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특강] 설교학의 흐름

yt1981 2023. 9. 2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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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강해설교 20세기 최고 강해설교 마틴로이드존스

설교와 설교자 강해설교학 전통적인건 핵심 사상대지를 뽑아서

그걸 설명하고 적용한다

해석 적용

그러다가 본문의 단락을 보고 핵심사상 잘 전달해야 하는데

절별로 하다가 그거보단 청중들이 들리는 방식으로 하자는

방식에서 해돈로빈슨이 커뮤니케이션 학파

1970년대 이후로 쭉 전통적 강해설교에서 현대강해설교로

그럼에도 내용 위주 명제 위주 대지 위주의 설교였다

그래서 아무래도 설교자가 대지 가지고 일방적 소통의

설교 하는 경향이 강했다

설교의 권위.. 텍스트를 강조하긴 하나

대지뽑을 때 아주 민감하게 텍스트 보기 보단 명제를 뽑아내서

원리를 뽑아내서 했던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설명하고 본문의 원리 주고 예화 통해 적용

이런 전통적 강해설교

그런데 여전히 대지 형태의 그리고 드라이한 건조한 논설조의

변증조의 설교가 되어옴

근데 비슷한 시기인데 전혀 다른 설교 스타일

그게 신설교학이다

귀납법적 설교 그들이 강조한 텍스트가 뭐냐?

내러티브 비유 성경으 육십프로 이상이 내러티븐데

논리 위주로 가냐

서신서만 설교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크래독은 우리가 진리를 찾아가는 방식

귀납적으로 가자 이야기 형식으로 설교하자는게 6-70년대

크래독을 필두로 화두가 됨

그게 구체적 방식이 유진 라우리 호릴라리틱 플로우

기승전결 아하! 모멘텀 만들어준다

그래서 설교가 공간 위주의 포인트였다가

귀납은 시간 예술 위주의 내러티브 형식이다

그 방법론이 크래독이 구사하고 싶은거고

청중에게 이미지 상상 효과를 강조하고 싶은게

설교의 형식 발전해내었다

그게 새로운 설교학으 장점과 공헌

여러 문제가 있는데

어던거?

설교의 권위 문제!

설교의 형식 강조하면서 실제 내러티브 형식을 강조해서

만들었으나 성경에 담긴 메타 내러티브 놓치게 됨

전통적 강해설교가 내용 뽑아내는데 설교자가 여전히 중심이었다면

새로운 설교학도 주체는 설교자다

내용이냐 경험차이지 설교 이끌어가는건 설교자 중심이다.

결국 신설교학에서 강조하는건

형식을 통해서 청중의 경험

 

청주의 경험 강조하나 설교자 주체가 되어서 청중에게 감동주는

그런 패턴으로 나온다

이 두 가지를 가만히 보면

성경을볼대 그 가운데 내용과 원리 뽑아내야한다 그건 동의

동시에 그걸 전달하는 형식도 중요하단게 인식됨

그리고 두 가지 내용 생각해보면

가운데 복음에 대한 거도 들어가고 개인화된게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포스트 리버럴 탈자유주의신학자

단순히 경험시키는 형식 아니라 복음 통해서 공동체가 형성되는!

신앙공동체 만들어내는 설교가 되야한다고 배워옴

결국 성경을 보면 어던 느낌이 드나?설교자들이

시대 흐름을 따라서 자기가 중요한 부분을 잡아서

내영 이냐 형식이냐 효과를 집중하냐

그걸 캐치한다

이 세가지가 따로 노는가?

궁금한거 그거다.

 

과거에서 배워온걸 생각을 해보면 나름 일리가 있고

그걸 강조하다 보면 나름 폐단이 나온다

그걸 기독교 설교의 독특성을 텍스트로 본다면

앞에 있는 청중들도 텍스트로 형성이 된더

텍스트는 내용 전달한다

텍스트는 나름 다양한 형식이 있다

그럼

전통 강해설교에서는 철학은 갖고 있되

성경이 갖는 내용과 형식과 특정한 형식 써서 효과를 내는게

다 들어있다 성경적 설교에 대한 갱신이 시작됐고

이름 붙이길 본문이 이끄는 설교 텍스트 드리븐 프리칭

이게 90뇨ᅟᅧᆫ 이후에 복음주의 설교학회에서 애기됨

 

고든 콘웰 사우스 웨스턴... 웨민은 좀 다르다 거긴 그리스도 중심적

 

그런 움직임들이 나와서 타이틀 붙은게 본문이 이끄는 설교

성경적 설교의 갱신이다

 

질문을 던진다. 납득이됐다면

설교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다 성경적 설교 하시죠/

성경적이란게 뭐냐?

 

성경에 대해서 파편화해서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커뮤니케이션

액션 특정한 방식으로작동해서 성경의 공동체로 만들어가는거랑

좀 다를 수 있다.

 

만약에 유진 라우리나 크래독이라든가

신설교학자들에게 물어봐도 성경적이냐고 물어보면 당근 그렇다고 한다

그분들은 성경적이라고 본다

이런 차원에서 성경적 설교에 대한 개념을 좀 더 입체호해서 이해하는게

본문이이끄는 설교의 정의다.

 

본문이 진리나 원리 담고있는거 맞는데 진리는 담으면 나머진 껍데기냐

커뮤니케이션 할 때 인격과 인격으로 변화할 때

1,2,3 삼대지가 인격적인가?

소통을 할대 이 사람에게 원리도 주나 이야기를 통해서 말한다

우린 정체성 말할 때 이야기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어떻고

담는다.

정체성 형성은 이야기 속에서 .. 민담도 담화도 이야기 형식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맞츠어서 소통하시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는질 알려주시려고 성경이 쓰는 방식이 뭔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이 이야기다

 

그 속에 정확히 알아야할 진리의 말씀의 명제들 십계명 율법 이런 논리들이

들어가 있다

그 논리 조차도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

우리가 하나님에게 어떻게 반응하느냐도 시편 선지서 이야기로 가다가

노래 나오고 이야기 나오고 그렇다

 

이야기가 쭉 가다가 시편에서는 그 하나님의 우릴향한뜻에 대해서

반응들이 시편이다

마음 올려드렸다면 선지서를 통해서 하나님으 맘 우리에게 보여주시는게

선지서다.

감정변화 굉장하다. 애를 키워보면 그렇다. 논리대로 말하다 큰 소리 냈다가 ..

제가 말하는건 하나님으 커뮤니케이션이 우릴 향한

살의 체계와 우리 전체 이끌어가는 내용이라면..

인격적이어야 한다

 

한가지 방식으로 형성되는게 아니다

이야기로 깔리다가 서신서는 정황에서 나온 원리를 가지고 어떻게 반응해야할자가

나온다.

구약은 시편은 유대인들의 사고체계의 반응이라면 헬라는 논리적이다

요한계시록은 짬뽕이다

내러티브와 시와 모든 내용들이 짬뽕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성경에서 내용도 들어가있으나 특정 방식으로 우리 삶

형성하는 ... 그리고 그걸 따라가게 되면 말씀의 공동체가 되어간다

그건 내용만 알아서 ...

감정을 받아들이고... 전체를 설교하게 되머ᅟᅧᆫ

이런 커무니 속에서 설교를 한다

성경적이란게 내용으로만 들어가있다고 보면 교리주의자 조진신학자로 끝난다

성경적 설교라고 할 때 성경적은 텍스트 자체가 하나님의 커뮤니케이션 액션이다

일을 하고 계신다

거기에 반응하면 알뿐 아니라 반응하는 자로 살아가서

하나님이 원하는 삶으 방식으로 바뀌어져가는 전체의 흐름 속에서

성경적 설교가 지향하는 바다

이걸 설교학적 흐름 속에서 살펴보닐까

전통적 강해설교는 내용 더 강조했고 명제

그리고 신섥학은 장치 수사학에 강점

탈자유주의자들은 결국 공동체로 형성됨이 중요하다고 강조

성경의 결을따라 보는거다

본문이 이끄는 설교는 장르별 이해와 기능도 고민을 하면서

이런 장르 따라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각하면서 설교문 작성하는거다

통합적으로 성경적 설교다

이게 본문이 이끄는 설교를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 성경 자체가 하나의 인격적 커뮤니케이션.

 

여러분이 전통적 강해설교를 한다면 본문의 어떤 장르를 보든 대지형으로 나온다

그럼 텍스트가 갖고 있는 장르적 기질은 내용만 뽑아내면 장르는 볼 필요가 없다

해석할대만 보게되지 실제 어떤 작동을 하는지는 .. 안본다

새로운 설교학자가 설교한다면 노상 플랏 갖고 작성한다

그럼 율법서나 서신서는요? 답답해진다

본인도 힘들고

 

해돈로빈슨이 나중엔 빌레몬서 갖고 이야기식 설교도 했다

못한다는건 아닌데 그렇게 할라면 본문에서 장르적 기질 버리게되

내 상상으로 만들어낸다

신설교학 입장에서 보면 내용 자체보단 구며내는게 중요하다

장르 파괴. 탈자유주의 신학자는

우리 생각들을.. 시편은 우리 비판들을.. 토해내도록 하는 성경의 장르이다.

글너 것들이 없어진다면 내 신앙 형성에 파편화된 신앙이 형성된다.

 

이건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나

미국도 북미도 그런데 시편으로 논문 썼는데 대체적으로 갖고 있는

서양학자들의 머리에 든 게 승리주의다

원리 갖고 하나님이 어메리카 사랑하십니다

비탄 장르 설교가 없

911 설교를 못해 이건 사랑한다 말하기 힘든거야

그래서 어떤면에서 성시교독. 비탄이 없다

이런일이 왜 벌어져?

성경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파편적으로 보는거다.

그래서 렉시오 셀렉타말로 컨티뉴하라

 

 

설교도 삶 전체를 갖고 말하는데.. 이게 어떤 냐용와 결을 가지고 설교하고 어떤 반응을 하도록 하는지도 본문 보고 고민하면서 나가자.

 

기존에 해오던 방식과 큐티 방식도 고민을 해야한다

이야기를 툭툭 끊어서 성경 저자가 의도한 내용은 맞다 근데 효과는 다를 수 있다

그걸고민해보면서 보게 되면 성경이 더 재미있다.

목사가 원하는대로 끊으면.. 812절 삼대지.. 저자가 의도한 바를 끊어낸다

그럼 이런 방식으로 하면 큐니 제자훈련에서도 역동성이 살아날 방식이 될 수 있다

내가 설교할 때 본문이 이끄는 설교는 강해설교이든 신설교학이든 주체가 설교자다

텍스트 따라가면 설교자가 제대로 설교하면 설교자가 빠져도 본문이 무슨 내용인지를 기억하고 본문이 끊임없이 작동하도록 만든다

설교자가 텍스트 섬기게 된다

 

강래설교자들의 잘못된 편협한 그림 설교자가

어떻게 하느냐가 본문 키워주는 눈 키워내는게 좋은 설교자인데 설교자가 이미 나름대로

페인팅한다 설교자가 보는 본문.. 내용 위주 형식 위주 이런식으로..

근데 청중들 생각해서는 그들로 하여금 특정한 영향 주게 helsek rmsep 만약 우리 모델이 진짜 이렇게 된다면 설교자는 같은 텍스트 아래 있는데 미리 연구해서 청중들이 텍스트로 들어가도록 영향을 받도록 하면 교체가 되어도 청중들은 텍스트 안에서 영향 받고 살아간다.

설교자의 영향을 많이 받느냐 아니냐

청중이 특성한 성향과 눈을 통해 볼때도 있으나 못볼때도 있다.이 모델 추구하려고 텍스트는 하나님의 커뮤니케이션 액션이다

이게 실제적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하고서 설교 여기에 맞추는거다

 

청중들이 받아들이기 힘들다 .자꾸 하다보면 이 맛에서 못 벗어난다

초반에 이 맛은 ...삼대지에 맞아 떨어지는 설교 좋아하다가도 본문이 그렇게 되어 있는걸 알고 깨닫게 되면.. 이렇게 볼라고 한다. 이 모델을 추구하는 모델이 텍스트 드리븐이다

 

 

텍스트 애즈 홀

텍스트를 템플릿으로 잡으면 능하게 된다

 

성경적이란게 어떤 내가 학파에 들어가 있느냐에따라서 개념이 달라질 수 있다.

성경 저자가 선택 배열한거에도 의도가 있다.

내용 다 빼고 껍데기 빼고 하지 말고 판을 만들어놨다

음미하도로 한다 내가 성경에 대해서 진리를 알아서 정말 좋다고 깨달은 조직신학적 성향도 있으나

삶을 바꾸어주는건 마음의 공감이 일어났을 때 ! 그게 명제 들었을때보다는

특정 방식으로 전달이 되어서 울림이 될대 움직인다

성경이 그런 장치까지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본다

마태복음 씨뿌리는 비유 13. 마가복음엔 4 8

똑같은 비유인데 그냥 보면 별 차이 없어 보인다 . 마태복음의 비유 보면

거절 거절,. 하고 몇배 90 60 30

30 60 100

눅 그말 없다

눅은 단순히 그 내용들이 다시떨기..

설명하다가 없는 단어도 툭툭 들어와

정욕이란 단어가 눅에 들어와

저 혼자 계속 머물고 있으면 좋은땅이란 개념 갖고 있어

왜 그렇게 썼을까

앞의 청중들 고려해서 특정한 방식으로 쓴거다

마태복음은 유태인.. 지금도 말하면 반응하는자 안하는자 있다

전통적 교회면 마태복음 갖고 하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신앙생활 잘하는.. 30 60 100 마가복음

눅은 이미 알곡이다. 인내하고 참으면 열매 맺는다

마가가 쓸 때 누가가 쓸 때 같이 영감 받았다 근데 청중들 생각해서 특정 방식으로

배열해서 쓴다 그럼 왜 이렇게 봐야 하는지가 통합적이다

내용도 봐야하고 특정 청중 선택해서 바꿔내면서 한다

 

자 다른 예를 보자 마태복음 시험은 어떤 식으로/

떡 성전에서 뛰어 내림

눅은 거꾸로 성전을 뒤로 놔둠

오스만 해석학책..

누가의 해석은 사도행전도 글코교회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짐 강조점 뒤에 둠

 

내용만 뽑아쑤자 하면 문제가 옶겠으나 청중 고래하고 성경 저자가 어떤 의도로? 이 순서로 ? 통합적으로 생각하면 이 순소가 바뀐거에 고민이 생긴다

자 그럼 신설교학에서 형식 중요하다 했는데 고민을 할 거야 강해설교느ᅟᅳᆫ...

 

자 그걸 따로 보지 말고 성경을볼 때 통합적으로 보자

 

주석 보면 설명 다 되어 있다. 이런 관점으로 성경을 안보니까 포인트 만들려고만 하다 보니까 난 강해설교의 전통 이어 받은 내용 위주의 설교자. 근데 성경적 설교가 뭐냐 물어보면 내용가지고 설교하는 설교자가 되어 버린다.

 

이런 개념을 머리 속에 넣고서 장르별 설교에 대한 오해와 이해..

 

1 .본문이이끄는 ... 강의안!!

 

교수 강의 들었으면 본문과 청중을 내가 잇는게 아니고 이미 이어 너ᅟᅡᆻ디

그걸 다리를 조정하는 작업.

네영없이 어케 설교하겠느냐

근데 설교는.. 화용론적이란 말은 이해가 되죠? 화용론적이란 말..

말이 어떤 행동을 일으킨다. 화용론적 해석학적 문제를..

의미는 같으나 의미 가지고 특정한 효과와 일을 하도록 본문이 보여주고 잇다.

그런 면에서 의도성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가지고 뭔 의도로 무슨 목적으로 전달하려고 했는지 파악하는걸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설교학 공부하면서 더 중요한 이수도 있다 설교자 자체가 에토스가 안좋으면 효과가 없다

근데 기본적으로 내가 본문 중요시하겠다 그리고 설교학 역사 본다면

인지적 내용전달에만 함몰됨 아니라 통합적으로 작동하도록 한다는 점!

 

설교에서! 청교도 설교할때도 본문 보고 아이디어 해서 교리 넘어간다 교리가 변치않는 진리의 내용 근데 교리 담에 적용으로 올 때.. 쪼개서 생각한다

청중 생각해서 어떻게 반응시킬까 고민.

이런게 명제만 갖고 움지경는데 이젠 특정한 힘을 주고 목적 달성해야겠다는

생각 사라있었다 성경은 내용만 준게 아니라

적용하라고 주신거다

텍스트 자체가 그 앞의 청중들에게 적용 지향적이다

고전 고후. 적용적 설교.. 그럼

나열해서 분리하긴 했지만 설교자는 큰 그림은 갖고 있었는데

뭘 강조하느냐가 달랐다

통합적 움직임이...

그래서 성경도 이미 그런 패턴 가지고 있고

장르와 혀과...

다양한 커뮤니키이션 있듯이..

어거스틴: 첫 설교학 책 쓰는데 투 티치 투 즐겁게 투 무브 딜라이트

지정의. 설교학 1970년대 이후가 지정의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건 300년대 설교의 개념.

잼난건 바빙크를 보면 19세기인데 똑같다

오늘날 시대에 1970이후에 설교학 동향도 머리 강조 감동 강조 공동체 형성.

지정의로 간다 이런 강조점이 있었는데 가만히 보면

텍스트 자체가 그걸 하고 있자나

 

강조점은 다르나.. 마틴이 자기 설교 약점이 파토스라고 했다

그 말은 달리 말하면 지적 내용으로 전달하나 감정적 터치가 있어야 함을

인지를 했기에 약하다고 말한거다

팀켈러도 그렇고..

 

장르.. 본문 이끄는 설교가 ..

근간4: 상관관계 아는거다. 이런 효과 위해 이런 형식 스는구나.

그래서 전체 내용 전달해서 그런 효과 달성할 수 있도록 함 된다

그래서 가끔 오해하는게 너무 같은거 아니냐

지금 핀즈 하이.. 김 바라.

그 친구가.. 논문 쓸 때.. 아티클 중 이메지네이션

주해에서 설교자의 이메지네이션 하면 설교할거리가 나온다

정확하게 설교를 어케 할지 아는 사람이 그 담부터 창조적으로 쓸까 달성하는거다

내가 쓸 재료 많으면 헤깔린다

본문이 연역적 구조 귀납적 구조가 좋을지..

이걸 알고서 귀납으로 하도록 발휘하는거다

이걸 어떤 방식이든 괜찮다고 하면 힘들다.

근데 본문에 충실하겠다고 해놓고선..

본문의 특정한 방식이 있자나 그걸 벤치마킹하라

 

내용 형식 효과 같이 보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인사이트가 주어진다

주석책에 아브라함 ..

12장에 보면 성전에서 마가가 삼세판 좋아함 배타는거 3

2장에서도 논쟁 5개 성전에서 논쟁이 나오는데 첫 논쟁이 동전비유

가이사 하나님의 것 그 얘기 마지막이 뭔가

논쟁하다가 과부가 동전 두 개 성전에 내는거

이걸 한편의 설교로 간다면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은 동전으로 예수 잡으려고 했다

근데 이 여인은 다 드리는 여인이다.

 

마가가 이런 패턴 갖고 있음 알면 이 효과 반드시 설교 가운데 살려낸다

설교 가운데 내영만 전달하기 보단

마가는 같은 동전인데도 쓰임새가 마음에 따라 다르다

내가 설교할 효과를 성경이 갖다 준다

이런 식으로 사고 안하면 한절씩 묶어서 명제적 설교하기가 편하다

형시과 목적.. 같이 보면 설교가 성경에 훨신 충실하게 된다

 

 

왕하 5장 나아만 전체... 구조를 보고 효과를 살펴보면

나아만에게 여종.. 어린 아이처럼 변했다

그담에 게하시가 등장한다.

게하시가 종이다. 근데 은과 투구 요구한다.

 

 

 

 

 

 

화용론 성경 저자가 한 말은 특정한 방식으로 갖고 있고 특정한 효과 지향하고 있다

 

내가 하는 말 말 그 자체 말이 갖다 주는 힘 말이 갖다주길 원하는 효과.

 

장르가 특졍한 방식 좋아한다면 ...

보는 이유가 뭐냐면 내용 제대로 파악하는것만 말고도 수사적 방식도 같이 보는거다

성육화의 기반을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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