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창고

[설교] 사도행전 8:2-13

yt1981 2023. 7. 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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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유튜브에 가끔 영상을 보는데 순교에 관한 영상이에요. 보면은 정말 끝까지 보기가 어렵습니다. 순교당하는 사람의 평온함 끝까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보기가 힘들고 더 놀라운 것은 그를 살해하는 사람들의 표정이에요. 얼굴들 일그러진 얼굴들 깔깔거리고 웃어대기도 하고, 그래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잔인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 있을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는 믿음 때문에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스데반이 그렇게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2000년 전에도 그렇게 돌에 맞아 죽는 끔찍한 순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으며 이 시대도 동일하게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앉아서 예배를 드리지만은 예배드릴 수 없는 많은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순교에 이르고 있습니다. 왜 복음이 전해지면 왜 복음의 능력이 들어가면 그는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왜 그런 고백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렇게 반응하느냐가 시킵니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반응이에요. 스테반이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했을 때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누굽니까 사내들인 공회원이란 시대 당대의 지성인들이에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배운 바나 지위나 능력이나 그 신앙심이나 사람들의 모든 존경을 받는 대표적인 얼굴들인데 한순간에 얼굴들이 야수와 같이 변하고 그야말로 건너뛰어서 그를 욱박지르고 그리고는 끝내 그를 돌로 쳐 죽이는 현장까지 끌고 가는 것이죠. 그래요. 그렇게 극단적인 행동은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질문에 이 궁금증에 답할 수 없으면 우리 신앙은 관념적이에요. 왜 동일하게 복음이 전해지면은 온 가족이 난리가 나고 왜 한 나라의 한 민족의 복음이 전해지면 그렇게 강박한 반응을 보이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질문을 여러분들이 진지하게 물어야 하고 이 질문에 대한 궁금한 이해가 있어야 저희들이 그리스도인이에요. 왜 복음에 대해서는 그렇게 반응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보면은 그렇게 엇갈린 두 가지 반응을 보게 돼요. 

극단적인 두 가지 다른 반응 1절 이 절 한 번 더 읽어보실까요? 시작 4월은 그가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나라 여러 살렘에 있는 교회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집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테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자 두 가지 사람의 반응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경건한 사람들인데 이들은 스테반을 장사하고 크게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요.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4월로 대표되는 또한 무리들은 그가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겼다고 돼 있습니다. 그는 당연히 죽었다는 것이죠. 단순히 당연한 정도가 아니라 적극 지지하고 기뻐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4월이 죽는 걸 기뻐했어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채용할 때는 안 그랬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 때도 그들은 기뻐했어요.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지지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라 못 박아라 고함 질렀던 군중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렇게 극단적인 두 부류 중에 누가 더 많습니까? 예수님이 처형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우는 사람이 많았습니까? 이래서는 안 된다라고 통탈한 사람이 많습니까? 아니면 소 고함을 지르고 무리 지어서 그를 못 박으라고 한 외친 군중의 숫자가 더 많았겠습니까? 스테반의 죽음을 보고 어떻게 우리가 신앙인을 저렇게 죽일 수 있냐고 애통해하고 슬퍼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아니면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 저는 하나님을 참칭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처단받아 마땅하다고 그렇게 기뻐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까? 여러분 이게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는 이 시대와 동일한 모습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영적인 실상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고함지르는 군중이 있습니다. 몰려다니는 대중들이 있어요. 진실을 알아서가 아닙니다. 뭔가 홀린 듯이 뭐에 쓰인 듯이 이렇게 지금 관기의 시대로 변해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시대가 정상적입니까? 그러면 지금은 광기의 시대예요. 분노를 이런 방법으로 표출하는 게 정상입니까? 그래 우리는 이런 사회 현상에 대해서 이게 무슨 일인지를 우리는 꿰뚤어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죽임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이런 끔찍한 일들이 왜 일어나느냐는 것이죠. 저는 여러분들이 이 일에 대한 이 사도 요한의 진단과 답변을 꼭 기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요한 일서 3장 

8절 말씀을 한번 찾아보시겠습니까? 

유한일석 3장 

8절 말씀 읽으셨 찾으셨으면 같이 있습니다. 

시작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왜 오셨다고요. 이 땅에 왜 태어나셨다 왜 오셨다고요. 하나님이 아들을 왜 보내셨다는 것입니까? 마귀의 이를 멸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마귀의 일 이렇게 얘기하면은 벌써 이 사람 요새 사람들은 뭐 피식 웃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또 마귀야 크리찬들은 아직도 사탄 타령이야 입만 열면 사탄 얘기야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사단의 밥이에요. 지금 이 시대 대명천지의 사탄이 어딨어 그런 얘기 아직까지 하고 있는 그리스도교를 누가 믿겠어 이렇게 조롱하는 사람들은 사단에 밥도 안 되고 반찬밖에 안 돼요. 여러분 이 영적인 문제를 모르면 우리는 만 쪽짜리 크리스찬들이에요. 

여러분들이나 전화 결심합니다. 결심이 지켜집니까 후회도 해요. 그런 짓 안 하길라고 결심합니다. 됩니까? 미워하지 않으려고 여러분들이 애쓴다고 미워하지 않습니까? 왜 실패하는 것입니까? 왜 우리는 마음먹은 것 하나 제대로 안 됩니까? 우리가 죄로부터 자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여전히 우리가 그렇게 죄 습성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아직도 우리가 끊임없이 옛사람에 속해 있기 때문이고 우리의 아이덴티티 소속이 아직도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에요. 왜 사람들에 대해서 그런 적개감을 가지고 있습니까? 왜 걸핏하면 화가 납니까 왜 분노가 소스라 치듯 올라옵니까 여러분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까? 여러분 예수님의 이 땅에 오셔야 했던 이유는 우리의 본성을 바꾸기 위해서 여러분 크리치아는 조금 더 나아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거듭나지 않으면 가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분이 마귀의 일을 면하지 않으면 우리는 마귀에 속상해서 못 벗어 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까십을 좋아합니다. 남이 잘되는 거 좋아하지 않습니다. 남 안 되는 건 내심으로 고소하게 여깁니다. 배 아픈 건 참아도 뭐는 못 참는다면서요 왜 우리한테 그런 게 있냐는 거예요. 여러분 이걸 우리가 정확히 모르면 우리는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존재에 불과해요. 우리한테 여전히 마귀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여러분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난 배후에 얼굴들이 어른거리는 걸 보지 못하면 저와 여러분들은 헛거예요. 헛거 지금 이 4월이 마땅히 스테반이 죽는 것을 기뻐하고 있는 얼굴 뒤에 어른거리는 얼굴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군중들의 무리지더니, 크리스안들을 핍박하고 박해하는 이 시대적 분위기 소에 어른거리는 얼굴을 보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보여야 우리가 영적인 눈을 떴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 실상이 이해되기 시작을 해요. 왜 이 지경인가 왜 우리는 양차 대전을 치르고 또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분노를 해결하지 못하는가? 여러분 분노조절장애라 그런 말은 없대요 우리는 그냥 이 세상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뿐이에요.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깊이 돌아가는 세상 가운데서 우리는 정확한 진실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그들처럼 살기 위해 그들과 같은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죠. 우리는 저들처럼 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부름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회란 이 세상처럼 살지 않도록 불러내신 사람들이에요. 그러면 불러낸 세상을 어떻게 우리가 바라보고 어떻게 우리가 어떻게 세상 속에 살아내야 할 것입니까?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읽으면서 이 말씀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를 우리가 듣지 않으면 우리는 그냥 주일 예배 한번 드린 게 끝이죠. 뭐 그리고 우리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것이죠. 왜 교회를 다녀도 안 달라집니까 왜 변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는데, 어디로부터 빠져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절박한 생각이 없고 간절한 소원이 없고 그리고 일껏 건져내어도 뭐로부터 빠져나왔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옛사람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죠. 여러분 마귀의 일은 주님께서 멸하지 않으면은 우리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능력이에요. 예루살렘이 있는 교회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근데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박해를 허락하시는 겁니까? 스테반이 왜 죽어야 합니까? 그리고 죽었으면은 당장 무슨 보복 조치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산해들인 공해를 흩어버리든지 그리고 대제4장이 무슨 뭐 갑자기 병에 걸려 죽든지 무슨 이런 일이 일어나야지 왜 크리찬들이 흩어져야 하느냐는 말이죠. 왜 이 땅에 평양 대부흥이 있고 나서 6.25 전쟁이 납니까 아니 예루살렘의 성지가 되었던 평양이 부흥했으면 각 도시가 또 부흥하게 내버려 두면 되지 왜 전쟁이냐는 말이에요. 여러분 그러나 전쟁 때문에 이 땅에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져서 가는 곳곳마다 이 땅에 교회를 세운지 아시죠.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이 땅에 박해가 허락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핍박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박해가 있더니, 예루살렘에는 사도들 이외에는 다 흩어져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마치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흩날리듯이 그래서 그냥 흩어지듯이 그렇게 흩어지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자발적으로 흩어지지 않으면 흩어져야만 할 일이 생기게 돼 있어요. 주님께서는 흩어지는 일들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시대를 놓고 기도해야 될 까닭은 우리가 그렇게 흩어지지 않도록 주님 우리가 스스로 흩어지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는 저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왜 우리가 흩어질려고 이렇게 매주 난리를 칩니까 왜 그렇게 뭐 교회 문을 닫고 인위적인 방법으로라도 기억이 못 오게 합니까? 그래서 이게 불편해서 못 다니겠다. 좁아서 뭐 주차도 안 되는 주제에 또 뭐 한 번씩 문을 닫고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이 교회 어떻게 다니냐 여러분 우리가 흩어지는 훈련을 받고 흩어져야 할 마음의 준비가 되고 흩어져서 드리는 예배가 여기서 드리는 예배와 동일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냥 종교적인 삶에 익숙한 종교인들이 되고, 말아요. 

보험의 능력을 한 번도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고 우리가 흩어져야 할 이유와 소명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 보지 못하고 그냥 여기가 좋사오니 그냥 제 아이들까지 여기에서 다니게 해주세요. 여기가 쫓사오니 초망 셋을 짓고 수양관 선교관 뭐 교육관 짓고 말이죠. 그리고 공원묘지 하나 사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케어하는 그런 교회 만들어주세요. 왜 복지기관입니까? 예수님이 그걸 위해서 교회를 만드셨습니까? 아니요. 흩어져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 이 교회 이 시대 교회가 무슨 흩어져야 하기는커녕 바벨탑을 쌓고 에녹 성을 쌓는 그런 교회가 된다면은 주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흩으실지 한번 똑똑히 우리가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렇게 흩어져야 할 분명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우리가 안다면 흩어지는 것에 순종하면서 흩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이렇게 리스데반을 장사하고 슬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은 그냥 잔멸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까? 3절 말씀 읽으십니다. 시작 4절 말씀 시작 4월이 교회를 참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간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로 대변되는 4월로 표본을 삼은 이 무리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집집마다 다니면서 그리스도를 체포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다가 감옥에 지금 넣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이 4월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열심인 사람이에요. 누구보다도 종교적 열심히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쉴 새 없이 지금 움직이고 있어요. 어디까지 갑니까? 체포 영장 받아서 다마스커스까지 갑니다. 다마색 다매색은 당시에 지금 시리아의 수도이고 당시 아람의 수도예요. 

예루살렘에서 직선 그리면 240킬로미터입니다. 무슨 비행기를 타고 갑니까? 기차가 있습니까? 자동차가 있습니까? 거기를 그렇게 열심을 다해서 가는 이유가 뭐예요? 그런 열심을 하게 하는 배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배우에 붙들리면 우리보다 더 열심히 해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밤새 머리 쥐 짜내어서 사람을 박해하고 탄압할 궁리를 하는 것이죠. 오히려 조는 건 그리스도인들이죠. 기도하다가 졸고 엎드려 있다. 졸고 그래요. 이 4월이라는 사람이 목적은 하나 교회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동일합니다. 여러분 사탄이 하는 일은 뻔해요. 여러분 사탄하면 여러분들은 뭐 소리 이제 그만 듣기 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몰라요. 그런 생각이 들면 대개 사탄의 수하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안에 그게 있으면요 소리가 아주 듣기 싫어요. 

그냥 소리에 귀를 막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 마귀라고 번역된 단어 이 단어는 원래 헬라로는 디아볼로스예요. 디아볼로스는 디아발로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예요. 그런데 디아발로라는 동사는 뭐냐 하면, 적의를 가지고 고소하다 적의를 가지고 대적하는 거예요. 그래서 고소고발 중상모략하는 게 사단의 능력이에요. 그래서 디아볼로스는 중상자 모략자 비방자 이런 뜻으로 번역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가 왜 이렇게 고소고발이 많고 서로 중상이 많고 모략이 많고 음해가 많고 까12 많고 그냥 남의 얘기를 할 그렇게 즐겨하고 남의 욕하는 거 들으면 그렇게 고소해 합니까? 왜 마음 가운데 그런 못된 아기가 그냥 솟아오릅니까 왜 인간의 인간에게 대해서 그렇게 적대적입니까? 저기가 만면합니까? 살기로 충전합니까? 그게 마귀의 일이라는 거예요. 마귀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의지대로 안 돼요. 

우리 마음대로 안 됩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되면 여기 왜 왔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정말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마귀의 속성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셔서 그게 구원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호적 변경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그야말로 누구든지 이름을 부르는 자들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시니까 우리가 말씀을 믿고 그리고 믿음 가운데 우리가 거듭나면 그러면 우리도 누군가에게 사실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되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이 시대 주님께서 우리를 전도자로 부른 거예요. 오늘 이 사울이 이렇게 체포 영장을 받아 가지고. 살기 등등 중학교 다닐 때 크리스찬들은 흩어졌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어요. 예고한 사실 아닙니까 주님이 말씀 안 한 일이에요. 

너희들이 성령을 받으면 너희들이 권능을 받으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고하신 대로 지금 흩어지는 거예요. 가는 곳마다 그들은 지금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4절부터 7절까지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낳으니 여러분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면서 뭘 전한다고요. 복음의 말씀을 전한다는 거예요. 두려움으로 지금 도망간 곳 아닙니까 여러분 사마리아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에요. 사마리아는 여러분 알다시피 갈릴리 사마리아 유대 중에서 가운데 끼어있는 부분입니다. 근데 이 역사적으로 이거 사람들은 거의 다 혼혈족이 되고, 말았어요. 

아람이 침범하거나 바베놀이 침범에 끌려가거나 그냥 여기서 전부 다 이렇게 혼혈이 생겨 가지고 이방인들도 싫어하고 유대인들도 끔찍히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땅이 얼마나 싫었으면 그게 발을 딛고 싶지 않아 하겠어요. 그래서 갈릴리에서 유대로 내려올 때는 북부에서 남부로 내려올 때는 이 사마리아 땅을 밟지 않고 강 건너 요단강 동편으로 건너갔다가 거기선 유리고까지 내려와서 다시 여리고를 통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그런 여행 코스를 짰어요. 사마리아 땅은 누구도 가고 싶지 않아요. 않는 땅입니다. 땅에도 물론 하나님을 믿어요. 거기도 이 토라라고 하는 모세 오경은 있어요. 그러나 그들이 마치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처럼 신앙도 그렇게 하나님과 이방 신앙이 아주 이렇게 혼합이 된 것이죠. 안 믿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믿음은 온당치 않은 믿음인 것이죠. 그래서 땅에 아무도 안 가고 싶어하는 땅입니다. 근데 땅을 어떻게 밝게 하십니까? 흩어져서 밝게 하는 거예요. 

가고 싶지 않지만은 가야 할 곳이기 때문에 박해를 통해서 위협을 평해 도망간 사람들이 땅에 지금 들어가기 시작을 합니다. 가서 직장 구했다는 얘기가 있습니까? 먹고사는 걱정부터 했다는 얘기가 있습니까? 그런 얘기는 다 차치하고 그들이 가서 지금 하는 일은 입을 닫아야 할 터인데 잠잠해야 할 터인데 크리찬이라는 신분을 드러내지 말아야 할 터인데 이들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아니 이 사람들이 무슨 신학교를 나왔습니까? 무슨 무슨 성경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들입니까? 아니면은 무슨 전도 폭발 훈련을 받은 사람들입니까?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핍박이 나자 그따위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복음이 단순하기 때문이에요. 복음은 누구나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교리나 이론이 아니에요. 복음은 사건입니다. 복음은 역사적 진실이에요. 여러분 그건 진실이기 때문에 진리이기 때문에 전하는 것입니다. 내 컨디션 때문에 전하는 게 아니에요. 내 경험이 있어서 전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그걸 믿었더니, 난 정말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리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온 집안이 하나 되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있어서 전하는 게 아니에요. 이 사람들이 지금 이 사람들은 사실이기 때문에 여러분 복음은 사실에서 기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때문에 그걸 믿으면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해집니다. 여러분 이걸 전하는 거예요.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이걸 전하는 게 전부입니다. 매주 제가 설계하는 게 이걸 전하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무슨 내 경험을 얘기합니까? 내 생각을 얘기합니까? 내 책 읽은 걸 무슨 여러분들한테 자랑하려고 이걸 하겠습니까? 복음은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 진리가 선포되는 것입니다. 뭘 배워야 마땅합니까? 이걸 다 무슨 뭐 갔다 와야 신학교를 갔다 와야 하는 겁니까? 아니요. 

이 사람들은 그냥 땅에 갔기 때문에 본인이 경험한 것을 본인이 목격한 것을 그냥 사실을 사실로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도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이걸 전합니다. 그랬더니, 빌립의 말을 듣고 행하는 표정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신기하게도 지금 사마리아 사람들이 말을 들었어요. 주의 깊게 들었어요. 경청했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우선 들어야 혼자서 그리스 안 되는 사람 없습니다.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누군가의 복음이 전하는 소식이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복음을 전하는 발의 걸음이 있어야 합니다.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가 주다 예수가 그리스도다 그 말을 주의 깊게 듣고 한 번 더 생각해야 돼요. 그 말이 내 마음 가운데 머물러야 돼요. 

예수가 누군가 예수가 도대체 이 시대에 누군가 2000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바뀌었다는 청년이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 말이 내 안에서 잠잠히 묵상되기 시작을 해야 돼요. 그게 지금 이 말을 따르더라고. 하는 뜻이에요. 말을 따른다는 것 말에 붙들리는 것입니다. 말이 내 마음속에 머무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때 우리는 회개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여러분 신앙은 그 말씀이 우리한테 임했을 때 우리가 돌이키고자 하는 회개 그런 놀라운 일이 시작이 되는 것이죠. 이리 가던 삶을 돌이켜야 하겠구나 내가 질주하던 삶을 다시 멈춰야겠구나 그러네 성공과 내 자망을 위해서 다 질주하던 내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되겠구나. 여러분 그게 지금 이 사마리아 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이에요. 그랬더니, 말이 내 안에 머무르고 복음이 우리 안에 왔고 사마리아 성에 복음이 전해졌더니, 무슨 일이 있습니까? 

더러운 귀신들 사람에게 붙어있던 더러운 귀신들이 소리 지르고 떠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복음의 사람이 되어서 가면은 여러분 귀신들이 알아본다는 거 아십시오. 여러분들 이제 미아리가 또 정체가 들통나요? 들어오지 말라고 그럽니다. 그들이 떠나야 돼 두려워합니다. 여러분 귀신들이 떠나간다는 겁니다. 이 시대에도 귀신들이 있습니다. 귀신의 일들이 있고 귀신이 하는 일들이 있어요. 여러분 일은 복음 밖에는 귀신이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의 특징은 더러움이에요. 여러분 보십시오. 사람이 귀신 들린 사람인가 귀신 친구인가 아닌가는 보면 압니다. 

말이 더럽고 표정이 더럽고 음란하고 폭력적이고 뭐 걸핏하면 여러분 짜증을 내고 이게 다 귀신들린 증거 아닙니까 밤에 잠 못 자고 그야말로 불안해서 떨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모르고 여러분 귀신이 옛날처럼 뭐 이렇게 이빨 뒤게 들고 나는 귀신이다. 그렇게 나타난 줄 아십니까? 옛날처럼 뭐, 머리 풀고 흰 소복 입고 나타난 줄 아니 요새는 양복 입고 넥타이 매고 여러분 저처럼 말끔하게 나타나는 거예요. 천사의 모습으로 가장하는 것입니다. 식별하기 어려워요 여러분들이 그러나 우리가 식별할 수 있습니다. 생활이 지저분하다는 것입니다. 생활이 불결하다는 거예요. 깨끗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에 영이 계시면 여러분들은 거룩하게 될 줄로 믿으십시오. 

생각이 깨끗하고 삶이 정갈하고 관계가 깨끗 무슨 맺지 말아야 할 관계 맺지 않습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리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지금은 다 이 병 들리면 병원 가겠지만, 옛날에는 정말 이런 영적인 질병 때문에 짓눌려서 마치 다윗이 간음하고 나서 예 여름 가뭄에 내 진액이 다 빠져서 말은 가뭄처럼 되었습니다. 그럴 때 생기는 병적 정상들이 다 풀려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죠. 조의 영이 오면 내 영을 새롭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마음 가운데 진정한 영적인 새로움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여러분 이 땅이 무슨 뭐 신기술이 온다고 사람이 새로워집니까 여러분 우리가 2017년을 산다고 옛날 사람들보다 새롭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과거하고 우리하고 지금 달라졌다고 믿으십니까 또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십니까? 아니요. 

저는 여러분들이 새로운 기술이 왔다고 해서 사람이 새로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뭐 어릴 때 전화 한 통 할려 그래도 그리고 해외 전화 갈려면은 저기 국제 전화국이 갔어야 돼. 그 3분 돈이 비싸가지고 3분 동안에 할 말을 적어 갔어요. 왜 딴소리 안 할려고 근데 지금은 뭐 메신저다 뭐다 그냥 마음대로 전화를 하니까 쓸데없는 소리만 많이 하지 않습니까? 여러 메신지나 메시지로 돌아가는 내용들이 그게 진화한 내용입니까? 좀 진보된 대화를 하고 있습니까? 옛날보다도 헛소리가 훨씬 많아졌어요. 그야말로 딱 떠나고 싶습니다. 사실 그러면 우리가 뭐 인공지능이 오는 제 4차 산업혁명이라면 우리는 더 성숙해질 거라고 믿으십니까 사람들이 더 성숙해질 것 같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저는 다가올 시대가 어떤 시대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 보면 한눈에 보입니다. 사람들을 더 옥죄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더 탄압하고 욱박지르게 될 것입니다. 

묻지 마 범죄는 더 늘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를 더 통제하자고 주장할 것입니다. 완벽한 통제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겠죠. 저는 이 시대가 가는 방향을 우리가 분명히 보고 있지 않으면은 우리는 점점 불확실성에로 빠져들면서 초불확실성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어떻게 가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놓치는 사람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이 복음에 붙들리지 않으면 복음의 능력에 붙들리지 않으면 우리는 시대를 분별하는 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귀신 들린 사람들은 지금도 하는 행동이 똑같습니다. 누군가를 또 중상하고 모력하고 사기치고 빼앗고 그리고 갈등하고 반목하고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그러고 살아가겠죠. 그러나 이 사마리아 땅에 21세기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이 사마리아 땅에 복음이 전해졌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8절 읽습니다. 

시작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여러분 여러분들 인생에 예수님이 오셔서 이 기쁨을 맛본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것입니다. 단번에 알아들을 것입니다. 복음이 오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여러분 지금 무슨 사마리아 성에 대축제가 일어났습니까? 아니요. 경제 지표가 다 개선됐습니까? 아니요. 그런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 이 기쁨은 어떤 기쁨입니까? 상황이 바뀐 기쁨이 아니에요. 환경이 달라진 기쁨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다 이 복음이 전해진 때문이에요. 여러분 메시지 하나가 우리 인생을 어떻게 바꾸시는지를 경험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에요. 

우리 인생에 찾아오셨더니, 그분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큰 기쁨을 맛보았는지를 아는 사람들 아닙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그런 기쁨을 맛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기쁨을 우리가 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를 그냥 보링하게 느기는 거예요. 그리 어디 할 게 없어서 교회를 다니냐 왜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사냐 세상의 즐거움을 다 마다하고 그렇게 살면 뭐가 되냐 세상하고 어떻게 너희들이 같이 살려고 하냐? 심지어 오랫동안 믿는 사람들도 그래요. 괜히 빨리 믿어 가지고 고생이네 조금 늦게 믿을 걸 조모라는 목사는 47세까지 실컷 놀다 와가지고 전혀 소리 안 해 여러분 고생 안 해봐서 알죠 쾌락의 끝이 뭡니까? 세상적 즐거움의 끝이 뭡니까? 다 묶여 사는 거예요. 중독 아닙니까 알코올 중독 뭐 일 중독 성중독 지금은 마약의 시대입니다. 마약을 구하기가 이렇게 쉬운 줄 몰랐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약에 중독되어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왜요 즐거움이 없으니까. 

즐거움이 한계에 도달하니까 또 다른 더 강력한 즐거움을 추구하니까 여러분 기쁨은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아요. 기쁨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정립되면 기쁨은 그냥 수원지에서 물이 흘러들다 흘러드는 거예요. 그 기쁨을 맛보면은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기근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그 여름의 선자가 얘기했듯이 이 시대 우리가 지금 두 가지 악을 보강하였나니 하나는 생수 대신 근원 대신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터진 물 웅덩이를 지금 파고 있는 것 아닙니까 거기는 물이 새서 아무리 우리가 파야 담지 못하고 저축되지 않을 그런 웅덩이 각자 그런 웅덩이를 파고 있는 것이죠. 답이 있습니까? 결론이 있습니까? 우리가 해볼 만한 거 다 해보지 않았습니까? 

정치 세력도 우리가 겪을 만큼 다 겪어봤고 경제 시스템도 우리가 다 겪을 만큼 겪어봤고 교육과 문화 시스템도 다 겪어볼 만큼 겪어봤어요. 교육 많이 받는다고 인간이 달라졌습니까? 소득 수준이 높아진다고 사회가 성숙됐습니까? 아니요. 저와 여러분들이 모든 세력의 배후에 있는 세력 모든 얼굴 배후에 있는 얼굴 얼굴의 실체를 모르면 우리는 판판이 당하고 마는 것이죠. 나아진 줄 알아요. 여러분 저는 이 시대의 끝이 정말 우리가 무슨 뭐 인간의 DNA를 조작하고 그래서 모든 질병으로부터 해방되고 우리의 수명이 무한정 연장된다고 믿으십니까 그런 환상을 우리한테 심어주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깨어있어야 할 것은 그런 것들이 답이 궁극적인 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향해서도 동일하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까닭 복음이 능력을 가지는 까닭은 그것이 지금도 여전히 굿 뉴스인 까닭은 500년 전도 그랬고 1000년 전도 그랬고 2000년 전도 그랬고 변함없이 그것은 진리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우리에게 능력인 것입니다. 진리가 오면 우리는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묶인 것들로부터 자유해지고, 귀신들로부터 자유해지고, 마귀의 일로부터 자유해지는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경험할 수 없는 기쁨 지금 기쁨이 온 성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 믿었더니, 한 가정에 그런 기쁨이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기쁨을 맛보면은 여러분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되는 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더 있고 덜 있고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리에 가고 안 가고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여러분들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보험이 있다는 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능력이 우리한테 있어야 기쁨이 우리한테 있어야 이 시대를 뚫고 나가는 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그런 능력을 갖는 것이죠. 여러분 남대천에 연어가 한 마리 돌아다녀도 3만 키로를 돌아다니다가 그리고 강원도 남대천까지 몸이 찢어져라고 올라갑니다. 알을 낳기 위해서 새 생명을 낳기 위해서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온 전신이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이 내가 태어난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몸이 그렇게 찢어지더라도 아버지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그냥 세상에 탐닉하고 세상이 좋고 세상의 것들을 찾다가 넋을 잃고 여기서 길을 잃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게 우리가 오늘 이 성에 기쁨이 전해진 이유예요. 동일하게 이 시대도 무슨 기쁨이 2세상에 있습니까? 어디에 여러분들 기쁨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 성에 이런 복음이 전해지기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구절 10절 11절 읽습니다. 시작 성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수를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친 큰 자라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성의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시몬 베드로 아닙니다.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 시몬 마구스라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사람은 전부터 능력을 가졌어요. 근데 가짜입니다. 여러분 이 가짜가 사마리아를 통째 좌지우지하는 사람이에요. 낮은 사람보다 높은 사람까지 다 그를 두려워합니다. 그에게 복종합니다. 능력이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특징이 뭡니까? 자칭 큰 자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가짜 진짜 식별하는 건 지극히 쉽습니다. 

가짜는 전부 자기가 크다고 말해요. 큰 사람 시흉을 해 사람을 몰고 다녀요 여러 사람 따라가게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 만나면 가짜구나 알면 됩니다. 여러분 진짜는 큰 자가 아니라 작아지는 자입니다. 4월이 큰 자를 꿈꾸다가 주님을 만나고 작은 자가 되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작은 자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지극히 작은 사람 가장 작은 사람보다 나는 더 작은 사람이다. 이게 하나님을 만든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큰 자 행세를 하겠습니까? 더 커지기 위해서 꿈을 키우겠습니까? 더 큰 사람 행세를 하기 위해서 요런한 행여를 끌고 다니겠습니까? 아니요. 저는 여러분들이 정말 작은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자가 되기로 십자가를 치기로 가장 낮은 곳으로 가기로 결정한 예수님을 가장 높은 곳으로 올리셨듯이 저는 여러분들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이실 것입니다. 나는 작아지기만 하면 나는 겸손하기만 하면 나는 무익한 종이라고 날마다 고백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들어 쓰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셔야 여러분 상급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이 사람을 다 다 따른다는 거예요.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돈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신기한 일이에요. 저는 재벌들도 이런 사람 따라가는 걸 봅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따라가나 저런 이단을 따라가나 저런 이단 교주에 정신을 잃라 여러분 아무리 가지면 뭐하고 아무리 배우면 뭐합니까? 가짜 진짜 하나 식별 못하면 무슨 여러분 의미가 있습니까? 능력이 좀 나타나면 거기에 우르르 몰려갑니다. 

예언 기도하면 거기 머리 튀민다고 난리줄을 씁니다. 무슨 예언이 필요합니까? 여러분이 죽는 거 말고 여러분들이 죽어서 천국 간다는 거 말고 무슨 예언을 그렇게 듣고 싶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개인적인 미래 궁금증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부르셨고 택하셨고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까닭은 우리가 다 복음의 사람 주의 사람 그런 증인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지. 우리를 증거하고 우리를 드러내고 우리를 나타내려고 우리를 부르신 게 아닙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말하는 것도 주님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의 삶에 모든 것들이 주는 그리스도시다 내 인생의 주인은 그분이시다 내 인생에 이 주인이 구분되었더니, 내 인생의 이런 저런 작은 문제는 하나도 내게 걸리지 않는다. 이런 고백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아닙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개인적인 문제에서 풀려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 여러분들이 진정한 그런 문제에서 풀려나면 여러분 기쁨이 왜 없겠습니까? 

우리 안에 차고 넘치는 기쁨을 뺏길 수 없는 기쁨을 누리지 않겠습니까? 그 기쁨이 여러분 모두의 능력이 될 것을 믿습니다. 이게 여러분 복음의 능력이에요. 복음의 능력 복음의 능력 그러나 그런 복음의 능력을 전하는 진짜는 적어지고 가짜는 점점 더 많아질 거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나중에 디모데게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디모데우스 3장 13절 읽어드릴게요.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화해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안 하니 여러분 악한 사람들은 더 악해질 것입니다. 속이는 사람들은 더 속일 것입니다. 속는 사람들은 더 속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시대는 그렇게 향해 줄다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시대 가운데서 정말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신 갑주로 무장되기를 바랍니다. 

자 빌립이 들어와서 복음이 선포되었더니, 소위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이 좌지우지하던 한 사마리아가 기쁨에 넘치더니,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는 것을 보게 됩니까? 12절 13절 읽고 마칩니다. 시작 빌리비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심원도 믿고 세례를 받으니 원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빌립이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내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해서 여러분 예수는 그리스도다 예수라는 이름이 능력 아닙니까 예수와 여호수아 하나님이 구원하신다 하나님이 구원이시다 이름만 불러도 능력이 될 줄로 믿으십시오. 그리여 이름에 관해 전도를 받더니, 남녀가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란 무엇입니까? 

내 주인이 내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고백 아닙니까 그래 여러분들 다 세례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교회나 매달 세례받는 사람들이 정말 그치지 않는 것을 감사합니다. 저는 세례를 다 받고 그리고 심원도 믿고 세례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여러분 이 심혼도 능력 꽤나 행사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짜도 진짜 앞에서는 진짜의 능력을 보면 놀라게 되는 것이죠. 이 가짜도 진짜는 알아보는 사람들입니다. 가짜가 추적해서 진짜 모르는 가짜들이 있고 진짜는 그래도 알아보는 가짜들이 있어요. 여러분 이 영적인 능력을 가진 가짜들은 영적인 발언 능력을 알아보는 가짜들이에요. 그래서 이제 드디어 빌립을 연심으로 따라다니는 사람이 된 것이죠. 빌립이 뭔데 그를 따라다닙니까 빌립에 무슨 능력이 있어 따라다닙니까 빌립 안에 있는 성령의 능력이시죠. 

저와 여러분들이 성령을 받고 주의 복음을 믿기 시작하면 그분 안에서 거듭나는 것을 경험하고 그리고 성령이 여러분 안에 오면 여러분 안에 있는 놀라운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매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무슨 매력이 있고 우리의 능력이 아니냐 우리 안에 계신 분 말씀의 능력 복음의 능력 능력이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일 때 사람들을 끌어당길 것이고. 그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그리고 우리가 온유와 겸손으로 대답하게 되면 사람들이 이렇게 시몬처럼 그야말로 사람들에게 그런 추앙을 받던 사람조차도 복음에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시대 그런 심원들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돌아오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뭐가 희망입니까? 어떤 소망입니까? 단지 이런 빌립과 같은 전도자에 의해서 복음이 전해질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대표적인 종교인 리고데모를 향해서 말이죠. 거듭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당대의 종교인 가장 종교를 대표하는 사람한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요한범 3장 5절 6절 보면은 이렇게 돼 있죠.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내기에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여러분 이 세상을 아무리 봐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배후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관계의 세상이 됐는지 알 수가 없고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죠. 육 으로 난 것은 6.25 영 으로 난 것은 비로소 영 입니다. 좋아 여러분들이 정말 세례받고 거듭나서 영어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진실이 보이기를 바라고 이 세상의 실체가 드러나기를 바라고 그리고 여러분들을 통해서 세상이 구원받아야 할 세상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부러워서도 아니 5세상을 우리가 갖고 싶어서도 아니 5세상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에베소스를 보면은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2장 12절 말씀에 이 사마리아 성을 두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때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왜인이오 세상에는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여러분 하나님이 없는 곳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곳에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왜 빌리자 빌립과 같은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까? 왜 이 시대에 우리를 전도자로 부르셨습니까? 이 땅에 소망이 없기 때문이에요. 저와 여러분들의 발걸음이 옮겨져야 소망이 생기는 것이지. 이 땅에 소망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같이 묵상하면서 우리가 한 주간의 삶 가운데 우리가 걸어가는 곳에 소망이 비로소 생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곳에 비로소 어둠이 쫓겨나고 빛이 임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곳에 비로소 증오가 사라지고 그곳에 사랑이 싹트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사람이 되십시오. 능력의 사람이 되십시오. 성령의 사람이 되십시오. 복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때 우리는 전도자 빌리처럼 하나님께서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가 정말 입을 열어 복음을 증거하는 곳마다 생명의 시야 다시 뿌려질 것입니다. 한 주간의 삶을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 제 발걸음이 전도자 빌립과 같은 발걸음 되게 해 주십시오. 사마리아 같이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마는 주님 보내신다면 순종하며 가겠습니다. 그곳 가운데서 주님 우리가 말씀을 증거하게 하시고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주 그렇게 간절히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주께서 물으셨습니다. 우리를 복음의 사람으로 

빚으셨고 말씀의 사람으로 빚으셨고 능력의 사람으로 믿으셨사오니 주님 우리가 가는 곳마다 복음이 징그되게 하시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옵소서 마귀의 일이 떠나게 해 주시옵소서 더러운 귀신이 떠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주께서 우리를 붙드셨습니다. 당하고 담대하게 하시고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게 하시고 가는 곳마다 죄사랑으로 소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능력의 사람들로 세우셨사오니 능력이 증거되게 하시고 복음이 드러나게 하시고 감정이 있게 하시고 주님께서 놀라운 능력의 사람 사람들 놀이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 시대가 주님 암울합니다. 이 시대가 불확실한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갈수록 두려워합니다. 

하나님 저들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시고 저들 향하여 손을 뻗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손을 내밀어 저들을 구원의 자리로 인도할 수 있는 주님 귀한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너희는 복이라 우리를 통하여 주님 복음이 청군에게 알실 수 있는 놀라운 믿음의 사람으로 보내셨어 주님 한 주간의 삶 가운데 그런 능력이 나타나게 해 주시옵소서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게 해 주시옵소서 기적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대한 믿음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대한 믿음을 보게 하여 주시 5주여 그렇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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