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우리 권 선생님 잠시 소개해 드리면, 전공을 서울대학에서 철학과 하셨고 그다음에 이제 MDM 과정은 고신 대원에서 하셨죠. 그 후에 주로 철학 쪽으로 해 가지고 예일대학에서 STM 그다음에 PST 과정을 하시고, 또 한국 교회의 목회 사역도 오랫동안 하시고 그래서 신앙적인 신학적인 부분과 또 목회학적인 어떤 부분을 겸비하신 그런 분입니다. 제가 이번에 이거 준비하면서 제가 뭐 책도 좀 보고 아 책도 소개 좀 할까요? 예 감사합니다. 최근에 3권을 샀습니다. 이 강의하기 전에 읽어볼라고 3권을 샀는데 다행히 딱 3권 샀는데 방금 요 책은 내가 안 샀는데 방금 저한테 선물로 주셔 가지고 딱 4권을 맞았습니다.
01:05
한국에 최근에 오셔 가지고 아마 오시면서 왔다 갔다 하시면서 제 책이 다 비슷비슷한 연대 뭐 이렇게 제가 이거 보면서는 아 이거 변제가 끝나고 나서 다른 강의 좀 부탁드렸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질거리에 담은 법에 그다음에 아마 이거는 인제 변하는 세상 영원한 복음은 지금 우리 기독교 변정에 대한 다음 주에 아마추어 하는 내용으로 그렇게 돼 있고 그다음 또 제가 좋아하는 제목은 번영복음의 속임수 그래서 내가 강의도 듣고 뭐 여러 가지 그런 거를 유튜브도 보고 책도 보고 하면서 당신이 신앙 생활하는 자세가 아니면은 신앙 신앙 생활하는 관점이 어떤 관점이냐고 물으면 야 내가 구석영 교수하고 나하고 너무 비슷하다 이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책 읽으면서 알겠습니다.
02:03
그래서 지금은 이제 한국의 작년 말에 연말에 서울의 일원동교회 담임으로 오셔가지고, 지금 사격하고 계시고 제가 그 사이에 보니까 교회 안에서도 이런 유튜브 제작해서 인터넷 많이 올라와 있고 그래서 아마 일원동교회나 우리 권 교수님 검색하시면 아마 좋은 강의를 많이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멀리서 또 주말에 내일 또 휴일인데 또 이렇게 시간 많이 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우리 시작하기 위해서 우리 시작하는 마음으로 박수로 우리 거기서 우리의 관심사는 항상 복음이죠. 예수 그리스대의 복음 그리스대 십자가와 부활을 우리가 어떻게 믿고 이해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것인가? 이게 인제 우리의 관심사인데 제가 우리 부탁을 받고 2주 동안 이 2가지를 준비를 했습니다.
02:56
하나는 인제 오늘 복음을 어떻게 설명할까 했는데 사실은 설명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이해를 해야 되기 때문에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까 그런 부분을 좀 다루려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을 불신자나 아니면 구도자 관심 가진 사람들 그들과 효과적으로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방법은 사실 우리 교회 내에서 제기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교회 내에서도 많은 분들의 신앙적 질문을 제기를 하고 특히 중고등학교 때 아주 머리가 이성적이고 냉철한 그런 시기에 질문이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줄 것인가? 합리적 설명이 요구될 그런 질문들에 대해 답하라는 걸 오늘 좀 생각해 보려고 그러고요. 다음 주에는 우리 시대가 가지고 있는 좀 특성에 맞추어 가지고 우리 시대는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왔던 세월에 비해서 옛날에는 생각도 못했던 별일이 일어나고 있는 그런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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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기후 문제도 그렇지만 인공지능이 특별히 좀 별난 것들이고 자연과학도 눈부시게 발전을 했고 이런 여러 가지 변화를 볼 때 거기에 대한 성경적 답변이 필요한데 사실은 거의 교회가 준비가 되어 있질 않습니다. 제 나름대로 시도해 본 그런 답변을 여러분들하고 함께 다음 주에 나눠보려고 합니다. 요구는 똑같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또는 우리 믿음을 가진 사람들 내부에서도 합리적인 그런 요구가 나오는데 요구는 똑같은데, 그 요구를 답해 주어야 하는 우리의 상황 자체는 달라집니다. 그래서 그 상황에 맞는 답변을 주는 방법을 연구해 보자 뭐 그런 말씀이지요 제가 이 파일로 좀 드려서 프린트를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일단 페이지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면서 하겠습니다. 건너뛰기 건너뛰고 제가 지금 여기 준비한 내용은 아 제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4년 정도 가르치면서 변증학 과목을 굉장히 여러 번 수업을 했습니다.
04:50
그리고 오늘 준비한 자료는 제가 수업 1학기 수업했던 내용의 약 반 정도 반 정도를 압축을 했고 그리고 뭐 그 내용 가운데도 다 다루지는 못할 텐데 어 제가 그 수업하고 난 이후에 출판사에서 의뢰가 와서 변정학 교과서를 지금 사실은 작업을 시작만 하고 진행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 뭐 파스칼 책도 그렇지만 다른 글 쓸 내용들이 좀 많아 가지고 진도가 안 나가고 있는데, 일단 제가 가장 최근까지 업데이트된 자료를 지금 가지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글로 푼 거도 있고 아직 그냥 간단간당 요약된 것들 되고 하니까 불편하시더라도 그렇게 알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2페이지에 건너가면은 다루는 주제 이제 결국 복음을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 그랬는데 복음전달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늘 똑같습니다. 말씀 선포입니다.
05:42
고려조사 1장 21자 인용해 놓은 대로 전도에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하나님이 기쁘게 구원하시는데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면 여기 전도라고 번역된 말은 말씀 선포입니다. 보통 헬라가 들어보셨는데 캐리그마란 말을 많이 쓰는데 말씀이 선포되는 걸 말하는데 그리스도의 부활도 선포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복음을 선포한다고 그래서 사드바오 류에릭이 와 가지고 자기가 익숙한 헬라오로 선포해 봐요. 우리는 못 알아들었습니다. 그걸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가 한국말로 좀 번역해 주세요. 부탁을 해야 되거든요. 그럼 결국 언어를 히브리어 헬라를 번역하는 문제부터 시작해 가지고 번역할려고 하면 그러면 십자가를 어떻게 번역하지 뭐 헬라모르 스텔스타우리온이라고 있는데, 그 말을 그러면 한국말로 어떻게 번역해야 되지 아 십자 모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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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로 하자 이런 방식으로 해서 문화적인 요소가 개입이 되게 되고 언어와 문화가 개입이 되는데 복음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이 소통 과정 이 소통 부분을 다루는 것이 변증학이라 생각이 됩니다. 변증학이란 용어 자체에 뭐 크게 비중을 두지 마시고 어떻게 복음을 내가 바로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것인가? 이게 인제 초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 그 내용상은 조지신학하고 통하겠지요. 조직신학은 신학 전체를 골고루 정리한 신학이니까. 전두학 선교학하고 통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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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통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비교종교학 문화인류학 그리고 시대에 따른 변증을 한다고 그럴 때는 자연과학이나 기술이나 사상 이런 것들도 다 포함이 되어서 나중에 이제 세계관 문제를 언급하겠습니다마는 포괄적인 영역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것이 변증각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변증학의 정의는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말로 변증학 그런 용어를 아폴로제틱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헬로 아폴로기아라는 말에서 나온 말인데 뒤에 가서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루겠습니다. 그리고 동사형으로 아폴로 게오마이라는 동사들을 썼는데 우리말로는 성경체에서 거의 변명하다는 말로 번역을 해 놓았고 기독교 복음을 옹호하고 변명하고 소개하는 일이 변정학이다. 생각하시면 되겠고 그리고 이제 제가 길게 썼습니다마는 간단히 말씀드리면, 변증학이라는 용어는 저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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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변증학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에 변증법이라는 용어가 먼저 생겼습니다. 변증법은 철학에서 사용되고 일반 사유에서 사용하는 단어인데 변증법은 요걸 하면 다이얼렉틱 메시지가 됩니다. 그런데 변증학은 아폴로 제틱스하고 완전히 다른 영역입니다. 우리말은 똑같아요. 변증변증 그래서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는 변증학이라는 용어를 만드신 분이 이런 면을 미리 고려 못한 게 좀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혼란이 초래되기 때문에 그리고 2페이지 아랫부분에 가면은 아폴로기아는 사회 또는 학문에서 쓰던 용어다 말하자면, 변명입니다. 법정에서 피고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는 것을 아폴로 기아라 그렇게 말하는데 성경에도 여러 번 등장합니다. 로마법이 로마 시민권자인 피고에게 보장했던 합법적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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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이 그것을 잘 사용했다는 것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 다음 페이지 넘어가 보시면은 바울의 경우에는 일반 법이 허용하는 사회의 아폴로기아를 성경이 말하는 아폴로기아로 다시 말하면 복음을 전하는 그런 방식으로 활용한 경우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죄수가 되었는데 내가 변호할 기회도 안 주고 무조건 판단되는 옳지 않다 그래서 변호할 기회를 달라 그래놓고 자기를 변호하는 게 아니고 복음을 변호해버립니다. 그렇게 활용하는 아주 멋진 케이스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우리가 변증학을 할 때 잊을 수 없는 인물이 불신자지만 소크라테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 아마 이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게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건데 아마 많이들 읽어보셨을 겁니다. 그 소크라테스는 불신자긴 한데 우리 예수민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무시할 수 없 차라리 존경심이 생기는 참 훌륭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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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소크라테스가 거짓 신을 도입하고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이 모함을 받고 재판을 받았는데 배심원 판결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당합니다. 그때 그 재판이 이어지는 그때 자기가 이제 소크라테스 사실이 변명한 내용을 제자 플라톤이 대화편으로 남긴 게 있는데, 그 대화편을 읽어보면은 소크라테스라고 하는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가 라고 나와있고 우리가 내가 어떤 사실을 옳다고 믿을 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가 하는 데 있어서 아주 참 좋은 보기가 되는 그런 변명이라 생각이 됩니다. 사도바울의 한 변명도 사실은 소크라테스가 한 변명과 잘 통합니다. 4617장에 나중에 우리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마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불신자지만 기본 개념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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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변명이고 변증이고 당신들이 나를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옳습니다. 그래서 내가 내 논리로 당신들에게 내가 옳다는 걸 지금 즉명해 보이겠습니다. 해서 인제 하는 설명이 변증이 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변증도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적인 용어만 가지고 주고받는 게 아니고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들이 알고있는 개념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 그걸 이용해서 설명을 해서 사람들이 어 그러면 납득이 되네 말되네, 그렇게 이해를 시키는 그 작업이 우리 변증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플로제틱스란 말 자체에 약간 이 부정적 뉘앙스가 있습니다. 뭐냐 하니까 변명 우리가 뭔가 고발을 당하고 난 다음에 나를 변명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어있는데, 사실은 맞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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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기독교가 이 변정각을 시작하게 된 출발점이 먼저 공격을 받고 해명을 하는 과정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변명이라는 그런 의미가 다른 게 저는 맞다고 생각이 됩니다. 다만 우리는 그 변명을 해야 되는 이유가 우리가 잘못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 오해가 생겨서 모략 때문에 그런 잘못된 평가가 나왔기 때문에 우리를 변명하면서 당신들이 우리를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래 설명하는 그런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명하는 것이고. 근데 우리가 구차하게 뭐 변명할 필요는 없죠 왜 그 사람들을 우리를 모함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진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당당하게 시원하게 또 강력하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방법은 언제나 겸손과 온유라 해야 됩니다.
12:26
예수님들 사람이 변증할 때는 항상 겸손하게 뒤에 가면 다시 또 말씀드리지요 그러나 변정학이라고 하는 것은 신학에 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신앙에 있어서 어떤 영역을 어떤 자리를 차지하느냐 신학이라는 분야 안에서도 변정학은 오락가락합니다. 아예 없기도 하고 아니면 신학 전체를 포괄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극과 극이지요 그리고 신학 내에서도 변정학은 실체가 없다.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니면 신학 전체가 변정학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고 재미있는 것은 우리 한국의 신학교는 변증학에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4년간 변정학 가르친 것 이외에는 한국 신학교에서 변정을 가르치는 예가 없습니다. 오래전엔 있었습니다. 외국 선교사가 와서 가르칠 때는 변증학을 가르쳤는데 지금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13:19
저는 뭐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마는 가장 큰 것은 우리가 그만큼 복음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안타깝죠 변명하지 않고 입 다물고 가 버립니다. 그냥 참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이 되는데 우리 한국 교회가 지금 사회와 소통을 못하고 있습니다. 일만 터지면 싸움을 하고 각을 지우고 결국 그러다 보니까 복음을 전하는 이 통로가 잘 생기질 않습니다. 교회가 사회에서 욕을 먹고 그런 분위기가 됐는데 저는 이것이 교회가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는 이것이 우리가 변증학을 하지 않는 것과 저는 같은 맥락에 있다고 봅니다. 사회와 소통하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소통해야 전도를 할 텐데 소통하지 전도를 합니다. 그러니까 폭력적 방법이 되죠. 강제로 물론 뭐 전도에 그런 요소 있습니다. 와서 봐라 빌랩이 전두한 것처럼 할 수 있지만 우리가 복음을 전환한다고 해서 기본적으로 사도바울이 전두환국 400년 조금 알지만 봐도 항상 변론합니다.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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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할려고 애를 쓰고 뒤에 가면 다시 언급을 할 텐데 그런 면에서 보면은 우리가 우리 시대의 이 변증학에 대한 무관심은 신학교뿐만 아니고 우리 교회 전체가 가지고 있는 복음에 대한 확신의 결력 또는 사회와 우리 교회 관계 좀 잘못된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해야 됩니까? 그런 관계하도 연결이 안 되나 생각이 됩니다. 4표지로 넘어갔습니다. 벌써 둘째, 단락에 보면 복음에 대한 이해 그런 차원에서 보면은 내용 면이죠. 종교철학 또는 철학 신학과 겹친다 그렇게 볼 수 있는데, 지성적으로 볼 때만 그렇습니다. 변증학은 단순히 지적인 학문이 아니고 복음을 어떻게 소개할 거냐 하기 되면 사실 뜨거운 열정이 늘 있습니다. 변증학 그런데 종교 철학이나 철학 실학은 그야말로 냉철한 학문입니다. 거기서 근본적인 차이는 있지만 내용 면에 있어서는 이 2가지와 겹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불신자에게 전달해야 되니까. 불신자들이 알아듣게 말을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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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를테면, 한국 사람인데 한국말을 못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려고 하면은 내가 그 사람 언어도 배워야 되고 문화도 배워야 됩니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가 지금 아 이 전달을 해야 되는데 그 사람들의 언어와 생각 틀에 맞추어야 되기 때문에 지성적이고 논리적인 어떤 노력을 동반하는 거지요 근데 그런 노력이 사실 우리 자신에게도 필요한 이유가 나도 그 사람하고 똑같이 안 믿는 사람도 똑같이 합리적인 사고 이성적 사고를 합니다. 우리도 뭐 그러므로, 그러나 접속사 쓰지요 논리적인 접속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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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그런 논리적 사고를 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이 설명을 요구할 때 그들에게 잘 설명해 주기 위해서 내가 먼저 내가 믿고 있는 복음을 먼저 이해를 하고 그것을 안 믿는 사람에게 전달해 주기 때문에 내가 먼저 이해하는 그런 노력도 필요하지요 일반적으로 인제 종교를 철학적 관점에서 논리적 그런 관점에서 접근한 것은 종교철학이라 부르는데 뭐 종교 철학은 종교에 관계없이 기독교든 불교든 뭐 힌두교든 모든 종교에 다 적용이 됩니다마는 그걸 기독교적인 영역으로 국한시키면 이제 소위 말하면 철학 신학이 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 말한 신학을 철학적으로 접근한다. 그런 뜻인데 그러면 철학과 신학이 서로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방법론적인 면에 있어서 신학적 접근을 한다. 그런 뜻인데 뭐냐 하니까 우리가 믿고 있는 그 내용을 이를테면, 우리 삼일체를 믿습니다. 삼일체가 뭐지 설명해야 됩니다.
16:44
하나님은 성부성자성령 3위로 계시는데 새 하나님이 아니고 한 하나님입니다. 명제를 좀 만들죠 이게 무슨 말입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까? 해서 그걸 설명하고 풀어내는 그런 작업을 이제 철학 신학에서 하는데 이 철학 신학에서 하는 이런 작업은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논리적 사고에 민감한 청소년들의 궁금증에 답해주는 그런 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3.1절 들었을 때 에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어떻게 321이 되냐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지요 그럴 때 잘 설명을 해서 아 그렇군요. 그럼 내가 하나님 믿는데 특별히 장애물이 없이 또 주님 앞에 나갈 수 있을 텐데 이런 것들이 이제 걸림돌이 되어 가지고 못 나가는 그런 경우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삼일시뿐만 아니고 오늘날 같으면 특별히 자연과학 관련해서 이런 문제들 많이 생기는데 그런 것들을 미리 믿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합리적으로 설명을 해서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들려주는 거죠.
17:44
이를테면, 뭐 고통 문제 세상의 고통이 너무 많고 악이 너무 많고 불공평한 일이 너무 많고 그걸 보니까 신은 없어 그렇게 결론 내린 사람들에게 아 세상에 악이 있지 불공평한 거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셔 하는 논리를 우리가 마음대로 쭉 들려주면 어 그렇네요. 악이 있다고 해서 하느님이 없는 건 아니네요. 그럼 그 사람이 지금까지 가로막았던 장벽화를 또 제거하고 또 진리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는 거니까 그런 작업을 함께 하자는 것이 바로 이 변증학이 지금 추구하는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제 변증과학은 영역 면에서는 사실은 무제한입니다. 모든 영역을 다 포괄합니다. 어느 영역으로 가든지 이해 안 되는 면이 있고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제가 다음 주에 만류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자연과학이나 인공지능이나 포스트 모더니즘 같은 사상도 사실은 다 변정학의 범위 안에 들어옵니다.
18:40
우리가 그 안에서 또 이를테면, 진화론이 과학적으로 틀을 많이 갖추었는데 하나님 창조가 어떻게 되는 거냐 그리고 연결해서 하나님 창조가 옳다는 것을 또 설명할 수 있는 논리들을 만들어내야 되고 하는 그런 작업이 필요한데 딱 결국은 우리 변증학이 감당해야 될 그런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4페이지 밑으로 내려가면 이제 정의 변정하게 정의해서 간단히 좀 더 구체적인 작업은 쫌 더 설명을 더 드리겠습니다마는 변증을 간단히 정의하면 기독교 변호 디펜스 오브 크리셔널티인데 이거 뭐 기독 원래 변증학이 그렇게 시작이 됐습니다. 유스티누스나 또는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이 사람들이 다 먼저 기독교가 공격을 받았고 그 받은 공격에 대해서 답변을 해준 것이 변증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증하게 과제를 2가지로 정리하면 변호와 전도 변호는 당신들이 지금 우리 공격하는데 아 틀렸습니다. 우리 기도 그렇지 않습니다. 변호를 하고 그 다음에 이게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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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를 하는 거지요 소개하는 단계에서 안 갈 거면 사실은 방어도 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 무시해버리면 됩니다. 왜 방어를 합니까? 그 사람들 공격이 틀렸기 때문에 틀렸다는 것을 말을 해주고 그 다음에 진짜 복음은 이겁니다. 하고 소개를 해야 되기 때문에 우리가 사실은 방어도 하는 거지요 그래서 방어하는이라고 전하는 이 2가지가 우리 변증학의 핵심 주제인데 그 2가지를 한번 조금 더 자세히 한번 보겠습니다. 1번이 5페이지 넘어갔습니다. 기독교 변화 변호 또는 정당화 정당화는 옳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뜻인데 다른 말로 하면은 나야 뭐 기독교 보험 언제나 옳지요 남인 사람이 볼 때는 저 기독교 복음 엉터리다 그런 생각이 들 텐데 그 사람들에게도 아니야. 복음은 옳은 것이야 하고 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 작업이 인제 변증학의 출발점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한 사람이 예수를 믿지 이해가 안 될 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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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우리가 공부하는 거 하고 이수 믿는 것이 얼마나 조화가 잘 되는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면 그 사람들도 아 그렇구나 지금까지 오해했구나 깨달을 수 있겠죠. 까 예수 믿는 일이 정신 나간 짓이 아니다. 그걸 안민 사람들에게 설명해 줘야 되고 그런 설명을 할 때는 이제 공통점이 필요한데 그 사람이나 똑같이 논리적 사고를 합니다. 이를테면, 둘 다 한국말을 하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논리적인 사고를 해서 그러나 그러므로, 뭐 이런 논리를 같이 구사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명을 해줄 수가 있는 거지요 합리적 설명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데 합리적이라는 말은 레셔널한 게 아니고 리즈너블하다 그러니까 말 된다. 우리말로 말 된다. 뭐 그런 뜻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이런 작업을 이제 실제로 일선 철학자들 뭐 플랜틴과 같은 철학자들도 많이 하고 현역 목회자들도 실제로 목회자 가운데 주일날 설교하시는 분들도 다 이런 작업을 사실은 나도 모르는 가운데 합니다. 성도들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을 해야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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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작업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데, 거기서 조금 더 인제 정리를 해보자 그런 이야기고 변재각은 한마디로 기독교를 믿을 우리가 믿는 예수를 믿을 만한 충분한 타당성 이유 있다고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거죠. 세상은 우리를 향해서 어떻게 저런 멍청한 걸 믿나 그렇게 말할 때 우린 아 이게 멍청한 게 아니고 당신들의 관점으로 설명을 쭉 해도 이건 너무나 가치가 있고 귀한 겁니다. 하고 소개를 해 주는 뭐 그런 작업이 변정하게 되겠지요. 그러니까 오해를 풀자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소통이 핵심입니다. 공통분모가 있어 가지고 대화가 안 되면 변증 안 됩니다. 나는 홍보를 하고 황홀 못하는 사람하곤 대화 안 됩니다. 변증 아예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예수 믿는 우리와 믿지 않는 그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차지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 두 번째로, 인제 공통분물을 찾다가 우리가 복음을 왜곡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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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조심해야 되는데 공통분물을 찾더라도 그 공통으로 찾아 내려가는 과정에서 복음을 내가 뒤틀지 않도록 복음 그대로 전하도록 애를 써야 되는데 저는 이런 경우에 좋은 보기가 요나 이야기를 사람들이 설명할 때 주일 학교 아이들에게 눈높이에 맞춘다고 큰 물고기 함 잘 못 알아 들으니까 고래해 이렇게 해버립니다. 실제로 영어로는 고래라는 표현을 많이 가르칩니다. 아이들한테 그런데 아이가 조금 자라서 중학교 가서 샘물을 공부하다 보니까 고래는 목이 좁아가지고, 사람은 못 들어간대요 덩치는 큰데 그 애가 이제 고민이 시작됩니다. 괜히 고래라고 하는 바람에 고민이 되는 거예요. 그냥 큰 물고기 그러면 될 텐데 눈높이에 맞춘다고 하다가 결국 복음을 왜곡하는 거지요 단적인 복인데 실제로 우리가 변증할 때 아 저 사람은 요런 개념을 이해하는구나 거기에 맞추려고 하다보면, 복음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공통 부분을 찾는 거 하고 두 번째로는 왜곡되지 않게 하는 것 중요하고 세 번째로, 이제 내가 먼저 복음을 충분하게 이해를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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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참 중요한 부분인데 뒤에 가면 앞으로 계속 뭐 여러 번 말씀드리겠습니다마는 좀 죄송한 표현이긴 한데 오늘날 너무나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을 제대로 이해를 못 합니다. 말씀이 뭘 가르치는지 몰라요. 엉터리 설명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그걸 말씀인 줄 착각하고 엉터리 설명하는 데가 너무 많은데 뭐 그런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런 점에 좀 더 신경을 써야 되지 않나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니까 변정안 기본적으로 제가 메커 썼는데 방어적이고 수세적이고 소극적이고 옹호적인 일단 내가 공격 안 받으면 안 했을 건데 공격하니까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그건 당신 틀렸고 나는 이렇게 옳고 설명하는 그런 작업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나를 옹호하고 방어하는 이 작업에는 적극적 요소도 들어갑니다. 복음을 전환할 적극적인 말고 상대방의 공격을 내가 알았을 때 무조건 맞기만 하는 게 아니고 상대방의 허점을 파고 들어가는 그런 적극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나를 공격하는데 공격할 사람의 논리가 허점이 보이거든요. 그럼 지적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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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날 이렇게 공격하는데 당신 말이 앞뒤가 안 맞소 그러면 어 그 사람 공격이 갑자기 약해지겠지요. 그런 작업을 미국의 기독 철학자들이 많이 했는데 특히 이제 자유 의지 변론 같은 그런 경우 이를테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자유의지변론 이게 뭐냐 하니까 아까 말씀드린 이 세상에 악이 너무 많으므로 신은 없어 이제 그런 주장하는 사람들한테 어 당신들이 요렇게 주장하는데 악인 많은 거 하고 신이 없다는 것은 그러므로, 연결이 안 되는 겁니다. 쭉 풀어주면 그 사람들도 아 그렇네요. 이해를 합니다. 그럼 그 사람들 공격이 사라지는 거예요. 순식간에 그런 이 자유 의지 변론과 함께 또 인제 개혁 인식론이라든가 뒤에 가면 조금 말씀드릴 텐데 그런 논리도 역시 안 믿는 사람들이 너희 기독교인들은 불합리하고 말도 안 되는 걸 믿는 그렇게 공격할 때 기독교 철학자들이 좋은 방어막을 만들어 가지고 당신을 이렇게 공격하는데 논리적 요로케 요로케 허점이 있습니다. 그렇게 공격해버리는 바람에 사실 이 사람들이 싹 사라졌습니다.
25:21
재미있는 표현인지 몰라도 지금 미국은 제가 미국에 막 갔을 그 무렵에 그러기 시작됐는데 한 40년 30년 전이죠. 원래는 미국 철학계에서 크리스찬이 철학하려고 굉장히 조롱을 했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무슨 철학을 하냐? 철학은 객관적인 학문이고 기독교는 전제를 갖고 있는데, 2개 조화 안 된다. 그런 분위기였는데 그런 분위기를 이 플랜팅가하고 또 제 지도 교수님 월터스톱하고 두 분이 아주 체계적인 논리를 잘 만들어 가지고 그 사람들의 논리 허점을 계속 파고 들어갔습니다. 박살나버렸어요. 그 사람들이 불신자들도 플랜틴과 니가 옳다 인정을 하고 지금은요, 미국 철학계를 크리스찬들이 쥐고 흔듭니다. 완전히 평생해버렸어요. 자 그걸 보면 하면서 야 이 변제학적 사업 참 중요하다 학문 가운데 가장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철학에서도 이렇게 크리스찬이 신앙 가지고 장악을 했는데 장악 못할 분야가 어디 있겠나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 봅니다.
26:15
제가 저는 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서 잘 모르지만 모든 분야에서는 가능하지 않겠나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 봅니다. 어쨌든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우리가 인제 밝히는 작업이 필요한 건데 이 점에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주의해야 될 것은 우리가 전투에선 이겼는데 나중으로 전쟁에서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게 뭐냐 우리가 방법론 우리는 말싸움 이기는 게 우리 목표 아닙니다. 말싸움 져도 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그 사람이 영혼을 얻는 거고, 그 사람 믿게 만드는 게 우리가 목표이기 때문에 사실은 우린 전투는 지더라도 전쟁은 이겨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 점을 염두에 둔다고 그러면은 이 겸손과 온유라고 하는 방법론 우리 한시도 잊어버릴 수가 없는 거지요 이게 인제 우리가 방어하는 소극적인 영역이고 그다음 두 번째 허기의 영역은 복음을 전달하는 겁니다. 이 말 그대로 적극적으로 뭐 성경이나 조직신학이나 여러 가지 내용들을 가지고 이제 복음을 전달하는데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과 차이점은 그 사람들은 안 믿는 불신자라고 하는 점이겠죠.
27:15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소개를 해야 되는데 이게 인제 말하자면, 적극적인 영역입니다. 기독교 복음의 내용을 이를테면,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그다음에 예수 구원에 대한 약속 예수 그리스 성육신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 이런 사항들을 쭉 설명해 주는 그런 작업이 변정가 알맹이로 들어가는 거겠지요. 그와 함께 이제 세 번째로, 제가 쓰는 건 2가지라고 그러는데 3이 왜 왔냐 적극적인 내용 복음을 전하는 내용 속에서 오늘날은 이것이 체계를 갖춰야 되기 때문에 기독교 세계를 갖춰야 되기 때문에 기독교 세계관 작업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하는 그런 차원입니다. 제3의 영역이라고 써놓긴 했는데 사실 제3의 영역이 아니고 사실 2개가 늘 같이 갑니다. 복음을 방어하는 일과 적극적으로 변화한 일 2개를 합쳐서 세계관과 관련된 그런 일이라 볼 수 있는데, 이 일은 변증하게 두 작업에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일입니다.
28:09
왜냐하면, 내가 복음을 체계적으로 일관성 있게 모른다면은 뭘 방어해야 될지 뭘 전해줘야 될지 알 수가 없죠 내가 복음의 내용을 앞뒤 일관성 있게 짜임새 있게 이해를 하고 있어야 공격이 들어오면 아 이건 이걸 공격하는 거구나 막고 이건 이렇게 전해야 되겠구나. 또 전하고 그렇게 할 텐데 문제가 뭐냐 하니까 우리가 그런 작업이 너무 안 돼있습니다. 안 돼 있고 내가 돼 있다고 착각을 해요. 그래갖고 우리가 소개해드릴 제 첫 책에 질거리로 잡은 보배란 책이 이제 제가 그걸 시도해 본 책인데 많은 사람들이 겸손 그러면 공자님의 가르침이 머리에 딱 배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로 설교를 해요. 저도 어릴 때 설교 많이 듣습니다. 겸손하면 완전히 공자님이에요. 읽기는 성경본문 읽어놓고 설교는 공자님을 합니다. 전혀 다 다른 이야기인데 용어는 같거든요. 겸손 마찰아 용서 뭐가 용서냐 용서도 똑같이 공자님 가르침을 설교합니다. 덮어놔라 성경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29:09
성경용서 완전히 다릅니다. 근데 나는 공자님만 듣고 그걸로 내가 어릴 때부터 이 뼈가 굵었기 때문에 그걸 성경이라고 착각을 하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세계관 작업이 필요하고 사실은 단편적인 지식 뭐 임기응변 대응 이런 것 가지고는 복원 방어 못 합니다. 우리는 체계가 있는 그런 이 지식을 갖춰야 되고 일관성 있는 그런 작업을 갖춰야 되고 그리고 내가 한 이 말이 누가 들어도 맞네 동의할 수 있는 보편 타당성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런데 교회는 지금 그런 데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에서 점점 관심도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걸 보여주는 중요한 트렌드 하나가 뭔가 하면 우리 대한민국 교회는 한국 교회는 큐티 열풍의 지금도 사로잡혀 있습니다. 웬만한 출판사들은 큐티 체크 받아 먹고 살아요. 예 그거는 2달 3달 만에 원씩 사야 되거든요. 엄청나게 팔립니다. 큐티가 나쁘다는 이야기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30:03
매일매일 말씀을 우선 너무 중요하고 저도 매일 새벽에 인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문제는 뭐냐 하니까 큐티에서 끝납니다. 큐티는 단편적입니다. 체계적일 수가 없어요. 큐티가 제대로 되려면 하나님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서 그야말로 조직적이고 일관성 있고 이런 새 체계를 갖추어야 되는데 그건 없이 큐티만 하니까 말씀의 깊이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제가 그냥 비유적으로 표현하면은 자 미국 막 갔을 때 우리 교회 목사님이 미국에서는 지도 게시를 잘 받아야 된다. 이 지도개시 무슨 말씀 아시겠죠. 그때부터 다 지도 보고 운전하고 살 때입니다. 어디 갈려면 막 목적에도 지도 다 지도책이 있지만 또 따로 그려가지고 가다가 막 에러 실수도 하고 유턴도 하고 막 그렇게 반복을 하는데 지금부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지도 필요 없어요. 지금 저 300미터 우회전 그럼 따라합니다. 좌회전 길 잃어두면 유턴해갖고 하면 되고 이유가 그 차이가 뭡니까?
31:01
지도 가지고 다닐 때는 한 2번 갔다 오라면 확 그냥 지도 없이 갑니다. 그다음에는 근데 지금은요, 10번 갔다 와도 랩이 없으면 못 가요 시키는 대로만 했으니까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은 완전히 없어집니다. 저는 이게 큐티가 네비하고 닮았다. 개인적으로 생각을 하는데 큐티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고 그것만 있는 우리 교회는 영적으로 자랄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어린애로만 계속 살 수밖에 없어요. 좀 나중에 기회 되면 저도 그런 분들 한번 토론하면 좋겠는데 어쨌든 우리에게 필요한 게 세계관입니다. 전체적으로 종합적으로 포기하지 말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속한 영역뿐만 아니고 세계 세상이 어떻게 돌아왔는지 알아야 될 거 아니에요. 진화론이 뭔지 천문학의 빅뱅 이야기하는데 뭔지 좀 알아보고 인공지능이 지금 채취 EPT가 나와 지금 세상이 혼란스러운데 어떻게 되는 건지 좀 알아보고 세계관하고 굉장히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것들입니다. 다 사람들이 교회 갈 때 관심이 없어요.
31:57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지 벌써 30년이 넘었는데 교회가 관심이 없습니다. 그 결과가 뭐겠습니까? 교회 어른들이 뭐라고 합니까? 요새 젊은 애들 다 교회 어디 갔지 교회 젊은이들 없어요. 30년간 무관심한 결과입니다. 30년 전부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는데 관심 안 두니까 30대 이하는 없는 거예요. 교회에서 지금이라도 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빨리 이런 세계관적인 작업 말씀을 이해하되 체계적으로 일관성 있게 이해하는 작업을 해야 된다.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세계관 구축하는 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구축하지 않고 포기해버리면 내 신앙이 자랄 수 있는 기회도 없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예 고 정도 하고 예 이제 변정학 분류 이런 거 다 넘어갑니다. 못 넘어가고 7페이지 저 밑에 쪽에 저하고 페이지 같습니까?
32:47
전제적 유무하고 나옵니까 전제유무 예 고 부분만 잠깐 보시면은 옛날에는 근대 시대 특별히 1819세기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변증학 그러면 대부분 다 비전제적 변증학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가 옳다는 전제를 하지 않고 불신자와 대화를 했습니다. 그래 마침 또 같은 입장에서 왜 당신이 기독교 옳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니까 나도 그러면 옳다는 걸 일단 인정하지 않는 입장에서 내가 기독교를 설명해 보마 쭉 설명을 한 다음에 그 사람이 어 기독교가 옳구나 그렇게 되기를 기대를 한 거지요 그게 이제 근대했던 변정학인데 왜 그렇겠냐니까 근대에는 왕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이라고 하는 왕이 절대 독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 왕 밑에는 굴복을 해야 됩니다. 기독교 복음을 남에게 전할 때도 당신이 우리가 모두 굴복하는 왕 입장에서 볼 때 이건 합리적입니다. 이성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건 타당합니다.
33:44
하고 설명해야 되기 때문에 내가 먼저 옳다고 시작하면 안되고 내가 설명을 쭉 해 가지고 상대방의 이성의 기준을 맞춰볼 때 어 기독교가 말 되는 것 같네요. 이렇게 결론이 나와야 되는 거예요. 그 이제 비전제적 변종학인데 포스트 모던 시대가 시작되면서 그래도 20세기 후반부부터 이제 우리 시대 21세기로 들어오면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세상을 완전히 장악을 했는데 이게 단점도 많지만 1~2개 장점도 있습니다. 그 장점 가운데 하나가 뭔가 하니까 이제는 너나 나나 절대 기준이 없다. 그런 시대가 되니까. 누구나 자기가 믿는 걸 옳다고 말해버릴 수 있습니다. 아무도 시비 안 갑니다. 어 니는 그거 옳다고 믿어라 나는 이게 옳다고 믿는다 옛날에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다 거기에 맞추어 봤는데 지금은 이성이 몰락하고 난 다음에는 그 기준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나는 이거 옳다고 생각하고 너는 그거 옳다고 괜찮습니다. 그러니깐 크리스찬들이 안 믿는 사람에게 복음을 변정할 때도 어 나는 이거 옳다고 믿는다고 말해버리면 됩니다. 난 기독교 진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말을 하면 됩니다.
34:43
왜 이제는 우리를 다스릴 왕이 없어져 버렸어요. 이성 밑에 눈치 볼 필요가 없어진 거지요 그런 장점이 있기 때문에 때문에 전제의 유무 가지고 이제 전제적 변증학 하는 게 프리스퍼지션할 아필로제티스라고 그러는데 기독교는 지리다 하는 걸 내가 전제하고 상대방과 대화를 나눕니다. 상대방도 알고 있습니다. 그걸 그러면서 복음을 변증하기 때문에 우리가 뭐 전혀 꿀릴 것도 없고 눈치 볼 것도 없고 내가 믿는 복음을 그대로 말하면 되는 거죠. 장점은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제 더 큰 과제가 주어집니다. 뭐냐 하니까 이걸 우리 시대에 많이 쓰는 담론이라는 용어로 표현을 하면 옛날에는 소위 말해서 거대담론을 인정했습니다. 거대담론이 뭐냐 절대 기준 1 더하기 1은 2다 내가 봐도 옳고 내가 봐도 옳고 모두가 인정하려는 기준이 옛날엔 딱 있었습니다. 그게 이제 거대 담론이라 부르는 그런 틀인데 오늘날은 거대 담론 없어지고 지역담론만 남았습니다.
35:37
거대 담론을 거부하는 그런 시대가 이제 포스모던 시대인데 지역담론의 특징이 뭐냐 하니까 나만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동의 안 합니다. 근데 모두가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요즘은 이제 중요한 화두가 취존이잖아요. 취존 취향 존중 성적으로도 온갖 일탈들이 다 있지만 어 취향이야 존중해줘 그럼 할 말이 없어요. 우리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내 이 지역 담론을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말할 수 있죠. 아 나는 예수가 구조라고 믿는다 나는 그분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얼마나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과제는 뭐냐 하니까 내가 가진 이 나의 지역 담론이 내 말을 듣는 이 사람의 지역 담론으로 바뀌게 하는 그 작업이 너무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 괜찮네요. 그러면 끝나요? 그걸로 교회 나오는 거예요. 그때부터 근데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나는 내 담론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데, 그 사람이 그걸 동의하냐? 안 하냐? 이 단계가 너무너무 어려워진 겁니다. 이제 나는 내 이야기 지금 자긴 자기 이야기 했거든요.
36:36
객관적 기준도 없어요. 이제는 그러니까 내 이야기를 그 사람에게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하는 그 과정이 어렵고 만약 그 사람이 받아들이면 그 사람과 난 이제 공통된 조그마한 규모의 거대 그다음에 생기는 거지요 너하고 나랑 같은 그리스도를 구조로 믿는구나 그게 이제 확산된 그걸 같이 가진 공유한 그룹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같은 거대 담론을 공유한 공동체가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변증학을 시작하긴 쉬운데 진행은 옛날보다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시작은 좀 어려웠지만 진행해 가는 거는 점점 쉬워지는데 지금 이제 거꾸로 된거죠. 마치 옛날에 불어 배우고 독어 배우고 그 차이점인데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저희들 우리 학교 다닐 때는 독어와 불어가 있는데, 불어는 들어갈 땐 천국 나올 땐 지옥 독일은 들어갈 땐 지옥 나올 때 천국 뭐 그렇죠. 예 불어는 영어하고 비슷해 가지고 배우기 쉬운데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고 독일은 처음부터 뭐 대열돼서 됨대로 하고 외울 것도 많은데 막 어렵죠 근데 한번 탁 틀 잡히고 나오기보다 너무 쉬워지는 거예요.
37:32
마치 변정학도 그런 차이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예 이런 내용들 자 인제 건너가고 조금 건너뛰어서 예 변증학 하려는 이유로 가보겠습니다. 11페이지 변증학이라고 하는 특별한 걸 할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고 또 더 잘하기 위해서 지금 변증학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공부를 하는 건데 우리의 사명은 1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전하는 일이죠. 내가 그 십자가를 더 잘 알고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전하고 이게 우리의 과제인데 우리가 변증을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님이 명령하신 거기 때문에 그러므로, 인해 가서 모든 옛날 번역인데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라 볼 죄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사실은 이 명령의 일부라고 볼 수 있죠.
38:28
그리고 이 명령을 구체적인 한 적용으로 베드로가 우리에게 권면을 하는데 너희 복음을 변증하도록 준비를 해라 베드로에서 3장 15절 이게 인제 변증학의 요절입니다. 너희 마음의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여기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은 우리말 지금 번역이 아니라 자들의 들이 빠졌고 자에게 대답할 것을 상상 준비해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그랬는데 원문은 제가 인제 우리 신학생들을 위해 써놨던 건데 그대로 치우지는 않았습니다. 거룩하게 하고 이 말은 우리 주님이 기도하신 우리가 가르치는 기도와 통하지요 이름이 거룩하게 되시오며 하는 내용과 통하는데 우리가 변증할 내용입니다. 사실 이거는 우리가 변증할 내용이 뭐냐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다 바로 그걸 왜 변증을 해야 됩니다.
39:19
그리고 그리스도가 내 주위기 때문에 나는 다른 주인을 섬기는 당신들하고는 생활하는 게 다르다 우리의 거룩한 삶 그리스도가 내 주위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거룩한 삶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건데 봄을 설명해서 재미있는 것이 뭐냐 하니까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유를 묻습니다. 그렇죠. 그럼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됩니다. 이유를 묻는데 이유를 가 인제 여기 인제 로고 쓰고 또 설비 설명하는 게 아폴로기아입니다. 변증이란 말 그 원어하고 같습니다. 그리고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내가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게 인제 변증이고 우리가 해야 될 일인데 이 본문이 결정적인 오역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뭐냐 하니까 묻는 자에게 그럼 안 되고 묻는 모두에게 입니다. 원어는 현락할 수 있는 분들은 뭐 그리 판티라는 단어를 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마는 모두에게입니다. 그러니까 이 베드로는 지금 이 본문에서 2가지 용어를 용어 2개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40:13
하나는 항상 하나는 모든 자 2가지를 통해서 항상 준비돼 있어야 되고 모두에게 답이 줘야 되고 왜 이렇게 2가지를 항상이니깐 이거 뭐 빠질 시간 없잖아요. 모든 사람이니까. 예외가 없습니다. 이렇게 2가지 예외없는 2가지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복음을 사람들에게 변증하는 일이 우리에게 중요하다 그걸 가르쳐주는 거죠. 언제든 누가 묻든 어떤 질문이든 답을 해줘야 된다. 이걸 인제 사드바울이 복음을 전한다. 그럴 때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말이 됩니까? 때를 어떤지 못 얻든지 무조건 하란 뜻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건 예수전당 구함 저런 사람도 필요하고 저런 사람 저런 식으로 하면 안 되고 비판할 사람도 필요하고 어쨌든 복음은 무슨 방법인지 전하라 이게 바울의 가르침인데요. 마찬가지죠 사람들이 우리에게 질문을 하면 우리는 거기에 대한 답을 주어야 됩니다.
41:12
요것도 뒤에 가면 다시 한번 조금 설명해 드리고 변정학 관련해 가지고 할 말도 많이 있는데, 여기서 이 정도만 넘어갑시다 그다음에 이제 또 우리가 변정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고령도서 10장 5절 자 대학 때부터 이제 우리 공부할 때 늘 모토로 삼았던 구절입니다.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늘이 많은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이게 인제 예수 그리스의 주권을 임하게 하는 건데 내 마음에 그리스도가 주로 와 계시고 내가 살아갈 삶의 여러 영역 속에서 그리스도가 주가 되시면 거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신 거의 하나인 나라인데 이 작업을 공부하고 이론적인 영역에도 적용을 해야 됩니다. 내가 공부할 때 내 분야가 이를테면, 뭐 수학이다. 물리학이다. 아님 화학이다. 내 분야 속에서도 그리스도가 주가 되시게 해야 되고 지난 얼마 전에 우리 고신에서 제가 소관한 고신에서 인제 기후 환경 문제를 세미나를 했습니다.
42:07
우리의 목표가 뭐냐 이 지구를 잘 보호하는 일이 나의 구주 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이 임하게 하는 일과 어떻게 연결되느냐 이 작업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뭐 이웃 사랑 차원에서 할 수 있죠. 재활용 열심히 하고 할 수 있는데, 자원 절약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보다 중요한 건 이웃사랑 차원을 넘어서 내가 이 일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그것 쪽으로 연결이 됩니다. 연결이 필요한데 인제 그런 신학적 작업을 지금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죠 모든 이론을 사로잡아서 높은 곳은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오 그런데 인간의 이론이 하나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으니까 그걸 다 끌어내리고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리스의 주권을 심는 그런 작업이 필요한 그게 바로 하나님 우리에게 명하신 변정학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14페이지로 다시 넘어갑니다.
42:58
이제 간단하게 말씀드렸던 우리 변정학의 2가지 작업을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는데 첫 단계가 소극적 작업 공격해오는 것을 막는 방어하는 작업이죠. 기독교 믿는 행위 사람들이 나를 공격해 올 때 아 이건 말 안 되는 게 아니고 이렇게 이렇게 말이 됩니다. 하고 설명도 하고 그 다음에 내가 교회 다니는 일이 바보짓이 아니다. 뭐 그런 이를테면, 재밌는 한 예가 TS 엘리어트라고 유명한 20세기 유명한 시인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 시인이 원래 기독교인 집에 자랐다가 한때 무신론자가 됐다가 다시 성공의 교인으로 크리스찬이 되었습니다. 근데 이제 무신론자였던 시절을 사귀던 친구 하나가 버지니아 울프라고 하는 유명한 문인이에요. 그런데 이야기하다 보니까 버지니아 울프가 충격을 받은 거예요. 그러나 일기에 버지니아 울프가 뭐라 했어요. 그러니까 탐이 인제 TS 엘리트 앞에 토마스니까 탐이 교회에 다닐 거란다 세상에 이렇게 일기를 쓴 게 있어요.
43:56
제가 볼 때는 야 버지니오프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이렇게 자기하고 무신론자로 서로 막 통하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뉴스 믿고 그냥 교회를 가기 때문에 저 멍청한 인건 어디 있나 부지런물품 충격을 받은 거죠. 그래서 세상에 그렇게 썼는데 저는 그것이 이제 우리 TS 엘리트 같으면 얼마든지 또 설명할 수 있죠. 내가 이러이래 해서 내가 요즘 믿기를 했다. 인제 그런 작업을 우리가 소극적인 차원에서의 변천각의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작업은 말이 소극적이지 사실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작업입니다. 왜냐 기독교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작업이거든요. 누군가 공격을 해 올 때 틀렸습니다. 하고 말하려면 내가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리고 당시 오해한 겁니다. 설명을 할 거니까 그래서 이 기독교 신앙에 더 멀리 더 깊이 들어가서 풍성함을 찾아내는 일이라 그렇게 표현을 하고 있는데, 저는 참 좋다고 봅니다. 맥그레스가 사용하는 표현이 뭐냐 하니까 선생이 되면 더 잘 배울 수 있다.
44:53
티칭 이즈 베스웨어 블러닝 이걸 아마 가르쳐 보신 분들은 다 느낄 겁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보면은 그냥 내가 알려고만 할 때 보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장점이라고 보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뭐 간증 같은 경험을 해본다면 미국에서 공부하고 목회도 하면서 이제 학위 공부할 땐 좀 정신이 없다가 학위를 받고 난 다음 한 10년 어간 정말 너무너무 하나님이 많은 깨달음 주셔가지고, 참 감사 그중에 이제 일부가 나온 게 제 줄거리에서 한번 보배입니다. 근데 그때 인제 매주 설교를 준비하려 제가 깜짝 놀랍니다. 세상에 이런 뜻이었구나 버지니올프의 세상이 아니고 막 그런 경험들을 거의 매주 했습니다. 너무너무 감사한데 나중에 이제 그렇게 했던 이유가 뭘까? 내가 평생을 성경을 공부해 온 사람인데 왜 이게 이제야 보이지 보니까 아마 그전에는 막 논문 쓰고 하다 정신이 없었다가 이제 목회를 좀 여유 있게 하다 보니까 말씀을 준비할 줄은 여유가 생겼던 것 같아요.
45:52
근데 차이가 뭐냐니까 마치 그거하고 똑같습니다. 내가 혼자 밥 해먹으려고 하면 대충 해 먹잖아요. 대충대충 해서 그냥 그릇도 적당히 하고 하는데 제가 한번은 신병원에서 이 신데올에 있을 때 학생하고 교수를 자주 불러서 밥을 먹였는데 우리 교수 1분 선배 교수 1분을 불러 가지고 아침을 대접을 하는데 평소에 제가 아침 그렇게 안 해먹죠 근데 그래서 선배를 불렀으니까 내가 오뮬렛을 한번 1방 먹여야 되겠다. 싶어 가지고 오뮬렛 준비하는데 들어갈 재료 당근을 쓰는데 아이 당근 딱 3미리 두께로 딱 정확하게 평소에는 이제 그런 당근 넣지도 않습니다. 근데 손님을 불렀기 때문에 당근 양파 막 정확하게 그러면 이제 손님은 와 감탄할 우와 이거 뭐 멋있는 오뮬렛이라고 내가 그때 요리하면서 제가 깨달았습니다. 아 이 차이겠다 이거 내가 혼자 먹으려고 했을 때는 대충 하는데 대접할려고 하니까 더 잘해야 됩니다.
46:44
그 내가 말씀 혼자서 은혜받지만 어떻게 하면 이 말씀을 성도들에게 내가 좀 더 쉽게 이해 잘하게 은혜를 전달할 거냐 그러니까 전에 몰랐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경험을 생각하는데 우리가 안 믿는 사람에게 보험을 변정하는 작업이잖아요. 같은 차원이 아닌가 이렇게 봅니다. 내가 보험 알고 있죠. 얼마든지 잘 알고 있는데, 안 믿는 사람 질문을 탁 던지고 나면 어 그게 뭐지 어 내가 저기 복음이 더 잘 몰랐네 생각을 하게 되고 체계적인 연구도 좀 하게 되고 앞뒤 맞는 일관성 있는 그런 작업도 하게 되고 그렇게 우리가 복음을 더 잘 이해하고 안 믿는 사람과 소통하는 가운데 내가 우리 복음을 더 깊이 깨닫고 와 주님 은혜가 더 감사하다 그렇게 나아갈 수 있지 않겠나 그래 생각을 해보는 거죠. 그래서 맥그레스라는 사람이 쓴 표현에 우리 자신의 기동생활 제대로 이해하고 먼저 이해하는 게 필수다 이걸 계속 강조합니다.
47:34
내가 이해 못 하면 내가 전달할 수가 없는 거지요 내가 알아야 소개해 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복음 아닌 것을 복음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보기를 들어놨죠 조금 전에 언급했던 대로 뭐 좀 죄송한 표현이긴 합니다마는 제가 뭐 저 교만한 표현일 수도 있는데, 어 제가 기독교 방송 가끔 저희 저는 티비가 없어서 집에서 못 보고 어디 딴 데 가서 티비 볼 일이 있으면은 기독교 방송을 쭉 보면 하 참 정말 너무너무 안타깝다고 해야 됩니까? 답답해야 됩니까? 분명히 설교인데 말씀이 아닙니다.
48:13
뭐 만담도 있고 성경을 엉터리 푸는 게 너무너무 많고 그 보면서 정말 한국교회 강단 주일마다 선포되는 그 말씀 가운데 정말 성경을 진리의 말씀 그대로 선포하는 설교가 반영될까 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참 답답함을 느꼈는데 제가 이제 질거리에서 한번 보배해서 2가지 여러 가지 보기를 들었는데 특별히 겸손 이라고 하는 건 대부분 목회자들이 설교할 때 겸손 이야기하는 건 공자식 겸손입니다. 남 앞에서 나를 낮추고 예의 바르게 하고 그런 건데 성경은 그거하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이 바로 겸손 딱 1입니다. 내가 죄인이란 걸 깨닫는 겁니다. 그러니깐 유교에서 말하는 겸손은 수평적인 겸손이지만 성경은 수직적인 겸손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인 거 알고 나면 누가 보면 발작에 나오는 바리세인과 세례의 기도 그것처럼 세리가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서 난 죄인입니다. 이게 겸손입니다. 남 앞에서 예의치알 이거 아무 관계없습니다.
49:10
근데 우리는 제가 지금까지 들은 겸손설계는 전부 공자님 설계예요. 예의 바르게 하는 이런 것들인데 물론 예수면 사람이 그러면 성경적 겸손을 가졌다고 해서 남 앞에 건방지냐 그건 아니죠. 내가 하는 죄인인 거 알고 나면은 그 다음에는 자동으로 남 앞에 나를 낮추는 수평적 겸손도 나옵니다. 근데 실제로 유교에서 가르치는 겸손은 위선입니다. 한마디로 마음으로 절대 뭐 겉으로 마음을 그래라 이야기할지 몰라도 다 위선입니다. 제 어머니가 좀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그런 겸손을 잘하세요. 손님 부르면 항상 저희 어머니 음식 많이 하시거든요. 아이고 준비한 게 없어서 죄송합니다. 그게 이제 겸손이에요. 그러면 오신 손님이 정말로 준비한 게 없네요. 그러면 난리 납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아이고 이렇게 많이 차리시고 어머니가 기대하는 걸 그겁니다. 이렇게 많이 차렸던 말을 해주길 빨리 기다리는 거예요. 위선이잖아요. 내가 많이 차린 걸 알고 있는데, 말만 거꾸로 해놓고, 칭찬해 주길 기다리는 거예요.
50:08
큰일을 이루어도 아이 제가 잘 있었는데, 이러면 안 되고 부족합니다. 다 도와주시고 뭐 그리고 그 사람이 니는 한 거 없어 이러면 기분 나빠하잖아요. 아이 그래 니가 해주기를 바라 남이 해주길 바라 이게 유교식 겸손입니다. 성경겸손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전혀 위선하고 관계없어요. 정말 철저하게 하는 앞에 내가 죄인인 걸 알고 내가 죄인이니까. 말 그대로 제 늘 속에는 내 코가 지금 석 자입니다. 남이 잘했는지 모르니 볼 겨를도 없어 내가 지금 너무 더러운 죄인이었어 그러니 남 앞에서도 나를 낮추게 되고 겸손 안 해줄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제가 지금 들은 겸손 설계는 전부 공자식입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인데 베드로덴스 사장 팔찌를 보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그래서 덮어놓는 게 사랑이다.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건 공자적입니다. 실제로 논어에 보면은 그런 표현이 나옵니다. 죄를 덮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51:01
그런데 수평 관계만 아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고 우리는 수직관계를 먼저 합니다. 우리가 하는 용서는 뭡니까? 내가 그래 없는 걸로 해줄게 이거 용서 아닙니다. 우리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누군가 죄를 지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뭡니까? 그 사람 정말 사랑한다고 그러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내가 모른 채 해버리면 그 기회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래 예수님이 마테보호 18장에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내가 형제가 죄지은 줄 알면 일대일로 찾아가라 고민해라 만약 회개하면 니가 형제를 얻은 거다 얻었단 말을 구원했단 말입니다. 멸망해 갈 사람을 구원으로 끌어들였다.
51:47
말 안 들으면 2~3명 데리고 가라 그때까지 엄밀하게 그래도 말 안되면 공개해라 교회 알려라 그냥 예수님도 뭐 소문내는 거 안 좋아하시니까 처음에 개인적으로 가라 나중에 소문나고 안 나보다 더 중요한 거는 그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거기 때문에 교회에 알려라 왜 그 사람 회개시켜야 되니까. 이러면서 보면 우리는 지금 너무나 반성경적으로 행동을 하고 있는 거지요 성경대로 하지 않습니다. 우린 무조건 덮어야 되고 아이구 소문나면 줄임 영광 가린다 뭐 말은 잘하죠. 소문나면 영광 가리는 게 맞습니다. 근데 그러다보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냥 썩어가고 있는데, 덮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막 구더기 긁고 난리가 나죠. 우리 한국 교회 현실이 지금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를 덮어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1분밖에 안 계십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면 하나님 기억도 못하세요.
52:37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자리에 서 가지고 마치 내가 용서하면 끝나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돼버렸죠 그다음에 번영복음은 아까 번영복음의 속임새도 나오는데 이거는 인제 조용기라는 분이 한국 교회를 타락시킨 대표적인 영역인데 성경은 돈에 대해서 단 1번도 좋게 말하지 않습니다. 항상 경고만 합니다. 조심해라 조심해라 하나님 자리 차지할 수 있으니까 우상 만들면 안 된다. 그런데 조용기란 분이 이제 이 맙니까 로버트 쉴러에게서 배워왔고 쉴라하고 친구지간이고 그전에 이제 노만 빈센 필이란 사람에게서 배웠고 노만 빈센트 필은 그전에 이 어니스트 홈즈라고 하는 미국의 마인드 사이언스라 그래 가지고 이 마음의 힘을 믿는 종교가 있었습니다. 20세기 초에 미국에 그 사상을 그대로 도입해 가지고 믿는 대로 된다. 그 믿음은 하나님 있는 믿음이 아니고 내 신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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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 내 신념의 능력 이걸 도입을 했는데 그 도입하면서 하나 이제 포함시킨 중요한 1가지가 하나님이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돈을 하나님의 복으로 좋은 게 표현으로 축복으로 바꿔버린 거예요. 이후로 한국 교회가 급격히 타락합니다. 왜요 안 받는데 돈 많이 생기는 게 축복이니까. 누구나 복 받고 싶어 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제 안 믿는 사람들이 요즘은 교회 다니는 것들이 더 하더라 뭡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돈 돈 기승전돈할 때 우리는 뛰어넘을 수 있는 걸 보여줘야 되는데 교회가 더 앞장서서 그래 버리니까 교회가 세상에 뭐 빛 못 비추죠 우리가 더 시커먼데 우리가 더 썩었는데 어떻게 비추겠습니까? 그런 상황이 돼버렸는데 이것도 역시 저는 성경이 가르치는 올바른 복의 개념을 몰랐기 때문에 물론 이것도 인제 구약과 신약을 섞어버리면 이런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이란 개념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재물을 주십니다.
54:30
재물을 주시고 자녀를 풍성하게 주시고 그야말로 영어로 텐저블한 거 와닿는 걸 주세요. 신약 시대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어떻게 하십니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보고를 주세요. 돈도 안 주시고 이제는 풍성한 잔재도 안 주시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주시는데 구약성경을 신약을 없애버리고 그대로 설교하면은 복 받으라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아브라함도 어마어마한 부자였고 욕도 어마어마한 부자였고 탐나죠. 그게 이제 번영복음의 속임수다를 볼 수 있는데요. 네 요게 인제 우리가 복음을 바로 알아야 정확하게 이해하는 작업이라 볼 수 있고 두 번째로는 성경과 복음을 바로 알아야 변증학도 할 수 있다는 내용인데 지금 우리 15페이지에 가 있습니다. 아 15페이지 16입니까?
55:23
어 이제 페이지가 좀 달라지기 시작하는구나 저하고 예 제가 사이즈가 좀 달라져 가지고 우리 변증 공부하는 시간은 철학 공부하는 시간도 아니고 인문학 공부하는 시간도 아닙니다. 변정학은 핵심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공부시간입니다. 성경공부 성경연구 말씀 연구 이게 포인트인데 자 신대원에서 한 4년 가르쳐보고 난 제 개인적인 경험은 한국 교회의 장래가 암담합니다. 왜요 신학생들 뭐 학교 공부 못할 수 있죠. 그런데 성경을 너무 몰라요. 성경을 너무 몰라 저는 우리 이윤영 목사님 우리 제 친구 하나 와 있는데, 우리 신학교 다닐 때는 사실은 세상 학벌 좀 없는 분들도 우리 수업에 같이 들어오면 있잖아요. 그분들 근데 그분들은요, 성경 박사들입니다. 우리가 뭐 세상 학문은 좀 못하지만 말씀은 공부한다. 성경을 달달 왜요 와 그분도 존경했습니다. 얼마나 성경을 많이 아는지 목기 지금 잘 아시죠.
56:23
근데 지금은 보니까 뭐 세상 학문도 별로 신통치 않은 것 같은데, 성경도 아예 꽝이에요. 몰라 신학 들어오기 요즘 너무 쉽거든요. 줄만 서면 들어오니까 한국계 장래가 걱정이 되지요 지금도 엉망인데 야 저런 사람들이 앞으로 목회가 돼 가지고 다음에 목사 될 텐데 강단에서 뭘 설교할까 궁금한데 참 걱정이 많이 되지요 우리 뭐 고심만 그렇진 않을 겁니다. 대부분 신학교가 다 비슷하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예 변제각을 한마디로 철저하게 성경적으로 레디컬리 비블리컬 해야 됩니다. 철저하게 성경적이어야 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다른 이 불순물은 전혀 섞이지 않은 100% 정년된 순도 높은 보금이어야 한다. 그런 말씀인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럼 겸손 이야기했는데 공자가 들어오고 막 용서도 공자 들어오고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그 말입니다.
57:15
하나님 말씀 가르치는 걸 정확히 알고 그 다음에 적용으로 나가야 되는데 말씀의 순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확신도 커집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사회와 자꾸 등을 지고 이 복음을 전환하는 변증도 안 하고 하는 그 기본적인 저변에는 말씀에 대한 확신의 결여가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그 확신의 결여 중요한 부분이 바로 순도 높은 말씀이 아니고 막 섞였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이해한다면, 아까 제가 QT 말씀을 드렸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말씀을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일관성 있게 아는 겁니다. 오직 성경으로 종교에 5개 솔라 중의 하나가 들어있잖아요. 오직 성경으로 무슨 말입니까? 성경 단편적으로 막 갖다 엎어라 이런 뜻 아닙니다. 성경 앞뒤를 쫙 맞춰 일관성 있게 깨달은 그 성경 성대로입니다. 그게 바로 성경적 성경 이해인데 그러니까 이제 구약성경에서 구약성 돼지고기 못 먹게 해 놨잖아요.
58:14
우리 삼겹살 왜 먹습니까? 신약성경을 갖고 가서 보니까 아 그 말했듯이 그게 아니고 그 시절의 거룩함이구나 아 그럼 돼지고기 먹자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앞뒤가 맞게 풀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이를테면은 신약적으로 얼마 작년에 제가 인제 결혼 기피하고 저출생 문제로 세미나 한 2번 했는데 많은 분들이 저한테 와서 그래요. 발제할 때 교회에서 목사가 성조들에게 MRI 낳으라고 설계할 수 있도록 좀 근거를 만들어 달래요. 성괴가 안 놓여있는데, 어떻게 만들어줍니까 구약에는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애 많이 낳는 것 하나의 복이고 신약 성경 보세요. 애 낳는 복이라고 말 전혀 하지 않습니다. 바로 결혼도 하지 마라 그런 판국에 지금 그러니까 안 됩니다. 성경대로 해야 됩니다. 근데 신약 없이 구약으로 가면은 돈 벌어라 부자 되세요. 얼마든지 할 수 있죠. 신약 가져가면 그런 소리 못합니다. 일관성있는 성경이 이해거든요.
59:09
창세기에 원시복음 창세기 3장 15절에 내관으로 여자원숙에 되게 하고 니 후손도 여자의 후손 원수가 그게 예수 그리실이란 말씀이라면 우리 어떻게 합니까? 그 나올 때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신약을 갖고 가보니까 그리시리아 말씀이구나 이해하는 거지요 그런 식으로 일관성 있어야 되고 저는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이 우리 속담 중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우리 굿을 서말에 수십만 수백 마리 지금 다 가지고 있어요. 연결이 안 됩니다. 그 저 엉터리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말씀을 인용을 하기는 하는데 저 그래서 정말 꿰어야 된다. 이게 너무 중요하다 생각을 합니다. 거기 인용해 놓은 마태복음 말씀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내 눈이 성하면 내 온몸이 밝을 것이고. 내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다. 저는 우리의 주님 말씀하신 이 부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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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우리 오늘 우리에게는 세계관에 적용돼야 되지 않겠나 그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정말 이런 관점들이 필요한데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2가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는 성경의 배경이고 하나는 나의 배경이고 왜냐하면, 성경은 내가 이해야 되는 대상이기도 하고 나의 배경을 알아야 되는 이유는 이해하는 주체가 나기 때문에 내가 어떤 문화에 어떤 영향을 받았나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듣고 배운 게 공자님이면은 성경 이해할 때 영향 미칩니다. 그럼 조심해야 됩니다. 내가 말씀 이해할 때 공자와 안 섞고 하나님 말씀만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몸부림 쳐야 되는 거지요 예 그런 작업을 우리가 다 할 필요가 있고 그런데 성경을 이해할 때 성경은 다양한 장르가 나오기 때문에 어떤 장르냐에 따라서 이해하는 상황이 또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에스더 또는 루티 이건 내러티브입니다. 이야기를 쭉 써 놓은 거예요. 근데 이야긴데 이야기는 특징이 잘잘못을 말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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