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창고

[설교] 히브리서 1장

yt1981 2023. 8. 30.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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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히브리서 1장 말씀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회 은총이 우리가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부터 히브리서 강의를 시작합니다. 지난번 빌레몬서까지의 로머서부터 빌레문서까지가 13편의 바울 서신이었습니다. 서신서 중에서는 바울이 쓴 것이 먼저 등장을 하고 그다음에 나오는 서신들을 바울이 쓰지 않은 서신들 일반 서신이라고 불러요 그중에서도 히브리서는 좀 독특합니다. 히브리서 다음에 나오는 야거보 베드로 요한 유다 여러 가지 서신들이 다 누가 썼는지가 확실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만큼은 누가 썼는지가 불분명한 서신이에요. 혹자는 바울이 썼다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히브리서 제일 마지막 부분에 13장 23절 보시면, 한번 찾아볼까요? 

제일 끝부분에 히브리 13장 23절에 보시면, 이렇게 말이에요.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형제 디모데라고 하는 말은 디모델은 바울과만 사역했으니까. 아마 이 책은 바울이 썼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일리가 있죠. 그런데 또 보면 바울은 모든 자기가 쓴 서신 앞에 자기를 밝히고 있어요. 네 누가 썼고 누구에게 썼는지를 하나님의 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이 누구에게 쓴다는 말을 다 밝히고 있는데, 히브리서는 그게 없단 말이죠. 그래서 아마 사도바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면 누구일까? 혹자가 중에는 바나바라는 설도 있고 여러 가지 설들이 있지만 우리는 일단 알 수 없다는 거죠. 그런데 알 수 없다. 

오리겐이라고 하는 교부는 히브리서의 저자는 하나님만 하신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것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책인데 더 중요한 건 그거죠. 그렇다면 이 정경에 캐논 누구든지 믿고 따를 만한 이 정경에 누가 썼는지 불분명한 책이 들어온 이유가 뭐냐는 거예요. 과연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지만, 왜겠어요. 내용이 탁월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성경은 성경 자체가 자신의 정경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성경을 히브리서 읽어보면 당시에 정말 여러모로 핍박 가운데 있고 어려움 가운데 박해 가운데 죽어가던 이 히브리 유대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만한 너무나 귀한 책이다. 

그래서 누가 썼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러나 이 당시에 사도 바울 또는 그에 필적할 만한 신앙의 정통성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쓴 것이 분명하다라고 누가 봐도 의심할 수 없기 때문에 히브리서는 정경이 된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히브리서를 볼 때는 이것은 사도바울 서신은 아니지만,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 또한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살아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잘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 히브리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1장부터 10장 18절까지가 긴 내용이죠. 대부분의 내용이 뭐냐면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는 거예요. 예수님은 누구신가 여러분 이 히브리서에 이 수신자가 히브리인들이잖아요. 히브리인들이라고 할 때 어떤 히브리인들일까요? 

히브리인들은 기본적으로 이스라LG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히브리인이라고 하죠. 유대인들 그런데 사람들이 있고 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즉 이스라엘 밖에서 태어나고 자란 해외파들이 있단 말이죠. 바울처럼 또는 디모델처럼 그런 사람들도 히브리인이죠.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히브님들이 누구냐면 그렇게 해외파 중에서도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된 사람들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구조로 고백하는 히브리인들이죠. 그러다 보니까, 그들의 신앙적인 정체성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그들의 민족적인 정체성은 유대인이죠. 그러다 보니까, 유대인들은 뭐에 능숙하냐? 구약성경에 매우 능숙합니다. 구약 성경에 능숙하다는 이야기는 뭐냐면 하나님 신성에 대해서는 거의 완벽하게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히브리서를 왜 써야 되는가 히브리인들에게 뭐가 필요한가 바로 그 하나님을 알고 있는 지식에 이제는 뭐가 필요한가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과 동격이시다라는 것을 지금 강조하고 있는 책이 히브리서인데 그래서 1장부터 10장 18절까지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10장 19절부터 마지막 13장 끝까지는 이제 현실적인 조언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박해의 상황 가운데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 초대 교회에서 어떻게 신앙을 유지할 수 있고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조언이 이제 마지막 뒷부분입니다. 자 그래서 이 히브리서를 우리가 읽을 때는 참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됩니다. 너무 어려운 상황이다. 여러분 히브리서에서 가장 유명한 장이 몇 장이에요. 

히브리서 11장이죠. 11장이 왜 유명하죠. 그게 왜 유명해요. 믿음장이라고 우리가 말하잖아요. 네 믿음장 그래서 믿음은 뭐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이렇게 시작을 해 가지고 또 믿음의 전당이라고 해서, 예 쭉쭉 다 믿음의 구역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쭉 등장을 합니다. 여러분 믿음이 강조됐다는 말이 뭐예요? 왜 믿음장이 히브리서에 있어요.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만큼 믿음이 흔들리고 믿음이 부정되고 믿음이 거부되는 시대였다. 그만큼 힘들고 어려웠다는 거죠. 그래서 믿음 장이 있고 믿음에 대해서 강조하고 믿음의 위인들이 강조되고 있는 책이 히브리서다 어찌보면 오늘날 이 감염병의 위기 가운데에서 교회 정체성 과연 교회가 왜 존재하는가라고 하는 이 사회적인 질문 앞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 히브리서는 참 중요한 책이 아닐 수 없어요. 

먹고살기도 힘든데 교회는 왜 가야하는 하든가 자녀 교육이 힘들고 학교가 회사가 막히고 시장이 막히고 나갈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이 시대에 과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질문을 하고 있어요. 세상이 거기에 우리가 뭐라고 답할 것인가? 그것을 우리 히브리소에서 알 수 있는 거죠. 자 그래서 이 히브리서에 보면, 대부분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히브리 교인들이니까. 히브리 사람들이니까. 구약에 능통하다고 했죠. 이분들은 전통에 굉장히 능한 분들이에요. 그러니까 전통에 능하다는 것은 해 오던 것대로 하는 것이 편해요. 그리고 해오던 것은 뭐냐면 눈에 보이는 것이고. 그게 만져지는 것이고. 그게 익숙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대표적으로 할례 또는 안식을 지키는 거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잖아요. 여러분 할례가 뭐예요? 

몸에 흔적을 남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몸에 남긴 흔적은 얼마나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시로 명확 어떡합니까? 그런데 예수님 믿는 건 할례와 다르잖아요. 예수님 믿는 건 믿음이잖아요. 오직 믿음 이건 보이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히브리 사람들이 차라리 몸에 상처를 내고 칼을 대는 할레는 확실해 보이는데 믿는 건 확실해 보이지 않는단 말이죠. 그리고 안식을 지키는 거 안식을 준수하는 건 얼마나 또 분명해 보입니까? 안식이란 아무것도 안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을 오직 신뢰하고 믿고 따르는 거 주님만 영과 진료로 예배하는 거 이거는 눈에 보이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 당시 시 군인들이 많이 헷갈렸어요. 그래서 로마는 박해를 하죠. 정통 유대인들은 쫓아와서 너희 잘못 믿고 있다고 맨날 시위 벌이죠. 

사회적으로는 점점 어려워지죠 그러니까 이 당시에 예수님을 믿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히브리인들이 신앙이 풍전 등화에 놓인 거예요. 너무너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이 상황은 이겨낼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상황을 우리가 뚫어낼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확실해 보이는 세상의 전통들을 어떻게 신앙으로 넘어설 수 있을까라고 하는 질문을 지금 받고 있는 것이에요. 이러한 질문을 우리 기억하면서 과연 그럼 하나님을 계속 믿어야 되는가 예수님을 구조로 믿어야 되는가 아니면 이전에 구약의 전통으로 돌아가야 되는가라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 이 당시에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과연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가 한번 보겠습니다. 1절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자 하나님이 어떤 분이세요. 말씀하시는 분이에요. 

말씀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이게 중요해요. 원래 하나님은 신이잖아요. 신은 누굽니까 신은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신은 감추어져 있는 것이에요. 원래 그게 종교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노력을 하고 수고를 해서 감춰져 있는 신을 알아가는 게 종교 아닙니까 그런데 기독교의 하나님은 달라요. 하나님이 말씀을 하셔요 우리에게 계시를 주세요. 자기를 열어 보여주세요.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의 신과 다른 겁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노출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이고 자기의 뜻을 알려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에요. 왜 그렇게 해도 되니까. 왜 하나님은 우리와 차원의 다른 부지니까 여러분 그리스 로마에 나오는 그런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나 여느 신들을 보면 인간과 비슷합니다. 인간보다 조금 낫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오픈하지 않아요. 괜히 인간들이 자기를 따라잡으면 안 되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분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자기를 오픈하시는 거예요. 

자기를 보여주시고 말씀하시죠. 그래서 옛적부터 옛적은 구약시대죠 구약시대부터 선지자들을 통해서 모세아라든지. 다윗이라든지. 엘리아라든지. 많은 이들을 통해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어요. 뭘 말씀하셨는지가 없어요. 1절을 잘 보세요.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누굴 통해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고 언제 옛적에 말씀하셨고 어떻게 여러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는데 제일 중요한 건 말한 내용이 없어요. 왜일까요? 그게 이 절에 나오기 때문이에요. 이 절에 볼게요 이 절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이게 말세죠 말세라는 것은 예수님이 초림하신 때부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즉 그러니까 신약시대 오늘날의 시대는 다 말세입니다. 말세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그랬어요. 여기서 말하는 아들을 통하여라고 하는 것이 뭐냐 이것이 구약과 신약의 차이죠. 

구약은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부분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고 이제 신약시대에 와서는 아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통하여 말씀하시는데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라고 하는 이것이 바로 핵심적인 내용이 됩니다. 즉 예수님이 왜 중요한가. 구약시대 다윗과 모세와 엘리야와 요셉과 야곱과 이삭과 뭐 다니엘과 그 수많은 예레미야 뭐 다들 왜 존재했는가 바로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이 다 존대했다는 거예요. 자 그래서 이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신 내용이 뭐냐면 바로 이 절하반절입니다.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거예요. 여러분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었다 이게 뭐죠 그는 창조주시다라는 말이죠. 아들이 창조주란 말이에요. 

예수님이 그냥 어쩌다가 하나님 님이 그를 이쁘게 보셔서 아들을 삼으신 게 아니고 어쩌다가 그가 훌륭한 사람이라 하나님이 그를 아들로 하자라고 하신 게 아니고 예수님이 모든 세계를 지을 때 그로 말미암아 지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창조주다 피조물이 아니다. 우리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죠 게다가 그러니까 천지를 지었기 때문에 만물이 그로부터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는 만유의 상속자가 되시는 거죠. 여러분 이 얘기를 하나님이 구약세 시대부터 해오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신약시대 계속하고 있다는 거예요. 즉 성경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뭐냐 예수님이 창조주고 예수님이 만유의 상속자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살 길이다라고 하는 것을 지금 성경이 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자 이어집니다. 3절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본체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으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시는 일을 하시고, 그랬어요. 자 예수님에 대해서 두 가지로 더 말씀하시는데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다 그리고 본체의 형상이다. 이 말이 뭐죠 동격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예수님이다. 그렇죠.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예수님이면 이 예수님이 영광의 광채니까 하나님이죠. 게다가 본체의 형상이니까. 예 본체란 본일과 형상이 있는데, 형상이 예수님이에요. 그럼 하나님도 예수님인 거예요. 그래서 오늘 이 히브리서가 시작하면서 보통 편지처럼 뭐 누가 누구에게 편지를 쓰노니 이런 말이 아니라 처음부터 본론에 들어갑니다. 왜 그만큼 지금 다급하니까 그만큼 지금 흔들리고 있는 이 히브리인들에게 분명한 신앙을 전해주기 위해서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본론을 던집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제 너희들이 더 이상은 할례도 아니고 더 이상은 안식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어떤 전통도 아니고 이제는 예수님으로만 죄시순 받고 구원받고 천국 갈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3절 하반절에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능력의 말씀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을 통해서 만물을 붙드신다 자 만물을 붙든다는 얘기는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만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 교회 안에서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의 삶의 자리 우리 가정에서도 우리 직장에서도 일터에서도 사회에서도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분이 어떤 일을 하십니까?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신다 바로 우리의 구원자다 우리의 죄를 씻는 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강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 외에 다른 방법을 말하는 자들의 말에 따르지 말고 거기에 넘어가지 말고 오직 예수님을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떠나 강조합니다.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시니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지극히 크신 이가 누구예요? 하나님이죠. 하나님 우편에 앉았다. 우편이 어디예요. 동격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동격이 되셨다는 거예요.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여기까지 일 이 3절이 뭐냐 선포입니다. 선포 케리그마 히브리서는요 정말 시작하고 일이 3절 숨부 안 쉬어요. 그리고는 바로 선보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캐리그마 이것이 당시에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해결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선포는 이 일이 3절의 캐리그만은 실은 백신과도 같습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것으로 교회가 지금 흔들리고 있구요. 교회가 여러 가지 세상이 말하는 가치들 때문에 지금 요동치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모습 때문에 수많은 욕을 먹고 수많은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어요. 다시금 우리가 회복해야 될 우리의 가장 중요한 우리가 정화되어야 될 부분이 어딘가 그것이 바로 이 일이 3절이에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 온 세계를 지으셨고 만유의 상속자시고 그분이 하나님의 영광이 광채시고 본체 형상이시며 만물을 붙드시는 분이 바로 그분이고 우리 죄를 씻으셨고 그분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여러분 이것을 고백하는 거 예수님만 우리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을 다시금 고백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우리가 다시 한번 회복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이 주시는 신앙의 백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 이것을 회복하는 것이 이번 히브리설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될 바인줄로 믿습니다. 신앙의 핵심이 뭐냐 열심히 믿는 거 아니요. 바르게 믿는 거예요. 그럼 바르게 믿는다면 뭘 바르게 믿는 겁니까? 신앙의 핵심 바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은혜예요. 오직 성경이고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는 여러 가지 가치들이 신경 써야 될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민이 많아지고 생각이 점점 퍼져나가요 그러면서 옅어져요 그것을 하나로 뭉쳐서 우리의 신앙의 핵심이신 하나님을 떠올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은 그러면 그때부터 우리 신앙이 명확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감염병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지가 선명하게 나타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기억하는 거죠. 자 그래서 일 이 3절은 선포고요. 이 히브리서의 중요한 포인트는 선포 뒤에 뭐가 나타나나 바로 비교가 나타난다는 거예요. 비교법 그래서 히브리선은 수많은 대상들과 예수님을 비교합니다. 특히나 히브리히들이 잘 알고 있는 구약에서 나오는 대상들과 비교해서 선포를 하는데 바로 4절과 5절이 1004와의 비교입니다. 4절 그가 1004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그랬어요. 예수님이 1004보다 훨씬 뛰어나다 여러분 우리도 정말 착한 사람 보면 1004 같다고 그러잖아요. 1004 같다 말이 뭐예요? 사람은 저럴 수가 없는데 사람보다 뭔가 좀 훌륭해 보일 때 우리는 1004 같다고 원하잖아요. 이 당시도 그랬단 말이죠. 

사람 위에 1004라고 하는 존재를 우리가 지정해 놓고, 있었는데, 그것이 예수님과 1004 누가 더 높으냐 이걸 가지고 수많은 격론이 벌어질 정도로 그렇게 예수님은 인간보다 조금 더 나으신 분 마치 1004 같은 분으로 오해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히브리서 저자는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1004들과 비교할 수 없다. 5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1004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하는 거죠. 구약에 나오는 10편 이 편 7절에 나오는 너는 내 아들이라는 말씀 그리고 사모해라 7장 14절에 나오는 나는 그에게 아버지 되고 그런 내게는 아들이 되리라 이 말씀을 가져오셨어요. 그래서 지금 대비하고 있는 거예요. 유대인들에게 1004는 대답 존재가 맞아요. 그러나 그들은 1004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죠.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죠. 1004들은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천사를 두려워할 것도 없고요. 천사를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영존하신은 지혜자요 모사이신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구조로 믿고 그분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죠. 여러분 어렵고 힘들수록 생각이 단순해져야 됩니다. 복잡해지면 어렵습니다. 히브리서를 읽으면서 우리가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다시금 만나길 원해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우리 속에 다시 한 번 회복하고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그냥 뭐 불교 믿을까? 유교 믿을까? 이슬람 갈까 아이 그냥 교회 갈까 이게 아니에요.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이시고 천지를 만물을 창조하시는 분이고 만물을 붙으시는 분이에요. 

여러분 그렇게 믿는다면 우리 일상이 예수님은 믿으면서 똑같이 염려하고 안 믿는 사람들처럼 똑같이 걱정하고 근심하며 살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왜 우리는 천지 만물의 주인을 믿는데요. 천지 만물의 영광 광채를 믿는데요. 우리 죄를 씻으실 분을 믿는데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생명의 주인을 믿는데요. 그렇다면요 우리가 이런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여러분 우리가 절망할 수 없구요. 낙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분을 믿는 자들은 다를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내 지갑에 돈 얼마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아들이 어느 좋은 학교 붙어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큰 기쁨과 만족과 행복이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뇌가 완전히 변화되는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확실한 약속이신 예술인을 붙잡았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불에서 1장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러한 예수님을 다시 한번 우리 마음속에 모시고 주님을 의지하면서 두려움은 사라지고 우리 안에 기쁨과 감격이 다시 한번 우리를 가득 차게 차오르는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변화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기를 우리 하나님 원하고 계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히브리서를 시작합니다. 

주님 이 히브리서가 쓰여지던 당시처럼 지금도 저희들은 과연 너희가 믿는 것이 뭐냐 믿는 것이 가치가 있느냐라고 하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주님 모든 것이 막혀 있고 모든 것이 힘든 이 시기에 저희들 과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삶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저희들 질문하는 시기입니다. 주님 이럴 때에 만유의 통치자요 만물을 부뜨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다시 한번 우리들 확신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완전히 하시고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하시며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다시 우리가 확신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삶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고 감격을 얻고 소망을 가지고 새롭게 출발하게 해주시고 이러한 믿음으로 우리의 가정에 살고 우리 일터가 살고 우리 교회가 새로워지는 거룩한 역사가 이번에 이불에서 강연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이루어진 하여 주시옵소서 온전히 영광받으실 하나님의 아들 또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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