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창고

[설교] 에베소서 2:1-10

yt1981 2023. 10. 17. 22:57
728x90

오늘은 앱에서서 2장 1절로 10절까지 잊을 수 없는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려고 합니다. 먼저 본문의 내용 중에 2장 8절로 10절까지 말씀을 제가 봉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는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매 우리가 일상을 사는 동안 좋은 의사를 만나는 건 참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의사를 만나야 병을 잘 진단하고 알 수 있고 그리고 정확한 처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걸 못 해주면 우리가 병을 키워서 좀 큰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이 사도바울의 앱에스를 통해서 보면서 사도바울은 참 좋은 의사가 아니라 좋은 의사를 영혼의 의사를 소개해 주십니다. 그럼 바울이 좋은 의사가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 하나님을 우리의 영혼에 완전한 의사로 소개해 주고 계십니다. 그런 면에서 바울을 만난 것은 너무나 우리에게 큰 기독교의 기쁨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장을 들어가면서 어떤 관점으로 이 장을 우리가 보기를 원하냐면 출애급기를 읽다 보면 애굽을 탈출해서 홍해를 건넌 다음에 마라에 쓴 물에 도착해서 물이 없을 때 백성들이 원망합니다. 

근데 마라에 쓴 물은 너무 써서 마실 수가 없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한 나무를 지시해서 나무를 그물에 던지게 합니다. 그물에 던졌을 때 쓴 물이 어떻게 바뀌었다고 성경이 기록됐죠 단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오는 구절이 여와 나파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시다 이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마치 2장은 어떤 관점으로 우리가 읽어야 되냐 하면 이 출력기 사건처럼 인류라고 하는 이 지구 공동체가 역사 공동체가 사람의 공동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죽어가는 인류 공동체 쓴 물에 나무를 던지셨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여기에 보내주셔서 인류를 살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고 하는 관점에서 이 장을 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4대행전 1장을 지금까지 마쳤지만 1장 집에 가셔서 꼭 한번 부탁하는 것은 1장 1절부터 14절까지 15절부터는 바울의 기도고 지난 이 주 동안 나왔던 기도인데요. 1절부터 14절까지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바올이 몇 번이나 언급했는가 1장 1절부터 14절까지 여러분들이 집에 와서 꼭 한번 읽어보시면, 에브스터를 읽어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이렇게 그리스도가 많이 나오나 11번이 나옵니다. 한번 확인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앱에스 1장 3절에 우리가 읽었던 구절인데 어떻게 주님이 하나님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시는지 3절 한번 다시 보겠습니다. 1장 3절 다 같이 함을 읽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네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 안복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데 누구를 통해서 주시냐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잊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신령한 영적인 복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다는 걸 잊지 마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기는 하나님이 계신 것 같은데, 하나님 알 것 같은데, 그리스도 예수는 제가 믿을 수 없다. 이런 분들은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얼마나 중요하신 분인지를 우리한테 계속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이 장에 들어가면서 나눌려고 하는 것은 왜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중요한가. 

1장에 찬성하리로다 하나님의 성부성자 성령의 은혜와 역설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2장은 우리가 찬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진단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조금 껄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2장 1절부터 3절을 읽는데 한 절씩 읽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좀 설명을 드리면서 읽어 나갈게요 1절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의 과거에 대해서 하나님이 진단하시는데 예수를 믿기 전에 주님을 만나기 전에 사람들의 상태에 대해서 소개하는데 우리를 살리신 것은 그리스도지만 우리는 예수를 믿기 전에 어떤 상태였냐면 병들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어떻게 됐다고요. 죽었다고 말합니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대단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은 안타깝지만 영적으로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오늘 예배 끝나고 친구들을 만나든지 이번 주 안에 하나님 안 믿는 친구들을 만났어 이 얘기를 그대로 한번 해 보세요. 당신은 영적으로 죽었어라고 얘기해 보세요. 어떤 반응이 올지 친구 관계가 끊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때를 따라서 잘 얘기해야 되겠지만, 그러나 복음은 이것을 정확히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지 못하며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죽었다는 말은 우리가 육 으로 죽으면 앗 어떤 무거운 걸 어이에 얹어도 무게를 못 느낍니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말은 양심 때문에 죄의 가측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님의 피조물에게 있기 때문에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지 전혀 무게를 느낄 수 없다는 겁니다. 

왜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도 없기 때문에 이게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반드시 살아나야 되는데 살릴 수 있는 분은 능력이신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죽어 있다는 말의 반댓말은 살아있다는 건데 그럼 살아있다는 건 뭐냐 요한복음 17장 3절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 즉 영색 2000원 라이프라고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하는 거라고 돼 있어요. 아는 것이다. 여러분 생명이 뭔지 아세요. 성경에 하나님을 아는 것인데 하나님만 아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를 아는 것이 생명이에요. 그러면 예수를 아는 자는 예수를 믿는 자는 살은 것이고요. 예수를 모르는 자는 죽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어떻게 살게 되느냐 이 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다 이렇게 살은 거죠. 그때의 너희는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여기 세상 풍조라고 되어 있는데, 이 세상 풍조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뭘 따르냐 세상의 가치 철학 세상의 생각들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겁니다. 진리를 모르니까 세상에 수없이 많은 지식을 따라가는 거죠. 세상의 문화를 따라가는 거죠.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한 것이 그런 말씀인데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지 않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 두려워지는 거죠. 왜 진리가 없으니까. 우리가 전부 다 이렇게 세상의 사고방식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과거가 다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사고방식을 따라가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단과 마귀가 실제로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1004 하나님이 되려고 했더니, 타락한 1004들이 악한 마개들이 되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안에 어떤 생각을 집어넣느냐 우리는 하나님의 피저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인간이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모릅니다. 다른 생각을 가집니다. 어떻게 될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합니다. 왜 진리를 모르니까 이 세상 풍속을 따라가는 거죠. 세상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지배를 받고 그냥 살아가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의 생각은 누가 지배하느냐 세상이 지배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이론과 지식이 지배하는 겁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할 줄로 믿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죠 권세 자문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는 영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뭘 보여주냐면 죄라는 것은요, 원죄라고 말할 수 있는 원죄는 불순종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인류가 범하고 있는 모든 죄는 사실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진리와 전부 다 대적하는 것이 인간이 짓는 죄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과거의 모습이었다는 건 성경은 정확히 보여주는데 왜 그러냐 복음은 여기에서 시작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야 복음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주님을 알기 전에는 진리를 따라갈 수 없는 상태에 있었어요. 

하나님에 대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권세에 대해서 거절하고 거부하는 불순종이 우리 몸에 배어 있어요. 하나님 없는 사람이 우리가 주인 되어서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것이 우리 인류의 역사라는 것이죠. 성경은 이걸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절 더 나갑니다. 2장 3절에 한 걸음 더 나가서 표현하는데 전에는 우리도 다 가운데서 우리 육체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여 우리가 세상의 가치관에 사로잡혀서 우리 안에 있는 이 심플 네이처 우리 안에 유괴 본질이 있는 이것이 추구하는 디자인을 따라 다 살아갑니다. 교육받으면 스트럭을 하는 거죠. 교육으로 이 세상이 절대로 좋아질 수 없죠 죄를 이기지 못하죠. 그러면서 나오는 말씀이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뭐의 자녀라고 나옵니까 진노의 자녀들 여러분 굉장히 기분 나쁜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믿고 나니까 이것이 은혜가 되는데 안 믿는 사람들한테 가서 진노의 자녀라고 얘기하면 돌맞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무슨 얘기냐 하면 복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여러분 사람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는 걸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복음의 필요성을 구원의 필요성조차를 느낄 수가 없는 겁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말은 이 본질상은 무슨 뜻이냐면 태어나면서부터라는 말입니다. 한번 따라 하실까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진노의 자녀입니다. 되게 기분 나쁘지만 주님은 이렇게 진단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제가 이거를 예를 들어, 설명을 드릴게요. 우리가 아기가 태어나면 10대가 되면 사춘기를 맞이하는데 사춘기라는 것은 몇몇 사람에게만 오는 겁니까? 모든 사람에게 오는 것입니까? 

한번 대답을 여러분들 똑바로 한번 해보세요. 자네를 키워보니까, 사춘기는 아주 드물게 몇 사람만 와요. 모든 사람이 다 와요. 그럼 이렇게 말해도 돼요. 사춘기라고 하는 것은 애기가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맞죠. 두 번째 늙어가는 것은 모든 사람한테 일어나는 현상입니까? 몇몇 사람한테 일어나는 현상입니까? 예 늙어가는 것은 한약 잘못 먹어서 그런 거예요.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거예요.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면 이렇게 말해도 돼요. 어린 아기가 아기로 태어날 때 늙을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맞아요. 하나만 더 얘기해 볼게요 모든 사람은 죽는 겁니까? 몇몇 사람만 죽는 겁니까? 그러면 이렇게 얘기해도 돼요. 

모든 아이들은 이 땅에 태어난 순간 죽음을 잉태하고 태어난다 본질상 죽어가는 사람이다. 맞아요. 틀려요 그러면 왜 죽어요. 왜 아이는 아름다운 아기들이 태어났는데 얘가 늙을 것을 가지고 태어나요? 왜 죽을 것을 가지고 태어나요? 진노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기 때문에 그것을 피할 수가 없다는 말이에요. 모든 사람은 우리도 그랬었어요. 그럼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거냐 하나님은 왜 진노를 행하시는가라는 말씀을 성경에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죠. 어떤 것에 대해서 진노하시는가 사랑의 하나님이 로마의 1장 1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다 같이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느니 하나님의 진노는 정확하게 어디에만 하냐면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권세에 대해서 불순종하고 다른 생각을 살아가는 하나님과 원수 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의회 불의에 대해서 하나님의 신노는 정확하게 임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 사람은 이렇게 진노의 대상으로 처음부터 태어나야 하는 것인가?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이 하나님의 복음 구원의 이 진리를 말씀에 근거해서 정확하게 할수록 우리는 자신 있는 그리스도인 확신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 하나님의 이 진리를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영적으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로마 소장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2절로 14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이게 누구를 얘기하는 거예요. 아담입니다. 아담 한 사람 때문에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그 죄 때문에 우리에게 주셨던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고 하나님의 사망과 영원한 심판에 이르는 지옥의 형벌에 이르는 것이 이 인류에게 와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거죠.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이 얘기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죠 이렇게 물어보죠. 그럼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죄를 안 짓게 하는 사람으로 창조해 버리지 어려운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너무 할려고 하지 마십시오. 제가 대답을 해드릴까요? 모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자유를 가진 인간으로 창조하셨을까?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세계를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할 수 있죠. 자유가 없는 의로움만 행할 수 있는 로버트로 만약에 창조했다면, 정말 재미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로보트와 한번 살아보실래요.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대답할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게 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그러나 정확히 말하는 것은 아담의 범죄 때문에 이런 일이 왔는데 그러면 우리가 아담을 원망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누가 아담이었어도 똑같다는 거예요. 우리는 불완전하겠죠.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결국 아담 때문에 범죄에서 그가 하나님의 사망 가운데 있기 때문에 아담이 낳는 모든 후손들은 그때부터 전부 다 사망을 가지고 태어난 진노 아래 태어났다는 거죠. 

13절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하나님 모세에 율법을 주시기 전에도 죄는 여전히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는 죄를 그런 죄로 여기지 못하고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4절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모세에게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그 사이에도 죄를 지었는데 그중에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 무슨 얘기냐 하면 판단력이 없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 수도 없는 아기들로 죽은 자들까지도 애기로 죽은 자들까지도 사망 왕이 왕라도 타연하니 여러분 이런 얘기입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면 어린아이가 판단력이 없어서 주님을 믿을 수 없는 그런 나이에 태어나서 죽었다면 얘는 천국가냐 지옥가냐 이거를 물어보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거 자꾸 물어보지 마세요. 모르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의 대답은 정확히 이른 겁니다. 아이들조차도 뭐 가운데 태어났어요. 사망 죄악 가운데 출생했고요. 여호와의 진노 아래 태어났기 때문에 아이 자체로는 구원을 스스로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전혀 없다는 것을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영아들은 태어나서 죽으면 의지로서 하나님 믿을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도 없었는데 얘는 다 지옥가입니까? 성경적으로 대답하면 이런 겁니다. 아이는 천국 갈 수 있는 자격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한 가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밖에는 기대할 수 있는 경우 지금 무슨 얘기를 제가 해드리려고 하느냐면 구원은 은혜로밖에 놓을 수 없다는 것이에요. 영화들에 대해서 기독교가 하나님의 미스트리에 놔두는 이유는 뭐냐 그 아이로서는 구원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어요. 사망에 태어난 아이기 때문에 진누 아래 있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할지는 미스테리에 놔둔다는 거예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류 가운데 진노의 심판이 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되냐면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태어날 때부터 늙을 것을 가지고 태어나요? 태어날 때부터 죽을 걸 가지고 태어나는 거예요.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제로입니다. 

제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지금 바울이 얘기해 주려는 게 뭐냐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우리 같은 사람을 구원해 달라고 얘기할 수 있는 요구할 수 있는 것도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왜 하나님과 원수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러나 성령께서 영의 눈을 열어주시면 우리가 죄인인지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닫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기도가 왜 그렇게 성령의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셨어 마음 눈을 밝혀 주셨어 그렇게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지 우리가 영의 눈이 열려져야만 죄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마음 눈을 그렇게 열어달라고 기도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제가 운전을 하고 가다가 백미러를 딱 보는데 몇 주 전에 경찰차가 제 뒤에 딱 오는 거예요. 그냥 일반 도로에서 사이렌도 울리지 않아요. 

근데 왜 가슴이 뛰는 거지 갑자기 안전벨트를 점검하고 내가 전화기를 들고 있나 점검하고 아니지 여기 안에 있지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이렇게 뛰면서 갈 일이 아니고 오른쪽으로 피해서 경찰을 보내고 경찰 뒤로 쫓아갔어요. 그러니까 좀 자유하더라구요. 여러분들 우리는 경찰이 뒤 오는데 왜 떨려요 하물며 완전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본다면 진노 중에 태어난 죄 가운데 살았던 우리들이 완전하신 하나님 옆에 선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고백은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영광의 옷자락을 성전해서 본 다음에 이사야가 했던 고백처럼 화로다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이거밖에 없다. 

바울은 우리 영혼의 최고 의사이신 하나님을 소개해 주는 거예요. 그 하나님이 우리를 진단하셨을 때 우리 아내는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고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할 수 있는 자격도 없는 자라는 것을 우리가 철저하게 알기를 바라시는 거예요. 이제 그렇다면 이러한 가운데 있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이 주신 것이 무엇인가 2장4절입니다. 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금요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큰 사랑을 인하여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진노 가운데 있고 구원받을 자격도 없는 구원을 요구할 자격도 없는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가능성은 완전히 제로 전혀 없는 우리들을 향해 금요일이 풍성하시나라니 그 하나님이 긍위를 풍성하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를 사랑하신 큰 사랑을 인하여 오늘 제가 첫 번째로, 나누려고 하는 것은 한 단어입니다. 그것은 한국말에 없어요. 성경 원어와 영어에만 있어요. 그게 뭐냐면 버트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구원을 요청할 수도 없고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구원할 수도 없는 진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은 너무나 커서 이럴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사랑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는 이 그러나가 만약에 그래서였다면 우리는 진루 아래에 있는데, 만약에 쏘라면 앤드였다면 우리는 끝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주님을 찬성해야 됩니다. 우리가 진노중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인데 구원을 요청할 수도 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인데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우리를 죽은 자가 안 돼서 살리러 오신 줄로 믿습니다. 이 사랑 때문에 우리가 사는 거죠.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5장 15절부터 이렇게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나 이은사는 범죄와 같지 아니 이 선물은 아담의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아까 읽은 구절에 이어지는 겁니다. 

곧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 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대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절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 것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 이 하나님의 선물은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심에 우리를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대조라고 있는 거죠. 아담이 한 사람 때문에 범죄로 인류 전체에 진노와 사망이 들어왔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진노와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죽은 다음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는 영원한 새 생명을 우리 가운데 다 심어주는 선물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을 깨닫는 자만이 예수를 믿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겠냐는 거예요. 17절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한 사람을 통해서 뭐를 한다고요. 

사망이 왕노로 태어나면서부터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진노밖에 받을 수 없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구원을 요구할 수도 없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예수 그릇에 선물을 줬는데 하나님이신 예수 그릇을 믿게 될 때 이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를 통하여 이제는 사망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을 이기신 무덤을 뚫고 나오신 부활하신 예수의 새 생명이 구원받은 자에게 왕 노릇하는 것을 너희가 믿느냐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이 생명이 있습니까? 여러분 바울은 이걸 얘기하는 거죠. 결국 요한복음 삼작 16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뭐를 준다고요.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는 말은 인생은 두 가지 선택밖에 없어요. 

영생 아니면 멸망 그리스도 아니면 죽음 두 개밖에 없는 거죠. 이것이 정확한 복음이죠. 이것을 위해서 어떻게 하셨느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의 진노를 다 10장에서 당해서 죽으신 것이죠. 이것2 2장 5절입니다. 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자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거야. 똑바로 알라고 적어놓은 거예요. 우리는 구원을 요청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진노하리 있었는데,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우리는 진노하래 있었지만 그러나 그분의 긍유레 풍사가 지른 사랑이 너무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바람에 여러분 우리는 살아날 수 있었는데, 이것을 성경 뭐라고 했느냐 은혜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이에요. 저와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진도를 담당하신 거죠. 

그래서 첫 번째로, 정리하고 싶은 게 이럽니다. 한번 따라 해 보실까요? 하나님의 은혜 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있습니다. 이게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가 그렇게 진노 중에 살았는데 하나님과 원수 돼서 살았는데 만약 하나님이 그래서의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끝나는 거예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너무 큰 사랑이 우리에게 오실 수 있었기 때문에 이유는 딱 하나죠. 하나님의 사랑이죠. 너무 큰 사랑 이것을 성경은 은혜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생각할 때 이렇게 생각해야 되죠. 

아무 구원을 요청할 수도 없는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없는 이런 우리의 존재들 하나님이 그러나 너무나 큰 큰 사랑을 가지고 모든 죄의 진노를 예숙일 수도 있게 당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이것이 우리가 어떤 걸 잘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은혜로 된 것으로 우리가 정말로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 아내는 마음의 넉넉함이 생기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겠네 그 구원은 마음의 넉넉함을 통해 은혜 받은 자의 넉넉함을 통해 성품을 바꾸시는 열매로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게 은혜로 받은 구원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두 번째로, 6절을 보겠습니다. 이제 또 하나의 설명을 들어갑니다. 살린 것 정도가 아닙니다. 

또 함께 일으키자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다음에 그분과 함께 일으키셔서 무덤에서 일으키셨던 것처럼 우리를 일으키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어디 앉힌다고요. 하늘에 앉히시 저는 아멘이에요. 이걸 읽으면서 감격해야 돼요. 우리네가 우리가 여러분 미래 시제가 아니에요. 우리가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간다는 것은 미래인데 지금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예수 믿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지금 어디에 앉아 있다고요. 하늘에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을 그대로 누리라는 것입니다. 왜 바울은 이런 표현을 쓸까요? 하늘에 앉히셨대요 주님 옆에 앉혀 놓으셨다는 거예요. 얼마나 기가 막힌 말입니까? 이건 이런 뜻이죠. 우리가 주님을 모를 때 안 믿을 때는 나를 지배하는 것이 세상의 사고였어요. 세상의 수많은 잡다한 지식이었어요. 하나님 없는 지식이 인생을 결정했어요. 

이 사람의 인생론을 읽으면 이런 것 같고, 사람의 종교를 들으면 그런 것 같고, 그런데 진리가 들어오면 뭐가 지배하는지 아세요. 하나님의 진리가 나라를 다스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게 어디에 앉아 있기 때문에요. 하늘나라에 앉아 있기 때문에 그래서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대사라고 부르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의 것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거죠. 또 한 가지는 하나님 그리스도 옆에 하늘에 앉히셨다 이거는 너무나 감격스러운 표현에 하늘에 앉히셨다는 거예요. 과거 시제로 이미 우리는 하늘에 앉아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늘에 앉아 있는 사람답게 살아야 될 거 아니에요. 한번 따라 하실까요? 삐지지 말자 하늘에 안 앉아 있으니까. 자꾸 삐지는 거예요. 두 번째 이런 거죠. 이 의미는 이런 거예요. 하늘에 앉히셨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사단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거 잘 드세요.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동안 사 단은 있어요. 우리를 공격해요. 그런데 사 단은 우리 어프레션 우리를 억누르고 공격할 수 있지만 업세션 소유하지는 못해요. 요한일서에 사단이 너희를 만지지도 못하리라 소유하지 못한다는 얘기예요. 이게 우리의 위치예요. 그러면 어떤 지배를 받느냐 성령이 다스리는 삶 가운데 있는 줄 넘습니다. 연약해서 죄에 넘어질 때가 있지만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은 하늘에 앉히신 거예요.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는 거예요.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이거죠. 하늘에 앉히셨다는 말은 무덤에서 일으키셨어요. 그리스도가 모든 진노를 당하고 무덤에 죽으셨어요. 3일 동안 우리의 진노를 다 당하신 거예요. 그런데 거기서 나오셨단 말은 진노 아래 더 이상 거하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하늘에 앉아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나님의 안시간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요, 안식할 줄 알아요. 

왜요 우리가 하나님 보자 우편에 예수님 옆에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앉아 있다고요. 주님 옆에 믿음으로 앉아있는 것입니다. 대단한 분들을 보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다면 바울이 얘기하려고 하는 거죠. 로마스 8장 1절에 있는 것처럼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제함이 없나리예요. 결코 정지함이 없는 거죠. 그런 자리에 저와 여러분들이 있다는 것 그러면 하늘에 앉히셨다는 표현을 왜 쓰느냐 이런 거죠. 

우리가 하늘에 올라갔다는 말을 쓰신 이유는 우리가 얼마나 진노의 바닥 아래 떨어질 수 있는지 얼마나 밑에 떨어졌었는지 가망이 없었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커서 밑에까지 내려와서 우리를 살려주시는 정도로 끌어올리신 게 아니라, 하늘 보자 우편의 그리스도 옆에까지 앉히시는 그렇게 높이 올려주시는 사랑의 높이를 너희가 아느냐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은 밑에 진노 아래 어둠 가운데 있는데, 우리를 끌어서 어디까지 올리시냐면요 주님 옆에 앉혀주시는 자리까지 끌어올리시는 이 높은 사랑의 높이를 이해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 번 따라 하시죠.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은혜 아내는 지극히 높은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를 저기다 올려주시는 하늘 옆에 앉혀 주시는 이 사랑이 은혜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난 거죠.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에 나옵니다. 2장 7절을 보시오. 다 같이 한 번 읽겠습니다. 시작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시며 그네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 진노라 했을 때 어떤 현상이 있었냐면 모든 게 인간 중심이에요. 그래서 구원받고도 내가 구원받은 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너무 중요한 일인데 구원의 목적은 나를 구원하시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이 구절에 뭐라고 돼 있냐면 하나님이 이렇게 구원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높으신지 그 은혜가 깊으신지 이 하나님의 은혜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고 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 주신 목적은 내가 사는 것이 목적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구원받은 지 알고 영광을 찬성할 수 있도록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인류를 창조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목적은 우리 한 사람 구원의 목적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시고 그러니까 성경은 뭘 얘기하느냐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라는 거예요. 구원을 나 중심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거예요. 내가 구원받은 자라면 우리가 마땅해야 될 것은 뭐냐 나 같은 사람을 진노 가운데 살려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성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요. 

그래서 1장에 찬성하려더라는 고백이 에베소 1장에 나온다는 거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것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송과 예배 사람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8절 구절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2장 8절 이거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 거의 다 하는 구절이죠. 너희가 은혜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하나님의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 즉 구원은 반드시 은혜로부터 온 것이지. 믿음 때문에서 기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에 구원의 선물을 받는 수단이 믿음일 뿐이지 구원의 모든 동기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너희에게서 난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유는 뭐냐 구절 2장9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거는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닌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일어라 이 말은 두 가지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이제 나누면서 우리 성도님들이 이단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고 두 번째는 이단이 아직 아닐지라도 이단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그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의 마음이 빼앗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알면 분별이 되는 거예요. 모르면 애매하게 알면 넘어가는 거예요. 이게 왜 중요한가. 우리가 하나님의 앞에 구원을 받을 때 이 구원은 은혜로 받은 것이지. 우리의 행위로 받은 게 아니래요. 이유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렴이라 제가 좀 톤이 높아지고 있죠. 흥분하면 내려가야 돼 옆으로 와 보세요. 아니요. 괜찮아요. 

내 옆에서 이영재는 진짜 준수하게 생겼어요. 잘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로 구원을 주셨다고요. 은혜로 구원해 주세요. 왜 아무도 보세요. 이 형제가 구원받았을 때 내가 조금이라도 이런 일을 했기 때문에 아내에게 좀 잘했기 때문에 그래서 구원받았다면 이 형제는 어디로 올라가냐면 위로 올라가 버리는 거예요. 올라가 봐요. 이거 못하도록 절대 행위로 그건 안 줘요 은혜로만 왜 받을 사람도 없어요. 그래서 제가 말하지만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하고 국물도 없다는 얘기를 하잖아요. 우리는 국물도 없는 교회잖아요. 이게 신학적인 용어예요. 여러분 니가 아무리 주위에 봉사를 해도 국물도 없어야 돼. 왜 은혜로 받았기 때문이에요. 

뭘 잘했다고 받아 새벽 기도 40일 왔다 와두고 무슨 선물을 교해서 받아 웃기는 소리 하지 말아요. 선한 일을 아무리 해도 행위로는 구원을 못 받고 자랑할 수 없도록 자랑하면 내려가 절로 잡네요. 내려가 봐 좀 더 내려가 봐 자꾸만 무슨 얘기냐 하면 아무도 우리 중에 아무도 한 사람도 구원에 관한 한 자랑할 것이 없어야 돼요. 두 번째 이게 중요한 파트예요. 여기서 수많은 이단이 나옵니다. 이것만 알면 오늘 설교는 여러분 끝나는 거예요. 너희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 받은 것이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는 말씀을 읽었어요. 

그러면 구원받은 사람이 잘못 행동하면 잘못 행동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도 못하게 하는 거예요. 이해가 됐어요. 무슨 말인지 잘못 행동하면 구원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영어로 말하면 헤프 세이브드 됐다고 생각하는 의심에서 벗어나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호는 이 사람의 인생을 완전하게 덮는 구원이지 애매하게 덮는 구원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너희의 행위에서 구원이 안 왔기 때문에 행위로 구원을 번복할 수 없다는 말이죠. 그러면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지옥 갈 수 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는 거죠. 하나님의 복음은 완전한 복음이기 때문에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는 말이에요.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되죠. 

하나님의 복음 안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기 때문에 이 구원 안에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구원이기 때문에 완전한 구원이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도와줄 수 있는 구원을 주신 완전한 구원이지 어디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하냐는 말이에요. 어디서 그런 말이 넘어가냐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구원이 완전하지 않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이 불완전하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의뢰가 부족하단 말이에요. 하늘에 앉히셨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세요. 구원이 컴플릭 됐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빼앗을 자가 없다는 말이야. 더할 것도 없다는 말이에요. 이게 무슨 말이냐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지 않았어요. 은혜로 구원받는데 이 구원은 완전하셨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사람마다 편차는 있지만 이 구원이 복음에 의한 참된 구원이라면 그거는 반드시 우리를 변화시켜 가는 구원이죠. 

이것이 완전한 구원인 거죠. 할렐루야 옆에 사람을 이렇게 얘기하죠. 당신은 변해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조금 안 변하는 것 같아도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복음이 여러분 해프 세이브드가 아니라 폴리 세이브드 된 거예요. 이 복음의 본질을 모르니까 하나님 복음의 완전성을 모르니까 하나님의 완전한 신분지를 모르니까 함부로 말하는 거죠. 조금 지가 잘하면 선행을 해서 지가 해서 구원을 자기 웃기는 사람이 빨리 들어가 어딜 키 큰 것도 자랑할 게 아니야. 좁은 문으로 가라는데 어디어떻게든 내가 쉽지 두어 보면 더 큰 문제는 이거 이게 아니에요. 

사실은 이거는 율법주의로 돌아가는 거지 더 큰 문제는 여기에 있죠. 잘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린 줄 아는 이 비참한 그리스도인들 어디서 행위로 우리를 구원 안 해주신 적 있어요.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해 주시는데 이 은혜는 완전히 덮어주신 은혜인데 보열이 부족하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하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하게 컴플리트 돼버린 거예요. 여러분 행함에 넘어졌을 때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감정이 아니라 진리예요. 은혜예요. 은혜를 붙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다 같이 일 따라 하실까요? 하나님의 은혜 안에는 온전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이 끝까지 지켜지게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사람의 행위에 구원을 맡겨 두시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이 사람의 구원의 시작부터 끝을 주위의 으례 가운데 두신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의뢰가 우리 구원을 이끌어 갈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에베서 이 장 십자리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이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뉴크레이션 그래서 중생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다시 태어난 거예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떤 일을 위하여 선한을 위하여 진심을 받은 자니 일은 하나님의 전에 예비하사 우리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창조하셨던 것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없었어요. 그전에 근데 은혜로 이 사람을 앉으셔서 이 청년이 또 가면서 얼마나 인생의 방황이 있겠어요. 

그때도 다시 붙들고 끝까지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셨다 그렇게 변화시키지는 능력의 복음이 저와 여러분에게 들어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지금은 부족하지만 옆에 사람 볼 때 저거 그리 참 그리 참 말아 진짜 이상한 인간들 많지만 절대로 좌절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정말 예수를 믿었다면 정말 이 성경에 바라던 복음을 여러분이 믿고 그리스도를 여러분 안에 영접했다면,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가 지켜주실 것이에요. 그 구원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는 줄로 믿고 이상한 말에 쓰러지고 넘어지는 비참한 교인들이 없기를 쥐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평생토록 하나님의 영과를 찬성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에 우리의 삶은 진노 아래 있는 것이라 우리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로라고 우리는 하나님께 구원조차 요구할 수 없는 없는 사람들이라고 그러나 근인의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그러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그것을 성경은 은혜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그것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33년 동안 살아가는 것 자체가 예수님께 얼마나 힘드신 일이었는지 그 모든 것을 감당하시오. 우리의 모든 진노를 십자에 담당하시고 우리를 살려내시고 아담으로 들어왔던 사망에서 예수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들어오게 하시오. 

그리고 일으키실 정도가 아니라 하늘의 그리스도 옆에 앉히셔서 하늘의 직분을 주시는 진노 아래 있는 게 아니라, 안식 아래 살게 하는 은혜를 주셨는데 하나님 당신의 이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는 받을 수 없는 것이고. 오직 그대로만 자랑할 수 없도록 또 실망하지 않도록 죄 때문에 낙심하지 않도록 너희 권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지 않다 완전한 사랑과 은혜로 덮어치는 이 구원을 우리가 누리고 있다면 어찌 주님을 찬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시간 다 같이 한번 기도할 때 우리가 기도할 게 오늘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찬성합니다. 어떤 기도의 제목인지 하나님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께 오늘 감사하는 기도를 다 같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과거에 어떤 자였는지 구원을 할 수 있는 우리 스스로의 구현할 가능성이 제로였고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는 요구도 할 수 없는 진노의 자녀들이었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그러나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이 우리를 살리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은혜로 된 것이지. 우리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자랑하지 못하도록 또한 죄 때문에 실망하지 못하도록 구원을 잃어버릴까 좌절하지 않도록 완전한 구원으로 완전한 은혜로 우리를 붙들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 구원의 확신 속에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성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 안에 구원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셔서 이 은혜 안에 있는 자는 반드시 변해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바로 다시 태어난 줄로 믿습니다. 그런 그리스던의 인생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평생 감사하게 하옵소서 죽었던 예배들이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나님 은혜를 아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사 은혜가 평생토록 하나님의 내가 평생토록 나를 다스리는 감격이 있게 하여 주옵소 4주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고난 중에 있는 자녀들 질병 중에 있는 가정들 주의 은혜로 넉넉히 감당할 수 있도록 주여 도와 주오옵소서 지금은 우리 9주 예수 그리스트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감아 역사와 교통하심이 오늘 예배를 드리고 세상을 향해 나가는 모든 성도님들 위해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요? 

728x90

'성경 66권 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교] 골로새서 2장  (1) 2023.11.28
[설교] 골로새서 1장  (2) 2023.11.28
[설교] 에베소서 1장 설교  (2) 2023.10.14
[설교] 에베소서 2장 설교  (1) 2023.10.14
[설교] 에베소서 2장  (0) 2023.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