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아 5장 1절로 19절까지 말씀 같이 한목소리를 읽겠습니다. 시작 그때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러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어떤 사람은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두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내가 백성의 부러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 거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함에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내가 또 이러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나와 내 형제와 종자아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줬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그런 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남무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포도주나 기름의 100분의1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라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 말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게 하고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집과 산업에서 털어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함에 해중이 다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성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또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타 왕 제20년부터 제32년까지 12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보다 먼저 있었던 총족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40세계를 그들에게서 빼앗았고 또한 그들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의 성벽공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내 모든 종자들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 또네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150명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주위에 있는 이방족석들 중에서 우리에게 낳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매일 나를 위하여 소 1마리와 살찐 양 6마리를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1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이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었더라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함엔 인생의 문제는 파도처럼 다가옵니다.
1가지 문제가 해결되었나 하면은 또 다른 문제가 반드시 뒤따르게 됩니다. 문제 없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잠잠하기만을 바라지 마십시오. 늘 문제는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에 빠져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점점 잃게 됩니다.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문득 문제가 닥치더라도 문제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아야 그 문제가 가진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게 돼요. 이런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 문제가 닥친 까닭은 특별히 믿음의 사람들에게 그 문제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실 능력이 없는 분이어서도 아니고 문제를 방치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중심을 주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지를 지켜보고 계신 것이고.
우리가 그 문제라는 해결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다져져 가는가를 보기 원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회사건 가정이건 부모건 직장 상사건 어쩌면 때로는 일부러 문제를 그들 앞에 놓아봅니다. 자녀들에게도 문제를 내서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보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어쩌면 느헤미아라는 사람을 통해서 이 주어진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게 하셨고 우리가 또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생에 주어진 파도와 같은 문제 이 문제가 하나 해결되었나 싶으면 또 닥쳐오는 그 문제들을 우리가 어떻게 맞닥뜨리고 해결해 갈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소중한 격려의 말씀이기도 하고 또 사랑의 권면이기도 합니다. 오늘 보니까 성벽공사는 정말 궤도에 올랐습니다.
어려움을 다 겪어내고 만난을 겪어내고 산발락과 도비와 같은 그 악의를 가진 사람들의 괴괴를 정말 포기하도록 만들어가면서 넓은 곳에서 일어나는 동시다발적인 일들을 지혜롭게 잘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늘 밖의 문제보다도 안에 문제가 더 중요해요. 밖에서 일어나는 문제보다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보니까 지금 안에서 또다시 터진 문제를 보게 됩니다. 어쩌면 옮아 있던 문제이기도 하고 이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성찰하도록 하는 문제이기도 하죠. 1절 2절 말씀 같이 볼까요?
시작 그때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어떤 사람을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먹고 살아야 하겠다고 문제는 안에서 터졌는데 이 아내 문제는 소득 불균형의 문제고 빈부격차의 문제고 그리고 정상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사람들의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벽을 재건하기 전에 내면은 사람들의 마음이 먼저 하나 되어서 사람들이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는 의지를 먼저 재건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성벽이 올라가고 성벽이 이제 완공을 향해서 가고 있는데, 문제는 이 성벽 안에 살아야 할 사람들의 마음이 또 다시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밖에 문을 담처럼 높이 쌓으면 뭐합니까? 대궐같이 높은 담을 지으면 뭐하겠습니까?
부부의 담이 높아서 부모와 자녀간의 담이 높아서 정말 서로 간의 교제가 불가능하고 교류가 불가능하고 대화가 불가능하다면 집에 담을 아무리 높이 쌓은들 그 담이 가정을 지키겠습니까? 가정은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렇지 않은 가정들이 오늘날 이 시대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의 가정과 다를 바 없이 흔들리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먼저 밖으로 나아가기 전에 밖의 문제를 바라보기 전에 우리가 이토록 아침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교회를 돌아다보고 하는 까닭은 우리가 세상으로 나가기 앞서서 이 문제를 다져놓고 나가는 것이죠. 왜 우리가 말씀부터 보기로 이렇게 교회가 온 마음을 쏟고 있습니까?
우선 그 말씀을 우리가 다져지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기도로 다져지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수록 원심력이 커질수록 구심력이 강하지 못하면 그 원심력 때문에 모든 것이 다 해체되는 것을 보는 것이죠. 그리고 밖에 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안에 그 원심력을 버텨주는 구심력이 분명히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보니까 이 구심력의 구심점이 되는 백성들의 하나됨을 깨뜨리는 가장 큰 문제는 빈부의 격차라고 하는 것이죠. 어쩌면 바벨룬 땅에서 돌아올 때 다 별로 가지고 온 게 큰 차이가 없었을지 몰라요. 남의 나라에서 싸우면 얼마나 싸웠고 가져오면 얼마나 가져왔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돌아온 사람들 간에 금방 또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죠.
사회가 격동기에 있다는 것 사회가 불안한 시기에 있을 때는 늘 눈치 빠른 자 요령이 빠른 자 그리고 돈의 재주가 있는 자들은 그냥 단숨에 재물들을 거머쥐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가 다시 돌아온 백성들에 의해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죠. 그래서 사회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72년 만에 허물어졌지만 그러나 공산주의보다 더 문제가 있는 그런 이념적인 발호를 보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류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흔히 정말 아담 스미스를 자유경제론자로 분류하고 그렇게 경제 원조들을 자유경제 시장경제 오호자로 보지만 그 사람들 또한 다 이 문제 때문에 경제적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고 칼 막스 또한 이 자본론을 쓸 당시에 이 사회가 어떻게 하면은 이 빈부의 격차 자본이 자본을 더 많이 가져가고 자본의 리턴이 자본의 수익성이 노동을 늘 상회하는 이 경제적 구조를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그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던 데 따른 것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이 무슨 뭐 이런 무슨 전제주의적 독재주의적 국가를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고 사실은 그런 고민을 처절하게 했고 그 자신 일생 동안 그런 고민에 자기 자신을 바쳤던 사람이죠.
그 시대적 고민을 놓치면 우리는 동일한 고민을 또 이 시대에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너헤미아가 이 문제에 맞닥뜨려서 흉년이 또 닥치고 돌아온 사람들의 빈부격차는 그전보다 더 심각하게 벌어지는 현실적인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오늘 르헤미아가 해결하는 그 방식을 통해서 사실 시대를 초월한 문제 해결의 방식을 보게 되는 것이죠. 한번 3절 4절을 다시 더 읽을까요? 시작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의 곡식을 얻자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다는 거예요. 페르시아 왕에게 그 나라에서부터 오는 세금 그 세금을 바치기 위해서 내기 위해서 빚을 내서 세금을 냈다고 말합니다.
흉년에 먹고살기 위해서 모든 포도원과 집이라도 다 밭과 이걸 저당 잡히고 먹고사는 그런 어려운 일들을 겪고 있는 것이죠.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관건을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 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는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이런 현실 가운데서 느에미아가 이 현실에 대한 것을 듣자마자 그는 크게 분노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은 올라가고 있고 예루살렘 성벽은 번듯하게 세워져 가고 있지만 사실 그 안에 살아야 할 백성들의 삶은 그야말로 처참한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죠. 아니 지켜줄 것이 없는데 성곽을 쌓으면 뭐하겠습니까? 가진 것이 없는데 그 성을 쌓은들 그 성이 무슨 역할을 하겠습니까?
그래 문제의 본질을 다시 꿰뚫어보는 네헤미아는 다시 이렇게 생각합니다. 깊이 생각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시작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위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화를 열고 그들을 쳐서 문제가 보니까 저당을 잡히고 있고 이런 어려운 상황들을 겪고 있는데, 가진 자들이 꿔주면서 높은 이자를 받고 있다는 거예요. 형제들에게 바로 이웃에게 어떻게 그 이웃들의 그런 걸 받고 있냐는 것이죠. 그렇죠. 뭐 가진 자들의 입장은 늘 고리대검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더 많은 것들을 가져오느냐는 것이죠. 그래서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네미아가 내놓은 해결책입니다. 8절 말씀이죠.
시작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도 사람들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함에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아니 일껏 포로로 잡혀간 형제들을 구해 왔더니, 그 형제들이 다시 이스라엘 땅 자국 땅에 돌아와서 모국에 돌아와서 또다시 노예가 되는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 노예로 살던 사람 건져놨더니, 어떻게 또 노예로 돌아가느냐 이전 형편보다 더 나빠지게 만든다는 게 말이나 되냐 이게 당시의 현실이었다는 것입니다. 모국으로 돌아올 때 그 먼 길을 올 때 얼마나 큰 희망과 그런 기쁨으로 돌아왔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돌아온 현실은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고 흉년이 겹치면서 가진 걸 다 팔아야 저당 잡혀야 가까스로 양식을 구할 수 있고 그리고 돈을 좀 빌리면 높은 이자에 시달리게 되고 세금을 내야 하는 그 세금이 또 부과될 때 그 세금을 내기 위해 빚을 내는 이런 악순환의 꼬리에 접어든 것이죠. 그래서 오늘 너헤미아는 이럴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자 9절 말씀입니다. 시작 내가 또 이러기를 너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입양 사람에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자 10절 말씀 중요한 자기 고백 자기부터 회개를 시작합니다.
시절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여러분 보니까 자기도 자기 형제들도 내 같이 일하는 동역자들도 집에 있는 종자들까지도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거치자 꾸어주고 뭐 높은 이자는 아닐지 몰라도 꾸어 주고 이자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준으로서는 죄에 해당합니다. 해서 안 될 일이에요. 왜냐하면은 이 신명기를 보면은 신명기 23장에 제가 읽어드릴게요. 하나님께서 그걸 금하셨습니다. 신명기 23장 19절 20절 말씀 제가 읽어드릴게요. 내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에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내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내 형제에게 꾸어 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내 하나님 여호하께서 내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내 손으로 하는 범사의 복을 내리시리라 형제들 간에는 이자를 받지 말라는 거예요. 내 백성들 간에 내 형제들 간에 이스라엘의 12지판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나온 12형제들 아닙니까 집안 형제들끼리 꾸어주고 뭐 되돌려받지 않아도 될 것인데 이자까지 받아서 어떡하겠습니까? 그러나 외국인들에게 이방인들에게 꿔줄 때는 이자를 받아도 좋다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형제의 범위가 어디까지냐 하는 것이죠. 어쩌면 그들은 그 형제의 범위를 친족으로만 한정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느헤미아 자신도 자기 느헤미아의 형제들도 자기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꿔주고 이자를 받았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죠. 자 나도 사실 받았다. 그러나 이제부터 지금부터 받지 말자 받지 말자 그리고 다시 이야기합니다. 11절 말씀인데 시작 그런 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면 너희가 꾸어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포도주나 기름에 100분의 1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오늘이라도 지금부터라도 이자를 받지 말자 돌려줄 수 있다면 돌려주자 이런 어떻게 보면은 정말 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죠. 여러분 변화는 슬금슬금도 일어나긴 하지만은 정말 은혜라가 은혜 받은 사람들의 변화는 극적인 변화예요. 나 지금 이 순간부터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 받은 사람은 지금부터 안 해요.
구원받은 죄는 지금부터 죄 안 지으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1가지 죄만 해결하고 내일은 1가지 죄만 해결하고 그래서 평생 죄 문제를 다 끌어안고 해결도 못 하고 가는 게 아니라 죄란 뿌리가 빠지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것이에요. 중독도 거기 뿌리가 있는 것이고. 거짓말도 거기에 뿌리가 있는 것이고. 남을 속이고 폭력적인 것도 거기 뿌리가 있는 것이고. 음란도 거기 뿌리가 있는 것이고. 모든 것들이 그 뿌리에 있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뿌리가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되면 여러분 은혜가 오면 즉각 그만두게 되는 것이죠. 깨달음 즉시 실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잘못됐다 하면은 즉각 돌이키는 것이죠. 그게 회계안입니까? 어쩌면 지금까지는 몰랐어요. 네미아 자신도 몰랐던 것이죠.
왜 백성들이 하나 되지 못하는지 왜 성곽은 지어져 가고 있는데, 불평불만은 사라지지 않는지 그러니까 문제의 뿌리는 우리 안에 있는 불균형이고 그런 소득 격차고 빈부의 격차가 심각해져서 먹고살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성곽을 지은들 뭘 하겠습니까? 안에서부터 성곽을 무너뜨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죠. 그랬더니, 12절 13절 말씀입니다. 시작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라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 말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게 하고 내가 옷자락을 틀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버리실지 그는 곧 이렇게 틀려서 빈손이 될지도다 함에 회중이 다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성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자 오늘 문제 해결의 첫 단추는 누가 깼습니까? 느헤미아입니다.
첫 단추를 깨는 방식은 어떤 것입니까? 느헤미아의 솔선입니다. 나 자신부터 이자를 받지 않겠다. 돌려줄 것 있으면 돌려주겠다. 그렇게 했더니,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아멘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래 놓고 나서도 샅샅이 파보면 또 약속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겠죠. 그러나 오늘 우리 지도자의 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후의 말은 이후에 기록된 네헤미아의 삶을 보면 그는 12년 동안 총독직에 있는 동안 월급을 받지 않았습니다. 전임 총독들은 정말 수탈에 가까운 일들을 자행했지만, 그는 본인이 총독의 월급을 받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재산이 있었을 수도 있고 또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받는 것도 있었겠지만, 어쨌건 그는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백성들 앞에서 나름대로 솔선했던 사람입니다. 그 정도면 할 만큼 했습니다.
남 안 하는 일을 했으니 할 만큼 한 것이죠. 그러나 오늘 너에미아가 다시 국민적인 아픔과 고통 앞에서 본인 자신이 자기의 것을 희생하고 내려놓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크리찬이란 누굽니까 네헤미아란 누굽니까 믿음의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좀 듣기 부담스러우시겠지만,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받은 은혜가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무한한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만하면 됐습니다. 이만하면 나는 할 만큼 했습니다. 이만하면 나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하는 것보다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으로는 감당할 수 없겠지마는 주님이 저와 여러분 안에 계시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보다도 더 큰일을 행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으십니까 예 주님 때보다 우리 직영은 더 넓어졌습니다. 주님 때보다 우리의 문제는 더 복잡해졌습니다. 주님 때보다 우리의 문제는 더 풀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했던 일보다 너희들이 더 큰일을 담당해 줘야 되겠다. 내가 다녔던 때보다는 더 많이 다녀줘야 되겠다. 내가 폈던 손보다 너희들 손을 더 멀리 펴 줘야 되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주님 됐습니다. 교회나 잘 지키겠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우리에게 감동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어쩌면 세상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교회에서 이렇게 빠져있는지도 몰라요. 세상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눈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 그냥 어쩌면 침윤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어제 KBS 아침마당에 나가서 뭐 보신 분도 있고 못 보신 분들이 많겠지만, 그냥 평소에 여러분들에게 나누던 말씀을 정말 짧은 시간이지만 처음에는 한 조금 시간을 더 줄 것 같더니, 앞에 잘라먹고 이렇게 해 가지고 한 20여 분밖에 말을 못 했지마는 그래도 전해야 할 복음은 다 전했습니다. 그래도 KBS와는 공중파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게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동성애는 죄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동성애는 죄입니다. 그러나 그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은 크리스찬밖에 없습니다. 정말 진정한 사랑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그 문제에 우리가 정직하게 부딪칠 때 또한 우리가 동성애자보다도 우리는 더 한 죄인이라는 것 우리가 더 정말 죄인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고백할 수 있고 그들을 품을 수만 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심각합니다.
학교에서도 지금 동성 간의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고 군대에서도 상사와 부하들 간의 성폭력이 동성 간에 일어나고 있고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1사람씩 껴안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런 각오가 없다면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을 이미 넘어서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현실의 문제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문제 그 문제를 외면한 채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개인의 문제 내 사랑 타령 내 돈타령 내 자리타령 그거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저는 우리 자신이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슬퍼하고 계신지 이 백성들이 무슨 일로 고통받고 있는지 그걸 놓고 더 진지하게 기도해야 할 것이고.
또 진지하게 우리가 테크를 하지 않으면은 우리 자신은 어쩌면 하나님께 그야말로 무한 책임을 맡겨주신 그리고 그 무한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무한 특권을 주신 것을 우리가 다 포기하고 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 시대를 향한 부르심에 여러분들이 같이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라고 기도할 때 그런 문제가 여러분들 마음에 주신 부담이라면 기도하고, 그 현장으로 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네헤미아가 총독으로서 그만 하면 됐어요. 월급 안 받고 열심히 일했으면 됐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으면 됐어요. 그러나 고통받고 있는 백성 빚에 시달리는 백성 쪼들리는 백성 그 백성들의 경제적인 어려움 그 어려움조차 해결하고자 하는 그 의지를 보면서 우리 크리스천에게 주신 그런 무한한 책임 때문에 주님께서는 무한한 그런 특권을 약속하셨다고 믿습니다. 담대하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 그런 믿음의 결단이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같이 기도하십시다. 마음에 주신 부담을 따라오늘 기도하십시다. 각자에게 주신 부담이 다릅니다. 그러나 내가 내 문제 내 가정의 문제 내 주변의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정말 먼 땅을 둘러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셨사오니 하나님 열반 가운데 있는 고통도 우리의 고통이고 선교지에 있는 문제도 우리의 문제이고 그리고 이웃들이 겪고 있는 그 모든 어려움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 우리가 정말 배려해야 할 문제 우리가 달려가야 할 문제임을 주님 고백하오니 힘을 주시옵소서 능력을 주시옵소서 정말 우리 마음 가운데 거룩한 부담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압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능력을 주실 때 하나님 어떤 문제도 주님 안에서 주님의 능력으로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풍랑이는 뱃전으로 다가오셔서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하셨던 주님 풍랑을 바라보지 않고 풍랑 너머에 다가오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주옵소서 끊임없이 파도처럼 닥쳐오는 이 세상의 문제들을 바라보기에 앞서 먼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과 함께 이 문제 속으로 뛰어드는 그리하여 배 밖으로 걸어나와서 물 위를 걷는 기적적인 인생들이 시작되게 하여주옵소서 이제는 십자가에서 그 기적을 시작하신 우리 구주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령에 충만케 하심이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무한한 은혜와 능력과 특권이 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부르신 소명임을 깨닫고 그 자리에 달려가기로 결단한 이 자리에 고개 숙인 모든 믿음의 지체들 위해 지금부터 여왕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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