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1기 하 말씀을 볼 텐데 에 11장 말씀을 같이 다 읽겠습니다. 11장 1절에서 21절까지 말씀 오늘 11장 전체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아시아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 요람왕의 딸 아시아의 누이 요호세바가 아시아의 아들 요하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게 한지라 요하스가 그와 함께 여호와의 성전에 6년을 숨어있는 동안에 아달야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일곱째 해에 여호야다가 사람을 보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에게 여호와의 성전에서 맹세하게 한 왕좌를 그들에게 보이고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가 행할 것이 이러하니 안식일에 들어온 너희 중 3분의 1은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3분의 1은 수련문에 있고 3분의1은 호위대 뒤에 있는 문에 있어서 이와 같이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길에 나가는 너희 중 2대는 여호와의 성전을 주위하여 자기 왕을 호위하되 너희들 각각 손에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너희 대를 침범하는 모든 자는 죽이고 왕이 출입할 때 시위할지니라 하니 백부장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여 각기 관할하는 바 안식일에 들어오는 자와 안식일에 나가는 자를 거느리고 제사장 여호야드에게 나아옴해 제사장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니 호위병이 각각 손에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되 성전 오른쪽에서부터 왼쪽까지 재단과 성전 곁에 서고 요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왕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엄해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아달랴가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백성에게 이르러 봄에 왕이 규례대로 단위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셔섰으며 온 백성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부는지라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함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령하에 이르되 그를 대열 밖으로 몰아내라 그를 따르는 자는 모두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성전에서는 그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이에 그의 칼을 귀를 열어줌에 그가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로 가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더라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함에 온 백성이 바레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허물고 그 재단들과 우상들을 철저히 깨뜨리고 그 재단 앞에서 바하례 제사상 맏단을 죽이니라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을 수직하게 하고 또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과 오원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려와 호위병의 문길을 통하여 왕궁의 이름에 그가 왕의 왕좌의 안전이 오원 백성이 즐거워하고 오언성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국에서 칼로 죽였더라 요하스가 왕이 될 때 나이가 7세였더라 하면 북 이스라엘의 예후가 주도하는 쿠데타가 비교적 그렇게 신속하게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예우왕조가 시작되는 것이죠. 남유단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후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북이스라엘의 왕을 살해하는 동안에 그 왕을 문병하러 왔던 남유다의 왕도 같이 죽게 됩니다. 그래서 남북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 왕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그런 정변이 일어난 것이죠. 그리고 나서 예후는 아합 집안의 정말 왕족들이라고 불려왔던 스스로 왕손으로 자처해 왔던 모든 사람들을 숙청하는 대숙청 작업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끝내 그 땅에서 발 신당을 세우고 발신을 숭배했던 모든 제사장들을 한꺼번에 도륙하는 그런 대학살이 일어나게 되죠.
그래서 어쨌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회복한다는 그 명분에 따라서 북이스라엘은 그런 정변이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을 때 남 유단은 어떻게 되었냐를 오늘 이제 11장부터 11개 하는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계속해서 몇 장 동안 남북의 모습이 비교적 함께 기록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북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던 일 특별히 앨리사 선지자의 삶과 그리고 아합 집안에 관한 얘기들이 주로 기록이 됐지만 이제 남유다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11개 해서 보게 되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읽은 이 11장 말씀은 남 유다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는 아달야의 얘기입니다. 남북 이스라엘 왕조 사이에서 유일하게 한 여왕이 있는데, 바로 이 아달랴가 스스로 여왕이 된 것입니다.
이 아달랴는 우리가 아는 대로 아합 왕과 2세벨 왕비 사이에 태어난 아합의 딸입니다. 근데 남유다의 여호사밭 왕이 북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우호관계로 어쩌면 인척관계로 몰아가기 위해서 악한 아합 집안의 딸을 데려온 것이죠. 그래서 여호사밭 왕 때 며느리로 들어온 아합과 이스벨의 딸 아달랴가 이 정변 과정에서 북쪽에서는 아압 집안의 씨가 말라가는 동안 어떻게 보면 아압지반이 철저히 멸절되는 동안 본인은 다윗 왕과의 집안을 멸절시키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 다윗 왕가로 시집을 온 아달랴는 여호람왕 때 결혼한 것이죠.
여호사밭 왕이 아들 여호람을 이제 아달랴에게 배필로 맞아주었기 때문에 그리고는 이 여호람 왕과 그리고 아달레 사이에 난 아하시아 왕이 북쪽의 문병을 갖다가 죽는 참변을 겪고 나자 아들이 죽었는데 그 다음에 한 일이 뭐냐 하니까 본인이 직접 손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죽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 왕가의 왕손들을 전부 멸절시키고 본인이 왕이 되어서 직접 남유다를 다스리는 그런 일을 겨냥하게 됩니다. 대단한 여정의 여인이죠. 자기가 왕이 되기 위해서 아들 왕이 죽자 아들 왕위를 이어야 할 손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본인이 직접 여왕이 된 것이죠.
어머니 이세벨 못지않은 뿐만 아니라 어쩌면 어머니 이세벨 왕후보다도 더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여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걸 이제 다윗 왕과의 어떤 하나님의 은혜 측면에서 보면 아달랴는 그야말로 다윗의 씨를 말리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래서 딱 1가 살아남았어요. 오늘 그 살아남은 요하스가 정말 여호야다 제사장의 도움으로 다시 왕위에 오르게 됨으로써 다윗 왕과가 멸절되지 않고 그 씨앗이 이렇게 다시 남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어간다 그 얘기가 오늘 얘기예요. 골자예요.
그래서 이 아달야라는 여인과 그리고 그 아달야의 끔찍한 학정 6년의 기간 동안 왕손 요하스를 그렇게 잘 숨겨서 잘 지켜서 다시 왕위에 복권 시킴으로써 다윗왕가를 이어갔다는 요호야다 얘기를 통해서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일을 감당하며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그런 부분을 한번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어떻게 보면은 이 여호야다라고 하는 제사장 얘기와 아달랴라고 하는 이새별의 딸 얘기예요. 그래서 이 11장에 나오는 오늘 끔찍한 한 여인과 그 여인의 학정을 견뎌낸 한 제사장의 얘기가 주된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한번 먼저 11장 1절 2절 한번 3절까지 한 번 더 읽겠습니다. 시작 아시아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 요람왕의 딸 아시아의 누이 요호세바가 아시아의 아들 요하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 빼내에서 그와 그의 유물을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게 한지라 여하스가 그와 함께 여호의 성전에 6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그래서 요람왕이라고 돼 있는 사람은 여호람 왕의 약자죠 남유다의 이 여호람 왕의 아하시아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던 반면에 또 왜 배다른 어떤 그런 누이가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아하시아는 여호람 왕과 그리고 아달리아 사이에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왕손 요하스를 지켜내는 사람은 아달야의 딸은 아닐 거예요.
그래서 어쩌면 배다른 누이동생 여호세바라고 하는 이 누이를 통해서 그 요하스가 지켜지는 것이죠. 그래서 요하스가 갓 태어난 요하스를 이렇게 왕자들이 왕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 빼내서 그와 그의 유머를 침실에 숨겼고 그리고는 이 요하스를 남편 제사장이었던 여호자다의 손에 맡겨서 여호야다가 성전에 데리고 들어가서 성전에 제사장들이 머무르는 방 1칸에 그 아이를 숨겨놓고 유모와 숨겨놓고 6년 동안을 지켜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그 요호세바라고 하는 고모 그리고 여호야다라고 하는 고모부가 지켜낸 요하스가 6년 동안 그 손에서 숨겨진 채 목숨을 건졌고 그리고 끝내 다윗 왕관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등불이 꺼지지 아니하고 그 등불이 계속해서 이어간다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왔을 때 헤롯 아그리파에 의해서 모두 멸절되는 2살 이하의 아이들을 다 죽이는 모습을 보게 되죠. 어쩌면 모세가 태어날 때 하나님의 사람이 태어날 때 그런 엄청난핍박을 보게 됩니다. 그때 모든 아이들이 다 나일 강가에 던져지는 엄청난 참변을 겪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아이들을 왜 죽입니까? 근데 어쨌건 그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모세 때도 있었고, 그리고 이때도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어쩌면 저는 이 시대에 동성애가 이렇게 합법화되는 것을 보면서 혹시 그런 이런 저의는 없는가 우리가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왜 남녀가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 되는 이 시대에 동성끼리 결혼을 해서 애를 낳지 않느냐는 것이죠.
애를 낳지 않게 하는 의도는 무슨 의도가 없는가 미국 대법원이 동성애를 합법화했습니다. 이제 전 51개 주에서 미국에서 다 동성애를 합법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렸어요. 그리고 정말 청교도 국가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퓨리탄들이 유럽 대륙을 떠나서 그 땅에 신대륙이라고 갔던 이유는 오직 하나예요. 종교적 자유를 위해서 갔고 그 땅의 하느님을 믿는 신앙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 건너간 그 백성들이 지금 저 지경에 이런 것입니다. 미국은 정말 자기들은 아직까지 망할 기미가 없다고 굳게 믿겠지만, 그러나 저런 일들을 통해서 저는 미국은 이미 피크를 지났을 뿐만 아니라 9.11 테러의 진정한 의미도 잊어버린 채 어떻게 보면 영적인 쇠락의 길을 먼저 걷고 있는 것이죠. 이 땅은 다를까요?
얼마나 빠른 속도로 거기에 동조하겠습니까? 어떻게 서울시장이 그런 얘기를 할 수가 있어요. 아시아에서 가장 동성애를 먼저 합법화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어요. 이해가 되십니까 이해가 잘 안되죠. 어떻게 아달랴가 자기 왕손을 죽입니까? 자기 아들의 아들들을 왜 죽입니까? 본인이 왕이 되기 위해서 그래 보면은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되고 그때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호야다라는 사람이 정말 대단한 사람 같아요. 그리고 어쩌면 여호야다의 장인 되는 여호람 왕은 어쩌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여호야다라는 사위를 볼 때 뭐 그렇게 썩 만족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그리고 그 요호세바를 제사장에게 결혼하는 게 꼭 뭐 흡족하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여호야다가 집안에 들어옴으로써 왕손을 지켜내는 일을 감당하는 그런 소명 그런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호야드라는 이름이 재미있어요. 하나님이 여호와가 아신다는 이름입니다. 여호야드란 하나님이 아신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이 그를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또한 그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알아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크리찬이란 여호야다와 같은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아는 사람이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크리찬이란 예수임을 아는 사람 또한 우리 또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이 우리를 안다면 여러분 그것보다 더 바람직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게 우리 신앙의 목적 아닙니까 여러분 예수님 우리를 알아주고 우리가 예수님 아는 게 신앙의 전부예요. 여러분 사람 많이 알기 위해서 시간 너무 많이 보내지 마십시오. 저는 제가 아는 분들 뭐 너무 많은 사람들을 이렇게 알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데 여러분 사람 그렇게 많이 알아봐요. 나중에 며칠 남지도 않아요. 여러분 60이 많은데 시간 좀 많이 보내십시오. 우리는 뭐 사람 많이 알지만은 예수님은 도통 모르다가 심지어는 쥐여주어 불렀는데 예수님께서 도대체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직 우리 신앙의 목표는 예수님이 나를 아는 사람 되기를 원하고 내가 예수님 아는 사람 되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적이고 전부예요. 제가 옛날에 대통령 이렇게 취재 때문에 새 정권의 청와대를 출입을 했는데 청와대 출입해 보면 가관이에요. 대통령을 잘 안다는 게 이게 가장 큰 힘이고 자랑이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대통령 친서를 받으면 그 봉투를 맨날 가지고 다녀요 그리고는 계속 뭐 수첩을 꺼낼 때 그 봉투까지 같이 꺼내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죠. 내가 대통령을 안다 이거예요. 대통령 가깝다는 겁니다. 여러분 대통령 알아도 그렇게 자랑스럽고 그렇게 그게 남한테 얘깃거리가 됐으면 하는데 우리는 여러분 어떻습니까? 성경은 뭐예요? 이거 하나님의 친서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한테 보내주신 편지 아니에요. 이건 매일 좀 가지고 다니면 어떻습니까? 이것 꺼내서 보는 건 챙피하게 여기고 대통령 친서나 편지 그건 꺼내는 게 자랑스럽고 그게 우리 세상 사는 모습이에요. 여러분 조금 높은 사람 안 하면 그 아는 것 얘기하는 게 그게 자랑거리고 하나님이 아는 거는 어디 가서 말도 못 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정말 여러분 미국이라는 나라가 뭐 갓 블레스유 인제 이런 얘기도 못 해요. 메리 크리스마스 이런 얘기 못합니다.
하버드 총장이 그랬다가 사과 편지 썼어요. 저는 교직원들한테 해피 HALAZY라고 해야지 메리 크리스마스도 못하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그런 시대예요. 목전에 와 있고 우리가 지금 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되겠어 아달라처럼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고자 하는 시대 심지어 자기 자손이지만은 그 아달랴가 사탄의 수중에 붙들렸을 때 본인이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릴 때 다윗 왕손을 모조리 죽이고자 하는 그런 악한 의도를 드러내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때 여호야다와 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반드시 준비한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요호야다가 하나님께서 준비한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대에 크리스찬들은 여호야다와 같은 그런 마음의 각오를 가져야 되는 것이죠.
모든 사람을 죽이고 하는 학살극이 벌어날 때 누군가 하나님의 사람을 지키겠다고 하는 그 소명을 본인의 소명으로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나를 알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산다는 것이죠. 이 요고야다의 삶을 통해서 결국은 요하스가 지켜지게 되고 요하스를 다시 왕위로 복권시키는 그야말로 또 다른 쿠데타가 일어나게 됩니다. 아달랴는 그 쿠데타 현장에서 뭐라고 외치는지 아시죠. 오늘 말씀을 보면 반역이다. 반역이다 라고 외칩니다. 반역은 누가 저질렀어요. 본인이 저지른 것이죠. 다윗 왕가의 왕손들을 다 죽이는 반역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본인의 자리가 쫓겨날 때 반역이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인 또한 어머니 이세별처럼 죽음을 맞게 되지만은 그리고 요하스가 왕위에 복권되지만은 오늘 여호야단은 우리가 몇 가지 살펴봐야 할 게 있어요. 7살 된 왕을 왕위로 세울 필요가 뭐 있습니까?
그것도 예호처럼 직접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인데 왜 왕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 그런 왕위의 욕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왕이 될 수 있는 기회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은 그 스스로 왕이 되기를 욕심내지 않았어요. 그런 왕이 될 만한 힘을 가졌지만 그러나 다윗왕과를 복권시키는 데 관심이 있었지 본인이 그 힘을 행사해서 왕이 되는데 욕심을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삶이에요. 내가 힘이 있지만 내가 할 수 있지만 될 수 있지만 그러나 욕심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오늘 어린 요하수를 어떻게 보면 이 여호람과 아시아를 이어가는 그 왕위를 계승시키는 작업을 본인이 친히 주도하게 됩니다. 주도 면밀하게 계획을 했습니다.
거기 특별히 이 가리 사람이라고 하는 용병들을 그가 직접 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쿠데타는 핵심 유대 사람들하고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누구와 이 거사를 해야 할지를 그동안 주도면밀하게 살피었던 탓이겠죠. 가리 사람이란 그레스 사람들입니다. 블레셋 족속들이에요. 용병들입니다. 그러나 그 용병들이지만은 다윗 왕에게 그야말로 충성을 다했고 솔로몬 왕에게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이 그레스 사람들 가리 사람들을 백부장을 쿠데타의 파트너로 삼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오히려 제사장들을 그 밑에 지시를 받도록 하게 됩니다. 차근차근 쿠데타를 준비하고 그리고 단숨에 일거에 아달랴를 그야말로 제거하는 모습을 보게 되죠. 어쨌건 우리는 이 여호야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무엇을 하며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11장에 우리가 오늘 마지막 한번 19절 말씀은 19절 20절 말씀 한번 같이 보겠습니다. 시작 또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과 온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려와 호위병의 문길을 통하여 왕궁의 이름에 그가 왕의 왕좌의 안전이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더라 아달야를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더라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해졌더라는 것이 이 여호야다의 섬김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결국 아달랴라고 하는 학정의 시대를 끝내고 발 신앙을 가져왔던 이 아달랴의 발 신전의 신상들을 다 끌어 내리고 그리고 성중에 다시 회복된 것은 백성들의 기쁨과 평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순서를 여러분들이 자세히 한번 더 읽어보시면 알겠지만은 먼저 오늘 여호야다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을 제일 먼저 합니다. 예호가 북이스라엘 땅에서 쿠데타를 이루어서 그 쿠데타가 진행되는 과정과 여호야다의 쿠데타가 진행되는 과정을 잘 비교하고 살필 필요가 있어요. 예후는 왕족들을 먼저 죽이고 왕들을 먼저 죽이고 그다음에 왕족들을 멸하고 그리고 이제 측근들을 전부 제거하고 그리고 발 선지자들을 모두 죽였지만 오늘 여호야단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유다의 백성들과 유다의 왕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는 것을 제일 먼저 하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고 먼저 하나님과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을 제일 먼저 하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확인한 이후에 왕과 백성들의 언약을 다시 재계약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리하여 왕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들을 다스리는 책무 그 책임을 다하도록 언약하게 하고 백성들은 그런 왕을 순종하는 그런 언약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죠. 그리고 나서 온 백성들이 함께 발의 밑단 선지자를 죽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여호야다의 이 거사로 인해서 그의 섬김으로 인해서 이 땅에 비로소 기쁨과 평안이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 요호야다의 삶은 어떤 삶일까요? 지극히 조심스러운 삶이었습니다.
지극히 위태로운 시대를 살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고 또한 하나님이 여호야다를 알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그 시대를 견뎌냈던 사람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걸을 수 없도록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여론으로 몰아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호야다처럼 숨을 죽이고 지혜롭게 이 시대에 하나님의 길을 지켜내야 하는 그런 우리의 시기가 된 것이죠. 그래 끝내 그는 하나님의 길을 살았고 또 지켜냈고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사람을 왕으로 세우는 그런 임무를 다 온전하게 수행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랬더니, 그 예루살렘 성에 남 유다 땅에 다시 기쁨과 평안이 회복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오늘 저희들이 정말 이 여호야다의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이 시대에 가져다줘야 될 하나님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통해서 진정한 기쁨 쾌락이 아니라 기쁨을 전하는 일이고 가짜 평안이 아니라 진정한 살롬을 이 땅 가운데 전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지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좀 미국 땅을 위해서 기도하고, 정말 이 땅을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백성답지 않게 철저히 허물어져 가는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선교지에서 여러분들이 기억하는 선교사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그분들이 그딴 가운데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의 기쁨과 평안의 통로가 되기 위해 헌신하는 분들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머리 마음속에 주는 기도 제목을 따라서 우리 함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우리가 안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 그런 우리 안의 모습을 봅니다. 이 시대에 사랑이 식어가고 그야말로 사랑을 우리가 놓쳐버렸기 때문에 사랑 없는 시대에 여러 가지 전형적인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기신 사람 정말 우리의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해야 하거늘 우리가 우리끼리도 사랑하지 않고 저들도 사랑하지 않다가 주님 이 시대가 정말 말할 수 없는 갯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저들을 품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힘과 너머로 저들을 품을 수 없다는 것 고백하오니 주님 이 아침에 저희들에게 사랑을 품어주셔서 우리 안에 있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저들까지도 품고 저들까지도 주님의 기쁨과 평안의 길로 인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진정한 기쁨을 몰라 쾌락에 젖어든 시대입니다.
진정한 평안을 몰라 주님 그야말로 살롬을 잊어버린 분주함의 시대를 살아가는 저들에게 하나님의 안식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저희들의 소명 감당케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여호야다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알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사람 되어서 이 시대에 진정한 하나님의 메시지와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과 평안을 전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십자가에서 그 기쁨과 평안을 알게 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성령의 길은 부으심이 이 아침에 여호야다처럼 하나님이 아시고, 또한 하나님을 아는 사람 되어서 이 시대 우리에게 맡겨준 소명 감당하기를 원하는 이 자리에 고개 숙인 모든 믿음의 사람들 위해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