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창고

[설교] 마가복음 1장 2

yt1981 2024. 1. 4.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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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막아보고 밀정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에게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마태복음 강의를 마치고 오늘부터 마가복음 강의를 시작합니다. 여러분 복음서는 네 가지가 있죠.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있습니다. 각각의 저자들은 각각의 예수님 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상을 각각의 수진자들에게 그들에게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예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지금 전하고 있는 이 복음서의 시제도 다르고 전하는 내용도 다릅니다. 그래서 보여주고자 하지는 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결국은 다른 것이죠. 예수님이라고 하는 한 분이 이 땅에 오셨지만 그분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네 명의 보험소 저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네 명의 복음소 저자의 시선을 따라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이 그만큼 크신 분이고 그만큼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마테마가 누가 요한 복음을 섞어서 하나의 복음서를 만들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가능하면 시간 순으로 엮어보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그것은 우리 인간적인 시도이고 사실 이 네 가지 복음소가 다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만큼 예수님을 알되 바르게 알기 위해서 다양한 시각에서 예수님을 접근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마테는 유대인에게 전했죠. 유대인에게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는데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과거형으로 조로 적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하셨던 왕의 설교 왕의 선언문 중심으로 설교 중심으로 내용을 이렇게 정했는데요. 마가는 내용이 좀 다릅니다. 마가는 이 당시에 헬라 문화의 아주 정통한 사람이었어요. 이 마가는 베드로의 조카로 알려져 있는데, 매우 부유했던 가정의 아들로 알려져 있고 마가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알려져 있는데, 그는 그가 당시에 이스라엘상들이 썼던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헬라어로 번역해서 알려주고 있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을 합니다. 그는 당시에 베드로의 아라모나 히브리어 설교를 당시에 유행하던 헬라어로 번역하던 통역관이었고요. 그리고 그는 전하는데 주로 예수님을 종으로 고난받는 종으로 오신 분으로 전하고 있고 그는 현재형 시제를 자주 씁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행적과 사역에 주목하고 있죠. 그러면서 누구 하는 또 다르죠 누가는 또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그분은 누가는 인자로 오신 예수님 고통받는 자의 치유자로 오신 예수님이 주목하고 있고 미래형 시제를 자주 쓰구요.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역사다 역사를 바꾸셨다 주목하고 있구요. 요한은 온 세상 사람들을 수신자로 하고 있고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촉두를 맞추고 있구요. 또 주로 시제는 영원한 영혼 속에서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고 주로 유화는 교리를 중심으로 쓰고 있고 이런 차이가 있죠. 그래서 별명도 달라요. 마태복음은 사자복음이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자의 포요를 보여주는 것 같은데, 마가는 소복음이다라는 일을 열심히 하는 소 있잖아요. 

소처럼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시는 것을 중심으로 쓰고 있어요. 그래서 소복음이고 누가 가서 누가 복음 사람 복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고 요한은 요한복음은 독수리 복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왜 마가가 소일까요? 마가복음은 16장으로 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내용인 40프로 후반부 11장부터 16장까지 10장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거든요. 11장부터 16장까지 전부 다 십자가 순환이에요. 이 내용이 한 40프로가 됩니다. 그래서 마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기 위해서 실은 긴 서론을 하고 있는 거예요. 앞에 그래서 1장부터 9장까지는 실제로는 마가먹으면 서론이고 10장의 예술인 예술 선생님이 입장하면서 시작해서 1장부터 본격적인 예수님의 이야기가 전 언개가 되기 때문에 긴 서론을 가진 수단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행동의 복음이라고 알려져 있고 예수님의 출생이나 준비를 생략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그것이 왜 그럴까라고 하는 것 좀 생각하면 마가복음을 지금 받고 있는 수신자인 로마인들의 성격이 그래요. 로마인들은 서론이 없어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성격이고 이 당시에 로마에 있었던 아주 큰 대화재가 일어났는데 그 대화제를 네로 황제는 자기에게 자꾸 그 책임이 돌아오니까 네로 황제가 미쳐서 불을 질렀다라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책임을 당시에 유대인들에게로 돌립니다. 기독교인들에게로 돌리죠 그러면서 기독교인들이 어마어마한 박해를 받습니다. 그래서 이 박해 예수 믿는데 왜 박해를 받아야 되는가라고 하는 이 질문에 마가 답을 한 것이죠. 

예수님도 박해를 받으셨다 예수님도 수난을 받으셨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는데 고난이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이었다는 거죠.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고 우리가 살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고난받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는 이 로마에서 박해 봤던 기독교인들에게 전하는 이 내용이 바로 복음서가 마가복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요 마태복음은 시작할 때 뭐부터 나왔죠 촉보부터 나왔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이렇게 족보로 시작을 하잖아요. 왜냐하면, 왕이니까. 왕은 족보가 중요하니까 그런데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고람받는 종이신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족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죠. 누가 종의 출생이나 족보에 관심을 갖겠어요. 그래서 마트에도 나왔던 족보가 누가 복음도 나오고 있거든요. 

누가 복음도 우리 힘없고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 그러니까 구원자가 과연 어떤 분이냐 족보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마태와 누가에는 족보가 나오는데 마가에는 족보가 없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다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종으로 오신 예수님이기 때문에 이 마가복음의 주제 성9도 역시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가복음 10장 45절 한번 찾아볼까요? 마가복음 10장 45절 마가복음의 주재선고라고 할 수 있는데, 한번 같이 읽어봅니다. 시작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성물로 줄여 함이니라 이것이 마가복음의 주제 선고입니다.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려고 왔다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마테가 주장하는 것처럼 왕으로 오신 면도 있지만 그러나 섬기는 종으로 오셨다 그분이 하신 일이 뭐냐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모든 이들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 하는 것이 마가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자 그러면 한번 시작해볼까요? 마가복음 1장 1절입니다. 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자 처음부터 바로 설움 없이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복음이다라고 하는 거죠. 복음이 뭐냐 복음의 시작 복음의 시작 복음의 근원 복음의 출발점이 누구냐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다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복음이라고 하는 말이 구약에는 안 나옵니다. 구약에는 좋은 소식이라고만 나오거든요. 좋은 소식 이사회가 주로 전했죠. 

좋은 소식을 그런데 그것이 헬라 문화를 지나고 로마 문화를 지나면서 유한겔리온이라고 하는 복음 좋은 소식이라고 하는 말로 정착이 되는데 유한겔리온이라고 하는 말이 이 당시에 뭘로 쓰였냐면 유한겔리온은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 라고 하는 말로 쓰였어요. 그러니까 새로운 왕이 등극을 해서 그러면 연호가 바뀌죠 그리고 나라의 이름도 바뀌고 나라의 분위기가 바뀌잖아요. 그렇게 새로운 제국이 도래했다라고 하는 것이 복음이에요. 위안겔리온이에요. 아니면 한 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시작됐다라고 하는 것, 즉 새로운 왕이 등장하고 왕조가 바뀌고 이제 세상이 바뀐다 새로운 나라가 온다라고 하는 것이 유한 엘리온이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제국들을 섬겼죠. 처음에는 앗수르였고요. 그다음에 바벨론이 찾아왔고 바벨론이 메데바사에게 망했죠. 

그러면서 페르시아가 제국으로 등직을 했고 페르시아가 헬라에게 망했죠. 헬라는 다시 로버에게 망했죠.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새로운 나라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는 나라 백성이 됐다라고 하는 유한겔리온이 선포됐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유한겔리온이 시작된다는 거예요. 이제는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이 세상의 나라 이 당시에 지금 식민지로 지배받고 있던 로마의 제국이 끝났다는 거예요. 그리고 로마가 아니라 이제는 새롭게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따라갈 새로운 나라 새로운 왕국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유한 갤리온이에요. 이것이 눈에는 보이지 않죠 이것이 어찌보면 로마가 아직도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아직도 로마의 황제가 세상에 왕인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이제 눈으로 보면 그렇지만 우리가 인간의 역사가 새로이 시작되어서 더 이상 로마는 인간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없고 이제는 예술 그리스도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가 왕 되시는 하나님 나라가 이제 우리에게 찾아온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복음이에요. 유한 갤리온이죠. 그래서 여러분 복음이라고 할 때 우리가 유한길리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자꾸 우리는 교회 안에서 신앙이 헷갈려요 우리에게는 좋은 소식이 뭔가요 각자가 원하는 좋은 소식이 있잖아요. 내가 성공하는 거 내가 명예를 얻고 내가 건강하고 내가 좋은 이야기 듣고 내가 칭찬 듣고 내가 꿈꾸는 게 되는 거 그걸 우리는 다 복음으로 알고 있잖아요. 승진하는 거 합격하는 거 그런데 여러분 그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아니에요. 성경이 바라는 유한 길리온은 왕이 바뀌는 거예요. 왕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는 거예요. 

이제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바뀌고 내가 살아가는 나의 정체성이 바뀌는 거예요. 그게 복음이에요. 새로운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 새로운 왕을 내가 모시는 것이 유한겔리온이에요. 어찌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원하고 있던 나의 기쁜 소식 나의 복음을 내려놓는 게 복음인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왕이 되고, 내가 주도자가 되고 내가 뭔가를 이루는 것이 내 인생은 성공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사실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모든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이제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선포하고 이제 그분의 나라 백성이 되는 것 이제 그분의 원리와 원칙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작정하고 선언하는 것이 복음이거든요. 유한겔리온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내가 잘 돼야 되고 내가 인정받아야 되고 내 탓대로 돼야 되고 이걸 못 버려요 그러니까 우린 결국은 복음을 안 믿는 거예요. 그래서 이 복음이 필요하니까 이 복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마테마가 누가 요안을 통해서 하나님은 네 명의 제자를 통해서 복음서를 우리 전해주고 계시는데 그래도 우리는 이 복음을 아직 모르는 거죠. 복음 그러면 예수님의 뭐 위인전쯤으로 이해를 해요. 그래서 예수님의 이야기 아니냐 복음은 그러나 그게 아니라, 복음은 새로운 왕이 오셨다 새로운 나라가 열렸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나라의 백성이고 새로운 왕의 백성이다. 이걸 우리가 알고 인정하는 거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삶이 바뀌어요.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헬라 제국 사람으로 살았다가 유한겔류를 선포되면 로마 제국 사람으로 바뀌는 거거든요. 

바벨론 제국 사람으로 살다가 페르시아 제국 사용으로 바뀌는 거거든요. 그니까 이전에 내가 왕 됐던 이 세상의 사람으로 살다가 이제는 예수님이 왕 되시는 하나님 나라 백속으로 바뀌어야 되는데 이게 우리는 어렵잖아요. 새로운 나라로 들어가는 게 우리에게는 이게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여러분 나라가 바뀌는 한나라는 망한 거잖아요. 새로운 나라가 출범한다는 얘기인데 이전의 나라는 망한 거예요.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는 얘기는 이전의 왕은 죽은 거예요. 자 그렇다면 이게 좋은 소식 아닐까요? 과연 이게 전에 있던 나라 사람에게는 이것은 심판이고 멸망이에요. 그런데 새로운 나라에 속한 사람에게는 이건 구원이고 이건 기쁨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되는 새로운 나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유한겔리온은 기쁨의 소식이에요. 

그런데 자꾸만 이전의 사람 옛사람 우리가 이전에 내 욕심과 내 계획 속에 자꾸만 매몰되어 있으면 우리에게 유한겔리온은 심판이죠. 이건 안 좋은 소식이죠. 이건 우리가 망한다는 소식이에요. 그래서 우린 이것을 그대로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에 나오지만 내가 더 잘 되길 원하고 교회에 나오지만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이 더 중요하고 자기중심성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는 이 보급이 마땅하지 않은 거죠. 이게 만득스럽지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온전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나의 생각 속에 빠져 살고 있는 거예요. 오늘 이 마가복음 1장 1절의 복음의 시작 이 한마디 속에 우리의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모시는 우리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마테마가 누가 요한복음 중에서 어떤 복음소가 제일 먼저 쓰였을까요? 많은 분들은 마가복음이라고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이 가장 단순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마가복음을 아마 마테나 누가가 나중에 참조해서 복음서를 기록할 때 원본을 마가로 놓고 거기에 자신의 기억이나 자신이 수집한 자료들을 더 포함시키지 않았을까라고 해요. 그러니까 마가복음이 처음 쓰여진 복음서고 첫 복음서의 1장 1절이 바로 복음의 시작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로 말하면 우리 번역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다. 나오지만 원문에는 시작이다. 이게 먼저예요. 근원이다가 먼저예요. 그게 뭐냐면 바로 아르케라는 단어거든요. 아르케라고 시작을 해요. 

그런데 아르케 시작이다를 시작하는데 그러면 이게 왜 중요하냐면 구약 창세기를 시작하는 구역을 시작하는 첫 단어가 뭐냐면 브레시트거든요. 브레시트 바로 태초의라고 하는 말인데 이것이 시작이다라고 하는 말이잖아요. 이 브레시트를 헬랑으로 옮기면 바로 아르케거든요. 시작이다. 그러니까 구약과 신약이 처음이 같은 말로 시작하는 거예요. 구약은 태초의 브레시트 그리고 신약은 시작이다. 아르케 이렇게 시작을 해요. 그래서 우리가 이 신약과 구약이 지금 관통하고 있는데, 구약은 창조가 일어나는 태초죠 창조 그런데 이 창조가 신약에 오면 복음의 시작이다. 에드아르케 유한겔리온 이렇게 시작을 해요. 그러니까 이 창조가 완성되는 것이 뭐냐면 복음이라는 거예요. 

이 하나님의 창조가 아름답고 이 창조가 같이 있어지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복음인데 그래서 이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이제 새로운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 이 복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온전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의미 있게 바꿔준다는 거예요. 자 그런데 이 복음의 시작이 뭐라구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구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 한마디가 마가가 전하고자 해 했던 핵심이에요. 복음이 뭐냐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다 이게 복음의 시작이라는 거예요. 이 표현을 그때까지는 쓴 사람이 없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 그 마 요셉과 마리아의 관계에 태어났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분이 인간으로 오신 그냥 100프로 인간이 아니라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 100%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또한 인간이셨잖아요. 100% 인간이잖아요. 그분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신다 메시아가 되신다 메시아는 기름 부은 받은 자 아닙니까 제사 자장이나 왕이나 아니면 선지자를 가르칠 때 메시아라고 했는데, 메시아가 그리스도죠, 즉 예수님은 기름 부분 받은 메시아신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것을 믿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 땅에 창조주의 통치자 아닙니까 그분의 아들이라는 얘기는 이제는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통치가 시작된다는 뜻이고 예수님 나라가 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을 믿고 그분 안에 새로워지는 인생이 우리의 예수님을 믿은 크리스찬들의 삶이라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이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요,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바뀌는 거예요. 삶이 바뀌는 게 복음인데 그래서 마테의 경우도 마테가 자기의 경험을 고백하고 있잖아요. 자기의 경험 자기는 세리였는데 세관에서 일하고 있다가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갑자기 마테에게 야 나랑 같이 가자라고 말씀하시죠. 그래서 와 나 같은 죄인을 찾아오셨네 그리고 당시에 가다 손가락질을 봤던 세리 마테가 예수님은 따라 나서죠 그러면서 예수님이 마트에 친구들을 불러놓고 잔치를 열어주시잖아요. 자 장면을 통해서 마테는 야 이분은 진짜 하나님 아들이구나라고 고백하잖아요. 마가도 그렇게 고백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마가도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마가가 자신이 변화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자신이 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나 마가의 고백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4장 51절로 가봅니다. 마가보무 14장 51절에 예수님께서 이제 고난을 받는 예수님 수단이 시작되는 고 장면이기도 한데요. 마가보무 14장 51절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읽어보겠습니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배 혼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우리에게 잡히매 배 혼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자 많은 학자들은 바로 이 14장 51절에 등장하는 이 청년이 바로 마가 요한일 것이다. 마가복음의 저자인 자기 자신일 것이다라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막아도 자기도 원래 원래는 형편없는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그냥 벗은 몸에 혼 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는 그냥 아무 생각 없는 한 사람이었는데. 

배 혼 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가던, 즉 아무런 가치 없던 사람이었는데. 이랬던 내가 달라졌다 무엇 때문에 바로 복음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믿는 복음 때문에 내가 달라졌다 라고 하는 것을 지금 이 마하가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가가 나중에 누가 되죠. 바로 베드로사도와 함께 복음을 증거하는 그리고 나중에는 사도 바울과도 함께 동역을 하게 되죠. 

그렇게 해서 이 베드로의 통역관이었고 또는 또 사도바울의 동역자였던 바나바의 조카였고 그랬던 이 마가요한 정말 우리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예수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로마 교회에 소망을 주었던 바로 이 마가 요한의 복음서 바로 이 복음서는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인생의 변화를 지금 요구하고 있고 그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고 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나 내가 과연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복음을 제대로 지금 따라 살고 있나라고 하는 것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복음에 대해서 오늘 이 말씀은 강조하고 있는 바가 있는데, 바로 우리 4절 한번 볼까요? 

세례유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의 사항을 받게 하는 회계의 세례를 전파하니 그랬어요. 회계 바로 이 회계가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예요. 회계라고 하는 말은 메타노이아거든요. 메타는 다르다라는 얘기고 노이야는 생각한다는 뜻이에요. 다르게 생각한다. 다시 생각한다는 거죠. 내가 살아오던 나의 인생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과연 이대로 사는 것이 맞나 아니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겠다. 내 모든 생각과 뜻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 그것이 회계 메타노이아거든요. 그래서 이 메타노이아가 우리가 잘 공부했던 구약의 히브리어 개념으로 보면 슈브입니다. 슈브 이 슈브는 돌아간다 돌이킨다인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돌이킬 때 쓰는 단어가 슈브잖아요. 이 슈브에 헬라어 번역이 메타노이아예요. 

회개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나를 위해 살던 인생 내가 더 잘되기 위해서 기도하고, 내가 절 더 잘되기 위해서 하나님께 구하고 예배하던 나의 인생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돌이키는 슈브 메타노이야 회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보급이죠. 그래서 5절에 보시면,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유단강에서 그에게 세해를 받더라 그랬거든요. 

자기 죄를 자복하는 것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 나와왔는지 내가 더 이상 왕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내가 나의 왕이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바로 아는 것 그래서 나의 죄를 자복하는 것 그리고 세례를 받고 이제는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고 내가 나를 개선시킬 수 없고 오직 예수님만 나의 왕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세례를 받고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 그분의 백성이 되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가 마가복음을 이제 시작하면서 이 복음을 바르게 알기를 원하고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삶을 복음의 사람으로 내어드리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회에 오르더라도 복음을 모르면 사실 교회를 잘 다니는 게 아니죠. 다른 사람에게 오히려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알아서 정말 섬겨야 할 분을 바르게 섬기고 높여야 할 분을 높이고 영광 돌려야 될 분을 영광 돌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름을 우리가 내 나를 살리는 이름으로 고백하고 내가 그분으로 인하여 내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고 세례받고 예수님의 백성이 되어서 예수님만 섬기는 그러한 모습으로 다시 한번 거듭나는 기회가 되길 원합니다. 이 아주 날카로운 복음 그러면서 급박한 복음 그러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집중하는 마가복음을 통해서 다시 한번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워지는 복된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마가복음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아르케 근원 시작 새로운 복음을 저희들 이 시작부터 바로 알게 하시고 복음의 시작이 되신 예수님을 확실하게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예수님이 왕 되신 새로운 나라 새로운 제국 하나님의 왕국이 시작되었음을 저희들 분명히 알고 더 이상 내가 왕 대 의거하고 나를 왕 삼으려고 하는 나를 주인 삼으려고 하는 모든 의도와 시도를 내려놓고 이제 온전히 예수님만 따르고 예수님만 높이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나를 위해 교회 다니고 나를 위해 예수 믿고 내가 잘 되려고 하나님을 따르는 어리석은 모습을 내려놓고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살고 나를 내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종으로 살았던 모습을 저희도 따라 살고 걸어가는 복된 저희들 복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고 우리 삶이 오직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섬기는 복된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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