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창고

[묵상] 고린도후서 12:10

yt1981 2023. 6. 1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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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자랑2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12:10)


고린도교회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성도입니다. 


'성도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거룩한 백성이라는 성도는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이 부분에 있어서

초신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남과 비교해서 조금 낫다 싶은 것들을 자랑했습니다. 


은사를 받았음을 자랑했고,

물질이 많았음을 자랑했고,

내가 따르는 스승이 더 나음을 자랑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신앙의 가장 큰 적은 무엇인가? 할 때…잘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초점이 무엇인가?


'나'입니다.


'나'는 잘되어야 마땅합니다.

'나'는 성공해야 당연합니다.

'나'는 부자가 되어야 당연합니다.

'나'는 영적으로도 풍성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에 깊이 빠져있는 성도가 둘 만있어서 교회는 시끄럽습니다. 


결론은 무엇인가?


'지가 하나님이요

 지가 주님이요

 지가 주인노릇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부분을 집요하게 다룹니다. 

신앙의 초점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다 라고요…


주님을 알아가는 것이요

주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요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주님께서 나를 통한 뜻과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이요


그러하기에 내가 잘되든, 못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교회를 섬기면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이 부분은 목회자가 결정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회자가 자신의 이름이 높여지기를 원하는 사람이면 성도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목회자가 야망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성도도 그렇게 됩니다. 


바울은 그렇게 고린도교회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의 거짓 교사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파당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최근에 고민한 것이 있습니다. 


어느 비인격적인 목회자가 자기의 성도들은 굉장히 인격적이라 합니다. 


이것이 맞는 말일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내린 결론은 그 성도들이 목사님 앞에서는 인격적으로 보이겠지만 그 다음 목회자를 만나면 그 때 비인격적인 모습이 나올 것이라고…


물론 우리들이 성도나 목회자에 대해 인격적이냐 비인격적이냐 따지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성을 가진 인간이 다른 영혼에 대해 판단하는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그가 예수님의 은혜를 안다면, 그 은혜를 자랑한다면, 그러한 성도가 되지 않겠는가 입니다. 그러한 목회자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은혜를 알면 자랑할 것이 별로 없어집니다.

나의 죄성밖에는…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밖에는…


왜 성도에게 고난이 올까요?

그것은 성도를 다듬기에 정말 좋은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으로 인해 성도가 성도다워지고 겸손해집니다. 


한국교회 그동안 자랑질 정말 많이했습니다. 

우리시대에 그 대표적인 샘플이 장위동에 있는 전**목사이지 않습니까?


이 분은 죽지도 않습니다.

이 분은 감옥에 가지도 않습니다.

이 분은 재판을 해도 끝까지 합니다. 


제가 볼 때 대단한 분이십니다.

이 분이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자의 대표자입니다.


제가 만나본 목회자 중에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목회자는 정말 만나보기 힘이 듭니다. 없다고 봐야 합니다. 

저도 아닙니다. 그만큼 타락했습니다. 그만큼 고린도교회와 비슷한 한국교회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를 따져봅니다. 


신학입니다. 

부흥신학입니다. 

잘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잘못된 신학입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순교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순교했고,

바울도 순교했고,

베드로도 순교했고,

모든 제자들이 순교했고,

스데반도 순교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순교하면서까지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고

예수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거하기 위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후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중세 암흑기를 맞이했습니다. 


잘되는 것이 복인 시대가 온 것이지요. 

타락한 중세에서 다시 복음으로, 다시 신앙으로 돌아가고자 개신교가 등장했습니다. 


개신교가 시작된지 500년이 되자 개신교도 타락합니다. 

오직 예수가 아니라 오직 능력입니다.

오직 신앙이 아니라 오직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코로나이후에 다시 제자리에 돌리시나 봅니다. 


자랑했던 것들이 사라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고난이 닥쳐옵니다. 


이제 무엇이 기독교의 본질인가? 고민하게 됩니다. 


예수님이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말씀입니다.


자기 부인하는 성도가 다른 것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제서야 신앙이 설 것 같습니다. 

이제서야 한국교회가 죽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서는 것이겠지요. 


우리들이 고린도교회를 보며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하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듬어가시는 것을 봅니다. 


어둠 가운데 빛을 비추시는 주님께서

오늘의 이 어둠속에서 새로운 빛을 보게 하십니다. 


오늘 아침의 글이 좀 신랄할 수 있지만 제가 목사가 되고 목회를 하고 현재까지 얻은 결론입니다. 


다른 자랑하지 맙시다.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자랑하고

그 은혜안에 오늘도 살고 있는 은혜를 감사합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그냥 놓아주었으면 영원히 멸망받아 마땅한 나의 영혼을 택해주신 주님의 은혜를…


이쯤해서 마무리해야 될 것 같군요. 

부족하게 느껴지는 내용이 있다고 느끼시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샬롬~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4-26)

#고후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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