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창고

[설교] 사도행전 10:1-16

yt1981 2023. 7. 1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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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왜 사랑하십니까?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사랑해서 뭐 하시겠다는 겁니까? 성경은 질문에 대한 답이에요. 예수님의 공생에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떻게 될 것인지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성령을 보내줄 것이다. 성령이 너희에게 오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내 사랑의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 행전은 사랑의 증인이 어떤 걸음을 걸었는지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기록을 따라가면서 정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았는지 그리고 거대한 사랑의 물줄기가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 가는지 그리고 일들이 주님께서 교회라고 부르는 새로운 사람들 교회라고 부르시기 시작한 성령의 사람들을 통해서 일이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지를 우리에게 지금 펼쳐 보여주고 계신 것이죠. 그렇습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증언을 했습니다. 스테바는 산해들인 공해에서 증언하고 순교했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서 증언을 했습니다. 광야길로 가서 이데오피안데시에게 증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베드로는 사마리아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또 증언하고 있는 것이죠.

그들을 핏박했던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담에 새겨서 그리고 예루살렘에 와서 증언하다가 다소로 내려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증언할 것이라고 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누군가를 찾아가서 누군가를 만나서 예수는 그리스도다 이걸 증언하고 사는 삶인 것이죠. 믿음의 길이란 뭡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에 가서 만나게 하시는 사람들에게 이 증언을 하는 삶이에요. 이렇게 걸어가는 생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린 지금 남의 얘기를 읽고 있는 게 아니에요. 저와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우리가 주님의 사람으로 부름받은 바 되어서 성령을 보내주신 성령 우리가 받으면 어떻게 사는지를 우리가 보고 길을 따르기로 결단하는 것이죠. 이 둘의 만남을 보게 됩니다.


코넬려라고 하는 로마 백부장과 베드로라고 하는 사도의 대표가 만나는 놀라운 사건이에요. 당시 알았겠습니까? 어느 누가 주목했겠어요. 어느 누가 이 사람의 만남을 무슨 언론의 토픽으로 전했겠습니까? 그러나 교회사에 있어서 선교의 역사에 있어서 이방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히는 이 만남 이 사건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먼저 1절 이 절 한번 더 읽습니다. 시작 가이사르의 고넬료라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아 부대라고 하는 군대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오늘 고넬류라고 하는 사람에 대한 몇 가지 정보가 여기 수록이 돼 있어요. 사람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고넬류 그런 보니까, 가이사르에 있어요. 가이사레란 로마가 유대 통치를 위해서 세운 항구 도시예요. 큰 도시입니다.


당시 지중해 연안에서 3대 항구 도시로 꼽으라면 터키에 있는 안디옥 그리고 애굽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이곳 가이사르가 뽑힐 만큼 큰 항구 도시예요. 로마가 통치를 해서 당연히 로마 부대가 군대가 주둔한 곳입니다. 오늘 그는 이달리아 부대 소속이라고 되어 있어요. 부대라고 하는 것은 군단의 10분의1 규모입니다. 그러니까 10개 부대가 한 군단이 되는 것이죠. 부대란 대개 600명으로 구성이 돼 있었어요. 그러면 백 부장 100명씩 통솔하는 백 부장이 6명 있는 부대가 이달리아 부대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지금 이 백부장 고렐료가 소개가 돼요. 근데 그는 도대체 누구냐는 것입니다. 왜 이 사람이 지금 여기 등장하느냐는 것이죠. 보니까, 오늘 그는 경건하다고 돼 있어요.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은 경건이 목표예요. 경건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게 목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경건한 신앙이란 진정한 경건이란 어떤 것이냐 오늘 이 고넬류를 통해서 경건함에 몇 가지 특징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첫째, 보니까,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에요. 일본은 경건함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지난번에도 말씀 한번 드렸지만 사랑하는 거예요.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 가운데 일말의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사랑 참사랑 영원한 사랑 오래가는 지속되는 사랑은 그냥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을 존중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일말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평생 사랑하고 사는 비결은 이겁니다. 일종의 경외감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너무 사랑만 하다가는 경건함을 다 잃어버리는 것 아닙니까 우리 신앙이 자칫하면 좋으신 하나님 사랑하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실 때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걸 그냥 우리가 그냥 늘 묵상하다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으로서 우려 일이 쪄버리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신앙 전체가 허물어집니다. 그럼 마치 버릇없는 아이처럼 신앙 전체가 그야말로 갈팡질팡하는 신앙이 돼요.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에 대한 이 일말의 두려움 이 경건의 요소를 잃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이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사람 경외하는 사람 이게 참경건의 첫 번째 지표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보니까, 온 가족과 함께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어요. 여러분 가장으로서 이 고넬료가 여러분 혼자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 혼자 좋은 사람 많습니다. 혼자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남편은 자녀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여러분 그런 신앙은 문제가 좀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온 가족과 함께 하나님을 경유했다는 뜻은 그가 그의 신앙이 그의 믿음이 그의 삶이 모든 가족들에게 존경받았다는 뜻이에요. 저는 여러분들이 혼자 열심을 다하는 신앙보다는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주님을 함께 사랑하고 경외하는 주님을 함께 경외할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신앙은 전수가 돼야죠 신앙은 파급이 있는 것입니다. 영향이 있는 것이죠. 내가 그분을 그토록 사랑하는데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내 사랑하는 태도가 진실하면 태도가 가족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보니까, 참경건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일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그의 신앙을 본받는 신앙이라는 뜻이죠. 세 번째는 뭡니까?

세 번째는 보니까, 그가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고 돼 있어요. 여러분 고넬료가 무슨 군인인데 부자입니까? 어떻게 많은 사람을 구제합니까? 군인 월급이 되면 얼마나 되겠어요. 그렇다면 그가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구제했다는 것은 나를 위해 쓰는 돈이나 내 가족을 위해서 쓰는 돈보다도 내보다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이웃을 위해서 손을 넓게 폈다는 뜻 아니에요. 이게 경건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경건이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그분께 내가 경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가족들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내 가까운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서 함께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는 게 그게 참다운 경건의 또 다른 지표일 뿐만 아니라 또 한 가지 우리가 손을 넓게 펴고 늘 어려운 이웃들 성격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아와 또 과부와 나그네와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에게 많이 손을 폈다는 거예요. 그래서 경건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보십시오. 그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돼 있어요.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의 뜻이 뭡니까? 항상 기뻐하라 쉬지 않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는 것이죠. 그러면 항상 하나님께 뭘 기도했다는 겁니까? 이 기도 제목에 나와 있습니까? 아니에요. 그가 항상 기도했다는 것은 그는 어떤 구체적인 기도 제목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을 추구했다는 것 하나님을 갈망했다는 것 늘 하나님을 사모했다는 것 얘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진지하게 솔직하게 정직하게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을 갈망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진지함 갈망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넬류를 통해서 지금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기로 결정하신 거예요. 유명한 사람이겠습니까?


무슨 로마 군단장입니까? 로마 총독입니까? 아니잖아요. 그냥 한 백 부장 일개 백부장일 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선교의 거대한 역사를 쓰는데 이 인물을 쓰기로 결정하셨다는 거 왜요 그가 참다운 경건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세례 받았습니까? 아직 세례 안 받았어요. 성령 받았습니까? 아직 성령도 안 받았어요. 근데 그거를 쓰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이 백 부장 보니까, 백 부장들의 믿음이 좋아요. 누가 보면 7장에 보면은 또 백 부장 나오지 않습니까? 가버나움에 있는 한 백 부장은 어떤 사람이에요. 사람은 모든 유대인들에게 사람도 칭찬받는 사람이에요. 집에 종의 하인이 병이 들었어요. 가족이 병들어서 예수님 부른 거 아닙니다.

그냥 무시해도 좋을 하인이 병들었지만 하인을 어떻게든지 낫게 해야 될 텐데 사랑하는 하인을 어떻게 하면 낫게 할까 그래서 예수님을 초청해서 예수님이 집 가까이 왔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서 그가 예수님을 만류합니다. 우리 집에 들어오는 거 못 견디겠습니다. 이런 누추한 집에 계시면 어떻게 들어오십니까 그러니까 저도 군인이기 때문에 군인이라는 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데 주님께서 말씀만 하십시오. 말씀만 하시면 이 종이 낫겠나이다. 주님께서 깜짝 놀라셔서 내가 이스라엘에서 아직도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말씀하시죠. 이스라엘 전체에서 이만한 이 백부장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 호넬로도 지금 백부장이에요. 왜 이렇게 백부장들이 믿음이 조가 그래요. 군인들이 믿음이 좋은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군인이란 불평이 없어요. 입에 좋은 군인이란 요구조건이 없습니다.

좋은 군인이란 근무조건이나 무슨 맡겨진 일의 어려움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냥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란 원래 군사로 징집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민간인 복장으로 지금 이렇게 전부 다 이게 흉 감초 같은 경우 와 앉아있지만 사실은 다 이게 안에 속에 군복 입고 입은 사람이라는 거죠. 이게 사도 바울이 그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보면은 디모데에게다 이런 이 저기 조언을 해주고 있는 것이죠. 디모데우스 한번 찾아보십시오. 디모드 요소 2장 3절 4절입니다. 바오리 이 디모드에게 이렇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같이 찍는데 시작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병사로 우리가 부름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가끔 하나님 찾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무슨 일이 다급해서 내 일 때문에 틈만 나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니에요.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징집받은 군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에 내가 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나를 부르신 그분의 뜻에 기꺼이 기쁘게 순조하기 위해서 가는 길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는 고난이 있다는 것 이걸 알고 가는 길이에요. 여러분들이 세상 사람처럼 무슨 가지고 있는 욕망이나 계획이나 뜻이나 야망 무슨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 때만 되면 불러대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여러분 신앙 때문에 얼마나 기독교가 병들었는지 아십니까?

왜 지금 이 골렐료가 등장하고 그런 가버나움의 백 부장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야 군인이란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자기 생활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내 것 때문에 이걸 하는 게 아니라, 이 길 가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기본적으로 그러면 우리는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됩니까? 먼저 내가 그런 걸 하는데 여러분 군인 2월급 걱정합니까? 먹고 자는 걱정합니까? 그렇게 진실로 내가 하나님의 군사답게 살면 하나님께서 책임져주나 안 주나 보라 이거 아니에요. 근데 뭐 이게 뭐 입만 열면 불만이 많고 말이죠. 요구 조건이 많고 이게 나한테 되냐 안 되냐 하나님 나라 가기도 어렵습니다. 그래 가지고 오늘 보면은 이 고넬로가 등장하는 이유를 한번 유심히 보십시오. 일개 군인 아니에요. 뭐 때문에 여기 이 성경이 이렇게 오랫동안 전부 본문이 나중에 합쳐보면 60절이 넘어요.

이 사람에 대한 기록들이 나중에 이렇게 장구하게 기록되는 이유가 바로 이 사람이 군사로서 훈련받은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신앙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 3절부터 6절까지 한 번 읽습니다. 시작 하루는 제 구 시점 되어 환상 중에 밝히범에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뇌 될려야 하니 권료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입니까? 천사가 이러되 내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내가 지금 사람들을 요파에 보내어 베돌아라는 심원을 청하라 그는 무드장이 심원 집에 유숙하니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코넬료가 구 시쯤 되어서 환상 중에 기도하는데 지금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났어요. 그가 항상 기도했더니,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내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는 거예요. 이 사람이 무슨 제4장입니까? 레위인입니까? 무슨 뭐 하는 게 뭐 있어요.


군인인데 그러나 그가 항상 구제하고 기도한 것이 하나님께 다 올려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다 기억하신 바 되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극단적으로 대제4장이나 바리스인들이나 서희관들이나 예수님께 야단맞은 저주가 있을지다 화 있으리라도 한 이 사람들의 기도와 구제는 상달되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지도 않겠다고 하신 말씀에 비해서 이 사람이 드린 이 한낮 백부장이 드린 기도와 구제는 하나님께 다 올려지고 향기로운 향기처럼 향연처럼 올려지고 그리고 기억하시는 바가 되었다는 거예요. 이 두 가지를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드리는 기도가 이게 정말 하나님께 상달되나 기억이 될 것인가? 그리고 내가 정말 지금까지 구제하고 이렇게 남을 도운 게 이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건가 그래 주님께서 오셔서 산상순을 통해서 가장 먼저 우리에게 일깨우신 게 뭐예요?

기도 중원부언 하지 말아라 이방인들의 기도하지 말아라 유대인들의 기도하지 말아라 정말 짧게라던데 진심이 담긴 기도를 해라 왜 구제하더라도 남 의식하지 말아라 사람을 보고 의식하면 사람이 알아줬으면 그만이지 하나님이 왜 또 알아주시겠냐 얘기를 하셨듯이 오늘 보니까, 고넬 요가 드린 거는 사람을 의식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여하고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 기억되는 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드려지는 많은 기도가 주님께 기억되는 기도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 우리가 드리는 구제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 께서 받지 않으시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늘 코렐료가 드린 거는 그런 거였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지금 사람을 요 바위 보내서 베드로라는 심원을 청해라 그는 무두장이 심원의 집에 유숙한다. 그분은 집은 해변에 있다. 아니 이렇게 자세히 알려주시면 나도 기도할게요 그렇게 말씀하면 안 됩니다.


그가 항상 기도했기 때문에 그가 늘 기도했기 때문에 늘 하나님을 의식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친밀감 깊은 친밀감 속에서 일어나는 결과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 고넬류에게 이렇게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아니에요. 조금 이따 보면 알겠지만, 베도록에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우리가 어린아이와 대화하는 법이 다르고 어른들과 어른들끼리 대화하는 법이 다르고 우리가 별로 친밀하지 않은 사람한테 넌지시 얘기할 때 대화가 다르잖아요.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같은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환상 중에 나오시기도 하고, 때로는 정말 꿈에 때 나타나기도 하고, 때론때는 그야말로 밝은 빛으로도 인지하시고 몸에 따뜻한 기운으로 도시고 별의별 방법을 한 학기 다 오실 수 있는 분이지 꼭 이렇게만 오시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거는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베드로가 누구 집에 있고 어떻게 불어라는 것까지 소상하게 이렇게 지시를 받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늘 그렇게 기도하면 반드시 이게 있다. 없다. 그걸 떠나서 그의 하나님을 향한 중심의 하나님께서 늘 지켜보시고 때가 이름에 하나님께서 그를 다음 단계로 끌어가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훌륭한 신앙 아니에요. 뭐도 필요합니까? 그러나 이 코넬리오가 신앙의 다음 단계로 어떻게 가야 되는지를 우리가 이번 주 다음 주를 통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죠. 그의 신앙은 또 다음 단계로 가야 되는 게 있고 베드로는 베드로 데러 또 다음 단계로 가야 할 신앙이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나는 거예요. 하나님은 여러분 절묘합니다.

교회가 시작이 되면 교회는 뭐 처음 오는 불신자도 있고 그야말로 목사도 있고 별의별 종류의 신앙이 다 있지만 하나님이 만약 교회를 이끌어 가신다면은 여러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맞춤 양육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한 사람 주목하면 한 사람을 놓치기가 쉽고 소수의 무리에 집중하면 다수를 놓치기 쉽지만 하나님은 그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맞는 최선의 방법을 알고 계시고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아시고 우리에게 가장 맞는 가장 좋은 하나님께서는 방법이 있다시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하나님을 여러분들이 신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 사람은 저런데 나한테는 말씀 안 하십니까? 나한테 말씀 안 하시면 안 하는 게 최선이에요. 해봐야 안 들으니까. 그래서 지금 이 일이 있고 나서 지금 무슨 일이 있습니까? 7절 8절입니다.


시작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코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이르고 요빠로 보내니라 그래 코넬료는 집안의 하인 두 사람을 지금 부릅니다. 그리고는 군인을 한 사람 더 불러요 자기 부하를 근데 누구를 부릅니까 경건한 사람을 불러 경건한 사람 왜 빨리 가는 사람 부르지 그럼 좀 날랜 사람 거기서 한 50 한 이삼 키로 되는데 능력 있는 사람 부르죠 판단력 빠른 사람 부르죠 머리 좋고 영리한 사람 쓰면 안 됩니까? 하나님의 일은 그게 기준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맡겨야 합니다. 여러분 왜 교회가 문제가 생기는지 아십니까? 사람의 잣대로 사람을 쓰기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머리 좋은 사람 하나님이 머리가 부족해서 뭐, 머리 좋은 사람 쓰시겠습니까? 판단력이 빠르고 영리한 사람 그런 사람은 사람이 써요 그런 사람들 사람한테 쓰이다가 사람한테 소진당할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한테 쓰임 받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앞에 잠잠히 엎드리면, 돼요. 그러면 하나님의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쓰실 것입니다. 그럼 쓰일려고 애쓸 것도 없어요. 뭐 고난의 길인데 꼭 가고 싶으세요. 그러나 길이 갈 만한 길이고 가야 할 길이라면 잠잠히 엎드리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급한 마음으로 똑똑한 사람 돈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 알려진 사람 유명한 사람 인기 있는 사람 쓰다가는 교회 질서는 한순간에 허물어지게 돼요. 그러면 그게 교회입니까? 교회가 교회는 경건한 사람들의 공동체예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 약속하신 성령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에요.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증인된 삶을 하는 거예요. 무슨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게 아닙니다. 그런 내 삶이 증인으로서의 삶이 되어 있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한들 그게 사람의 일이지 왜 하나님의 일입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너무 많은 일로 그야말로 믿음의 본질과 뿌리를 놓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 경건한 사람을 하나 부른 거예요. 저는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쓴다는 기준을 오늘날 이 시대의 모든 교회들이 그야말로 기억하고 사람을 세웠으면 좋겠어요. 뭐 조금 안다고 뭐 무슨 뭐 재직을 세우고 무슨 뭐가 되고 뭐가 되고 해 가지고 교회를 한순간에 인간적인 잣대로 끌고 가는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교회 필요한 게 뭔데 건물이 필요합니까? 돈이 필요합니까? 뭐 유명한 사람이 필요합니까? 아니 교회가 필요한 건 교회에 시급한 건 단 한 가지 경건함이에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정말 하나님 앞에서 때를 따라는 정말 어쩔 줄 모르는 그런 마음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는 그런 간절함 진지함 이게 이 시대가 회복해야 될 가장 중요한 덕목 아니겠어요. 교회가 뭐가 다른 게 필요한데요. 뭐 이렇게 좁아도 보니까, 오늘 뭐 합 보니까, 몇 명이나 나왔어요. 깜짝 놀랬네 나는 여기 나와 있는 거 보고 좀 넓은 데 가야 되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에요. 여기 다 서시네 보니까, 뭐 못 나오면 거기서 서면 되죠. 다 서면 되죠. 왜 꼭 나와서 해야 됩니까? 뭐 다 그렇고 그렇던데 보니까, 아니 뭐 이게 안 잘못됐다는 게 아니고 다 좋으시다는 뜻이에요.

너무 좋으시다는 뜻인데 뭐 분기별로 한 번씩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교회를 향해서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나의 여호와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경건하면 능력이 지금 제일 필요한 능력이 다른 게 무슨 게 필요합니까? 그거 잃어버리면 다른 거 다 있는 게 화근이에요. 화근 저는 오늘날 이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서 지금 이렇게 보내는 이 고렐리오의 선택의 기준 이게 우리 교회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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