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에베소서 1장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에게 넘쳐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에즈베 소설을 시작합니다. 에베 소설은요, 다른 책들 지금까지 봤던 고린도 전우서 갈라디아서와는 완전히 다른 책입니다. 왜 다를까 첫 번째는 에베소서는 이제 우리가 같이 보게 되는 빌립버서 골롯에서 빌레문서와 같이 옥중 서신이라고 분류가 되어 옥중 서신 옥중에서 썼다 는 것인데 옥중에 썼다는 게 왜 중요할까요? 사람이 활동을 하면서 쓰는 글과 가만히 온 몸이 묶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쓰는 글은 다릅니다. 여러분 활동할 때 쓰는 글은요, 어디에 초점을 맞추게 될까요?
열심히 움직이면서 뭘 할까요? 문제를 해결하겠죠. 그러니까 움직이면 쓸 글들은요, 문제에 집중하게 되어 있어요. 문제와 상황에 집중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고린도 전후서와 갈라디아서까지 우리가 본 모든 내용들은 다 뭐에 집중했냐면 문제에 집중했어요. 교육이 겪고 있는 문제가 뭐냐 상황을 어떻게 이겨낼 거냐 거기 집중되어 있었어요. 게다가 고른도 전서에는 뭐 음욕도 나오고 분쟁도 나오고 굉장히 많은 교회 문제들이 나왔고 후소와 갈라디아서까지는 이 사도 바울이 전환 복음을 뒤집어 엎으려는 율법에 매어 있는 사람들 가짜 복음을 전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그 공격 그리고 그들과의 싸움이 주되는 초점이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고른도 전후석 갈라디아서까지는 우리가 이 교회의 문제를 주로 다루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뭐가 없었냐면 교회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옥이 갇힌 상황에서 상황이 중요한 게 아니고 뭐가 중요하냐? 본질이 더 중요해져요 본질 그래서 과연 우리가 누구냐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셨느냐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이유가 뭐냐라고 하는 신앙의 본질에 더 집중하게 되고 더 접근하게 된 것이 바로 옥중서신입니다. 그래서요 에베소서의 특징이 뭐냐면 에베소서에는 교회 문제가 하나도 안 나와요. 하나도 안 나와요. 고른도 전후석 갈라디아사처럼 계속 문제 발생하고 그거 해결하고 또 발생하고 해결하고 이런 책이 아니라 에베소서는 하나님은 누구시고 우리는 누구고 교회는 무엇이고 구원은 무엇인지에 집중하고 있는 책이다.
여러분 그래서요 에베소서가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 그럼 뭐가 떠오르세요. 교회의 문제가 떠오르세요. 교회가 겪고 있는 상황이 떠오르세요. 그런데 그보다 더 근원적인 교회의 신분 하나님이 교회를 부르신 이유 교회가 교회 될 수 있는 본질이 따로 있다는 거예요. 그게 에베소서의 핵심이에요. 그래서 에베소서에서 뭐가 제일 많이 나오냐면 송도는 어떻게 구속을 받았나 우리는 어떻게 용서받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나 그리고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 신 우리의 평화의 신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나 그리고 교회 거기에 교회는 어떻게 쓰임 받았나 교회는 어떻게 연합되고 어떻게 성장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도의 삶은 어때야 되는가 이 네 가지가 이 에베소저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어요.
성도의 구속 우리 화평이신 예수님 그리고 교회 연합과 상징 성장 그리고 하나님의 삶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는 삶 거기 나오는 핵심은 바로 전신갑주죠 믿음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그게 이제 에베소서의 핵심인데요. 이것들을 우리가 제대로 알아보면 뭘 할 수 있냐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될 미래를 알 수 있어요. 우리 교회가 부름받은 이유도 알 수 있고 우리 교회가 여기 세워진 이유도 알 수 있어요. 내가 하나님의 성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유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에베소서는 교회론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책입니다. 교회는 어떤 존재인가 교회는 왜 부름받았나 교회는 어떻게 성장해야 될 것인가라는 이야기를 할 때 꼭 필요한 책이 예배소서다음 그래서 우리가 이번에 6장밖에 안 되는 짧은 책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한번 깨닫기를 원합니다.
나는 왜 용서받았고 우리는 왜 부름받았고 우리는 왜 한 교회가 되었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시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인가라고 하는 우리 신화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자 그러면 1절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자 하나님의 뜻 이게 첫 번째 단어예요. 하나님의 뜻 자 한번 노란색으로 쳐보세요. 하나님의 뜻 자 에베소서 전체가 말하는 게 교회인데 교회가 그러면 시작이 뭐예요? 뭘로 시작했어요. 우리가 광복교회에서 30년 전에 야 이거 올바른 뭐 목회 한번 해보자 그리고 우리가 나온 겁니까? 아니에요. 하나님의 뜻이 먼저 있는 거예요.
우리가 모이자 우리가 뭔가를 해보자가 아니라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먼저 시작됐는데 여기서 중요한 게 이 뜻이라고 할 때 델레마라는 단어인데 델레마는 뭐냐면 이 델레마는 기쁨이라는 말이 들어있어요. 이 뜻 안에 기쁨 그래서 기쁨으로 설정을 목적이라는 뜻이에요. 기쁨으로 설정한 목적 또는 성취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다는 거죠. 하나님의 기쁨으로 가득 찬 계획 그게 뜻 델레마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이에요.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람이고 예수 믿은 자를 박해하여 죽이던 사람 아닙니까 얼마나 사납고 얼마나 우리가 볼 때는 무시무시한 사람이에요. 근데 그러한 바오를 하나님은 기쁨으로 가득한 뜻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불렀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게 왜 중요하냐면 우리도 부족한 사람들이고 연약한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중에 사도 밟을 만큼 그렇게 무시무시한 사람 없어요. 그렇게 사나운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사도 바울도 기쁘신 뜻으로 불러서 변화시키고 사도를 삼으셨단 말이죠. 그렇다면 나는 왜 안 되느냐라고 하나님이 나도 하나님이 기쁘신 뜻대로 델레마로 나를 부르셔서 나를 통해서 위대한 일을 하실 수도 있다라는 것을 여러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게 오늘 하루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가 하나님의 교회 된 하나님의 성도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가장 먼저 시작이에요. 하나님의 뜻이에요. 네 레마 하나님의 뜻으로 자 그래서 나를 향하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인가 여러분 질문을 던지면요 무슨 답이 나올까요?
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내 인생의 답들이 나오기 시작해요. 여러분 질문을 잘 던져야 됩니다. 나는 왜 사나 이렇게 답을 질문을 던지면요 답이 애매해집니다. 아이고 죽지 못해 산다 마지못해 산다 답이 애매해져요 여러분 질문을 잘 던져야 되는데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무엇인가 이게 나를 향한 올바른 질문이에요. 나를 향한 기쁘시듯 하나님이 성취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놀랍고 기쁜 하나님의 계획은 오늘 무엇일까? 내가 오늘 하나님께 이루어 드릴 놀랍고 기쁜 하나님의 뜻 그것을 고민하다 보면요 기도가 행복해집니다. 예 나를 향한 기쁨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자꾸만 떠오르고 상상이 되고, 묵상이 되고, 묵상이 되고, 내 삶이 즐거워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아침에 일어날 때도요 아이고 죽겠다. 하면 안 되구요.
아이고 힘들다 아이고 뭐하러 사나 이러는 게 아니라, 야 나를 향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기쁘신 뜻이 무엇일까? 그걸 한번 고민하고 살아봐야 되는 거죠. 자 그런데 여기 보시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라고 나와요. 에베소 자 에베소 동그라미 해보세요. 여러분 에베소가 뭐 어떤 데냐면 우리가 사도 행전 19장을 공부할 때 에베소를 공부했었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19장을 한번 집에 가서 잘 한번 읽어보세요. 그럼 뭐가 나오냐면 거기에는요 아데미 여신이 나와요. 아데미 여신 헬라식으로 하면 나이아나 신인데 이 아데미 여신이 얼마나 이 당시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따르던 여신이었나 굉장히 예쁘고 고혹적이고 아주 유혹적으로 생겼어요.
그래서 여기에 수백 명 수천 명의 여사제들이 이 아데미 신전에서 일하다가 밤이 되면 내려와서 몸을 파는 그러한 도시를 아주 온통 암흑으로 만들어버리는 아데미 흰전이었고 거기에 은장색 그 은으로 아데미 신을 만들어 파는 데메드리오 같은 자들이 많았어요. 그러한 자들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완전히 복음을 봉쇄해 버렸던 도시가 에베소예요. 그러니까 에베소는 복음을 전할 때 제일 많은 저항이 있었고, 제일 많은 박해가 있었고, 제일 어려움이 있었던 도시가 에베소예요. 그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 차 전도 여행 때 에베소 교회를 세우고 나서 3차 전도 여행 때 가서 또 3년간을 목회한 데가 예배소예요. 바꿔 말하면 왜 고른도 교회나 갈라리아 교회처럼 에베소는 문제 있는 교회가 아니었는가 왜 그들 사이에는 쓸데없는 문제가 없었나 답은 밖에 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박해가 있고 어려움이 있는 교회는요 문제가 없어요. 박해가 있는 교회는요 하나님을 간절히 붙잡게 되고 정말 당장 믿음 하나가 아쉬운데 싸울 여력이 어디 있어요. 분쟁을 어떻게 해요. 뭐 이런저런 고민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었죠. 바로 어려움을 당했다. 박해를 당했다는 거예요. 참 뜻밖의 교회가 성장하고 순수하게 발전하고 하나님 앞에 더 올바른 나아가는 그런 교회의 시기는 대부분 언제냐 박해받는 시기입니다. 교회가 인정받지 못하고 박해받고 손가락질 받을 때 도리어 믿음이 성장해요. 그래서 이 인류의 역사를 뒤집어버리는 변화는 항상 박해시에 찾아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아닐까 그래서 한 번 더 교회가 더 순수한 열정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뜻 델레마 기쁘신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성장해 갈 수 있는 계기가 아닐까 싶은 거예요. 도리어 교회가 높임받고 인정받고 떠받들어 이 받을 때는 교회는 항상 부패했고 항상 무너졌고 항상 문제에 휩싸였어요. 고린도 교회처럼 갈라디아 교회처럼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왜 문제가 없나 바로 박해가 있었기 때문에 고난과 핍박이 있었기 때문에 이 교회는 문제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교회였다. 그래서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또 누구에게 보내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자 근데 여기 이 여기서 보시면, 성도들과 그리고 뒤에 또 나오니까 이게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보낸 게 아닌가 아니에요.
여기서 말하는 관은 사실은 같은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카이라고 하는 그리고라고 하는 단어로 접속사로 분류는 되어 있지만, 앞뒤에 있는 단어가 하나는 관사가 있고 하나는 없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한 사람들을 말하는 거예요. 에베수에 있는 성도들이 누구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에요. 그러면 뭐와 뭐가 만나는 거예요. 에베소에 있다는 말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다는 말이 여기서 만나고 또 하나 성도들이라는 말과 신실한 자들이라는 말이 만나죠. 그러니까 성도는 누구예요? 신실한 자들 하나님을 믿는 자 하나님이 믿어주시는 자 하나님이 믿을 만한 자들 이게 신실한 자들이거든요. 즉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냐 성도라고 말할 때 우리는 성민 귀의 성도입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요 하나님이 믿어주실 만한 사람들이요. 하나님과 서로 믿고 살아가는 신실한 자들입니다. 라는 뜻이에요.
자 그럼 더 중요한 거 에베수에 있다는 말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이 같은 말이라고 그랬죠 여러분 이게 놀랍지 않으세요. 에베소는 지금 어디를 어디라고 그랬어요. 아데미 여신이 판을 치는 곳 수백수천의 여사제들이 물을 흐리는 곳 에베소는 당시 이 정말 가장 문제 많은 도시 중의 하나였잖아요. 자 그런데 이랬던 에베소가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란 말과 동격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이게 참 놀라운 거예요. 우리 눈으로 볼 때는 세속적이고 우리 눈으로 제가 볼 때는 정말 하나도 거룩하지 않고 이건 정말 이 하나님과는 정반대에 서 있는 것 같은 예배소가 실제로는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라는 말과 동격이다. 즉 하나님은 이러한 세속적인 도시 예배소에 교회를 세우기를 기뻐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죄가 가득한 곳에 은혜가 넘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세요.
우리는 누굽니까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 다 죄인 아닙니까 말이 행동이 생각이 부정하고 연약하고 허물이 많고 온통 죄투성이에요. 그런데 그러한 우리 가운데 하나님 뭘 두길 원하세요. 교회를 두길 원하신다 그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이라고 하는데 노란색으로 쫙 쳐보세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라는 말이 뭐냐 이게 바로 앤 크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거든요. 이 말이 에베소서의 핵심이자 서도바울 바울 서신의 핵심입니다. 이 말이 자 여러분 에베소라고 하는 세속적인 도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란 말과 동격이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사람으로 치면 예배소가 누구냐면요 사도바울입니다. 사도바울 나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사도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님의 자를 핍박하고 잡아 죽이던 엉뚱한 열심으로 사람들을 박해하던 자 아니었어요. 살인과 위협에 가득한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이었어요. 그런데 이러한 나를 누가 예수님 만나주셔서 이제 난 어디 있어요. 그리스도 밖에 있던 내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갔죠 그러니까 나는 이제 사도가 되었죠. 그러니까 여러분 에베소라는 도시도 마찬가지예요. 에베소 당신들이 사는 에베소도 지금 겉으로 볼 때는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까지는 음란한 곳이오 방탕한 곳이 5세속적인 곳일지 모르나 그러나 에베소가 예수님을 만나면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앤 크리스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에베소는 변화되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놀라운 도시가 되고 놀라운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요 에베소가 당시에 얼마나 이 음탕하고 방탕했는지 우리는 기억을 못 해요. 뭐만 기억해요. 에베소 교회만 기억하잖아요. 수천 년이 지나고 남은 건 교회밖에 없어요.
에베소는 교회만 남았어요. 무엇을 말해줍니까 우리도 연약하고 부족하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할 때 뭘 기억하겠어요. 저분은 예수 믿는 사람이야 저분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야 저분이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고 저분이 믿는 교회는 정말 진짜 교회야 우리는 교회로 기억된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이 에베소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계획이고 또한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계획이기도 하세요. 놀라운 뜻이 그리스도 예수 아내라는 이 말에 들어있는데, 자 그러면 이 말이 어떻게 또 쓰이는가 이 절에 볼게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자 여기 있죠. 노란색으로 또 쳐봅니다. 주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자 예수님으로부터 뭐가 나와요. 은혜와 편강이 나오죠. 은혜와 평강 우리가 공부했잖아요.
사도 바울이 매번 편지마다 이야기하는 은혜와 평강 이 인사말은 무엇입니까? 은혜는 단번에 받는 한 번 받는 우리의 용서라고 했죠.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자로 삼으시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호의 하나님의 선물 이 카리스거든요. 이 카리스가 은혜입니다. 카리스 은혜 자 그럼 평강은 뭐예요? 평강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맞는 거예요. 매번 맞는 거 매번 맞는 거 이게 에이레네라고 하는 에이렌의 에이랜에는 살롬의 번역어예요. 하나님의 편강 계속 주시고, 또 주시고, 또 주시는 하나님의 찰롬 이 평강이 에이레네인데 이 은혜와 평강 카리스와 에이레네가 다 어디서 나와요. 주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고요. 그러니까 어디 안에 있을 때만 누릴 수 있어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만 누릴 수 있는 게 바로 은혜와 평강이죠.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받아 하나님을 믿어서 은혜를 처음 받고 은혜로 구원받아서 뒤로부터 뭘 받아요. 평강을 얻는 것이죠. 그래서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 가득하다 자 그런데 이 말이 또 어디서 나와요. 3절 보시면, 3절 중간에 그리스도 안에서 또 나오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야 그랬잖아요. 또 그리스도 안에서 나왔어요. 즉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왔어요. 즉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뭘 받아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말고 딴 복도 있어요. 있죠. 이 세상의 복도 있죠. 이 땅의 복 세상적인 복도 많아요.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꿈꾸는 건 세상의 복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원하는데 그럼 그것을 어떻게 얻냐 그리스도 안에서 앤 크리스도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다는 거죠. 자 그래서 4절로 갑니다. 또 창사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나왔죠 또 그리스도 안에서 쳐 보세요.
그리스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어요. 우리를 택하사 그랬어요. 즉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이 어디서 그리스도 안에서, 즉 내가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밖에 율법에 살면서 핍박자로 살 때에는 이걸 못 깨달았었어요. 여기에 해당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으니까.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택함을 받게 되고 그런 다음에 6절로 갑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나왔죠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노란색 쳐보세요. 이게 바로 예수님 아내죠 그리스도 안에서죠 그러면 그가 사랑하시는지 안에서 뭘 얻어요.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은혜의 영광을 찬성하게 하는 복이 누구 안에서 그가 사랑하시는지 안에서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7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또 나왔어요. 또 노란색 쳐 보세요. 그리스도 안에서 그럼 뭘 받아요.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송량 곧 죄에서 암을 받았느니라 여러분 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에베소서에서만 35번 나오구요. 바울 서신 전체에서는요 164번 나와요. 그 정도로 중요한 말이 그리스도 안에서예요. 근데 그중에서도 에베소서 특히 1장 1절보다 7절 사이에 이 그리스도 안에서란 말이 반복해 나오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교회의 교회 됨은 하나로 요약하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거예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송양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이게 교회의 정체성이에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교회고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받을 때만 교회고 그의 피로라미암아 예수의 십자가 보여를 입을 때만 교회고 송양 곧 조회사함을 받아 누리는 삶이 교회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누구 엄마 누구 아빠 아니잖아요. 어느 기업 사장님 어느 부서 대리님 과장님 부장님 여러분 그게 우리 정체성이 아니라는 거예요. 뭐 어느 어디에 있는 어느 필지 몇 필지를 가진 땅 부자 아니에요. 우리 애 소속은 우리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하늘에 있는 신령한 복을 얻는 자들이다. 하나님께 택하심 받은 자들이다. 예수의 피로 구원받은 자들이다. 어디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 절대로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감사와 만족과 평강이 우리를 교회되게 한다는 거예요.
에베소설을 앞으로 이제 6일 동안 우리가 강의하고 또 만나면서 우리가 소원하는 바는 무엇인가 내가 교회라는 것을 깨닫고 그 교회의 근본이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하는 것 그래서 나도 변화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도요 나도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요 나도 하나님의 자녀요 나도 하늘에 실려간 복부 받은 자임을 깨달아 오늘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델레마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오늘도 내가 발견하고 깨닫고 실천함으로 오늘 우리 삶이 달라지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하나님의 교회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연약한 저희들 부족한 저희들 허물 많고 자랑할 것 하나도 없는 저희를 하나님은 불러주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송량 곧 주유사함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 주님 이것을 저희들 감사하며 감격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교회라고 말하면 문제로 머리가 아픈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문제와 상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평강 이 귀한 교회의 교회 됨을 저희들 붙잡게 하여 주시고 이 교회의 근본을 이 교회의 중심을 저희들 놓치지 않고 내가 교회가 돼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 기뻐하시는 뜻 델레마를 오늘도 알고 믿고 실천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내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고 하나님 영광 받으시고 이 어려운 세상이 교회로 인하여 새로워지고 변화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거룩한 변화가 이 땅 가운데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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