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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성서의 문학유형과 설교> Thomas. G. Long | 요약

yt1981 2023. 10. 1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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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문학유형과 설교> Thomas. G. Long 

 

1장.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책은 성서적인 설교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성서 본문이 지닌 문학 형식과 동력은 본문 과 설교 사이를 좁히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만 한다는 비교적 단순한 아 이디어에 근거를 두었다(23). 성서학자들은 문학적이고 수사적인 접근법도 포함시키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서 본문으로 가까이 가는 길과 그 본문들을 현대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의 범위가 넓어졌다.(24) 또한 잠 언, 이야기, 시편, 비유와 같은 성서 문학 형식이 창작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논의할 것이다. 성서의 문학 형식과 동력(dynamic)에 집중하는 것은 중요한 일인데, 그 까닭은 성서의 문학 형식과 그 동 력이 본문에서 설교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약화되기 때문이다(24~25). 성서의 저자들은 자기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여서 가장 효과적인 수사 형식을 찾는 데에 고 심하였다.(25) 본문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함께 작용하여서 그 효과를 생성한다.(26) 성서 본문에 있는 문학 형식은 성서 해석학적으로 중요하며, 그것이 설교를 창작하여 내는 데에 위력을 발휘해야 한다 (27). 성서 본문은 그 자체가 기록된 커뮤니케이션인 까닭에 우리의 관심사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 문과 독자의 관계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41-42). 경험이 있는 독자는, 자기의 기술과 적성(소질)과 과거에 경험한 여러 가지 문학 형식에서 얻은 독서 전략 목록을 보관하고 있는 창고를 마음에 지니 고서 본문을 대한다. 본문과 독자 사이에 어느 정도 상호 협력하는 상관관계가 있을 때에라야, 커뮤 니케이션이 생긴다(42).

 

 

2장. 본문에서 설교로 옮겨 감. 성서 본문은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려고 특정한 자원을 이용하여서 특정한 상황 에서 썼다. 그리고 설교자들은 지금까지 누가 이 본문을 썼으며, 누구를 위하여 언제, 왜 썼느냐고 하는 역사적인 질문을 하면서 성서 본문을 심문할 수 있도록 배워 왔다(45). 다음의 다섯 가지 질문은 우리의 접근법에 초점을 맞춰 줄 것이다(46). 1, 본문의 장르는 무엇인가? 2. 이 장르의 수사적인 기능은 무엇인가? 3. 이 장르는 수사적인 효과를 얻으려고 하여서, 어떤 문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가? 4. 본문 안에 있는 문학적인 배경을 고찰하여 볼 때에, 본문은 특히, 위의 세 가지 질문으로 서술한 본문의 특성과 동력을 어떻게 구체화하는가? 5. 본문을 쓴 상황 안에서 본문이 말하고, 기능하던 바가 현대의 새로운 상황 안에서 하는 설교문에 서는,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가? - 2 - 성서학자 John Batton은 장르라는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장르는 어떤 형식적인 관례 의 지배를 받는 특정 사회의 사회적인 상황에서 사용되는 관례적인 패턴(유형)이다. 이것은 어떤 형 식적인 기준(스타일, 형식, 음조, 문법 구조, 순환하는 일정한 방식의 패턴들로 인식할 수 있다 (46~47). 문학적인 특징은, 본문이 무엇인가 함을 이루는 언어의 구성 요소들과 이들의 연속을 말한다. 수 사적인 동력은, 문학적인 특징이 독자의 마음에다가 생겨나게 하려고 의도한 결과(효과)다(49). 믿음 의 공동체 안에서 성서와 만나는 일은, 이미 성서가 성서로서 지니고 있는 특별한 특성 때문에 독자 들에게서 어떤 예상을 불러 모으고, 또 독자들이 믿음을 가지고서 읽을 때에 그 특성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55). 모든 문학 장르는 특성적인 문학적 특징들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각 장르가 장르로서 기능을 함과, 독자와 청취자에게서 성취한 그 효과로써 이루어진다(58). 설교문의 임무는, 본문이 지닌 효과의 한 부분을 현대의 청취자들이 설교를 듣는 새로운 커뮤니케 이션 상황에까지 연장시키는 것이다(63). 설교자의 임무는 성서의 본문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 니고, 그 본문에 있는 어떤 부분의 효과를 새롭게 재생시키는 것이다(64). 성서의 본문이 해석의 과 정에서 우세한 역할을 맡지만, 의미는 본문과 해석자의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것이다(65). 3장. 시편에 관한 설교. 장르: 시편의 독특한 문학적인 특성들을 중시하는 방법으로 시편 본문에 관한 설교를 접근해야 한 다(80~81). 시편은 시적인 형식을 갖춘 예배의식의 기도문이다. 시편은 히브리 시이며, 시가 지닌 문 학 형식을 따른다. 시편은 본래 예배의식에서 사용될 본문으로 지은 것은 아니지만, 예배의식의 상 황에 맞도록 양식화되어 갔다(81). 수사적 기능: 월터 브루그만은 고대 이스라엘과 현대 교회 둘 다에서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 편의 세 가지 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예배의식, (2) 경건한 기도문, (3) 목회적인 분야에 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시편은 언제나 예배의식에서 사용된 것이 시편의 첫 번째 기능이 었을 것이다. 시편이 지닌 예배의식적인 특성은, 시편은 우리에게 친밀감을 주는 시이므로, 그것을 들을 때 주의를 집중하면서 수사적인 효과를 더하거나 예리하게 한다(84). 수사적인 효과, 문학적 방법: 시편은 시이므로 평범하지 않은 언어의 사용을 접하게 된다(86). 설교 자로서, 시편을 다루려고 할 때 배워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시편을 연구하면서 단순하고 간결한 것처럼 볼 수 있는 언어와 형식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그것들은 독자의 마음에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도덕의 지각의 방향을 돌려서 바꾸어 놓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88). 해석자가 연구하는 구절 속에서 감각적인 느낌을 받으며 어감의 미묘한 차이를 찾아내는 데 사용 되는, 으뜸가는 시적인 방법은 “병행법” Parallelism이라는 전략이다. 병행법은 시인이 시행의 한 부분, 주로 절반을 주는 전략이다. 곧 시인이 미리 준 행의 절반을 A라고 하면, 행의 그 다음 부분 인 B를 주는데, B의 내용은 A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89~90). 그것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 다. T.H. Robinson은 그 연결은 동일한 뜻이거나 재진술, 둘 중의 하나라고 했다. James Kugel은 병행법이 사용된 곳에는 A와 B 사이에 발전이 있다고 보았다(90~91). 시편을 근거로 한 설교문이 병행법을 포함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편을 해석할 때, 시편의 저자가 병행법을 사용하여서 중심이 되는 아이디어와 시편이 창작된 주변의 이미지들을 미묘 하게 표현한 방법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92). - 3 - 본문의 특성과 동력 구체화, 현대의 새로운 상황에서의 설교문: 마지막 두 질문은 시편 1편을 매 우 조심스럽게 살펴봄으로써 종합하여 대답할 수 있다. 시편 1편은 표면적으로는 의로운 삶과 사악 한 삶이 날카롭게 대조를 이루는 간결한 시편이다. 그러나 이 간결함의 밑에는 포착하기 어렵고 복 잡한 시적 언어가 흐르고 있다(93). 시편 1편이 지니는 수사적인 효과는 독자나 청취자의 인식 속에 두 가지 대조적인 행동 영역을 창조한다. 한 영역은 열광적이며 무모하며 방향이 없는 움직임으로써 금방 푹 꺼지고 마는 것이다. 또 다른 영역은, 현명한 사람이 토라에 비추어보아서 은밀하면서도, 힘있게 하는 행동으로 정지되어 있으며 안정성이 있으며 평온하며 풍성한 것이다. 시편 1편을 바탕 으로 한 효과적인 설교문은 이런 대조문을 잘 묘사할 뿐만 아니라, 이 대조가 청취자의 눈에 보일 정도로 생생하면서도, 풍부한 감정의 효과를 나타내도록 새롭게 재창조하여야 한다(96). 4장. 잠언에 관한 설교. 잠언은 대부분 상식적인 것들을 많이 다루고 있으나 하나님에 관하여서는 깊이 언급하고 있지 않 은 까닭에, 신학적인 요지가 결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98). 잠언은 실제로 난해한 문학표현이다 (101). 곧, 그것은 훨씬 더 신학적인 것이면서 지나치게 도덕적인 것도 아니며, 첫눈에 명백하게 보 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지금까지 지내온 삶의 경험과 활기 있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잠 언은 높은 인식과 평가를 받아야 할 성서적인 화법 형식이다(101). 장르: 잠언이라고 일컫는 장르는, 이야기 형식이 아니면서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는 속담, 격언, 옛 말, 금언 등으로 이룬다. 잠언이 무엇인가를 좀 더 분명히 살펴보려면, 잠언을 잠언의 문학적인 사 촌인 경구와 구분하여 봄이 중요하다. 이 두 가지는 비슷하게 보이나, 경구는 잠언의 경우보다 좀 더 특정한 상황과 그 경구를 말한 사람에게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102). 수사적 기능: 잠언의 수사적인 기능은, 독자들이 여러 가지 실제적인 삶의 상황들에 적용할 수 있 는 일반적인 윤리적 지침을 제공하여 줌에 있다. 잠언은 보편적이고 기억하기 쉬운 용어를 써서, 우 리가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를 말하여 준다. 잠언이 윤리적인 지침을 제공하여 주는 것이 사실이 기는 하지만, 그것은 둘째 가는 기능이다. 잠언의 첫째 기능은 있는 그대로의 것을 간결하면서도 그 림을 보듯이 도식적으로 묘사함에 있다(104). 잠언의 수사적인 효과로 볼 때에, 위의 말이 의미하는 것은, 잠언이 독자들을 두 개의 다른 방향 으로 동시에 민다는 것이다. 그 말은 독자들을 미래로도 관계하게 하고, 과거로도 관계하게 만든다 는 것이다. 곧 잠언은, 그 잠언을 형성하게 이끌어 준 과거의 경험들을 상상하도록 독자를 불러들임 으로써, 과거 쪽으로 관계하게 한다. (105) 잠언은 아직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잠언을 적용할 수 있는 경험들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함으로써, 독자들이 앞(미래)을 향하여 가도록 민다(106). 잠언 14장 1절의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 니라.” 등의 잠언 말씀은 훌륭한 통찰력을 갖고 있지만, 오직 특정한 상황에서만 맞는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이 잠언을 말하여도 제대로 효과를 거둘 수 없다(107). 이것이 바로 잠언의 형식적인 아 이러니다. 곧, 그것은 지혜를 말하지만, 그것에 더하여서 올바르게 듣고 사용할 줄 아는 지혜를 요 구한다(107). 그러면 무엇이 잠언의 수사적인 효과인가? 첫째로, 잠언은 믿음의 삶에 관한 전체적인 실체를 일깨운다. 둘째로, 잠언은 독자들이 그들의 기억에서 적절한 예들을 찾도록, 그들을 경험의 세계로 내어 보낸다. 마지막으로 잠언은 잠언의 지혜를 알맞게 적용할 수 있고, 현명한 반응을 보이 는 데에 윤리적 지침을 공급하여 줄 수 있는 또 다른 상황들을 생각해보도록 상상력을 자극한다 (109~110). - 4 - 문학적 방법: 잠언은 특징적인 문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곧 하나의 문장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 는 조직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하나의 문장으로 되어 있는 대부분의 잠언은, 아래의 세 가지 구성 체계의 하나를 따라서 구성되어 있다고 Robert Alter는 언급한다. 1. 대조(Antibesis): 두 부분으로 된 문장으로서, 둘째 부분은 첫째 부분의 역(reverse)를 표현한 다. 이 구조의 수사적인 효과는 독자의 마음에 서로 상반되면서도 상호관계 관계를 주고 받는 드라 마를 창조해낸다. 2. 정교(Elaboration): 두 부분으로 된 문장으로서, 둘째 부분은 첫째 부분의 생각을 강화하거나, 장래의 시간을 연장한다. 이 구조의 수사적인 효과는 두 개의 막을 가진 연극을 창조하는 것이다. 3. 대답(Answer): 두 부분으로 된 문장으로서, 이 두 부분이 함께 기능을 하면서 기록되어 있지 않은 질문에 대해 대답처럼 보이는 것을 창조해낸다. 이 형식의 수사적인 효과는, 말하지 않은 질문 과 그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 되는 사람들의 경험, 그 두 다를 독자의 마음에 가져 옴에 있다 (111~112). 잠언에서 한 가지 더 사용하는 수사적인 방법은 유머다. 그것들은 고장으로 수사적인 효과를 성취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의 어리석음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웃도록 만든다(113). 본문의 특성과 동력 구체화, 현대 상황에서의 설교문: 성서에 있는 잠언이 모두 다 설교의 본문으 로 사용하기에 적당한 것은 아니다. 그 까닭은, 잠언은 어떤 특정한 문화적인 상황에만 관계하므로 그 상황이 바뀌면, 그 상황에 있는 잠언은 보이지 않게 잠복하고 그것이 다시 지혜로써 작용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린다(114). 그러나 어떤 잠언들은 아직도 지혜와 함께 생생히 살아있으며, 그것들을 자세히 관찰하여 봄으로써, 잠언을 근거로한 설교문이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지를 배울 수 있다 (115). 5장. 이야기에 관한 설교 성서와 이야기의 관계에는 두 가지의 기이한 점이 있다. (1) 성서에는 이야기의 수가 매우 많다. 이야기는 성서의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성서에서 이야기의 형식을 갖추지 않은 부분들까지도, 성서의 맥을 잇는 주요하고 큰 이야기들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123~124.) (2) 성서와 이야기에 관하여서 두 번째로 기이한 점을 아델 벌린(Adele Berlin)은 다음과 같이 설 명한다. “성서의 전통에서, 말로 표현함(telling)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에는 , 이야기를 가리키는 특별한 어휘가 없다(124).” 성서의 학자들은 창조적이며, 어떤 경우에는 재주를 부릴 수 있을 만큼 언어가 지니고 있는 무한 한 표현 가능성을 잘 알며, 세련된 문장 능력을 지닌 문학 예술가들이었다(124~125). 그러나 이런 예술적 경향은 저자들이 마음대로 창작한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문학 형식은, 성서의 저자들이 지 닌 예술적인 자유와 그들의 신학적인 세계관이 상호 작용을 한 데에서 파생하여 나온 논리적인 결 과다(125). 성서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의지의 견실하신 성질과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성(일관성)을 믿 었고, 또한 하나님께는 창조를 위한 조화된 계획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125). 성서의 이야기는, 그 문학 형식과 동력을 사용하여서 현실을 보는 성서 저자들의 일반적인 신학적 관점을 기본적이고 적절한 방법으로 구체화하여준다(132). 이야기를 대표하는 성서적 어휘가 없는 이유는, 성서에서 “이야기”는 어떤 것을 서술하는 방법이 아니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132). 성서의 저자들이 제일 먼저 수행 한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 안에서 이루시고자 하신 목적의 결과(성과)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이야기에 대한 소견이나 감상이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다(132). - 5 - 장르: 우리가 무엇을 들으면, 그것이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133) (1) 이야기는 시간의 흐 름과 관계하고 있다. (2) 이야기는 결론으로 이끄는 연결된 사건들의 사슬이다. 이야기는 발단, 전 개, 결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건들의 시리즈다. 이 세 부분 사이에서 일어나는 논리적인 관계를 알아 볼 수 있어야 함이 중요하다(135). 이야기는 재미있다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은혜와 도덕적 통찰력을 포함하고 있다(141). 수사적 기능: 좋은 이야기는 두 가지 중의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1) 독자를 등장 인물 가운 데 한 사람으로 만든다. (2) 삶의 본질에 관한 주장 곧, 독자가 결정해야 하는 주장을 만든다(141). (1) 성서 이야기들의 효과는 때때로 등장인물과 동일화하여 본 동력의 결과다.(142) 우리가 이야기 속에서 우리를 등장인물과 동일화 할 때에, 상상의 단계에서는 그 인물에게 생긴 일이 우리에게 생 긴 것과 같이 느낀다(143). 등장인물과 동일화하는 이런 주제에다가, 약간의 변화를 주는 일은, 어떤 인물을 본보기나 이상적인 인물로 나타내고 있는 이야기들과 관련을 갖게 한다(144). (2) 성서의 이야기들은 때때로 우리의 상상력에 양자택일의 세계를 창작하여 놓고서, 독자들이 어 떤 것이든 선택을 결정짓게 함으로써, 효과를 일으킨다(146). 그러나 또 다른 이야기들도 있다. 그 이야기들은 훨씬 더 교훈적인 것들이며, 독자들이 새로운 세계관이 아니라, 초점을 맞춘 한 가지 진 실을 보도록 디자인한 것 같다(146). 문학적인 방법: (1) 이야기체의 테크닉들 이야기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작할 수 있는데, 어떤 방법으로 시작할 것인지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내레이터다(147). 일반적으로 성서의 내레이터들은 이야기의 배경으로 있으며, 또한 매우 박식 하다.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경우에 그들은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로 나타나 지 않는다(148). 내레이터는 독자를 등장인물보다 고위(상급)에 두기도 하며, 독자와 등장인물 사이 에 거리감이 사라지게 하면서 제자들과 동등한 위치에 두기도 한다. 성서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특성은, 검약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점이다. 성서의 이 야기들은 최소한의 세부사항을 묘사하며, 그 표현도 단순하고 간결하게 한다(149~150). 내레이터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만 아니라 이야기의 카메라가 특정한 방향을 가리키게 함으로써, 독 자들의 관점을 조종한다. 그러므로 독자들에게 어떤 시야의 각도를 준다(150~151). (2) 등장인물의 개발 거의 모든 이야기체 문학 작품과 같이, 성서의 이야기도 “둥근(활발한) round 등장인물과 ”평평 한(단조로운)“ flat 등장인물, 두 유형을 다 포함하고 있다. 모세는 복잡하고 매우 풍부하게 개발된 둥근 인물이며, 헤롯은 단일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평평한 인물이다(151). (3) 줄거리의 디자인들 이야기의 줄거리들은 난해하고 복잡하지만 발단, 전개, 결말 이 세가지 기본 요소들을 탐구함으로 써 줄거리에 있는 동력에 대해 알아낼 수 있다(152). (4) 다른 요소들 이야기체의 테크닉, 등장 인물의 개발과 줄거리들의 디자인들에 더하여서, 증거가 있는 또 다른 문학적 테크닉들이 성서 이야기에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포함한다. ① 단어의 선택, ② 장 소 선정, ③ 평행하는 이야기들, ④ 이야기의 배치(155~156) - 6 - 6장. 예수님의 비유에 관한 설교 장르: 비유란 무엇인가? 예수님의 비유들은 보통 설교에 인용하는 훌륭한 실예문들로서, 일상 생활 에서 이끌어낸 것들이며, 어려운 신학적인 진실을 평이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이야기 들이라고 본다(165~166). 비유는 그 속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세부사항들을 간과하여 버려 서는 안 된다(166). 비유가 지니고 있는 짜임 자체가 복잡한 발견의 과정을 독자의 마음에 불러일으 킨다(167). 비유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생겼으며, 수사적으로 같은 방법으로 처신하지 않는다. 비 유들은 한 가지로 읽는 방법은 없다. 그것들은 예외적일 정도로, 독자들에게서 융통성을 요구한다 (168). 다드 :비유는 “자연이나 일상생활로부터 끌어낸 은유나 직유이며, 그것이 지닌 생생함이나 기이함 은 듣는 사람의 주의를 끈다.” (176) 1. 다드가 비유를 “은유나 직유”라고 서술할 때, 그는 비유가 상징적인 전달 방법임을 말하고 있다 (176). 비유는 어떻게든, 독자들이 두 가지 수준 곧, 실제적인 수준과 상징적인 수준으로 동시에 읽 도록 요구하는 덕분에 독자들은 비유를 알아보게 된다(177). 2. 다드가, 비유가 지닌 생생함과 기이함이 독자에게 의미의 불확실성을 남김으로써, 독자들을 활발 한 생각 안으로 들어가도록 독려한다고 주장하면, 그는 비유 자체가 독서의 과정을 지배한다는 그 방법에 관하여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178) 비유는, 지시 대상을 두 개 가진 커뮤니케이션의 형식이다. 그것의 첫째 지시대상은 실제적이고 흔히 보통 있는 것이고, 일반적인 의미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신호들은 그것들이 내부 적이든 외부적이든 상관없이 독자가 첫째 지시대상에 만족하지 않도록 경고를 하면서 상징의 수준까 지 읽도록 한다(178). 수사적인 기능: 비유의 해석에 관한 긴 역사를 연구하여보면, 세 가지의 중요한 이미지들이 드런나 다. 그 세가지 이미지들은 암호(code)와 단지(vessel)와 예술의 대상(object of art)이다. (181). 비유를 이해하는 방법 가운데, 암호는 아마도 가장 먼저이면서,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비유를 암 호로 봄은, 비유가 하나님의 나라를 풍유적으로 상징화함을 말하는 것이다. 비유들을 암호로 보면, 어떤 특정한 비유에 있는 중요한 특징 하나하나는 실제로 서술하여 놓지 않은 어떤 현실을 푸는 암 호(cipher)이다. 그리고 그 비유는 암호를 푸는 데에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다. 곧, 암호로 된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전달받은 가입 회원들만을 위한 것이다 (181). 19세기에는, 이 암호의 개념이 주로 비유를 단지로 이해하는 것으로 교체되었다. 그것은 비유가 개념들, 일반적인 진실들, 신학적인 아이디어들을 담고 있는 용기들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발전은 변화 이상의 것을 말하는 것으로써, 상징 제조 과정이 어떻게 비유 안에서 기능하는가를 보는 이해 의 변화였다. 여기에서는 비유를 더 이상 풍유로 보지 않고 직유로 보았다.(181~182) 그보다 근래에 와서 비유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단지의 이미지를 예술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과 교 체하여 놓았다. 다른 예술적인 형태들과 같이, 비유들은 가르침을 주는 데에 강조를 둔 교육학적인 방책들이 아니라, 미적인 창작품들이다. 이 말은 곧, 비유가 독자들을 다사다난한 만남과 관계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상황을 보고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도입하여 들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의 기초가 되는 과정은, 비유가 풍유나 직유보다 은유라고 하는 것이다.(182) 그러므로 독자들은 어떤 비유를 대할 때, 그것을 암호, 단지, 예술의 대상으로 읽을지 혹은 세 가 - 7 - 지가 혼합된 것으로 읽을 것인지 열려있는 질문을 가지고 비유에 접근해야 한다(182). 암호는 독자들에게 세 가지 중요한 방법으로 영향을 미친다. 1) 암호는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고, 믿고 있는 바를 확실하게 확인하여 준다. 2) 암호는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고, 믿고 있는 바를 명백 하게 하여준다. 3) 암호는 독자들의 자격이 내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다.(184~185). 직유는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어떤 것과 같다고 말하는 수식법이다. 직유의 동력을 사용하는 비유들은 정호가하게 단지(vessel)이라고 부른다. 단지 비유들 은 한 가지 진실만을 구체화 하도록 구상되었다(185). 은유는 A는 상징적으로 B다 라고 말한다. 예술의 대상으로 보는 비유로 다가갈 때, 독자들은 하 나님의 나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비유 안으로 끌려들어가서 그 하늘 나라가 주장하는 바를 경험하기를 기대하며 다가간다(186). 문학적인 방법: 암호 비유에는, 대개 적어도 한 가지의 자세한 세부 묘사가 있다. 그런데 이 세부 묘사는 이야기의 흐름에 편안하게 맞아 들어가지 않거나, 또는 비유 안에 있는 상황보다는, 비유로 상징화한 외부의 현실에 더 적절하게 맞는 경향이 있다(187). “끝의 강조(end stress)”: 마지막 에피소드와 그것이 암시하는 의미를 강조하는 방법이다. 이에 따 르면 첫째 에피소드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하고, 그 다음 에피소드에서도 유사한 일이 발생한다. 그 러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만 다른 일이 발생하는데, 여기가 바로 수사적인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다 (189). (ex.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비교와 대조: 이것은 직유의 실마리가 된다. (ex. 누가복음 13:18~21의 하나님의 나라 비유) 이러한 비유 속에 있는 비교의 언어는, 독자들이 “하나님의 나락가 어떻게 이러한 것들과 같을까?”라고 묻 게 한다. (189). 다른 비유들에서는 비유의 배치 또는 비유가 소개된 방식을 사용하여 독자들이 비유를 단지로 보 도록 신호를 준다(190). (ex. 형제의 죄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 지 묻는 베드로의 질문 뒤에 배 치된 두 빚진 자에 관한 비유. 마태복음 18장 23~35절 등) 예술의 대상 비유는, 한 가지 동력에 매우 크게 의존한다. 그것은 비유 안에 있는 등장 인물 중의 한 사람과 동일화하여 보거나 어떤 강한 이미지들을 가지고서, 독자들을 비유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190). 또는 다른 예술의 대상 비유에서, 독자는 그 비유 안에서 상상하는 세계와 동일화한다(191). (ex, 포도원의 일꾼들에 관한 비유. 마태복음 20장 1~16절) 본문 안에 있는 문학적인 배경을 고찰하여 볼 때에, 본문은 특히, 위의 세 가지 질문으로 서술한 본문의 특성과 동력을 어떻게 구체화하는가? 본문을 쓴 상황 안에서 본문이 말하고, 기능하던 바가 현대의 새로운 상황 안에서 하는 설교문에 서는,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기능을 할 수 있는가? 비유의 힘이 성도들의 삶에 미치게 하려면, 이 비유를 바탕으로 한 설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첫째, 이 비유는 극적인 민감성을 가지고 읽거나, 다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195) (ex.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198). - 8 - 7장. 서간문에 관한 설교 장르: 참된 편지는 말로 하는 대화체에 가장 가까운 문학 형식이다(205~206). 편지를 읽을 때에는 그 편지를 쓴 사람의 음성과 억양을 거의 들을 수 있다(206). 그러나 편지가 말로 하는 대화에 매우 가까워도 그것과 같을 수 없다(207). 편지는 “상대방과 함께 있는 방법”인 동시에, “함께 있지 않는 방법”이다(207~208). 편지와 말로 하는 대화 사이에는 다른 점이 또 있다. 대화는 말하는 순간에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편지는 적어놓은 것이므로 더욱 오래 남을 수 있다. 편지는 어떤 하나의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능 력도 지니고 있다(208). 편지의 또 다른 특징은, 스타일화한 양식에 있다. 필자는 미리 생각한 것이 나 계획이 없어도 관례적인 작문 “규칙”을 따라서 써내려간다. 편지는 특정한 방법으로 시작하고 특 정한 방법으로 끝난다(210). 신약의 서간문들은 대체로 고대의 편지글에서 사용하던 패턴을 따르면서도, 그 규칙들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다. 이런 변화가 생기는 까닭은, 기독교 신앙의 내용과 특성으로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는 사실에 기인한다(210~211). 수사적인 기능: 신약의 서간문을 대하는 것은, 마치 여러 개의 방을 각각 다른 디자이너들이 장식 하여 놓은 커다란 집을 탐사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집은, 건축 양식이 전체적인 조화의 효과를 이 루면서, 방마다 개체적인 심미성을 지니고 있다. 그와 비슷하게 서간문의 수사적인 기능에 관하여 전체적으로 다루어 보는 것은 가능하다. 곧 어떤 편지의 여러 가지 구성 요소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으며, 그 편지가 주는 독서에 대한 예상 같은 것들을 다루어 볼 수 있다. (212). 하이키 카스커미니는 전형적인 헬라 서간문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밝혀냈다(212~213). 1. 파일로프로네시스: 발신인과 수신인 사이에 “절친한 관계”가 있음을 환기시키고 표현하는 것이 다. 2. 페루시아: “실재”의 성립. 편지의 목적이 발신인과 수신인 사이에 있는 육신적인 분리의 틈에, 다 리를 놓아서 연결시키는 것을 말한다. 3. 호밀리아와 디아로고스: 헬라 서간문에 있는 어조와 비슷하게 설교와 대화에다가 대화체이면서, 환영의 뜻이 있는 무드를 창조하는 것이다. 1. 파일로 프로네시스: 바울과 수신인 사이의 절친한 관계는 분명히 나타나나, 기독교 신앙은 중대 하게 그 관계에 미묘한 차이를 가져왔다. 대체로 바울이 자기의 편지를 받는 수신인들과 가지는 관 계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공통된 관계를 가리킨다(214). 2. 페루시아: 바울의 통신 왕래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러나 이것은 간단하거나 명백하 지 않다. 그 까닭은 편지는 편지를 쓴 사람이 함께 있는 듯한 실재함과 함께 있지 않은 부재함이 결 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력은 고린도후서 10장의 앞부분에 분명히 나타난다(214~215). 3. 디아로고스: 편지를 읽는 사람들은 사람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편지는 거부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이런 자유는 편지를 “디아로고스”쪽으로 민다. 편지는 얼마나 박력이 있게 잘 표현하여 놓았 느냐에 상관없이, 그것이 설득력이 있으려고 하면, 결국에는 기분 좋게 초청하여 들이며 대화체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문학적인 방법: 신약의 서간문은 규칙에 신학적으로 지침을 받은 변화를 꾀할 수 있었더라도, 여전 히 신약의 서간문으로 알아볼 수 있는 “표준 형식”이 있다. 서간문의 구절들은 직접적인 내용만이 아니라 관례적인 편지 형식의 틀 안에서 그것들이 놓여 있는 배치를 통해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221~222). - 9 - (1) 첫머리: 발신인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려고 취한 형식은, 그 편지의 특성을 알아보는 단서가 된 다(222). 설교자는 신약의 서간문에서 편지를 보내고 받는 사람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게 하여 주 는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223). 수신인의 정체를 밝히는 방법을 조 사하는 것도 매우 유익한 일이다(224). 신약 서간문의 첫 머리 부분의 마지막 구성요소는 인사다 (226).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는 고전적 헬라어의 인사(greetings)의 신학적 연장이라고 보아도 거의 확실하며, 평화(shalom)는 주로 헬라의 형식을 따르는 기독교 서간문을 유대적인 신학 전통에 연결시켜 준다. (2) 감사: 첫 머리 다음에, 바울 서신들은 감사로 옮겨 간다. 감사는 헬라 서신들의 특성인데, 바 울은 이것을 자기의 신학적인 목적에 적합하게 응용한다. 엄격히 말하면 이런 부분들은 기도문으로 수사학적 효과를 지니는 중요한 사실을 지닌다(225~226). (3) 패러니시스를 포함한 주요부: 편지의 중심이 되는 이 부분은 중대한 문제들(주요부)와 실질적 인 윤리적 문제(패러니시스)에 관한 토론을 포함한다. 신약의 서간문에서 사용한 기술적인 수사 방법 가운데는 교차 배열법인 카이애즈머스(chiasmus)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관심 있게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신약의 서간문에서 이 방법을 매우 자주 사용하였으며 둘째, 현대의 독자들이 이 방법을 쉽게 간과하여 버리기 때문이다(227). (4) 끝맺음: 바울은 고별이나 부차적인 인사말로 끝맺는 요소를 신학적으로 변형시킨다. 고별은 예 배 의식적인 축도가 되고, 부차적인 인사말은 기독교 신앙과 예배에 있는 단어들을 하나로 결합한다 (230~231). 본문의 특성과 동력 구체화, 현재의 새로운 상황 안에서의 설교문에서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기능을 할 수 있는가?(231) 고린도전서 13장은 “영적 은사”에 관해 다루고 있는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 사이에 있다(232). A 영적 은사에 관한 논의(고전 12:1-30), B 사랑에 관한 시적인 부분(12:31-14:1a), A` 영적 은사에 관한 논의 (14:1b-40) (232). 큰 본문 안에서 이 부분이 그 자체의 교차배열법의 구조를 가지고 있 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제 12장은 고린도인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여 주면서, 그것에 관하여 결말 을 짓고 있다. 바울은 그 질문에 직접적인 답변과 심오한 답변, 두 가지로 대답을 한다. 심오한 답 변은 사람들의 지각에 변화를 주는 다른 대답을 찾을 수 있도록, 그 질문 자체를 재구성하게 한다 (233). 고린도전서 13장 안에서 ABCB`A`구조가 있다. A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명령(12:31), B 사랑 의 우위성 (13:1-3), C 사랑의 특성(13:4-7), B` 사랑의 우위성(13:8-13), A` 사랑을 추구하라는 명 령(14:1a)(234). 바울은 문제의 핵심인 교차배열법의 중심으로 옮아간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 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라는 사랑에 관한 묘사를 계속한다. 그의 언어 는 고린도인들이 들음으로써, 사랑이 만들어내는 어떤 현실을 창조한다.(236) 이 본문을 설교문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본문 자체의 수사적인 전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있다(237). - 10 - 8장. 설교노트 책의 2장에서 설교자의 임무는 성서의 본문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고, 그 본문에 있는 어떤 부분의 효과를 새롭게 재생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240). 오직 설교자만이 본문과 현대적인 상황을 둘 다 잘 아는 해석자로서, 그 임무를 성취할 수 있다(241). 1. 힘에서 유형으로: 모든 설교는 “주문하여 맞춘 것”이어야 하는데, 그 까닭은 설교는 어떤 특정 한 본문과 새로운 상황의 만남 속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242). 2. 설교의 흐름이 본문의 흐름을 따르게 하라: 때때로 본문 안에 있는 내부적인 연속으로부터, 어 떻게 설교가 생성되어 나올 수 있는가 하는 암시를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접근법은, 특히 의미가 부 분적으로 줄거리 흐름대로 전개되어 가는 이야기체의 본문에 적당하다(243). 설교의 구조가 이야기 줄거리의 에피소드와 짝을 짓는 설교를 만들려고 한다면, 이야기의 위치점 을 결정하여야 한다(243. 예: 열왕기상 18장 엘리야 이야기) 설교의 흐름을 본문의 흐름에 짝을 맞 추는 가능성은 이야기체의 본문에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지만, 이야기가 아닌 본문들도 설교의 패턴 으로 쓸 수 있는 내부의 움직임을 갖고 있다(248). (예: 시편 19편 7~10절의 병행법) 3. 본문 안의 대립된 힘이 설교 안의 대립된 힘이 되게 하라: 성서의 어떤 본문들은 상반되는 힘 들, 삶의 방식들, 혹은 쌍에 관한 비전들이 새로 대립하게 만듦으로써 독자들이 선택하도록 불러들 인다(249). 설교는 이런 갈등과, 또 이런 갈등이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하여 동반하고 있는 청함을 새롭게 재생할 수 있다(249). (시편 1편의 의인과 악인의 대조. 누가복음 19장의 삭개오 이야기) 4. 본문에 있는 핵심 통찰력이 설교의 핵심 통찰력이 되게 하라: 어떤 본문들은 독자들이 통찰력, 진리,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배우도록 하면서 독자들과 상호 작용을 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잠언 15:17, 룻기 등) 이런 경우에 설교의 임무는 듣는 사람들을 위하여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가르치는 것이고, 본문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묻고 살피면서 탐구하는 것이다(250). 그러므로 이 본문에 바 탕을 둔 설교는 이런 통찰력을 전달하는 데에 목적을 둔 가르침의 설교가 잘 될 수 있다(251). 5. 본문의 무드가 설교의 무드를 조성하게 하라: 성서의 본문은 물론 감정 이상의 것을 더하여서 주지만, 본문의 의미가 되는 본문의 수사적인 효과에 관한 부분은 그 본문이 조성하는 감정적인 무 드와 상관이 있다(251). 6. 속이 빈 말과 칸타타: 설교가 성서의 본문이 연주하는 곡조에 맞추어서 노래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창조적인 방법들을 더 많이 개발하여서 공급하는 것은, 설교자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다. (253). 그러나 “창조적인”이라는 말은 설교자들이 주의하여서 사용하여야 할 용어다. 설교에 있어서 창조성 이란, 성령께서 본문을 통하여 창조 역사하시는 바를 신뢰하며 충실히 하려는 데, 전적인 의미가 있 다(254). 성서 본문을 주의 깊게 분석하는 수단(방법)들을 다루어 왔다. 이러한 것들은 살아계신 하 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증거하기 위한 인간적인 도구들일 뿐이며, 결국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과 복음이지 어떤 방법론이 아니다(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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