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데레 예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꽤 됐죠 친데레가 뭡니까? 뭐 일본말이라고 그러는데 친춘데레 데레 거기서 따왔다면서요 차지만 따뜻하다 뭐 이런 것 차지만 부끄러움을 타면서 따뜻하다 정반대 그런 거죠. 예쁜 선물 주면서 주워왔다 오다 주웠다 뭐 그런 오빠 있다며 여자들이 제일 듣기 좋은 소리가 그러면 오다 주었다 샤넬 뭐 이런 거야. 되게 좋아한다고 그러면 이런 걸 츰데레 그렇다고 그러잖아요. 무심한 척하면서 되게 세심하고 예수님이 딱 그런 것 같아요. 친데레 예수님이에요. 앞부분 기억나십니까 지난주에 성전 정화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종교 세력들이 열 받아 가지고. 무슨 권위로 이거 하느냐 이렇게 물었잖아요. 그때 예수님이 질문을 질문으로 받죠. 세례위반이 하늘로부터 왔냐 사람부터 왔냐 이게 참 둘 다 난처한 질문이거든요. 하늘로부터 왔다 그러면 왜 안 믿니 그럴 거고.
사람 더 왔다 그러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따르니까 또 난동 부를까 봐 두려워서 모른다 그랬더니, 예수님 나도 몰라 그랬다는 거예요. 그죠 그러면 여기선 되게 냉철하신 분 아니에요. 그 이성적이잖아요. 그죠 이렇게 쓸데없는 질문은 쓸데없는 질문으로 막아버리시는 분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아니하고 그거에 대해서 대답 안 한다고 그러면서 또 대답하셔요 그게 오늘 본문이라고 니네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뭐냐 무슨 권위를 그런다고 내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야 얘기죠 오늘 이런 포도 품꾼 이야기 포도 농부 이야기를 하면서 니네들이 악한 농부다라고 하시는 말씀이죠. 그걸 설명해 주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걸 보면 예수님은 안 한다. 그러면서 또 다 하시고 거 있었죠. 명절에 안 올라가 그런다면서 또 올라가시고 몰라요. 그거 그 예수님은 칭데레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 말귀 잘 알아들어야 돼. 그래서 마음을 읽어야지 껍데기 읽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대 때 꼭 배워야 될 게 뭐냐 사람의 말 너무 믿으면 안 되고요. 행동 너무 믿으면 안 되고 마음을 읽어야 돼요. 마음을 속일라 그러는 게 아니라, 본심이 뭔지 본심을 읽는 법을 자꾸만 훈련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놓치지 않고 제대로 된 인생을 산다는 거예요. 성경 읽을 때도 본심을 읽어야죠 여기 보면 포돈 농부 누구가 하나님이죠. 하나님의 본심을 읽어야 되고 악한 농부들 이 친구들은 어떤 왜 악해졌는지 본심을 읽어야 되고 아들 보냈다 그러잖아요. 예수님의 본심 그래서 마음 있는 법을 자꾸만 훈련해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훈련할 때 저렇게 말하고 저렇게 행동하는데 본심이 뭐지 그러면 금방 알아요. 절대 선동에 속아 넘어가지 않지 어떤 사람이 뭐 떠들어대 잘 봐봐 사람은 이익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그러면 사람의 본심이 뭘까?
답이 다 나온다니까 근데 바보들은 별 생각이 없어 그냥 말 따라가고 행동 따라가고 그러니까 맨날 속는 거지 사기당하고 믿음에 있어서 되게 중요한 게 뭐냐 하면, 마음을 읽을 줄 아는 힘 본심을 읽을 줄 아는 힘 이 시대 때 그거 반드시 훈련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한번 본심을 읽는 것들 한번 봅시다 먼저 내용 정리하면 간단한 건데 포도원 주인이 있었습니다. 포도원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먼 외국으로 갔다 타국으로 갔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소출의 일부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내는데 여기 보니까, 세 차례 보내죠 하나 보냈더니, 때려보내고 또 보냈더니, 상처 내고 능욕해서 보내고 또 보냈더니, 때려 죽였대요 나쁜 놈들이죠. 여기서 못 참을 것 같은데, 참 사랑도 많아 아들 보내면 대접해 줄 거야. 아들은 존대하리라 그래서 아들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적반하장으로 상속자다 죽이자 그럼 다 우리 거다 그리고 죽여버렸다는 거예요.
그러면 주인이 와가지고 악한 종들 어떻게 하겠어요. 다 진멸해 버리고 딴 사람에게 주리라 그게 오늘 스토홀입니다. 근데 이야기를 할 때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가 악한 종들이라는 걸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알아들었다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이성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알아들었어요. 그래서 잡아 죽이려고 그랬는데 사람들 많아 가지고. 그냥 참고 가더라 그런 얘기예요. 12절만 이루고 시다고 결론 12절 읽겠습니다. 시작 그들이 예수의 이 비우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이게 스토리예요. 그러면 이제 본심 있는 거 훈련해야겠죠. 토돈 주인은 하나님 악한 종들은 우리라고 봐야죠 우리들이 악한 종 아들은 예수님 그리고 여기 계속해서 보낸 종들은 선지자다 이건 논외로 합시다. 선지자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신 도구라고 생각하고 이 세 파트의 마음을 읽는 것을 한번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하나님 마음인데 우리는 이 퍼도 주인 모습을 보면서 왜 참나. 이런 생각이 들죠 힘도 있고 그렇잖아요. 다 죽여버릴 수 있잖아요. 근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놈들을 왜 참나. 이상하다 왜 참죠 사랑하기 때문에요. 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왜 참아요. 사랑하기 때문에 맨날 얘기하잖아요. 남자는 바람직이고 나쁜 놈인데 여자는 순수한 여자예요. 둘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 나쁜 놈이 이긴다니까 나쁜 놈이 이겨요 왜 짖어 사랑하면진다고 판다리 여자도 뭐 나쁜 여자예요. 그죠 꽃뱀 같은 여자라고 근데 남자는 순진하고 착해 백날 싸워봐 누가 이겨요 나쁜 여자가 이기죠 꽃뱀이 이기지 그래서 여러분들 뭘 읽어야 되냐면은 승패를 보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딱 봤더니, 이겼다고 길길이 뛰어 그러면 뭘 알아야 돼요. 저거 진 게 아니라, 저건 사랑하는 거였구나 이거를 깨달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마음을 읽어야죠 하나님이 왜 지지요 우리는 종종 보면은 당하는 하나님 그런 느낌이 들어 하나님 이렇게 맨날 당하지 사랑하니까 그거 마음 있는 거 아니에요. 솔로몬이 재판도 뭐 딴 거야. 뭐 진짜 엄마 가짜 엄마 애 바지 갈라 날아가져라 뭘 본 거예요. 행동과 대답이 아니라 마음 읽은 거 아니에요. 여러분 다 솔로몬 같이 될 수 있어요. 마음만 읽으면 하나님 마음을 읽어야죠 하나님이 왜 맨날 당하죠. 왜 참죠 사랑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러니까 이 기본도 안 된 녀석들이 교수가 되고 학자가 돼 가지고 얘기하니까 말도 안 되는 노력이에요. 신학자 가운데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어요.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르다 구약의 하나님은 뭐 엄격한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데 이건 다른 두 줄기고 다른 두 종교가 이렇게 접박된 거다 그런 얘기를 해요. 구약의 하나님이 심판한 하나님이고 엄격한 하나님입니까? 사랑의 하나님이죠. 여기 보세요. 사랑의 하나님이니까.
계속 선지자 보냈지 구약에 선지서 되게 많잖아. 대선지서 5개 있고 소선시설 12개 있고 구약 성적 가운데 17개가 선지서예요. 선지자 보내고 보내면 죽이고 또 보내고 또 보내고 또 보내고 왜 당하죠. 하나님은 선지서 원래 하나면 되잖아. 하나 보내가지고 말 안 들으면 싹 죽여버리겠어 끝나는 거 아니에요. 근데 선지자가 이렇게 많아요. 사랑이 하나님이라니까요? 그러니까 선지자 계속 보내는 것이 하나님이 바보기 때문에 당하는 이유가 뭐냐 바보기 때문이 아니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이해가 잘 안 돼요. 왜냐 아비잖아. 아방 나쁜 놈 아니에요. 그죠 이스벨한테 속아가지고. 뭐 나쁜 일이란 거 다 했잖아. 혼자서 그런데 열한 기 상 21장 27절에 보니까, 엘리야 선지자가 가서 말씀신 거 하니까 아하비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 듣고 강팍하면은 니가 악함을 알았어.
역시 변하지 않았군 더블루 우리같이 참 감사하다 니가 변하지 않았다는 게 뭐 그러면서 싹 죽여버리면 될 건데 압이 변했거든요. 뭐라고 되냐 그의 옷을 찍고 굵은 배를 몸에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배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니라 그랬더니, 하나님이 뭐라고 얘기해요. 야 일리야 일리와 하면서 왜 변화된 모습을 자랑해요. 하나님이 내 앞에서 아비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답답하죠. 하나님 저거 잠깐 그러는 거예요. 속지 마세요. 그럴 것 같은데, 하나님에게 너무 자랑스러워서 엘리야에게 자랑해 하나님도 자랑하는 하나님이에요. 야 아비 저렇게 겸손한 거 봤냐 내 앞에서 겸비합으로 내가 재앙을 저희 시대에는 내리지 않겠다.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진짜 나쁜 놈인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게 뭐예요? 하나님은 어리석다 하나님은 또 당했다. 아니에요.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 사랑하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거지 말씀대로 했다고 그러더니, 벌써 옛날에 갔지 그러니까 하나님의 본심을 읽어야 된다니까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래서 교회는요 하나님의 사랑 위해 이루어지는 게 교회고 크리찬은요, 하나님의 사랑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는 게 크리찬이에요. 참 묘회 교회가 교회 되기 위해선 사랑 때문에 교회 되는 거고. 여러분들 크리찬 된 것도 뭐 대단한 거 아니에요. 뭐 사랑 때문에 크리찬 된 거지 뭐 딴 거 있나 여러분 보세요. 만약에 인간적인 사랑이 기초가 됐다.
그러면 교회는 이루어지지 않고 크리찬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아 우리 인간들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하면 사랑받을 만한 사람만 사랑해 만약 인간의 잣대를 놓고 본다 그러면 목사부터 시작해 가지고 다 사랑받을 만한 게 있나 뭐 위선가 속임수 빼놓고 진짜 들춰낸다 그러면 다 죽여버려야 될 걸 사랑받을 만해서 사랑하는 거 그거 없죠 또 그거 아니라면 골라야죠 교회 들어올 때 골라야지 그렇죠. 이렇게 면접도 하고, 우리 교인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지도 보고 골라서 골라서 왔다 그러면 여기 들어올 사람 누가 있어 가치만을 따져가지고. 같이 있는 사람만 들어오라 그러면 누가 들어오겠어요. 아직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로마스 오정 팔자 그러잖아요. 우리를 사랑하면서 아들 보내셔 죽이셨다고 그러니까 그런 거 하나도 안 봤다. 그런 거죠. 우리 식의 방식으로 사랑했다. 그러면 교회는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크리찬드는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야 무조건 여기 사랑으로 가야 당하는 사랑으로 가야 교회가 세워져요 교회의 기초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고요. 그래서 예수님 그러잖아요. 세계명을 내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기초에 교회를 세우겠다. 얘기 아니에요. 유암부가 13명 34절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죠 사람들이 뭘 모르냐면 한 남자 한 여자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뭐 집 있고 가구 있고 돈 있고 그러면 가정이 이루어지는 줄 알아 우리 다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리고 아까 어떤 이성적인 사랑 뭐 이런 걸로 근데 왜 못살고 판판이 깨져 가장들이 참된 하나님의 사랑이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죠.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희생하고 뭐 그런 사랑 아니에요. 사랑의 기초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못 살아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훈련이 안 돼 있고 사랑이 뭔지를 모르면 뭐 가정은커녕 아마 닌 몇 명의 공동체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걸 다 무너지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거예요. 뭐 형식적인 건 다 갖췄는데 왜 안 되지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다 목말라 있어요. 수가성 여인이 그랬죠 여무 4장에 13절 오니까 목말라 하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그래요.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를 거다 그런데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거다 여기서 물이 뭐 진짜 물이겠어 예수님의 사랑이죠. 사랑 하나님의 사랑 그거를 기초로 하면 목마르지 않는 사랑이 있다고요. 그 하나님 사랑을 봐야 돼요. 하나님 사랑을 체험해야 되고 이 하나님의 사랑만이 진정한 관계를 쓰이는 유일한 힘이다. 이걸 깨달아야 되죠. 하나님의 사랑 어떻게 어떤 거냐 하면 미리 준비해 놔 여기 보니까, 포도원도 준비 다 해놨죠 여기 보니까, 참 신기하잖아요.
산울타리를 두르고 뭐 또 뭐가 있더라 틀을 짜고 망대를 세우고 여호와 이례의 하나님 우리의 삶에 모든 걸 준비하시고 공급해 주시고 그리고 뒤로 싹 숨어버리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나요? 저절로 왔나요? 한번 돌이켜 보라고요. 돌이켜 보면 하나님이 다 준비하시고 막아주시고 인도하시고 그리고 싹 숨으셔 야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그거 깨달아야 된다니까요? 길길이 뛰면서 나 혼자 잘났다고 생각하면은 저런 무너지죠 그거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절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효도를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즉자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종부들에게 새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그러니까 주인이 다 하셨다 이런 거죠. 준비하시고 공급하시고 왜요 날 사랑하시오. 그리고 소출의 일부를 내라 그랬죠 왜요 돈이 필요해서 아니에요.
관계 때문에 너와 나는 주인과 종의 관계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야 십일조가 뭐 하나님 돈 없어서 십일조 내라 그럴까 그거 아니죠. 내 돈이고 내 소유고 그거 아니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야 우리 삶의 왕 되신 게 주님이야 우리 삶의 주인 되신 게 하나님이야 이 관계를 보여주는 거예요. 관계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뭐 예를 들어서, 뭐 내 땅인가 뭐 집 하나 빌려줘요 그냥 공짜로 주고 싶은데 그래도 관계 내 거란 걸 알기 위해서 그냥 한 달에 만 원만 내 이런 거 이거 많이 미루고 난 다음에 한 1000만 원씩 내야 될 것 같아요. 만 원만 내 그러면 그것도 잡는다고 그러면 뭐죠 주인임을 무시해 버리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관계지 관계로 얘기하는 거지 뭐 딴 거겠어요. 근데 우린 그걸 모르는 거죠. 다 내꺼다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일으킵시다 시작 때가 이름의 농부들에게 포동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중을 보내니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지 말라고요. 왜 이런 장치를 마련해 놨느냐 우리 인간관계 속에서도 이런 장치 되게 많잖아. 관계 때문에 때문에 그렇지 않아요. 뭐 이렇게 결혼하거나 그럴 때 요즘에 하나 머리가 반지 같은 거 끼워주거나 뭐 그런 거 뭐 일단 세리머니 형식들이 있잖아. 그게 반지가 뭐 10만 원짜리 20만 원짜리고 1000만 원짜리 그게 돈의 가치야 의미지 의미 그렇잖아요. 관계라는 거 아니에요. 이것도 십일조라는 것도 하나님과 우리 사회가 아버지와 자녀 관계라는 거예요. 주인과 종이라는 관계라는 거예요. 사랑이죠. 그걸로 대가를 치른 게 아니고 하나께서 이렇게 관계를 맺게 만드는 장치들을 준 거를 무시해 버리면 죽는 거죠. 타락이라는 게 뭡니까? 어리석게도 다 내 것이다. 그런 게 타락이고 구원이라는 게 뭐예요?
하나님과의 관계 붙들은 게 구원이라고 그러니까 잊지 말아야 될 게 뭐냐 하면, 하나님이 사는 걸 배워야 됩니다. 그래야 진짜 관계없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그러지 않아 놓으면 젊었을 때 이거 안 배워 놓으면요 여러분 계속 외로워요 그냥 세상에서 파편같이 사는 거고. 그냥 귀브 앤 테이크 하는 거래만 알아요. 거래만 거래가 아니라 사랑의 뭔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사랑을 서로 나가면 사랑도 힘이에요. 능력이라고 사랑하는 힘으로 나가야 관계가 이루어져요 리더죠 어디 가나 관계를 엮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놀라운 일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우리 믿음의 젊은이 되는 축복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 아는 거예요. 하나님을 제대로 보는 것 두 번째가 이제 나니까 이건 뭐 할 얘기가 많겠지 아칸 농부 이게 나예요. 나 강팡한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정말로 본능으로 살면 욕심으로 사는 거라고 나밖에 몰라 그게 제일 어리석은 건데 나밖에 모르니까 단견이에요. 단견 그니까 얼른 어쩜 이렇게 생각이 없어 주인이 종을 보냈어 그러면 때려서 보내면 그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을 안 하나 그냥 요 종만 없으면 된다. 생각에 얼마 단견이에요. 짧은 생각 뭐 능욕에서 보내 또 죽여서 보내 그러면 아무 일도 안 벌어질까 우리가 그래요. 그러니까 정말로 눈앞에 것밖에 보지 못하는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뭐예요? 어리석음이죠. 마음이 강팍해서 그렇다라는 것입니다. 제가 보니까, 복 중의 복이 뭘까? 생각해 보니까, 복이 뭐예요? 마음이 열리는 게 복이에요. 여러분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은사 축복 이런 것들 도구잖아요. 도구를 사용해서 목적은 뭐죠 마음 여는 거 이 마음이 닫혀있는 거 이거 쉽지 않아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하나님 내게 항상 하나님 앞에 마음이 열리는 복을 주옵소서 이거 기도해야 돼요. 마음은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이 닫히는 걸 어떻게 목사니까 장례식 자주 치르잖아요. 장례식 하기 전에 뭘 가족들은 안타깝죠 구원시킬라고 그래서 어떤 분인데 끝까지 예수님 믿는 거부해요. 그리고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목사 간다고 그러면 환영해야 될 텐데 또 싫다는 분들 많아요. 안 온다 안 온다고 그러는데 가족이 또 너무 안타까우니까 좀 와달라고 그 예배드립니다. 그럼 뭐 마지못해 봤긴 봤는데 벽을 향해 돌아앉아요. 뭐 누워 있죠. 도토 기억나는 게 그래요. 마지막 그러다가 갈라 그러니까 목사님이 그러더라고. 왜요 그랬더니, 나는 지옥갑니다. 그리고 날짜에 돌아가셨어 내가 그거 보면서 느꼈던 게 뭔지 알아요.
참 인생의 고집과 독함이 정도구나 제가 느낀 게 뭐냐 하면은 그분이 믿고 싶다. 안 믿고 싶다가의 문제가 아니라 아카마귀가 마음 여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아요. 마음이 안 열려요 죽기 직전에도 마음이 안 열린다니까 우리 맨날 그러잖아. 개판치고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님 믿습니다. 고백하고 가면 천국 간다고 오르편 강도같이 꿈이 뭐냐 오르편 강도 그죠 그래서 구호가 뭐예요? 5강 오른편 강도 근데 만약에 마음이 안 열리면 어떡할라 그래 마음이 안 열리면 하나님의 마음을 열어주셔야지 그것도 은혜 가운데 마음이 열려야 돼 그거 뭐 도박할 거예요. 마음이 안 열리면 어떡할 거냐고 저도 아파 보니까, 병사에서 기도한다고 그러는데 기도가 안 나와 아프니까 기도도 안 나와 멍하니 그냥 병의 고통하고만 싸우는 거야. 평상시 기도해야 돼요.
이렇게 건강할 때 기도해야 되는 거지 성경을 본다고 평상에 누워서 성경 보는 거 쉽지 않아요. 듣기도 쉽지 않아 그게 열린다는 게 아무 때나 열려 있는 게 아니에요. 닫힐 때가 와요. 문 닫히면 황당하잖아. 문 닫히면 그거 어떻게 할 거예요. 우리 힘으로 못 열어요. 마음은 또 닫힐 데가 있다. 이거 잊지 마시라고 다치면 끝나는 거죠. 마음 여는 거 쉽지 않죠 남녀 사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힘들어하는 게 뭐냐 하면, 우리 제삼자가 볼 땐 그래요. 누가 사과하고 야 이렇게 하면 돼 그래서 사이좋게 지내면 얼마나 좋겠어 근데 마음이 안 열리는 경우가 있어요. 마음이 안 열려 자기도 애를 써 목사님 나도 잘 살고 싶어요. 근데 아무리 했어도 마음이 안 열리는 걸 어떻게 해요. 결국 마음을 못 전더라고. 근데 남자분 정말이에요. 잘 살기를 원했어.
그 남자분이 마음이 안 열려 애쓰는 것도 봤어요. 나쁜 사람 아니에요. 정말 마음을 열라고 자기도 애쓰고 애쓰는데 마음이 안 열려 한 번 상처를 입었는지 난 뭔지 모르겠어 하여튼 마음이 안 열리는 걸 어떻게 마음이 안 열리는 걸 나도 이해는 돼 어떤 반 맞은 사람한테 사람 사랑해야 돼. 사랑했다. 마음이 안 열릴 것 같애 죽어도 칼을 갖다 대면 순교를 하지 그런 느낌이 들지 마음이 안 열릴 거 같애 마음이 물론 뭐 하나님 열리는 마음을 주면 또 여러니까 상관없어 그래서 말하면 더 그러나 하여튼 살긴 살아요. 지금 남처럼 살아 남남처럼 그러니까 사람 마음이 닫히면 열리는 게 어렵다라는 거 여러분 경험하실 거라고 이제 20대 초반엔 잘 모르는데 시간 지나봐요. 마음이 안 열린다니까 그래서 복이 뭐냐 하면, 마음이 열리는 거예요. 마음이 열리는 거 예수님 항상 기도하십시오.
그냥 무덤덤하기로 하게 돼요. 하나님 내가 예배드릴 때 마음 열리게 해주세요. 그냥 찬송 한국 마음으로도 마음이 열리게 해주세요. 예수님 말씀 앞에 마음이 열리게 해주세요. 그게 복이에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배 왔다가 왜 그냥 돌아가는지 알아요. 마음이 안 열려 그래서 마음 열리는 게 복이라고 이 악한 종들 왜 악한 종이 됐나요? 마음이 안 열리니까 그러니까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잖아요. 마음 열리게 해달라고 순서마다 좀 본다 그러면 마음이 안 열리고 진짜 약한 젊은이들 있다. 그러면 이 말씀을 꼭 들어보세요.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고 마음이 안 열리면 무기력에 빠지게 되면은 그때는 뭘 해야 되느냐 하나님 뭘 한 가지 말씀 아무래도 좀 이렇게 납득되고 이해되게 해주세요. 거기서부터 시작을 해야 돼.
저는 약간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던 거 같애 내 보니까, 그래서 에너지 없는 사람의 심정을 잘 모르는 거 같애 그래서 에너지 없는 사람들 보면 젊었을 때 맨날 욕하고 다녀서 저것도 사는 거냐 저게 이 저게 인간이냐 근데 살아 이렇게 보니까, 진짜 에너지가 없는 사람도 있더라고. 그러니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이렇게 권하면 돼요. 해봐 그러면 돼 하면 된다. 해봐라 뭐 이러면 돼 에너지가 넘치니까 이것 해보고 저것 해보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어디 하나 걸려 그래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그것도 복이에요. 이것저것 해보면 돼 사람은 그러면 한 번쯤에는 뭐가 그런데 에너지가 없는 사람은요, 한 번 하는 것 자체가 엄청 스트레스예요. 쓰레기를 가서 버리는 게 힘들어 뭐 힘들어 그냥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서 쓰레기 버리면 되는데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요, 일도 아니야.
쓰레기 버리는 게 뭐 문제야 근데 에너지가 바닥인 사람은요, 쓰레기를 버릴까 말까 고민을 네 시간을 해 누워서 그리고 힘이 없다. 밥은 세 끼 꼬박꼬박 먹으면서 힘이 없대 에너지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에너지가 없는 사람에게 중요한 게 뭔지 제가 알았어요. 이해하는 거야. 그 사람을 이해시켜야 돼 룩박지르면 안 되고 이 사람은 시행착오로 되는 게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한 번밖에 없어 자꾸만 이해시키고 납득시키고 그래서 한 번 마음을 싹 열어줄 때 그거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전도할 때도 그게 되게 필요한 거예요. 에너지가 없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나거든.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여튼 하나님 한부모 마음을 열어주세요. 작은 거에 한번 마음을 열어주세요.
그래서 고거 할 수 있도록 그거 하면 순종하면은 에너지가 또 생겨 또 생기고 그거 어떻게 그렇게 해서 풀어나가야지 그래서 이런 사람에게는 큰 거 하라 그러면 안 돼 작은 거 하라 그래야 돼 작은 거 우리 소확행이라는 거 들어봤죠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 사람은 소아 결의야 작지만 확실한 결과 그러니까 작더래도 뭐 확실하게 결과가 나타나는 거 시켜야 돼요. 에너지가 없으니까. 그래서 이런 사람한테 야 자전거 타고 국토대장정 가자 못해 자전거 타고 훅두덩이는 어떡하나 이 사람이 그죠 대청소하자 이거 못해 하여튼 대자라는 거 다 빼버려야 돼 대자들 그래서 작은 거 예를 들어서, 책상 정리 못해요. 이 사람 책상 첫 번째 서랍 정리 딱 열면은 뭐 몇 개 있지도 않잖아. 고거 그냥 정리 그렇게 말해줘야 돼요. 첫 번째 서랍 정리 그거 아니면은 뭐라 그럴까요?
여자분이나 남자분 같은 거 설거지 15분 안에 끝낼 수 있는 거 설거지만 하자 근데 쌓인 거 말고 그냥 간단한 설거지하자 아니면 좀 방 정도 좀 작다 그러면 청소 정도 하자 이런 거죠. 우리 말씀도 그래요. 요즘에 우리 교회 뭐 통독 열풍이 불잖아. 그렇게 에너지 하나도 없는 사람한테 와가지고 야 오늘 아침부터 시작까지 신약통독 도망가요 그런 사람에게는요 시편 1편 일자 여섯 자리야 그래야 돼요. 그다음에 10편 23편으로 넘어가야 돼 이 편 3편 넘어가면 안 되지 길어서 여호와는 아예 목자 시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힘들면 이 절까지만 해요. 초장까지만 가 초장까지만 가도 돼 그다음에 가면 또 사망에 응시만 골짜기 해서 힘들어져 그러니까 작은 소확결 작지만 확실한 결과 그래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마음이 닫혀있는 사람들이 문제 여기 악한 종들 보세요.
이게 얼마나 마음이 닫혔으면 계속 이러겠냐고 그러니까 종들을 볼 때가 선의 잡아낸 거 아니에요. 말씀 보내면 죽여버리고 때리고 능욕하고 이러잖아요. 계속 지금 우리 삶 속에서 계속 그러고 있다니까 하나님 말씀을 보내면 계속 때리고 능력하고 죽여 보내고 그러고 있다가 우리가 계속 그러니까요? 그러고 사는 거지 그럴 때는요 그냥 큰 거 요구하지 말고 작은 거 요구해서 작은 거의 마음이 열리도록 그리고 소확결 작은 거의 결과를 얻도록 이게 되게 중요한 거죠. 우리 20대 때 이거 붙으십시오. 혹시라도 여러분 상처가 있거나 또는 너무 경적에서 밀리거나 루저가 됐다거나 쌓인 거거든. 쌓여서 힘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어요. 이렇게 벗어나야 됩니다. 번아웃하고 무기력적하게 차이점이 보는 줄 알아요. 번아웃은 힘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지금 여기 지금 제가 말한 게 번아웃에 가까운 사람이야 번아웃은 에너지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럼 무기력적은 뭐냐 에너지는 있는데, 쓰지 못하는 게 무기력증이에요. 그래서 무기적증이 있는 사람은 힘이 없어라고 표현하지 아니하고 그냥 빈둥빈둥 가고 있어요. 허송세월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무기적증은 방향이 없는 거예요. 방향이 없는 사람에게는 정확히 하나님 말씀을 증거해 주거나 이렇게 짧게 그저 이렇게 하나에게 해서 불꽃같이 보여주면은 방향을 찾는다고 그러면 에너지는요 방향과 함께 제대로 쓰면 불이 확 붙어 근데 젊은이들은 대개 2쪽이 많아 번아웃은 없어요. 번아웃은 대개 40대에 나타나요? 하다하다 지쳐가지고 그래서 저렇게 집에 잘 안 나오고 그런 사람도 있죠. 그런 사람들이 주로 많고 그래도 20대 때 저보다 번아웃될 게 있나 힘은 넘치지 그래서 무기력장에 빠질 때가 많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근데 20대 초반에 이 무기력장이 힘든 이유는 뭐냐 하면, 이런 거예요.
에너지 있는데, 엉뚱한 데 쓰면은 안 된다는 거예요. 백수 헤끼꼬머리 이런 사람들이 잘 못 고칩니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방콕 폭죽들 있잖아요. 방에서 갔다 안 나오네 히키코 머리 걔네들 왜 못 고치는지 알아요. 힘이 있는데, 나는 우리나라 히키꾸머리는 잘 못 봤지만 일본 선교했을 때 일본 히키꾸머리 되게 많이 봤어 교회 가끔 나오거든. 에너지 넘쳐요 근데 얘네들이 왜 일도 안 하고 그냥 집에 처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저러나 보니까, 1차원적 쾌락에 중독돼 있기 때문에 그래요. 힘이 있는데, 1차원적이라는 게 뭐냐 하면, 쉽게 얻는 만족 쉽게 얻는 쾌락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래요. 뭐든지 어렵게 얻어야 되는데 쉽게 얻어 그러니까 삶이 마약이야 뭐든 쉽게 얻어요. 예를 든다.
그러면 이 100수 나오든지 히키코모리들은요, 식욕을 채우는 게 너무 쉬워 생각보다 히끼꼬머리 중에 뚱뚱한 사람 많습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쉬지 않고 먹어요. 집에서 쉬지 않고 먹어 가보세요. 배달 음식 쌓여 있어 쉬지 않고 먹어 학교를 가거나 직장을 가면 쉬지 않고 먹을 수가 없잖아. 뭐 공부도 해야 되고 수업도 들어야 되고 그래서 시간별로 먹죠 아침도 못 먹고 뛰잖아. 아침 시간에 아침 먹고 점심시간에 점심 먹고 저녁때 저녁 먹고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그 중간에 먹으면 쫓겨나지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흰기코머리는 시도 때도 없이 먹어 그래서 식습관이 리듬이 다 깨져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어떤 쾌락을 얻을 때도 일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뭘 좀 억제했다가 어느 순간인가 이걸 채우고 하잖아요.
욕구를 얘네들은 허구헌 날 채워 그래서 그때 우리가 어떤 절제됐다가 만족을 얻을 때 나오는 게 도파민이잖아요. 도파민 분비가 이게 균형을 잃어요. 나중에 메말라 나오지도 않아 악 어떤 자극을 해도 멍족들이 나온다고 멍하니 지내 수면력도 마찬가지죠 자구 깨고 하는 것들이 리듬이 있어야 되는데 그냥 졸리면서 하는 거예요. 아무 때나 알람도 없어 깨야 될 시간도 없어 그래서 너 언제 깰 거야. 자기도 모른대 여러분들 그런 사람 있죠. 내가 언제 깨는지 모르는 사람 리듬이 다 깨져버린 거예요. 이런 사람들의 문제는 뭐예요? 자고 수면이 일정하지 않으면 호르몬 체계가 무너져요 햇빛 못 받으면 무슨 호르몬도 좀 무죄가 있잖아. 그죠 그래서 사람이 이상해져 버려 그래서 백수라든지.
히키코 머리가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요.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뭐예요? 무조건입니다. 작은 거에 마음을 열고 하나부터 규칙적으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볼 때 모든 질병들 다 깨는 건 새벽 기도부터예요. 새벽 기도부터 철저히 지키기 시작하면 쉽지 않을 거예요. 그렇죠. 에너지 없는 사람인데 새벽기도 어떻게 나와 그런데 그런 사람처럼 묘해요. 밤은 셀 줄 알아 그런데 새벽 기도 직전에 잠이 와 그래서 밤새고 못 나와 그럴 때는 억지로라도 밤을 새더라도 새벽기도 하고, 자라고 그렇게 되면 리듬이 생기기 시작해요. 계속해서 그런 것들을 붙들을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거 먼 얘기 아니고 20대 때 번아웃 아니면 에너지가 하나도 없든지 이건 10대 때 상처를 크게 입었던 사람이 번아웃 되는 거예요. 많이는 없고 대개 무기력증이에요. 무기력증은 1차적인 만족에 매달리는 거예요.
왜냐 지금은 우리나라 못 사는 나라 아니거든. 부모들이 해주거든. 뭔가 할 수 있거든요. 깨면은 할 게 있어 게임이라든지. 유튜브를 하던지 뭐 할 게 있어 1차적인 만족이에요. 그러면 악순환이 돼 버립니다. 그러니까 어떤 말씀이 오든지 어떤 선지자를 보내든지 때려 죽인다니까 다 보내버리고 근데 결국은 뭐예요? 심판 당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젊었을 때 절제하는 것도 배워야 되고요. 1차 만족을 거부할 줄 알아야 돼요. 당장은 종들만 죽여버리면 내 거야. 이런 거 없애야 되고 뭐든지 만족을 유보할 줄 아는 거 그리고 희생하고 내려놓을 줄 아는 거 이거 배워야 됩니다. 인내할 줄 아는 거 오늘 귀증한 교훈이죠. 그게 바로 뭐예요? 하나님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주면 최고 복이고 마음이 다친 사람 얘기예요.
한 분만 마음을 열어주시면 열렸을 때 빨리 순종으로 연결시켜서 잠깐 열리는 훈련을 해야 돼요. 그리고 아예 힘들면은 그냥 고통 속에 보내세요. 아무것도 없이 자꾸만 1차 만족으로 이걸 채우다 보면 영적이 키커볼이 됩니다. 이거 완전히 죽는 거예요. 마지막에 가서 진멸할 때 진멸당하는 자리에서 정신 차리게 될 거라고 그러므로, 악한족이 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핵심은 이거예요.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열어주옵소서 가슴 앞에 마음이 열리고 예배 앞에 마음이 열리고 하여튼 마음이 열리는 사람만큼 복된 게 없다라는 거예요. 항상 마음이 열리는 하나님이 종되기를 바랍니다. 그다음 마지막 세 번째 예수님인데 이거 뭐 간단히 합시다. 예수님 아들을 선물로 주신 거죠.
요암복은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살아가사 독생사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면망치 않고 영성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을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구원받게 하려고 보내셨다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모습을 잊지 마십시오. 교회 가요 세상에 대해서 우리도 그렇잖아. 죄인들을 보면은 정의 구현할라고 예수님 보낸 거 아니에요. 정의 구현할라고 교회 세운 거 아니라고 자꾸 교회 와 가지고 정의 구현할라 그래 생명을 주실려고 예수님 보내진 거예요. 구원하려고 예수님 보낸 거라고요. 여기 보면 다 죄인들이죠. 그러면 여러분도 잠깐 정의 구현할라 그래 사람은 문제 있고 저거 문제 있고 정국위원은 딴 데 가서 해요. 딴 데 가서 저기 케톨릭 가면 정국위원 4대담도 있던데 거기 가서 해 교회에서는 정의 구현하는 게 아니고요.
생명을 주시려고 구원을 주시려고 관점에서 봐야죠 예수님 왜 부르셨어요. 생명 주시려고 구원 주시려고 3장 16절 해석이 17절에 나오니까 심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 생명주실에 오셨다 그거 꼭 붙들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알겠죠. 예수님의 모습을 예수님 제자들 아니에요. 이 땅을 살아갈 때 예수님같이 내가 죽더라도 희생하더라도 생명을 주려고 구원을 주려고 이 땅을 살면은 달라지겠죠. 그걸 4명이라고 그러잖아요. 바울도 구원받고 난 다음에 구원을 줄려고 생명을 줄려고 자기 인생 바쳤잖아요. 그럴 때 우리 인생에서 느끼는 게 뭐냐 하면, 무모하다라는 느낌을 받어 이렇게 사람에게 무모해 여러분 인생은 필요한 것만 갖고 사는 거 아니에요.
필요 없고 살면 그거 무슨 짐승이지 그거 유용한 것만 갖고 사는 거지 그거 뭐 자본주의 인간이지 필요한 건 유용한 것만이 아니고 무모함이 있어야 돼요. 무모함이 뭔지 알아요. 가슴이 뜨거워지는 거 하는 거예요. 젊었을 때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 해야 돼. 필요한 거 하면 안 돼 필요한 것만 해서는 안 되고 이익이 되는 것만 해서는 안 되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거 해야 된다고 하나님이 젊은 사람에게 반드시 가슴이 뜨거워지게 만들어요. 4명 붙들고 사면 가슴이 뜨거워져 가슴이 찬 것만 하지 마세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먹지 말고 여름에도 뜨거운 거 먹어서 가슴이 뜨거워지라고 좀 앗 뜨거워 하면서 젊었는데 뜨거움을 못 느끼면 살았다가 죽은 자지 그죠 나이 먹으면 점점 사람이 성숙해진다. 절대 안 그래요.
저도 나이 먹어보니까, 그래 가만 놔두면 나이 든 사람들 더 편협해져요 그리고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 되게 많아 내 친구들 보니까, 자기가 자기를 괴롭혀 혼자서 자꾸만 저한테 걸어가지고 자기가 얼마나 쓰레기인지를 확인하고 있어 접목사 나 이렇게 사는 거 아니지 접목사 나 쓰레기지 나 루저지 낙오자지 그걸 확인하고 있어 그러면 저는 항상 그래 그리고 끊어버리는데 혼자 괴롭히고 하다가 그래야 돌아오지 선지자예요. 그건 죽여버려야 돼 그런 것들은 자기 괴롭히다가 남도 괴롭히잖아. 남도 그냥 나만 아니야. 너도 그래 그러면서 공격하고 자꾸만 좁아져요 좁아진다고 넓어지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무모해지는 거예요. 무모해지는 거 말도 안 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나를 벗어나서 예수님같이 남을 위해 살고 희생하고 우리 파인애플 이야기 했잖아요.
내꺼 내 거 내꺼 하다 보면, 이게 진짜 늙은이 노랭이 같은 늙은이로 죽는다고 다 주님의 거야. 하면서 나눠주기 시작하는 거죠. 제가 일자리에 얘기를 했죠. 돈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딱딱한 돈 가지면 안 되고 말랑말랑한 돈 가져야 된다고 돈이라는 게 사실은 다 뭐 통장에 찍혀 있는 숫자 아니에요. 100억을 갖고 있다. 그러면 100억 들고 다니는 사람이 누가 있어 그냥 통장에 100억 있는 거지 100억 딱 찍히는 거고. 통장에 100억 있는 사람이 지금 쓸 수 있을까? 지금 돈 써요 지금 빌딩 하나 갖고 있는 사람이 돈 쓸 수 있어요. 어떻게 써 저도 부자 친구들 좀 있는데, 부자 친구는 돈 못 쓰래 내가 더 돈 잘 쓰는 것 같아 왜냐하면, 난 쓸 수 있는 돈을 갖고 있거든. 걔는 쓸 수 있는 돈이 없어 다 아파트 아니면 빌딩이야 그리고 맨날 돈이 없대 뭐 세금 내야 되고 뭐 내야 되고 그래서 찍힌 건 많은데 그지같이 사 근데 저는 항상 가처분할 수 있는 게 한 일200만 원 있거든.
그러니까 내가 더 잘 써 선 교사님 어떤 헌금도 그때그때 하고 그래서 도둑 쓰게 돼 가방에 항상 현찰을 들고 다녀 왜냐 은행 계좌로 언급할 수는 없잖아. 힘도 잘하고 힘집자라고 언제 그거 물어서 해 봉투에 와서 드리고 그게 더 편한 거지. 여러분 잊지 말라고 나이 들면서는요 재산을 내가 볼 때 한 반 정도는 말랑말랑한 돈으로 다 바꿔놔야 돼 당장 쓸 수 있는 돈으로 그리고 삶이 엄청 풍요해지고요. 부유해진다니까 나이 드신 분들 얘기해요. 그죠 여러분 삶에서도 예수님같이 항상 말랑말랑한 것들을 만들어 놓으세요. 당장 쓸 수 있도록 사랑도 말랑말랑해야 되죠. 말도 말랑말랑한 거 당장 쓸 수 있는 거 그러면 인물 됩니다. 인물 우리 성경은 뭐라고 얘기해요. 예수님이 야 세상 사람을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쓰다 보니까, 버린 도리를 같이 10회 118편 22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이거든요.
버린 돌이 아니고 그죠 모퉁이의 머릿돌대 여러분 인생도 그렇습니다. 자꾸 내 거 내꺼 해서 이렇게 하지 말고 예수님과 같이 버린돌 같은 모습으로 살면은요, 사람이 인물됩니다. 환전 얘기했잖아요. 10달러 세 명이 나누는 거 너 이 달러 손해 보고 너 4달러 달라 가져 이렇게 되면 리더 된다니까 돈 몇 푼 쓰고 리더 된다니까 다스림의 축복을 누려요 다 이끌고 간다니까요? 저는 우리 교회에서도 그런 인물이 나오는 그런 많은 젊은이들이 인재가 나오는 거룩한 교회 되길 원합니다. 예수인 같은 길 걸으십시오. 그러면 머릿돌 됩니다. 거의 누구 봅시다 16조 17점입니다. 시작 10절 11절입니다.
시작 너희가 성경의 거주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아가 된 것이오 우리 눈에 놀랍도도 함을 읽어보지도 못하느냐 하시리라 그래서 예수님의 길이 초라이브가 험난해 보이지만 이것만큼 골든웨이가 없다는 거예요. 왕의 길입니다. 킹스웨이예요. 하나 옆에서 이 길을 걸어가는 믿음의 신신의 종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세 사람 세 분야라 했잖아요. 주인 악한종 예수님 그 마음을 잘 품으면 여러분들 탁월한 하나님의 거룩한 종이 되는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에 길거는 종 되기를 축원합니다. 자리에 세련하였습니다. 주말 쓴 내 삶 비칠 때 전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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