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기독교 변증 5강

yt1981 2024. 6. 21.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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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경에 나와있는 변증과학하고 우리 교회사의 변증과학을 시간이 되는 만큼 좀 살펴보려고 하는데 이제 한 50분 남았습니다마는 성경에 나와있는 변증은 크게 구약에서는 아브라함 신약에선 사도바올의 변증 그다음 베드로의 변증 3개인데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이 아브라함의 변증을 신약성이 굉장히 강하게 언급을 합니다. 히브리 11장도 이야기를 하고 베드로 전스 2장과 3장에서 언급을 하고 있는데, 베드로 전 3장에 나와있는 베드로의 변증이 사실은 아브라함의 변증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아브라함의 변증은 많은 경우에 유대인들의 영향 때문에 본문의 뜻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지금 창세기 23장에서 사라를 묻을 매장지를 해쪽 속으로부터 구매하는 그런 장면인데 아브라함이 그 구매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한 말이 핵심입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있는 낙은 그래요. 우구한 사람입니다. 그런 표현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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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그네고 여러분하고 같은 족속이 아니고 여기 잠시 거쳐가는 사람입니다. 하고 먼저 말을 하고 그 다음에 그 땅을 내가 좀 살 수 있겠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 해쪽 쏘기 아브라함에게 큰 제안을 하지요 아이고 우리 사이에 무슨 거래를 합니까? 그냥 쓰세요. 이 굴뿐만이 아니고 주위의 밭도 그냥 다 그냥 공짜로 드릴게요. 아브라함이 노 땡큐합니다. 아닙니다. 돈 주고 사겠습니다. 돈 주고 사겠다고 말하기 전에 절부터 합니다. 큰절을 하고 돈 주고 사겠습니다. 그 다음 또 쓰라고 또 제안하니까 또 사겠습니다. 할 때는 또 큰절을 하고 사겠습니다.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의 관점으로 봅니다. 유대인의 관점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그 땅을 자기가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땅을 상속받을 줄 알고 믿음으로 그 땅을 돈을 주고 샀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우리 신약을 보는 우리는 그런 소리 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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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바라본 땅은 팔레스타인 땅 아닙니다. 이번 11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바라본 땅 어디입니까? 하늘입니다. 팔레스타인 나그대로 살다 갔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그런 믿음이 있어서 그 땅을 억지로 돈 주고 샀다고 그러면 설명할 수 없는 게 하나 있습니다. 뭐겠습니까? 굳이 돈을 돈을 주고 사야 될 일이거든요. 아니 그러니까 돈 주고 사야 내께 되니까.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게 뭐냐 아브라함 어마한 부자였습니다. 1평도 안 샀습니다. 땅 설명이 안되죠. 아브라함은 그런 믿음으로 산다고 그러면 돈 세기는 족족 땅 사야지요 이거 하나 주신 건데 지금 안 삽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의 관점이에요. 왜 그런 관점에서 퍼뜨리겠습니까? 지금 있는 저 땅을 자기들이 지금 주장을 해야 되거든요. 알아서 하면 누르고 자기들 차지해야 될 거예요. 지금 이스라엘이 지금 난립니다. 이스라엘 극우파가 장악을 해 가지고 미국마저 미국은 이스라엘 완전히 한통속인데 미국마저도 이스라엘은 그러지 말하고 말릴 정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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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자주의 또 들어갔잖아요. 지금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계속 지금 이 네타냐고 재판한다고 지금 나오고 있는 판인데 자기들이 그 땅을 점거하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아브라함 돈 주고 샀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그런 논리 속아 넘어 아닙니다. 유대인들에게 공부하는 한국 학자들이 아유 우리 개신교 학자들이 많이 넘어가는데 월터카이저라고 하는 트린트 신학교에서 구약 가르치는 교수도 그런 소리를 하더라고요. 하나님 앞으로 해주신 약속에는 땅 약속도 포함되어 있다라면서 유대인 편을 들어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분이 유대인 학교에서 브랜다이스에서 박사를 받았어요. 유대인이 자기 선생님이야 그 노래 그대로 받아옵니다. 우리는 속으면 안 됩니다. 아로함이 돈을 주고 땅을 구입한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낙으네요. 우구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하고 우리는 아 우리 가운데 지금 선생님 아닙니까 그냥 드릴게요. 아닙니다. 나는 당신들하고 다른 사람입니다. 하고 지금 선을 긋는 거예요. 그래 돈 주겠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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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그래서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히브리 11장이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았고 그 다음에 베드로인스 3장 15절도 마찬가지로 3장 2장에서 아브라함 외국인이라고 계속 강조하고 살았다. 그러면서 3장 15절 가서는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두에게 언제든지 답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까브라함 변제 핵심은 나는 당신들하고 다른 사람입니다. 그걸 강조한 거예요. 그걸 신약성이 그걸 강조하고 있고 그래서 이제 나그네로 산 믿음이라 그렇게 얘기하죠. 왜 다르냐 여기가 내 고향이 아니고 나는 갈 데 어려서 와서 그렇습니다. 그것도 아니죠. 왜 나온바 고향을 알았으면 갔을 텐데 아브라함이 바라본 고향은 나옴바 고향이 아니고 하나님의 하늘에 준비하신 그 땅이다. 우리가 신약 성격 눈으로 구약을 풀어야 됩니다. 까브라함 왜 억지로 돈 주고 살 수가 있냐 간단합니다. 그 사람들하고 한통성이 아니란 걸 밝히기 위해서예요. 변증입니다. 나는 당신들하고 다릅니다. 나는 이 땅에 소망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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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 것이고. 왜 그러면 지금까지 땅 안 사다가 이거 샀냐 사라가 죽었습니다. 땅에 묻어야 됩니다. 이거 시신을 끌고 다닐 수 없잖아. 내가 무슨 비바장구도 아니고 끌고 다닐 수가 없잖아요. 결국 땅을 조금 자기는 밭까지 넓게 사라 그래도 나 필요 없습니다. 무덤만 있으면 되니까. 요 굴만 사겠다. 그래서 하는 거죠. 아브라함 믿음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그런 면에서 성경을 볼 때 유대인들의 영향받은 사람들에게 물이 안 들어오는 늘 조심해야 되는데 그와 함께 인제 성경이 또 강조하는 게 뭐냐 하니까 온유와 두려움입니다. 베드로가 3장 15조에서 베드로에서 3장 15조를 해서 온유와 두려움으로 해라 그것도 역시 이 아브라함의 보기를 언급을 한 겁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렸습니다. 절을 2번이나 했습니다. 내가 당신들하고 다릅니다. 이야기를 했지만, 그 사람들이 기분 나빠 하면 안 되거든요. 지금 그래서 절을 하면서 제가 돈 낼게요 그렇게 절을 하면서 돈을 내겠다고 2번이나 2번 다 돈 내겠다고 말하기 전에 절을 합니다. 그걸 보면서 우리가 해야 될 변증도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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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하고 나는 다릅니다. 우리의 거룩함을 보여줘야 되고 그러나 그것이 우리 오만함이 되거나 그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일이 아니고 그 사람들에게 복음의 변증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나가야 된다. 그 여기서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히브리 11장 13절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야기할 때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증거했다. 그렇게 얘길 했지요 근데 이걸 창세기 이 내용을 이 베드로 사도는 베드론 시장 11절에서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육체의 정족을 제어하라 그래 권하지요 이 나그네와 행인 같은 이 말이 아브라함이 했던 그 말을 그대로 사용한 겁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식으로 이 땅에서 자기가 나그네 힘을 보인 것처럼 너희도 여기에 나그네로 살아라 그렇게 고민하는 내용입니다. 이게 첫 번째 아브라함의 변정이고 두 번째 바울의 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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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변증은 특별히 아테네에서 했던 그런 변증인데 앞에 있는 내용은 좀 건너뛰고요. 바로 이 4번 바울의 아테네 전도 해서 변증하기 교과서 하는 부분을 보겠습니다. 이게 변정하게 교과서 된 이유가 뭐냐 하니까 대상 일단 이방인입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전도를 유대인에게만 했습니다. 어디 가든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예수가 그리스도로 전파하고 밖에 나가 전도를 잘 안 했어요. 그전에 루스트라에서 조금 전에 전도한 내용이 있지만 거기서 인제 전도했다가 돌 맞아 죽을 뻔했죠. 아테네에서는 100% 이방 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예수천당 불신조 외친 게 아니고 물론 예수 부활 전했지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물어보면 답도 해주고 변론도 하고 그런 방식으로 그야말로 전형적인 변증을 합니다. 출발점이 아까 말씀드린 소크라테스가 너무 비슷해요. 왜냐 소크라테스 오해에서 시작됐습니다. 거짓 신들을 도입하고 청년들 탈환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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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바울 어떻게 오해를 받았습니까? 사드바울도 이방신을 도입하는 걸 오해를 받았습니다. 왜냐 바울이 도입한 신은 2개입니다. 예수신하고 부활신이에요. 왜냐하니까 예수는 남성 명사 남성 관사를 붙여 가지고 붙이니까. 아 예수는 남자구나 부활은 헬라 사람들은 이 추상 명사를 이게 뭡니까? 대상화하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질투하면 질투의 여신 이런 식으로 부활 그러니까 부활은 여성됨 관사를 쓰거든요. 아 이거 여신이구나 그래서 예수라는 임신하고 부활이라는 여신을 전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 아테네 사람들이 소크라테스가 신을 못 오겠다고 하는 거하고 비슷한 차원이 됐죠 그래서 사람들이 바울이 며칠을 반복해서 예수 이야기하고 부활량 그건 말 그대로 예수천당 한 거지 사실 논쟁 논란을 벌였지만 그렇게 하니까 사람들이 도대체 당신 니가 이야기를 뭔지 좀 더 알아봐야 되겠다. 하고 이 바울을 끌고 어디로 갔냐니까 아레오바고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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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하고 바위인데 그 바위가 어디냐 사실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에게 재판받고 유죄 판결을 받은 바로 그 자리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 사도바울이 아테네산 변증을 보면 소크라테스 분위기를 꽤 느끼고 보여준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어쨌든 가서 에피쿠로스 학파하고 스토어 학파 당시에 주류인 2개의 철학자들하고 논쟁을 계속 벌입니다. 그 논쟁에서 바울은 계속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그런 요 스토라 사람들 용어를 사용하면 그러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증가하는데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하고 완전히 다릅니다. 유대인들에게 전할 땐 유대인들은 구약 생각을 알고 있습니다. 언약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메시아가 올 걸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니까. 유대인들에게는 당신들이 가진 그 언약 나도 믿고 있는데, 하나님 약사하신 메시아가 이미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 사람들은 언약도 없고 성경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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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이 대신에 마음속에 뭐가 있냐니까 칼뱅이 이야기했던 종교의 시 또는 신성 감각 아니면 파스칼이 말했던 마음속에 있는 진공 하나님이 계셨다가 빈자리 하나님 찾고자 하는 본성은 있습니다. 그걸 이용해서 하나님을 전합니다. 말하자면, 접촉점이죠. 접촉점이 뭐냐 바울은 우상이 꽉 차 있는 도시를 보고 막 분해가지고 분노에 차다가 하나 딱 발견한 게 뭐냐 하니까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친 제단을 받습니다. 아 이거다 이걸 생각 거기서 이제 클루를 자기가 발견해 가지고 사람들에게 내가 가다 보니까 이런 재단도 있던데 여러분들이 모르고 섬기는 그 신을 내가 알게 해주겠소 그러곤 인제 참 하나님을 소개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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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울이 하나님이 강민족으로 나누신 목적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 설명을 한 다음에 그 사람들하고 접촉점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가 헬라 공부를 하면서 배웠던 시 2개를 인용을 합니다. 1가 뭔가 하니까 에피메네스라는 사람의 시인데 바우리 아테네 사람들한테 너희 시인 중에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움직이며 존재하느니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에피미레스의 시를 인용한 거예요. 근데 거기 나와 있는 그는 하나님이 아니고 제우스입니다. 제우스 그런데 그걸 그대로 인용을 해요. 너희는 지어서라고 했지 여우아야 이렇게 말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합니다. 그런 다음에 아라투스트라고 시인을 언급한 바울이 시인이라고 표현을 하고 언급했는데 뭐냐 하니까 우리가 그의 소생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의 자녀다 이 말인데 그가 우리의 아버지다 그런 뜻입니다. 
11:36
여기도 구도 역시 제우스입니다. 근데 칼뱅이 이 아라토스의 시 인용한 이 사등전을 주석하면서 그런 말을 합니다. 이 사도바울이 왜 아라토스의 이 시를 인용했냐 아라토스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말씀은 몰랐지만은 하나님이신 일반 계시로 일반 은혜 영역 속에서 무언가 신적인 존재가 있다면 우리의 아버지겠거니 그렇게 깨달은 걸 바블이 인정하고 그래서 인정한 것이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근데 바울이 사정전에서 인정한 거는 괜찮아요. 우리가 그거를 힘입어 살며 움직이며 존재하느니라 그건 나중에 사도바울이 제우스 관계없이 살아 있는 하나님을 전했기 때문에 괜찮은데 나중에 디도스에 가면 재미있는 것은 또 이게 크레타 사람의 선제 중에 1명이 말하기를 크레타인은 항상 거짓말쟁이고 자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다. 그런 이야기 해놓고는 그 사람 말이 맞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2:35
근데 거짓말 크레타 사람들이 한다는 거짓말이 뭐냐 하면 제우스가 죽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 시인이 비판을 하는 거예요. 제우스가 지금 살아있는데, 죽었다니 무슨 말이야. 근데 바울이 그걸 인용하면서 그 사람이 맞아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제우스 안 죽었단 말처럼 들리잖아요. 디도스는 복잡한데 다 설명 못 드리고 사정전에서는 사드바울이 그 에피메네스가 맞았다. 이런 뜻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너희들도 그런 정도 느끼고 있지 않냐 그러면서 사드바리 참 하나님을 소개를 해 줍니다. 바울은 칼뱅은 이 에피메네스의 신은 몰랐던 것 같아요. 바울이 그냥 한 말인 줄 알았던 것 같고, 에피엘레스 씨를 인용한 줄 몰랐던 것 같고, 대신에 아라토스는 알았습니다. 
13:19
칼뱅이 사도바오리아 아라토스를 인용한 이유는 그 사람들 일반적인 일반 게시의 영역에서 신성 감각이 누구에 있으니까 그걸 이용해서 말한 것이 아니겠나 그렇게 설명을 하지요 그런 다음에 바울이 그래서 소개를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에 대해 소개를 하고 하나님이 심판하신 날을 작정하셨고 그렇지만 구원의 방법으로 예수 그리를 쓰셨다는 내용을 마지막 결론을 다시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들이 인제 고 내용만 보고 바우리 예수 이야기는 안 하고 무슨 쓸데없는 변론만 시인도 인용하고 막 그런 것만 한 줄 알아요. 근데 그전에 이미 바로 며칠 동안 신을 소개한다고 말을 들었을 정도로 예수하고 부활만 자꾸 이야기를 한 거예요. 이미 예수와 부활 이야기했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변론을 하고 난 다음에 마지막 결론 다시 예수의 부활로 마무리를 합니다. 그래서 인제 제가 옛날에 들은 설교 가운데 밑에 생각을 문제 써 놓은 게 있죠. 
14:17
고려전서 2장 1절에서 5절에 보면은 사도바울이 아주 재미있는 표현을 씁니다. 내가 이제 더 이상 뭡니까? 인간의 아름다운 말로 하지 않고 이제 십자가만 전하기로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이제 제가 설겨 들은 그것뿐만 아니고 많은 신학자들이 사도바울이 아테네에서 했던 변증을 후회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푸입니다. 제가 볼 때는 엉터리 푸입니다. 바울이 지금 그 고린도에서 이장해서 바울이 아테네 전독하고 난 다음에 아테네에서 얼마 머무르지는 않습니다. 고린도로 옮기고 난 다음에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체류하면서 복음을 전해서 고린도는 교회 갔어요. 아테네는 교회가 안 섭니다. 장관이 다 갔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이 고린도에서는 복음을 잘 지내서 교회가 섰고 아테네에서는 안 했기 때문에 아테네 자기가 말 자랑하고 하 자기 외우고 있는 시도 이야기하고 막 하면서 했는데 마지막에 아 이게 아니다. 후회를 했다. 
15:15
그렇게 푸는데 제가 볼 땐 엉터리 해석입니다. 왜냐 바울은 아테네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만 이야기했습니다. 거기 나와 있고 그리고 본문이 기록하는 내용은 스토어학파하고 에피소크로사 학파하고 논쟁한 그런 언급을 하긴 했지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바울이 이야기했던 그것은 철학 지혜고 사람의 아름다운 말이고 그거와 관계없이 고린도에서는 십자가만 전했고 분리할 수 없는 게 바울은 이미 아테네에서 십자가를 전했고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도바울이 지금 고린도 교회 편지를 쓰는데 고린도교회는 지금 사도바울을 추종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분열됐습니다. 나는 바울파 나는 뭐 아볼로파 나는 개바파 나는 예수파 뇌파로 나눠져 있어요. 바울이 지금 그래서 이야기하는 게 내가 지금 말 아무리 사도 바울이 말 잘해도 따라오면 안 됩니다. 여러분 예술군의 십자가만 우리가 따라가야 됩니다. 그걸 지금 이야기하는 겁니다. 괴 상황이 내가 아테네스에 실패했는데 고려대 성공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정황 자체가 아니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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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울이 나중에 고려전서 15장에 가보면은 똑같은 고려전서입니다. 앞에 2장하고 15장 같은 편지인데 거기서는 자기가 아테네에서 썼던 그 논리 우리를 그대로 또 활용을 해요. 예수의 부활을 입증하면서 그게 우리 부활로 이어진다 똑같은 논리를 설명해서 사용해서 설명을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좀 편견에 사로잡혀서 보지 않도록 애를 써야 됩니다. 주로 그렇게 푸는 분들은 뭐 하냐니까 이제 인문학을 싫어하는 분들 아니면 저처럼 철학 전공한 걸 싫어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많이 부릅니다. 저도 철학을 전공했으니까 말도 안 된다고 그래도 나오지요 어쨌든 우리 성경을 볼 때는 편견이 없이 보도록 했어야 된다. 중요하게 생각이 들고 그다음 세 번째 변증이 이제 베드로 우리 변증학에서 요절로 삼는 베드로에서 3장 15절입니다. 우리가 가진 변증의 사명에서 가장 명확하게 서술해 주는 내용인데 여기 인제 변증학의 몇 가지 틀을 담고 있습니다. 
17:09
너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 대심이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하는 건데 사실은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지 않은 사람들과 구분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가 묻지요 우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가 뭐냐 물으면 너희가 변증을 해라 아폴로기아를 주어라 하는 그런 이야긴데 베드로가 고민하는 1번은 논리적인 답변을 하라는 겁니다. 왜 사람들이 묻는 건 영어로 헬라오 로고스고 우리가 답하는 건 아폴로기아입니다. 둘 다 똑같이 로고스 가운데 들었습니다. 로고스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지식을 가르키는데 로고스에 대해서 아폴로기아를 주라 이 말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서 우리 기독교는 합리적인 설명을 줄 수 있는 종교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합리적인 설명 너희들이 여러분들이 주어야 한다. 그런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 다음에 우리 아까 보았던 것처럼 베드로는 강조합니다. 
18:08
두 단어를 써서 항상이라는 말과 모든 이라고 하는 말 2개를 써서 절대적인 예외가 없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거지요 당시 사회도 베드로의 글을 볼 때 기독교에 대해서 상당히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이니까. 로마가 박해하고 하는 그런 시절이지요 그런 시절에 베드로는 이미 우리는 안 믿는 사람과 달라야 한다. 하는 걸 이야기하고 있고 아브라함처럼 나는 나그네고 외국인으로 지금 살고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되고 그러므로, 우리 신분을 확실하게 변증을 해야 한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이제 방법으로는 온유와 두려움이 방법이 돼야 한다. 그래서 맥그레스의 글을 제가 인용했습니다. 복음 자체가 사람들의 귀에 거슬린다는 것과 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언어나 태도 때문에 빚어지는 거부감은 전혀 다른 것이다. 저보다 참 지적을 잘한 것 같아요. 실제로 우리 복음 자체도 아무리 내가 온유하게 전해도 사람들이 거부감 느낄 수 있습니다. 
19:07
그런데 그런 경우보다는 실제로 전도하는 사람들의 무례 그런 것 때문에 기독교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저 좋아하지만 그거 내세우면서 아주 거만하게 사람들 앞에 막 하는 이런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 보면 참 마음이 안타깝죠 그런 사람들의 교만한 태도 때문에 야 나 저런 요소 안 믿을란다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러면서 보면 우리가 참 조심해야 될 부분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베드로가 우리에게 온유함과 두려움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온유와 두려움을 2개로 나누어 봅니다. 우리가 온유함으로 해야 될 이유는 주님 은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나를 내세우는 게 아니고 예수 그리스의 복음을 지금 전하는 거기 때문에 온유함이 돼야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건방진 태도로 막 어 예수 믿어야 돼 이런 방식으로 나가는 거 저는 기본적으로 반성경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19:58
두려움을 해야 되는 이유는 뭐냐 내가 지금 복음을 변정하는 이 순간은 내게 말을 듣는 저 사람의 영혼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는 순간입니다. 너무나 두려운 마음으로 해야 되지 나는 이미 믿는 복음이니까. 간단히 말할 수 있지만 저 사람은 처음 듣는 복음이면 이걸 받느냐 안 받느냐에 따라서 영혼의 운명이 가릴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두려움으로 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근데 이 구절을 보면서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도 여기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 문제가 뭐겠습니까? 저 우리 변혁 수업할 때마다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 한국시대 우리 한국의 문제 딱 하나입니다. 아무도 안 물어본다는 겁니다. 묻는 모든 사람에게 항상 대답을 준비를 하고 있어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무도 안 물어봐요. 안 묻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가 안 그렇카니까 자기들하고 똑같은데, 뭐 달라야 이유가 뭡니까? 
20:53
물어볼 텐데 아니 자기들은 돈 돈돈 하는데 예수님 사람 좀 뭐 달라야 저 돈이 생긴 자리인데 왜 안 가고 딴 데로 가지 이유가 뭡니까? 물어볼 거 아니에요. 그런데 돈 돈돈하는데 예수님 사람이 먼저 간단 말이에요. 요새 교회 다니는 것들이 더 하더라고. 물어볼 게 있어야 말이지 자기하고 나하고 똑같은데, 자기들이 볼 때 달라야 쟤들은 왜 저렇지 달라야 되잖아요. 우리 소망이 하늘에 있고 이 땅이 아니고 우리는 시민권도 하늘에 있는데, 아브라함처럼 살면 사람들이 볼 때 분명히 야 저 예수면 쟤 좀 웃긴다 또라이 아니냐 이렇게 반응이 나와야 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 문제는 아무도 안 물어봅니다. 주변에 잘해놨는데 안 물어봐요. 우리가 가짜 준비도 뭡니까? 가짜 준비예요. 말로만 그러면서 참 우리 한국계 현주소가 나와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베드로의 이 구절은 참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그런 구절이죠. 우리는 언제든 준비를 하고 있어야 되고 베드로가 지금 이야기를 할 때는 사람들이 박해받던 시절입니다. 
21:50
고난주의 그러니까 막 예수 믿으면 정말 고난을 받고 목숨의 위협까지 받아야 되는 그런 시대인데 그런 시대에 과감하게 예수 믿음 말씀대로 살고 그리고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되죠. 아 예수만 안 믿으면 이렇게 편하게 잘살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시나 물어볼 거 아니에요. 근데 내 소망을 이야기 해주고 내가 믿음을 이야기해 줘 그럴 텐데 우리 시대 그러면 참 안타까운 상황이 돼 있습니다. 예 성계 변제가 고 정도로 보고 이제 교회사의 변제가 몇 가지 간단히 보고 오늘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유스티누스 교회사의 첫 변증가인데 저스틴 마트로 해서 순교자 저스틴에서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 그리고 이제 변증 큰 거 하나 작은 거 하나 이렇게 썼는데 이 사람이 인제 기독교를 변호할 때는 오해를 풀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대표적인 게 인제 기독교인은 인육을 먹지도 않고 피를 마시지도 않습니다. 그런 해명을 합니다. 무엇 때문인지 아시겠죠. 
22:48
성찬식을 하니까 요 뉴스쿠 시티의 피고 살이고 하니까 야 기독교인들은 인육을 먹고 마시나 보다 이제 그걸 오해를 하니까 성찬을 풀어주는 그런 내용이고 이 유스티누스는 플라톤 철학을 공부를 많이 해가지고 그걸 가지고 이제 당시에는 뭐 모든 사람들이 플라톤 철학을 믿던 시절이니까. 만약 우리 시대로 치면 모든 사람이 과학을 믿으니까 과학 용어를 설명하는 것처럼 플라톤 철학을 믿은 시절에 플라톤 철학을 가지고 이제 설명 그런 사람입니다. 뭐 교리적으로 문제도 있습니다마는 저는 이만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다음에 오리게리스라고 하는 사람은 보통 신학 공부하시는 분들은 교회사가 낳은 최고의 천재로 옵니다. 이 사람 뭐 못하는 게 없어요.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는 그런 사람인데 아우스티누스도 참 위대한 사람인데 아우스티누스보다 더 위대한 사람인데 왜 우리는 아우스티누스보다 더 모르냐 오리겐에서는 동방 교부입니다. 
23:45
우리는 지금 우리가 믿는 이 기독교 복음은 서방 기독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서방 기독교의 대부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훨씬 유명하고 동방기독교 이를테면, 러시아 정교 뭐 우크라이나 정교 그리스 정교 이런 곳이 동방 교회에서는 오리겐스가 최고 위대하신 교구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좀 차이가 있긴 하죠. 어쨌든 아주 똑똑한 사람인데 이분도 복음을 변정하려고 많이 애를 썼고 이 사람은 이 시대의 사람들은 참 대단해요. 이 사람이 젊었을 때 기독교인들을 죽이는 그런 박해가 있었는데, 자기 발로 걸어간 사람이 나 죽이라고 나도 기독교인이다. 어리다고 쫓겨났어요. 그런 정도로 열정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 단순히 머리만 좋은 게 아니고 정말 하늘을 향한 헌신이 있었던 그런 사람인데 이 사람 역시 기독교의 합리성을 변호를 많이 했는데 근데 이 아우 오리게니스는 동방 교부라서 그런 면도 있지만 사실은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하고 하는 그런 면에서 좀 안 좋은 전통도 많이 남겼습니다. 
24:44
부정적인 요소가 있긴 한데 너무 똑똑하다 보니까 그렇게 생각이 드는데 우리가 모든 부분에 있어서 어른으로 모시기에 딱 좋은 인물이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자 신대월의 고신 신대원에 있을 때 여러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도 하고 변정학도 하고 비교 종교학도 하고 황금율이라는 기독 윤리학도 하고 인문학도 하고 진짜 잡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덕분에 저도 공부를 많이 했죠. 근데 놀라운 것은 모든 과목에서 교과서적인 답을 딱 주시는 분이 우리 아우구스티누스 형님입니다. 저희 참 존경합니다. 신조어를 가르치기 전에 이렇게 위대하신 분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신조어를 가르치면서 모든 과목마다 가장 선경적이고 가장 합리적인 답을 주는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25:35
야 이렇게 위대하신 분이었나 그래서 아까 신앙과 이성 봤지요 신앙이 앞선다 왜 믿어야 이해하니까 이성이 앞선다 왜 내용을 알아야 믿을 것 아니냐 그것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고 그다음에 이제 자연 지식보다 제일 중요한 게 신의 도성입니다. 아우스티누스가 살았던 무렵이 로마가 멸망해 가던 과정입니다. 서로마 동로마는 놔두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했던 과정이고 아우스티누스의 생애 중에 동로마가 점령을 당할 서로 이 로마시가 곧 고쪽입니까? 점령을 당할 정도로 로마가 완전히 멸망하는 게 눈에 보이는 그런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 그 시대가 또 재미있게도 기독교가 박해를 받았다가 콘스탄티누스 때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 종교로 허락이 되고 그리고 나중에는 데오도시우스 때는 로마의 유일한 종교로 남습니다. 
26:29
콘스탄티누스 때는 기독교만 인정하는 게 아니고 다른 로마 종교의 플러스 기독교 기독교 더 이상 박해하지 마라 로마의 공식 종교의 하나다 그렇게 인정을 했던 거고, 데오도시우스 황제에 가서는 다른 종교는 당터리고 기독교만 그 기독교 분파가 많은데 삼위일체를 믿는 기독교만 정통으로 로마의 종교를 남기고 나머지는 다 없애버렸습니다. 그런 와중에 로마가 망해 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누가 사람들이 누구 때문이라고 그러겠습니까? 로마가 기독교 믿었다가 망했다. 인제 그런 이야기를 쫙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그렇지 않소 하고 이제 내세운 변증서가 바로 신의 도성입니다. 신국론이라는 책이 그래서 집필했습니다. 엄청나게 뜨거운 책이고 한국말로도 라틴어 번역된 책은 제가 알기엔 아직 없습니다. 영어를 다시 번역한 책은 있어도 전 지금도 아주 참고를 많이 합니다. 아우스틴어 고백록과 신국록 정말 고전적인 고전인데 뭐 그 안에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도 있긴 하죠. 
27:27
전반적으로 너무나 탁월한 그런 내용들인데 이 책을 조작하게 된 동기가 뭐냐 기독교가 로마가 기독교 때문에 망했다는 주장이 엉터리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476년에 서로 오토아케르 때문에 망했는데 아우구스티누스 생애 중에 서 고트족이 침략 로마시가 함락을 당했는데 로마의 마지막 황제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입니다. 저는 그래서 제가 옛날에 글사 출판하는 책 중에 글 중에 그런 게 있는데, 로물루스는 로마 왕국을 처음 시작한 첫 왕 이름입니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를 제국으로 만들어서 처음 황제가 된 사람이 아우구스투스입니다. 그러니까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을 붙여 가지고 로마 왕국을 시작한 첫 황제의 이름을 따서 이름 지은 그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28:20
그래서 저는 로마는 한편의 시다 수미쌍관법을 사용한 시작과 끝이 통하는 그걸 제가 놀리기도 하는데 어쨌든 로마가 쇠락해 가는 과정에 사람들이 기독교를 비난 안 할 수가 없지요 외적인 현상만 볼 때는 이거 완전히 기독교 때문이 망한다. 그러니까 이제 로마 아우스티누스가 책을 썼는데 아우스티누스의 이 책에서 기독교가 다른 종교 또는 다른 철학을 정복했다는 내용을 설명을 왜 기독교가 어떻게 우월한가 다른 종교가 어떻게 기독교에 정복을 당할 수밖에 없었나 그런 걸 쭉 설명을 하고 그다음 로마가 다신교를 포기했기 때문에 또는 기독교 때문에 멸망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하면서 로마 기독교가 로마의 어떤 공헌을 했는지 도덕적인 요소 사회적인 요소를 쭉 설명을 해줍니다. 
29:10
책을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그리고 논증 형식으로 증명을 해 가지고 사람들이 얼마든지 반박할 때 또 논박할 수 있도록 썼는데 아우스티누스가 이제 로마가 망한 데 대해서 책임을 물으니까 재앙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시대만 있는 게 아니고 언제든지 있어 왔다 기독교의 책임을 돌리면 안 된다. 그런 방식으로 해서 인제 기독교 때문이라고 하는 그런 논리에 대해서 계속 이 쐐기를 박아주고 반박을 해주고 그다음에 인제 1권 2권 나누어집니다. 1부 2부 1부가 10권으로 했고 2부는 12권인데 2부는 기독교인에게 유로를 줍니다. 앞의 일부는 안 믿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옹호를 하고 이분은 크리찬을 상대로 해 가지고 기독교인데 여러분이 믿고 있는 진리가 참이니까. 끝까지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공격해도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잘 붙으시길 바랍니다. 
30:03
해서 인제 성경을 쭉 풀어주면서 인류의 역사를 설명을 하는데 인류 역사는 2개의 도시다 하나는 하나님의 도시 하나는 마귀의 도시 이 2도시가 서로 겨루어 가면서 역사가 발전해 가는데 막의 도시는 대부분 인간들이 참여해서 지금 마계도시에 지금 시민으로 삽니다. 하나님 도시의 시민은 누구냐 바로 우리 크리스찬델이다. 하나님은 이 도시를 발전시키고 보호하고 확장하기 위해서 이 도시의 시민이 된 우리 그리스도를 사용하시니까 하나님을 더 잘 순종하고 믿고 따름으로써 이 도시를 잘 지켜 나가자 하는 이게 인제 아우세 신국론의 2부의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하나님의 도성과 인간의 도성이 끊임없는 싸움을 벌인다 이야기하면서 이걸 이제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너무 물리적으로 보면 안 됩니다. 불신자하고 그렇잖아요. 싸운데 이런 데서 보면 안 되고 염적인 싸움입니다. 
30:49
싸움을 벌이는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결국은 하나님의 도성이 이긴다는 확신을 갖고 이 싸움에 임해야 되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이기는 성공 말하자면, 물리적인 싸움이지요 그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영적인 싸움 전쟁에서 이기는 게 중요하다 하나님을 복종하는 그런 사람을 통한 싸우시기 때문에 우리는 혈과 육의 싸움을 하지 말고 끝까지 십자가 정신으로 염적인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어느 뭐 선교 신학자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만 우리가 가야 될 길은 십자군의 길이 아니고 십자가의 길이다. 그 차이 아시겠죠. 십자군은 십자가를 내세우고 나면서 사람들 막 죽이고 짓밟고 하는데 그게 아니고 우리는 십자가의 길은 뭡니까? 내가 짓밟히고 내가 죽어주는 겁니다. 우리가 가야 될 길은 십자가의 길이지 십자군의 길이 아니다.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겠고 아우스티누스 이 책을 보면서 배울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점은 성경을 너무 많이 알아요. 참 기가 막힙니다. 
31:47
제가 박사 논문을 쓸 때 저는 박사 논문에 셀링이라고 하는 독일 철학자를 독일 철학자의 인제 후반기 철학을 상대로 썼는데 그 사람의 책을 쭉 읽으면서 제가 놀랜 게 야 이 인간 성경을 나보다 많이 아네 나도 평생 성경을 구부해갖고 저 딴에 상당히 교만한 이런 자부심도 있는데, 어이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대요 에이 하고 찾아온 정말 놀랬어. 이건 그래서 내가 몰랐던 걸 어디서 알아냈지 그런 게 너무 많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독일 철학자입니다. 이 사람 독일 관념론 철학자인데 성경을 너무 많이 알아요. 재미있는 게 해결하고 동시에 사람인데 헤겔로 성경 시험 탈락했습니다. 재심을 쳤는지 모르겠는데 이 친구는 성경 시험 1등 했어요. 제가 감탄했는데 아우구스트로 딱 그렇습니다. 내용을 너무 많이 알아요. 물론 뭐 아까 보았던 이사야처럼 엉터리로 잘못 번역된 구조도 있으지만 그건 아우슈트레누스 자기 체험은 아니고 번역한 사람의 잘못인데 성경을 너무 많이 알고 그다음에 또 하나가 이 세상의 학문과 역사 종교 너무 많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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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따라갈 사람이 없어요. 더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것을 구슬 서말로 내버려두지 않고 꿰었습니다. 그러니까 보배지요 보배 구슬 서말을 하나님 말씀에 성경적 세계관으로 다 포괄해 가지고 설명해 내고 변명도 하고 비판도 하고 논박도 하고 그럼 성적 위로도 주고 이런 작업을 한꺼번에 다 해내는데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저는 늘 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은 똑똑한 건 좋은 겁니다. 요즘 사람 공부를 잘해야 되고 많이 공부하는 건 좋은 겁니다. 근데 구설 서말로 놔두면 소용없습니다. 꿰야 됩니다. 그래서 큐티만 매일 하지 말고 성경 공부도 해야 되고 신학책 좀 읽어야 되고 엮어야 됩니다. 연결해서 일관성 있게 체계를 갖추고 그래서 성경의 다른 구조를 볼 때도 그 체계에 맞게 바로 이해를 하지요 안 그러면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됩니다. 뭐 그런 면에서는 우리가 참 배울 게 많고 물론 뭐 우리가 이런 아우스틴 형님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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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우리가 흉내도 못 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죠 따라갈 땐 따라가야죠 그런 의미에서 이 아우스티누스의 어쨌든 신의 도성 또는 신국론하는 책은 교회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변증서다 보시면 좋겠고 안설무스하고 토마스 학회에서 건너가겠습니다. 그냥 제일 이번에 루터칼병도 건너갑니다. 왜냐하면, 루터칼병 시대는 변증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변증 이슈가 되던 시대가 아니에요. 변증은 군대 와서 변증 이슈가 되었고 그러고 난 다음에 이제 어 현대에 와서 우리 시대의 이슈가 되는데 파스칼도 건너갑니다. 제가 파스칼 평전을 쓰게 했는데 혹시 뭐 궁금하신 분들은 제가 파스칼 평전 책에 설명을 잘 해놨기 때문에 나중에 보시면 되겠고 파스칼을 건너뛰는 이유는 파스칼이 변증을 잘 하긴 했는데 파스칼도 근대 변증이 중요했던 군대보다는 약간 앞에 살던 사람입니다. 1623년에 파스칼이 태어났어요. 왜 그래 제가 잘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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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써서 그렇지만 작년이 파스칼 탄생 400주년입니다. 아무도 모르고 지나가요 저는 인간이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가 파스칼 혜택을 얼마나 많아 컴퓨터도 파스칼 시작했죠. 일기예보도 파스칼 확률론 교통 시내버스 파스칼이 시작했죠. 손목시계 파스칼 시작 안 한 게 없어져도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혜택 받아놓고 400주년인데 입 싹 다 지나가 버렸어 말이 안 됩니다. 인간이 그렇게 예 몰라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파스칼 편견을 사서 한번 읽으시기 바랍니다. 1권 읽을 때마다 저한테 만 원씩 돈이 들어옵니다. 파스칼은 지나가고 이 파스칼은 니체가 파스칼을 무지 좋아했어요. 니체가 무신론자 아닙니까 니가 볼 때 파스칼이 너무 똑똑하니까 막 기독교를 욕을 하는 거예요. 이 좋은 파스칼 뺏어갔다고 그리고 파스칼을 또 자연탄하게 엘리어트 티에스 엘리어트가 파스칼 아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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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볼 때 다 통해요. CS 루이스하고 파스칼하고 티에스 엘리엣하고 단테하고 다 통합 지금 씨에스 루슨 잠깐 볼 텐데 씨에스 루이슨은 변증학을 한 사람이 아니고 그냥 변증을 한 사람입니다. 변증학 책을 쓰지 않고 책으로 변증을 했어요. 이 사람이 한 변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나니아 연대기인데 CS 루이스는 중세 영문학 교수입니다. 전공이 영문학인데 중세영문학이에요. 근데 중세영문학은 뭐냐 내용이 신화와 전설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전공이 신화가 된 거지요 그리고 같은 전공을 가진 사람이 누구냐 하니까 자기하고 같이 옥스퍼드대학 교수로 있어 톨킨입니다. 톨킨하고 루이스가 둘이가 인제 아주 친구고 원래 루이스가 무실론에 빠졌다가 이 루이스를 다시 기독교로 끌고 들어온 사람이 톨킨입니다. 톨킨이 루이스가 교회를 다시 나오고 난 다음에 하나는 좋아하고 하나 싫어했어요. 좋아한 게 뭐냐 다시 주님 앞으로 돌아왔더니, 좋아했고 싫어한 건 뭐겠습니까? 톨킨은 카톨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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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성당에 안 나오고 선거회로 가버렸어요. 그래 또 실망하고 어쨌든 폴킨 덕분에 루이스가 다시 기독교인이 되었는데 2사람이 절친이다. 보니까 또 2사람이 이제 신화의 힘을 알다보니까 2사람의 의기투합해 가지고 약속을 했습니다. 야 우리가 우리 신화를 한번 써보자 그래서 인제 톨킨이 먼저 썼는데 반지의 제왕입니다. 지금 아마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죠. 그게 반지의 제왕 그러고 난 다음에 시애슬리스는 한참 뒤에 몇십 년 지나고 났을 거야. 아마 나중에 겨우 책을 쓴 게 이제 나니아 연대기인데 나니아 연대기는 반지의 제왕만큼 많이 안 팔렸습니다. 이유가 뭘까? 보니까 반지의 제왕은 둘 다 의도한 게 뭐냐 하면 신화적인 용어 속에 기독교 복음을 담자 그랬는데 반지의 제왕이 기독교 복음은 안 담겨 있습니다. 그냥 선의 악을 눌러 이긴다는 주제만 담겨 있어요. 거기는 그리고 기독교적인 주제가 아니고 사실은 보편적인 주제죠 그렇기 때문에 많이 팔립니다. 근데 CS 출신 나니아 연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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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복음을 담았어요. 거기는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타락 마귀 예수 그리스도의 이 십자가와 부활 단원 애슬란이 죽었다가 살아나고 살아난 다음에 그 힘으로 다시 이 자연을 살리고 하는 그런 과정이 다 나오는데 기독교 복음을 굉장히 많이 담았습니다. 근데 모든 복음을 신화적인 용어에다 다 넣어놨어요. 그러니까 신화만 알고 있던 사람들이 읽으면 자기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쫙 읽는데 자기도 모르게 기독교 복음에 싹 물이 드는 거죠. 근데 단테가 원래 그걸 했는데 CS 루이스가 그대로 단테 신곡이 했던 걸 그대로 뺏겨서 잘했는데 이 루이스를 보면서 인제 인간이 신화라고 하는 게 단순히 그냥 옛날 이야기가 아니고 이 속에 인간의 모든 창의력과 세계관이 다 담겨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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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장르의 힘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가 신화를 직접 한번 써 보았고 그것이 씨에스 리스트가 워낙 재능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두어 가지고 지금도 미국에서는 아이들에게 초등학생 아이들은 무조건 익힙니다. 교회 나가라 안되면 관계없어요. 너무너무 재미있으니까 애들도 훅 빠져 있습니다. 이제 제가 우리 지금 미국 사람 한국 와서 살고 있는 데이드 린턴이라고 얼마 전에 TV 나왔는데 보셨습니까? 그 독립운동가 후손이 돼 가지고 지금 열심히 티비에도 나오는데 이 친구는 저희 귀에 출석을 해요. 미국 애인데 한국말도 좀 잘하고 그러는데 이 친구가 인제 NANIA 엔데이하고 저하고 이야기를 좀 나눠보면 자기가 NANDA 여러 번 읽었는데 나이 때마다 깨닫는 게 다르대요 어릴 때 읽은 거 하고 좀 더 나이 들으니까 전혀 못 받은 게 보이고 뭘 반복해서 읽은 데도 그런 일이 있겠죠. 계속 깨닫는데 정말 하나님이 너무나 귀하게 쓰신 인간이고 책이다. 그런 생각을 들었는데 시에스루이스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2가지를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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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세계 안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를 주신 게 제일 큰 선물인데 안 믿는 사람에게 주신 선물 중엔 첫째가 양심이라고 그랬고 이 양심이 CS 그리스가 순전한 기독교 단순한 기독교 그 책에서 하나님을 입증하는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양심이 있기 때문에 쭉 설명해 내면 성경 모르는 사람도 하나님이 있는 것 같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 준 거지요 두 번째가 신화를 주신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루이스는 신화를 좋게 봅니다. 저도 좋게 봅니다. 아까 말씀드렸죠 시도는 좋았다. 결과가 안 좋았지 그 시도 좋았던 그걸 잘 활용하면 신화를 좋아하는 본성을 이용해 가지고 안에 복음의 내용을 심어줄 수도 있다. 인제 그런 마 입장이지요 어쨌든 멋있게 했고 제가 단테 얘기도 썼네요. 예 그 정도하고, 이제 우리 8분 남았는데 개혁 인식론만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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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개혁인식론 이거는 원래 1학기 수업을 해야 되는 내용인데 플랜팅가라고 하는 정말 기독교의 천재 하나가 천재라기보다는 그냥 수재라고 해야 됩니까? 이 사람이 어 일단 출발점이 뭐냐 출발점은 포스트 모더니즘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큰 도움을 줬는데 옛날에 근대에는 이성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성에 굴복하지 않는 모든 것은 배제를 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쫓겨나죠. 왜 신앙은 이성하고 반대니까 정의 권위 밑에 굴복하는 것만 모았으니까 기록은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포스트모던 시대가 되고 나니까 안 믿는 불신자들이 자기들이 절대 진리라고 생각했던 철학을 분석을 해 보니까 철학이 든든한 토대 위에 지어진 든든한 집인 줄 알았더니, 그 집 밑으로 가보고 하니까 밑에 토대는 형편없이 허약하드라는 걸 발견을 했습니다. 
41:13
뭐냐니까 철학의 철저한 논리적인 틀이 밑에 있는 줄 알았더니, 밑에 가보니까 밑에는 결국 논리가 아니고 이야기 담론이 깔려있더라 담론이 뭐냐 하면 담론은 아무 이유 없으니까 믿는 게 담론입니다. 우리에게 담론이 뭐냐 단군 신화가 담론이고 어릴 때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 이야기가 담론입니다. 근데 우리 그냥 믿는 거예요. 그냥 받아들이는 거예요.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성경이 담론입니다. 그런데 이 철학자들이 볼 때 자기들은 철학은 엄밀하게 든든한 초대위인 줄 알았더니, 포스모던 시대에 와서 보니까 철학도 밑에 남론이 있더라 이야기하는데 무슨 말이냐 하니까 철학도 알고 보니 결국은 신앙적 판단을 밑에 깔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기들이 기독교인을 공격했는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 위에 자기 집을 지었고 자기들 알고 보니까 어 신은 없어 하는 믿음 위에다 세웠다는 거예요. 신이 없다는 증명이 되느냐 안 됩니다. 그 자기들이 담론입니다. 그냥 그걸 인정하면서 상황이 확 바뀐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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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제 플랜틴 같은 기독교 철학이죠. 어 그럼 니네는 같은 입장이네 너희들은 안 믿는 종교 우리는 믿는 종교 같은 신앙의 차원입니다. 그 대신에 거기서 출발을 했고 그다음에 인제 그러면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이런 신앙적인 요소를 절대적인 엄밀한 논쟁의 방법이 아니고 그야말로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담론을 받아들일 그런 방식으로 평이하게 전개해가지고 합리적이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냅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를테면은 인제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믿냐 우리 전도할 때 그런 표현 중에 안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보여줘봐 내 믿을게 그래 우리 교회에서 어떻게 가르칩니까 너 마음이 있니 없니 마음 보여줘 봐 믿을게 너 마음 없네, 그렇게 이야기하죠. 근데 딱 고걸 플랜팅가가 그대로 인정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한 이야기를 어떻게 주워 들었는지 플랜팅가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어떻게 입증하냐?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입증을 합니다. 철학에서 디아드마인드라 그래서 타자의 마음인데 남의 마음이 있는 줄 우리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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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마음인 줄 알죠 그리고 제가 생각도 하고 말도 하고 그런데 우리 안 선생님 속에 마음이 있나 너무 모릅니다. 저는 그런데 대화도 해보고 행동하는 걸 쭉 보고 어디 그러니까 아야 말도 하고 나하고 똑같구나 외적인 행동을 보면서 유추를 합니다. 이분도 마음이 있나 보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이 계시냐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히 운행되는 과정을 보고 법칙을 보고 인간의 삶은 양심을 갖고 도덕적으로 살려고 애쓰는 이런 모습을 보고 다양한 걸 쫙 보면서 아 신이란 분이 계시는 것 같다 그런 추론 추론할 때 남의 마음이 있다. 없다. 추론하고 똑같은 원리로 하나님 계시다가 추론할 때 그걸 얼마든지 타당하다 남의 마음대로 증명 못 하지만 우리 다 믿지 않냐 같은 차원으로 하나님 계시다면 우리가 얼마든지 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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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출발하고 그다음에 이제 안 믿는 사람들이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게 뭐냐 하니까 인제 그 사람들이 자기들이 포스트 모더리즘에 들어오기 전에 자기들이 큰 오류라고 볼 수 있죠. 무엇이든지 자명하거나 아니면 자명한 진리 위에 쌓인 그런 명제만 근거로 해서 믿어야 진짜지 자명하지 않고 또는 자명한 데서 나온 그런 추출된 명제가 아닌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주장을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우리 플랜팅과의 답변은 너무 간단해요. 뭐냐 자명하거나 자명한 진리에서 나온 명제만 수용해야 된다고 하는 그 문장은 전혀 자명하지 않다 한마디로 끝내버립니다. 아미 사람이 벌써 오 맞네, 그러니까 이제 상대방이 가지고 허점을 그대로 확 찔러버리는 거죠. 맞는 거예요. 왜 그냥 손발 다 들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이제 기독교 철학자들이 역공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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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공한 게 뭐냐 하니까 아까 말했던 성령의 역사도 아까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기독교 신앙이 합리적이냐 아니냐 그건 둘째, 치고 봐라 내 공부 좀 했다. 공부했고 굉장히 뭡니까?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사회에 공헌해 가면서 잘 살아갑니다. 그런 합리적인 내가 지금 하나님이 있다고 믿고 예수를 믿는데 이게 불합리하겠냐 나 같은 사람이 지금 확 깔렸다 세상에 그래 그런 방식으로 접근을 합니다. 그러니까 아니라고 말하기 참 어려운 거예요. 분명히 배울 만큼 배우고 공부한 만큼 하고 사회적으로 굉장히 지도층이고 책임 있게 잘 살았고 굉장히 사랑도 자비도 많이 베풀고 이런 사람이 하나님 있다고 믿으니까 아니라고 함부로 반박을 못하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기독교 철학자들이 불신자들 공격을 할 때 재판 용어도 사용합니다. 
45:52
자 여러분들이 지금 우리보고 기독교는 불합리하다 하다고 주장을 하시는데 우리가 재판을 하면은 피고인 내가 어 나는 합리적입니다. 하고 내가 입증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누가 입증해야 됩니까? 고발하는 사람이 입증해야 되잖아요. 고발은 당신이 그럼 기독교 왜 불러야 불합리한지 이야기 해보세요. 말 못합니다. 불합리하고 비난을 하냐? 그것도 게임 끝 이게 이제 재판을 할 때 지금까지 기독교는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가 지금 내가 고소를 당했습니다. 내가 무지하다고 열심히 막 자료 찾고 증명을 하는데 원래 형사협안 그러면 안 되거든요. 나를 고소한 사람이 내가 죄가 어딘지 알아내야 되는데 우린 그렇게 안 하고 우리가 수세에 몰려 가지고 아우 나 죄 없어요. 막 이런 자료를 가져왔단 말이에요. 잘못된 거라는 내가 죄 있다는 걸 밝히세요. 그러니까 못 밝힙니다. 
46:42
그것도 끝 그러면서 인제 이 플랜팅이나 월터스버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 지금 우리가 불합리하다고 당신들 공격하는데 우리 합리적으로 믿는다 근데 우리가 볼 때 당신들이 기독교를 안 믿는데 우리가 볼 때 당신들이 문제가 많다 우리가 믿는 근거가 뭐냐 우리가 믿는 근거는 하나 우리에게 마음속에 주신 신선 감각이고 이 종교의 시인데 여기가 그걸 하나님을 믿는데 당신들은 그러면 그런 종교의 시대가 있는데, 왜 그럼 하나님 안 믿을까? 생각해 보니까 당신들은 인식 기능의 고장이 지금 나있다. 우리는 그 인식 기능을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받았다. 당신도 고장난 상태이기 때문에 못 믿는 거다 한번 믿어봐. 이래서 던진 거죠. 불시자들이 어이가 없는 거죠. 논리적으로 완전히 자기 완패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이제 크리찬이면서 철학하는 게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근데 하나 참 재미있는 사건이 뭐냐 하니까 엔토니 플루라고 불신세계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신론의 대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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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토니 플루라는 사람이 죽기 10년 전에 유신론으로 개종을 했어요. 글도 썼습니다. 무신론자들이 전 세계 무신론자들이 멘붕에 빠졌습니다. 자기 대장이 항복해버린 거예요. 물론 엔토니 플루라는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한 건 아닙니다. 자기가 글을 쓰기를 자기가 기독교 철학자들하고 뭐 플랜팅가하고 월터스톱 이야기 하는 거죠. 엘스톤이라고 다른 기독자 많은데 사람들하고 수십 년을 논쟁해 본 결과 무신론이 틀린 것 같애 시는 아마도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있다고 믿기를 했다. 그러고 글 쓰고 10년 뒤에 죽었습니다. 완전히 이제 뭐 무신론계는 맹목에 빠졌고 지금도 리더가 없어진 상황이 돼버린 거죠. 저는 이제 그분은 글을 읽으면서 기독교 철학자들과 오랜 연정해 본 결과 이렇다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볼 때는 그분이 논리적으로 설득됐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분이 아마 기독교 철학자들의 인품에 감동하지 않았을까? 저는 그래 봅니다. 제가 플랜팅어를 개인적으로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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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월차 없이 교수하고 10년 가가지고 공부를 했기 때문에 참 훌륭한 분들입니다. 정말 겸손하고 온유하고 정말 성경적으로 인품을 갖추고 살아가는 그런 분이기 때문에 그런 분하고 불신자가 막 논쟁하다 보면 그냥 풍겨 나오는 게 있어요. 포스가 있단 말이에요. 거기에 감동받지 않았을까?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봅니다. 어쨌든 이런 분들의 노력을 덕분에 지금 우리는 뭐 거저 먹는 거지요 지금 적어도 철학 분야에서는 크리스찬들이 막 전혀 눌릴 필요 없고 지금 미국 철학계를 석권하고 있습니다. 리더가 되어 굉장히 활동을 많이 하고 있고 저는 그래서 우리 한국도 가능하면 모든 분야에서 예술 믿는 사람들이 일단 그러면 열심히 공부해야 됩니다. 제가 늘 신학교에서도 학기 말에 마지막 시간에 늘 이야기해 주는 이야기 딱 2단어 열공 딴 거 없습니다. 그것만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시대에도 저는 그렇게 할 수 있지 않겠나 지금 뭐 청년도 없고 아이도 없고 참 암울한 시대인데 우리가 그래도 포기할 수 없잖아요. 출발하려면 거기서 출발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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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7시 됐는데 이 정도로 마무리 일단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제가 우리 교재 드린 대로 우리 시대의 자연과학 인공지능 포스모더니즘 관련해 가지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될 것인가? 하는 그런 문제들을 제가 생각한 대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오늘 장시간 우리 강의해 주신 우리 군 선생님 교수님 감사드리고 우리 권 교수님 기도로 오늘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에게 은혜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믿게 하시고 영생구원의 은혜 가운데 하나밖에 없는 생애를 기쁨 가운데 살도록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호와 함께 만나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복음을 이해하고 어떻게 안 믿는 사람과 나눌 수 있을지 어떻게 우리 다음 세대와 또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을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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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지혜와 무엇보다 하나님 향한 열정을 허락하여 주셔서 우리가 받은 이 복음을 우리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그들도 이것으로 불러 함께 기쁨 누릴 수 있는 제 삶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어려움 가운데 있는 한국 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것을 아는 저희가 먼저 본이 되며 하나님 말씀대로 믿고 살아가는 삶의 본이 될 수 있도록 저를 은혜 가운데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다음엔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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