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창고

[설교] 마가복음 12장 2편

yt1981 2024. 1. 2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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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가복음 12장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에게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가복음 12장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 가운데 나온 비유 이야기입니다. 흔히들 포도원 농부 비유라고 하는데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그곳에 있던 바리세인과 대지사장들 서기관들 율법 학자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자기들이 가장 경계하던 예수님이 멀리 갈릴리에 길일 땐 그래도 좋아 괜찮았는데 그래도 경계해서 거기까지 가서 방해하고 했는데, 예수님이 지금 쳐들어오신 거예요. 자기들의 종교적인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신 겁니다. 그러니까 긴장을 해서 예수님께 쫓아가서 당신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당신 무슨 당신이 힘이 있어서 이렇게 성전을 마음대로 정화하고 이렇게 왜 파느냐 이렇게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죠.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 마가복음 12장의 포도원 농구 비유입니다. 자 보겠습니다. 1절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 울타리로 두르고 즙잖은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새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자 주인이 나와요. 포도원의 주인이 등장을 하는데 여러분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했다는 것을 예수님이 잘 알고 계세요. 너무 잘 알아요. 왜 할까요? 예수님이 포도원의 주인이기 때문이에요. 즉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것을 사람에게 맡겨주셨잖아요. 너희가 이름을 짓고 너희가 정복하고 다스리고 세상을 맡아라 쉬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럴 때 주인이 누구냐 그것을 만드신 분이 주인이죠. 창조하신 하나님이 주인이시죠. 하나님과 함께 태초의 천지를 지으신 예수 그리스도 내가 주인이라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너무나 본인의 마음을 잘 알고 본인의 행하심을 잘 설명하시는 거예요. 한 사람이 있었는데, 포도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포도원 이 포도원은 구약에서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으로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 표현이에요. 그래서 포도원이라고 그러면 유대인들은 이미 다 알고 있어요. 포도원을 만들었어 하나님이신데, 포도원 그럼 우린네 라고 알고 있는 거죠. 산 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었다 그렇게 해서 다 자신이 열심히 하나하나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렇죠. 하나님이 다 지으셨죠 이스라엘이 동쪽으로 흐르는 요단강이 있구요. 남쪽 해부론 산지의 고지대들이 있구요. 바산 곤란의 고지대에서 초원에서 암소들이 자라구요. 이 모든 것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 만드셨죠 이 지정학적 위치인데 하나님 만드셨죠 다 만든 다음에 어떻게 했어요. 농부들에게 새로 주고 타국에 가버렸습니다. 

즉 새로 갔다는 얘기는 이제 그들이 청직이란 얘기죠 주인이 아니에요. 그런데 마음껏 사용할 수는 있어요. 왜 주인이 없으니까. 타국이 가버렸으니까. 자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이제 이 포도원을 농부들이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거죠. 여러분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지은 포도원 주인으로 본인을 이야기하실 때 구약에는 많은 경우에 긍정적인 내용이 아니었어요. 부정적인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를 하실 때 이미 뉘앙스가 뭐냐면 이미 죄악을 범하고 주인의 기대에 못 미치는 기대에 실망시키는 이스라엘 백성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삶을 지금 예수님이 유념하시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 이사야 5장은 뭘까요? 

이사야가 특별히 더욱 예수님을 지금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야기를 구약에서 이미 보여준 바 있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주 실망하셨다라는 걸 표현할 때 이 포도원이란 말 잘 쓰거든요. 이사야 5장 1절 보겠습니다. 이사야 5장 1절 네 같이 한번 찾아볼게요 5장 1절과 이 절 말씀을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구약 972쪽에 있습니다. 자 시작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으며 심히 기름진 사내로다 하나님께서 포도원이 있어요. 심이 기름진 산에 있어요. 어떻게 했냐면 이 절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직접 땅을 폈어요. 직접 도를 제외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단 말이에요. 아주 정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 백성을 심었어요. 

자 그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안에 술틀을 팟도다 이제 다 해줬어요. 모든 걸 다 해줬어요. 마치 오늘 막아보면 12장 1절과 똑같죠 그런데 결론은 뭐냐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그랬어요.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랬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 백성을 기대했는데 그들이 들포도였다는 거예요. 하나님 사랑하지 않고 우상 숭배하고 정의와 공의를 버리고 함부로 남을 약탈하고 자기의 배를 채우는 들포도가 되어버렸다는 거예요. 자 바로 이사야 선지자가 노래했던 이 포도원의 노래가 오늘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마가복음 12장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지금 이사회를 바라보면서 마음 아파하시는 마음을 담아서 말씀하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누구라는 거예요. 하나님이라는 거죠. 포도원의 주인인 포도원의 주인인 하나님이 바로 나다 그 내가 지금 너에게 왔다라고 지금 말씀하시는 거죠. 이 절입니다. 

때가 이름에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미 그랬어요. 때가 이름의 이것이 바로 카이로스거든요. 시간에는 카이로스와 크로노스가 있죠. 크로노스는 자연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말하지만 그냥 오늘 몇 월 며칠 뭐 이런 거예요. 그런데 카이로스라는 얘기는 그 결정적인 그때가 되었다라고 하는 거예요.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종을 보내시던 때 주인이 포도원 농부들에게 종을 보내는 때가 있는데, 왜 보냈느냐 바로 포도원 소출을 얼마를 받으려고 보냈다는 거예요. 자 여러분 이 포도원 주인이 세를 준 거잖아요. 맡겨두었어요. 잘 한번 경작하라고 그리고 나서 솥을 얼마나 받으려고 보냈어요.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과연 너희들이 포도 농사진 거 다 내놔 다 내 거야. 그런 뜻으로 보냈을까요? 너희들 수거하는 건 소용없어 어차피 내 거니까 다 내놔 이런 마음이 아니죠. 

여기 나오는 소출 카르포스라고 한 단어는요 카르포스는 원래 의미는 열매나 실과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이게 어떤 뜻으로 이 당이 쓰였냐면 어떤 것으로부터 생기거나 나오는 것 결과물을 의미했어요. 서경에서는 이 카르포스가 어떻게 주로 쓰였냐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 마땅히 요구되는 행위들을 나타낼 때 쓰였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마땅히 요구되는 행위가 뭐예요? 바로 하나님을 높이는 거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거죠. 즉 주인이 종을 보낸 이유는 뭐냐면 이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보냈다는 얘기의 원래 의미는 이 주인의 주권을 인정받기 위해서였다는 거죠. 우리가 비록 이거 이 포도주를 포도원을 지금 사용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포도원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것을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거 이게 소출이에요. 즉 뭐 경제적으로 뭐 얼마를 내놔라 몇 프로를 내놔라가 아니라 그분이 우리 주인이 있습니다. 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거죠. 

다 맡겨 놓았지만 그러나 아직 통치권만은 주인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거죠. 여러분 이게 바로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직장 다니고 학교 다니고 가족 생활하고 먹고 사는 거 여러분 다 우리 맘대로 하잖아요. 다 우리가 주인인 것처럼 살아요. 그러나 우리가 주인은 아니죠. 다 내가 할 수 있지만 다 내 뜻대로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 뭘 요구하세요. 하나님의 주인이시다 이거 하나 요구하시는 거예요. 그게 뭐예요? 그게 예배예요.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내가 이 땅은 살아가지만 그러나 이 땅에 내가 살아가는 의미와 목적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거 인정하는 게 바로 예배예요. 그래서 예배가 중요한 것인데 자 우리는 이 예배를 습관적으로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주권을 인정합니까? 정말 우리의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인정합니까? 아니면 내가 주인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절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세요.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그랬어요. 심히 때렸다는 말은요, 가죽을 벗겼다는 뜻이에요. 어마어마한 말이에요. 거저 보냈다 헛되게 보냈다는 거예요. 열매 없이 보냈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 바로 우리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십니다. 말씀을 맡은 자들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주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경배하지 않고 우리가 그들을 때리고 거저 보냈담 그대로 박해 있다는 거예요. 4절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자 또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선지자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했어요.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을 했습니다. 또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그들을 니혹해 버렸어요. 

왜요 내가 주인 되려고 5절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하나님은 계속해서 인내하시죠. 인내하시면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다른 종을 보내십니다. 여러분 원래요. 이것이 비우니까 이렇지 실제였다면 첫 번째 종을 때리고 시비 거저 보냈을 때 이때 이미 심판에 임했죠. 이미 너희가 감히 내가 보낸 종을 때리고 거저보내 이때 이미 주인이 출동해서 다 끝내버렸겠죠. 그러나 이것은 비우기 때문에 기다리고 기다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지금 다 보여주고 계신 거예요. 그래서 3절에 종이 왔죠 4절에 다시 다른 종 왔죠 5절에 다른 종이 또 왔죠 또 외 다른 종들이 계속 왔죠 많이 계속계속 계속 오는데 다 때리고 거저 보내고 상처 내고 능욕하고 그러더니, 죽였다. 때리는 때리고 죽였다. 여러분 이것이 뭐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주권으로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의 주권은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자 그런데 6절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그랬어요. 여기서 한 사람이라고 한 단어 헤이스란 단어는 헤이스는 하나를 뜻하는 말이긴 한데 이 하나라고 하는 케이스가 신학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바로 유일신 사상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라고 하는 유일신 사상을 나타내는 단어가 바로 헤이스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한 사람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바로 독생자죠 독생자 유일하신 분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여러분 사랑하는 아들이 누구예요? 예수님이죠.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는 표현이 공의적인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고 올라오실 때 요한강에서 세례받고 올라올 때 하늘에서 비둘기가 지 성령이 내리면서 하늘이 열리고 뭐라고 말씀이 나왔어요. 

이른데 사랑하는 아들이라 나왔죠 내 기뻐하는 자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그리고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을 때 그때 하늘에서 또 뭔 소리가 들려요 네 사랑하는 아들이라 그의 말을 들어라 말이 나오죠.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표현은 아주 고유한 표현이에요.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자 그러니까 이제 유의를 하신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십니다. 어떤 마음으로 최후로 일을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자 그래도 내가 이 청지기로 삼았는데 내가 만든 포도원의 종들인데 내 아들은 알아보겠지라고 아들을 보냈단 말이에요. 그런데 7절입니다.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일은 상속자니 다. 자 죽이자 그러면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무서운 사람들이죠. 이 당시에 이런 법이 있었어요. 

당시 법에 의하면 이 땅이 있는데, 상속자가 없는 땅이나 아니면 3년 동안 주인이 소출의 이익을 받아가지 않는 땅, 즉 주인이 3년 동안 벌여놓는 땅은 경작지가 소작인의 소유가 되는 법이 있었어요. 예 굉장히 이 놀라운 법이죠. 그런데 이미 3년 동안 소출의 이익을 주지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자기께 거의 됐어요. 이제 상속자만 없으면 이 땅 우리께 되겠다. 싶은 거죠. 그래서 이들은 지금 주인의 주권을 부족 자신의 주권을 주장하는 행위를 지금 하려고 마지막으로, 상속자를 죽이자라고 결정한 거죠. 그래서 8절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 흘리실 것을 완전한 설명해 보여주신 거죠. 

이것은 누가 봐도 누가 봐도 부인할 수 없이 바로 이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것을 이미 아시고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과연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그분은 어떻게 맞아드릴까요? 우리는 와 예수님 오셨어요. 예수님 정말 기뻐요라고 할까요? 여러분 우리가 만약에 내 것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거부할 수도 있어요. 왜 내가 내 것 누리는 게 더 좋은데 예수님 왜 굳이 오셨어요. 예수님 좀 나중에 오시지 그러셨어요라고 할 수 있단 말이에요. 내가 내 소유가 더 좋고 내 지위가 좋고 내 명예가 좋고 내 행복이 좋으면 예수님이 그만 못해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죽여서라도 내 행복을 유지하고 싶은 거죠. 그런 마음이 들 거란 말이죠. 무서운 일이에요. 여러분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내가 가진 어떤 것보다 예술님이 중요하다는 거죠. 여러분 여기 보세요. 

이 포도원의 농부들은 지금 무슨 오해와 착각을 하고 있냐면 주인의 아들에게 어떤 행위를 하는 것 그러니까 주인의 아들을 맞아들이는 것보다 이 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여러분 주인의 아들을 잘 맞이하는 게 중요해요. 이 땅을 내가 갖는 게 중요해요. 여러분 이 땅은요, 내 가질 수 없어요. 오히려 내가 주인의 아들을 환대하면 주인의 아들이 나한테 이 땅을 더 오래 잘 소작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도 있어요. 아니 정말 운이 좋으면 주인의 아들이 나에게 있다면, 줄 수도 있어요. 그러나 내가 여기서 주인의 아들이 아니라 이 땅을 선택해버리면 내가 여기서 땅을 선택해서 주인의 아들 죽이면 나는 영원히 있다고 소유할 수 없죠 그런데 지금 어리석은 선택을 유대인들이 하고 있다는 거예요. 

자 그래서 이에 좌와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죠 마치 그 당시 예루살렘 성 밖의 골고다에서 예수님을 죽여서 시체를 거기서 이제 매장하는 것을 보여주는 단어죠 구절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자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어요. 뻔하죠. 와서 그렇죠. 그분이 옳은 날 종말에 떼죠 농부들을 진멸하고 다 죽인다는 거죠. 헛된 꿈을 꿨던 자들 내가 이 아들을 죽이면 내가 이 소출을 안 주면 내가 이 포도원을 내 걸 만들 수 있겠지 헛된 꿈을 꾸었던 자들은 진멸해 버린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주인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고 복음이신 예수님을 무시하면 그분을 외면하고 내 삶에 더 집중하면 우린 다 진멸당할 것입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요. 포도원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다른 사람들 이 처음에는 종들이 주었어요. 맡겼어요. 

그런데 그들이 너무너무 하는 행동이 정말 복음과는 정반대로 주인의 뜻과는 정반대로 주인을 인용하지 않고 자기네들이 주인 되려고 하니까 어떡해요. 그들을 다 진멸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는 거예요. 즉 당시에 종교를 가지고 있던 자들이 누구예요? 종교 지도자들 이제 그들의 것을 빼앗아서 오히려 무시받던 서민들에게 넘겨져 버리죠 기득권층 그들이 남자들이 에햄 하고 어깨 피고 다니던 자들 그들에게서 빼앗어 누굴 줘요 세리와 창녀를 줘버리고 죄인들을 줘버리고 그리고 유대인들 그때 우리가 하나님 자녀야 해도 유대인들에게 뺏어 누굴 줘요 이방인들을 줘버린다는 거예요. 천국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런 자들이 아니라 당시에 무시받던 여인들 과부들 어린아이들 힘없는 자들에게 천국을 주실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오늘 우리가 받아야 될 말씀의 내용이에요. 충격적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 드러내 보여주고 계십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 주인공이 되고, 싶은 내가 하나님 나를 소유하고 싶은 내가 천국의 주인공이 되고, 내가 하나님 없이 내가 하나님 되려고 하는 인간의 죄성을 낱낮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말해줍니까 우리가 소유하고 싶은 어떤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붙잡아야 될 것은 바로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한 사람 바로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죠. 그분을 붙잡는 것이 복음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 다른 어떤 유익도 아니라 다른 어떠한 것에 마음이 팔리지 않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 마음을 내어 드리는 일 그분을 섬기는 일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받는 일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러나 나만의 욕심을 위해서 자기중심성 버리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생 행동하고 그렇게 생활하고 남들이야 병에 걸리든 남들이야 죽든 말든 관계없이 나만 입에 잘 들이고 나만 신앙생활 잘하면 된다.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처럼 살아간다면 결국은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 것이고. 상속자를 우리가 무시하는 것이고. 내가 주인 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진멸당하고 포도원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그런 불행을 겪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가 오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정신을 차리고 우리가 복음이신 이수임을 다시 한번 꼭 붙잡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직 그분 안에 생명이 있고 오직 그분 안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진정한 예배 진정한 신앙의 삶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말씀 읽으면서 저희는 두렵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이 땅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하나님이 맡겨주신 가정 하나님 맡겨주신 포도원인 우리 교회 우리의 일터를 우리는 어떻게 지금 사용하고 있는지 우리 주님을 온전히 주님으로 모시고 있는지 주님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있는지 내가 주인 되려고 소출을 거부하고 내가 주인 되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거부하는 그러한 못난 모습은 아닌지 그러한 죄인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 우리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예수님을 올바로 따르는 올바른 복음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오늘도 저희들 맡겨주신 이 삶을 열심히 살아 오직 죽게 웅왕 돌리며 주님의 이름에 찬양하며 그분을 경묘하며 높이는 온전한 예배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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