 1절로 이제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바드로 베드로는 자 얼마나 간단합니까? 여러분 바울은요, 앞에 뭐가 길어요. 뭐 앞에 뭐 어떻게 구름 맞고 어떻게 뭐 사도가 되었고 어떻게 뭐 말아요. 그런데 베드로는 굉장히 간단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 성격이 나오는 거예요. 성격이 그러니까 바울은 굉장히 치밀하고 굉장히 준비성이 많고 하나하나 수식어로 붙이는 성격이라면 베드로는 단순합니다. 왜 어구잖아요. 어부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 금을 던지는 사람이에요. 그물 던지는 사람 그물을 던진다는 게 뭐냐면 여러분 그물을 던지고 나면 그다음에 내께 아니에요. 그물은 알아서 물에 쫙 퍼지고 거기서 고기가 들어오고 안드로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하나님께 맡기는 거죠. 그러니까 어부라는 직업은요, 굉장히 하나님 앞에 의탁하는 그래서 그물을 던져버리면 그래서 뭐라고 그래요. 베드로가 나중에 너희 염려를 죽게 던져버리라고 그러거든요. 염려도 던지세요. 마치 그물처럼 던지고 나면 얼마나 잡힐지는 내 몫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거죠. 그래서 베드로는 늘 선이 굵고 수식어가 많지 않아요.
그런데 누구한테 썼나 그러면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서 씁니다. 그런데 이게 왜 중요할까요? 이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가 어디인데요. 여러분 이것이 지금의 소아시아거든요. 소아시아 하면 터키입니다. 지금의 터키 지방 여러분 터키에 성리술례를 가시면 바로 이 지방들을 보게 되는데 그러면 왜 베드로가 이 지방에 흩어져 있는 나그네들에게 편지를 썼을까요? 이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냐 바로 오순절에 성령 강림사건 마가 다락방 사건 때 그때 예루살렘에 왔다가 성령 강림 사건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누가 설교를 해요. 베드로가 설교를 합니다. 베드로 설교를 듣고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에요. 바로 사람들이 이 지역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 지금 베드로가 내술교를 듣고 처음 믿게 된 사람들 사람들에게 주의 복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여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확인해 볼까요? 사도행전 2장으로 갑니다. 사도행전 2장 1절 야 진짜 오랜만이네요. 사도행전 2장 1절 그날로 한번 가봅니다. 그날의 기록 자 사도행전 2장1절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순절 나리임이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예수의 제자들이 모였죠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서 그들이 앉은 온집에 가득하죠. 성령이 원 3절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마르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자 성령의 방언이 터져나오기 시작했죠. 자 그랬더니, 5절 노란색 들고 표시합니다. 그때의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바로 이 사람들이에요.
천안 만곡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지금 이 유월절을 지키러 왔던 이 유대인들 이들이 있었는데, 보세요. 6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 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 사람들이 아니냐 우리가 자 표시하세요. 우리 각 사람이 난 곧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됨이냐 자 우리는 다 곳곳에서 왔어요. 소아시아 곳곳에서 왔는데 우리가 온 우리 동네 말이 지금 들려오는 거예요.
9절 누구냐면 우리는 바데인과 메데인과 엘라민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블루기아와 반빌리아 애국가 및 구레내에 가까운 리비아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서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단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자 이때 바로 놀라운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이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베드로가 전하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죠. 그러면 이 사건 뒤에 그럼 베드로가 증거하는 이 설교의 말씀에 핵심이 나와요. 사도행전 2장 38절 봅니다. 38절로 갑니다.
사도 인연 2장 38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자 그러죠 여기서 강조하는 게 있어요. 베드로가 뭐냐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 동그라미 해보세요. 예수 그리스도 성자 예수님이죠. 그리고 성령의 선물 동그라미 해보세요. 성령 하나님이죠. 그다음에 39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이 동그라미 보세요.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즉 베드로가 뭘 강조하냐면 이 설교에서 예수님과 성령님과 하나님 삼유일체를 강조하고 있어요. 이 사부일체를 강조하는 설교를 듣고 이들이 비로소 깨달은 거죠. 그전까지는 하나님만 유일신 하나님만 믿었는데 이제는 사무일체 예수님과 성령님을 우리가 함께 받아들여야 되는구나. 깨달은 거죠.
그러면서 40절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폐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자 뭘로 확증했어요. 말로 여러 말로 즉 이 사도 베드로는 여러 말로 전하는 사람이에요. 41절 말을 받은 사람들은 말을 받았죠 세례를 받으매 그날의 신도의 수가 3002나 더 하더라 자 설교 한 번 했는데 3000명이 돌아왔어요. 8000명이 세례 받았어요. 그럼 여러분 성경은 쓸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베드로는 없어요. 쓰지 말고 뭐 해야 돼요. 설교해야 돼요. 설교하면 3000명씩 돌아오니까 자 이날 무슨 일이 벌어져요 42절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자 이렇게 설교를 하면 세례만 받는 게 아니라 삶이 변화돼요. 삶이 변화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삶이 예배하는 삶으로 바뀌더라는 거죠. 여러분 여러분 이러한 귀한 사람이 누구였어요. 베드로라는 거예요.
자 베드로가 이렇게 3위 일체를 증거하면서 이 사람들을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자 그러면 자 그러면 지금 말년의 베드로는 무엇을 전하고 있을까? 초기의 베드로 삼유일체를 전해서 이들에게 변화를 주었죠. 오늘 베드로서 전서 1장 2절로 갑니다. 그럼 오늘 말년에는 뭘 전하고 있는가 이 절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자 베드로 전설 오셨죠 1장 2절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하나님 동그라미 하시고요. 하나님 동그라미 하시고 성령이 거룩하게 하시므로 성령 동그라미 하시고요. 성령 그다음에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자 예수 그리스도 동그라미 해보세요. 하나님 성령 예수 그리스도 여전히 뭘 강조하고 있어요. 3위일체예요. 여러분 이게 이 베드로 전서가 누가 봐도 확실히 베드로의 책임 이유예요.
베드로는 뭘 증거하고 있는가 초기에도 지금도 항상 뭐 3위일제 왜 그가 뭘 경험했어요. 예수님과 3년을 동역하면서 뭘 경험했냐면 유대인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하나님 유일신 신앙이 플러스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구나.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의 감동으로 3년을 살았어요. 성녀의 감동으로 그래서 성령의 감동을 3년간 지켜봤기 때문에 이 베드로의 고백은 항상 뭐가 나와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나오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나오고 또 거기 성령님이 나와요. 삼유일체 초기든 말기든 변함없이 그가 증거했던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삼유일치 하나님 온전하신 하나님 상호 역사하시는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이에요.
이것을 베드로가 확실하게 믿었기 때문에 이 당시에 네로의 밖에 가운데 있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를 미리 아신다 그리고 성령님이 거룩하게 하신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지 않았냐 이 세 가지를 강조하면서 우리가 삼 중에 보호하심을 받고 삼 중에 지키시므로 얻고 삼 중의 목적을 향하여 나간다고 지금 말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것을 얻기 위하여 뭘 받았어요. 택하심을 받은 자들 동그라미 해보세요. 택하심을 받은 자들 이게 교회입니다. 택하심을 받고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성민 교회죠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러니까 여러분 은혜와 평강은 바울의 전매 특허가 아닙니다. 이 당시에 편지하던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나누던 것이 뭐예요?
먼저 단번에 받는 은혜죠 단번에 받는 은혜 카리스 이건 정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은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죠. 예수님께 변화되는 선물 은혜 그리고 또 하나는 평강 매일매일의 평강 구약으로 말하면 살롬이고 신학에서는 에이레네죠 에이레네 평강 매일매일 매 시간 임하는 평강 그래서 우리는 뭘 받아야 돼요. 예수 믿고 변화되는 단번에 은혜와 매 시간 줄임과 동행하는 평강을 누리게 되죠. 은혜와 평강을 더욱 너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지금 베드로는 축복하고 있어요. 자 그럼 여기서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1절과 이 절을 연결하면 어떻게 되는가 연결하면 그러면 베드로는 누구에게 편지하는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누니아의 흩어진 나그네 자 노란색 드래그 표시합니다. 흩어진 나그네 흩어진 나그네라는 말이 뭐예요? 흩어졌어요. 함께 모여있는 게 아니라 흩어졌어요.
그런데 단순히 그냥 같이 살기 싫어서 흩어진 게 아니구요. 찌를 뿌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걸 흩으셨어요.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질 때는 하나님이 뜻을 가지고 흩어 놓으신 거예요. 어떤 뜻이에요. 바로 복음의 씨를 뿌리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각 지역의 복음의 씨를 뿌리라고 흩어 놓으셨어요.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경륜과 계획 가운데에서 이 일이 이루어진 거예요. 여러분 제가 좋아하는 책이 한 권 있는데, 이 인호 목사님이 쓰신 책인데요. 버려진 게 아니라 뿌려진 것이다라고 하는 책이에요. 버려진 게 아니라 뿌려진 것이다. 뭘 나타내는 걸까요? 씨앗이죠. 씨앗은 땅에 심어요. 땅에 뿌려요 그런데 씨앗을 버린 게 아니잖아요. 씨앗 입장에서 보면 농부가 날 버렸네 그런데 버린 게 아니라 어떻게 한 거예요. 뿌린 것이죠. 생명을 위해서 씨앗을 뿌린 거죠.
여러분 지금 이 흩어져 있는 교인들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우린 지금 마치 버려진 것 같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구나 각 지방에 흩어져서 우리는 이제 이렇게 죽겠구나 그런데 하나님은 버리신 게 아니라 뿌리신 거죠. 그들이 땅에 심겨져서 그들이 죽고 생명이 잉태되어 다시 교회가 탄생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온 세상을 덮는 아름다운 역사가 시작된 거죠. 그래서 우리는 흩어진 나그네다 여러분 이게 우리의 굉장히 중요한 정체성이에요. 왜냐하면,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 영원히 사회 원주민이 아니에요. 여기는 우리 땅이 아니에요. 우리 집이 아니에요. 우리는 나그네예요. 세상에서는 우리의 본향은 어디 있어요. 함나라예요. 그러니까 하늘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잠시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의 주시는 삶을 청지기로 맡아서 열심히 살아서 죽게공왕을 돌리고 다시 우리는 하늘나라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땅은 우리 게 아니다.
여기에 우리가 승부를 걸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얻고 만나고 이루는 것이 우리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요 우리는 나그네로서 살아야 된다. 이 땅이 전부인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된다. 자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누구예요? 이 절에 보니까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다. 흩어진 나그네인 동시에 택하심을 받은 자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주신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 왜 택했어요. 4명이 있다는 거예요.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드러내고 보여주고 살아내는데 그것이 뭐냐 바로 오늘 3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내야 될 것 3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을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시므로 멜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소망이 있게 하시며 동그라미 해 보세요.
산소망 소망도 다 소망이 아니에요. 산소망이 따로 있어요. 죽은 소망도 있다는 거예요. 이 땅에 그것을 구하는 돈 명예 건강 이 땅에서의 것을 아무리 구해도요 이 땅에서 끝나버립니다. 그건 죽은 소망이라는 거예요. 살아 보이지만 죽은 거 그런데 진짜 산소망은 뭐예요? 영원히 가는 소망 영원한 소망 여러분 이 산소망이라는 말을 왜 베드로가 썼을까? 다른 사람이 안 쓰고 여러분 바울은 누구예요? 바울은 건축가예요. 건축가에게 재료는 산 재료 죽은 재료가 따로 없어요. 그런데 어부에게는요 이거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물을 던졌는데 고기를 낚았는데 물고기가 살아서 펄쩍펄쩍 뛰는 활어냐 아니면 죽어서 못 쓰는 고기냐 못 쓰는 고기는 어떻게 해야 돼요. 다 버려야 돼요. 아무리 큰 월척도 소용없어요. 죽은 고기는 버려야 돼요.
그런데 펄쩍펄쩍 뛰는 고기는 이건 산 고기죠 이 산 고기는 먹을 수도 있고 팔 수도 있고 이게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삶의 기쁨이 됩니까? 바로 이렇게 살았느냐 죽었느냐 이것은 후보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소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려고 하는 것들 가지려고 하는 것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들이 알고 보면 그게 다 죽은 건데 우리는 그거 얼마나 크냐 얼마나 무겁냐 그걸 보면서 가치를 따지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 베드로의 이야기는 뭐예요? 하나님의 가치는 살아 있느냐는 거죠. 살아있느냐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얻은 산소망 그게 우리에게 있어야 된다. 그것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의 앞날을 열어주는 살아있는 진짜 소망 리빙 호프다라고 말씀하는 거죠. 오늘 우리가 베드로 전설을 이제 읽기 시작하면서 저는 이 베드로 전설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든 성민 가족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산소망을 품어야겠다. 내가 지금 품고 있는 소망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기대와 소망이 과연 살아있는 것인가? 죽은 것이 여러분 믿음은 뭐라고 그랬어요. 아까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고 그랬어요. 금보다 귀한 믿음을 내가 가졌는 금보다 귀한 살아있는 소망을 가졌는가 여러분 이것을 확인해 보시고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 참된 생명과 소망에 동참하시고 가치를 다시 발견하시고 그것을 증거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우리 모두 될 수 있기를 우리 하나님 원하고 계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부터 베드로 사도에 선포를 함께 듣습니다.
역시 가슴을 울리는 설교자 베드로의 이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이 마치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는 것처럼 하늘의 울림이 들려오는 것처럼 저희들 마음이 떨리고 이 말씀이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쪼개는 것을 경험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모든 고난이 잠깐 근심하게 하지만 그러나 오히려 우리에게 크게 기쁘게 될 것은 믿음이 확실하게 우리에게 주어졌고 그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오늘 베드로 전선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흩어진 나그네인 우리들이 이렇게 고난 중에 있지만 이것은 흩어져 버려진 것이 아니고 뿌려진 것임을 기억하고 우리가 이 씨앗을 잘 내려 싹을 띄우고 열매를 맺어 하나님 나라에 귀하게 쓰임받는 복된 주님의 제자들 주님의 자녀들 다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바로 3위일체 하나님 산소망을 품기 원합니다.
주님 죽은 소망 붙잡고 그것이 단 줄 알고 살아가는 연약한 인생이 아니라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산소방 품고 소망을 증거하며 누리며 경험하며 전파하며 살기를 원하오니 주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 그 산소망을 오늘 이 아침에 다시 한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 영원히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매일매일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하신 능력을 경험하고 찬양하고 잔치하는 우리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