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열왕기하 일장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에게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11기 하 말씀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11개 상을 마치고 1주간을 쉬고 오늘 11개 하를 시작하는데요. 11개 하는 11개 상에 시작되었던 그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1왕기 상에서 시작되었던 그 논조는 무엇입니까? 이름은 열왕긴데 마치 왕들의 주인공처럼 왕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조선왕조 500년 같은 분위기가 될 것 같은데,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다라고 했어요. 왕들이 주인공이 아니라고 했어요. 도리어 누가 주인공이에요. 하나님의 선지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들이 주인공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주인공이신 거죠. 그래서 선지서를 읽을 때 선지자들 중심으로 읽을 때 우리가 11개를 바르게 읽는 것이다.
그래서 11개는 역사서가 아니라 선지서다 라고 하는 말씀을 먼저 드렸어요. 11개 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11개 하에도 오늘 시작은 이렇게 시작을 해요. 1절에 아합이 죽은 후에 이렇게 시작을 해요. 11기 상을 마무리하면서 제가 11기 상 마무리 부분의 주인공이 아합이다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합이 끝까지 나오니까 아압에 대해서 계속 하나님이 아압을 통해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깨달음을 주시기 때문에 아압이 주인공이다. 근데 그는 우리에게 바른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따르지 말아야 할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교사인 것이죠. 왜 그 아압이 중요해요. 우리 속에 압이 다 있어요. 우리는 본문을 읽으면서 내가 엘리아인 것처럼 생각해요. 그래서 850대1의 대승리 그러면 와 내가 승리한 것처럼 좋아해요. 근데 과연 그러냐는 거예요. 선지선은 우리에게 묻는 거예요. 이 역사설하면 달라요.
왕조의 역사랑은 달라요. 우리가 마치 정말 승리한 것처럼 그런데 선지선 묻는 거예요. 너희의 마음속에 아합 같은 마음은 없느냐 바야 선지자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의지해서 마치 니가 잘될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의 말만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떠나 살고 있는 모습은 없느냐 라고 묻는 것이 선지서예요. 그래서 선지선을 읽기가 불편해요. 힘들어요. 그런데 우리에게 필요해요. 마치 양약 같은 말씀이에요. 입에 쓴 양약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11개 하도 이제 25장을 봐야 되거든요. 적어도 25일 동안 말씀을 읽어야 되는데 불편할 거예요. 불편해요. 그리고 우리가 이미 결론을 알고 보잖아요. 왕조가 이어지는데 어차피 이 왕조가 다 망하잖아요. 북유스라엘 망해서 아수르에 끌려가고 남 유다 망해서 바빌론에 끌려가는 걸 우리가 다 알고 있어요. 다 알고 있는데, 이 왕조를 왜 볼까요?
왕들의 역사를 공부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판에 이 말씀을 새겨서 우리의 영혼이 살기 위해서 보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은 끌려가면 안 되잖아요. 포로 되면 안 되잖아요. 어둠의 시기 포로 이렇게 찾아오면 안 되잖아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참 아버지가 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여왕이 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지금 나의 현 위치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어서 빨리 돌아오라는 거예요. 왕이라고 해이해져서 뭐라도 된 것처럼 마치 자기가 위대한 인생인 것처럼 자기의 지위를 믿고 허탈한 데 빠지지 말고 하나님 말씀 우리를 살리는 유일하신 능력 그리고 유일한 사랑 하나님의 품으로 어서 빨리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주림의 품으로 돌아가자는 찬양을 부르고 오늘 11개 하루 시작하는 거예요. 여러분 왕 같은 제사장 되게 좋은 말 같죠 그런데요. 왕처럼 교만하고 왕처럼 자기 의에 빠질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아요. 우리는 왕이란 말 되게 좋아하는데 실은 그 말처럼 우리의 본성을 드러내 보이는 삶이 없는 거예요. 마치 왕이라고 된 것처럼 마치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말씀에 귀를 막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합이 죽은 후에 모하비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열왕기 하해의 말씀은 아합 그 악한 왕 아합이 죽었는데 그러면 악한 왕 아합이 죽었으면 어떻게 돼야 돼요. 상황이 좀 나아져야 되잖아요.
그런데 전혀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라고 하는 거예요. 도리어 모하비 이스라엘을 배반하고 더 이스라엘의 위기가 찾아왔다 왜냐하면, 그 아들 아하시아 때문이죠. 2절입니다. 아하시아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량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자 여러분 아하시아 왜 아들이에요. 이 아들이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 떨어졌어요. 다락난간이라고 하는 말은 2층을 말하는 것입니다. 2층 성경에는 10년기에 벌써 집의 지붕을 만들 때에는 난간을 꼭 만들어라 라고 하는 율법이 나와요. 그 정도로 하나님은 친절한 분이세요. 그런데 이 다란 난간을 만들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떨어졌어요. 병이 들었어요. 그런데 여러분 아시아가 난간에 떨어져 병이 들었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일반적으로는 병원에 가야 되는 거죠. 의원을 불러야 되는 거죠. 그런데 왕의 주치의가 분명히 있겠죠. 그런데 왕의 주치의로 해결이 안 되니까.
아 이거 병세가 점점 더 깊어지니까. 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어떻게 해요.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사자를 보냅니다. 자 그렇다면 어디로 보내야 맞아요. 자 사자가 어디로 가야지 맞아요. 의수존 발달한 곳으로 가야 되겠지 않을까요? 뭐 정말 큰 나라 우리로 말하면 작은 의원이 안되니까. 대학병원을 가던지 종합병원에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근데 어디로 보냈나 에그론의 신 바알 세부백의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하니라 그랬어요. 자 이 한마디가 아아시아의 모든 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 아버지 아하비 이스라엘 때 가장 악한 왕이었죠. 그의 어머니 2세 벨은 시돈의 딸 옛 발의 딸 2세 벨이었어요. 엣 발도 귀신이고 2세 벨도 귀신이다. 벨 발 다 귀신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바알을 섬기는 아버지의 딸이었던 2세 벨이 그녀도 우상숭배하는데 그 이세벨이 아베게 시집와서 낳은 아들이 아으시아니까 오죽하겠어요. 근데 이 아으시아가 내 몸이 점점 아파 가니까 자기의 생명을 누구에게 맡겼냐 에그로네 실 바알 세브베게 물었다는 거예요. 에그론은 어디냐면 블레셋입니다. 블레셋의 한 도시인데 블레셋의 도시 바알세 북은요, 바알세불이라고도 불러요 근데 바알세불과 바알제 부분 좀 달라요. 같은 말같이 보이지만 발세불과 바알세 부부의 차이가 뭐냐 발세불이라고 그러면 왕 귀신 중에 왕을 바알새불이라고 부르고 발제부분 뭐냐 하면 제법은 파리예요. 파리 파리의 왕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바알세부를 조금 비웃는 쪽으로 유대하에서 부르는 이름이 뭐냐면 바알제부비예요. 그거 바알이 대단한 왕이라고 바알세불 바알세불 하지만 실제로 파리왕 아니냐 파리왕 파리 같은 왕 아니냐로 부를 때 제 바알제부 여기만 나오는 말이에요. 그런데 파리가 이 당시에 어떤 존재였냐면 파리는 죽음을 부르는 존재였어요. 죽음을 전하는 존재였어요. 그러니까 썩은 고기나 이 썩은 곳에 가면 항상 파리가 꼬여 있잖아요. 그러니까 아 저 파리가 죽음을 가지고 오나보다 죽음을 옮기나보다 그러니까 파리가 전염병을 옮기기도 하고 파리가 뭔가 안정으로 옮기잖아요. 그걸 그 당시 사람들이 보고서 아 파리가 마치 귀신들의 영향력을 옮기는 귀신들의 사자처럼 봤던 거죠. 그래서 이름을 뭐라고 했냐면 바알제굽이라고 부른 거예요.
유대인들이 그렇게 낮추어 부르는 한낮 파리의 왕처럼 부르는 바알 제부비에게 가서 뭘 물어보라구요. 내가 살지 말지 좀 물어봐. 달라는 거예요. 근데 왜 바알 제부에게 물으러 갔을까요? 파리 같은 존재에게 왜 물어보죠. 여러분 우리가 그런 말을 쓰잖아요. 파리 목숨이다. 이런 말 쓰잖아요. 파리의 목숨이라는 말은 그게 귀하다는 말이에요. 천하단 말이에요. 천하다는 말이거든요. 근데 왜 그 천한 존재에 가서 내 생명을 구걸하고 생명을 물어봅니까 왜 그런 거죠. 자 그러면 일단 일단 더 좀 한 단계 가서 그럼 하나님께 왜 안 묻죠 하나님께 물어야 된다는 것을 잠깐 모를 턱이 없어요. 이스라엘 왕 정도 되면 당연히 자기의 생명을 하나님께 물어야지 왜 바알제부에 가서 물어봅니까 왜 그럴까요? 자 하나님께 물으면 어떤 답을 들어요.
하나님께 물으면 내가 듣고 싶은 답을 들어요. 아니면 정확한 답을 들어요. 정확한 답을 듣죠 그렇죠. 그런데 바알제브백에 가면 파리의 왕에게 가면 정확한 답을 듣나요? 내가 듣고 싶은 답을 듣나요? 내가 듣고 싶은 답을 들어요. 여기 포차점이 있는 거예요. 왜 아시아가 이스라엘의 왕인데 불구하고, 그 정말 왕이면 얼마나 지위도 높고 얼마나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제대로 물어볼 수 있는 길이 있어요. 분명히 있어요. 엘리아라고 하는 850명의 허황된 선지자들이 상대할 수 없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 모든 산을 살라버렸던 능력의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어요.
그런데 거기 가서 묻지 않고 에그론의 바알 제묵 저 블렛의 한 구석에 사는 그 정말 선지자에게 가서 바알 제부 파리의 왕에게 물어보러 보내요. 이유가 뭐예요?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서예요. 듣고 싶은 말이 뭐겠어요. 니가 살 것이다라고 하는 말이죠. 근데 이게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여러분 니가 살 것이다. 하면 살아요. 죽어요. 여러분 어차피 지금 왕이 웬만큼 아파서는 여러분 이 당시에 병원이 있어요. 의사가 있어요. 무슨 약국이 있어요. LA MRI가 있어요. CT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시대에 웬만한 병원 병도 아니에요. 지금 죽을 거 살까 해서 물어보러 간다면 정말 심각한 것 아니에요. 그러면 의원으로 안 되면 생명의 주관되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 제가 이렇게 죽으면 되겠습니까? 저한테 살려주세요라고 하나님을 붙들어야 되는데 나중에 그런 사람이 나오잖아요.
히스기야라고 하는 유명한 왕이 나오잖아요. 정말 자기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자기 생명을 구해서 생명이 연장되는 그런 일이 벌어지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 아아시아는 생명의 죽었는 대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아요. 왜 하나님께 바라보며 하나님께 나아가면 정확한 말을 듣게 되니까. 정확한 말이 뭐예요? 너 죽어 라고 하는 말이니까. 그러니까 정확한 말을 듣기 싫으니까 정확한 말을 듣지 않으려고 오히려 자기의 뜻에 맞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한낱 미천한 파리의 왕을 찾아가고 있는 이 인간의 모습이요. 그게 나라는 거예요.
그게 나다 정말 들어야 할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정말 중요한 말 나를 나를 정말 내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가치있는 말에는 귀를 닫은 채 아무 의미 없는 말 다만 내 귀를 즐겁게 하는 말 다만 내 마음을 달콤하게 해주는 그 말을 찾아서 전전하고 있는 이 아시아의 모습이 바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 나의 모습이고 그것이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이왕이면 잘 된다. 이왕이면 잘 풀린다 이왕이면 뭐 복이 쏟아진다 이런 말씀을 듣기를 원하는 거예요. 근데 그러면 내가 잘 가고 있다면 그런 말씀 주시겠죠.
그런데 잘 가고 있지 않다면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잘 가고 있지 않으면 당연히 그런 말씀 주실 리가 없는데 우리는 나는 내 욕심대로 살고 싶고 말씀은 좋은 말씀 듣고 싶고 이게 우리의 이중성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너무 불편하고 너무 손해보고 내가 억울해 그런데 복은 복제를 받고 싶은 이 이중성 이 아시아처럼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그러나 니가 장수할 것이다. 병이 날 것이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 그게 바로 우리라는 거예요. 그래서 에그로네신 바하세브에게 뭐라고 물어요.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하니라 이 병이 낫겠나 라는 말은 뭐예요? 낫겠다. 하는 얘기를 들어오라는 거죠. 이미 듣고 싶은 이야기가 정해져 있어요. 이 병이 낫겠나 그러니까 이 병이 어찌 될까가 아니에요.
우리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올 때도 하나님 이 병이 어찌 되겠습니까라고 묻지 않구요. 하나님 이 병이 낫겠나 말씀해 주세요라고 물을 데는 없는가라고 하는 거예요. 정해놓은 거죠. 마치 다 정해놨어요. 답은 정해져 있어요. 하나님 동의해주세요라고 하는 기도 하나님 이렇게 돼야 되는데 이렇게 되는 게 맞는데 하나님 그렇죠라고 하는 기도 이런 기도는 여러분 어떨까요? 누가 주인인 겁니까? 누가 주인이에요. 답을 정한 사람이 주인 아니에요. 내가 답을 정해놓고, 하나님 그쵸. 그쵸. 하는 기도는 이건 기도가 아닌 거예요. 이건 하나님이 단순히 뭐예요? 하나님의 거수기죠 박수부대죠 그쵸. 그럼 어 맞어 맞어 맞어 마치 하나님은 아무런 주권도 없고 아무런 생각도 없는 분처럼 만들어버리는 그런 기도가 우리에게 있지 않는가라고 하는 거예요. 발제부비엔 그래도 돼요.
왜 파리왕 뭐 아무것도 아니니까 파리 왕에게는 그렇게 해도 되지만 하나님께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래서 3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사람 엘리아에게 이르되 자 하나님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자 너는 이제 일어나 찾아가라 여기서 나오면 일어나라 쿵이란 단어는요 단순히 몸을 일으키는 게 아니에요. 이제 위대한 일을 시작하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시작해라 그런데 항상 이 일어나라고 하는 이 동사에는 뭐가 따르나 하나님의 말씀이 따라요. 하나님 말씀이 있어야 일어날 수 있는 거예요. 말씀의 의지와 일어나서 가서 전할 수 있는 거예요.
일어나 가서 사마리아의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한 아름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로네 시인 발 세븐에게 물으러 가느냐 여러분 이 마음을 이 애타는 마음을 이해하셔야 돼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로넷인 바얀세 부부에게 물으러 가느냐 이 안타까운 마음이요. 여러분 여기서 또 하나 하나님께 만약에 물으면 하나님은 정확한 답을 주신다고 그랬죠 너 죽어 그러면 여기서 또 하나 곧 죽으란 얘기예요. 살란 얘기예요. 난 모르겠으니까 니가 죽든지 말든지 알아서 그냥 죽어 이런 얘기예요. 아니면 니가 이렇게 살면 죽으니까 반드시 나에게 돌아와서 어떻게든 돌아와 살라는 이야기예요. 그냥 죽으란 얘기예요. 살라는 얘기예요. 돌아오라는 이야기예요.
하나님이 정확한 답을 주시는 이유는 뭐냐 그래야 사니까 아니 죽을 인생에게 산다 산다 그러면 또 살겠어요. 죽죠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어리석은 인생에게 너 그러면 죽어라고 정확히 말을 해줘야 아 그럼 어떻게 하면 살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제가 돌아올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해야 살아요. 라고 물어볼 거 아니에요. 그래야 살 거 아니에요. 그런데 죽어가는 인생에게 산다 산다 그러면 진짜 사는 줄 알고 퍼져 있다가 정말 죽는단 말이에요. 하나님이 왜 죽는다고 그러시냐 왜 정확한 말씀을 주시는가 살리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마음을 모른 채 하나님께 묻지 않고 어리석은 우상히 가서 물어보는 인간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가슴이 답답한 거예요. 노란색을 드시고 한번 쳐볼게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로네신 바아세불계 물으러 가느냐 쫙 쳐보세요. 이게 하나님 마음이다.
내가 죽었냐 내가 없냐 너 왜 나한테 묻지 않고 다른 데 가서 묻고 있냐 여러분 하나님 외에 다른 데 물으면 안 돼요. 하나님 외에 다른 지혜를 구해서는 안 돼요. 왜 그건 나를 죽이는 거예요. 그게 듣기에 좋을지 모르나 그게 나한테는 굉장히 달콤하게 들릴지 모르나 그게 마치 나를 내 편을 들어주는 것처럼 나를 위로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그건 나를 죽이는 거다 여러분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6절에 6절 하반절에 또 반복을 해요.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없어서 내가 에그론의 신발 세부베개 물으려고 보내느냐 라는 말이 또 나와요. 6절 하반절이에요. 중간쯤 나오죠. 노란색으로 거기도 표시해 보세요. 3절에 나온 말씀이 6절에 거의 똑같이 또 나와요. 6절 후반부에 자 노란색으로 치셨으면 13절을 봅니다. 16절 봅니다.
16절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사자를 보내 이그러내신 반수벽에 물으라 하니 자 이스라엘의 그의 말을 물을만한 하나님이 안 계시느냐 요기도 또 노른색으로 쳐보세요. 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노란색으로 쳐보시고 그다음에 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 만한 사람이 많은 하나님이 안 계십이냐 자 요렇게 쳐보시고 3절 6절 16절을 연결해 보세요. 노란색으로 연결해 보세요. 여러분 성경에서 1장에서 같은 내용이 3번 반복된다. 이건요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이야기예요. 그냥 1번 어쩌다 지나가다 말씀하신 게 아니라 1번 더 말씀했다. 얼마나 중요해 그런데 1번을 또 말씀했다. 이야기는 하나님의 정말 그 마음 깊이 진심을 담아 우리가 말씀하시는 거예요.
야 내가 죽었냐 너 왜 엉뚱한 데 가서 묻고 있냐 그렇게 물으면 너 죽어 진짜로 죽어 내가 주는 진실한 말을 듣지 않으면 이게 지금 니가 듣기에는 안 좋겠지만, 니가 지금 듣기에는 이 말이 너에게 불리한 것처럼 보이고 니 편을 안 들어주는 것처럼 보이고 서운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이 말이 너를 살리는 말이야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에요. 사절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자 여호와에게 말씀이 뭐라고 주십니까 내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내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하라 엘리야가 이해 가니라 자 하나님은 역시 기대했던 말씀을 주시죠. 아시아에게 너 그렇게 살면 죽어 죽어 이 말이 뭐예요? 돌아오라는 이야기예요. 돌아와라 돌아와라 여러분 우리가 이번 지난주부터 이 배지를 달고 다니잖아요.
구사일생 사실 이게 좋은 얘기예요. 나쁜 얘기예요. 듣기 좋아요. 나빠요 사람들한테 어 너 94일생으로밖에 못살아라는 얘기 아니에요. 너 90프로는 죽은 인생이고 10프로도 안 돼 살 확률은 근데 그나마 믿음 한 장 차이래요. 믿음 없으면 너는 100프로 죽어라는 얘기 아니에요. 얼마나 이게 듣기 힘든 얘기예요. 듣기 싫은 얘기예요. 그 1시간만 내어주면 새로운 생을 들입니다라는 얘기는 뭐예요? 너 그 1시간 안내면 너 죽어라는 얘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게 사람들에겐 정말 듣기 싫은 이야기예요. 구사일생 이 배지는요 아마 한번 설명드린 사람 다시 물어보고 싶지 않을걸요 듣기 싫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왜 우리가 전해야 합니까? 안전하면 죽어요. 진짜로 죽어요. 그나마 구사일생이라도 할려면 이 생을 얻으려면 이 가치 있는 생명감에 동참하려면 전해야 돼요. 그래서 우리가 달고 다니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마음에 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하는 마치 우리의 마음을 다독거리는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그렇게 듣고 싶은 말만 따라 살려는 우리의 마음을 줄임 변화시켜 주옵소서 들어야 할 말을 듣게 하옵소서 그리고 더 중요한 거 우리 주변 사람들 하나님 말씀이라고는 귀를 막고 세상에 달콤한 이야기만 빠져있는 이들에게 저희가 구사일생을 전해야 되는데 지금 그들의 귀도 열어주옵소서 그래서 들어야 할 말을 듣게 하시고 진리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짜로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산다 산다 하다가 죽는 인생이 아니라 죽는다 죽는다 해서 결국 돌아와 사는 하나님께 구원받는 인생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야 삽니다. 그래야 살아요.
이 아침에 정말 사는 길이 무엇인지 듣기 싫어도 그 말이 나를 살리는 그 진리의 말씀 하나님 말씀이 정말 우리에게 양양이 됨을 믿고 그 말씀 붙잡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를 살리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열왕기 하 강의를 시작합니다. 주님 그런데요. 첫 장부터 하나님은 죽는다 죽는다 하십니다. 왜일까요?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그 말씀 그 마음을 우리가 읽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세상에 말들 산다 산다 괜찮다 잘 된다. 커진다 부응한다. 성장한다.
세상의 말들에 저희들 빠지지 않고 진짜 나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하나님 말씀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헛된 욕심으로 헛된 야망으로 헛된 오만으로 살지 않게 하시고 바른 믿음으로 살아 진리를 따라 걸어가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열원기하 25장의 말씀을 저희들 공부하는 동안 이 말씀이 나를 살리고 이 말씀이 우리 주변을 살리고 우리 가족과 구역과 교회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복된 말씀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참주님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