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해석할 때 서사로 보고 그럴 때 진리가 명학히 드러난다. 목회적 돌봄에서 내러티브 중요하다
의심의 해석학? 초기 대가가 있다. 막스 프로이드 니체! 기존에 흐른 시스템과 심리 권력의 구조에 대한 의심 제기한다 이 의심 자체가 근간을 흔들어 놓기에
기독교에서 경계한다
기독교 진리와 연결해서 좀 위험한 인물인건 맞다
근데 의심의 해석학 방법에서 모더니즘 이후에 포스트 모더니즘 쓸 필요 없으나
의심의 햏석학이 필요하다 좀전의 접근 자체가 우리로 하역ㅁ 성도 돌봄에 있어서 도움도 되나 한계도 있다. 거리두기 방식
낯설게 보고 의심하기 두 개 통해서 회의 하는개 아니라 더 명확하게 보자
낯설게 하기 김지찬
성도 잘 섬기려면 낯설게 보자 그리고 이전에 한 방식에 대한 의심 디스턴스
이걸 주목한게 데리다 요타 후코르 읽어볼 필요 없으나
제임스스미스가 쓴 책 중에 누가 포스트모더니즘 두려워하느냐란 책
이게 번역되다. 이 책은 전공이 어디이든 한번쯤 보라 경계 가지고 스미스의 접근이 맞는건 아니나 왜 이야기 하나 포스트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는 일반화는 경계헤애 한다
우리는 이땅에 사나 속하지 않은거 같은거랑 같은거다.
문제는 제임스가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복잡한 논리를 단순화하는 위험ㅅ렁!
전공이 해석학이라서 틀린 접근은 아니나 메타 내러티브가 없다
데리다가 말한거 맞아
내러티브도 봐야해 맞아
그러나 내러티브가 메타 내러티브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비유와 사건으로 이야기로 접근하신다 하나님 나란 이거다라고 명제로 선언한게 아니다
물론 감추거나 부인한게 아니라 드러낸 방식으로 내러티브 쓴다
데리다가 메타 내러티브 ...
유연하게 수용하려고 제임스는 내러티브에 대한 이해 가져야 의례 접근할 수 있고 출생의레까지 간다
내러티브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 없다 다 이야기다
교회에서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런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풀어줘야 한다
구체적 신앙과 장소에서 말하면 신정통인가?
포스트 리버럴에서 .. 복잡한거다.
신학을 할때에 목회적 돌봄과 관련해서 방법론적 툴을 한두개만 쓸 수 있는건 아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살아가기에 내러티브가 복잡한 방식으로 있어야 신중하지 임의로
몇가지 툴!
출생에는 이런 방법으로 예배하면 된다 이럼 다 무너진다
내러티브에 대한 이해 가져야 한다
의심의 해석학.
hermeneutic of suspicion
부정적이지만 않다.
반기 제시는 인정 그러나 의심의 해석하기 준 기여는 삶의 다양한 내러티브가 거대의 메타 내러티브와 연결된게 목회적 현실에서도 중요한걸 안겨줬다!
이야기와 이야기의 만남이 중요하다 디지털 시대에 인스타그램은 마이 스토리를 말한다
왜 이야기? 그게 내러티브다
사람들은 내러티브 안에 있다.
지금 페이스북 하지 않고 인스타 하는건 내러티브의 지배가 리플렉션이나 고백적 표현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시하는 방식도 편집으로 주어진다.
마이 스토리에서 편집이 중요하다 에디팅 뭘 지향점으로 살아가냐
정체성 소속감 목적
이걸 뭘로 드러내? 내러티브 이야기
이야기의 핵심은 좀 전에 말한 핵심!
편집이다.
편집을 어케 하는지 봐야 목회적 돌봄에 방법론뿐 아니라 전략 기준점이 주어진다.
그럼 이야기의 편집이 어케 주어지는지 알라면
예배 신학이 폴 리쾨르의 어거스틴 아리스토가 제시한 타임 앤 내러티브라는
time and narrative!!
이게 중요하다 이 책을 통해서 에디팅 편집의 가치와 중요성을 풀어낸거ㅏ
중요한 인물이다. 폴 리쾨르 paul ruceur
이 책에서 예배의 신학을 발전시키는데 문화신학으로도 볼 수 있고 내러티브로도 볼 수 있다
이 사람 얘기가 그렇다.
편집과 연결된 의미가 있다. 타임 앤 내러티브가 두 사람에 기반을 둔다.
신학 철학 문화를 담아내는 책이다.
시간과 이야기로 번역됐다.
한국에서 번역 3권으로 됨.
이 책은 고전이다. 클래식.
기준은 타임은 인류역삭에서 시간과 의미 연결한다. 어거스틴
어거는 시간과 인간의 이야기를 연결한 대표적 사람이다
어거로부터 출발한다.
파편적 이론으로 시작하지 아나
이야기 대가는 어디에?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틸에 기반둔다.
폴은 두 사람의 시간과 내러티브를 우리시대 문화와 이야기로 엮는다
어거와 아리스토가 말한걸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인간의 이야기가 어케 펼쳐지는지 안다
아리의 얘기는 니메시스 모방
모든건 모방이다 자기 얘기는 누군가의 얘기로부터 접한걸 모방한다 이 모방의 방식에서 중요한게 플랏이다 이야기에서 젤 중요한게 플랏 극사실주의
첨부터 마지막까지 그대로 따라가는거다
근데 일기를 쓰잖아
극 사실내용 말 안한다. 하루 일주일 단위로 정리할 때 시간의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서
중요한 일이나 사건을 연결해서 쓴다.
타임테이블 쓰지 않는다.
오늘 내가 누구 만났는데 ,..
이건 하루 중 있었던 일이다 근데 이런 생각 갖게 했다
그래서 더 신중하게 해야겠다
이렇게 한다
플랏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이야기의 최소 구성체
플랏과 플랏 연결해야 하는데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나의 이야기 만들어가는게 저널이다.
글로 쓰든 쓰지 않든 자기 이야기 갖고 있다
의식화하느냐 무의식화하느냐
자기 이야기 갖고 있다
안쓴다고 이야기 없는게 아니다
우리처럼 시간의 리듬따라서 출군하고 나가고 이런 사람뿐 아니라 모두에게 플랏이 있다
그럼 둘을 연결해야 한다
플랏과 플랏을 연결!
경험들을!
이미 사람들은 만들고 있다
연결은 지향점에 따라 달라진다
시간에서 지향점이 주어진다.
시간이 재시하는게 방향성이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어디로 가야 한다
월요일을 학교에서 해야 한다
시간이 방향성을 갖고 있는거다
디렉션 플랏은 디렉션 갖고 있다
이 플랏과 디렉션 잘 구성하면 하나의 이야기가 주어진다.
드라마 보면 플랏이 탄탄한데 내러티브의 디렉션이 명료하다.
하나의 방형으로 간다 하나의 서사가..
디렉션의 끝이 보이지 아늘수도 있어
그러나 어느 방향인지는 플랏들이 말한다
이 과정이 이야기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 책은 그거에 대해서 말하나 숨겨진 전제를 갖고 있다.
그럼 리쾨르가 말한 내러티브 핵심이 구성이 ...
이런게 사람들에게 어케 주어지고 있는가?
자기가 어디 속했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시대가 부여하는 가치에 따라서
pre- figuration
그 이야기에 의해서 전제를 갖고 있다.
어떤 이야기가 있으면 지배받고 있다
우리 시대 사람은 그렇다. 초등 다니면 학원 다녀야해 사교육이 하나의 이야기다
친구들 학원 다 다니는데 난 왜 안보내?
이미 이야기 접하는거다
플랏들이 있는ㄹ거다
우리 생애에서 40대 50대면 자녀가 있어야 해
결혼도 해야 하고!
디렉션이 정해져 있다
교회 청장년이 있는데 40을 향하고 있는데 직장도 없꼬 결혼도 안하고 헤매고 있어
그럼 어떻게 봐? 그럴 수 있지 이렇게 안봐
이미 시대에 디렉션 제시했거든 그래서 그거 안에서 봐,
근데 하나님의 이야기로 새롭게 만나서 전환할 가능성 제시해야해 그게 칸피규레이션!
학원에 가서 성공하는거보다 중요한건 말씀으로 세계관 형성되는거다
극단적 예 칸피규레이션 제시가 목회적 돌봄의 의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럼 칸피규 제대로 하려면 패러블 쁜 아니라
프리가 칸으로 가려면 진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
configuration
성경 내러티브 초청할 때 의례란 방식을 통해서 초청하는거다
장치가 필요하다 칸피규의 방식이다 이걸 잘하고 나면 리피규레이션 주어진다
난 이렇게 살았는데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이렇게 살아야 하눈구ㅏ
디렉션이 바뀌면 내가 생각하는 플랏이 변하는거다
한버에서 끝나는게 아니다
어거스틴도 신국론 보면 시간의 리미어.. 한 방향으로 간다고 하지만 순환전 리미어가 같이 들어가 있다. 복잡한 반복이 주어져 있다
세례나 성찬이 중요한 이유가 끊임없이 리셋된다.
아이들 사람들은 이 내용들은 이케 알 필요 없으나
이야기의 파편화된 플랏이 그들이 갖는 디렉션을 전환해주고 더 낫게 살도록 하는게 목회적 돌봄의 과제이다,. 이게 예배의 역할 중 하나이다
하나님 말씀과 이야기를 성경읽기나 설교 찬양 세례 등을 통해서
리디렉션 리피큐레이션이 주어질 수 있다
그래서..
!!
Paul Riceour: Time and Narrative에 따른 포에틱 접근
Aristotle의 ‘미메시스’(mimesis, 모방)와 ‘뮤토스’(muthos, 플롯) 그리고 Augustine의 시간 개념
구체적인 플롯 구성의 세 단계 과정:(1)전이해(pre-supposition); (3) 하나님의 이야기와 만나는 통합(con-figuration), (3) 하나님의 이야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 새로운 방향 수용(re-figuration)
여기서 의례가 중요해진다. 성경 이야기 알지 못하면 삶의 이야기 풀어낼 수 없다.
삶의이야기 듣는 일은.. 성경적 상담이어야 하는 이유? 삶의 이야기 듣고 해석해주고 그것에 대해서 접근하는걸로 끝나는게 아니라 가야할 이야기를 제시해야 한다
이전엔 프라블럼 솔루션 으로 갔다.
이게 설교나 목회적 돌봄의 방향이다 가난의 문제가 삶을 가두고 있다
그럼 신앙은 가난 해결하기 위해 종속된다. 그러니 가난해서 넘어서는게 디렉션이야
근데 그게 아니고 죽을때까지 가난해도 불행하지 않다를 보여주는거다
그게 삶을 압도하는 가치가 아님을 보여주는거다.
박해로부터 벗어나는게 기독교 신앙 아냐 박해 가운데서도 임재 경험하는게 신앙이다
그럼 목회자가 당장 쌀한톨없는데 기독교 신앙 말할 때 어떻게 이야기 해야해?
쌀이 필요한데, 어르신 쌀 한주먹 없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풍요로움이!!
이걸 전제로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목회적 돌봄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다
그래야 신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돌봄 받아야 하는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출생 의례 넘어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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