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창고

[설교] 느헤미야 9장 3편

yt1981 2024. 9. 16.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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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레미아스 9장 1절로 8절까지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달 29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규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날의 낮 4분의 1은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불법책을 낭독하고 낮 4분의 1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레위 사람 예스와와 바니와 간미엘과 스바니와 분리와 세레비아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소리로 그들의 하나님이 여호와께 부르짖고 또 레위 사람 예수아와 칸미엘과 바니와 하삼느야와 세레비아와 호디야와 스라는 뜻바다에 의하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혼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 지어다 주여 주의 영화론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재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다. 

오직 주는 여호하시라 하늘과 하늘에 들의 하늘과 이를 성신과 땅과 땅 위에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죽게 경배하나이다. 주는 하나님이 여호하시라 예측의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갈대아우러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워사 가난 족속과 해족석과 아무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보수족속과 여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 씨에게 주시리라 하셨으며 그 말씀대로 이뤄졌어움에 주는 외로우심이로서이다. 아멘 말씀에 부흥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말씀이 우리한테 임하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말씀의 능력이 우리 안에 부어지면은 어떤 일부터 가장 먼저 일어나게 될까요? 회계죠 끊임없는 회계입니다. 사실 그치지 않는 회계예요. 

왜 그럴까요? 거울이 주어졌기 때문에 거울이 깨끗한 거울이 우리한테 주어졌기 때문이죠. 여러분 흐릿한 거울에 비춰봐야 우리의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굽어진 렌즈에 비추면은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제대로 투영되겠습니까? 우리는 거울을 갖고 있지 않고 렌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볼록렌즈에 비춰보면 내가 크게 보이겠죠. 오목 렌즈에 비춰보면 내가 작아 보이겠죠. 그러나 우리는 깨끗한 거울 앞에 설 때만이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되는 것이고. 내 참모습은 하나님 앞에 설 때 말씀 앞에 서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죠. 왜 사람들이 남을 비난합니까? 자기가 안 보이니까. 왜 남을 비판합니까? 남의 티는 보이되 제 눈에 들고는 안 보이니까.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건된 성전 완공된 성벽 그리고 이주해 온 백성들 간에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생기고 말씀에 따라서 초막절을 지키고 그리고 그 초막절 마지막 날에 행사를 다 거쳤는데도 불구하고, 그 마음 가운데 심어진 그 말씀의 거울이 본인들을 투명하게 비추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래서 놀랍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가 회개하라고 해서가 아니에요. 말씀이 임했더니, 회개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구장 1절 2절 말씀 다시 한번 볼까요? 시작 그날 스물 낳은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입양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와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틀 만에 이런 일이 일어났어요. 지금 다 행사 끝났습니다. 

초막절도 끝나고 모든 절기가 다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틀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고 하니까 백성들이 전부 굵은 베옷을 입고 그리고 금식을 하고 그리고 티끌을 뒤집어쓰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계가 시작이 된 것이죠. 소위 말하는 대회계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국민 전체가 회계하는 이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죠.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1907년에 평양 대부흥 운동이라는 것은 사실 평양대 회계운동이에요. 그 당시에 안수받지 않은 길선주 장로가 장대현 교회에서 일주일간 집회를 새벽 예배를 인도할 때 일어났던 일 아닙니까 선교사들 중심의 그런 집회였어요. 

그러나 그 자리에서 그 장로님이 본인의 죄를 자복하기 시작을 하고 그랬더니, 죄가 터져 나오고 그 자백이 터져나오고 고백이 터져 나오는데 걷잡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 것이죠. 사실 4개 교회가 연합해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좁으니까 장대한 교회는 남성들만 주로 들어갔어요. 남자들만의 집회였습니다. 2천 명이 들어갔던 집회예요. 거기서 그냥 1사람이 죄 물꼬를 트니까 성령이 강하게 임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죄를 잡아 가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기록을 보면은 그 가운데 범인이 한 사람이 있었는데, 범인을 잡으러 왔던 박 모라는 경찰관도 본인도 죄를 자복하고 난리가 났어요. 누군가 평양 대봉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 선교사의 기록을 보면 마치 그날에는 지옥의 문이 열린 것 같았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그런 회계가 그런 통의 자복이 터져 나오고 통곡이 터져 나오면서 인간 안에 있던 모든 죄가 다 드러나기 시작을 한 것이죠. 교회 안에 우리가 이렇게 거룩하게 앉아서 예배드리고 있으면 우리는 거룩한 사람들입니까? 우리 안에 있는 감출 수 없는 더러움들이 얼마나 끔찍한 죄가 아직도 여전히 도사리고 있습니까? 이게 터져 나오지 않으면 이게 터져 나오지 않은 채 사람만 늘어나면 재앙이에요. 재앙 무슨 부엉이예요. 사람이 늘어나는 게 무슨 부엉입니까? 여러분 부엉이란 회계가 부엉이에요. 돌아서는 기 부엉이 저리 가다가 이리 오는 게 부흥이에요. 단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게 부흥이에요. 사람 모여 뭐 할 겁니까? 우리가 모여서 무슨 정치를 할 겁니까? 운동을 할 겁니까? 오늘날 교회가 끊임없는 회계 영역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은 우리는 우리끼리 티격태격하다가 끝나요? 

맨날 좀 모였나 싶으면 또 싸우고 깨지고 맨날 사람 좀 불어나나 싶으면 또 무슨 권력 다툼이나 안에 뜻밖의 그런 내홍들을 겪으면서 또 교회가 쪼개지고 매일 그러면서 우리는 그걸 교회건이 생각하고 사는 것이죠. 그래서 어느 날 교회에 대한 마음이 다 닫혀버리고 교회에 대한 기대는 다 접어 버리고 내가 교회라는 생각조차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죠. 오늘 이 말씀들이 진짜 임했을 때 말씀에 0 회계 0 그리고 말씀 앞에 섰을 때만이 내가 비로소 거울을 갖게 된 것이니까. 그 거울에 비춰야 내가 누구인지가 드러나는 것인가? 그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그런 말씀에 거울에 비춰보지 않으면 우린 괜찮은 사람이에요. 이만하면 쓸 만한 사람이에요. 여기까지 왔으면 그래도 애쓰고 수고하고 온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날마다 말씀 앞에 서는 까닭은 말씀의 기준에 서야 그때 우리는 얼마나 정말 끔찍한 인간인지를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죠. 그 말씀이 우리를 읽기 시작하고 우리 말씀을 우리 그 말씀이 우리를 깨뜨려야 우리가 산산조각이 나고 부서져야 그래서 그 부서져서 그야말로 가루가 돼 가지고 무슨 뭐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용각산인가 우리는 목표가 용각산이에요. 용각산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아요. 아직도 알갱이가 남아 있으면 이렇게 흔들면 게 절렁절렁 소리가 나잖아요. 그 소리가 싸움이고 시기고 질투고 다툼이에요. 그러나 흔들어도 소리 나지 않을 만큼 우리가 산산조각이 나고 깨지고 고운 가루가 돼야 돼요. 고운 가루가 심령이 좋다는 게 뭐예요? 

심령이 이제 거듭 돌아왔다는 것은 그런 상태가 되는 그렇게 될 때까지 깨지는 게 이게 금식하는 것이고. 통행하는 것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고. 땅바닥을 치면서 내가 이런 인간이었습니다. 주님 뇌가 이런 인간이군요. 이런 처절한 시간들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게 말씀이 임했다는 거예요. 근데 내 입맛에 맞는 말씀만 골라보면 어떨까요? 뭐 구하는 것마다 다 이루리라 요런 말만 들어오죠 오늘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고 죄를 뒤집어쓰고 그리고 그냥 뒹구는 거예요. 

그리고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규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방 사람들과 절교했다는 것 그 당시에는 모든 우상숭배가 가난한 족속들과 이방 사람들로부터 온 것 아닙니까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그 우상들을 같이 섬기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혼합 종교 그들의 다신 종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생긴 거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떠나면 인간은 결국은 다신 종교라는 형태를 통해서 혼합 종교라는 형태를 통해서 자기를 섬기기 시작하는 것이죠. 오늘 왜 이렇게 우리는 뭐 힐링에 이렇게 막 이케 취하게 되고 왜 그렇게 너 자신이 주인이 되라고 말하겠어요. 너 인생의 내 주인이다. 내가 주인이다. 내가 기준이다. 

그게 여러분 다원주의고 그게 곧 혼합 종교고 그게 곧 우상숭배고 그게 곧 자기 숭배예요. 자기숭배 어 자기가 기준이면 자기가 왕이죠. 자기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가 되었다는 건 자기가 이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은 자기가 왕이라는 뜻이고 저밖에 없다는 것이죠. 뭐 누가 저만 하겠어요. 그리고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데, 이방인들과 절규한다는 것은 사실 그런 가치관과 절규한다는 뜻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신기하게도 우리를 불러내면 그동안 만나둘 사람 다 끊어놓습니다. 여러분 그게 회개의 시작이에요.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세상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러나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낼 때는 관계를 끊어놓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져야 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우산과 끊어지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 단절의 시간이 없으면 절대로 우리는 거듭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인생에서 다음 단계로 간다는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뜻하는 거예요. 1번 과거와 단절되지 않고 3단계로 못 나갑니다. 우리는 절대로 독신 생활을 청산하지 않으면 결혼 생활을 못 하는 존재들이에요. 결혼이 파탄을 맞는 이유는 혼자 살던 버릇대로 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혼자 할 때 하든지 혼자 할 때 말하던 버릇 혼자 살 때 그렇게 슬쩍슬쩍 짓던 죄악들을 같이 살면서도 계속 그걸 답습하고 되풀이하니까 결혼 생활이 파탄을 맞는 것이죠. 교회를 나와도 교회 안 다닐 때 삶을 단절하지 않고 오면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아요. 

교회 와서 그냥 옛날에 살던 방식을 성취시켜달라 이루어달라 그걸 위해서 여기 와서 NETWORKING 하고 도움받을 사람 없나 뭐 여기 와서 좀 새로 사귈 사람은 없나 여기 와서 좀 서로 친하게 지낼 사람 없나 여기서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여기 그게 목적이 아니란 말이에요. 믿음 안에서 우리가 서로 회개하면 그래서 한 10년이 되면 말하지 않아도 친해집니다. 자주 안 만나도 친한 사람이 돼요.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는데 그 사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돼요. 그게 여러분 진정한 회계가 일어날 때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보니까 이방 사람들과 일단 절규하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정말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옛날에 만나던 사람들이 싹 끊어지는 것을 경험하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렇게 끊어주면 반드시 새사람들을 붙여주십니다. 술 친구들 끊어지면 성경통독하는 친구들이 생길 줄로 믿으십시오. 

그 시간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야 절규가 일어나고 그 절규가 일어나야 다른 사람들과의 새로운 교제가 시작이 되는 거예요. 그 사람들 만나기 위해서 지금 이 사람들을 새로 만나면 여러분 헌 가죽 부지에다가 새 포도주를 담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저는 여러분들이 사람 끊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끊어지지 않는 주님과의 관계가 생기면은 사람 끊어지는 거 두렵지 않습니다.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리면 사람들의 그런 잔정에 묶이지 않아요. 그것 때문에 우리가 뭐 목숨 걸지 않게 됩니다. 애걸복걸하며 살 이유가 아니에요. 우리가 매달려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1분입니다. 사람은 다 스쳐 지나가는 존재예요.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느냐 얼마나 잠깐 있다가 헤어지냐 그 차이지 우리는 다 스쳐 지나가는 존재들이에요. 

그러니까 잠깐 스쳐가는 존재니까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만나는 거죠. 언제 또 보겠어요. 그래서 볼 때 우리가 올인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의 말씀을 전하고 관심을 전하고 그리고 영원한 분에게 함께 같이 가도록 초청하는 것이죠. 여러분 주님을 전하는 것보다 그 사람 더 사랑하는 방법 없습니다. 영원한 것을 깨닫게 하는 거보다도 더 귀한 선물을 할 수는 없어요. 그저 쓸데없는 소리 해봐야 지나고 나면 무슨 소리 했는지 다 기억도 안 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렇게 뭐 만나서 일 없는 소리 많이 하고 헤어질 때 또 자세한 얘기는 전화로 하자 그런 얘기 안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 전화 1시간 하고 나서 끝나고 나서 내일 자세한 얘기 또 만나서 하자 그런 얘기 안 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 시간 동안 차라리 성경 읽고 그 시간 동안 여러분들 묵상하고 그 시간 동안 한마디 말씀을 깨달으면 인생이 바뀌는 것이죠. 여러분 깨달아야 합니다. 

절절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추한 인간인지 내가 얼마나 악한 인간인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저 사람이 얼마나 나쁜 인간인지를 깨달으면 파탄이에요. 파탄 여러분 신앙은 자기를 비춰보는 거울이지 남을 비춰보는 거울이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은혜가 임했다는 것은 그게 내 나한테 적용되는 거지 은혜 못 받은 사람들 앉아서 설교를 듣도 이 인간이 얘기를 들어야 되는데 그 인간은 또 따로 말씀하실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이 얘기는 나한테 주시는 말씀이다. 나한테 하는 말씀이다. 나 하나 바뀌면 세상 바뀐다 이게 신앙의 관점이에요. 신앙이 없으면은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아니에요. 세상은 안 바뀝니다. 내가 바뀔 때만이 내가 바뀐 부분 만큼만 세상이 바뀌는 거예요. 주님은 여러분들을 바꾸시는 데 관심이 있지 세상 바꾸는 건 그 다음 일이에요. 

저는 오늘 보니까 우리가 절규하면 죽을 것 같아요. 저 사람 안 만나면 이제 끝난 거 같애 아니요. 하나님께서는 새 사람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꼭 붙들고 있던 관계를 놓아버리면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관계를 우리에게 붙여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사람 부족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이 성령이 임하면은 내가 꼭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요. 별로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는 1~2가지고 바르게 살아야 할 이유가 수백 가지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은 반드시 내가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아니요.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할 이유 때문에 우리가 사는 거지 그렇게 바르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회계영이 역사하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바르게 사는데요. 돌이켜야 바르게 사는 것이죠. 지금 살아가는 방법대로 가면 절벽에 떨어져 죽는 길이에요. 그래서 돌이키는 것 그게 바른 삶이죠. 

오늘 보니까 낮에 4분의 1은 그 자리에 서서 율법 책을 낭독합니다. 여러분 통독반 한번 언제 서서 한번 읽으세요. 보니까 서서 3시간 동안 읽었죠. 서서 성경 3시간 읽고 그리고 또 나머지 4분의1은 또 3시간 회귀하는 거예요. 회계 말씀에 비추어서 회귀하는 것입니다. 말씀해 보니까 이렇게 안 살았으니까 그러니 정말 여러분들 서서 3시간 동안 성경 읽고 3시간 동안 회귀하는 기도를 올려드리고 그러니 여러분 기적이 안 일어나겠습니까?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죠. 그리고 나서 회를 잡아가고 나서 비로소 그들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말씀 읽고 회개하고 그리고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싸운 일이 생각나거든. 

가서 서로 화해하고 와서 예배를 드려라 우리가 주일날 그대로 한번 하면 다 나갈 걸요 아마 다 나가서 예배 자리가 텅 비고 말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사실 예배가 아니에요. 내 안에 죄를 가득 담고 무슨 예배가 드려지겠어요. 가인의 재물을 가지고 와서 무슨 예배를 드리겠어요. 나는 예배드렸다고 착각하지만 하나님은 안 받으셨어요.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많은 사람들이 예배드리는 것 같지만 주님께서는 단 1사람 아벨의 재물을 받으시고 아벨의 예배를 받으실 거예요. 저는 우리 모두가 그런 예배를 드리고 그런 예배를 받아주시기를 원하지만 그럴려면 우리가 3시간 성경 읽고 3시간 통해 자복하고 그리고 예배자료로 나와야 될 것 아닙니까 그리고 말씀대로 그런 시간 3시간 6시간 이런 시간을 꼭 말하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과 단절하라고 해서 그 사람 내일부터 당장 만나지 말자 그게 아니에요. 

여러분 사람은 안 만났는데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 가치관을 우리가 안에 품고 있으면 그 단절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 안에 죄를 가지고 술 담배 끊은 게 뭐가 대단해요. 술 담배는 끊고 거짓말을 계속하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죠 우리가 정말 회귀했다는 것은 정말 사람들을 안 만나는 게 아니에요. 세상에서 빠져나서 수도원에 간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여전히 우리가 몸은 세상에 있어야 하고 세상 사람들을 만나야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고 그들이 기준 삼는 것을 더 기준 삼지 않는 것 그게 진정한 단절이고 진정한 거듭남이고 진정한 획의 삶인 것이죠. 오늘 그랬더니, 레위 사람들이 그냥 올라와서 단에 올라와서 큰소리로 부르짖고 또 일부 레외 사람들은 송축하고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그래 예배가 이렇게 아름답게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일어나는 예배가 되는 것이죠. 여러분 예배가 우리는 형식에 박히고 틀에 갇혔어요. 순서대로 여러분 어디 가서 교회들마다 보십시오. 예배 순서지 보면은 무슨 10 몇 개를 잔뜩 써놨지만 그거대로 안 하면 그날 예배를 망친 줄 알아요. 아니요. 예배란 말씀이 있어야 하고 기도가 있어야 하고 통해 잡아가는 기도가 있어야 되고 그리고 찬양이 있고 그게 몇 시간이 되건 예배가 될 수도 있고 그게 30분 10분이 돼도 예배가 될 수 있는 것이 있지만 여러분 정해진 틀에 박혔다고 그게 다 예배겠어요. 우리의 예배는 정말 기쁨을 빼앗아 가고 우리의 예배는 어떻게 보면 틀에 박혀서 부담만 가중시키고 그런 얼토당토 않은 것들이 되고 말았죠 오늘 여러분들 이 예배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냥 큰 소리로 부르짖을 수도 있어요. 여러분 물에 빠진 사람이 뭐 점잖게 얘기합니까? 

좀 시간이 있으시면 저를 좀 구해 주시든지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이렇게 부르짖는 게 정상입니까? 괜찮으시면 좀 지나가시다 시간 나시면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배 도중에 그런 게 터져 나올 수 있는 것이죠. 그 주의 이름이 존귀해지면 모든 것을 우리는 송축하게 되고 그리고 찬양하게 되고 이런 것이죠. 오늘 6~78절을 보면 그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만나는 분은 누구신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6~7절 8절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작 오직 주는 여호와 시라 하늘과 하늘을 들어야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에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죽게 경비하나이다. 

주는 하나님 여호하시라 옛적의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갈대와 울어서 인도하여 내쉬고 아브라함이라 이름을 주시고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해족속과 아무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수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매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여러분 오늘 678절 여러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 그게 구원 아닙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 그게 예배 시작 아닙니까 모르고 예배하면 어떻게 예배가 됩니까?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 그게 하나님의 속성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하나님 우리를 지키시고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여 내시고 그리고 끝없이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기를 원하시는 분이고 궁극적으로 우리 주님을 통해서 우리 안에 내조 하시기를 원하시고 끝내 우리 성령님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믿음을 완주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 믿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 따라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의 흉내 낼 수 없어요. 그래서 그분께서는 끝내 약속을 지키셨고 하나님께서는 먼저 약속하셨고 우리가 지킬 수 없는 약속 그분께서 약속의 대가를 다 치르셨고 그리고 끝내 그 약속을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가 다 이루신 그 약속 붙들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 그 약속 안에 머무르는 언약 백성의 삶을 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언약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약속대로 구원하셨다는 것 더 이상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왜 표대 대신 주님을 바라보고 계속 걸어가면 됩니까? 우리는 되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사탄은 정지할 것입니다. 내가 그러고 크리스 아니냐 아니요. 우리가 성령에 임하시면 우린 더 이상 뒤를 돌아보는 존재가 아니고 뒤를 돌아보다가 로스의 아내처럼 소금기둥대는 존재가 아니고 우리가 끊임없는 정제감 죄책감에 시달리는 존재가 아니고 이미 다 이루신 주님 우리의 불완전함을 더 이상 보지 않고 주님의 완전함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승리의 하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그분은 완전하십니다. 우리는 불완전 합니다. 나를 보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 내 안에 있는 허물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 온전하신 주님께 붙들린 이 아침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음껏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마음껏 주님을 선포하며 마음껏 주님의 메시지를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기도할 때는 주님 제가 묶여있는 것들로부터 풀려나서 다시 한번 주님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여주옵소서 여호와 니 씨의 하느님 깃발 대신 하나님 그 깃발 보고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한번 그렇게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끊임없이 나를 돌아다보고 여러분 끊임없이 내 욕망에 묶여있는 인생이 아니라 툴툴 털고 일어나서 주님께 달려가는 인생들 다 되게 하여주옵소서 하나님 나의 부족함을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죄 완전함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죄악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 죄로부터 풀려난 놀라운 능력 그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주옵소서 십자가에서 보효를 쏟으심으로 그 보혈할 능력으로 우리가 죄로부터 과거로부터 그리고 돌이킬 수 그런 허물로부터 벗어나서 온전하신 주님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느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정말 소망 없는 저를 발견하지만 그런 나이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 않고 나의 불완전함에 묶이지 않고 온전하신 주님 내 안에 계신 완벽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걷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낙심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 한번 힘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새로 시작하게 하여 주옵소서 뒤늦었다는 생각 때 늦었다는 생각 결코 품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돌아선 순간이 주님의 시간이고 부르신 시간이 주님의 온전한 때임을 고백하오니 주님 우리 각자에게 가장 최선의 시간 최상의 시간 최고의 시간에 주님께서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오늘 하루 주님께 온전히 붙들린 하루 이 하루가 영원의 시간 영원의 발걸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영원으로 접속시킨 우리 구주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에 충만케 교제하심이 오늘 이 아침의 말씀을 따라 다시 한번 회개하고 그리고 죽기로 돌이켜서 그 말씀에 비추어서 날마다 회개한 나를 돌아보지 않고 회개케 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따라가기로 결단한 이 자리에 고개 숙인 모든 믿음의 지체들 위해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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