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그래서 사랑이 어렵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힘들이 있습니다.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까 힘을 남용하느냐 또는 선용하느냐 그게 인생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힘 어떻게 쓰느냐 이게 되게 중요하다라는 거예요. 어떤 그 고위공직자를 맡고 있던 장로님이 계시는데 막내아들이 입대를 했습니다. 최전방에 배치됐습니다. 되게 철책 근처입니다. 군기가 엄한 그런 데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이제 고위공직자니까 어쩌다가 부대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뭐 사단장하고 이렇게 같이 사진 찍는 게 나오더라는 거예요.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니까 어 아버지가 오셨네 그랬더라는 거예요. 그랬더니, 옆에 있던 사병이 그러더라는 거예요. 뻥치지 마 인마 니네 아버지가 진짜 저 사람이 니네 아버지라 그러면 의붓아버지야 무슨 얘기죠 야 그렇게 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면 니가 왜 여기 와 있냐 그런 뜻이죠. 세상이 그렇다 라는 거예요.
참 잘못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힘이 있으면은 남용해야 되나요? 힘이 있으면 우리가 섬겨야 되는 건데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게 좀 문제가 있는 거죠. 오늘 3가지 살피겠습니다. 힘을 잘못 쓰는 사람 첫 번째 두 번째 힘을 잘 쓰는 사람 리의미하겠죠. 세 번째 잘못 쓰는 사람을 향한 겉면 이 세 번째가 제일 힘든 거겠죠. 이게 하이라이트인데 세 번째가 제일 중요하겠죠. 하여튼 이 3가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힘을 잘못 쓰는 사람들인데 귀족과 뭐 민장들 이렇게 묘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모든 백성이 성벽 재건에 올인 하고 있습니다. 생활부터 포기하고 집중했습니다. 그러니까 52일 만에 다 지었죠. 그러다 보니까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삼중고거든요. 삼중 첫째는 흉년이었대요 이렇게 지을 때 또 마침 흉년이네 3절을 보시면 뒷부분에 보세요.
이 흉년의 곡식을 얻자 하고 흉년이 왔습니다. 두 번째는 무거운 세금이죠. 지금 이게 식민지 아닙니까 식민지니까 무거운 세금이 있겠죠. 거기도 뭐 뒷부분에 보세요.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4절이 그렇게 나오죠. 중과세 무거운 세금 거기다 5절 보니까 고리대금을 했습니다. 귀족과 민장들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당시 그 고리대가 싼 게 33프로였대요 그러니까 뭐 50프로 100프로 뭐죠 요즘에 깡패들이나 받는 그런 고리대금이죠. 옛날엔 다 그랬다고 해요. 그래서 5절 하반전을 보니까 이렇게 나와 이제 우리 자녀를 종부로 파는 거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리된 자도 있고 이러잖아요. 옛날 돈 못 갚으면은 애들 팔아먹었거든요. 그러니까 아이들 팔리고 딸들 딸들 팔려가면 어떤 존재 되는 건지 알겠죠. 키눈물 아는 얘기 아니에요.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근데 이거 주도 누가 있어요.
있는 자들 리더들이 귀족과 민장들이 고난을 이용해서 치부하게 되었다. 그런 얘깁니다. 그러다 보니까 가정의 일상이 무너지면 누가 소리 지르냐 하면 여자들이 소리 지르잖아요. 그래서 1절 이겼습니다. 시작 그때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여자들이 부르짖었다 이걸 강조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일상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게 되었다. 그래서 여자분들이 말 안 하는 사람들인데 못 살겠다고 막 소리 지르는 거죠. 여기 부르짖어라고 나오는 게 그 애굽에서 학장 속에서 부르짖던 그 부르짖음의 단어가 똑같은 단어예요. 추록기 이장 23절을 보니까 이스라엘 자손은 고대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부르짖음의 하나님께 상달되었다. 그러죠 똑같은 단어예요. 그러니까 이 출애금을 통해 가지고 하나님이 건져주셨던 그 백성이 자기들끼리 지금 애굽의 학전 같은 일을 하고 있잖아요. 이게 말이 되느냐 뭐 그런 거겠죠. 귀족과 민장들이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힘을 잘못 쓰기 때문에 그러죠 힘을 자기를 위해서 쓰니까 이거 남력이 아닙니다. 여러분 힘들이 다 있잖아요. 평생 나만을 위해서 쓰면은요, 이렇게 됩니다. 이기심과 탐욕을 위해서 쓰는 거죠. 힘이 있으면 공동체는 생각 안 하고 이기심과 탐욕 내 이기심을 채우고 내 탐욕을 채우는 데 쓰다 보면 남들 안 보이거든요. 그러면 내 이기심이 만족되고 탐욕에 만족되면은 나는 모르지만 모를 수도 없겠지만, 몰랐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피눈물로 사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입니다. 이 꼴이 뭐냐라는 거죠. 말도 안 되는 거죠. 말도 세상 속의 빛과 소금이 된다고 그랬는데 맛을 잃은 소금이 돼버리고 불 꺼진 등불 돼버리는 것 아닙니까 이게 말도 안 된다. 그러므로, 힘을 어디에 써야 돼 관계에 써야 된다니까요? 섬기는 데 희생하는데 우리 무조건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걸 뭐라고 타락이 끝나면 몰락이라 그래요.
우리 인생 부끄러움 당하게 되고 잘못 산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명절인데 다시 한번 점검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고 작은 힘들 줬잖아요. 이거 이기심과 탐욕에 가지 않도록 길맞게 주옵소서 반드시 섬기는 데 희생하는데 관계를 위해서 쓸 수 있는 종 되게 주옵소서 이게 기도가 되는 하나님이 종되기를 축원합니다. 반대로 잘 사는 사람은 느예미하겠죠. 힘을 잘 쓰는 사람 이제 14절부터 이제 뒷부분부터 쭉 나오는데 총독의 녹을 먹지 않았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무보수로 했다. 그런 얘기죠 왜냐 아마 뉘예매는 재산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뭐 특별히 이 월급 안 받고도 일할 수 있다. 뭐 그렇게 얘기했던 것 같아요. 15절을 보니까 이전에 총독들은 달랐다 이전의 총독들은 막 등쳐받고 그랬는가 봐요. 근데 왜 그러지 않았죠 15절 뒷부분에 뭐라고 돼있어요. 나는 하나님을 경애함으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믿는 자가 다르다라는 거예요. 나는 하나님 성기는 자 크리스찬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행할 수가 없더라 16절에 보니까 이 경계가 어려우면 땅이 싸지잖아요. 그럴 때 땅도 안 샀다 요즘에 그러잖아요. 뭐 이렇게 사는 사람 없으면 돈 많은 현찰 많은 사람들이 줍줍 한 다음에 줍줍 줍줍이 그거더라고. 뭐 쌀 때 이렇게 집어넣어 아 줍줍할 때 주둥이를 갖다 가리고 싶네요. 줍줍 줍줍한데 그거 안 했다. 라는 거죠. 그리고 돈이 많으니까 식사 자리에 유다 사람들이 격려하려고 150명이 와서 먹었대 그러니까 여러분들 부자가 되면 이런 부자가 되세요. 밥값 내줄 수 있는 부자 자기 집에 150명이 왔대 이 방 사람들도 많이 왔대요 그러면서 이건 재밌네 식사 준비를 어떻게 했냐 하면 소 1마리를 잡고 되게 부자죠 그게 부자는 이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부자가 왜 좋은 거예요. 그렇게 밥 먹여줄 수 있으니까 대접할 수 있을까?
소 1마리 그리고 살찐 양은 6마리 그리고 치킨은 셀 수 없이 많고 치킨은 그죠 뭐 비비큐부터 시작해서 교촌으로 시작해서 여러 가지로 그다음에 10일에 한 번꼴로 좋은 포도주 그죠 프랑스나 포도주 마셨는가 보죠. 뭐 이렇게 마시고 그렇게 잘 대접했다. 그래도 총독의 노고를 받지 않았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왜 백성의 노역이 무겁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잘 보세요. 자기가 많은 재산과 축복을 받은 걸 가지고 뭘 하고 있어요. 지금 섬기잖아요. 섬기고 노역으로 힘든 사람들 먹여주고 그다음에 격려해 주고 가끔마다 여기서 포도주 같은 건 뭐예요? 기쁨의 상징이거든요. 이스라엘은 그러니까 특별 식사도 대접하고 그랬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돈을 관계에 쓰잖아요. 돈을 사명에 쓰잖아요. 이러니까 돈 벌어도 되는 거죠. 이걸 어느 정도 했냐면 12년을 했대요 월급 받을 거 안 받고 내 돈 더 엄청나게 써가면서 12년을 섬겼답니다.
왜 하나께서 이미 주신 축복이 있기 때문에 나 엄청 축복받았거든. 그러니까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희생하고 섬기니까 권위가 생기는 거죠. 권위 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뉴헤미아의 말이 권위가 있었던 이유가 뭐냐 말뿐만 아니라 삶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인테그리티 일치라고 그랬죠 일치 번역하기 힘든데 제일 좋은 나라가 일치예요. 일치 겉과 속이 똑같은 거 말과 행동이 똑같은 거 일치 파워가 있죠. 그러니까 그가 말할 때마다 이렇게 먹히기 시작하더라 힘은 이렇게 사용해야 된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14절부터 18절까지 쭉 내용인데 명절이니까. 안 죽겠어요. 보세요. 그냥 예 지금 다 얘기했잖아요. 그죠 그 얘기예요. 그다음에 세 번째 하이라이트인데 세 번째 내용 힘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 향하여 권면을 해야 되는 거죠.
이게 힘들죠 우리 같으면 그러죠 뭐 2가지 얘기해 놓고 힘을 잘못 사용한 사람 남용하는 사람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반면교사 힘을 잘 사용하는 사람 의미야 이렇게 살아야 된다. 이렇게만 얘기한다고 그러면 뭐 이 언론이지 뭐가 어렵겠어요. 근데 힘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까지도 선용할 수 있는 곳으로 권면하고 이끌어 와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좋은 공격체를 만드는 거 그게 성도죠 너도 나처럼 함께 하나님께 바른 모습으로 서 있자 그런 거죠. 여러분 다 아는 얘기겠지만, 쉐일 실버스타인이라는 분이 쓴 10분이면 읽는 책 있죠.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는 얘기지만 사과나무 희생 얘기 아닌가요 아니에요. 꼭 한 소년이 있었는데, 사과나무하고 얘기하니까 어렸을 때는 놀아줬대요 막 매달리기도 하고 그리고 20대가 되니까.
이 소년이 컸죠 돈이 필요하다 그러더래 그래서 여기는 사과 따 가지고 팔아라 금 돈 생길 30대에 또 왔답니다. 집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가지를 베어서 집 만들어라 그래서 가지 잘라가지고 집 만들었대 또 40대도 찾아왔대 배 만들어 가지고 멀리 가야 된다고 그래서 내 몸통 잘라가지고 배 만들어라 그랬대요 그리고 이제 늙어가지고 또 왔더래 나는 아무 일도 못 해 근데 나무가 그랬다면서 난 더이상 줄 게 없어 밑둥밖에 안 남았잖아요. 여기 앉아 쉴래 그랬더니, 노인이 돼 가지고 와서 밑둥에 앉아서 쉬드라 그래서 이 사과나무는 마지막까지 다 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근데 어떤 분이 이거 서평에다가 이렇게 써놨더라구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사랑은 이기적이다. 싸가지가 없다. 잘못됐다.
뭐 이런 취지예요. 왜 그러냐 잘 봐라 사과를 하면 자기만 좋은 일하고 여기 나오는 소녀는 나쁜 놈 아니냐 우리 이럴 때도 그렇잖아요.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그죠 어렸을 때 놀다가 뭐 열매 따먹다가 집 짓는다고 가지 짤라가다가 배 짓는다고 몸통 잘라가고 막판에 와가지고 거기다가 엉덩이를 비비고 앉아있어 우리가 볼 때도 이거 나쁜 놈이잖아요. 사람 오 너무 훌륭 소년 느그이 될 때까지 너무 나쁜 놈 이게 무슨 사랑이냐는 거예요. 사랑 사랑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소년을 스포일 되게 만들었다는 거죠. 완전히 망쳤다는 걸 망쳤다는 거 한없이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모든 것을 다 취해버리는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죠 나무는 행복했지만, 소년은 나쁜 놈 만들었다 이게 무슨 사랑이냐 이런 거죠. 그래서 그 서평에 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진짜 사랑 거절도 할 줄 알아야 된다고 감정만으로 사랑 안된다고 주기만 한다고 무슨 사랑이냐고 지혜가 동반되었잖아.
성령과 지혜 지혜가 동반되는데 그 고린도 후속 같은 데 나오잖아요. 지혜가 뭐예요? 우리를 약하게 만드셨죠 왜 그래야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게 만드는 거 그게 하나님의 지혜 아니에요. 무조건 강하게 해야 되는 게 무슨 무슨 사랑이야 어쨌든 약할 때 강한 대신에 나의 연약함 나는 약함을 자랑하고 주님의 능력을 강함을 선포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이 진짜 사랑 아니에요. 그렇게 만들어주는 거 하나님 사랑은 온전한 사랑인데 우리는 감정적인 사랑 이건 뭐 기분만 좋을 뿐이지 망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읽다 보니까 오늘 제목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사랑이 어렵다 우리 전부 다 그래요. 내가 볼 때 스포일 하는 사람들도 보면은 사랑한다고 그래 그리고 뭐 잘하는 사람도 사랑한다고 그러고 아 우리 크리찬 가운데 무슨 행동을 하든지 사랑 안 한다는 사람 있어 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러는데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사랑한다고 그러면서 이게 뭐 상처 주고 어렵게 만들고 그럴 때도 있잖아요. 그래서 필요한 게 뭐죠 사랑이 어려워요 그래서 사랑도 기도해 가면서 해야 돼 하나의 지혜를 주십시오. 그게 되게 중요한 거죠. 뉘에메로 돌아와 봅시다 즉 귀족과 민장이 나쁜 행동을 했어요. 분노했죠. 육조를 보니까 내가 백성의 부르짖은가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화했으나, 분노하면은 우리 같으믄 뭐 백성들을 사랑하니까 사랑한다는 미명 하에 그냥 갖다 때릴 수 있죠. 그냥 공격하고 그따 그냥 때리고 그작 그냥 공격하고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귀족들이 반발하고 상처 입고 그렇잖아요. 뭐 잘못했지만, 자기들도 상처 입고 막 그럴 거 아니야. 그럼 귀족들이 상처 입고 나 안 해 그러면 공사될까요? 일이 안 되는 거죠. 옳은 말에 상처 입는 겁니다.
원래 말 같지 않은 말 하면은 상처가 좀 덜해 제일 아픈 게 옳은 말이거든. 우리 다 죄인이잖아. 연약하잖아요. 조목조목 옳은 말만 하면 정말 아퍼 그리고 힘이 다 빠져버리고 그래서 사랑이 어렵다니까요? 옳은 말만 한다고 사랑 아니에요. 그게 사랑이 어려운 거죠. 근데 르헤미아가 했던 게 뭐냐면 7절 보니까 깊이 생각하고 잠시 멈춤을 선택했어요. 이게 중요한 거죠. 막 감정대로 퍼붓는 게 아니고 잠시 멈춤을 선택했다고 옛날 개혁 한글판 보면은 중심의 계획하고 깊이 생각한다는 게 중심의 계획이었다. 단순 생각이 아니라 정리하고 계획했다. 그런 뜻이에요. 뭘 정리하고 계획했을까요? 하나님 말씀 이때 우리에게 딱 맞는 하나님 말씀이 무엇인가 이걸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타운젠드가 썼던 공자인데 바운더리스라는 책이 소개했죠.
우리가 번역되기로는 노우라고 말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 우리가 경계가 필요하다 했죠. 바운더리 말씀을 통해서 경계가 있으면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거 이거 갈라지니까 행동이 결정이 되는 거죠. 경계가 없는 사람은요, 뭐 이런 거죠. 아무나 만나도 되고 아무하고 살아도 되고 이러면 뒤죽박죽 돼버리는 거 아니에요. 경계가 있어야 가정이라는 경계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이건 가정이고 이건 가정 그죠 이 사람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우리 주일도 그렇잖아요. 주의 예배 드리고 딴 거 해도 되는 날 안되는 날 경계가 있어야지 지금부터 경계가 없는 사람들 주일 점수가 뭔지도 모르잖아. 그죠 헬렐레 가지고 결혼식 오라면 결혼식 가고 뭐 그렇잖아요. 뭐 지멋대로 경계가 있어야지 경계 11조도 경계 아니에요. 일종의 뭐 그런 여러 가지 경계가 있어야지 뭘 하고 안하고 순종과 불순종이 나오지 경계도 없는데 무슨 순종과 불순종이 있어요.
경계죠 경계 지금 느헤미안은 말씀을 통해서 경계를 찾고 있는 거라고 제가 몇 가지 찾아보니까 그거예요. 출력기 22장 25조를 보니까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주면 나는 그에게 채권자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지라 10년기 23장 19절 20절 보니까 형제들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마라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에 이자를 받지 마라 20절 외국인에게 내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된다. 또 레빅이 25절 39절부터 41절까지 보니까 너 함께 있는데, 형제가 가난하게 돼야 몸이 팔리거든. 그를 종으로 부르지 말고 품꾼이나 동거인같이 함께 있어 시년까지 섬겨라 그걸 시년에는 풀어줘라 말씀들을 찾았을 거라고 저도 찾았는데 뭐 니 어미가 이거 못찾았겠어 찾았다구요. 그래서 말씀의 경계를 세운 거라고 그래서 그 말씀을 가지고 증거하는 거예요. 이런 말씀이 있는 것이다. 라고 기준을 제시합니다.
경계 마운더리스를 제시합니다.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견해를 가지고 증거하면 힘이 없어요. 근데 말씀을 가지고 증거하면 힘이 있어요. 견해는 힘이 없습니다. 말씀에 힘이 있어요. 우리가 언제 상처를 더 받냐 하면은 뭐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 있는 오피니얼을 가지고 자꾸만 얘기를 해 그러면 그건 니 생각이잖아. 근데 누구나가 다 따를 수 있는 게 뭐야? 하나님 말씀이죠. 겸손하게 이게 하나님 말씀 중에 이게 바운더리 아니냐 이 기준 아니냐 그래 선포하면 나도 복종해야 되고 우리도 복종해야 되지 않겠니라고 겸손하게 선포가 되면은 따라오겠죠. 뉴헤미아가 그랬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굳이 보면은 여기 깊이 생각하고 이 7절이 되게 제가 볼 때 의미가 있어요. 그쵸. 잠시 멈춤을 선택하면서 말씀 붙들고 그다음에 겸손이라는 게 뭐예요? 즉각적으로 감정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기도했겠죠.
했다는 말은 없지만, 말씀과 기도 그리고 그의 삶이 어땠어요. 일치 인테그리티 진짜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 아니에요. 그저 소금과 빛으로 살았던 사람 아니에요. 그러니까 기도하고, 말씀이 있고 기도하고, 인테그리티 일치가 있고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니까 설득력이 있겠죠. 그랬더니, 백성들이 듣고 순종했더라 12절 13절 순종했더라 읽어봅시다 12조치단이에요. 이건 읽어봅시다 시작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재사양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 말 한 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게 하고 내가 옷자락을 털며 그들에게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를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버리실지니 그리고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 모르다 함에 회종이 다 아멘하고 여와를 찬성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할룰루야 아멘 그죠 해결이 됐죠 잘 보세요.
우리가 뭐 말씀의 기준 바운더리를 잡고 기도하고, 그다음에 일치된 인테그리티 일치가 있는 사람이 선포했더니, 아멘 하고 따랐더라 무조건 되는 건 아니죠. 이렇게 되는 게 뭐예요? 은혜였다. 은혜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위반이 되면은 좋은 지도자가 겸손한 지도자가 돼야 돼요. 그래서 지혜를 가지고 말씀을 찾고 기도하고, 또 겸손하게 선포하고 또 귀족과 민장들이 잘못했지만, 또 이걸 말씀 듣고 또 회기하고 돌아오는 것도 대단한 거죠. 이걸 뭐라 그래요. 이 공동체에는 은혜가 있더라 우리 그래도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은혜는 하나님 은혜가 임하면 된다구요. 그리고 한 해 동안에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 모든 이 열매가 거두고 되는 역사가 나타나는 우리 거룩한 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지막 절 읽읍시다 은혜 붙들고 끝납니다. 19절입니다. 시작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우리도 똑같은 기도를 드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하나님 의미에 은혜 붙들고 승리하는 거룩한 정도 되기를 축원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은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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