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창고

[설교] 열왕기상 12장 1편

yt1981 2024. 4. 29.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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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열한 이상 12장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에게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사람에 관한 책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중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인도해 가시는가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는 과연 인간의 역사가 등장하지만 인간의 주인공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의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그러니까 역사를 역사하는 분이 누구냐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진짜 주인공이 누구냐 거기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빼놓고 성경을 읽으면 이스라엘의 고대 역사를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잖아요. 

근데 우리가 왜 이렇게 이렇게 외국 그것도 먼 중동 팔레스타인 나라의 옛날 이야기를 이렇게 열심히 봐야 됩니까? 자칫 우리가 너무 인물에 매이고 사건에 매이면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가를 잊어버려요 그래서 이 시간에 계속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해 봐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 시간 2017년도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단 말이에요. 이야기가 하나님의 음성이 지금 수천 년 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지는 거예요. 이게 기적 아닙니까 너무 놀라운 일 아니에요.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매일 놀라는 것이 야 어떻게 이 옛날 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성령의 감동을 으로 성경을 써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문화가 다르고 역사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철학이 다른데 어떻게 그들과 우리가 통할 수가 있겠냐구요. 이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참된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열왕기가 복잡한 책입니다. 이제 12장으로 들어가면 점점 복잡해집니다. 어제 솔로몬이 급전 직화로 추락했잖아요. 추락 이후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사건들은 점점 이 가지를 쳐 나가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우리가 만약 이것을 역사 공부로 또는 세계사 공부로 이걸 접근하면요 여러분 공무원 시험 보셔야 돼요. 오늘부터 저랑 합숙하셔야 돼요. 

그냥 같이 저랑 같이 라면 끓여 먹으면서 자 밑줄 치고 동그라미 치고 이거 밤새 해도 다 못 따라가요 근데 그렇게 공부할 게 아니에요. 이 책은 그러니까 우리가 열왕 개를 정말 내가 왕들의 계보를 꿰뚤어 보리라 이러실 필요도 없고요. 왕들이 뭘 했는지 한번 행적을 내가 낱낮이 조사해 보리라 하실 필요도 없어요. 11개는 그렇게 보는 책이 아니에요. 열왕기는 역사서가 아니다. 열왕기는 선지서다라고 지금 몇 번을 말씀드렸어요. 왜 그런가 선지서의 의도는 뭐예요? 하나님 말씀대로 안 살면 멸망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너희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하는 책이 선지서예요. 역사서로 본다면 하나하나 공부하는 게 맞지만, 선지서로 공부한다면, 뭐가 맞아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따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예요. 그니까 이 주인공들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은 면들에 대해서 우리가 가슴 아파하면서 나를 돌아보는 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요약하면 열왕기를 읽을 때 우리의 마음의 자세는 어때야 되는가 첫째, 왕 이름 외우지 않는다. 둘째, 사건 외우지 않는다. 여러분 여기서 모든 신앙이 꼬여요. 여기서 앞뒤 맞추느라 여기서 뭐 역대상으로 가서 맞추고 11개랑 맞추고 사무엘상 하나 맞추고 그다음 왕이 어떻고 왕이 어떻고 이러다 보면요 여러분 예 제가 장남합니다. 머리에 쥐납니다. 예 그때부터 성경책 읽기 싫구요. 새벽기도 나오기 싫어집니다. 여러분 그걸 시도하시면 안 돼요. 그러니까 오늘 이후로 이제 남북 왕국이 막 분열되고 막 진행되는데 여기서 여러분의 마음을 좀 정하고 가야 돼요. 오늘 우리가 왕위를 외우고 사건을 외울 거냐 아니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 자신이 말씀이 나를 비추어 내가 변화될 거냐라고 하는 그래서 우리가 시작할 때부터 역사전야 선지선이 하는 말씀을 드린 거예요. 

자 선지서로 우리가 본다면 이제부터는 사건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음성인데 음성 듣기를 원합니다. 오늘 12장 1절입니다. 르호보암이 새게모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새김에 이르렀습니더라 자 갑자기 르오보암이 나와요. 자 어제 11장에서 홀로몬이 뭐 1000명이나 되는 후군과 첩을 막 막 데리고 살고 그러면서 1000명이 가지고 온 우상을 예루살렘 앞산 즉 성전산에다가 막 세우고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산에다가 우상을 1000개의 우상에 산당을 세운 거죠. 어마어마한 공사였겠죠. 이 어마어마한 장관이었지 않았겠습니까? 이 어마어마한 장면 가운데에서 백성들은 점점 피폐해 가고 백성들이 처음에 하나님 성전 7년간 지을 때만 해도 신 신이 났어요. 

성전 짓고 나서 백성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야 진짜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기는구나 야 약속의 백성 이스라엘 우린 정말 하나님께 선택받은 훌륭한 백성 그랬어요. 7년만 해도 좋았는데 뒤로 13년 반 동안 완공 지으면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이럴려고 우리가 하나님 백성된 게 아닌데 이럴려고 가나안 땅 온 게 아닌데 그러다가 그 뒤로 가면서 점점 1000개의 산당 우상 산당 1000개 지으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그로기가 된 거예요. 맘도 몸도 상해버린 거죠. 우리가 이럴려고 가라앉았나 이럴려고 추레곱했나 이럴려고 하나님 자녀가 됐나 이게 나라가 왜 이래 이러면서 점점 마음이 아파졌다는 거죠. 그런 와중에 솔로몬이 죽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아들 르호범이 왕이 됩니다. 네 성경이 솔로몬의 말년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을 하는가? 한번 볼까요? 

우리 바로 전 바로 전장 11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41절부터 봅니다. 40일 40이 43 여러분 솔로몬 우리가 알고 있는 어마어마한 인물에 관한 그의 죽음에 관해 성경은 굉장히 담담하게 굉장히 아무렇지 않게 세절로 요약하고 있어요. 41절부터 봅니다. 솔로몬의 남은 사적과 그에 행한 모든 일과 그의 지혜는 솔로몬의 실록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러분 이 말투를 좀 보세요. 뉘앙스를 보세요. 솔로몬의 지혜가 그렇게 대단하냐? 야 너희 솔로몬 지혜 궁금하냐? 솔로몬의 실록에 있으니까 그거나 봐라고 하는 거예요. 이걸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성경에는 기록할 의미가 없어요. 그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의 영화가 얼마나 광장했는지 성경에 기록할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궁금하면 솔로몬의 실록이나 찾아봐라 하나님은 냉정하세요. 

그러면 42절 솔로몬의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날 수가 40년이라 솔로몬이 한 일에 대해서 내용을 밝힐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냥 연수만 40년 다스렸다 끝 그런데 뭘 뭔 하나 인정해요.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날 수 이건 인정하는 거예요. 왜요 말씀드렸죠 전무후무하다고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은 솔로몬이 전무후무합니다. 그러니까 사흘도 못했고 다윗도 못한 일을 솔로몬이 했으니까 그건 인정해 주는 거예요. 그러나 내용은 적을 필요가 없는 거죠. 왜 내용은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43절 이렇게 끝납니다. 솔로몬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르후보함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끝이에요. 여러분 성경은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하여 사람이 살아있을 만큼 사람의 죽음에 관해서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의미가 있는 인생이었다면 가치 있는 인생이었다면 그러나 솔로몬의 인생에 대해서 성경은 내용을 하나도 밝히지 않는다는 거예요. 왜일까요? 밝혀서 은혜가 될 게 없어요. 밝혀서 유익될 게 없는 인생이었다는 거예요. 그냥 40년 왕 노릇하다가 죽었고 아들 로보암이 왕이 되었다. 끝이에요. 그 세절 외에 성경은 솔로몬의 인생에 대해서 평가하지도 않고 입에 담지도 않아요. 그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과연 결정해야 됩니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사람들이 솔로몬처럼 지혜 있게 하소서 솔로몬처럼 내 자녀를 기르게 하소서 과연 사람들이 말하는 지혜와 영광과 부의 상징인 솔로몬을 따르며 살 것인가? 

아니면 성경이 평가하는 냉정한 그는 그냥 40년 동안 왕이었을 뿐 뿐이야 그의 인생은 궁금하면 솔로몬의 실록이나 봐 여기서 그를 평가할 이유가 없어라고 하는 하나님 말씀으로 그를 볼 것인가?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받길 원하시는가 여러분 그것도 결정해야 돼요. 과연 사람들이 와 사람 와 우와 와 사람 이렇게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려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인정을 구할 것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묻고 있습니다. 자 그렇게 해서 솔로몬이 죽고 왕이 된 르호부암 근데 오늘 1절은 뉘앙스가 이상해요. 자 이미 바로 전절에 11장 43절에서 어떻게 끝나요? 르호부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그랬죠 여기 한번 여러분 밑줄 한번 그어 보세요. 르호부암은 왕이 됐어요. 루밤은 왕이 됐어요. 왜 됐습니까?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했잖아요. 영원히 니 자녀들이 왕이 된다. 

니 영원한 왕위를 내가 약속 한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왕이 됐어요. 그죠 왕이 됐는데 됐는데 이상한 건 오늘 1절이에요. 루우보함이 세계모로 갔으니 이는 오리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계임에 이르렀습니다. 아니 이미 왕이 됐는데 왜 왕을 삼아요. 이게 무슨 말이에요. 여러분 이걸 잘 보셔야 됩니다. 르호보암이 이미 왕이 됐어요. 그런데 이미 왕이 됐다는 건 어디서 된 거예요. 예루살렘에서 된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지파에게는 이미 인정을 받았어요. 그런데 세계면 어디냐 세계면 북이스라엘의 중심지고요. 나중에 남북이 갈라지고 난 다음에 북 이스라엘의 수도가 됩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여호수아 시절부터 아주 강한 정치적인 중심지구요. 경제의 중심지 문화의 중심지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은 세계부 중심으로 모여요. 이 세계물 굉장히 중요한 땅이에요. 

그러니까 세계부로 로바비 왜 갔냐면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왕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 간 거예요. 이 말은 뭐냐면 북쪽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자기네는 왕을 삼는 거예요. 왕을 따르고 존경하는 게 아니라 왕을 삼아요. 자기네가 이게 무슨 문화냐면 남쪽은 다윗을 중심으로 모였잖아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될 때 그를 왕을 삼았습니까? 그냥 받았습니까? 그냥 받았습니다. 왕은 세습되는 게 맞잖아요. 그러니까 남쪽의 문화는 뭐냐 다윗을 숭 거의 아주 존경하기 때문에 다윗의 자녀는 그냥 왕이고 솔로몬의 자녀는 그냥 왕이에요. 이게 남쪽이에요. 그런데 북쪽 문화는 뭐냐 사후를 왕으로 삼았잖아요. 자기네가 첫 번째 왕을 자기네가 삼았기 때문에 그다음 왕부터도 계속 자기네가 인정해야 왕이 되는 거예요. 이게 북쪽의 문화예요. 그러니까 다윗을 처음에는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죠 그러다가 두고 보다가 왕으로 삼아 준 거죠. 

솔로몬 역시 그랬고 그러니까 르호브암도 당연히 왕이 아닌 거예요. 왕을 우리가 삼을 거냐 말 거냐 지금 평가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얼마나 이스라엘 민족으로서는 불신앙적인지 몰라요. 이게 오늘날로 말하면 굉장히 민주적이지만 이 당시에 왕조에서는 이런 건 불가능한 거죠. 아니 왕이 왕의 아들이 왕이 됐는데 그걸 우리가 왕으로 삼겠다. 말겠다. 평가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이게 왜 중요한가. 이 한 절이 왜 중요한가. 앞으로 남북이 갈라지잖아요. 갈라져서 진행될 때 남쪽은 단 한 번도 왕조가 바뀌지 않습니다. 핏줄이 바뀌지 않아요. 역성 혁명이 없어요. 항상 다윗의 자손이 계속 왕이 돼요. 남쪽은 그게 당연한 거니까 하나님께서 다윈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언약에 따라 왕이 되니까. 그런데 북쪽은 뭐냐 북쪽은 우리가 왕으로 인정을 해줘야 돼 우리가 인정을 해줘야 왕이야 그러니까 어떡해요. 허구헌 날 바뀌는 거예요. 

허구헌 날 왜 마음에 안 들면 왕 죽이고 신하가 왕이 돼요. 그럼 왕이 마음에 안 들면 또 죽이고 시다가 왕이 돼 또 죽이고 신하가 왕이 돼 그러니까 쿠데타가 계속 일어나는 거예요. 이게 뭘 상징하냐면 왕이라고 하는 이 제도는 하나님이 처음에 반대했던 제도예요. 내가 왕인데 왜 왕을 세우냐 하나님 반대하셨어요.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끝끝이 없어 쫓아다니면서 왕왕왕 세워주세요. 왕이 있어야 됩니다. 했더니, 하나님이 세워주신 게 왕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백성들이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자체가 불시장인 거예요. 이게 뭘 보여주냐면 이게 우리의 모습이에요. 우리가 필요할 때는 하나님께 달라고 해요. 그래놓고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걸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것을 평가하고, 우리 뜻대로 우리 욕심대로 우리의 입장대로 계속 평가하고, 바꾸면서 하나님이 주신 건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떡해요. 평안이 없는 거예요. 계속 불행히 반박 반복되는 거예요. 

계속 아프고 계속 이 가정의 불화가 왜 생깁니까 여러분 가정에 왜 불화가 생겨요 머리인 남편을 머리인 아버지를 가족들이 인정하지 않아요. 뭐 남편이라고 뭐 어떻게 믿고 따를 만한 구속이 있어야지 저렇게 못나 터진 인간을 내가 어떻게 남편을 인정하느냐 그럼 결혼하지 말았어야지 결혼을 해놓고, 남편을 남편으로 보지 않아 자녀들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아 그때부터 가정이 엉망 귀착이 되는 거예요. 국가도 마찬가지고 나라도 마찬가지죠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교회도 교회 안에는 리더십들이 있단 말이죠. 근데 리더십들을 교회 안에 리더십을 하나님에 세우셨다고 인정하는 교회가 있고 그걸 우리가 뽑았다라고 말하는 교회들이 있어요. 우리가 뽑았다고 말할 때 항종직들은 계속 평가를 받아야 돼요. 교환의 리더십들은 계속적인 평가를 받고 하나하나 꼬치꼬치 다 뭐든지 다 검증을 받아야 돼 그러면서 계속 재신임을 해야 돼요. 그러면서 교회가 불신이 싹트고 갈라지게 되는 거예요. 

아까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믿음이 있으면 사람이 지금은 좀 저렇게 불안하고 흔들리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지실 것이다라는 믿음이 없는 거예요. 우리가 평가하고, 우리가 판단해서 우리가 바꿔야 굉장히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교회가 계속 불행을 겪는 씨앗이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뭐냐면 하나님께 왕을 요청했다면, 하나님의 왕을 주실 거란 믿음이 있다면 왕이 부족하고 연약해도 믿고 따라가는 남쪽과 왕 맘에 안 들어 바꿔 이번 왕도 마음에 안 들어 바꿔 계속 우리가 왕을 삼고 평가하고, 바꿔나가는 북쪽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리가 이 두 가지 역사를 좀 유심히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과연 어느 쪽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역사인가 과연 우리가 가정 안에서 또는 교회 교회 안에서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고 하는 거예요. 물론 남편들이 모자란 건 맞아요. 

아버지로서 자격이 없는 거 맞아요. 그러나 그러니까 더욱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되는 게 남편이고요. 그러니까 더욱더 가슴을 치면서 자녀들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고민하게 되는 게 아버지 아닙니까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아 당신은 자격 없어 끝 당신은 아버지도 자격이 없어 당신 남편도 아니야. 끝 이래 버리면 가정이 깨어지는 거예요. 가정이 가정으로 올바로 설 수가 없는 거예요. 부부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할 때 서로 존경하지 못할 때 자녀가 부모를 존경할 수 없게 되고요. 그러면 가정은 이미 역기능적 가정이 되는 거예요. 교회도 마찬가지고요. 수많은 교회들이 이 리더십을 인정하는 문제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고 갈라지고 상처받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지금 숱하게 많은 교회들이 아픔을 겪고 있어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인 예배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어떤 판은 1층에서 예배하고 어떤 판은 이 층에서 예배하고 왜 인정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나 당신 리더십 인정하지 못해 그러니까 우리가 새로 모실 거야. 

그럼 외부에서 또 불러와 정말 희한한 교회는요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본당 뒤에서 예배를 또 드려요 목사님을 따로 불러와서 따로 예배를 드려요 저는 희한한 건 거기에 온 목사님은 또 뭔가 아니 예배드리는 본당 해서 뒷쪽에서 예배를 떠드리고 있어요. 뭐 하는 짓이에요. 이게 뭐냐 하면 인정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럼 세우질 말든가 세웠으면 인정을 하든가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이미 이제 뒤틀리기 시작한 역사가 오늘 12장 1절의 역사인 거예요. 내가 루브암 너 그래 솔로몬의 아들인 건 알겠는데 니가 왕위에 오를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평가하겠다는 거예요. 근데 평가사를 불렀는데 평가사가 누구냐 누가 왕을 평가하는가? 이 절입니다. 느밭의 아들 여로 보아미 여러보암 표시해 보시고요. 자 르호부암 여로보암 이름 비슷하죠. 이름 비슷한 이 두 사람이 분열 왕국의 첫 왕들입니다. 

1절에 나오는 르호보암이 남유다 남쪽 다윗의 혈통을 이어서 솔로몬의 아들인 르오보암이 남쪽의 왕이 되고요. 그다음에 이 절에 여로보암이 북쪽의 첫 왕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첫 왕이 됩니다. 자 여러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우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러보암과 이스라엘에 온 회종이 와서 르오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자 여로부암이 전에 솔로몬에게 미움을 샀어요. 그래서 애굽으로 도망쳐 있다가 돌아왔어요. 그러니까 정치적인 망명을 애굽으로 했다가 돌아온 거죠. 그래서 로 여로보암이 이제 르호보암의 왕 될 자격을 판단하는 평가사가 돼서 그 앞에 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4절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식힌 고역과 매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심은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자 너무 힘들었다는 거죠. 여러분 솔로몬은 평생 뭐 했어요. 공사하다 죽었어요. 집 짓다 죽었어요. 성전 지었죠. 왕궁 지었죠. 산당 지었죠. 평생 짓다 죽었어요. 그러니까 백성들은요, 40년 내내 불려가서 공사 불러가서 공사 불러가서 공사 돈이나 받았겠어요. 내내 그거 하다 죽으면 그냥 죽는 거예요. 보상도 없어요. 산재가 어딨어요. 그러니까 40년 내내 백성들은 끌려가서 고생하고 끌려가 죽고 끌려가 죽고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거 좀 안 하면 안 되겠냐 얘기하는 거죠. 좀 대신 이제는 좀 그런 거 하지 말자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5절 르오범이 대답하되 갔다가 3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생각한 시간을 달라고 그랬죠 6절 로보아미 왕이 로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100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자 아버지 시절의 사람들은 뭘 알아요. 아버지가 어떻게 했는지를 알아요. 

그러니까 솔로몬처럼 하면 큰일 난다는 걸 알아요.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걸 알아요. 그래서 뭐라고 말합니까? 7절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100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자 좋은 말에 밑줄 한번 그어보시고요. 좋은 말 이 좋은 말이 좋다라고 하는 말이 뭐냐 토브예요. 토브 이 토브가 뭐예요? 하나님의 선하심이에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재하심이 영원하시다 할 때 선하심의 토부구요. 그리고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해 놓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토부예요. 그러니까 이 선한 말은 어떤 말이냐 하나님의 선하심 선하심을 따르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말이에요. 즉 믿음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거예요. 솔로몬 당시에 이 노 충신들은 루범 왕이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회복하십시오. 하나님이 보시기 좋은 정치를 하십시오. 그런 말로 그들 다스리십시오. 

섬기는 왕이 되십시오. 이제라도 당신이 섬기는 모습 보여주면 저대로 당신 편이 될 겁니다라고 말했던 거죠. 그러나 8절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버렸다 뭘 버린 거예요. 토부를 버린 거예요. 하나님의 선하심을 버린 거고요. 좋았더라를 버린 거예요. 하나님의 좋은 말을 버리고 자기 앞에 모셔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 그랬어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사람들이 모두 누굴까요? 자기와 함께 자라났다 여러분 14장 21절 갑니다. 14장 21절 루바왕이 누군가 같이 자라난 사람이 누군가 보겠습니다. 14장 21절 솔로몬의 아들 르우보암은 유다 왕이 되었으니 르우보함이 왕위에 오를 때 나이가 41세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힙합 가운데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에서 17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 마요 암몬 사람이더라 그랬어요. 

암몬 사람 여러분 르호보암의 어머니가 누구냐 암몬 사람이다. 그렇다면 암몬은 어떤 사람들이에요. 밀곰을 섬기는 강력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이 어머니 나하마가 처음에는 정략결혼으로 들어왔다가 솔로몬과 정말 마음을 나누며 살았겠죠. 그런데 이 나하마가 가지고 온 암문 우상 밀곰을 얼마나 열심히 섬겼겠어요. 그러면서 자녀인을 교육할 때 뭘 교육했겠어요. 암몬식으로 교육했겠죠. 밀곰을 섬기도록 교육했겠죠. 그러니까 나 이 로보암이 함께 자라난 사람들은 누구냐 주로 암몬 족속일 것이고. 주로 우상을 섬기는 족속이었겠죠. 게다가 모았고 안모는 형제지간이니까. 모합 친구들도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니까 모아 후궁이 낳은 아들과 암문 후궁이 낳은 아들과 여러 첩들의 아들과 함께 자라지 않았겠어요. 그러면서 함께 자란 사람들은 다 누구예요? 

전부 이방 신을 섬기는 이방신 섬기는 엄마의 아들들 이방신을 섬기는 아들들이죠. 아들들이 함께 자라났어요. 그래서 의논했어요. 9절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자문하여 이 100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배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냐 그랬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10절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러되 이 100성들이 왕귀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이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 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와 허리보다 굵으니 이들은요, 다 재벌 이 세들이잖아요. 다 금수저잖아요. 다 솔로몬의 후광을 입고 자랐어요. 그러니까 무서울 게 없어요. 내가 아버지보다 더 훌륭하다라고 말하라는 거죠. 

11절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매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무서운 게 없는 사람들이죠. 왜요 이방신을 섬기는 것 자체가 여러분 이게 뭡니까? 이방신을 왜 섬기죠 우리가 이방신에게 우리의 삶을 드리기 위해 헌신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방신을 왜 섬겨요 내 유익을 위해 섬겨요 내가 돈 많이 벌고 높이 올라갈려고 섬기는 게 이방이에요. 이방 우상이에요. 여러분 우상을 섬기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있어요. 아무도 없어요. 오직 내 유익이에요. 그러니까 이들은 우상을 섬기는 이들은 섬기는 왕이 될 필요가 없죠 아 내가 돈 많이 벌고 내가 높이 올라가는 게 목적인데 내가 왜 남을 섬겨요 더 뺏어야지 더 갈고 더 막 갈코리로 긁어야지 돈을 그러니까 이들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마음으로 조언을 하고 루브하면 마음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스라엘은 절반으로 쪼개지고 맙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에게 성경은 질문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살겠느냐 너의 유익대로 살겠느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느냐 리더십을 인정하고 섬기는 리더십을 가지고 살겠느냐 아니면 리더십을 평가하고, 남을 괴롭히는 리더십으로 살겠느냐 그러니까 서로 하나님 은혜 가운데 화합하는 공통 구체가 되겠느냐 아니면 서로서로 팔라워들은 리더십을 평가하고, 리더십은 플라워를 점점 키즈고 누르는 그런 억압적인 구조로 갈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토부의 공동체 선한 공동체로 갈 것이냐를 지금 묻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건 누가 봐도 분명한 답이 나오는데 그런데 실제는 다르다는 거죠.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삶이 다르다는 거예요.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현실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 우리가 뭘 구해야 됩니까? 

하나님 우리의 머리는 선한 것을 원하지만 우리의 생각으로는 말씀드린 살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하나님 도와주옵소서 하나님 도와주옵소서 지금 수없이 많이 갈라져 있는 과정과 교회를 하나님 이 선한 공동체로 화합하여 주시고 우리 교회와 우리 가정이 하나님 말씀하시는 선한 공동체 토보의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줄임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우리도 이 성경처럼 될 수밖에 없고 이 사건처럼 될 수밖에 없고 이 현실처럼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께 다시 한번 돌아가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고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제 생각과 제 계획대로 되지 않을 줄 저희는 압니다. 

그렇게 내버려두지 마시고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교회 은혜로운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 그렇게 우리에게 도우시고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따르기보다는 각자 다 자기 욕심대로 자기의 원하는 그것을 이루고자 서로 아웅다웅 싸우고 다투고 서로 자기의 이름을 내고자 자기의 위신을 위하여 자기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서로 아귀다툼하는 것을 봅니다. 주님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게 허락하신 가정과 교회가 이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주님의 말씀으로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을 모아주시고 하나님이 세우신 우리의 리더십들을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고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을 주시고, 또한 그런 리더십들은 팔로워들을 잘 이끌어가되 섬기는 모습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선한 말과 선한 행실로 하나님의 귀한 모습대로 좋았더라 하실 수 있는 그러한 가정 그런 교회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저희들 기도하며 구하는 모든 제목 가운데 역사하여 주시되 하나님의 평강의 평강으로 우리 가정과 교회와 우리 영혼들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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