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1. ‘여러 날이 지나매’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 날’은 19절의 며칠과는 다른 표현으로 ‘충분히 많은’, 그리고 ‘적당한 시간’을 뜻합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는 이 ‘여러 날’이 짧은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가리킨다고 보고, 이 기간은 갈라디아서 1:17에 나오는 사울이 다메섹을 떠나 아라비아로 가서 지낸 3년여의 기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25절의 그의 제자라는 표현에서도 사울이 회심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회심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사울에게 어떻게 제자들이 있겠습니까?
제자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시간이 지났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3여 년 후에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온 사울은 더욱 확신에 차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래서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그를 죽이고자 혈안이 된 것입니다.
또, 사울은 9:15-16에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대로 복음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선택된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하여 내적으로 충만해지기 위해 아라비아 사막에 가서 3년여 기간 동안 깊은 기도와 영적 체험의 시간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훈련과 연단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사울이 가졌던 내적 충만의 시간은 우리들을 포함한 모든 성도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비록 사울처럼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반드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내적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에 있어서도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지나치게 외적인 사역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일’들을 따라다니기에 바빠서 내면적으로 충만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은 많이 한 것 같은데 성과가 없습니다.
열심히 한 것 같기는 한데 아무런 열매도 없습니다.
나도 자라지 못하고, 남도 성장시키지 못한 채, 항상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에 대하여 마틴루터는 아주 귀한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날마다 세 시간을 기도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개혁이라고 하는 그의 사역의 열매가 바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한 내적인 충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맡겨진 사역에 많은 열매를 맺기 원한다면 반드시 이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역을 위해 달려나가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 앞에 설 줄 아는 지혜로운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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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어지는 본문에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하였다고 말씀합니다.
회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 그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수많은 유대인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사울을 더 이상 살려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기 위하여 모의한 것입니다.
이로써 예전에는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사울의 후원자였던 유대인들이 이제는 가장 적대적이고 위험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계교는 사울에게 미리 알려지게 됩니다(24절).
그래서 유대인들의 계교는 수포가 되었고, 사울은 목숨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유대인들의 계교는 처음부터 성취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사울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게 하시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이상, 그 어떤 계교도 그 계획을 방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하고, 아무리 많은 수단을 동원한다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러한 예는 아주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게 하려했던 모압 왕 발락의 실패(민 22-24장), 페르시아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려던 하만의 실패(에 3-9장)는 이 사실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또한,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왜냐하면, 비록 이 땅의 모든 일이 겉으로 보기에는 악인의 계교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고,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회복과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침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과 모든 축복을 반드시 받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악인의 계교가 아무리 기발하고 그럴싸하게 보일지라도 그 계교를 따르거나 동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진리를 따라서 정의롭게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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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어서 사울을 죽이기로 모의한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기 위하여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켰지만, 그들의 계교를 알고 있었던 사울의 제자들이 밤중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 아래로 달아 내림으로써 사울의 생명을 구원하였다고 말씀합니다(24~25절).
그런데 사울에게 있어서는 죽음의 고비는 그리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평생 동안 이와 같은 죽음의 고비를 그야말로 수없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와 은혜로 그 모든 죽음의 고비들을 넘겼습니다(고후 11:23-27).
그렇다면, 사울이 이처럼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겪으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남들은 한 번도 넘기기 어려운 죽음의 고비를 수차례나 맞닥뜨린 그를 계속하여 구원해 주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에게 ‘아직 완수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유럽에까지 전해야 하는 사명이 그에게 남아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모든 위기와 환난 속에서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 땅에서 행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자들을 그냥 죽도록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맡겨진 사명을 다 이루기까지 보호하고 지켜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해서 항상 위기에서 구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야고보 같은 경우에는 헤롯에 의해 일찍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행12:2).
그것이 야고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야고보는 순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야고보에게는 순교가 일종의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음의 일꾼에게 아직 사명이 남아 있다면 그를 어떤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턴은 “사람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까지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고백하며 아프리카 오지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사명이 남아 있는 한, 그래서 우리가 그 사명을 위하여 살아가는 한 죽음까지도 우리를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믿음을 붙들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두려움 없이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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