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재앙이 임했는가? 오늘 말씀은 그 질문에 두 가지로 답변합니다.
11-12절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온 것임을 재천명합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분을 내시며 맹렬한 진노를 쏟으신 결과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세상의 왕들도 믿지 못할 사건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명백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다윗 언약이 있고, 성전이 그들에게 있으며 지정학적인 요소가 삼면이 절벽으로 되어 있는 천연의 요새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이 그렇게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대상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13절입니다.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그럽니다.
핵심은 의인들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전한 거짓 복음이 핵심적인 문제가 되지만 여기서는 그 거짓 복음으로 의인들의 피를 흘린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의인들의 피를 흘린 것에 대한 모델은 바로 가인이 아벨을 죽인 창세기 4장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가인이 의인인 아벨의 피를 흘림으로 말미암아 땅이 더럽힘을 당합니다. 죄악의 결과 가인은 그의 근본된 토지를 경작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고, 땅으로부터 토해져서 땅에서 유리되며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의인의 피를 흘렸다는 이 포괄적인 표현 속에는 그들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거짓 복음을 전하고 그 결과 의로운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했는지를 함축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이방인들에게까지 모욕을 당하며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목회자인 올바른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커다른 음성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성도들에게는 올바른 복음을 들을 줄 아는 귀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잘못된 복음에 반응하는 성도들이 함께 어울려 유다의 멸망을 낳은 것입니다.
두 번째 원인은 무엇입니까? 17절입니다.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그럽니다. 여기서 주의해서 보아야 하는 것은 앞 단락에서 선지자와 제사장은 3인칭으로 그들입니다. 그런데 여기 왕에 대한 문맥에서는 우리라는 동일시의 시각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어용선지자들과 제사장들과 동일시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예레미야의 아픔이 배어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나는 공동 운명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눈에 보이는 열방을 의지한 것은 열왕기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은 멸망 직전의 상황을 말한다기보다는 유다의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결과를 반성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열왕들은 이스라엘과 아람을 대항해 앗수르를 의지했고(왕하 16:7), 바벨론에 저항해 애굽을 의지했습니다(렘 37:7).
그리고 마지막 20-21절의 선언은 에돔과 시온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 즐거워하던 열방을 상징합니다. 비록 에돔은 에서의 후손으로 이스라엘과 혈통적으로 후손이지만 유다와는 적대적이었습니다. 에돔의 거처를 우스 땅이라고 표현한다. 우스 땅은 욥의 고향인데(욥 1:1), 세일산지를 기업으로 삼고 있는 에돔 사람들의 식민지이거나 그의 세력권아래 있는 넓은 지역일 것입니다. 에돔은 유다가 멸망할 때 기뻐하며 남아있는 백성들을 향해 약탈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욥1:1 0~14).
정작 멸망을 가한 바벨론의 멸망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으면서 에돔의 멸망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지만 에돔의 멸망은 시온의 구원과 함께 다가오는 열방에 대한 심판을 예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온의 멸망을 길게 선포한 후에 시온의 구원에 관하여 한 절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처녀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않게 하시리로다.” 시온에게 임한 형벌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사로잡혀 가지 않을 것임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 묵상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잘못된 신앙과 의인의 피를 흘린 것, 하나님 대신 다른 것들을 의지한 것이 진노의 원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회복에 대한 말씀으로 끝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잘못된 복음을 사랑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것들을 의지하고 권력으로 삼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Jeremiah’s prophecy displays God’s global redemptive mission from beginning to end. The book starts with a focus on the nations when the Lord told Jeremiah that he consecrated him as a prophet to the nations before his birth (Jer. 1:5). Moreover, the Lord placed Jeremiah over nations and kingdoms to build them up and tear them down through his prophetic word (Jer.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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