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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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보검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보검 1장 에 1절에서 17절까지 말씀입니다. 찍습니다.
화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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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해수로를 낳고 해수로는 람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하백에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사는 루루에게서 오뱃을 낳고 오베스는 2세를 낳고 2세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 아이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아사는 여호사밭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우시아를 낳고 우시아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히스기야는 모나새를 낳고 모나세는 암호를 낳고 아모는 요시아를 낳고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아는 요고니아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후에 요고냐는 스왈디엘을 낳고 스왈디엘은 스루파벨을 낳고 스루파벨은 아비웃을 낳고 아비웃은 엘리아킴을 낳고 엘리아 김은 아소르를 낳고 아소라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앨리우스는 엘라하사를 낳고 엘라하사는 맏딸을 낳고 맏다는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그런 영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14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더라 아멘 마태보검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연결하는 복음서입니다.
화자 1
02:06
구약이라고 하는 전체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밝힘으로써 하나님의 언약 일방적인 언약이 이렇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아시는 대로 세리 출신이었어요. 그 당시에 어쩌면 랍비로 평생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그런 천박한 입지에 사람이 되고 만 것이죠. 원래 이름은 레위였어요. 레위라는 이름 자체는 제사장에 걸맞는 이름이죠. 어쩌면 그 아버지가 아들이 레위라는 이름을 지을 때부터 제사장을 꿈꾸었던 그런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화자 1
03:00
그러나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지 무슨 연유인지 그야말로 돈에 묶여 살아가는 세리로 전락하고 말았고 그는 그 세관에 앉아있다가 정말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할 때 마치 좌석에 붙어있는 쇠가루처럼 당기듯이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갔던 사람이에요.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유대 백성들에게 자기 자신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증언하는 차원에서 복음서를 기록하는 한 동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세리 마태가 아니 세리였던 레위가 어떻게 마태가 되었는지에 관한 기록이죠. 마태는 이름의 뜻이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그렇습니다.
화자 1
03:50
그는 어쩌면 일신에 일어났던 신분의 변화 그 인생에 일어났던 놀라운 변화를 증언하는 마음으로 이 마태복음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쨌건 오늘 이 기록을 한번 보면서 우리는 신약에 처음 시작되는 마태복음의 1장1절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이 1장1절 속에서 어떤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시작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케보라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족보를 따라 오신 분이라는 거예요.
화자 1
04:49
유대사회는 과거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족보가 굉장히 중요한 사회입니다. 그 아버지가 누군가 아버지의 아버지가 누군가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또 누군가 그래서 늘 본인의 이름을 볼 때 난 누구누구의 아들이오 손자요 현손이오 이런 표현들을 쓰는 것이죠. 이 족보가 지극히 중요한 유대 땅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미리 특정하신 족보를 따라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인간 가운데서 역사하십니까?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십니까? 세상은 아무 관심이 없지요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이 보이는 세상이 전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자체도 관심이 없지만, 하나님이 역사 속에 어떻게 끼어든다는 말이냐 이렇게 반문할 거예요.
화자 1
05:44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셨고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을 현연 계시 드러내시고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것이고.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족보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발견케 하는 것이죠.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시초죠 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찾아오셨고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우린 그걸 아브라함언약이라고 그러죠 아브라함언약을 잘 아는 대로 창세기 12장 1 2 3절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내가 내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러면 내가 너를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고.
화자 1
06:43
내가 너로 복이 되게 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너를 저주하는 사람을 내가 저주할 것이고. 너를 축복하는 사람 내가 복을 줄 것이다. 너가 복이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이 되는 것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 인간 세상에서 복의 기준이 되는 것 아브라함의 언약이에요. 그리고 지금 아들 하나 없지만, 그러나 네 시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보고를 얻게 될 것이다. 그게 하나님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이고 그 아브라함 언약을 통해서 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입니다. 천하만민이 보고를 얻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그 언약이 이스라엘의 족보를 통해서 꾸준히 흘러오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약속은 성취되었다. 따라서 마태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족보 가운데서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주 핵심적인 생각의 하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화자 1
07:44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조상이라면은 하나님의 왕국이 실제 인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왕국이 신정 정치로 드러나는 것이 다윗 왕국이에요. 하나님께선 그래서 다윗을 통해서 또한 약속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그걸 다윗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내 후손 가운데서 영원한 왕위를 내가 보장하겠다. 우리가 사별화 7장 16절 말씀을 보면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 그 언약을 알 수 있습니다. 나단 선제를 통해서 전달한 메시지죠 사무에라 7장 16절은 이렇게 기록됩니다. 내 집과 내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내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영원히 왕위가 견고하게 될 것이다.
화자 1
08:39
누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래서 오늘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이 계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다. 자 아브라함과 다윗은 구약 전체를 상징하는 하나님 언약의 상징적 인물이에요. 예수 그리스도는 그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그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그 약속의 성취는 무엇입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다 이게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예요. 예수가 그리스도다 예수가 메시아다 예수가 메시아로 오셨다 그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예요. 오늘 이 족보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는 이 족보를 마테는 의도적으로 14대씩 잘라서 3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화자 1
09:40
뭐 숫자로 따지면 잘 아는 대로 여러분들이 7이라고 하는 완전수가 더블로 된 게 14 아닙니까 그리고 3번은 확정하는 뜻이에요.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확정되고 확정되어 성취되겠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기도 하고 또 게마트리아라고 부르는 히브리인들의 수적 셈법에 따르면은 뭐 이스라엘 이 히브리 글자는 전부 자음들이에요. 모음은 없어요. 자음들에게 이 붙여놓은 수치 숫자 가격이 있어요. 숫자 값이 그게 다윗 다윗이 숫자가 이게 합치면은 이름을 합치면 3자음이 14이에요. 어쩌면 다윗을 중간에 기점으로 삼아서 그런 아브라함과 예수님을 연결하고 있는 연결 고리로 삼고 있는 것이죠. 그런 뭐 해석들을 하고 있지만 그 해석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화자 1
10:36
어쩌면 마태는 그런 해석에 집착을 해서 조금 무리하게 이 14대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 때까지 14대지만 다윗으로부터 또 포함해서 새 왕이 빠져있어요. 그래서 포로기 이후에 포로기 돌아올 때까지 그 왕위에는 이름이 빠질 정도로 그는 114시라고 하는 숫자에 집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건 오늘 마태가 기록하는 족보 가운데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한번 짚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이 계보를 통해서 예수님 메시아가 오셨다는 사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고 나서 기록되는 오늘 마태 족보는 낳고 낳고로 시작이 됩니다. 오늘 락호라는 표현은 정확히 25번이 기록되고 있어요.
화자 1
11:33
오늘 본문 가운데서만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복음이란 생명이 잉태되고 생명을 낳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족보는 어떨까요? 창세기 오장의 족보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그 족보는 죽고 죽고 죽었더라로 기록이 됩니다. 8번 죽었더라가 반복이 돼요. 워드셀라가 969년을 살았을망정 그는 죽었더라도 인생이 마무리되지만 이 오늘 마태복음의 족보에서는 죽었다는 기록을 쓰지 않습니다. 믿음의 족보에 편입이 되면 죽은 것이 아니라 낳고 낳고 또 낳고 생명이 계승되고 생명이 잉태되고 해산되는 것이 복음이기 때문에 그래요. 오늘 이 족보 가운데 스물다섯 번 반복적으로 낳고를 우리가 읽어야 하는 까닭은 우리의 신앙 전체는 생명을 낳는 데 집중이 된다는 것입니다.
화자 1
12:35
우리는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죽음 죽음을 생각하지 않도록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나사로 사건을 목격하게 하시고 그분께서는 무려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그런 약속을 하러 오신 분이에요. 따라서 그분의 새 언약은 이 땅 가운데 영원히 죽음을 승리하신 그런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드러내는 생애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그 모든 역사의 족보는 주님으로 인해서 예수님으로 인해서 홀연히 죽음의 역사가 아니라 생명의 역사로 기록이 된다는 것입니다. 좋아요. 여러분들은 이 생명의 역사를 위해서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이 묻음에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길은 생명의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화자 1
13:34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을 잉태하는 사람이고 생명을 잉태하는 그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 우린 더 이상 죽음을 묵살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끊임없이 그 생명이 우리를 통해서 잉태되도록 부르심을 받았고 소명을 받았고 그리고 우리는 어느 날 홀연히 변화된 모습으로 주님 앞에서 영원한 생명의 파티를 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삶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중요한 기록은 유대인의 족보 가운데 편입되지 않는 이 여인들의 이름의 기록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여인들 잘 기록하지 않았어요. 어느 나라 족복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히브린들의 족보에 특별히 여성이 기록되지 않습니다.
화자 1
14: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이 마태복음을 읽을 때마다 읽어야 하는 여인들의 이름은 뜻밖에도 다말 라하 루트 바세바 바세바는 이름조차 기록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의 아내라고만 기록을 하고 있어요. 이 여인들 4명은 공통적으로 다 이방인입니다. 어떻게 유대인의 족보에 이방인이 기록될 수 있습니까? 절대로 기록돼서는 안 될 이름이고 절대로 허용되지 않던 족보 기록 방식이에요. 왜 그러면 마태는 이렇게 기록되어서 안될 여인만을 골라서 기록했냐는 것입니다. 믿음의 족보 믿음의 가게를 이루어 간다면은 사라 리브가 라헬 이런 이름들이 기록이 되어야지 어떻게 이런 이런 여인들을 기록하냐는 것이죠. 다말은 가난한 여인이에요. 랍은 여리고 여인입니다.
화자 1
15:20
또한 창기였어요. 루엇은 이스라엘 총에 결코 들어올 수 없는 모합 여인입니다. 바세바는 우리애라고 하는 남편이 햇 사람이에요. 그래서 추정하기로는 햇 여인으로 추정되거나 그 여인 또한 이방 여인으로 추정이 돼요. 어쨌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대담하게 마태는 정말 그야말로 대담하게 그 여인들 평판이 좋지 않고 사회적인 명성으로 보나 어떤 것으로 보나 기록되어서 안 될 족보에서 가려야 하고 숨겨야 하고 빼놓아야 할 이름 그 이름만을 여기에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다발은 잘 아는 대로 시아버지 유다와의 사이에 베레스와 세라를 낳습니다.
화자 1
16:06
그리고 기생 라합은 그야말로 여리고 성에서 그렇게 스파이로 들어온 남편 하나 이스라엘 백성 하나 만나 가지고 생명을 건지고 목숨을 건지고 결국은 여리고 성이 함락될 때 믿음으로 자기 가족을 지켰던 여인이에요. 루슨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모합 땅을 떠나서 나는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갈 것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믿을 것이고. 어머니가 죽는 땅에서 죽겠다고 결심했던 여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여인들은 모두 한결같이 믿음을 선택했던 여인이고 믿음의 족보에 들기를 기꺼이 원했던 여인이고 내 인생의 어떤 것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겠다고 결정한 여인들이에요. 하나님은 그런 여인들을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화자 1
17:02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족보를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혈통만이 기준이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은 혈통만을 기준으로 삼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족보를 흘러오는 혈통 가운데 믿음이라는 혈통을 가미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죠. 다윗은 다른 아내가 수없이 많았어요. 뭐 열몇 명 됩니다. 근데 어떻게 우리 아이의 아내라는 이 이름만을 기록하고 있겠어요. 간음이라고 하는 사건을 여기다가 분명히 기록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면 왜 바세바 라는 이름 대신 우리 아이의 아내를 쓰겠어요. 그렇습니다. 인간의 죄보다도 크신 하나님의 섭리를 기록하고자 하는 마태 의도가 아니라면 왜 하필 그 여인만은 또 이름을 우리 아내라고 지었겠어요.
화자 1
18:00
우리는 이런 족보에 기록하고 있는 깊은 마태의 의도를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리고 오늘 보면은 마지막에 이제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이렇게 돼 있어요. 낳고 낳고 낳고 25번 반복되는 것은 능동태예요. 인간의 의지가 가미된 능동태지만 오늘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칭하는 예수가 나신이라는 수동태로 되어 있어요. 신적 수동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신 것은 요셉이나 마리아의 의도에 따라서 이 땅에 낳은 인물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분은 신적인 의도에 따라서 의지에 따라서 태어난 수동적으로 태어난 분이다.
화자 1
18:58
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족보를 읽어가면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죄인이라고 외면하고 있는 사람들 우리는 이방인이라고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았던 그 사람들을 믿음의 족보에 편입시킴으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 되게 하실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죠. 교회란 무엇입니까? 벽이 허물어진 것이고.
화자 1
19:33
담이 허물어진 믿음의 가족 가정 아닙니까 그 믿음의 가족 가운데는 누구도 편입되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 어떤 과거를 가졌건 어떤 죄를 지었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건 하나님께서는 믿음 하나만을 보시고 믿음의 계보에 편입시키기로 결정하셨다는 것 그게 어쩌면 마태가 세리라고 하는 씻을 수 없는 과거를 하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하실 때 씻어주고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셨다는 그 자신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그런 놀라운 통찰 아니겠어요. 누가 복음해 가면 이 족보의 여인들은 또 사라집니다. 나오지 않아요.
화자 1
20:18
어쨌건 마태가 기록한 특별히 구약 신약을 연결하는 이 마태복음서의 첫 장에 기록된 이름들은 그런 마태 심중과 그런 의도와 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놀라운 섭리의 구원의 역사가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17절 말씀을 1번 더 있겠습니다.
화자 1
20:43
그런 적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까지 14되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더라 그렇게 다소 무리하게나마 이렇게 다윗을 중심으로 해서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어떤 역사였고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서 돌아올 때까지는 또한 어떤 역사였으며 또한 바벨론 포로 이후로부터 예수님까지 오는 이 역사는 어떤 역사인지를 오늘 17절 말씀을 우리에게 간략하게 요약해주고 있어요. 인간의 역사란 뭐냐 인간의 역사는 어떤 기준으로 우리가 바라볼 수 있고 분류할 수 있느냐 그런 것이죠.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14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루어 가는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화자 1
21:39
다윗 왕국이 탄생할 때까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14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만들어가고 그 약속을 이뤄가는 역사예요. 그러나 다윈 이후부터는 어떻게 됩니까? 비록 바세바가 믿음의 족보에 편입되긴 했지만, 다윗 그 사건 이후에 다윗 왕조는 쇠퇴하기 시작을 해요.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손들을 만들어 가지만 믿음의 언약을 이루어 가시지만 인간이 그 언약을 깨뜨릴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깨뜨리는 대가를 치르도록 역사 가운데서 심판하신다는 거예요. 그래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고 말아요. 영원한 왕위가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던 다윗 가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화자 1
22:39
마치 밑둥이 빠지듯 그렇게 허리가 잘라지듯 하는 일들이 일어났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과정을 허락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언약은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예언자들을 통해서 다 약속해 주셨고 그 약속을 또한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그게 이사회에서 11장 1절 말씀입니다. 이 새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1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반복해서 약속하신 확약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약속 분명한 약속이에요. 예레미아 23장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23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화자 1
23:3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다윗에게서 2세 뿌리에서 메시아가 날 것이라는 이런 예언을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게 하셨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2세는 누구냐 이겁니까? 다윗은 누구냐는 거예요. 다윗의 뿌리에서 예수가 나셨다고 우리는 족보를 기록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이 족보를 본인이 만드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세요. 그게 요한계시록 마지막에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을 보면은 22장 16절에 이렇게 예수님께서 밝히십니다.
화자 1
24:20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에게 증언하게 하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오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백벌이라 여러분 어떻게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세요. 나는 다윗의 뿌리요 나는 다윗의 자손이다. 생물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지만은 그러나 구원사적인 구원의 역사로 보면 그분은 다윗의 뿌리가 되는 분이란 말이에요. 그리하여 오늘 우리는 이 족보를 읽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어떻게 이걸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지에 관한 얘기를 해주고 있어요. 로마서 3장 22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3장 22절 이렇게 말합니다.
화자 1
25:17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인이 차별이 없느니라 족보에 대한 해석이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의로움 그 구원의 역사가 메시아를 통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갈라데아스 3장 28절 29절에서 다시 반복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냐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오 약속대로 유업을 열 자니라 그렇습니다. 오늘 이 족보 안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될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것입니다.
화자 1
26:12
어떻게 그 여인들이 이 족보에 편입이 되는 영광을 맛보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이 구원의 물줄기 거대한 역사적 흐름 가운데 하나님은 어떻게 섭리하시고 어떻게 하나님 그 당신 자신을 개시하는지 어떻게 드러내시는지를 역사 가운데서 우리는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주도하지 않습니다. 지금 흘러가는 인간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이 족보 가운데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믿게 되면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인간의 역사 앞으로 오셔서 마지막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궁극적인 역사에 대해서도 신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화자 1
26:59
거시울에 올 족보를 읽고 믿는 까닭이고 믿음으로 이 족보 가운데서 발견한 역사적 진실을 우리가 앞으로 다가올 인류의 미래 궁극적인 영원한 구속사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죠. 오늘 기도할 때 그렇게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역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혼동의 시대를 살아가지만은 이 역사 또한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치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마지막 심판으로 완결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 주님 붙들고 끝까지 완주케 하여 주옵소서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가 기록한 이 족보 가운데 정말 부끄럽고 감추어야 할 여인들만 기록해 놓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이런 여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정말 메시아를 보내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입니다.
화자 1
27:58
우리는 어떻게 결혼하든 좋은 가문과 결혼하고자 하고 어떻게 결혼하건 부끄러운 일이 생기면 감추고자 하지만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보다도 사랑이 크심을 말씀해 주셨고 인간의 역사보다도 더 깊은 하나님의 섭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화자 1
28:16
하나님 끝까지 주님의 섭리를 따라가는 우리의 신앙이 되게 하시고 역사 가운데 죽어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영혼을 펼쳐가는 주님의 손길 가운데 우리의 모든 것들을 의탁하옵고 끝까지 믿음의 길 완주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붙들어주시고 축복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인간의 역사 인간의 족보 인간의 혈통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사오니 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지만 암울한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구속사의 손길을 늦추지 않는 것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화자 1
29:01
주님 주님 오시는 날까지 변함없는 믿음의 걸음 걷기 하여주옵소서 이제는 십자가에서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다스리고 계신지를 증명하신 우리 구주에서 그리스도의 은혜와 인간의 혈통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날마다 보이는 역사 가운데 보이지 않는 역사의 손길을 기억하게 하는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이 오늘 다시 한번 구원을 위한 물줄기를 그치지 않은 그 놀라운 사랑에 붙들려 정말 믿음으로 이 세상을 향해 담대히 선포하고 걸어가기를 결정한 이 자리에 고개 숙인 믿음의 지체들 위해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