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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왕기상 11장 1편

yt1981 2024. 7. 11.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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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평소 기본값에 반응한다. 평소 기본 값에 반응한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아베 딸 아달랴가 왕의 자손을 다 죽이고 스스로 여왕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3사람 중심으로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아달야 두 번째는 여호야다 제사장 그리고 세 번째 백성들 이 3부류를 살피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먼저 아달랴인데 이 아달야 얘기를 딱 들으면서 뭐 당나라 측천무 이렇게 생각나죠. 미친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안 듭니까 여러분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이 아달랴 그러면 미친 거 아니야. 이거 미쳤죠 아달녀가 누구냐 하면 정리를 해보면 아방과 이세벨의 딸이에요. 아압과 이세벨의 딸 그러니까 2사람의 나쁜 성향도 다 이어받았겠죠. 그런데 남쪽에 있는 하나님 잘 믿는 여호사밭 왕과 혼인을 맺죠 혼인 거래 며느리가 됩니다. 여호사밭 왕 역대 하에 나오잖아요. 

찬송 부르며 이기고 승리하고 했던 믿음 좋은 왕 근데 믿음이 좋은 왕이 왜 이런 결정을 내린지 모르겠어 하여튼 남북 대 동맹 시대거든요. 그래서 아바가 왕하고 여고사바시 동맹을 한다고 동맹 결과 우리 혼인 맺자 그래서 자기 아들이 여호람이고 그다음에 아베 딸이 아달야인데 둘이 결혼을 시킵니다. 그러니까 여호람 왕과 그다음에 아달야가 결혼을 해요. 그리고 아들 낳은 게 아아시아잖아요. 아아시아 지난주에 죽었죠. 열정거리다가 죽었잖아요. 요람하고 있다가 죽었잖아요. 그게 요람 그러니까 여 아하시아의 어머니죠.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들 아하시아가 죽자 이 태후쯤 되는 여자잖아요. 왕의 자손들을 다 죽여버렸어요. 왕의 자손이라 하면 자기 손자예요. 자기 손자 아들의 그 아들들 손자 다 죽여버리고 스스로 왕이 됩니다. 그중에 1명의 아들 요하스라르 왕만 숨어서 도망쳤다 뭐 그런 얘깁니다. 이게 제정신입니까? 

이거 보면서 느끼는 게 뭐예요? 아 할머니가 어떻게 손자들을 다 죽여요. 빚진 거 아냐 욕심 때문에 그래 왕 되기 위한 욕심 그렇게 생각하기도 좀 그렇고 하여튼 숨기는 것도 누가 숨기느냐면 자기 딸이 숨겨요 여우세바라고 여우세바가 시집을 보냈는데 제사장한테 시집을 보냈어요. 여우야다 여기 혁명 일으키는 여우야다 제사장의 부인입니다. 그가 고모죠 요하스한테 고모와 고모부가 성전에서 숨겨서 6년 동안 키웁니다. 그게 사건이에요. 무슨 뭐 드라마 같은 얘기죠 다 죽이고 1명 살아남았는데 성전에서 숨어서 6년 동안 지나고 그 요하스가 이제 왕 선포해 가지고 왕이 되더라 뭐 그런 스토리입니다. 먼저 123절 한번 아달랴의 악행을 한번 보겠습니다. 123절 다가 듣겠습니다. 

시작 아아시아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으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 요람왕의 딸 아아시아의 누이 여우세바가 아아시아의 아들 요하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빼내요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게 한지라 요하스가 그와 함께 여호의 정전에 6년을 숨어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사를 나라를 다스렸더라 아달랴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아달야를 그냥 단순하게 왕이 되기 위한 욕심 때문에 이렇게 했다. 그러면 제일 쉽지요 뭐 그렇게 설명하면 근데 아달야 입장에서 내가 아달야라고 묵상을 해봤어요. 오늘 하루 종일 여자 아달야야 아달야 생각해보니까 아달야는 참 모순적인 존재더라구요. 먼저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압과 이세벨이잖아요. 그러니까 상태가 안 좋죠. 아압은 우유부단하지 않습니까? 겉으로는 하나님 믿는 척하면서 또 와이프 얘기 믿어 가지고 발숭배하고 그러니까 양다리 인생의 대표적인 게 아방 아니에요. 그죠 가끔 회개도 해요. 

그래서 겸손하게 회개했더니, 하나님이 니 당대는 멸하지 않아 뭐 이런 얘기도 듣고 오락가락하는 인물이 아버지고 그래서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줬는가 봐요. 그 아달랴라는 이름의 뜻이 뭐냐 하면은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여호와는 크시다 그런 뜻이에요. 이런 뜻은 되게 좋죠. 그런데 아달랴는 엄마 따라 가지고 바알 숭배자예요. 아 바알숭배자 이름이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이게 말이 되나 저 모순 아니에요. 스님 이름이 베드로야 그까 베드로스님 그러면 코미디 하나 나오는 얘기 아니에요. 뭐 베드로 스님 요한스님 뭐 저 이상하잖아요. 그죠 예 뭐 바울 스님 그러면 도대체 뭐야? 그 느낌이 아달랴가 베드로 스님 느낌이에요. 베드로 스님 이름은 베드로인데 하는 일은 바알이에요. 뭐 그런 거죠. 그러니까 아달랴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그러다 보니까 그 아버지하고 어머니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인몰류였던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이제 시집을 보냈잖아요. 시아버지가 믿음 되게 좋잖아요. 여우사밭 믿음의 왕이거든요. 믿음의 왕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또 배운 척하는 거 위소는 또 배웠겠죠. 그래서 남쪽 유다에 와 가지고는 신앙 좋은 척 했을 거라구요. 양다리 인생 그렇지만 내면적으로는 이 여자 발숭배자예요. 엄마 영향 받아가지고, 그러니까 발숭배라는 게 뭐 딴 게 아니고요. 성공신을 추구하는 거예요. 성공 물질 순을 추구하는 거라고 우리 현대 크리차란 건 되게 비슷하지 않습니까? 겉으로는 아달야 여와는 광대하시다 이렇게 뭐 얘기하고 우리 같은 뭐죠 이름이 광신인가 광신이 미칠 광자 같네 예 여호와는 크시다 클 광자 하라지만 크시다 뭐 이런 굉장히 이름이 그런 뜻이었는데. 내용은 또 발숭배하는 여자였다는 것입니다. 근데 하여튼 이 아달레 입장에서 보면은 이 여자도 충격받았겠죠. 왜냐하면,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아는 모든 일대에 해당되는 사람은 다 죽었어 첫째, 보세요. 

시집을 왔는데 시아버지가 죽네 전쟁터에서 아바가 얼쩡거리다가 죽잖아. 여우사바 여우사바 죽고 그 다음에 자기 남편 여우람도 죽어요. 전쟁터 또 그 아들 아시아도 죽어요. 죽고 난 다음에 지금 스토리 아니에요. 또 자기 친정아버지 압도 뭐 대충 쏜 화살에 맞아 죽어요. 그의 어머니는 엘리사 예언대로 집어 던져 가지고 피 튀기고 개들이 먹어가지고 남는 유골도 없어요. 대가리 하나 남고 손발 남았다. 그러잖아요. 다 개가 뜯어먹었어 그러니 이 여자 제정신으로 살겠어 자기를 중심으로 다 죽었다니까요? 그죠 시아버지 남편 아들 그다음에 친정아버지 친정엄마 그것도 다 처참하게 혼자 남았을 때 불안하지 않을까요? 누가 나를 지켜줘 뭐 이런 거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그죠 아달라의 중심에는 다 죽었어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못해 나도 죽는 거 아니야.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내가 왕 되는 것 밖에 없어 고 1가지 생각에 몰두하면요 손잡고 보고 안 보이는 거예요. 내가 왕 될라면 저 죽여버려야지 저는 그랬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자도 이게 사실 불쌍한 여자예요. 그죠 그러니까 극심한 불안증이 있었을 거라고 지금 정신과 아마 치료를 받았으면 이 아달야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라고 절대 정상 아니에요. 그죠 정상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범하는 거죠. 충격을 받거나 어려움이 있으면요 사람은 자기가 평소에 하던 일 합니다. 그 아달랴의 남편이 여우람이라고 그랬잖아요. 여호사바사의 아들 여우람이에요. 근데 이 병행 구절이 역대 하에 나오는데 역대 한 21장에 보면요 4절에 그 아달랴의 남편 여우람이 완개되고 난 다음에 자기 형제들 다 죽여버려요 이거 북쪽에서는 가능한 일이거든요. 북쪽에선 가능한 일이지만 남쪽의 다윗 왕가에서는 누구를 죽이거나 뭐 이런 거 흔하지 않습니다. 여기 처음이에요. 

그냥 하나님께서 그 다윗의 계보를 쭉 이어갈 때 이렇게 쿠데타나 편법 이런 게 없어요. 그래서 일대가 쭉 이어온다고 북쪽은 9왕 19 왕조 19왕이거든요. 쿠데타가 9번 일어났다는 얘기 아니야. 그러니까 북쪽에는 항상 피해 역사였지만 남쪽에는 쭉 연결이 됐다고 그러니까 이렇게 형제들 죽이고 이러는 게 일상적이지 않았어요. 근데 여우라면 이렇게 형제들 싹 죽여버리는 거 누구 사주 받았겠어요. 아달야 사주 받았겠지 아달리아한테 배운 거 아니야. 그 아달랴는 자기 아버지하고 어머니한테 배운 게 뭐냐 하면 안 되면 죽여 버리자 이런 거예요. 뭐 안 되면 죽여 버리자 죽이면은 뭐 깨끗해져 이런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집으로 개 못 줘요 그러니까 죽여버리면 돼 이거 배워가지고 남편한테 다 죽여 버려 그래야 당신이 왕통이 강건해지지 그거 했다고 역대 하 21장 4절에 오면 다 죽여버렸어요. 형제들 그러고 난 다음에 자기도 위기 가운데 처하게 되니까. 손자들을 다 죽여버려 그럼 내가 왕 될 수 있지 똑같은 거잖아요. 

참 이게 무서운 거죠. 이런 겁니다. 사람은요,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면 평소 기본값에 반응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위기 상황이 되면 다르게 반응할 줄 알죠 그렇지 않아요. 평소 기본값 자기가 하던 행동들을 하게 돼 있어요. 그래서 평상시 시라는 게 되게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 지금 철학이던데 이렇게 별일 없을 때 기도하러 나오잖아요. 그럼 저런 위기 상황에도 기도할 가능성이 커 근데 지금 기도 안 하고 엎어져 주무시는 보시는 분들 보면은 위기가 되면 기도할 거라고 생각하죠. 위기 때 그냥 죽어요. 자다 죽어 걱정하다 죽어 아니 평상시에 기본값으로 간다니까 위기 상황은 기본 값으로 가요 자세히 살피지는 않았지만 금주간에 하박곡서 했잖아요. 하박곡서 2장 2절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뭐 믿음으로 살리라 의는 믿음으로 살리라 그 말씀하기 이전에 하박곡서 2장 2절에 내가 너한테 말씀 줄 테니까. 

기록해라 이렇게 나와요. 2절에 2장 2절에 보면 어 이 묵시를 기록하라 첫 번째 명령 판에 명백히 새기라 뭐 기록하라나 새기라나 똑같은 거죠. 근데 그렇게 새기는 이유가 뭐냐 이렇게 설명이 돼 있어요. 달려 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게 무슨 뜻이에요. 막 새겨 가지고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게 무슨 뜻이죠. 그러니까 삶의 어떤 순간이 온다 할지라도 말씀으로 돌아가는 삶의 매뉴얼로 만들어버리라 그런 얘기죠 뛰는 상황이 어떤 상황이에요. 그러니까 막 긴급한 상황이잖아요. 긴급한 상황에도 말씀이 기억나게 만들어라 그럼 뭐예요? 통째로, 외우던지 마음판에 새기던지 뭐 그 얘기죠 이게 지금 기록하라 새기라 명백히 새기라는 게 벽에다 새기라는 거겠어요. 마음판에 새기라는 거지 그러니까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이런 마음판에 새긴 건 달려가면서 읽을 수 있죠. 이게 나중에 뭐 예레미아라든지 에스겔로 가면 신비의 세계라 그러잖아요. 

마음판의 세계라 그러니까 이게 무슨 얘깁니까 하나님 말씀이 반사적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이 본능적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이 습관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예배가 본능이 돼야 되고요. 새백 기도가 습관이 돼야 되고 그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 옆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 즉각적인 반응이 돼야 된다.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평상시 훈련이 돼 있어야죠 군인들도 그런 거 아니에요. 군인들이 뭐 똑같은 훈련 맨날 반복하잖아. 그래야 전시 때 그 행동이 나오지 나는 실전에 강해 실전에 뭘 강해 실제로 다 죽어요. 연습 안 하면 그런 거라고요. 우리 신앙도 그런 거라고 그러니까 여러분들 위기상황 딱 오면요 딱 보여요. 그래서 요즘같이 코로나 시대 이런 거 또 아님 경제적인 위기 막 이런 게 오면은 딱 갈라져 평상시에 기도하고, 예배 드린 사람만 남어 나머지는 이럴 때 더 기도할 것 같이 보이죠. 아니에요. 염려해요. 걱정이 낙심해요. 좌절해요. 

그러다가 죽어요. 다 죽는 인생이라고 정신 차려야겠죠. 까달려보면서 깨달을 수 있는 게 뭐죠 사람은 항상 기본값에 반응한다는 거예요.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기본 값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기본 값이 그냥 사람 죽이는 거 그러면 위기 상황에도 죽여버릴 거예요. 똑같은 일 또 나와요. 인생은 반복이에요. 평상시에 뭐 문제 생기면 사람 찾아다니죠. 맨날 이렇게 술수하고 정치만 하고 이러면 위기 상황에도 여러분 분명히 정치하고 다닐 거라고 누구 만나 가지고 회유할라 그러고 근데 평상시에 기도하는 사람은요, 위기 때 기도합니다. 볼 것도 없어 제가 이번에도 또 깨달은 게 그거예요. 사람은 그죠 기본값에 반응한다는 거 그래서 미래를 읽을 수 있는 거예요. 뭐 예외가 없어요. 뭘 예외 한 1~2프로 있겠지 근데 거의 기본 값이에요. 다른 사람들은요, 여러분의 기본값을 잃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기본 값인지 하나님이 여러분 기본 값을 알고 있어요. 글로 돌아간다니까요? 

그러니까 깨어있으라는 게 뭐예요? 평상시에 정신 차리고 너의 기본 값을 바꿔 놓으라는 거예요. 우리 기본값이 무엇인지를 아달레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아달레는요 척할 때도 하나님 잘 믿는 척할 때에도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이름 뜻같이 살 때에도 그렇게 사는 척 할 때에도 여전히 바알이었거든요. 자기 성공을 위한다고 그러면 피도 눈물도 없이 다 죽여버릴 수 있는 거 아버지 어머니한테도 그걸 배우고 남편한테도 그렇게 쓰고 지금 위기 순간이 오니까 또 글로 가잖아요. 기본값이잖아요. 그리고 죽잖아요.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냐 기본값 바꾸는 거예요. 깨어있는 겁니다. 여러분의 기본값이 기도가 되고 여러분의 기도 값이 기본 값이 선교가 되는 은총 역사 읽기를 추구합니다. 요거는 메세지예요. 그래서 기본값은 반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반복이 능력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들 힘들 때도 결단하셔야 돼요. 이런 식으로 안 살겠습니다. 나는 기도로 살겠습니다. 

끼어살겠습니다. 목숨 걸고 예배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기본값으로 돌아가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달랴는 양다리 인생의 특징이에요. 양다리 신앙 회색신앙 그러니까 양다리 걸친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위기순간이 오면 기본값으로 돌아간다니까요? 바알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 앞에 잘 붙들여야 될 수 있는 믿음의 종 되길 바랍니다. 그 다음에 여호야단데 당시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어요. 근데 숨겨놓은 하나님의 사람 여호야다가 있었죠. 아니 세상에 아달야가 사람을 싹 죽여버릴 때 그의 딸이 그의 사위가 요하스 왕자를 숨겨둘지 누가 알았나 자기 편인데 이거 배다른 딸이라고 그랬는데 배다른 딸 아닌 것 같애요. 아달야의 딸인 거 같애 왜냐하면, 배다른 딸이었으면 옛날에 죽였지 이 여자는 막 죽이는 여자라니까요? 

자기 손자도 죽였는데 딸 딸이랑 안 죽였어. 남편이 제 세상인데 여우야단데 자기 친딸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 좀 친하게 지냈던 거 같애 그래서 살려준 거죠. 그러니까 측근인데 얘네들은 믿을 만해 그랬던 것 같죠 근데 거기서 하나님이 숨겨두지 않습니까? 6년 숨겨두고 7년째 7살 될 때 요하스를 왕이라고 선포하는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게 누구였느냐 사위였던 여호야다예요. 그러니까 여호야다가 아달리하고도 친했겠지요. 장모님하고 사위하고 친했던 거 같애 친했으니까 이렇게 잘해주죠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게 뭐냐 하면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면요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우리 보호자가 될 때도 있고 붙들어 주고 그래요. 아방 당시에도 아베 오른팔이었던 사람이 오바데아인데 오바디아가 선인자 숨겨둘 줄 누가 알았어. 하나님이 그런 바르게 굴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세워놓죠 어딘가에 오바디아가 숨어져 있고요. 

어딘가에 여우세바 같은 고모가 숨겨져 있고요. 그 애는 아빠 여우야다가 또 있다고 잘 도와준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르는 길을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내가 보이는 것만 길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여러분들이 저도 이렇게 여러분들이 다 버려도 그래서 내가 인제 버림받아서 죽는구나 그럴 때 어떤 베드로 스님이 날 도와줄 줄 알아요. 까 모를 일이라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거 어떻게 일할지 몰라요. 그죠 그러니까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 하나님의 길이 있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 출혈급할 때 그 북쪽 길로 해안길로 안 가고 남쪽으로 이끌잖아요. 코너잖아요. 막다른 길이잖아요. 하나님 홍의 길로 이끄실지 누가 알았어. 이스라엘 알았어요. 몰랐지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람이 또 있다라는 거예요. 여기서 와서 보면은 두 정당꾼이 나오는데 들켰잖아요. 근데 설마 기생 라하비 기생이 자기를 도와줄지 누가 알았나 하나님에게 숨겨둔 사람들 있다니까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이거 원칙이에요. 잠깐 사람으로써 못한다고 그러지 말고 그냥 일을 저지르세요. 야 일을 질러 버리세요. 질러버리면요 어떻게든지 사람이 와 저 제가 평생의 고백이에요. 일 질러버리잖아요. 그러면 아무도 없었는데 사람이 와 이상하게 사람이 붙어요. 그런 불신함도 있었어요. 저 사람 없으면 어떡하나 그랬더니, 그 사람 사라지니까 또 와 어디서 보내줘 생각지도 않은 데서 그 하나님께서는 그 피리스 브룩스의 말하고 똑같다구요. 일 구하라고 일에 맞는 능력 구하라고 능력에 맞는 일 구하지 말고 아까 능력 사람 이거 쳐다보지 말고 하나님의 사명이라 그러면 사명하라구요. 그러면 어디선가 보내주든지 생기던지 헌신을 하든지 하여튼 여우야다 여우 세마 이런 사람 막 나온다고 해요. 그러니까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6년 지나고 난 다음에 이제 여호야다가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 믿음직한 사람들 좀 믿을만한 사람에게 혁명하자 저 아달래 쫓아내버리자 이랬더니, 거기 동조하는 사람들이 나와요. 그래서 가리사람이라고 하죠. 가리사람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게 사실 용병이거든. 가리가 누구냐 하면 다윈왕이 앞사람에게 도망칠 때 그 용병들이 있었거든. 그렛 사람이라고 그렛사람 게 그렛 사람이 가리 사람이거든요. 이방인이에요. 이방인인데 그게 어디 나오죠. 일단 사절 한번 봅시다 사절 시작 7째 해 여호야다가 사람을 보내 가리사람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을 불러들이고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그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에게 여호와의 정전에서 맹세하게 한 후에 왕자를 그들에게 보이고 그니까 이 가리 사람이 그렛 사람인데 사무엘하 15장 18차 같은 데 보면 600명 정도가 앞살람에게 쫓기는 다윗을 따라갔어요. 

근데 다 자기 측근들이 아니고 이 방 용병들이 쫓아와요. 그죠 그래서 가드 사람 블레스 사람 중에 용병이 쫓아오고 특별히 그레스 사람 중에 대부분이 쫓아와요. 그러니까 다윗도 그때 아는 거죠. 내 피를 나눈 형제 자매가 내 측근인 줄 알았더니, 이건 뭐야? 용병들 뭐 이방인들이거든요. 이방인들 얘네들이 나를 보호해주네, 그러니까 하나님의 숨겨진 일꾼들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상상하고 위기 당해봐요. 진짜 도와주는 사람 달라요. 진짜 충성하는 사람은 다르다고 그래서 위기는 가끔 와야 돼요. 왜 와야 되느냐 하면 진짜와 가짜를 판가름 내거든. 진짜 충성하는 사람과 아부하는 사람 뭐 이게 누군지 금방 알아요. 믿음이 진짜인지 아닌지 근데 이 가리사람 그렛 사람이 동조하잖아요. 그래서 충성하니까 보여주죠 요하스를 보여주면서 왕삼차 니네들이 호위하라 이렇게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십장에도 누가 있었어요. 

예우와 함께 아압 일가를 죽이는 데 동참했던 레갑 사람 있잖아요. 레갑사람 그죠 예레미야 35장에 오면 내갑 자손들 인정해 주잖아요. 다 보면 하나님께서 혁명을 이룰 때 쓰시는 사람들이 누구예요? 충성스러운 사람들 사람의 능력도 아니에요. 지혜도 아니고 그걸 하나님의 능력도 있고 지혜도 하나님이 쓰셔요 충성하면 하나님이 사용하신다고 충성하면 같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인이라 충성하십시오. 그렛사람 가릿사람 또 레갑 사람 이 충성하는 사람 하나 있으시는 거예요. 충성 안 하고 배신을 밥 먹듯이 하고 이러면은 안 쓰시겠죠. 그래서 두 번째 여호야단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게 뭐냐면 하나님의 준비된 사람이 있다. 그래서 여러분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더 있어요. 더 있다구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놈의 아무 증거 안 이뻐해도 믿음만 가지고 나가라 그러잖아요. 찬송하잖아요. 더 있어요. 더 훨씬 더 많이 있어요. 

그걸 믿고 의지한 하나님이 종되기를 바랍니다. 근데 이걸 좀 확장시키면 세 번째 백성이 나오는데 10장하고 11장하고의 차이점이 뭐냐 하면 예우도 개혁을 하는 거죠. 아 가문 죽이고 예우가 왕가를 이끌잖아요. 그래서 하나님 백성들 일으키는 붕오를 일으키는 것 같은데, 실패하죠. 왜 아 왕가를 무너뜨리고 난 다음에 예우가 지 지 멋대로예요. 지 멋대로 한계죠 다시 여로보함의 길로 돌아가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의 길 자기 우상숭배하고 자기 뜻대로 하는 길을 따라가고 그 예후의 형 개혁은 실패했죠. 근데 11장에 나오는 여호야다의 개혁은 성공했죠. 성공했던 이유가 뭐냐 다 시작은 리더들이 한 거예요. 예우도 리더고 여호야다는 리더의 혁명이잖아요. 위로부터 혁명이에요. 그런데 여호야다의 혁명의 특징이 뭐냐 백성들이 동참했다라는 거예요. 백성들에게부터 이렇게 퍼졌다라는 거예요. 

이거 혹시 모르니까 히브리어를 하나 알아뒀으면 좋겠는데 암 하레츠 암이라는 게 백성이고 하레츠가 땅이란 뜻이거든요. 그래서 이게 히브리에서 되게 많이 나와 암하레츠 땅의 백성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비천한 백성들 뭐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뭐 옛날에 민중 신하가 이거 하는 사람들이 이 말 되게 좋아해서 암하레치 그래 가지고 뭐 그 사람들은 민초 민중이라고 번져갔어요. 이걸 민중이라고 네, 그렇게 버전하는 건 좀 엉터리고 이 암하뢰치라는 게 백성의 나진 계층인데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일들 그때 진정한 것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걸 뭐라고 생각하느냐면 생태계예요. 

위에 꼭대기에서 몇 명 하는 것은 생태계 전체가 살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지만, 남쪽 유다에서는 여호야다 제사장 그리고 이방인들 그 다음에 장군들 백두장들 그게 어디까지 퍼져버렸냐 하면은 남쪽에 있는 유다에 있는 온 백성들 이 백성의 백성 백성들에게 다 퍼졌어요. 생태계가 다 살아났어요. 그래서 성공한 거예요.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몇몇 사람들 뭐 북치고 장구치고 불 받았다. 펄펄 뛰고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어린아이부터 시작해서 노인의 길까지 교육자부터 시작해서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다 살아나는 거예요. 그게 백성이야 암 하레츠 그죠 이 백성들 전체가 다 저변이 확대가 되는 거예요. 이게 뭐예요?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부활 이후에 계시면서 성제 그랬잖아요. 성령 받아라 제자 삼으라 제자 삼는 거죠. 이게 제자 삼는 것 아니에요. 

백성들이 다 일어설어 그러니까 이게 진정한 개혁이고 이게 진정한 부흥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홀로만 서는 거 아니에요. 땅끝까지 그리고 멀리 있는 모든 사람까지 다 모든 백성이라는 뜻 아니에요. 그때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뒷부분에 보면요 백성들이 동참했다라는 것이 굉장히 많이 강조가 돼 있어요. 12절에 보면 물이라고 되어있는데, 원문은 백성의 아마레치예요. 그죠 백성이 박수쳤다 아무하리치가 박수쳤다 백성이 박수쳤다 13절에는 백성들이 막 소리를 질렀다 백성의 소리 그 다음에 14절을 보니까 백성이 즐거워 했다. 지도자로 시작했지만, 백성 전체로 퍼지고 동참하게 됐다는 거예요. 이게 예우 혁명하고 여우야다 혁명의 차이점이에요. 

전체 전체 전체가 다 살아났다 우리 그래도 살라고 그러면요 죽어도 학생들 예배 참여해야 되고 유초등부 아이들 유치부 아이들까지 다 모여서 다 같이 은혜받고 다 같이 변화가 될 때 생태계가 전체가 살 때예요. 넘어진 사람이 살고 세례받는 사람이 생겨나게 되고 그다음에 탕자가 돌아오고 믿은 사람이 충성하고 헌신하고 순교하고 막 이런 일이 벌어질 때 전체가 다 살아 생태계가 살아나는 거예요. 남쪽 유다의 생태계가 살아난 거예요. 이게 부흥이고 이게 진정한 개혁이라는 것입니다. 이 백성들이 살아났다 2절부터 14절까지 그 개념으로 한번 읽어봅시다 시작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왕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매 무리가 백성이에요.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아달랴가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여호의 성전에 들어가 백성에게 이르러 봄에 왕이 귀례 들어 단위에 섞어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셔 섰으며 온 백성이 즐거워하며 나팔을 부른지라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려다 반역이려다 하매 그래서 여러분들 백성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항상 악한 지도자들은요, 백성을 우습게 여겨가지고 맨날 뭐 선심 쓰고 속임수하고 뭐죠 이렇게 사탕과자 하나 당근 주면 움직이는 줄 알고 그 망할 놈이에요. 그런 놈들은 그런 지도자는 망할 놈들이라고 백성 알기를 우습게 여기는 거죠. 당근 주면 따라가고 그게 예우였어요. 예우 망하잖아요. 근데 아니죠.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에요. 하나님 말씀과 언약의 백성들이라고 백성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되죠. 백성들을 동역자로 여기고 같이 동참하는 거야. 선동의 대상이 아니에요. 동역자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 백성이죠.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이 언약백성이라고 그러거든요. 

이게 부흥이죠.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무슨 목회자들이 교인들 눈기 다 막게 막아놓고 한 다음에 맹신자들 만들어 가지고 그 이단이 그렇게 하잖아요. 질질 끌려다니게 만들고 죄의식과 죄책감 자극해 가지고 끌고 다니는 거 그거 백성 아니에요. 백성은요, 하나님의 은혜받은 성령의 사람들이 돼야 된다고 그리고 자기소개서 나오는 자발적인 헌신들 교육자도 마찬가지죠 교육자들이 뭐 부교육자들이 종업원이에요. 그거 아니잖아.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국가 같으면 헌법기관하고 똑같은 걸 하는 게 개별적으로 브루침 입은 거 아니에요. 누가 보든 안보든 충성을 다 해야지 그래야 진짜 종들이지 아니면 싹꾼이지 보면 하고 안보면 안 하고 그게 뭐야? 그게 부흥이 이런 거예요. 아무하레츠 다 백성이 되는 거야. 하나님 앞에서 이 아마레츠는 지도자들 포함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다 백성이야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라고 할 때 이 아무하레츠는 다 포함된 거예요. 여기 인간 지도자까지 다 포함되는 거예요. 우리의 유일한 왕이 누구예요? 하나님이라고 예수 우리 왕이에요. 예수님의 왕이에요. 

왕도 아무하레츠예요. 왕도 하나님 앞에서는 백성이에요. 다만 하나님께 위임받아 가지고 백성을 이끄는 그런 역할을 하는 거죠. 보더콜리같이 양몰이 개같이 그렇게 역할을 하는 거지 인간은 왕이 아니에요. 왕의 역할을 할 뿐이지 하나님이 대헌자로서 그게 왕이라고 해요. 이스라엘이었어요. 얘기를 쭉 하고 있다. 라는 것이 그랬더니, 헌신을 맺어요.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과 헌신이요. 헌신 중에 최고의 헌신이 뭡니까? 예배헌신이에요. 하나님 백성인지 아닌지 뭐로 알 수 있어요. 예배 시간이 됐어요. 그랬더니, 하나님 백성은 예배하러 오고 하나님 백성 아닌 녀석들은 예배 안 드려요 하나님 백성과 백성 아닌 거 안미와 로안미 로가 이제 낫이라는 뜻이니까. 안미 하나님 백성 로안미 안미는 나의 마이피플이에요. 나의 백성 안미 나의 백성 로안민 내 백성이 아니다. 판가름 예배예요. 그래서 언양백성이 딴 거 아니에요. 

예배 목숨 겁니다. 그러면 백성이고 안미 나의 백성이고 예배 우습게 여긴다 그래서 이런 코로나 사태에도 우리가 그렇게 논쟁 벌이면서 예배 예배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이게 언약의 중심이기 때문에 그래요. 언양백성은 예배드려요 언양백성 아닌 자들은 예배 안 드려요 그래서 망해요. 지옥 가요 그 차이라고 예배가 그런 의미에요. 예배가 이게 언약의 핵심이거든. 언약 보세요. 첫 번째 언약 물론 뭐 그 원시 복음 그런 거 빼놓고 창세기 15장에 오면 아브라함이 조카로 씨따랑구라는 상실감이 있었어요. 하나님 나와 임마 그러고 하늘의 별을 봐라 그리고 별과 같이 니 자손 만들겠다. 믿으니까 그걸 의로해야겠다. 15.6절 나오죠. 근데 하나님께서 뭐 짐승 쪼개고 난 다음에 지나가고 왔다 갔다 하나님 언양 맺지요 내가 하나님이고 너네 백성이야 그거예요. 무슨 얘기야 아브라함이 내 백성이야 무슨 뜻이에요. 죽어라 예배드렸다는 거예요. 죽어라 그게 아브라함이에요. 

28장에 넘어갑시다 야곱이 나와요. 배들에서 하나님 만났어요. 그때 뭐 오르락내리락 천사가 오르락 내리면서 환상을 봤어요. 그때 돌에다가 기름 묻고 이거 하나님 전 대기하겠습니다. 근데 하나님 약속이 뭐예요? 내가 하나님이 너 내 백성이야 그때 야곱의 서원이 뭐예요? 죽어라 예배드리겠어요. 그게 야곱이에요. 딴 언약이 딴 건지 알아요. 죽어라 예배드리겠어요. 쭉 넘어가 봅시다 출욕기 19장 19장에 가면은 19장 내용이 뭐예요? 시내선 언약 아니에요. 신에서는 언작의 내용이 뭐예요? 5절 6절 넌 내 소유고 내 재사상 백성이고 나는 하나님이고 넌 내 백성들이자 그거 아니에요. 되돌려서 이장 구절이 똑같이 카피했잖아. 그죠 그게 신에서는 언약이에요. 출연기 19장 5절 6절이 신에서는 언약 내용이 뭐예요? 난 하나님이고 넌 내 백성이 되리라 백성이 뭐예요? 죽어라 예배드리는 거예요. 딴 거 있어요. 사무엘화 7장에 오면요 다윈 언약이 나와요. 

하나님 성전 짓겠다. 그랬더니, 니가 무슨 놈의 성전이냐 인마 내가 너한테 먼저 건물 달라고 그랬어. 근데 하여튼 뜻은 가상화다 그러고 다윗과 언약을 맺잖아요. 내가 하나님이고 너희 내 백성이야 영원히 이 등불이 여기서 꺼지지 않아 그 언약이 뭐예요? 다윗의 핵심이 뭐예요? 죽어라 예배드린다 그게 다윗의 장막이 뭐예요? 예배드리면, 장막이지 딴 장막이에요. 다윗 끌으면 예배지 예배 말고 다윗 뭐가 있어요. 뭐가 이 아시겠어요. 언약백상이 뭔지 언약 백상은 딴 거 아니에요. 뭐 헌금 드린다 뭐 봉사한다. 뭐 딴 거 아니고 그냥 한마디로 예배예요. 예배드리는 게 언약백상이라고 그 예배 안 드리면서 무슨 언약이야 언약은 예배 안 드리면, 안 믿는 거예요. 예배 안 드린 게 뭘 믿는 거야. 그게 본질을 알아야지 그 흐름 속에서 우리가 온 거라고요. 하나님 앞에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위안부 사장해서 아버지께선 지금도 사람 찾고 있는데, 누굴 찾아요.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왜 예배하는 자가 내 백성이니까. 그거 모르시겠어요. 영과 진리로 예배할 데가 곧 있더라 아버지께서는 예배한 자를 찾는다고 그게 언약 백신을 찾는다는 뜻이에요. 예순인가의 언약 예수 십자가 언약이죠. 그게 십자가 언약이 뭐예요? 예배드리는 거죠. 성령 임하고 난 다음에 백성들 했던 일이 뭐예요? 죽어라 예배드렸잖아. 초대결과 예배해준 거 딴 거예요. 이거라고요. 이거 그래서 백성 전체가 예배드리는 거예요. 뭐 혼자 뛰고 그래서 기독교는 스타플레이어 나오는 게 아니에요. 스타플레이어 어디서 인간은 다 죽고 NYBC 낫 아이버 그라이스트 우린 다 아마르치예요. 왕도 아마르치고 리더도 아마르시고 다 똑같은 백성들이에요. 하나님이 왕이시고 우린 백성이라고 내가 주인 사람 모든 걸 다 내려놔야 돼요.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 이게 부흥입니다. 그래서 10장에 예우개혁의 특징이 뭐예요? 거기도 산당 박살내고 이런 거 다 해요. 자기들도 근데 거기서 끝나잖아. 

예우에서 끝나 확산이 안 돼 백성으로 내려가질 않아 뭐 무당푸닥거리지 뭐 아무것도 아니지 그런데 여우야자 때는 백성으로 저변이 확대가 되고 확산이 돼요. 다 일어납니다. 생태계 전체가 다 살아나요? 그러니까 여러분 부흥이 뭔지 아시겠죠. 나만 사는 거 아니에요. 생태계를 볼 줄 알아야 되고 생태계 전체가 다 살아나는 거예요. 그게 유대 공동체야 이스라엘 공동체라고 그럼 다 살아나게 된다는 거예요. 산단 얘기 한번 읽어보니까 17 18절 읽겠습니다. 언약 맺는 거 시작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의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함에 그렇죠. 언약이죠. 

예배 예배 그리고 19절 20절 이제 전체가 다 기뻐한다는 얘기를 한번 해봅시다 시작 또 백부장들과 가리사랑과 호위병과 온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의 정전에서 내려와 호위병의 문 길을 통하여 왕국의 이름에 그가 왕의 왕좌에 앉으니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도록 거기까지만 입시다 그러니까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백성이 평안하고 그러니까 백성 전체로 확대가 되었다. 그래서 이 원물을 보면 다 아마리츠 얘기예요. 백성 전체의 확산 우리도 그런 일들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뭐예요? 참된 부흥이라고 해서 생태계를 살리는 거라고 여러분 그래서 기도할 때에도 마귀는 이렇게 단절시키길 바래요. 여러분들 혼자 그저 혼자 잘 살기로 여러분 사슴이라고 하면 혼자 펄펄 뛰고 엘크라는 사슴이라 그러면 나 혼자 뿌리채 다 뽑아먹을 거야. 그래서 혼자 부자되고 혼자 복 받고 그러면요 황폐화돼버려요 여러분들 이제 곧 먹을 게 없어져 다 쓰러지게 되고 기도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그랬잖아. 

기도 내가 기도회를 가야 되는 이유가 뭐예요? 내가 가야 기도회가 살거든. 내가 가야 그 사람들 기도할 수 있고 내가 예배 가야 전체가 살거든. 생태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거예요. 섬기는 거예요. 그러면 그 생태계의 유익을 내가 누리는 거야. 그것 때문에 내가 사는 거예요.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홀로 뛰는 거 아니에요. 성경께서 항상 이걸 성경에선 유기체라고 그러죠 몸으로 한몸같이 있게 만드시고 몸 그러니까 너무 개인에게 묶이는 것 같아요. 저는 21세기 용어로는 유기체라는 말보다는 생태계란 말이 더 좋은 거 같애요. 우리 주변이 다 영적 생태계 안에 다 있는 거라고 같이 살아야 됩니다. 책임져야 됩니다. 유다가 자기 온 가족들을 다 살리는데 생태계 살리는 데 힘을 썼던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생태계 사는 데 힘을 쓸 때 여호야다의 개혁이 성공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개혁도 승리하고 성공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입니다. 말씀 정리하면 이거예요. 나달랴 이거 미친 거 아냐 미쳤죠 왜 미쳤어요. 이거 위기 상황 오니까 기본값에 충실해요. 

그러니까 다 죽이는 걸 하는 바알숭배자 결국은 이런 걸 속된 말로 하면 꼴값도 하는 거예요. 꼴값으로 가네 꼴값 하는 거예요. 꼴값 꼴값이 기본 값이에요. 꼴값 하나야 그러잖아. 꼴값 해요. 여러분들 꼴값 합니다. 평소에 기도하면 기도의 꼴값을 할 거고, 예배 들으면 예배의 꼴값을 할 거고, 그러니까 기본 값을 충실히 바꿀 줄 알아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변신하십시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에요. 고리도서 사장 7절인가요? 우리는 보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행한다잖아요. 위 리 바이 페이스 낫 바이사이트 위 리브 바이 페이스 믿음으로 살아요. 위 리브 바이 페이스 믿음으로 산다고 반대말이 뭐예요? 나빠이 사이트 보이는 것 아닌 거예요. 우리 보이는 것이 다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여우 야다도 있구요. 가리 사람들도 있구요. 그죠 많은 백성들이 있습니다. 일하십시오. 일 질러 버리십시오. 

하나님이 사람 보내줍니다. 그리고 부흥이라는 것은 생태계 전체가 사는 백성 전체가 다 일어나는 거라는 거예요. 우리 교회도 이런 생태계가 살아나는 은혜 역사 있기를 추구합니다. 자리 제작하겠습니다. 일상 찾아가겠습니다. 생태계는 교회를 넘어서도 가정 가정을 넘어서서 우리 직장 일터까지 다 확산되는 겁니다. 일상에 사람의 능력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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