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오늘부터 마가복음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복음서 중에 가장 짧은 복음이지마는 가장 먼저 씌워진 복음입니다. 오늘 마가복음 1장에 1절에서 20절까지를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에 그래 보라 내가 네 사자를 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죄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제사함을 받게 하는 회계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국가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하는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시니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그때 예수께서 갈릴린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의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40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레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갈릴레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러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새벽의 아덜 야 고부와 그 영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김는데 곧 부르시니 아버지 새배들을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아멘 마가 이 마가라고 하는 사람은 여러분들이 사도 행전을 보면 아시겠지만은 1차 선교 여행을 같이 갔다가 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갔다가 마음이 틀어져서 그냥 돌아가는 바람에 바울 눈밖에 났던 사람입니다.
바울이 사람하고 일을 못 하겠다. 그랬던 사람이지만은 이 마가가 나중에 정말 이 하나님 나라에 없어서 안 될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도 없어서 안 될 사람이 있습니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도 있고 있으면 안 될 사람도 있고 저는 이 마가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게 됩니다. 나중에 베드로가 베드로서를 보면은 내 아들 마가라고 말합니다. 이 마가복음은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 흩어지는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 로마에서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올 때 죽음 앞에서 믿음을 지켜야 할 사람들에게 씌여진 예수 그리스도의 기록입니다. 그렇다면 읽는 우리도 아마 그런 절반 역한 마음이 좀 있어야 될 거예요.
죽음이 날마다 찾아오는 그런 상황에서 믿는 것과 뭐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 그런 상황에서 믿는 것과는 믿음의 이 질이 다른 것이죠. 지금도 그렇지 않습니까? 북역 땅에서 찬송가 한 번 못 부르고 지하 감옥과도 같은 곳에서 믿음을 지키는 사람과 우리가 이런 데서 마음껏 찬양하면서 믿는 것과는 달라요. 이란이나 이라크에서 발각되면은 그냥 끌려가서 당장 죽음을 맞고 가족들에게 조차 명예존속 살인을 당하는 그런 데서 믿는 것하고 이렇게 자유로운 상황에서 믿는 것하고 다릅니다. 그래서 이 마가복음은 긴박감을 가지고 씌워진 책이라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마가가 나중에는 정말 하나님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서 바올이 나중에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낸 감옥에서 마지막 편지 디모데 후세에 보면,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는 내에게 유익한 사람이다.
이렇게 됩니다. 첫 출발은 조금 뭐 이렇게 잡음이 났지만 마가는 끝내 이 하나님 나라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된 것이죠. 그는 그래서 이 믿음을 반드시 지켜야 할 로마에 있는 네로 황제가 불을 질러 놓고 말이죠. 소문이 흉흉하게 도니까 스케이코트 희생양을 만든 게 희생양을 삼은 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저들이 불을 질렀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잡아주기 시작하는데 나중에 보면은 그냥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을 체포해서 기름에 담가서 그를 불에 태워서 횟불로 쓸 정도로 끔찍한 박해가 시작이 됐어 근데 왜 그들은 믿음을 지켰습니까? 무엇 때문에 배신하면 살 수 있는데,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살 수 있는데, 왜 죽음을 맞습니까? 그러면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에요. 그게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육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다고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믿음이란 그런 거 아닙니까 첫 줄 한번 다시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여기에 전부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복음 이것 말고 더 우리가 할 게 없어요. 성경은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이 됩니다. 설명이 없습니다. 선포만이 있을 뿐이에요. 하나님 창조 오늘 이 마가복음은 다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복음 이 네 단어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 인생의 전부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신앙이란 하나님 우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우선이 아니에요.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 길 가는 것 아닙니다. 착각하시지 마십시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예수 믿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믿는 것이죠.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다 전부입니다. 예수가 메시아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메시아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메시아다 그래서 그분 믿으면 구원받는다. 이게 복음이라는 거예요. 당시에 복음이라는 자주 쓰이던 단어입니다. 원래 가이사가 각 지방으로 이게 무슨 소식을 보낼 때 그걸 이 복음 유황겔리온이라는 말을 썼어요. 가스페어 굿뉴스 그런데 사실은 굿 뉴스가 아니었어요. 로마 카이사 황제가 맨날 보내는 소식들은 보면은 세금 올린다는 얘기입니다.
사역이 새로운 사역이 시작된다는 국민에게 전 국민에게 부역을 부과하는 그런 소식들을 전하면서 그걸 이왕겔리온 굿뉴스라고 전했어요. 누가 그걸 굿뉴스라고 그러겠습니까? 근데 이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 굿 뉴스는 예수가 메시아답니다. 전부예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걸 믿음은 사실 여러분 정말 100% 믿음을 이렇게 매일 모일 것도 없어요. 여기 모여서 이러고 있지 않습니다. 어제 제가 밤늦게 밤에 참 전화를 연락을 받고 병원에 달려갔어요. 87세 된 아버지 온 집안이 다 타종교를 믿는 집안입니다.
거기에 며느리 하나 들어가 가지고 며느리가 저희 교회 나온 지 한 6~7개월 되면서 집에 어떻게 좀 복음을 전할 거라고 그래서 마지막까지 복음을 거부하는 시아버님 이제 마지막 순간이라고 판단이 되고, 어떻게 영접 기도를 좀 예수님 믿게 좀 했으면 좋겠다. 와서 갔어요. 의식이 없죠 뭐 모든 호흡기 다 꽂아놨죠 뭐 줄만 주렁주렁 달려 있죠. 제가 우리 교육자들한테 중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이분이 지금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없지만, 그러나 여러분 마지막까지 심령은 귀로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영접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그분은 아무 반응이 없지만, 저는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을 마지막 영접하고 떠나도록 조금 전에 소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마른 마지막 강도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내가 오늘 밤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 약속했던 것을 지키신다고 믿습니다. 자살할지라도 자살하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 주님 이름만 불러도 나는 데려가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이거를 위해서 우리가 부름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인데 그게 영원히 죽느냐 영원히 사느냐 갈림길에 우리가 놓여 있기 때문에 이 복음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복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뭘 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한 게 없고 평생 죽을 죄인으로 살았지만 예수가 메시아입니다. 예수가 나의 9주입니다. 그 고백만으로 주님께서 데려갈 수 있다는 게 이게 복음의 시작이고 복음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근데 세례 요한이 이 땅에 온 목적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선포할 기를 준비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절부터 5절까지입니다.
시작 선지자 이사야에 그래 보라 내가 네 사자를 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으 이러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제 삼을 받게 하는 회계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여단 간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이미 이사야서와 또 이 성경에는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비하는 이사야와 같은 사람이 오리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그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 주님이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사람 이 세와는 자기가 이 땅에 왜 태어났는지를 알았습니다. 사가레와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난 이 세례의 왕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4장 집안의 아들이 때문에 예수님보다 훨씬 유명한 사람이에요. 능력 있는 사람이고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 문명으로 저 사람이 누군지 아무도 모를 때 혼자 예수가 누군지를 알았고 세상 죄를 쥐고 가는 어린 양을 보고 그는 자기 자신이 마지막 4명까지 뭘 다해야 할지를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가 뜨는 별이라고 해서, 뜨는 해처럼 새로 솟는다고 해서 시기하거나 빛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가 누군지를 강력하게 증언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그렇게 평가하십니다. 여자에서 태어난 주자 중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왜 그가 가장 큰 사람이 된 줄 아십니까?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그는 이렇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어떤 사람인지 6절 7절 8절입니다.
시작 요하는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시니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그는 너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낙타트롯을 입고 허리에 가죽 뒤를 띠고 메뚜기와 석 점을 먹는 이 삶 자체는 단순한 삶이에요. 그러나 이런 모양 자체가 이사야처럼 생겼던 모양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는 얼마나 유명했던지 그에게 세례받고 자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어요. 어떤 학자는 30만 명쯤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말합니다. 어쨌건 그는 전국적인 인물이었고 알려진 인물이었어요. 그렇지만은 그런 자신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보다 능력 많은 시니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신부 끈을 풀지도 감당치 못하겠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불로 세례를 베푸실 거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세례 받으셔야 합니다.
예수님도 세례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물 세례가 전부가 아닙니다. 물 세례는 불 세례를 위한 상징적인 의식일 뿐입니다. 나는 그런 상징적인 의식을 행하지만은 실제 여러분들이 받아야 할 성령세례 그분은 예수께서 베푸실 것입니다. 그걸 정확히 알고 고백했던 사람이죠. 우리는 대개 나를 감추고 속이지 않습니까? 사람이 더 유명하면은 사람을 어떻게든지 험담하고 깎아내리고 내가 사람보다 낫다는 걸 은연중에 과시하기 위해서 늘 남의 험담하고 내 자랑하는 삶을 살아가지만은 세레 여한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하나님께서 정말 예수님께서 그를 평가하게 된 이유는 저는 여기 있다고 요한복음으로 한번 찾아보십시오. 요한복음 3장 28절에서 30절까지입니다.
세례 요한이 정말 여자 중에서 난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된 게 무슨 이유지 예수님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같이 읽습니다. 시작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노인이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느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 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아멘 어머니 이게 우리 신앙의 기념입니다. 그래서 새로이 가는 우리 신앙의 정말 모범이에요. 우리가 따라가야 할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사실 어떻게 보면 세례 요한일지 모릅니다. 그런 공식적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지만은 제자도의 본질을 이렇게 한마디로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들려줄 수가 없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지만은 들러리 그 음성을 듣는 신부의 신랑의 사랑의 고백을 듣는 친구가 기쁨을 감당치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기쁨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목회자들의 기쁨이에요. 예수를 믿고 예수의 신부된 삶을 결단할 때 그냥 곁에서 박수 쳐주고 기뻐하는 게 우리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고백한 거예요. 나는 허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그리고 신앙은 본질적으로 예수님이 내 안에서 점점 커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고. 나는 점점 작아지는 것을 경험하는 거예요. 그분 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 이게 신앙의 전부입니다.
나중에는 소멸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 그래 나는 오간 데가 없고 구속한 주만 눈앞에 가득한 것 하나님이 영광으로 가득 차고 넘치는 것 이 길을 가는 게 정상적인 신앙의 길이에요. 점점 교만해지고, 점점 목이 곧고 점점 더 이게 아니란 말이에요. 정말 주님 앞에서 몸 둘 바를 모르고 여전히 점점 더 내가 더 큰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가 주님을 만나고 나서 나는 세상에서 모든 성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성도보다도 더 작다는 것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를 만남으로 나는 어떤 죄인보다도 더 큰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합니다. 하도 마을이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는 어려서부터 가말리엘 문화에서 정말 올곧게 자란 사람입니다.
무슨 뭐 공부를 못해서 애를 속을 썩인 사람도 아니고 무슨 사고를 치고 다닌 사람들 그렇지만은 정작 예수님을 알고 보니 만나고 보니 그런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보다 더 작다 이건 문법적으로 틀린 표현이에요. 그런 표현은 없습니다. 가장 작으면 가장 작았지 가장 작은 사람보다 더 작은 게 어디 있어요. 근데 그런 심경이 된단 말이에요. 나는 죄인 중에서 그냥 보통 죄인이 아니라 죄인 중의 괴수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죠. 그런 고백이 터져나오는 게 우리가 믿음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믿음 안에서 교만하다라는 얘기를 저나 여러분이 들으면 끝난 일이에요. 뭘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겁니다. 뭘 그냥 예수님과는 전혀 반대길로 가고 있는 것이죠. 이 세례 요한의 고백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흥하여야겠고 저는 쇠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도바울이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결국 못 박혔다라고 고백하는 것이죠. 작아지는 것은 더 모자라기 때문에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십자가에 못 박혀야 끝이 납니다. 작아져도 또 겸손하다는 겸손의 교만이 생겨요 나는 누구보다 작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교만을 또다시 경험하게 됩니다. 죽어야 끝이 나는 거예요. 어떤 분이 십자가에 걸려 있는 자기가 죽어 있는 것을 보는 환상을 보고 나서 제정신을 차렸다고 합니다. 죽어야 제정신이 드는 것이죠. 9절 이하를 읽습니다. 시작 그때 예수께서 갈릴이 나사베스로부터 와서 요단관에서 요단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의 비둘기가 지착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널었네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마태법음이나 다른 데를 보면은 찾아와서 그냥 세뇌 요한이 펄쩍 듭니다. 제가 세례를 가서 받아야지 주님 뭐 이러십니까 아니다.
찾아온 나를 내가 세례를 베푸는 것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공의를 이룬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찾아오신 하나님을 우리가 영접하는 것 외에 다른 공의를 이루는 방법은 없습니다. 주님 왜 이러십니까가 아니라 오신 주님을 그냥 맞아들이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예요. 우리는 신을 찾아서 방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을 찾아가면서 그게 애를 태우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에게 다가오신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건 신앙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입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올 때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느라 여러분 이 음성 들으면 십자가까지집니다. 한 남자의 사랑 고백을 받으면 30년 40년 죽으라고 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 고백을 받아야 여러분 방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고백을 받는 순간 우리는 호적 정리가 끝나는 거예요. 더 이상 갈등하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삶이 시작이 돼요. 한 남자 한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은 단순한 삶을 삽니다. 다 인생이 복잡하고 꼬이는 게 이것저것 눈치 보고 뭐 여기저기 찝적거리다가 일이 생기는 거지 그냥 한 남자 한 여자끼리 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병도 잘 안 생겨요 근데 성령이 어떻게 하시냐는 걸 봅니다. 12절 13절입니다. 시작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40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면 들 짐승과 함께 계시는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시더라 예수 만나면 다 광야로 가게 됩니다. 예외 없습니다. 여러분 왕국으로 가기 위해서 예수 믿는 사람 없습니다. 처음은 그렇게 다 착각을 하죠. 그러나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광야로 내몰리게 됩니다.
우리는 새 하늘 새 땅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라도 그분은 광야를 걷게 하십니까? 광야는 정처가 없는 곳이에요. 집을 지어봐야 소용이 없는 곳입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을 의지해야 하는 곳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광야로 살라는 게 우리의 정체성이에요. 여기 뜻을 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뜻을 정하기 때문에 무거워지는 거예요. 삶이 자꾸 집도 크게 지어야 되고 뭐든지 크게 돼야 돼요. 중후장대해지는 거예요. 무겁고 크고 길고 큰 모든 것들은 여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보게 되면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습니까? 그래서 때로 하나님께서 거두어가고 그러는 것이죠.
우리가 그걸 광야에서도 자꾸 집을 많이 가져가니까 야 그거 가지고는 이 광야를 통과 못한다. 이 여행 광야 여행은 짐이 많으면 못 갑니다. 가방을 다 줄여야 돼요. 14절 이하를 읽습니다. 시작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레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그러면 여기 보십시오. 때가 찼다 이때 째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카이로스를 말해요. 크로노스 그냥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어떤 결정적인 하나님의 사건이 임박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크라이시스하고 어원이 같죠 그래서 위기가 오면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건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영적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위기를 위기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모든 위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감춰져 있습니다. 때가 찼기 때문에 다가오는 게 위기예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끌고 온 거예요.
저는 이 예수님 이 표현을 보면 야 시집간 딸이 말이죠. 아버지한테 가서 한 밑천 챙겨가지고 온다 이런 소식이 들리는 것 같아요. 보통 딸이 맞아요. 이게 다른 것은 다 도둑 엑스라 그러지 않습니까? 가서 아버지 집에 가서 왕창 한미천 긁어가지고 오는 거 그분은 하나님 나라에 그걸 가지고 내려온 분이에요. 우리가 하나님 나라 우리 힘으로 못 가기 때문에 그래서 복음을 믿으라 회개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셨기 때문에 세상으로 줄다름치던 발걸음을 하나님께로 얼굴을 돌리라 이게 회개하는 거예요. 그렇게 얼굴을 돌리면 그냥 맞아주신다 이게 복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걸 전하러 온 거예요. 하나님 나라가 여기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 그리고 구원을 받으라 이거 하러 온 게 이게 전부입니다. 여러분 이게 복잡합니까? 어렵습니까? 꼭 신학교를 가야 합니까? 무슨 꼭 목사를 내가 돼야 됩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이처럼 단순하고 이처럼 명료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왔다 돌이켜라 전부인데 그런데 그걸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서 또 세례씩이나 만나야 되는 이런 일들 오늘로 그냥 끝을 내십시다. 무슨 세일의 새일이에요.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와 가까이 왔다 돈이 길어 회개 확실히 하면 돼요. 다 회개가 안 돼서 그래요. 왜 회개가 안 됩니까? 여전히 가진 게 좋고 세상이 좋고 죄를 짓는 게 즐겁거든요. 못 돌아섭니다. 계속 돌아섰다가 또 왔다 왕복 시간이 자꾸 짧아질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께서 하는 일이 뭡니까? 복음을 선포하는 것 이외 두 번째 하는 일이 이겁니다. 16절에서 20절까지 읽고 마칩니다.
시작 갈릴레벤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거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금을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브라 예수께서의 시대나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새매대 아들 야구부와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서 그물을 깊는데 곧 부르시니 아버지 세배들을 품꾼들과 함께 베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나를 따라와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제자를 부르는 게 두 번째 4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이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세우는 것이 그분의 미션입니다. 교회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고 이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부르는 일이 전부예요. 다른 일은 다 NGO가 해도 돼요. 다른 일은 이 세상에서 다 해도 됩니다.
때가 차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 회개하라 이 메시지가 들리는 곳 그리고 이 메시지를 나가서 전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기는 곳 이 교회 전부입니다. 무슨 일을 교회가 하기 위해서 만든 게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이 일을 위해서 지금 제자들을 부른 겁니다. 여기 보면은 뭐 그냥 가다 부르신 것 같은데, 여러분 이 예수님께서 이 땅이 태어나서 다 압니다. 누가 누군지 누구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아세요. 베드로가 누군지 야고보가 누군지 안드레 요한이 누군지 다 아세요. 그리고 처음 부른 게 아닌데 처음에는 안드레가 와서 저기 시몬한테 형한테 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한번 가보자 와서 보라 그래서 시작이 된 일입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한 1년쯤 지난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다 면밀히 관찰하고 계셨습니다. 누구를 부를 것인가? 스펙 좋은 사람 부르지 않습니다. 불을 지르면 불이 붙는 사람을 부르는 거예요. 이것저것 자꾸 좌로 재는 사람은 부르지도 않습니다.
머리 복잡한 사람은 뱃사람들이 여러분 조금 무식하지만 한 번 붙으면 일을 끝까지 하는 사람들이에요. 목숨을 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택해서 부른 거예요. 부른 사람들 이름이 교회입니다. 그 부른 사람들 중에 베드로가 나중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 믿음의 고백 위에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저는 여러분들이 오늘 우리가 시작되는 이 마가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다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 가까웠으니 돌이키라 내 삶을 전체적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내 삶을 방향으로 계속 가면서 하나님을 끌고 가니까 힘든 거예요. 하나님 따르기로 결정하면 모든 게 너무 단순하고 너무 쉬운데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주님을 끌고 갈려니까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세상 사람들 그런 가랭이가 찢어진다고 그래 왜 그렇게 힘든 신앙생활 하겠어요. 그냥 결심하면 되는데 줄곧 가면 되는데 가다가 죽으면 죽을 일이 생기면 죽으면 되는데 그래서 여러분 2000년간은 순교의 역사입니다. 자기 성취의 역사가 아니에요. 왜 순교합니까? 왜 이 순교까지 갑니까? 진리이기 때문에 사실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진실이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가짜를 위해서 목숨 거는 사람 없습니다. 가짜를 위해서 누가 죽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2000년 건이나 가짜가 여러분 드러나지 않고 가짜가 가짜인 채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철저히 알아본 사람들은 다 만났고 그분을 따랐고 그분이 우리에게 전한 것을 그대로 전하다가 다 일생을 마쳤습니다. 여러분이 뭘 하든 여기에 초점을 맞추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왜 집을 주셨습니까? 이 일하라고 집을 준 거예요. 왜 직장을 준 겁니까?
이 일하라고 직장을 준 거예요. 왜 결혼했습니까? 이 일 하라고 결혼 준 거예요. 왜 자식을 허락했습니까? 이거 전하라고 자녀를 준 거예요. 세상에 내보내라고 한 게 아니라, 세상에 내보내더라도 이 진실 이 능력을 가지고 세상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단은 이렇게 살아요. 가정교에도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 시대 교회만 보면은 지극한 이기주의에 빠져 있어요. 내 교회밖에 몰라 내 교회 잘 되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 뭐 관심도 없어요. 내교에 부흥하면은 뭐 옆에 교회들이 어떻게 되든 뭐 별 관심도 없어요. 저는 그게 아니라, 우리가 교회 주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끝까지 걸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복음 전하는데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 삶에 24시간이 복음을 향해 있으면은 복음은 전해지게 돼 있습니다.
내가 주님께 붙들려 있으면 주님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여러분들이 올해 2019년 한 해 무슨 주일에 선을 행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했지만, 아니요. 사실은 이 일주일간 내 우리는 주님을 향해 서 있기만 하면 나머지 이런 성령께서 하신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기도할 때 하나님 2019년을 주님께 드립니다. 시간만 드리는 게 아니라, 내 삶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 삶을 사용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게 해주옵소서 복음이 전해지다가 모든 것들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채워 주시는 것을 또다시 기쁨으로 바라보게 해주옵소서 다시 한번 믿음의 결단을 가지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부와 요한을 부르듯 나를 따르라 내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우리를 부르셨사오니 주님 사람 낚는 어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 이 복음을 전할 때 줄임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보게 하시고 눈 먼 자가 눈을 뜨는 것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 못 걷는 자가 걷는 것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입는 것을 보게 하시고 가난한 자들이 힘을 얻고 희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서는 것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삶의 목적과 우리의 삶의 방향이 단순해지기를 원합니다.
점점 더 어렵고 복잡해지는 세상 같지만은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 세상 것들도 사용할 수 있고 세상 것들에 묶이지 않고 세상 것들에 분몰되지 않고 세상을 쓸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해주옵소서 세상의 지혜를 뛰어넘는 지혜를 받게 해주시고 세상의 총명을 뛰어넘는 총명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하나님 따르는 자들의 지혜와 총명이 끝단지를 세상에 보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의 능력을 보게 해주옵소서 거룩의 능력을 보게 해주옵소서 하나님 담대한 믿음의 능력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세계를 저희들 알게 되었사오니 올해 2019년 이 복음과 함께 시작된 복음의 발걸음 어디를 가든지 예수가 그리스도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는 이 단순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에 모든 것들이 초점이 맞춰지게 하시고 집중되게 하시고 변함없이 거침없이 담대한 걸음을 걷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십자가에서 이 복음을 마지막까지 선포하신 우리 9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오늘 셀의 요한처럼 나는 쇠하여야 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흥하여야 합니다.
선포하고 올 한 해 그렇게 살기로 결단은 이제는 고개 숙인 모든 성령의 사람들 믿음의 형제들 자매들 위해 지금부터 영혼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죽언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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