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오늘 13장 말씀 14절로 37절까지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멸망에 가정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 진정 그때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날에는 아이 벤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날들이 환란의 날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회도 없으리라 만 1주께서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셨느니라 그때의 어떤 어떤 사람이 너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때 환란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에 비유를 베오라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종들에게 군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런지 밤중일런지 닭 울 때일런지 새벽일런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하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감탄하는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서 성전의 최후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말씀해 주셨지요 그래 모든 것에 종말이 있지마는 인간이 볼 때 난공불락이고 영원할 것 같지만은 그러나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제는 끝에 대한 얘기예요. 그리고 저렇게 화려한 성장 성전 저렇게 웅장한 성전 어떻게 무너질 수 있을까? 조금도 의심할 수가 없는 성전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곧 무너질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 우리 인생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이 땅에 더 이상 우리가 모습을 지니고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이 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우주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끝없는 윤회 속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시작이 있고 우리 인생은 종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말을 기억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삶의 태도는 없습니다. 우리 삶이 유하다는 유한하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과정을 정말 밀도 있게 충실하게 채워가는 삶이 되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보다도 삶을 더 잘 준비할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에 우리가 날마다 죽음을 기억하면서 사는 것이죠. 라틴어로 우리가 메멘토모리라고 하는 말을 듣는데 늘 죽음을 기억하라는 사람들의 경고이죠. 우리가 죽음을 기억한다면, 삶에 대한 태도는 달라지지 않 않겠습니까? 그런데 태도가 확연하게 둘이 갈라지는 모습을 본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알고 있지만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정작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 또 너무 당황하는 거예요. 암 선고를 받으면 어떻습니까? 두 가지 확연히 태도가 갈라지죠 그냥 암 선고를 받는 순간부터 죽어 이미 죽은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 시간을 그야말로 투병하느라고 모든 시간을 다 쓰고 마는 경우가 요즘 하여튼 그런 때예요. 사실 그 환자를 뭐 이렇게 심방할 일이 많고 병원도 많이 가지만은 좀 죄송한 표현이지만은 이 병원 시스템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오히려 이렇게 단축시키지 않나 빼앗아 가지 않나 그런 이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예전처럼 이렇게 죽음이 다가온다는 걸 우리가 다 예지하고 이렇게 느껴지면 차근차근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는 시간적 여유가 생길 테인데 오히려 그냥 마지막 순간까지 치료에 급급하다가 그야말로 죽음에 대한 준비가 그냥 되지 않은 채 우리 인생을 마감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늘 죽음에 대한 대비가 돼 있어서 정말 죽음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마음 때문에 이 삶이 더욱더 밀도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이 6개월 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너무 하여튼 기뻐하면서 그때부터 하루하루 좌우지간 만날 사람 만나고 사과할 사람도 만나서 사과하고 또 그동안 미처 만나서 교제하지 못한 분들 때로는 병상으로 부르기도 하고 그래서 6개월 동안 너무 차근차근 즐겁게 준비를 하다가 아니 6년을 살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준비를 너무 일찍 시작했나 할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랬다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끝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되길 바랍니다. 시험공부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은 시험이 선물이에요. 시험이 기다려집니다. 아니 제 얘기가 아니고 저는 뭐 시험을 원래 준비 잘 안 하는 체질이어서 늘 이렇게 시험이 좀 조마조마한 편이었는데. 그래 시험 준비를 제대로 하고 과정을 충실히 하는 사람은 끝이 온다는 거에 대해서 얼마나 기대가 됩니까? 모든 산모들이야 산달이 다가온다는 것이 불안하기보다는 기대가 되는 일이죠. 우리 인생의 종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종말에 대해서 말씀을 하세요. 이 성전의 종말에 대한 말씀과 그리고 그야말로 온 이 우주적 종말에 관한 말씀을 함께 들려주고 계십니다.
오늘 앞부분은 성전의 종말이 다가올 때 환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큰 환란이 나중에 다가왔죠 그야말로 처참한 살육전이 있었고, 그야말로 성전 전체가 그냥 다 황폐화되는 그런 이 창극이 일어나게 됩니다. 부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에요. 그리고 뒷부분에 나오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마지막 심판에 관한 얘기입니다. 이 마지막 심판에 관한 얘기도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반드시 날과 그때는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아마 알려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걸 알면 사람들이 얼마나 그냥 불안해하겠어요. 제대로 준비하는 사람은 소수고 아마 마지막 때를 알면 아예 패닉 상태로 들어가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이단들은 이 마지막 날과 때는 모르지만은 연도와 달은 안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미선교회라는 뜻에는 그때 1992년 10월 달이 마지막이라고 주장을 해서 당시에 소란과 하여튼 참 웃지 못할 일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그래 그걸 이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런 해석 해석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날과 때는 모르지만 연도와 달은 알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여러분들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모든 이단들이 성경에서 나오지 성경 밖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이 성경을 가지고 그야말로 온갖 이단들이 다 태어나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을 해 주십니다.
오늘 무화과의 교훈을 통해서도 예수님께서 그런 징조들을 잘 유심히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일도 징조나 조짐 없이 일어나지 않지 않습니까? 제가 이게 얼굴에 입이 두 번 돌아가 보니까 그게 조짐을 알아요. 그래서 지금 아주 조심을 합니다. 처음엔 몰랐어요. 이게 뭐 제일 첫 번째 증세가 여러분들 아시다시피 어깨가 뭐 쪼개지듯이 아픈 이런 증세들 있지 않습니까? 무시하고 그냥 또 우리가 살죠 목 뒤끝이 뻣뻣하고 뭐 그냥 여 귀 뒤에 이걸 뭐 나중에 무슨 삼사 신경계라 그러나 이게 그렇게 아프고 그리고 뭐 아침 새벽부터 하품이 나오는데 견딜 수가 없어요. 졸립고 피곤하고 하여튼 제가 알기로는 하여튼 열대까지 그런 사인들이 있는데, 그걸 하나하나 모두 무시했더니, 그냥 한순간에 이미 돌아가는 그런 변고를 맞게 되었어요. 그뿐이겠습니까? 우리 그러니까 뭐 어느 날 갑자기 암 선고를 받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몸이 내는 온갖 사인이 있는데, 그걸 우리가 깡그리 무시할 때 그런 병이 온다는 것이죠. 오늘 예수님께서 무화과의 비유를 들어서 어떻게 때를 모를 수 있겠느냐고 우리에게 반문하십니다. 무화과의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하면 여름이 가까웠다는 걸 알지 않느냐 여러분들 여러분 아침에 이 봄이 되면은 뭐 이렇게 나뭇잎에 그냥 그렇게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색깔이 조금씩 연두색에 띄기 시작하다가 순이 돋고 잎이 나기 시작할 때 하루하루가 이렇게 달라지는 봄에 찬연한 모습을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데 그러면 우리가 겨울이 가고 봄이 이제 활짝 가까이 왔다는 걸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모든 건 조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조짐을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의 차이죠. 현상은 동일하게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만 어떤 분은 전혀 주목하지 않고 어떤 분은 관심조차 없어요. 뭐 그렇게 되든 말든 나하고 아무 상관없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우리가 주목하고 관찰할 때 어떤 변화가 세세히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죠 저는 사실 솔직히 둔한 편이에요. 그냥 이렇게 또 남자들이 좀 둔한 편 아닙니까 남자들 원래 목적 지향적에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스타일이어서 주위에 무슨 일이 있는지 사실 잘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 큰 변고를 겪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자꾸 옆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육공동체가 사실 참 안타까운 일들이 많지만 옆을 보는 사람들은 그게 눈에 들어오고 안 보이는 사람들은 또 안 보여요. 저는 여러분들이 귀 옆에 누가 앉았는지 한번 보시고 그분이 어제와 오늘은 어떻게 다른지 한번 살펴보는 그런 배려와 사랑이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 얼굴에 다 그냥 엊그제까지 괜찮았는데 까맣게 얼굴이 그냥 변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엊그제까지 얼굴이 새까맸는데 하룻밤 새 얼굴이 그냥 햇빛처럼 빛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 정말 놀라운 변화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얼굴이 참 빛을 잃어가고 어둠이 내릴 때 그때 사람의 위로가 필요하거든요. 그때는 기도도 안 됩니다. 음성도 안 들려요 하나님이 계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럴 때 사실은 우리 공동체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때가 되는 것이죠. 손을 한번 잡아주는 것 한번 손을 잡고 기도 같이 하는 것 그런 것들이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어쨌건 이 가장 큰 환란에 대한 부분 이 부분 앞부분은 성전에 관한 부분이 인데 여러분들 이 부분 가운데서 몇 가지 이렇게 정확히 해석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정확히 해석되지 않는 부분은 여러분 추측하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마음대로 해석하다가 사실은 곁길로 가는 것이죠. 오늘 이 14절부터 다시 보면은 멸망에 가정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이건 사실 나중에 성전 안에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난 것을 말합니다. 이미 예수님 오시기 전에도 성전에 그런 일들이 있었고, 성전을 모욕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이죠.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라 그럼 어디로 가라는 얘기예요. 근데 사실은 당시에는 이 지붕 위에 다들 길이 있었습니다. 이스라LG붕들은 그냥 평평한 지붕이어서 그렇게 지붕 위로 다닐 수 있을 그런 길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만큼 다급한 상황이 되면은 그렇게 지붕길로도 다니라는 그런 말이기도 하고 밭에 있는 겉옷 가지를 뒤로 돌이키지도 말라 아이 벤자들과 젖먹이 있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렇게 쭉 말씀해 주시는 까닭은 다급한 상황은 다급하게 처신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서둘러야 할 때 서두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안 서둘러야 할 때 서둘러요 그러면 우리가 서둘러야 할 때 서두르고 천천히 해야 될 때는 천천히 해야 돼요. 근데 환란이 올 때는 환란에 급히 대처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것은 22절 말씀 23절 말씀 한번 같이 더 읽습니다. 시작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리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여러분 궁금한 게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때와 시기에 관해서 궁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관심을 때와 시기에 관한 종말의 관점에서 종말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우리의 관심을 옮겨놓는 것입니다. 여러분 때가 언제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그걸 우리가 어떻게 맞을 것인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이게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때에 관한 것에서부터 이 종말을 준비하는 방법과 우리 안에 태도에 관한 것으로 예수님께서 우리 관심을 옮겨가시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이 무화과나무의 이 교훈을 우리에게 다시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결론을 우리가 중요하게 오늘 말씀하시는데 예수님께서는 계속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으라고 33절 말씀 한번 보실까요?
시작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라 37절 말씀이십시다. 35절 말씀 시작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런지 밤중일런지 닭 울 때일런지 새벽일런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7절 깨어 있으라 내가 너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준비란 뭐하는 것입니까? 깨어있는 거라는 거예요. 우리의 준비는 깨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잠자지 말라는 거예요. 매일 밤새 말하는 겁니까? 그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깨어있다는 것은 늘 종말이 의식되어 있는 상태라는 거예요. 늘 하나님이 의식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집주인의 비유를 들어서 말이야. 집주인이 출타했는데 집 잘 지켜라 그러고 종들한테 얘기를 하고 왔어요.
근데 종들이 뭐 집 주인 떠나자마자 그냥 냉장고 열어서 먹고 그냥 파티하고 불러가지고 자기 집처럼 엉망진창을 만들어 놓다가 주인이 갑자기 들이닥칠 때는 어떡할려고 그러냐 이 얘기죠 밤에 올지 새벽에 올지 보통 밤에 새벽에 잘 안 옵니다. 그러나 주님 오실 때는 그런 시간 우리가 뜻밖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에 오신다는 거예요. 보통 사람들이 낮에 여행을 다니지 밤에 누가 그렇게 한밤에 새벽에 들이닥칩니까 그러나 주의 날은 도적같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도적같이 내릴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늘 깨어있었던 노아만 살았다는 얘기입니다. 다 웃었죠. 비웃었죠. 무슨 홍수냐 이 청취 이케 마른 하늘에 무슨 홍수는 홍수냐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있다고 알려주실 때는 그게 언제일지 모르는 긴박감을 가지고 살라는 얘기예요.
이게 우리가 신앙인들의 삶의 자세입니다. 늘 어떤 긴장감을 가지고 사는 것이죠. 마냥 풀어질 대로 풀어져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하는 것이 아니라 끝을 기억하는 삶 끝을 준비하는 삶 끝에 대한 늘 대비가 되어 있는 삶을 살라는 것이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오늘 밤에 우리 목숨을 거두어 간다고 하더라도 주님 앞에 섰을 때 아무 부끄러움이 없이 설 수 있도록 살면 그게 완벽한 준비 아니겠습니까? 오늘 여러분들이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 내 생애 전부라고 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오늘 살다가 주님 앞에 기쁘게 달려가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죠. 그래서 무엇이 가장 큰 준비입니까? 하나님이 늘 내 마음속에 계신 것이 가장 큰 준비입니다.
여러분 다 놓쳐버리고 하나님은 오간 데 없고 내 걱정과 근심과 염려와 내 탐욕과 욕심 속에 가득 차 있는 하루가 된다면 그런 하루하루는 아무리 교회를 다니고 아무리 성경을 끼고 살아도 소용이 없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이 날마다 내 삶의 중심에서 좌정하고 계시고 그분이 내 모든 의식 가운데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내 의식에 표의식까지 다 그분이 주장하고 관장하고 계신다면 그건 그야말로 가장 완벽한 준비가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하루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늘 염두에 두고 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요. 그래서 여러분들 머리를 반으로 쪼개라는 거예요. 아니 이게 표현이 너무 거칠어서 아침부터 무슨 말씀인가 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뭘 하든 한쪽은 뭐 좌뇌 우뇌로 갈르자는 건 아니에요. 의식의 한쪽은 늘 하나님께 연결이 되어 있어야 돼요. 그 훈련을 자꾸 하셔야 돼요.
훈련의 방법 중에 하나가 WWJD라는 훈련이 있었어요. 왓 오드 지저스 투 지금 예수님이 내 입장이라면 뭘 아실 건가 여기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말씀하실 것인가? 예수님이라면 내가 어떤 제스처를 취할 것인가? 예수님이라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늘 이렇게 훈련하는 그런 것들이 정말 하나님께 깨어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죠. 그냥 불쑥 뱉어버리지 말고 예수님 이렇게 무슨 말로 대답을 하실 것인가? 이 사람한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그래요. 한순간에 결정을 할 때 예수님께 그렇게 물어보고 결정하는 것 그분의 뜻을 기억하면서 결정하는 것 그리고 날마다 그분 안에서 선택하기를 애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완벽한 준비죠 여러분 계속 뭐 이런 거 뭐 그런 거 저기 궁금하면 세상 사람들은 저기 이상한 데 가서 물어보잖아요.
근데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님께 물어보기를 원하고 성경 말씀에 의지해서 그런 것들을 물어볼 때 저는 여러분들이 반드시 답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들을 보여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다른 데 가서 울고불고 하지 말고 다른 데 가서 사람들한테 자꾸 이렇게 물어보고 하지 말고 그냥 잠잠히 주님한테 물어보십시오. 여러분한테 마음으로 뜻으로 말씀으로 환상으로 꿈으로 어떻게든지 주님을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주님 앞에선 준비되어 있는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할 때 오늘 주님 제가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서 정말 오늘 밤에 선다고 하더라도 준비되게 있게 알려주옵소서 그래요.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아름다운 끝을 위해서 모든 과정 아름답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나팔 불 때 이름이 빠져있다면은 이 과정의 모든 수고로 수고는 무엇하며 이 과정에 있는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팔 불 때 주님 내 이름 들어있게 하시고 그렇게 이름이 들어 있을 때 내 모든 과정은 주님 앞에서 살아있는 과정 의미 있는 과정 충만한 과정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을 기억하며 사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순간순간 주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이라면 제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주님이라면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하나 주님이라면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하나 주님이라면 내가 무슨 선택을 해야 하나 날마다 매 순간순간 주님이 기억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동행하는 삶이란 그런 삶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함께 가는 삶이란 주님께 모든 것 의탁하는 삶이란 그런 삶일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 되게 하시고 오늘 저녁 주님 안에서 안식할 때 주님 그렇게 하니 주님과 함께 동행한 하루에서 고백하고 감사하는 하루가 되게 하시고 감사하는 저녁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느님 아버지 매 순간순간 주님이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한순간 주님을 놓쳐서 불안과 걱정과 염려와 근심에 젖는 인생이 아니라 매순간 주님이 기억됨으로써 담대함으로 깨어 있으므로 주님과 동행하는 일상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아침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하루가 오늘 저녁 주님 앞에서 다시 한번 감사로 하루를 마감하는 그런 아름다운 일상 매일매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주님이 날마다 기억돼서 제가 점점 잊혀지는 삶이 되게 하시고 주님이 점점 더 중요해져서 제가 점점 덜 중요해지는 아름다운 믿음의 길 걷게 하여 주옵소서 함께 걷는 사람들 손잡게 하여 주옵소서 함께 걷는 분들과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분들의 염려와 걱정을 대신할 수 있고 주님과 정말 그들 사이에 내가 중보자로 설 수 있도록 날마다 기도해 자리에 우리를 앉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우리 9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성령에 충만하게 하심이 이 아침에도 늘 종말을 기억하고 끝을 기억하고 내 생애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충실한 삶으로 주님과 함께 꽉 찬 알이 배긴 속처럼 그렇게 하루를 채워가는 그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기로 결단한 모든 믿음의 형제들 자매들 위해 지금부터 영혼까지 함께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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