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창고

[설교] 열왕기상 1장

yt1981 2024. 3. 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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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열 항의 상 1장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가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사무의 상하가 끝나고 열왕기 상 1장이 시작됩니다. 열왕기 상 이 말은 열왕이라는 말은 10명의 왕이 아니라 열은 나열한다는 말이고 왕은 왕들의 역사죠 즉 왕들의 역사를 나열한 책 중에 첫 번째 책이 열왕기 상이 됩니다. 두 번째 책이 열왕기 하인데요. 원래 이스라엘의 책을 구별할 때는 열왕기라고 하는 책은 한 권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책을 옮기면서 고 문서를 분책하는 습관이 있는 유대인들이 책을 나눠서 열왕기 상하로 두 권으로 나눈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유대인에게는 열왕기가 네 권입니다. 왕의 역사 열왕기는 네 권인데요. 이 열왕기 일 이 이 권이 원래는 사무엘 상하입니다. 

그러니까 사무엘 상하와 열왕기 상하는 이어지는 책이다. 같은 책이다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그러면 열왕기 상하의 성격은 무엇일까요? 어떤 책일까요? 우리도 보면 왕들의 역사니까 조선왕조실록 같은 책으로 우리는 이해를 합니다. 그러니까 왕들의 역사니까 이것은 역사서라고 볼 수 있죠. 우리 눈으로는 그렇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 히브리인들이 이 책을 구별할 때는 성격을 어떻게 보느냐 선지서로 봅니다. 열왕기 상하는 선지서입니다. 그러면 사무헤상아는요 사무엘상하도 역시 선지서입니다. 그러니까 전선지서를 구별할 때 전선지서가 여호수어가 들어가고요. 사무의 사화가 들어가고요. 

11개 상화가 들어가요 그러면 우리가 볼 때는 11개 상화는 아직 안 배웠으니까 그렇다고 치고 여호수와 전쟁한 역사가 아닌가 그것도 다윗이 왕이 되고 4월이 왕이 되고 이거 보면 왕의 역사인데 왜 역사서가 아니라 선지서일까요? 여호수아와 사무엘 상하에 역사는 왕이 누가 왕이 되는가 왕이 어떻게 통치했는가 거기에 중심의 포인트가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역사예요.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도우셔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시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님 뜻에 맞는 왕을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가에 역사가 여호수아와 사무의 상하예요. 

그리고 마찬가지로 열왕기에도 수많은 왕들이 등장하지만 중요한 건 왕이 누구냐는 문제가 아니라 왕들이 하나님을 따르고 순종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았는가의 문제인 거예요. 그러니까 열왕기 상하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해해야 되는 책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명기예요. 신명기의 핵심은 하나님이 내 앞에 복과 화를 두었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복과 화를 두었는데 너희가 하나님을 따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면 복에 임할 것이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너희의 제대로 행하면 너희는 화를 얻을 것이다. 이것이 신명기거든요. 신신당부하는 설교였죠 이 신신당부하는 설교의 결과가 뭐냐 그게 여호수하고 사물상하고 열왕 개 상하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열원기상가를 볼 때 이것이 왕들의 역사냐라고 본다면 그것은 잘못된 말이에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제가 좋아했던 과목이 있어요. 그게 국사였어요. 국사와 사회 역사를 되게 좋아했어요. 그래서 왕들의 관심이 많았어요. 왕들의 역사 왕들이 뭘 했고 업적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러한 눈으로 성경을 읽어보니까 이 열한 기상 화가 이상해요. 왜냐하면, 뭔가 업적이 많고 한 일이 많고 이런 왕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고 한 일이 적으면 적게 기록되어 있어야 맞는데 이 성경은 이상하게도 한 일이 업적이 많으냐 적으냐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그건 관심이 없어요. 그럼 뭐가 분량을 좌우하느냐 하나님과의 관계예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순종했는가가 많이 차지하고 적게 차지하더라고요. 그래서 야 이거 하나님의 역사는 수상 역사와 다르구나 그런데 왜 다를까요? 왜 하나님은 왕들의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세상의 역사와는 다를까요? 왜 그럴까요? 

여러분 세상의 역사는요 일반적인 백성들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일반 백성에게는 관심이 없고 왕만 관심이 있어요. 그러니까 왕이 어떤 왕이냐 어떤 일을 했냐만 관심이 있지 백성들에겐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반대예요. 하나님은 왕에게 관심이 없다.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왕이 누구냐 여기 관심이 없고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관심이 있어요. 그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느냐 그러니까 우리는 이 성경을 보면서 특히 열왕기 상하를 보면서 열왕기라는 이름 때문에 왕에게 집착해 읽고 왕에게 집중해 읽으면 오히려 우리는 잘못 읽는 거예요. 뭘 읽어야 되나 하나님과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가 지금 어떤가 여기를 봐야 되는 거예요. 한번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가 봅시다 하나님은 정말 왕을 중요하게 여기고 왕을 품고 왕을 바라보라고 하는 분인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이죠. 

우리 최루국기 15장 한번 볼까요? 출욕기 15장은 츄레굽 할 때 홍해가 갈라진 다음에 부르던 모세의 노래죠 이 노래 속에 이스라엘의 역사가 예언되어 있습니다. 추레국기 15장 17절 18절 보겠습니다. 치료욕기 15장 17절 구약회 5페이지에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관심은 어떤가 하나님은 어떻게 그의 백성들을 이끌어 가시는가 추력비 15장 17절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랬죠 백성 한번 밑줄 그어 보시고요.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인도하십니다. 왕으로 인도하시는 게 아니라 그의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그들을 왜 인도하시는가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리이다. 이 주의 기업의 산이 바로 가나안이죠. 가나안까지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심기 위해서 인도하십니다. 

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나 여호와 여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의 처소 밑줄 그어 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주의 처소가 어디예요. 백성이에요. 백성이 주의 처소예요. 하나님의 처소는 성전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처소는 완공도 아니에요. 하나님의 처소는 백성이에요. 주의 처소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나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성소 밑줄 그어 보시고 그러면 이 성소가 어디라는 거예요. 성소가 주의 처서고 주의 처서는 백성이에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을 사랑하여 출애곱시키고 가난 땅으로 인도한 백성들이 주의 처소이면서 동시에 성소예요. 그렇다면 그들을 누가 다스리나 왕이 다스리나 아니에요. 1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그랬어요. 

여호와께서 친히 다스리는 백성 즉 그러니까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는 게 맞아요. 왕이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기업의 사내심은 주의 처소이자 성소가 바로 그의 백성이기 때문에 백성은 여호와께서 영원토록 인도하신다 영원토록 다스리신 이것이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이고 모세의 신앙 고백이고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눈이에요. 그런데 그래서 여러분 모세가 다음 자기 아들들한테 모세의 직책을 승계하지 않았죠 왜요 모세는 왕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여호수아를 세웠죠 그런데 여호수아도 죽으면서 자기의 후대를 세우지 않았죠 왕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모세와 여호수아를 하나님은 왜 세웠는가 그들은 왕이 아니었죠. 그들은 광야라고 하는 이 험한 세월을 지나가서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세운 지도자였어요. 왕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모세는 광야가 끝나고 가난에 들어갈 때 여호수아를 준비했지만, 여호수아는 가난에 들어왔기 때문에 후대를 준비하지 않았어요. 왜 후대가 필요 없으니까 하나님이 다스릴 것이 분명하니까 여호수아는 다음 지도자 세우지 않고 죽었어요. 그런데 여기서부터 혼란이 왔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지도자가 필요 없어요. 하나님이 왕이시니까 그런데 이때부터 우왕좌왕하기 시작하죠. 이전에는 모세가 어울릴 인도했는데 이전엔 여호수아가 어울릴 인도했는데 이젠 누굴 따라가지 혼동이 돼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은 온전히 신뢰하지 않으니까 그때부터 우왕좌왕하면서 이웃 나라를 보니까 왕들이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도 왕이 있으면 우리도 안정적으로 잘 살 수 있겠다. 싶어서 왕을 달라 하죠. 그래서 하나님은 삶을 통해 말하십니다. 왕이 좋은 게 아니야. 

왕은 오히려 너희를 괴롭히고 너희를 힘들게 하고 왕의 욕심 때문에 너희들은 쓸려가야 돼 그렇게 살고 싶어 몇 번을 하나님 말씀하시는데 그래도 이슬라엘 백성은 왕왕 해서 왕이 세워져서 겨우 사울왕이 세워지잖아요. 4월 때문에 얼마나 힘든 그렇습니까? 여러분 이것이 여기까지 다가왔던 하나님의 역사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사울왕 때문에 너무나 힘들어하는 백성들을 보고 그러면 왕을 세우긴 세우되 내 마음에 합한 왕을 세우자 그러셔서 다우당을 세우셨잖아요. 여러분 왕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직책이 아니에요. 열왕기라고 하는 말 자체가 하나님 앞에 서단 말이 아니에요. 그래서 열왕기는 오히려 선지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는가? 그러면 그러한 왕 때는 이스라엘이 평안해요. 그런데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믿음 없이 자기를 주장하는 왕이 세워지면 그때는 이스라엘이 아주 어려움을 겪어요. 

그러니까 왕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에 집중해서 열왕 이상 하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여러분 열왕기 상하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왕이 아니에요. 우리는 뭐 솔로몬을 대단하게 보고 누구를 대단하게 보고 왕은 주인공이 아니에요. 오히려 누가 주인공인가 오히려 선지자들이 주인공이에요. 오늘도 열왕시상 1장에 다윗이 몸이 점점 늙고 아도니야라고 하는 아들이 반정을 일으켜서 쿠데타를 일으켜서 아버지가 늙었으니까 아BOD니가 왕이 되려고 할 때 그때 솔로몬을 왕위로 올리는 사람이 누구냐 나단이에요. 선지자 나단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요 그리고 뒤로 가면 열왕기 상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 누구냐 엘리아예요. 엘리아 여러분 신기한 게 성경에 이사야소도 있고 호세야소도 있고 다니아서도 있어요. 선지자들이 주인공인 책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엘리야소가 없어요. 희한하지 않으세요. 엘리사서가 없어요. 아니 제일 선지자 중에 제일 활동 많이 한 사람이 엘리야고 제일 업적이 많은 사람이 엘리사 엘리야 엘리사인데 왜 성형의 엘리야서가 없을까? 엘리사서가 없을까? 엘리야서가 열왕기 상이에요. 열왕기 상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을 선지적으로 봤어요. 왜 엘리아가 주인공이니까. 열왕기 하는 엘리사가 주인공이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열왕이 상하를 읽을 때 조선왕조실록을 읽듯이 왕에게 초점을 맞추고 우리는 왕 좋아하니까 무조건 높아지면 좋아하니까 무조건 올라가면 좋아하니까 우리는 왕에게 꽂히지만 그것이 아니라 도리어 왕보다 선지자에게 오히려 우리는 더 시각을 두고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는가 하나님과 접합시켜 주는가 하는 것을 더 유심히 봐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 열왕기상을 어떤 눈으로 봐야 할지 좀 정리가 되시죠. 시작해 보겠습니다. 1절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리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자 성경은요, 아주 객관적이고요. 아주 정확하게 기록합니다. 다윗이라고 해서 다윗을 보호하거나 다윗을 변호하지 않고요. 다윗을 치장하지 않아요. 다윗도 나이 많아 늙으니까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고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아요.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죠. 저희 집에 있는 두 아들은요, 한겨울에도 베란다에서까지 잠을 자요 몸에 열이 많아서 도저히 이불을 덮을 수가 없고요. 베란다 했어요. 저는 이분들을 보면서 과연 이게 사람인가 싶어요. 근데 10대에는 그래요. 그게 맞아요. 20대 30대 점점 몸이 식어요. 

그러면서 저만 해도 이불 안 덮으면 잘 못 자요 그런데 50대 60대가 되고 이제 다윗은 70대가 넘었어요. 그러니까 이불을 덮어도 몸이 춥다는 말은 그만큼 노쇠했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 절 3절 4절에는 그러한 다웃을 위한 조치가 나오는데 이러한 아버지가 늙은 것을 틈타서 5절에 아도니야가 등장을 합니다. 그때의 핫기 새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50명을 준비하니 그랬어요. 여러분 다윗은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우리는 굉장히 좋아하지만 실제 삶은 어땠는가 굉장히 괴롭고 굉장히 힘든 삶을 살았어요. 그의 평생에 왕위를 노리는 아들들이 계속 반정을 일으키고 그의 왕을 노리는 반대 세력이 참으로 많았어요. 이 말년에 또 한 번 그는 쿠데타를 겪어요. 아도니야라고 하는 이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서 쿠데타를 벌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누가 세웁니까 하나님을 세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세운 왕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왕이 되려는 자들은 다 왕이 될 수 없어요. 그런데 인간은 그것을 뻔히 알아도 계속 자기가 왕위에 오르려고 노력해요. 앞살놈이 그랬고 아도니야 그랬어요. 보겠습니다. 그는 왜 그랬는가 6절 그는 압설럼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내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그랬어요. 다윈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지만 첫 번째 아들은 암론이죠. 장자암론은 압설놈의 여동생 담화를 강간했다가 그는 압설놈에게 죽었죠. 둘째, 아들 길르압은 성경의 이후로 안 나와요. 그러니까 아마 어렸을 때 죽었을 것이다. 그다음이 압살놈이에요. 압살놈은 반정을 했다가 죽었죠. 그다음 넷째가 아도니아예요. 

그러니까 아도니야는 뭐 위에 형 셋이 다 없으니까 자기가 첫 번째 장자잖아요. 장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거죠. 내가 지금 제 1장자니까 내가 왕이 되는 게 맞아 게다음에 나는 용모도심이 준수해 그리고 나는 한 번도 내 아버지가 한 번도 섭섭하게 말한 일이 없어 그러니까 얼마나 행여 완전하다는 거예요. 외모 완전하죠. 행위 완전하죠. 게다가 왕이 서열 1위예요. 그러면 누가 봐도 왕이 돼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돼요. 기다리면 돼요. 그런데 아도니야는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아버지가 늙었으니 왕이 되겠다라고 반정을 일으킵니다. 이게 우리 인간의 한계죠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할 때에는 내 생각에는 내가 볼 때에는이라고 우리의 생각을 또 주장하는 것이죠. 게다가 그의 이러한 생각을 동조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7절입니다. 아도니야가 스루하의 아들 유압과 제4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구나 그랬어요. 

자 당시에 가장 정치적으로 세가 크던 요압 여러분 요압이 다윗의 가장 최측근이자 다윗의 친척이자 가장 강한 장수 아닙니까 요압 요압이 아도니아 편이 됐어요. 게다가 제4장 아비아달 이제는 정치와 종교를 다 아우르는 최고의 오른팔 왼팔이 생겼어요. 그러니 아도니야가 얼마나 힘이 컸겠어요. 그러니까 누가 봐도 아도니야가 왕이 되는 게 맞죠. 또 누가 봐도 아도니야는 왕위에 오를 수밖에 없어요. 자 그런데 그가 부르지 않았던 사람의 이름이 8절 구절에 쭉 나오면서 그가 왕위에 오르기 위한 잔치를 벌이는데 누구를 부르지 않았는가 10절입니다.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여기 나단에 한번 밑줄 그어 보시고요. 솔로몬에 밑줄을 그어 보세요. 

자 나단과 솔로몬을 왜 부르지 않았는가 아도니야는요 선지자 나단이 자기를 반대할 것을 알고 있었어요. 자기는 세상적으로 보면 세상적인 역사로 보면 왕위에 오를 만한 충분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선지자 나단의 예언에 의하면 그는 왕이 될 수 없어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예언한 선지자 나단 때문에 아도니아는 왕이 될 수 없어요. 그러면 선지자 나단이 예언한 왕은 누군가 솔로몬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에 의하면 아도니야가 아니라 솔로몬이 맞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뜻만 무시하면 나단만 무시하면 아도니야가 되는 게 맞아요. 그러니까 아도니야는 여기서 갈등에 빠지는 거예요. 선지와 나단을 인정하면 자기 동생 솔로몬이 왕이 돼야 되지만 나달만 무시하면 자기는 요압도 내 편 아벨도 아달도 내 편 모든 왕위의 순서가 다 내 편 그러니까 자기 왕위를 주장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한번 볼까요? 왜 아도니야가 아니라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잇는 것이 맞는가라고 하는 것이에요. 이 열왕기를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면 아도니아가 되는 게 맞죠. 100번 맞죠. 그런데 왜 하나님의 선지서인 열왕기 상은 아도니야가 아니라 솔로몬을 지지하는가? 자 한번 가봅시다 우리 사무엘 하 7장으로 구합니다. 사무엘 하 7장 12절 자 사모에라 7장은 바로 유명한 장이죠. 다윗이 하나님께 집 지어 드리겠습니다. 성년 지어 드릴게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야 됐다. 네가 날 위해 집 짓냐 내가 널 위해 집 짓냐 내가 널 위해 집을 지어줄게 이게 사문이라 실장이죠. 

실장 12절 자 7장 12절 보시면 내 수환이 차서 내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내 몸에서 날 씨를 내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보이세요. 여기서 표시해 보세요. 내 몸에서 날 네 씨 그러니까 아직 태어나지 않았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왕이에요. 그러니까 너의 뒤에 세워서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세울 사람은 누구냐 보세요. 13절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오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자 아들은 하나님을 위한 집 성전을 건축할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 말씀하시죠. 그런데 사람이 누구냐 12절에 내 몸에서 날 씨예요. 아직 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이미 태어난 아들들은 다 재외인 거죠. 

이미 태어난 아들들은 다 왕위에 오를 수 없어요. 이제 아직 태어나지 아니한 않은 자가 돼요. 그러면 그게 누구냐 12장으로 갑니다. 12장 24절 그러면 이때까지 태어나지 않았던 그다음 시가 누구냐 사무일하 12장 24절 다윗이 그의 아내 밭세발을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우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한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아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었더라고. 했어요. 여디리아나란 말이 여호와께서 사랑하셨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7장에서 아직 나지 아니한 네 씨 앞으로 날 네 씨가 나의 집을 건축할 것이오 나는 그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리라는 사람이 누구냐면 바로 12장 24절 25절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이후에 태어난 아들 솔로몬인 것이죠. 

그런데 이때 솔로몬에게 여디디야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라는 이름을 준 사람이 누구예요? 바로 나 사단이에요. 그러니까 나단이 7장에서도 12장에서도 다윗에게 그다음 왕은 솔로몬이라고 두 번에 걸쳐서 예언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누가 봐도 아도니야는 억울한 거죠. 내가 여러모로 봐도 맞는데 왕위 서열도 1번이죠. 얼굴도 잘생겼죠. 성풍도 좋죠. 행위도 만전해 게다가 유압 아비아달 네 편이야 게임은 끝난 거예요. 그런데 오직 하나님이라는 존재 때문에 오직 하나 나단 솔로몬 이 두 명 때문에 아도니아는 공식적으로 왕이 될 수 없어요. 그래서 쿠데타를 일으킨 거예요. 여러분 볼게요 하나님이 변수입니까? 상수입니까? 

하나님이 하나님만 없으면 모든 것이 완벽한 나의 왕위는 가능한 것입니까? 불가능한 것입니까?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변수가 아니라 상수예요. 하나님은 모든 것이에요.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이 왕이시고 하나님이 주인이세요. 그러니까 아도니야는 애초부터 생각을 잘못한 거예요. 하나님만 없으면 하나님의 약속만 아니면 언양만 아니면 내가 왕이 될 수 있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왕을 세우는 분은 하나님이요. 언약과 약속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이죠. 그래서 열왕의 상은 시작할 때부터 시작하는 뭐라고 정의하고 시작하는가?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 세우신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왕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영원히 다스리기 때문에 그러니까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을 제쳐놓고는 이스라엘 역사를 논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도 아도디야처럼 생각할 때가 많이 있거든요. 내가 볼 때에는 이 사람이 되는 게 맞아 이렇게 되는 게 맞아 이게 합당해 이게 가장 선한 일이야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아니라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가 하나님의 언약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이 그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다윗을 왕위에 세우셨고 하나님의 언약대로 솔로문을 왕위에 세우셨고 하나님의 언약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인도에 가신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도 사실 힘들고 어렵고 얼마나 눈물 나는 일들이 많아요. 그런데 괴로워하지 않아도 돼요. 슬퍼하지 않아도 돼요. 

왜냐하면, 내 눈에 보는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 내 눈에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대로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시고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시고 하나님의 언약이 우리를 살리신다고 하는 것이에요. 오늘 하루도 우리 살아가면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우리의 마음을 두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살리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구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내시고 도저히 불가능한 것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뤄가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넘어서 우리의 부족함을 넘어서 우리의 부정함을 넘어서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 삶 가운데 행하시고 이루어 가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오늘도 우리를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 역사가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는 복된 날 하나님 편에서는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하시는 아름다운 날이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새로운 책을 시작합니다. 열왕 개 상을 시작하면 저희들 무엇을 중심으로 봐야 할지 어떻게 봐야 할지 오늘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나님 다윗도 나이 많아 늙고 아도니야처럼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이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아니면 왕이 될 수 없는 것을 봅니다. 주님 저희들도 연악하고 힘들고 부족한 생을 살아갑니다. 주님 우리도 우리의 뜻대로 우리의 삶을 인도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삶이 열리고 우리의 삶이 새롭게 개척되고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해지고, 되지 않을 것들이 되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 삶에 펼쳐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그것을 위하여 우리들 하나님 말씀 앞에 겸손히 서게 하시고 하나님 말씀에 언약이 이루어지는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도록 믿음으로 하나님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여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나님 우리를 웃도록 세워 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을 쉬었사오니 이 말씀 삶의 사람으로 살게 하시고 말씀대로 열왕기상 하를 일과가 내려가면서 저희들 더욱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정귀 되는 복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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