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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행전 18:1-8

yt1981 2023. 8. 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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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그리스도인은 혼자 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은 어떤 배우자가 있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반드시 혼자서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고, 누군가 우리를 그리스도인 되게 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인 되는 것이지. 내가 아무리 머리가 똑똑하고 잘났고 착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 되는 것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빚어진다는 뜻이어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삶의 존재 자체가 처음부터 공동체 지향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도 행전을 따라가면서 보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결국은 교회를 이뤄내는 것을 우리가 읽고 따라가면서 우리 자신도 우리 삶이 펼쳐지는 곳마다 교회가 탄생하기를 바라고 소원하는 목적을 갖게 되는 것이죠. 왜 우리가 2시간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지 목적을 놓쳐버리면은 이 예배 자체가 너무 중요해서 예배 이후의 삶을 연결시키지 못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중요하지요 그러나 예배가 우상은 아닙니다. 교회가 중요하죠. 그러나 교회도 우상은 아니에요. 우리가 예배드리는 까닭 우리가 교회되는 까닭은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교회가 되는 것이죠. 

우리가 그런 목적을 위해서 있는 이 사도행전은 그야말로 사도의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행전 행함이 있는 삶 행함이 있는 행함의 열매가 중요하기 때문에 기록된 책입니다. 그들의 삶이 도대체 예수 만난 사람들의 삶이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 또한 예수를 따르기로 결정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어떤 열매가 맺혀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바로 이 사도행전이기 때문에 우리가 읽는 것이죠. 오늘은 바울이 아덴을 떠나서 고린도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곳에서 바울의 일상의 삶과 신앙이 어떤 모습으로 어우러져서 고린도 교회라고 하는 것이 탄생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한번 18장 1절 더 읽을까요? 시작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바오리 아덴을 떠났습니다. 어떻게 떠났는지가 기록이 없어요. 또 앞에 뭐 데살로니카나 무슨 뭐 베레야나 이런 데서 떠나야만 했던 그런 이유가 있는지 어떤지가 기록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어쨌건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라고 할 때 이 떠나가 헬라 원문을 보면 능동태가 아니고 수동태로 되어 있는 걸 보면 떠날 수밖에 없었던 또 상황이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에요. 내가 떠나고자 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떠나게 되었다라는 것이죠.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내가 머무르고 싶어도 떠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어요. 그런 어쩌면 아덴에서 더 전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철학의 도시 지식의 도시 이성의 도시 학문의 도시 대학의 도시 그런 도시에서 한번 정면으로 부딪쳐서 저들과 함께 변증하면서 복음을 한 번 더 깊이 전하고 싶었던 그런 생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떠나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가 잃은 발걸음은 아덴에서 이후 8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서쪽으로 있는 고린도로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고린도라고 하는 도시는 여러분들이 뭐 고린도 전월설을 통해서도 알 것이고. 또 많은 얘기를 들어 알겠지만은 당시의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예요. 지협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마게도니아라고 하는 지역 남쪽으로는 펠로폰네소스라고 하는 반도를 연결하는 지극히 작은 목과도 같은 아주 지엽이 고런 지형적인 곳에 위치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게 에게 해와 아드리아 해를 잃는 지협이기도 해요. 양쪽에 항구를 끼고 있는 일종의 항구 도시이기도 하죠. 

당시 인구가 65만 명이었다고 하니까 굉장히 큰 도시예요. 지금으로 치면 1000만이 넘는 도시라고 해도 뭐 무방할 얘기입니다. 그처럼 큰 도시였다고 하는 것 그리고 그런 교역의 중심 상업지의 중심지에 위치했다는 것은 어떤 도시였다는 것을 우리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이죠. 원래 BC 146년에 망했던 도시인데 로마가 멸망시켰다가 100년 만에 다시 재건 도시입니다. 인구가 65만 인 중에서 한 25만 원 자유민으로 보고 40만 원 노예들로 구성이 돼 있었다고 보고 있어요. 그래요. 당시에 뭐 이곳이 돈만 많았던 곳은 아니었습니다. 아테네가 가까웠던 탓인지 아리스티데스라는 사람의 기록에 따르면은 거리마다 지혜자라고 미루는 소피스트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인생의 문제를 그렇게 상담하고 답을 각자 얻기 위해서 노력했던 흔적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너무나 타락하고 너무나 음란한 도시여서 고린도 사람이라는 말 자체는 그냥 음란한 사람 방탈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렇게 그냥 썼던 단어고 심지어 플라톤조차도 뭐 이게 고린도 여자 고린도 아가씨라 그러면 매춘부를 뜻할 정도였어요. 얼마나 도시가 온갖 잡신들이 득실됐는지 온갖 종류의 종교가 다 들어와 있었고, 그리고 굉장한 규모의 성전력 들만 하더라도 열두 개 이상의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거기 있는 아프로디테 신전 이른바 사랑의 여신이라고 불렸던 신전에는 1000명 이상의 성창 홀리 플라스틱 튜트라고 부르는 그런 매춘부들이 득식을 그리는 곳이었고 심지어 아폴로 신전이라고 하는 것도 잘생긴 미소년들을 두고 남자와 여자들이 성적 충동을 이렇게 해결했던 그런 끔찍한 도시예요. 

그래 왜 그런 도시에 바울이 가게 되었냐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은 전혀 복음을 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곳이에요.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보면 알겠지만, 발걸음이 늘 대도시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야 물론 회당이 있는 곳을 겨냥하기도 했지만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 뭡니까? 다 성공을 갈망하는 사람들이죠. 돈 벌려고 도시에 오는 것이죠. 이름 나겠다고 도시에 오는 것이죠. 그때나 지금이나 도시에 몰려드는 이유가 뭡니까? 그래야 대도시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특징을 바울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입니다. 

도시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목마름 그렇게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 돈을 벌거나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욕구 인기나 명예를 얻고자 하는 욕구 어떻게든지 사람들한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그 많은 것들의 욕구 뒤에는 기본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있다는 것 그러나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복음의 능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도시로 향한 거예요. 그래 이 고린도라는 곳에 그는 드디어 이르게 됩니다. 누구랑 같이 갔습니까? 혼자 지금 갔어요. 아테네도 디모데와 신라를 거기 남겨두고 왔기 때문에 혼자 있었고, 지금 여기도 지금 혼자 온 거예요. 자 와서 지금 어떤 일이 있습니까? 이 절 3절입니다. 

시작 아*라라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그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거로 그가 안에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아로부터 새로운지라 바울이 그들의 교감에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그리고 그는 이 고린도에 이르러서 누구를 만납니까 이번에는 아*라라고 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가 빌리포에서 루디아를 만났고 또 데살로니카에서 야손걸을 만났듯이 그가 가는 걸음걸음마다 이렇게 사람을 만난다는 거예요. 우연일까요? 뭐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죠. 

그 사 이 노사현 씨의 만남이라는 가사 첫 마디 첫 소절 때문에 노래가 지금도 불리고 인기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라는 거예요. 그 노사현 씨가 예수 믿기 전에 부른 노예요. 근데 왜 예수도 안 믿는 사람들이 인생의 필요는 없다는 진화론자들은 왜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부르면 안 되죠. 다 우연인데 왜 우연히 아니란 노래를 부릅니까 살면 살수록 우연이 아니라는 게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여러분들이 믿음의 길을 간다는 것은 우연히 없다는 것을 반드시 인정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 만나는 건 우연이 아니에요. 정말 살아보십시오. 나이 좀 더 들어 보십시오. 

왜 그때 사람을 만났나 이 사람 만나서 내 인생은 어떻게 지금 되고 있나 저는 이 바울이 가는 걸음걸음마다 절묘하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고린도에서 지금 아*로라고 하는 사람 흑해 남쪽에 있는 남서쪽에 있는 본도라고 하는 지역의 출신이에요. 이 사람이 브리스길라라는 여자하고 결혼했겠죠. 그래서 로마에 살고 있었어요. 근데 어떻게 로마에 살던 이 사람이 여기 지금 바우를 만날 수밖에 없는 이 고린도까지 왔냐는 것이죠. 그건 에이디 49년에서 50년 사이에 있었던 로마에 있었던 글라우디오 황제 칙령 때문에 유대인들이 다 쫓겨남으로써 생긴 일이에요. 

왜 쫓겨났는지는 스웨토니우스라는 로마 황제들의 전기 작가의 기록이 따르면은 글라우디오 때 에이디 49년에서 50년 고 사이 때 유대인들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하고 부딪치는 거예요. 소동을 또 일으킨 거예요. 그래서 소동 때문에 글라우디오 황자가 칭령을 내려서 모든 유대인들의 소개령 철수령 퇴거령을 내린 거예요. 다 쫓겨난 셈이죠. 그래서 지금 이 사람이 여기까지 지금 오게 된 거예요. 근데 바울이 지금 이 고린도에 와서 이 아*라와 프리스킬라 부부를 찾아갔겠죠. 어쩌면 신앙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장막업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 단신으로 왔기 때문에 당장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될 입장 아니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그는 장마거부라는 여기 만나 가지고 지금 생업이 같기 때문에 함께 살며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무슨 이 텐트업뿐만 아니라 장막 제조업뿐만 아니라 무슨 제조업을 하는 사람들은 1층에다가 대개 작업실을 만들었어요. 지금도 그러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층에 살림집 주거공간을 만든 거죠. 이 사도 바울이 아마 찾아왔기 때문에 서로 얘기를 하다가 장막업을 같이 하기로 하고 일을 같이 돕기로 하고 그리고는 아마 이 층에 주거 공간을 하나 따로 마련해 주었을 거예요. 그래서 여기 와서 지금 바울은 그냥 외롭고 의지할 데 없고 그야말로 당장 막막한 이곳에 와서 이 아*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남으로써 그는 이제 생계도 해결이 되고, 집에서 같이 텐트를 일용할 양식을 위해 만들면서 그에게는 일종의 삶의 근거지가 마련된 것이죠. 

자 그러면 브리스길라와 이 아골라라고 하는 부부 이 사람들하고 바울이 지금 같이 살게 된 거예요. 만나는 것도 우연이 아니고 같이 살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고 장막업을 같이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고 이 일들이 다 어우러져서 이 사람들이 지금 뭘 하겠어요. 함께 살면 뭐 하겠어요. 밤이 늦도록 이 사람들이 텐트 얘기만 했겠습니까? 밤새도록 사람들이 경쟁업자 텐트 누가 또 텐트를 더 잘 만드나 그런 얘기를 했겠어요. 그리고 누구 손님 뭐 돈 떼 먹은 사람 이런 얘기 욕하고 앉아 있었겠습니까? 사람들이 앉아 가지고. 밤을 새워 아마 얘기를 있다면 예수님이 얘길 것이고. 복음이 여길 것이고. 누구에게 전도해야 될 것인가의 얘기일 것이고. 이 지역에도 누가 예수를 믿는지 누가 예수를 잘 믿고 있는지 그런저런 얘기 아니었겠습니까? 여러분 얼마나 시간이 즐겁고 얼마나 시간이 기뻤을까요? 제가 보스턴에 가서 처음 교회가 개척되면서 말이죠. 

우리 누구 한 형제 집에 가서 밤을 새워가면서 어디에다 우리가 지금 예배 처소를 마련할까 누구한테 우리가 전도할까 얘기를 밤새 며칠씩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나 흥분된 시간인지 몰라요. 여러분 인생에 뭐가 기쁩니까 뭐로 밤을 새워 보십니까 저는 술로도 밤을 새워봤고 노 도박으로도 밤을 새워봤지만 허리만 아파요 밤을 새워서 여러분들 하는 일이 뭐예요? 이 사람들이 생업이라는 걸 가지고 있지만 뭐가 본업이에요. 이 사람들의 본업은 여러분 인생의 답은 본업을 찾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 부업과 본업을 분별하는 게 구원받은 삶이 여러분들 뭐가 본업입니까? 직장에 왜 나가는 거예요.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도 본업과 부업이 있어요. 여러분 부업 때문에 본업을 잃어버리면 그건 많은 길입니다. 

직장에 나가서 일은 안 하고 여러분 주식시세만 들여다보다 망한 사람이 한둘입니까? 본업을 잘해야 돼. 본업을 잘해야 돼. 구원받았다는 것은 본업이 뭔지를 아는 삶이에요. 인생이 그래야 비로소 정리가 돼요. 비록 장막을 만들지만 비록 거처 다락방 같은 곳에서 더부살이하는 신세지마는 이 텐트 메이킹이 본업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일 사람을 낚는 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일 이게 본업이란 거예요. 이게 본업 여러분 구원이란 이 본업 찾는 일이에요. 여러분들이 하는 일에 본업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들은 일을 본업을 위해서 준 부업이란 말이에요. 

부업 이게 정리가 안 되면 여러분 예수 아모리 믿어도 혼란스러워요 더 뒤엉켜요 제가 기도하는 제목 중에 제일 답답한 기도가 주님 제가 이 교회에서 헌금 제일 많이 하는 장로 되게 해주세요. 왜 그런 기도를 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돈 제일 많이 벌고 싶다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헌금을 만회하고 싶다는 핑계로 제일 부자되고 싶다는 거 아니에요. 뭐 그래서 부자 되겠다는 게 나쁜 게 아니에요. 그러나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가 돈 좀 더 벌고 싶다는 것 그게 신앙의 바른 자리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이 열심히 돈을 벌어서 헌금을 제일 많이 하는 성도가 되었다고 칩시다. 사람 돈 번다가 말이죠. 여러 사람한테 상처를 얼마나 주겠어요. 그래서 사람 돈 버는 거 보고 사람 같으면 내가 죽어도 나는 예수 안 믿겠다. 사람이 교회 다닌다면 난 죽어도 교회 안 가겠다. 

그런 사람들을 수없이 만든다면 헌금 실컷 하고 천국 가겠어요. 저는 이 우리가 생업에 대한 이해를 우리가 잘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본업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구원받은 삶이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 우리가 본업이라고 생각하는 걸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내 본업을 좀 도와주세요.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이 안 바뀌면 여러분 구원받고도 헷갈려서 못 삽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직장에서 직장에 무슨 회장이 되는 게 목적이 아니고 직장에서 뭐 벌금 많이 올라가는 것 승진 빨리하는 것 그게 목적이 아니에요. 그런 거 기도 제목으로 내놓지도 마세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직장에 파송받았는데 거기서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본인이 목격을 해야 될 거 아니겠어요. 

그가 지금 브리스길라와 아*라 부부를 만나서 같이 열심히 일하겠죠. 여러분 주문 들어오면 다 일해야죠 그러나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가는 일상의 삶 삶의 목적 삶의 본업 삶의 궁극적인 가치가 어디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들은 이 일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거예요. 저는 함께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또 한 가지 보십시다. 이 브리스길라와 아*라 부부는 왜 결혼한 거예요. 평생 장막 만들어 돈 벌려고 결혼한 거예요. 아니에요. 이 지금 누가가 보면은 지금은 아*라와 브리스 길라지만 조금 있으면은 브리스 길라와 아*라로 이름 순서가 바뀌어요. 초대 교회에서 여자들은 존재가 미미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 이름이 먼저 나왔다는 것은 이제 브리스 길라의 여성 지도사로서의 위치가 이게 도드라졌다는 뜻이고 이미 사도 행전을 통해서 여성의 지위가 교회 안에서 만만치 않았다는 걸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표현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브리스킬라와 아*라 부부는 뭐 하러 결혼한 거냐는 말이에요. 여기 보니까, 함께 살며 복음 전하기 위해서 결혼한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의 결혼이 복음전하며 살기 위해서 결혼한 거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업을 놓쳐버리고 맨 딴 부업 가지고 싸우지 마세요. 부부 싸움이 왜 일어납니까 부업 가지고 싸우는 거예요. 본업을 몰랐어요. 본업을 놓쳤으니까. 본업을 잊어버렸으니까. 본업을 잊어버렸으니까. 그래야 비록 생업이지만은 일상의 생업을 통해서 그들은 오직 관심이 거기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저는 생업이 잘 됐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본업은 뭐예요? 또 4절 말씀 읽습니다. 

시작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그들은 안식일마다 일을 쉬면서 그리고는 회당에 가서 인제 예수가 그리스도다 이걸 증가하면 디베이터가 생길 거 아니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그게 성전 모독 아니냐 그러다가 십자가 못 바뀌었던 거 아니냐 이런저런 그게 단순한 일방적인 설교가 아니에요. 저처럼 이렇게 3,40 분 혼자 설교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 치열한 토론도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권면했다는 건 납득시켰다는 거예요. 예수가 그리스도다 예수가 주다 예수가 메시아다 당신들이 그렇게 그려 오던 메시아는 예수님이 오셔서 메시아임을 증가하셨다 이 얘기를 거침없이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게 설득이 되었다는 그런 뜻이에요. 자 근데 이제 이때 지금 어떤 일이 또 있습니까? 5절 말씀 읽습니다. 

시작 신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니아로부터 내려오매 바올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신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니아로부터 내려왔어요.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홀로 어쨌거나 지금 이제 아블라 브리스킬라와 부부가 지내긴 하지만 그쪽 소식도 궁금하고 지금처럼 뭐 이메일이 있습니까? 무슨 날마다 소식이 전해집니까 하여튼 뭔가 궁금하지 않았겠어요. 그리고 소수의 무리들이 있는 삶을 누가 어떻게 전해 주겠어요. 근데 이거 신라와 디모더가 내려와서 소식을 가져왔어요. 무슨 소식을 가져왔는지 한번 데살루니카 전서 3장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데살로니카 전서 그들이 가져왔을 소식을 한번 우리가 한번 같이 들어보십시다. 데살로니카 전서 3장 6절에서 8절까지입니다. 

시작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의 믿음과 사랑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란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굳게 선정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아이고 이제 살 거 같네 이 소식을 들으니까. 왜 이제 살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죽을 것 같아지겠죠. 답답해서 힘들어서 죽을 것만 같았는데 이 소식을 들으니까. 살 것 같은 거예요. 그냥 안숨 그냥 안식과 그냥 편안한 숨을 쉴 수 있게 된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소식을 못 들으면 얼마나 답답합니까? 아침에 나간 남편이 저녁에 늦게 퇴근하는 시간이 늦어져도 안달복달하는데 며칠씩 몇 주일씩 이렇게 연락이 없으면 얼마나 답답해요. 그런데 잘 있다는 거예요. 

믿음으로 든든히 잘 서가고 있다. 이런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분 어디 인큐베이터에는 애기가 잘 자란다 소리 듣는 거하고 마찬가지 아니에요. 그런 기쁨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이 바올라와 바올바울이 신라와 디모델을 만나고 기뻐하는 장면이 눈에 선해요. 얼마나 얼싸안고 기뻤겠어요. 저는 여러분들이 이 땅에 만나서 기쁜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왜 기쁠까요?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뻐요 바울과 이 디모데와 신라와 그리고 아*라와 브리스길라와 나오는 사람들이 전부 한 가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안 만나도 그립고 만나면 기쁜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지금 여기 나와서 기쁩니까 몇 사람 안 되네 여러분들이 세상 생각만 하고 와 있으면 여기 지금 앉아가지고도 세상 생각할 거예요. 

설교 언제 끝날래나 저는 여러분들이 반가운 이유 기뻐하는 이유 사람과 사람이 함께 있어도 기쁜 이유는 여러분 한 생각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또 저와 여러분들이 가정 내에서도 온 가족이 기뻐하는 길은 한 가지 생각으로 뭉치는 거예요. 각자 생각이 다르고 관심이 다른데 어떻게 가치 있다고 기쁩니까 같이 있으면 고통이죠. 저는 이 사람들이 이렇게 기뻐하는 게 눈에 선해요. 얼마나 기뻐서 밤을 새워 얘기했겠습니까? 끝이 없었겠죠. 끝없이 얘기가 오고 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랬더니, 바울이 말이죠.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는 거예요. 아니 바울은 원래 말씀 전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이런 소식을 듣고 하니까 말씀에 더욱 굳게 붙들린 것이죠. 붙잡혔다는 건 말씀에 소유당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사로잡힌 거예요. 

여러분 인생의 비밀은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붙잡고 있는 게 여러분 인생이에요. 뭐한테 여러분 붙잡혀 있습니까? 여러분들에게 붙잡혀 있는 게 여러분들의 인생이라니까요? 돈에 붙들려 있습니까? 무슨 다른 거에 붙들려 있습니까? 자식들한테 붙들려 있습니까? 붙들려 있는 게 여러분 인생 아니에요. 사도바울은 말씀에 붙들려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었어요. 사람의 말에 붙들린 게 아니고 사람의 사상과 이념에 붙들린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렸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렸다는 뜻은 내가 하나님 말씀에 항복했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에 항복하게 되면 여러분 내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을 해요.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게 되면 말씀이 여러분들 생각을 태우기 시작해요. 여러분 우리 마음 같은 인간의 언어 인간의 생각 인간의 아이디어 인간의 이미지로 쓰레기장이 된대요 그래서 우리는 쉼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디 간다고 쉴 줄 압니까 휴가지 가면 쉽니까 아니에요. 뭐 웬만한 부분은 파혼 직전으로 돌아와 이혼 위기를 맞고 돌아오는 거예요. 우리 마음 같애는 여러분 온갖 쓰레기가 있는데, 이 쓰레기를 태우는 게 말씀의 능력이에요. 그래서 말씀에 붙들렸다는 것은 말씀이 더 이상 내 생각에 이끌리지 않도록 그렇게 나를 이끌어가는 삶이 되었다는 거죠. 왜 이 교회가 말씀만 읽으라고 하겠습니까? 왜 우리가 말씀 통독반을 만들어서 말씀만 읽는데 주려고 합니까? 이 말씀은 텍스트예요. 여러분 이 시대는 텍스트 지금 다 놓쳤습니다. 

여러분 다 우리 자녀들을 왜 잃어버린지 아십니까? 우리 자녀들을 이미지에 다 뺏겼기 때문이에요. 텍스트보다도 이미지는 훨씬 말초적이고 훨씬 강력하고 훨씬 파워풀해요. 그 아이들한테 이미지 세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동영상 세대를 만들어 놨기 때문에 더 이상 텍스트에 관심이 없어요. 그러나 모든 것들이 텍스트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 이걸 우리가 깨우치지 않으면 절대로 성경 안 읽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목숨을 걸고 텍스트에 집중하기로 결단한 교회예요. 그리고 이 텍스트가 이미지를 태우는 것을 경험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에 제가 LA 집회하러 갔는데 거기 아이가 나타났어요. 우리 김원이라는 열세 살 먹은 아이인가 6학년 수학 6학년인데 얘가 지금 공부하러 왔는데 집회 와가지고 7번 설교를 한 시간씩 하는 설교를 다 듣고 앉아있어요. 

그 이번에 집회하면서 재밌는 현상은 우리 성도들이 17명 왔습니다. 내가 연락도 안 한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남의 귀에 집회 왔는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잠시만 휴가 내서 온 사람도 있고 뭐 와서 거기 와서 다 만났어요. 근데 나는 애가 눈에 계속 들어오는 거예요. 도대체 쟤가 초등학교 6학년이 무슨 설교를 이거 7번씩이나 다 듣고 앉아 있냐 근데 알아봤더니, 얘가 여기 서울에서 통독반에서 우리 이 반에서 같이 얘도 같이 읽은 거예요. 그 얘를 읽게 하기 위해서 어른들이 지금 이 개혁개정 성경을 포기하고 어린이 성경으로 같이 읽은 거예요. 그러다가 걔가 지금 거기 유학 온 거예요. 그래서 걔는 이미 텍스트에 사로잡힌 애가 된 거예요. 말씀에 붙들린 애가 된 거예요. 7시간 동안 말씀을 들어도 귀를 열어서 더 듣고 싶은 아이가 된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아이들을 되찾아오는 방법은 성경에 있다는 걸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성경 읽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들 어린이 성경 쉬운 성경 현대인의 성경 읽으십시오. 여러분 생각을 태우는 것은 말씀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타버리고 없어져야 돼요. 그 제가 우리 이 정말 여러분들한테 이 한 가지 제가 이 캐치프레이즈를 알려줄게요 텍스트 오버라이즈 이미지예요. 영어 써서 죄송한데 다 여기 영어 대충 알아들으니까. 근데 이거 한마디는 알아들어야 영어 10년 20년 공부하면 보람이 있을 거 아니에요. 텍스트 오버 룰스 이미지 텍스트가 여러분 이미지를 이깁니다. 이 텍스트가 없으면 이미지에 점령당합니다. 여러분들 이 텍스트가 없으면 세상에 못 이깁니다. 

제가 단언하건대 여러분들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 왔다 갔다 해도 이 텍스트가 없으면 텍스트 베이스 이매제네이션 이 성경 말씀에 기초한 상상력을 여러분들이 키우지 않으면 세상의 상상력 세상의 아이디어 세상의 이념에 통째로, 붙잡히게 될 것입니다. 점령당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은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그리스도인이 안 될 것입니다. 사도 마을이 여기 붙들린 거예요. 붙들린 거예요. 항복한 거예요. 말씀에 그러면 이미지 세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고린도의 음란한 이미지가 아니라 이 말씀 텍스트에 붙들렸을 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뭡니까?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거예요. 예수는 마일로드 주인이라는 거예요. 예수는 메사야 메시아 그리스도 메시아라는 거 아니에요. 그분이 구원이라는 거예요. 이게 안 붙들리면 다른 메시지가 하는데 그건 뭡니까? 

돈이 구원이다예요. 권력이 구원이다예요. 이 성공이 구원이답니다. 행복이 구원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아이디어가 하나님이 구원이 아니라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보고 살아가는 눈앞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이 구원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육신의 정역과 안목의 정역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돼 있어요. 여러분들 왜 이 텍스트를 묵상하는 것이 복이라고 말합니까? 이 텍스트를 묵상하는 것 이 텍스트를 기반으로 기도하는 것 그때 여러분들의 생각이 아침마다 태워지기 때문에 그게 복이라는 거예요. 아침마다 말씀을 읽는 것 지금 여러분들 주일날 왜 예배드립니까 왜 이 말씀 듣습니까? 한 주를 이 말씀으로 시작하겠다는 거예요. 이 텍스트로 한 주 간의 생각을 지배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생각을 이 텍스트로 지배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보고 듣는 것에 지배당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 다 잃어버렸어요. 무슨 다음 세대가 있습니까? 걔들이 퀴어 축제를 이상하다고 생각합니까? 이상한 축제를 해도 다 점령당했어요. 저는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소명 그리스도인 가정들이 해야 할 사명 교회가 해야 할 한 가지 사명 그건 이 텍스트 이 말씀을 다시 되찾는 겁니다. 여러분 그게 종교 개혁이에요. 그게 마틴 루트 종교 개혁의 본질입니다. 그 당시 성경 안 읽었어요. 성경 못 읽게 했어요. 라틴어로 다 설교해 가지고 다른 사람 알아듣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기껏 만든 게 다 성상 이미지예요. 그림 그리고 조각하고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텍스트가 없는 이미지만 주었을 때 사람들은 본질로부터 벗어나게 돼요.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가게 돼 있어요. 그래서 모든 중세 교회가 다 타락한 것 아닙니까 텍스트 없는 교회를 만들어 놓은 것이죠. 사단의 전략이에요. 그러나 500년 동안 지금 종교 개혁의 결과가 뭡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가 정신 안 차리면 우리는 어디에 붙들려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요 발걸음이 잠깐 일주일에 한 시간 여기 왔다 갔다 한다고 여러분 되는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텍스트를 삶의 기준점 삶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으면은 우리는 이 세상에 4조를 이기지 못해요. 아오리 그렇게 예수가 그리스도다 예수가 메시아다 예수가 구원이다. 십자가가 구원이다. 이거 그냥 계속해서 반복해서 하는 거예요. 

그러면 더 이상 나를 내 생각을 내가 들은 이념을 내가 가진 가치관을 내가 가진 세계관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거 구원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내가 기준이 아니라는 걸 고백하는 행위예요. 자 그래서 그렇게 얘기하면은 뭐 좋은 일만 있습니까? 6절 7절이에요. 시작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오 너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위하는 디도 유스 돌아가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이 바울이 그냥 하도 이렇게 말해도 또 대적하고 비방하고 낙심캐하고 박해하고 그러니까 바울이 지금 옷 터는 거예요. 뭔지 그전에 바나바하고는 어떻게 했습니까? 신발 터는 거죠. 신발 이거를 이해할려면 에스겔서 33장을 한번 읽어야 돼요. 

에스겔서 33장 에스겔서 33장 4절부터 6절까지 한번 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들의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 차리지 아니함으로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피가 자기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피가 자기 머리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존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칼이 임왕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중의 한 사람이 임하는 칼에 제거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하절이라 이 끔찍한 말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지금 뭐하고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얘기 아닙니까 정신없이 살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가요 바울이 목이 터져라고 전했는데 예수가 그리스도다 세상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다 그걸 피터지게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뭐 기도를 들은 체도 안 하면 그건 내 피가 내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 가지고 지금 바올이 인제 집을 옮겨가지고 디도 유스도라고 하는 헬라인 사람 집에 인제 옮기게 됩니다. 근데 그게 마침 회당 옆이에요. 그랬더니, 8절 말씀 읽습니다. 시작 또 회당장 그리스바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이 바울이 가서 오래 살기만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이사간 집 옆집 사람이 예수 믿게 되기를 추궁합니다. 회당의 옆에 갔더니, 회당장 그리스보가 믿게 되었어요. 온 가족이 믿게 되었어요. 

여러분 코렐리와 온 가족이 구원을 받았고 빌리법 감옥의 간수와 온 가족의 기원을 받았고 저는 이 그리스버와 온 가족이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과 저의 온 가족이 구원받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예수 믿었더니, 우리 온 가족이 함께 구원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일들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근데 구절 말씀을 보면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시작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저는 이 구절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상황을 관련된 것으로 여러분들이 이해하면 좋겠어요. 사실 고린도에 왔을 때 그의 마음은 얼마나 불안했던지 고린도 전서 이 장을 보면은 그때 말씀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고린도 전서 이 장에 보면은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2장 3절 이하에 보면, 이렇게 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서로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 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이 있게 하려였노라 고린도에 갔을 때 그가 내가 약하고 두려워하고 힘이 떨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대사도쯤 되면 이런 얘기 안 써도 되지 않습니까? 나는 강하고 담대했노라 이러면 되지 뭐 약하고 심이 떨고 두려웠노라 이게 여러분 솔직한 고백 아닙니까 예수 믿어도 두렵지 않습니까? 예수 믿어도 떨리는 상황이 있지 않아요. 바울도 그랬다는데 신약 성경 3분의1 을 쓴 사도도 두렵고 떨렸대는데 근데 이렇게 두렵고 떨리는 바우를 알았기 때문에 중심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까? 환상 가운데 나타나서 두려워하지 말라 친목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백성이 이 가운데 많이 있다. 바울이 무슨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 주임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첫째는 그에게 두려움이 이렇게 떨렸다는 거예요. 지금 고린도 전세에서 말씀하듯이 내가 거의 처음 갔을 때 고린도에 갔을 때 난 두렵고 떨렸다 그리고 친목하고 싶은 거예요. 여기선 좀 그냥 입 좀 닫아야겠다. 입 좀 닫아야 되겠다. 그다음에 또 내가 이 사람이 지금 여러분 한군 두 군데 다녔습니까? 가는 곳마다 해를 당하지 않았습니까? 매를 맞고 감옥에 가고 차꼬를 차고 여기서도 또 매 맞을 일을 생각하면 여러분 기분이 좋겠습니까? 끔찍하지요 여러분 한두 번 맞으면 달리를 위해서 겁이 안 날 줄 압니까 맞으면 맞을수록 더 두렵습니다. 또 해롭게 할 자가 여기 또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그리고 누가 도대체 이 고린도에서 믿겠나 누가 도대체 내 복음을 전한다고 누가 믿기를 하겠나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두려워 말라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너 여기 있으면 말이야. 그리고 내 백성이 많다 마치 리노에 십이만 명이 있듯이 이 백성들 내 백성들이 많다 이 백성들이 라오스라고 하는 게 이게 레어티 이게 평신도라는 말이 돼 있지만, 여러분 평신도란 없습니다. 잘못된 표현이에요. 그냥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게 교회를 뜻하는 거예요. 여기도 교회가 있다는 거예요. 내백성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서울 땅에도 있고 평양에도 있고 북경에도 있고 다 내백성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이 음성을 여러분들이 들으면 거기 가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잠잠하지 않게 돼요. 친목하지 않게 됩니다. 말씀 전하게 됩니다. 여러분들 삶이 그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직장에 가면은 거기 내백성이 있다는 거예요. 거기 왜 가는지 알고 가야 한다는 거 거예요. 

그래서 그는 1년 6개월을 가장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렇죠. 3주 4주 만에 떠나다가 1년 6개월을 거기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바울의 이 사역의 기초가 되어서 에베소에 가면 상류 3년을 잊게 돼요. 바울도 여러분께 점점 성장하고 성숙하는 걸 보게 됩니다. 여러분 가르치는 것보다도 더 배우는 길 없습니다. 바울이 성경을 끊임없이 가르치기 때문에 그런 점점 더 복업의 사람이 되어가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전도하는 것보다 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되는 길이 없다는 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전하려면 잘 안 전해져요 그래서 성경책 보게 돼요. 그래서 또 성경과 관련한 책도 보게 돼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설교도 듣게 돼요. 여러분들 어떻게든지 전해야 되겠다라는 이 목적이 있으면 배우는 태도가 달라지고 살아가는 태도가 달라지고 직업이 달라지고 목적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뒤에 있는 얘기는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되었을 때 유대인에게 일찍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말하듯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거늘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 유대인들아 많일 읽으시면서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은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옳거리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므로 하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댄드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이 사건은 갈리오라고 하는 사람은 이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의 동생이 형제예요. 이 사람이 갈리오니까 총독으로 와서 아가야 지역에 이 아데네 고린도 지역에 총독이 온 거예요. 근데 이 사람한테 드디어 고소하는 데 성공을 해서 가서 고소거리를 찾아가지고. 

바오를 고수했더니, 이 갈리오가 이거 감안 들어보니까, 너희들 일이 아니냐 로마의 법령을 위반한 일이 아니라 너희들끼리 해결해야 될 일이구만 가라 하고 쫓아버린 거예요. 그런데 사실 이 갈리오라는 사람은 귀찮아서 쫓았어요. 아마 게으른 사람이었을지 모르겠어요. 뭐 이래 신경 쓰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내쫓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이게 이게 복음이 전해지는 중요한 분기점이 돼요. 이 기독교라고 하는 것이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유대교 안의 문제다 로마의 법을 위반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간접적인 판례가 됨으로써 앞으로 로마 제국 안에서 이 문제가 유대인들끼리의 교리의 문제가 되고 유대인들끼리의 이 논쟁에 관한 문제가 되어 버리는 그런 중요한 판례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의 게으름이 이런 일을 낳는 거예요. 여러분 너무 게을러도 욕하지 마십시오. 인생에 뭐가 답이 되는지 몰라요. 

어쨌건 우리는 이 일을 겪으면서 사도 바울이 1년 몇 년 반 동안 고린도 있으면서 말이죠. 어떤 삶을 살아냈는지 함께 사는 이유가 뭔지 함께 살아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나야 되는지 함께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열매가 고린도 교회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의 시작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시작이 되는 거예요. 한 주간 여러분들은 일터에 가서 뭘 생각하고 사시겠습니까? 뭐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직장에 가시겠습니까? 직장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가지 마십시오. 주님께 붙들려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십시오. 그 사람들 생각이 무서워 가지 마십시오. 여러분들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되어서 그곳에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의 삶이 목적 있는 삶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스도께 붙들린 새해가 되십시오. 나머지 어떻게 해결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생기나 안 생기나 보시게 되길 바랍니다. 저는 바울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되었던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탄생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한 주간 주님 삶에 한 번 올려드리면서 한 주간의 삶 동안 주님 말씀에 붙들린 삶 되게 해 주십시오. 간절히 한 번 1분간 정도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베이직의 성도들뿐만 아니 이따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말씀에 붙들린 사람이 되게 하셔서 하루종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루종일 생각을 태우는 사람 되게 하시되 말씀으로 자기의 생각들을 다 태워버리게 하여줘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말씀이 나한테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게 하시되 내 생각을 붙들고 기도하는 기도가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 베이직 교회 성도들 한 사랑 한 사람의 새해가 놀랍게도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도적 발걸음이 되게 하시고 그 어떤 사도보다도 더욱더 사도적인 삶의 열매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가는 일터마다 교회가 되게 하시고 가는 일터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시고 가는 삶의 자리가 놀랍게 그래도 하나님의 평강 셜롬이 물을 뜬 흘러 넘치는 가정이 되게 하시고 친구가 되게 하시고 관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정말 주님 주신 평강으로 하루 종일 우승으로 전도하게 하시고 주님 주신 말씀으로 하루 종일 하나님의 삶으로 단정하게 하셔서 우리 성도들의 삶이 가는 곳마다 놀랍게 죄 큰 해가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베이직 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져 살아가는 삶의 일상의 자리가 예배의 자리 되게 하시고 그들이 맺는 관계를 통해서 놀랍게도 교회가 탄생하게 하여 주옵소서 사도들의 행함을 통해 교회가 일어났듯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행함을 통해서 놀라운 교회가 탄생되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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