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열한 기 사항 3장 16절로 28절까지 말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같이 읽습니다. 그때 창기 두 여자가 왕에게 와서 앞에 서며 한 여자는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여자가 한 집에서 사는데 내가 그와 함께 집에 있음에 해산하였더니, 내가 해산한 지 사흘 만에 이 여자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그런데 밤에 여자가 그의 아들 위에 누움으로 그의 아들이 죽으니 그가 밤중에 일어나서 이 여정 내가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아침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 적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다른 여자는 이렇듯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오 죽은 것은 내 아들이라 하고 이 여자는 이러되 아니라 죽은 것이 내 아들이오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며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왕이 이러되 이 여자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오 죽은 것은 내 아들이라 하고 제자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내 아들이오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또 이러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 앞으로 가져온지라 왕에 이르되 사나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여자에게 주라 그 사나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사나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내 것도 되게 말고 내 것도 되게 말고 나는 그렇게 하라 하는지라 왕이 대답하에 이르되 사나이를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라 하매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아멘 솔로몬이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1000번제를 받으셨고 그리고 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고 그리고 지혜를 원한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1000번제 가지고 또 말이 많지 않았습니까? 뭐 1000번을 들였다. 1000번제인데 자꾸 원 다운은 타임스로 자꾸 생각을 해서 1000번제 가지고 말이 많았는데 재물을 천 마리 드렸다는 뜻이에요. 그건 우리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천 마리를 드리려면 꽤 오래 드렸겠죠. 하루에 뭐 천 마리를 어떻게 드렸겠습니까? 그러나 산당에서 드리는 제사를 그렇게 오래 드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1000일 동안 머물렀겠습니까? 아니죠. 어쨌건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재물에 눈이 팔린 하나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야 너는 한 마리 가져왔는데 너 솔로몬은 천 마리를 가져왔구나 그래서 감동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쨌건 그가 정성을 다해서 모든 것을 다 드리듯 그렇게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마음의 중심을 받으시고 그가 간절히 원하는 것 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를 주셨으면 지혜가 드러나는 사건이 따르게 됩니다. 여러분 간절히 은사를 갈망하면 은사가 쓰 1만한 일도 함께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간절히 은사를 구하는 것 좋지만 받은 은사를 감춰놓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은사가 오면 은사가 꼭 쓰일 일들이 따르게 됩니다. 때로는 힘들어요. 은사 때문에 그래서 나중에는 은사를 거두어 가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여러분 은사는 나를 위한 게 아니거든요.
내 편하고 내조자고 은사 주시는 것도 아니거든요. 내 자랑거리가 되라고 주시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은사를 받으면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은사가 마음껏 쓰이도록 내가 은사의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은사가 나한테 내가 하나님께 공로가 있어서 내가 하나님께 특별한 무슨 뭐 점수를 받아서 그게 주어진 게 아니라는 것이죠. 저는 솔로몬의 지혜도 마찬가지고 여러분에게 주시는 각양의 은사가 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어떤 은사건 그게 하나님을 드러내기만 하면 여러분 은사의 높낮이가 어디 있겠으며 은사의 무슨 경중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어떤 은사든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감사하고 은사가 하나님을 위하여 마음껏 쓰임받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누구한테 쓰이느냐 그게 인생의 갈림길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가 시간도 사실 선물인데 선물로 주신 시간을 누구를 위하여 쓰느냐에 따라서 시간은 영원히 시간이 되기도 하고 그냥 순식간에 흘러가버리는 시간도 된다는 것입니다. 100년을 살아도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시간이 있지만 주님 3년 사셔도 3년 공생해 사셨지만 영원한 시간이 되지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오늘 하루의 시간이 하나님께 붙들린 바 되고 하나님께 쓰이는 시간이 되어서 시간이 영원한 시간에 편입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솔로몬이 은사를 받았더니, 지혜를 받았더니, 도저히 사람들이 쉽게 판단할 수 없고 판결할 수 없는 지혜가 아니고서는 분별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잘 아는 얘기죠 뭐 저는 일찍 이렇게 주일학교 같은 데를 안 다녀서 이 얘기를 잘 뭐 어려서 못 들었지만 어려서 다 주일학교 때 가장 설교 많이 하는 것이죠. 애완전도사 이거 설교 많이 했죠. 인제 잘 설계하셔야 합니다. 그래요. 이게 어떻게 볼 거냐는 것이죠. 이 얘기도 오늘 이 얘기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볼 수가 있어요.
먼저 솔로몬의 지혜라는 관점에서 우리가 이 사건을 보면 솔로몬 왕이 누구도 쉽게 판결할 수 없는 그런 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볼 수도 있고 한 여인의 입장에서 보면 다툼을 가지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는가에 대한 문제를 풀어가는 프로세스에 우리가 또 주목할 수도 있고 또 판결의 내용을 가지고 이 판결이 정말 무엇을 기준으로 한 판결인가 지혜란 어떤 것을 기준 삼는 일인가에 대한 것도 우리가 깊이 묵상할 수 있는 주제예요. 먼저 한번 이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십시다. 오늘 이 두 여인은 창기라고 기록이 돼 있습니다. 당시에 지금도 뭐 떳떳한 직업은 아닐 터인데 당시에는 어땠겠습니까?
창기 몸을 파는 여인이에요. 세상에 드러내고 자기 얼굴을 가지고 대낮에 나가기가 어려운 사람들이에요. 근데 어쨌건 이 여인들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갔습니까? 왕 앞에까지 나아갔어요. 자 솔로몬 왕이 이런 부도덕한 여인은 나는 만나고 싶지 않다 나는 이런 여인들 재판은 그냥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피해버릴 법도 한 일이지만 또 솔로몬은 이 재판을 받았어요. 쟁론을 어쩌면 누구도 풀 수 없는 재판이기에 솔로몬에게 왔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이 솔로몬은 이 재판을 어쨌건 사람들이 다 멸시하는 여인이고 천대하는 여인이고 보고 싶지 않은 여인이지만 이 여인들의 다툼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솔로몬 왕이 이것도 겸손함이라고 믿습니다. 나중에 그런 변하지만 그러나 지금으로써는 그런 이 여인들의 절박한 다툼을 그가 직접 경청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두 여인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었어요. 서로의 주장을 충분히 다 들었습니다. 그렇게 듣고 나서 내린 결론은 무엇입니까? 증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증거도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증인도 없고 증거도 없는 재판은 어떻게 진행돼야 됩니까? 그리고 서로 이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그런 사건이 생긴 것이죠.
희귀한 사건이고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이지만 어쨌건 두 창기가 한 집에 산 것도 특이한 일이고 또 한 집에 살면서 사흘 상관으로 애를 또 낳은 것도 신기한 일이고 그리고 두 아이를 낳았는데 어떤 아이도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그것도 또 그런 일이에요. 그래 어쩌면 이 아이들은 아버지가 누군지를 모르는 아이들이에요. 세상 같으면 아이 갖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아이 키우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아이 내 아이라고 굳이 주장할 것도 아닐 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많이 아이가 버려지는 아이들을 봅니까 얼마나 많은 낙태가 이루어지고 있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고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학대받는 세상입니까?
그래서 제가 이 본문을 보면서 그래도 그때가 지금보다는 나았구나 장기라도 제 아이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구나 지금 여러분 멀쩡한 집에서도 아이 키우는 걸 힘들어하고 아이 낳는 기피하고 심지어 아이를 그렇게 얼마나 학대해서 죽이는 이런 일들이 보도가 되고 있고 전해집니까 그래요. 우리는 2000년 전 3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우리보다 미개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어쨌건 생명에 대한 관점이 달랐다는 것을 우리가 한 번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비록 창기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없이 여기는 그런 여인이라고 할지라도 어쨌건 생명은 자기 아이는 내 목숨을 걸 만큼 내 부끄러움을 다 드러내도 괜찮을 만큼 그걸 소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장기라는 직업이 부끄러워서 그런 일이 일어나도 쉬쉬하고 말 일이지만 그러나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여인은 자기의 모든 수치를 다 드러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그렇게 벌거벗기고 수치를 다 드러낸 까닭은 사랑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죠.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라 결국 생명을 사랑한 주님의 제스처 아닙니까 오늘 이 여인이 서로 그렇게 주장을 할 때 여러분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고 더 이상 심문할 일이 없는 이 재판을 솔로몬은 시간 끌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이 심 삼 심 항소심하지 않고 자리에서 판결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거예요.
오늘 같으면 이 재판이 뭐 대법원까지 갈지도 모를 일이겠지만, 어쨌건 오늘 솔로몬의 재판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칼로 가져와서 아이를 쪼개라는 거예요. 그렇게 둘이 서로 싸우고 서로 내 거라고 주장을 하니 그러면 반씩 갈라서 가지면 될 거 아니냐 그렇게 끔찍한 판결을 우선 내리는 것이죠. 그려 얼마나 놀라운 판결입니까? 얼마나 잔인한 판결이에요. 그러나 잔인한 판결을 받아들인 두 여인의 태도는 순간에 확연히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생모는 어떻게 할까요? 아이를 살리는 것이 목적 아닙니까 그러니 아이를 저연에게 주더라도 죽이지 말아 달라는 것이고. 생모가 아닌 여인은 태도가 180도 다른 것이죠. 그래요. 제 것이라서가 아니라 제가 꼭 낳았기 때문이라기보다도 생명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태도가 확연히 갈라진 것이죠.
자다가 자기 아이를 눌러 죽인 여인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옆에 있는 남의 아이를 갖다 놓고 죽은 아이를 옆에다가 바꿔치기를 했어요. 무슨 생각이 들었겠어요. 여러분 내 아이 생명도 중요하지 않고 아이 생명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지른 거예요. 만약에 내가 실수로 내 아이를 눌러서 질식게 했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붙들고 밤새 통곡했어야 할 일이지 어떻게 순간적으로 아이를 바꿔치기 할 생각이라겠어요. 그건 생명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내 체면이 소중하고 내가 더 중요해서 그런 결정을 순간적으로 내리는 거죠.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죽은 아이를 자기 아이를 남의 품에다 두고 아이를 바꿔치기 하는 있겠습니까? 그래요. 이 여인은 제 아이도 사랑할 줄 몰랐고 남의 아이도 사랑할 줄 몰랐다는 것이죠.
그리고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이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그야말로 마지막 시대를 사는 가장 중요한 사인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온 우주에 지금 우리가 뭐 그렇게 수많은 위성을 쏘아 올리고 무슨 뭐 로켓을 보내서 항성을 탐사하고 하는 이유가 뭐예요? 생명 하나 찾아보겠다고 지금 이 온 우주에다가 전파를 보내고 생명의 시그널이 없나 그렇게 엄청난 천문대를 만들어서 생명의 사인을 잡겠다고 온 천체 물리학과 우주물리학이 그렇게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요. 그러나 어쨌건 태양계 은하계 생명은 지구상에서만 지금까지는 우리가 확인하고 있습니다.
모르죠 다른 우주의 그 광대한 우주에 다른 생명이 있는지 저희들이 어느 누구도 단언할 수 없지만, 어쨌건 우리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은 이것보다 더 큰 기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없어요. 생명에 대한 우리가 외경심을 잃어버리면은 우리의 우선순위는 완전히 무너지게 돼 있어요. 그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사랑할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유물 사과는 인간을 사랑할 수 없어요. 진화론적 사고는 결국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언젠가 더 나은 것이 될 수 있다는데 지금 이걸 왜 사랑하겠어요. 그게 친화론적 사고의 함정이에요. 그들은 자기 존재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유물론을 가지고 어떻게 인간을 사랑해요. 물건과 인간이 물질과 생명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러니 사람을 물질 다루듯 물건 다루듯 다루는 것이죠. 그래서 생명 이꼴 사랑이에요. 생명 이꼴 말씀이에요. 생명 이꼴 빛이에요. 놀라운 우리가 생명에 대한 그런 경외감을 우리가 놓쳐버리기 때문에 이 시대는 말할 수 없이 비극적인 시대죠 어떻게 아이폰 하나 갖겠다고 사람을 이렇게 장기를 밀면 장기를 떼냅니까 그런 세상이더라고요. 그 아이가 무슨 10대 아이가 너무 아이폰 갖고 싶어 가지고 자기 신장을 띄워주고 그걸 사더라고요. 그래요. 뭐와 무엇을 교환해야 할지 모르는 시대예요.
생명과 물질을 교환하는 시대 아닙니까 청부 살인이 뭐예요? 그래 저는 오늘 이 우리가 이 본문을 보면서 솔로몬이 가장 중요한 기준을 알았던 사람이고 지혜란 바로 바른 우선순위라는 것이죠. 지혜란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아는 것이고. 지혜란 무엇이 가장 귀한 것인가를 분별하는 분별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어졌습니까? 우리는 죽을 힘을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서 돈을 벌지만 그러나 우리의 생명을 다 갖다 바치는 거 아니에요.
어쩌면 그걸 우리가 쓰는 이 모든 물질적인 환경들은 우리의 생명을 팔아서 다 얻은 것들 아닙니까 산업 쓰레기는 다 무엇이며 환경 오염은 다 무엇이며 황산은 어떻게 된 것이며 이 미세먼지는 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수만 번 제대로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 놓고 우리가 조금 좋은 차를 타면 뭐하고 조금 큰 집에 살면 뭐합니까? 인류는 모든 생명의 가치를 모든 물질적 가치와 바꾸기를 즐겨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기를 놓쳐도 단단히 놓친 것입니다. 우리가 깊이 묵상하면 정말 슬프고 슬픈 세상을 살고 있어요. 우리는 60년대 70년대 정말 죽을 고생을 해서 소득 3만 불에 이르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을까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을까요?
얼마나 많은 가정이 피폐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가출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질식하고 있습니까? 부모의 탐욕대 할머니 그래 우리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말았다는 거예요. 오늘 이 재판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무엇이 모든 분별의 기준인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생명 사랑 그게 없다면 어떤 것도 우리는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아이를 반으로 쪼개서라도 갖고 싶어 하는 것 아니 내가 포기하더라도 생명을 살리겠다는 그 태도가 있다면 우리가 유기체적인 공동체를 생명으로 본다면 우리가 이 교회를 어떻게 대해야겠습니까? 싸워서라도 그냥 반으로 쪼개는 게 낫습니까? 더 사랑하는 사람이 포기하겠죠. 어쩌면 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겠죠.
그래요. 내가 키우는 게 훨씬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지만 그러나 내 아이지만 죽이는 것보다는 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절박한 여인의 심정을 솔로몬이 알았다는 것이죠. 누가 진짜냐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게 진짜라는 거예요. 누가 진짜냐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극적으로 생명보다도 돈을 더 사랑하고 사람보다도 물건을 더 사랑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찬이 된다는 것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것 성령의 사람이 된다는 것 그건 우리가 물질적 가치 위에 반드시 생명의 가치를 두어야 하는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선교사들이 가서 헌신하고 거기서 자기 생명을 쏟아붓습니까? 자기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왜 그런 곳에 가서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까요? 어떤 것보다 단 한 생명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위해서 가서 헌신하는 분들이 선교사님들 아닙니까 저는 우리가 어디를 가든 안 가던 오늘 하루 이 기준을 다시 한번 새롭게 갖고 우리가 생명이 소중하다면 그 아이가 건강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가 웃는 것만으로 우리는 같이 웃을 수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이가 무엇을 하건 우리의 형제자매가 어떤 그런 해를 끼친다고 하더라도 그분을 생명으로 귀중하게 여긴다면 우리는 어떤 것도 품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생명을 쏟아부어 주신 것을 우리가 다시 한번 기억하는 아침이 되길 바랍니다. 부활할 절을 지났지만 그러나 그분께서 생명을 쏟아부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다시 알게 되었고 생명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고 그리고 다시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는 삶을 살기로 결단한 것이죠. 우리가 생명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차원을 한 차원 더 높인 주님을 바라봅니다.
생명을 쏟아부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서 덜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삶 삶을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이죠. 대단하십니다. 왜냐하면, 대단하신 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지혜로우실 것입니다. 지혜의 원1002신 분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세상이 감당할 수도 없는 지혜고 세상이 깨달을 수도 없는 지혜고 세상이 흉내 낼 수도 없는 지혜예요. 어떻게 세상을 기준으로 삼겠습니까? 세상에서 뭐 그렇게 배울 게 많습니까? 뭐 그렇게 세상을 급하게 쫓아가야 합니까? 저는 여러분들의 소중한 생명을 덜 소중한 것에 쏟아붓지 않는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그래서 생명이 쓰러지는 현장을 놓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케냐에 많은 학생들이 죽었어요.
지금 이슬람은 케냐가 무너지면은 아프리카 전체가 수중에 들어온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케냐를 밀고 내려와서 남아공까지 내려가는 게 목표죠 케냐에 지금 걸려 있으니까 그래요. 북한 땅에 탈북하는 한 크리스찬이 그렇게 간증합디다 왜 나오려고 하십니까? 찬송 한번 마음껏 부르고 싶어서 나오고 싶대요 그런 숨죽여서 예배드리고 찬송 못하는 저런 땅이 바로바로 우리 코앞에 있습니다. 오늘 그런 정말 생명이 죽어가는 생명이 생명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들 여러분들 가슴에 품고 한번 아침에 같이 기도하게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람 목숨 팔이 목숨보다 못하게 여기는 세상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무엇이 중요한지도 놓쳐버렸고 하나님께서 이 생명을 위해서 어떤 모든 것들 쏟아부었는지 우리는 미처 알지도 깨닫지도 못합니다. 케냐 땅 아프리카 땅에 중동 땅에 수많은 생명들이 쓰러지고 있습니다.
어느덧 낙태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생명들이 주님 북력 땅에는 예배 한 번 드릴 수 없어 예배를 드리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생명 귀한 생명 불쌍히 여겨주시고 우리의 생명 또한 불쌍히 여겨주시고 주요히 귀한 생명 하나님을 위하여 마음껏 찬양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기뻐하시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생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바람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은 생명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사오니 십자가 생명의 피로 다시 한번 회복해 하시고 영원을 위해 다시 한번 우리의 생명 주님을 기쁘게 하는 생명이 되게 하여 온천하 온 세상 온 우주보다 귀한 생명이지만은 우리는 생명이 어떤 가치를 지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 아버지 생명을 위해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생명의 가치와 물질의 가치를 맞교환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주님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겨주옵시고 생명이 쓰러지는 현장을 불쌍히 여겨주옵시고 긍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하나님 아프리카 땅의 중동 땅에 수많은 생명들이 쓰러지고 있습니다.
이념을 위해 종교를 위해 우상을 위해 죽어가는 생명들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고 주님 북옆 땅 가운데 예배 한번 드리다가 쓰러져가는 생명들 귀한 믿음의 사람들 불쌍히 여겨주시고 저희들 귀한 것 귀한 줄 모르고 살아가는 저희들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이 땅 가운데 주신 생명에 대한 외경씨 온땅 회복할 수 있도록 저희들의 생애가 그렇게 쓰임받게 하시고 이 땅 가운데 다시 한번 인권에 존귀함에 앞서서 생명의 존귀함이 더 드러나는 세상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십자가에서 얼마나 생명이 고귀한 것인지 당신의 생명을 쏟아부었심으로 입증한 우리 9주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이 생명의 물줄기를 따라 영원한 생명의 거처럼 맞아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과 날마다 소유의 급급한 나머지 우리의 생명 버리기를 아까워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돌이켜 지혜로운 삶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길은 부으심과 충만하게 하심이 이 아침에 솔로몬이 지혜로운 판결을 통해 한 생명 건지고 한 어머니의 사랑이 다시 한번 회복되었던 그렇게 우리의 생명 쏟아부어 이 땅 가운데 생명의 고귀함을 전하고자 하는 믿음의 사람 생명의 사람들 위해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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