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어려움을 끼친 사람들을 보면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낫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낫 익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야 우리를 그토록 힘들게 하는 사람이 우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그런 사실을 발견하면 그래 맞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거구나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지만, 아니요. 우리는 한길 마음속을 다 잘 아는 사람들이에요. 성경은 사람의 마음속을 잘 알도록 우리에게 다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책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을 보게 되고 알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선한 게 없어요. 다 악할 뿐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선하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밖에 있는 사람들은 선하고 교회 사람들이 더 뭐 이렇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에 어려움을 끼치는 건 안 믿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교회의 어려움을 끼치는 사람들은 늘 남보다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남보다 믿음이 더 강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에요. 초대 교회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한 가지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악했으면 하나님이 다 쓸어버리겠다고 말씀하셨겠어요. 여러분 창세기는 사람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부터 알려주고 시작합니다. 창조와 함께 시작된 것이 타락의 역사예요.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은 성경은 뭐 2000년 4000년 전 얘기고 지금은 다르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본질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과학이 인간을 바꾼 게 아닙니다.
정치가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경제가 사람을 바꾸는 것도 아닙니다. 지식과 교육이 사람의 본질을 바꿔놓지 않아요. 그걸 바꿀 수 있다면 예배드릴 필요 없습니다. 교회가 될 이유가 없어요. 왜 주님께 써서 그거를 우리에게 되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저는 이 땅에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회 문제예요. 창세기를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그러십니까 창세기 6장 5절을 보면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이 죄로 가득한 것과 모든 인간들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들이 전부 악할 뿐이라는 거예요. 이게 실상입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왜 우리는 이 사도 행전을 보면서 교회를 새롭게 배워야 합니까? 지금 이 땅에 교회가 교회의 모습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원형을 보자는 겁니다. 교회가 뭡니까? 교회를 왜 하나님께서 교회를 허락하셨습니까? 교회 원리는 뭐고 기초는 뭐고 교회는 어떤 목적으로 입당해 주신 것입니까? 여러분 성경은 종말론이에요. 끝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더 좋아지지 않아요.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에 요한 개시록을 통해서 마지막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을 보고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될 것인가?
준비하는 통로와 교회의 교회 그래서 이 초대 교회가 탄생했을 때 교회는 충격 자체였습니다. 도대체 안전뱅이를 일어난 일컫도 예서 이상한 일이지만 사도들이 범인으로 학교 제대로 학력조차 갖추지 못한 자들이 무슨 말씀을 선포하는데 예수는 주다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예수가 길이다. 예수가 진리다 이 말을 듣고 5000 몇 만 명이 돌아섰어요. 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붙들어다가 잡아 옥에 가두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왜 가둡니까 예수가 길이다는 게 뭐 사람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이 사람들 부다 불러다가 잡아다 넣습니까? 오늘 한번 17절 18절 말씀 다시 한번 읽어보실까요?
시작 대제4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의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여러분 대제4장과 함께 있는 자들 이 사도견들은 다 하나님 전문가들이에요. 입만 열면 하나님 얘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왜 불과 몇몇 안 되는 사도들한테 시기심이 가득해졌습니까? 아니 시기심이란 도대체 뭡니까? 이 사람들이 왜 사도들한테 시기심을 품게 되었습니까? 시기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젤로스라고 그러고 이게 여기 이 단어에서 지일 영어 단어 열심이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여러분 열심과 시기심은 뿌리가 같은 거예요. 열심 없으면 1대 없는 일 없습니다. 열심으로 일해야 됩니다. 근데 열심히 바르게 바른 가지로 자라면 열심이지만은 가지가 휘어지는 게 시기예요. 여러분 게으른 사람은 시기할 것도 없어요.
그러나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꼭 시기심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교회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교회를 어렵게 만들어요. 그냥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문제 안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열심이 무슨 열심이냐 말이에요. 이 사람들이 이 지금 대제4장이나 사둑인들은 남다른 열심이어서 종교 지도자가 된 사람들이에요. 그래야 남다른 열심 때문에 종교 지도자가 되어서 그들은 무슨 목적으로 그걸 섬깁니까 어쩌면 그들은 성전의 사람들이 날마다 더 많이 모이기를 애쓴 사람들이에요. 사람들은 성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재물을 가져오기를 갈망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더 많이 모인 성전에 모인 사람들이 대제4장과 사두개인들을 존경심을 가지고 경외심을 가지고 대해주기를 바랐던 사람들이에요.
근데 이 사람들을 향해야 할 존경심과 이 사람들을 향해서 가져야 할 경외심이 일개 범인가도 갖고 하찮게 보이는 사도들에게로 관심이 옮겨간 거예요. 그게 여러분 시기심의 원천 아닙니까 여러분 시기란 내가 가지고 있는 내가 욕망하고 내가 갈망하는 것들을 사람이 가질 때 시기하는 거예요. 내가 욕망이 없으면 시기할 일도 없습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뭐 이렇게 뭐 부모를 그렇게 시기 합니까? 여러분들은 제가 설교 잘하는 게 시기가 납니까 그러나 목사들은 오면 시기할 거예요. 어떻게 사람은 원고 없이 설교를 하나 저는 이 땅의 시기심이란 여러분 열심에서 같은 뿌리에서 나온 거라는 걸 여러분들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들 열심을 낼 때 조심해야 됩니다. 나는 뭐 때문에 열심을 하는 것인가?
나는 무슨 목적과 동기로 열심을 다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시기심이 솟아오를 때 자기 자신이 점검돼야 돼요. 나는 왜 사람이 눈에 거슬리는가 왜 사람이 저렇게 미운가 왜 사람의 잘못이 자꾸 눈에 드러나는가 잘못을 나는 누구에게 얘기하고 있는가 저 사람의 잘못을 본인에게 얘기하지 않고 왜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자꾸 얘기하고 있는가 그리고 왜 내 잘못보다 사람의 잘못을 더 크게 보고 있는가 여러분 이런 것들이 분별되지 않기 때문에, 시기심에 묶이게 된단 말이에요. 여러분 시기심도 머리가 좋아야 시기하지 머리 나쁜 사람은 시기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열심히 있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시기심이 많고 질투심이 많은 거예요. 저는 이 땅에 이 시기심 하나를 해결하지 못해서 온 땅이 시끄러운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 시기를 다스리지 못하면 자기만 파멸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결국 이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다가 가두는 것이죠. 여러분 머리 좋고 열심히면 사람 잡아다 가두는 역할을 합니다. 다른 사람을 억박지르고 다른 사람을 핍박하고 다른 사람을 못살게 구는 능력이 되고, 마는 것이죠. 그래서 이 사도들을 지금 옥에다 가두었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19절부터 21절까지 읽습니다. 시작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4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해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여러분 밤에 옥문이 열렸어요. 열렸는지 기술하지 않아서 추측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이 헐거워졌는지 또 아니면 무슨 다른 저런 이런저런 이유로 옥문을 주의 사자가 열었다고 되어 있어요.
그렇게 12 유가 왜 옥문을 열어주었습니까? 피신하라 도망가라 어디 숨어라 자칫하면 위험하니까 지금 더 이상 나타나지 마라 그래서 옥을 열어주고 나가게 한 겁니까? 아니에요. 나가서 성전에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옥문을 열어주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의 도피를 위해서 열어준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전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이 생명의 말씀을 다 전하지 않는 게 오늘날 교회 문제 본질이에요. 왜 생명의 말씀을 자기 입맛에 맞게 전하느냐는 말이에요. 여러분 성경 가지고 이거 제 입맛에 맞게 얼마든지 편집해서 전할 수 있어요.
이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들 귀에 듣기 좋은 말만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얼마나 많은데 이 말씀 가운데 편집하면 내 입맛에 맞는 말씀을 못 만들겠어요. 여러분 이 땅에 교회가 병든 이유는 대개 다 대부분 다 거진 다 목회자의 문제예요. 전부 다 거의 설교자의 문제예요. 왜 다 말씀을 전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전하냐는 말이에요. 왜 여러분들 듣기 좋은 말만 전하는 말이에요. 여러분 신명기 말씀에 축복의 말씀보다 저주의 말씀이 세 배나 많아요. 하나님 말씀대로 안 살면 어떤 결과가 있는지 더 많이 말씀해 주셨어요. 어떻게 보면 여러분들보다 축복의 말씀보다 저주의 말씀이 더 많다는 걸 세 배는 더 얘기를 해줘야 될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멀쩡히 살아있는데, 유산을 받아 가지고.
나가서 다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 탕좌를 조건 없이 버선발로 나가서 기뻐서 맞아주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주고 잔치를 보내주는 아버지 맞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하나님도 있어요. 그러니까 얘기를 해야 돼요. 그러나 누구나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 제대로 살아야 하나님께 간다는 얘기는 왜 빠뜨려 놨냐는 말이에요. 그거는 왜 하면은 안 되느냐고요. 같이 얘기를 해 다 얘기를 해야 될 거 아닙니까 영접하는 자 곧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말씀도 전해야 하지만은 그러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지고 그렇게 날마다 쫓아라는 말을 왜 우리가 전해서는 안 됩니까? 다 전해야 돼. 다 알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들 듣기 싶은 듣고 싶은 것만 듣지 마세요. 순종하면 좋은 일만 있습니까? 순종하면 복만 받습니까?
아니요. 순종하다가 죽은 사람들 투성이에요. 이브리스 11장 믿음의 장애는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사람들 얘기예요. 목록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뭐 하나님을 믿으면 다 잘 된다. 그런 일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 받는다. 복이 어떤 복인지 잘 알고 복을 받아야죠 이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복을 위해 여러분 꼭 받고 싶습니까? 그런 복 받고 싶지 않으면 교회 떠나세요. 왜 교회 다녀서 교회를 어지럽힙니까 교회를 오해하게 만드세요. 그래서 말씀을 전하는 걸 지금 오늘 말씀을 다 전해야 된단 말이에요. 전하고 싶은 말씀만 전해서도 안 되고 여러분들 듣고 싶은 말씀만 전해서는 더더욱 안 되는 것이죠. 듣고 싶은 말씀 듣다가 변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여러분 망하는 길 간단합니다.
먹고 싶은 것만 먹으면 망하게 돼 있어요.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면 망하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다 보고 있는 사태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뭐 돌도 든 사람이나 촛불 든 사람이나 다 사람이 사람이 다 듣고 싶은 말만 듣다가 지금 저런 얘기들이 나는 거예요. 그런데 교회에서도 그래야 됩니까? 여러분 세상은 어차피 이건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이에요. 여러분들 보면 알지 않습니까? 뭐 하나 안 쓰건 데가 있어요. 뭐 하나 정상적인 데가 있습니까? 그래서 교회를 지금 시작한 거예요. 다 썩었기 때문에 교회를 시작한 겁니다. 구원의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신 거예요. 그래서 그분이 십자가지신 것입니다. 뭐 우리 좀 더 편하게 먹고 잘 먹고 잘살게 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니잖아요.
저는 진짜 이 사태를 보면서 지금 여러분들 마지막 남북한의 마지막 체제 경쟁에 왔어요. 우리는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사람들은 목적을 바꾼 적이 없어요. 목적을 잃어버린 건 대한민국이 목적을 잃어버렸어요. 여러분 잘 먹고 잘사는 게 목적입니까? 위험한 건 훨씬 이 땅이에요. 지금 저는 교회가 물론 깨어나겠지만, 주님께서 흔들어 깨우시니까 깨어나겠죠. 그러나 교회란 바로처와 여러분입니다.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여러분 북한은 한 번도 주적 개념을 바꾼 적이 없어요. 한국만 적에 대한 개념이 없어져 버린 것이죠. 우리는 지금 이 다음 시대는 말이죠.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아무것도 기댈 권위가 없어졌다는 거예요.
이 땅의 심각한 문제는 가장 문제 뿌리는 권위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은 권위예요. 하나님은 권위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모욕하면 다 잃어버리는 것은 권위예요. 권위 뭘로 살아갈 건데 무슨 기준으로 살 건데 무슨 목적으로 무슨 의미를 찾으면서 살아갈 건데 저는 오늘날 우리가 정말 정신을 차려야 될 사람들은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먼저 부른 우리들 무슨 목적으로 살아야 할지를 늘 깨워주신 우리들 우리 문제란 말이에요. 우리 문제 그래서 지금 사도들이 나가서 성전에서 내준다고 가서 무슨 샤워를 하러 갔습니까?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으러 갔습니까? 가서 성경을 찾아보고 설교 준비를 했습니까?
그저 그들이 가서 할 일은 복음을 제대로 전하면 돼요. 여러분 이 세상은 복음에 목말라서 생긴 일들이에요.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고 양식이 없어 배고픈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왜 목마른지 몰라요. 왜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모릅니다. 예수님이 오셨으면 우리 기준으로 하면은 그때 지금 로마의 압제가 심하기 때문에 로마의 투쟁을 시작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러지 않습니다. 로마의 앞잡이 노릇하는 사람들을 칼로 처단해야 되잖아요. 일부터 시작하지 않으셨어요. 왜 예수님이라 해야 됩니까? 문제 뿌리에서부터 그분이 우리를 부르시기 때문이죠. 왜 성령 받아야 됩니까? 그래야 우리는 정말 식별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악한 영에 사로잡히면 눈에 씌어서 아무것도 안 보여요. 자기 욕망밖에 안 보입니다. 지금 정치 지도자들이 자 눈 뜬 사람들입니까? 전부 욕망에 눈 문 사람들이에요. 뭐 경제인들도 큰 차이가 없지만은 그 오늘 보면 이 사도들이 지금 나가서 말이죠.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라고 내보낸 거예요. 그 다 전하라는 거예요. 있는 대로 가감 없이 내 생각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에요. 말씀 들으면 살아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먼저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죽어서 누구를 살립니까 여러분들이 생명력이 없으면 누구한테 다가갈 건데요. 좀 눈이라도 살아있는 채 좀 빤짝빤짝 해 보세요.
22절부터 26절까지 읽습니다. 시작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언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 적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와 제4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욕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 함이더라 아니 지금 사도들이 또 성전에서 얘기를 한다는 얘기를 이게 대제장들이 듣고 이건 또 누구야 무슨 일이야 옥에 갇힌 자들 좀 가둬놓은 사람들 좀 데려와 봐 그랬더니, 옥에가 사람이 지금 없는 거 아네요. 옥에 열어보니까, 한 사람도 없어요. 그랬더니, 이거는 그럼 누가 풀어준 거예요. 이 해석이 안 되지 않습니까? 아니 경비병이 풀어주 없을 리가 없잖아요.
달아나야 되는데 안 달아나고 앞에 지금 멀쩡히 잡힐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왜 놔주겠어요. 그리고 이 사람들이 숨은 것도 아니고 지금 자리에서 지금 동일한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지금 이 사람들이 지금 해석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어요. 의혹하다는 말은 설명이 안 된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이 사람들 머리 좋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 1만큼 로마 정부와 힘을 합쳐서 그를 제거할 만큼 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에요. 그러나 여러분 때로는 머리 가지고도 해석이 안 되는 일을 만난다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 교회란 세상이 해석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사는 게 이해할 수 없어야 돼요. 여러분들 사는 게 빤하면 안 돼요. 안 믿는 사람들이 여러분들 하는 걸 보면 빤하다 그래 믿는다는 사람들 하는 짓 보면 딱 빤하다고 그래요.
우리가 그렇게 빤하게 삽니까 교회가 초대학교에 충격을 준 이유는 딱 하나예요. 상식적으로 살지 상식보다 못한 게 아닙니다. 상식 이하로 산 게 아니에요. 상식을 뛰어넘는 이성적이지 않은 게 아닙니다. 이성을 뛰어넘는 삶을 살았다는 거예요. 교회는 그런 곳이에요. 어떻게 자기 것을 다 포기합니까? 내 집과 밭을 팔아서 어떻게 사도들 바 앞에둡니까 그건 몰상식이 아니에요. 초상식이란 말입니다. 그건 비이성 반이성이 아니에요. 초이성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어느 정권도 해결하지 못한 가난의 문제가 없어졌다 이건 초제도적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예술한 교회란 그냥 솔루션이 아니라 메타솔루션이란 말이에요. 인간의 해결방식을 뛰어넘는 해결이란 말이에요. 이건 종교가 아니에요.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종교입니까?
종교인들은 왜 집 팔고 밥 팔아가지고. 다 거기다 사도들 앞에 뚫고 같이 모여 삽니까 복음은 메타 윌리전이라는 말이에요. 종교 이상이란 말이에요. 종교는 결국 다 자기 잘 먹고 잘 살자는 거죠. 조금은 희생하고 많이 받자는 것 아닙니까 종교는 다 기브 앤 테이크예요. 그러나 복음은 기브 앤드 기브라고요. 그래서 그게 메타솔루션이고 메타 윌리전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들을 잡아왔어요. 또 성전에 서서 백성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또 잡아왔어요.
성전 맡은 자가 잡아왔더니, 이번에는 강제로 어떻게 할 수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라 여러분 이제 이 사도들의 복음을 듣고 믿음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온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난 거예요. 하루에 3000명 5000명이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죠. 예수님을 주다 예수님을 9주다 그리스도다 그분이 기리다 진리다 생명이다. 부활이다. 이걸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늘어났단 말이에요. 이 사람들이 두려워진 거예요. 이 사람들이 사도들을 따라가는 걸 시기하다가 이 사람들이 믿음을 갖기 시작하자 두렵기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이들이 어쩌지 못하는 것은 이제 사도들 뒤에 늘어선 사람들 요새 말로 하면 팔로워가 늘어난 거예요. 팔로워 수자가 늘어났기 때문에 내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된 거예요.
그래요. 지금 이 2대제4장과 사두개인들 성전 맡은 자들의 이 마음 가운데 생긴 두려움은 여러분 숫자에 의한 두려움이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일생 동안 숫자에 묶이게 됩니다. 팔로워가 몇이냐 저 사람을 지지하는 세력은 얼마냐 여러분 그게 정치하는 거예요. 정치는 내가 나를 따르는 팔로워 늘리는 일입니다. 뭐 이미지 전쟁을 하건 무슨 전쟁을 하든 프레임 전쟁을 하건 무슨 전쟁을 해서라도 팔로워를 늘리는 게 정치예요. 그래요. 그래서 그들은 숫자에 민감한 겁니다. 뭐 신의 몇 명이 나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은 맨날 뭐 100만이 나왔대 저쪽은 또 26만이라 그러고 제가 어젯밤에 찾아봤어요. 미디어 워치인가 쭉 찾아봤더니, 합리적으로 계산했어요.
100만 나온 모든 전 세계 시위 군중들을 다 사진을 올려놓고 다 해놨더라고요. 한번 참고해 보십시오. 숫자가 얼마나 근데 왜 숫자를 그렇게 부풀리거나 왜 숫자를 줄이거나 그러느냐 말이에요. 이 세상이 숫자 노름이라서 그래요. 그러나 여러분 숫자만 보면 늘 불안합니다. 여러분들 제일 불안하게 사는 방법은 저금통장에 찍힌 숫자만 보고 있으면 평생 불안할 거예요. 하나님은 숫자 세는 거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숫자 세다가 인구 계수하다가 야단 맞아요. 아니면 국민 숫자 세는 거 호 9조사도 할 바인데 그게 뭐가 그렇게 잘못됐습니까? 그러나 다윗의 심중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 나갈 만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나 이 사람 숫자를 세기 시작하는 그 마음의 중심이 사람을 의지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걸 가만두지 않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너무 숫자에 연연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방송국도 여러분 숫자놀음이에요.
그러면 시청률에 묶여서 어쩔 줄로 모릅니다. 제작자나 피디나 뭐 그러면 시청률 숫자 하나에 1위일비하고 사는 것이죠. 교회는 다른 줄 압니까 목사들끼리 모이면 뭐 나이도 없어요. 졸업 기수도 필요 없습니다. 뭐 얼마나 목회했는지도 중요하지 않아요. 너희들 몇 명 나오니 그게 서열이에요. 주일 헌금 얼마 나오는데 그게 서열이에요. 여러분 그게 비즈니스지 무슨 그게 무슨 목회입니까? 사람들 숫자 세고 헌금 숫자 세는 게 그게 비즈니스지 뭐가 비즈니스인데 여러분 정신 차리세요. 속지 마세요. 우리는 일생 동안 숫자 놀음을 하겠지만, 그러면 여러분들이 숫자에 묶이면은 두려워하게 돼 있어요. 저는 여러분들이 숫자를 넘어서는 단 한 분을 의지할 수 있고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다윗의 고백대로 1000만 명이 나를 죽이고자 달려들어도 내가 평안하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숫자에 현혹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끌어가지고 이렇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인제 모습을 보게 되는데 27절 28절 한 번 더 볼까요? 시작 그들을 끌어다가 공예 앞에 세우니 대제4장이 물어 이르되 우리가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의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공예 앞에 세워놓고 이제 대자자정이 묻습니다.
너 왜 가르치지 말라고 예수는 주다 예수는 그리스도다 그런 거 가르치지 말라고 그랬는데 왜 가르쳤냐 너희들 그렇게 가르쳐서 지금 하고 있는 목적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밖에 죽은 피가 우리 때문이라고 지금 말하는 게 목적이지 이렇게 따지는 거예요. 자 보십시오. 두려움이 왔어요. 시기심 때문에 온 두려움이에요. 두려움 때문에 기껏 한 게 사람 잡아오는 겁니다. 사람 잡아다 놓고 물을 때 질문이 뭐예요? 너 지금 나한테 뒤집어 씌울려고 하는 거지 이거란 말이에요. 여러분 뒤집어쓰는 걸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뒤집어 쓸 짓 안 했습니까? 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게 지금 마음에서 불안으로 어쩔 줄 모르는 거예요. 자 그럼 실제 보십시다. 이 사도들이 가서 성전 앞에서 전한 메시지가 선동입니까? 저놈들이 예수님을 못 박았다. 저놈들 죽여라 끌어내려라 대제4장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된다.
그렇게 선동했습니까? 아니요. 사도들이 전한 메시지 하나님께서 다 말씀하라고 하신 것은 복음이에요. 이쪽 저쪽 다 사는 얘기예요. 그런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시라고요. 이때도 동일합니다. 이 시대에도 복음에 관심 없습니다. 사람들은 여러분 돈이나 이런 거에 관심 있지 누가 복음 누가 진리에 관심이 있습니까? 그래서 이 세상이 지금 어디로 빗나가는지도 모르고 흘려가고 떠내려가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진리에서 벗어나면 만족이 없어요. 오거스틴의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떠나고 나면 내 안에 어떤 것을 채워도 기쁘지 않습니다. 그분이 오실 때까지 안식이 없어요. 쉼이 없습니다. 우리가 뭐 일주일 24시간 일하는 체제가 돼서 쉼이 없는 게 아니에요. 마음의 쉼이 없기 때문에 세븐 데이즈 투니포 아월즈 시스템을 만드는 거예요. 이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사도들은 한 번도 이들을 비난하는 게 메시지가 아니에요. 그들 메시지에 주는 생명의 메시지지 저주나 무슨 이 뭐 저항의 메시지가 아니에요. 그러나 늘 생명의 메시지를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불안한 사람들은 그걸 자기들에 대한 이해관계로 치환해서 그렇게 잘못 해석하는 것이죠. 항상 자 베드로가 뭐라고 말합니까? 29절 31절까지 따시겠습니다. 시작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귀함과 제 싸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자 임금과 9주로 삼으셨느니라 자 베드로가 사도들이 지금 얘기하는 건 뭡니까? 어디서든지 동일한 얘기예요. 성전 앞에서도 얘기하고 사도들이 또 붙들려 가서도 사도 개인들과 대제4장 앞에서 동일한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인터뷰 잘하는 비결 하나 가르쳐 드릴게요. 하고 싶은 얘기만 해야 돼. 묻는데 답하면 안 됩니다. 걸려들게 돼 있어요. 반드시 원하는 대로 잘라 쓰게 돼 있어 근데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얘기만 자꾸 하면 씻든지 안 씻든지 둘 중에 하나예요. 편집은 안 할 거 아니에요. 이 지금 계속 같은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어디를 가나 누가 모르나 뭐 무슨 얘기예요.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거예요.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지금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안 믿어요. 근데 지금 이 베드로는 그분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 부활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다시 살리셨다라고 할 때 이 살리셨다라는 말은 이 차 출행업계에 보면은 자 이 모세가 말이죠.
신명기에 한번 찾아보십시다. 신명기 18장 15절 말씀 신명기 18장 15절 말씀 한번 찾아보세요. 자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내 하나님이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내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여기 선지자 하나를 앞으로 일으킨다 라는 게 그게 지금 베드로가 얘기하는 이 살리신다고 같은 뜻이에요. 여러분 예수님은 모세로부터 과거로부터 예언된 분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뚝 떨어진 분이 아니에요. 왜 구약 전체를 여러분들이 다 읽어야 합니까?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다 말씀하신 것을 다 듣기 위해서 다 읽는 것입니다. 입맛에 맞춰서 그냥 오늘은 휙 펴가지고 여러분 이게 무슨 뭐 화투표 했다는 겁니까?
계획대로 읽으셔야 하고 다 읽으셔야 합니다. 여기 모세에게 모세가 지금 얘기하는 게 앞으로 선제를 하나 일으킬 텐데 그분이 너희들이 들어야 할 말씀을 들어야 할 분이라는 거예요. 오늘 지금 베드로가 지금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 다시 일으키셨다 부활하셨다 이게 중요한 거란 말이에요. 부활 그러면 왜 부활하셨습니까? 31절 한 번만 더 읽으십시다. 31절 시작 이스라엘에게 회귀함과 제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자 임금과 구조로 삼으셨느니라 왜 그분을 다시 살리셨는고 하니까 이스라엘에게 회귀함과 용서를 주시려고 했다는 거예요. 부활의 목적이 뭐라고요. 우리에게 회개할 수 있도록 하실 거란 말이에요. 회개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첫 번째 메시지가 뭐라고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여러분 이 지금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뭐예요? 회개가 없는 용서를 구하기 때문에 문제인 거예요. 여러분 철저히 회개하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회개로부터 뭔가 시작이 되는 거예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향해서 줄다름치던 이 인생이 예수님 돌이키는 삶 나 자신을 향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삶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 방향 전환이지만은 이 유턴이란 말이에요. 그냥 여러분들이 가는 방향을 고집하기 위해서 믿는 건 아니란 말이에요. 이 세상이 가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부름받은 사람들이 그걸 회개라고 그래요. 회개가 먼저 일어나서 죄용서를 받으면 그분께서 다시 세상 속으로 보내요.
왜요 세상에 가서 그냥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유턴시키고 되돌이키는 삶을 그들에게도 인정토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는 거란 말이에요. 우리는 회계로부터 시작이 돼야 인생의 목적이 바로 서지 회계로부터 안 서면 인생의 목적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아요. 그래서 되는 것 같은데, 되지 않아요. 다 된 것 같은데, 하나도 되지 않아요. 뭘 이룬 것 같은데, 뭘 이뤘는데요. 저는 여러분들이 이 지금 이 베드로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정확한 복음을 일러주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목적 십자가를 지신 목적 다 이게 우리가 회개하도록 하는 것이고. 회개할 때 우리에게 죄용서 죄 사함을 허락해 주시기 위한 거란 말이에요. 여러분 인간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거예요. 산소 호흡기가 빠진 겁니다. 나무 밑둥이 잘린 거예요.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겁니다.
이걸 세상이 몰라서 답을 못 찾는 것이죠. 출구가 없어요. 세상에 무슨 출구가 있습니까? 여러분 이 사도 바울이 그걸 깨달은 거예요. 회개 돌이켜야 되는구나. 그래서 여러분들 나중에 이 사람 한번 17장 사도 행전 17장 한번 가보세요. 아테네에 가서 이 사람이 흥분을 해요. 왜냐하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쓰여져 있어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게 흥분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사도 행정 17장 30절 말씀 보십시오. 시작 알지 못하던 시대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명하 4회개하라 하셨으니 사도방원의 크리찬이 되는 걸 딱 한마디로 정리해줘요 다 회개하라는 거예요. 이건 명령이에요. 이건 여러분들한테 동의를 구하거나 설득을 요하는 게 아니에요. 돌이키십시오. 이건 명령이에요.
자 로마스 가면 로마스 2장4절 다시 로마 교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스 2장 4절 찾으셨어요. 읽습니다. 시작 혹 내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 풍성함을 멸시하려느냐 여러분 하나님이 왜 인자하시다고요. 왜 참으신다고요. 회개하도록 기다리는 거예요. 여러분 돌아설 때까지 기다려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목적이 여러분들 세상에서 잘 되라고 부르는 게 아니에요. 잘 될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어요. 병 나을 수도 있고 병 안 낫고 갈 수도 있습니다. 어떤 군사님이 죽도록 아들 불치병 놓고 기도했는데 아들이 낳았어요. 근데 본인은 덜컥 또 암이 걸려서 돌아가셨어요. 그게 우리 신앙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암이 발견됐을 때 원망하지 않고 자기가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 다 불러서 용서하고 그리고 안 믿는 사람 전도하고, 그렇게 떠났어요.
여러분 꼭 우리가 뭐 믿고 다 병났는 것도 아니고 믿고 다 잘 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죄 용서받는 건 확실하단 말이에요. 이것 때문에 회개해야 된다는 거예요. 에 회계를요 마지막 32절 한번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느라 그래요.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란 말이에요. 누구 앞에서나 어떤 직업을 가졌거나 이 일의 증인이란 말이에요. 여러분들 왜 돈 법니까 왜 직장 가졌어요. 무엇 때문에 결혼할려고 합니까? 이 일에 증인되기 위해서 결혼하라고 자 이게 저기 애 낳고도 하는 거라고요. 우리 그냥 잘 먹고 잘살다 가는 거 그건 짐승과 같은 거랑 뭐가 달라요.
여러분 짐승도 뭐 배불리 먹고 거기도 다 섹스하고 다 새끼 낳고 다 살아요. 그게 우리 목적이 아니잖아요. 인간이라는 게 이 일의 증인으로 불름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저는 여러분들이 인생의 목적이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무엇 때문에 열심을 다해야 하는지를 기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걸 위해서 주셨다는 거예요. 왜 성령 충만입니까? 증인 노릇 잘하라고 증거 똑바로 하라고 다 말씀을 전하라고 가감 없이 하라고 그래서 성령을 주셨다는 거예요. 성령 내 목적도 그겁니다. 성령이 와서 무슨 뭐 예언하는 게 아니에요. 그거는 악령들이 더 잘해요.
그거 뭐 내가 지금 뭐 박 대통령 얘기를 들어보니까, 기가 찬 얘기가 많더만 근데 내가 들어보니까, 나도 안 믿고는 못 배기겠던데 보니까, 그렇게 맞추면 여러분 사실은 뭐 재벌들은 하나씩 안 끼고 있는 줄 아십니까? 정치인들 대다수가 여러분 선거 때 되면 안 가는 줄 아십니까? 나는 이 땅에 정말 그리스도인들은 그쪽에 안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성령은 여러분들 개인적인 미래사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에요. 이 일에 증인되는 게 중요하단 말이에요. 내가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바른 신앙이란 내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삶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정말 복음이 더 중요해지고, 예수님이 더 중요해져서 이 일의 성인 되기를 결단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약속하셨어요.
봐라 굶어 죽나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일을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더하시나 모든 것을 더하지 않나 보라는 거예요. 순서 바꾸지 마세요. 주시면 내가 한번 증거해 볼게요 내가 간정 집회 하루 종일 하고 다닐게요 이게 아니란 말이에요. 간정 집회도 남녀 호랑갱 귀에서도 간정 집회예요. 내가 아는 유명한 분이 하루에 네 번 간정 집회였더라고요. 저는 여러분들이 정말 이 일에 증인되기 위해서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회계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죄용서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거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니에요. 그래서 핍박이 온단 말이에요. 사람만 기쁘게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제가 엊그제 진짜 참 중요한 감정을 들었어요. 별의별 압력을 다 받았는데 아침마다 기도하니까 아니더라는 거예요. 거절했어요. 자리를 걸고 거절했어. 까딱했으면 잘릴 뻔했어요.
이 사태가 다 안 터졌으면은 저는 우리가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정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한번 보자는 거예요. 할 얘기가 많지만 제가 참 시간도 없고 해서 그냥 하겠습니다마는 데살로니카 전세 이 장 한번 찾아보세요. 데살로니카 전서 이 장 2장 4절에서 6절까지 한번 쭉 읽어보십시오. 시작 오직 하나님께 올케의 애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오.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여러분 아면 아십니까? 이렇게 사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영광스럽게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광은 사라지지 않는 영광입니다. 영원한 영광입니다. 여러분 촛불을 밝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태양 앞에 서서 촛불을 밝다고 말하지 않고 바다 앞에 서서 호수가 크다고 말하지 않듯이 주님의 영광 앞에서 사람의 영광에 눈멀지 않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같이 기도할 때는 정말 하나님 이 땅 가운데 우리를 빛으로 소금으로 부르셨어요. 여러분 정말 이 땅이 썩는 이유는 뭐예요? 3.5 프로 염분이 낮아진 탓이에요. 그리스도인들의 염도가 떨어져서 이 세상이 이 모양이라고요. 복음대로 우리가 안 살고 복음이 제대로 안전해져서 그런 거라고요. 3.5
프로면 세상은 안 썩습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의 염도가 3프로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에 지금 이 난리가 난 거예요. 여러분들이 비치고 여러분들이 소금이라면 이 세상은 안 썩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더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 이 나라 쓰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뒤집어 엎어서라도 쓰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그래도 당대 저기 선교하러 가서 추장된 사람이 우리나라 백성들밖에 없어요. 다 나가면 한 자리씩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보내서 이 땅 마지막 동안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전심으로 다시 한번 이 기도해야 될 것은 정말 이 그리스도인들이 깨어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깨어서 이 민족을 다시 한번 주님 앞에 올려드릴 때 하나님께서 지금 일하신 하지 않으면 저는 길이 없다고 봅니다. 제가 100번 얘기하죠. 나 하나님 안 믿으면 지금 나 이민 갔을 거예요.
저는 하나님께서 이 나라 200성을 쓰실 줄로 믿고 우리가 그분께 다시 한번 간절한 마음으로 올려드리면, 정말 하나님께서 뜻밖의 방법 기적 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푸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가 뜻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문제를 푸실 분이라는 걸 믿고 한번 간절히 한 1번과 같이 기도하십시다. 나라와 민족을 삼득하여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 정말 현실을 보면 앞이 캄캄합니다. 눈앞에 정말 어둠이 짙습니다. 늘 어디를 가나 소망이 없습니다. 타락해도 이렇게 타락할 수가 없고 부패해도 이렇게 부패할 수가 없고 음란해도 이렇게 음란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전심을 다하여 내게 얼굴을 구하면 그리하여 돌이키면 돌이켜 나를 구하면 내가 이 땅을 고칠 것이라고 주님 약속하셨습니다.
주님 이 땅을 고쳐주시옵소서 이 백성을 고쳐 주시옵소서 교회를 고쳐 주시옵소서 하나님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이 진정 거듭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가 주님 앞에서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힘으로 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 나라 이민족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 마지막 시대에 쓰시기 위해서 인도하신 줄로 믿습니다. 열밤 가운데 제4장 백성 물어 쓰시기 위해서 부르셨다고 믿습니다. 주님이 백성을 청결케 해 주옵소서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깨끗히 하여 주옵소서 경건의 모양을 잃어버릴지언정 경건의 능력을 행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경근케 하옵시고 성결케 하옵시고 개끈케 하옵시고 주님 이 나라 이 백성 다시 한번 추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이 나라의 민족 불상 이야겨 주시옵소서 북력 당부 막상 얘기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