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창고

[설교] 데살로니가 후서 1장 1편

yt1981 2024. 8. 2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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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환란이 가져다준 3가지 감사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대사로니과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집니다. 그러니까 후소죠 대사로니카 교회는 2차 전더여행 때 세워진 교회입니다. 요즘에 우리가 주일에 배우는 마게도냐의 첫 번째 성이 빌립보고 빌립보 바로 옆에 있는 두 번째가 데살로니까입니다. 이제 곧 살피겠죠. 사도경예 17장에 나와있습니다. 특징이 뭐냐 하면 되게 짧은 시간 복음진거였습니다. 새해 안식일 그러니까 3주 정도 선교였습니다. 이유가 뭐냐핍박이 엄청 심했거든요. 그래서 도망쳐 오느라고 그냥 다 두고 먼저 도망쳐 올 정도로핍박이 아주 심했던 곳이 대살로니과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짧은 선교핍박도 많은 데도 불구하고, 믿음이 막 자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제가 볼 땐 그래 이건 뭐 개인적인 편견일 수도 있지만 가장 사랑하는 교회가 어디냐 그러면 빌리보 교회고 가장 기특한 교회가 어디냐 그러면 대사로니까 교회에요. 

약간 차이가 좀 있죠. 마음이 끌리는 건 빌립본 거 같고, 근데 참 기특하다 자랑하고 싶다. 그런 교회는 또 대사로니까 교회 왜 짧은 시간 안에 확 변화가 되고 힙박 중에도 든든하게 서 가는 교회이기 때문에 그래서 전서에도 나오고 후서에도 나오지만 3가지 이 사도마을의 3주덕이라 그러잖아요. 믿음 소방사랑 이 3가지가 다 있더라 풍성이 있더라 그래서 대살일교 전서 1장 3절에 보니까 요걸 좀 풀었지요 믿음은 믿음의 역사 또 사랑은 사랑의 수고 인내는 소망에 인내 이렇게 풀었습니다. 3가지가 있는 교회다 그래서 사도바올이 볼 때 내가 꿈꾸는 교회 이상적인 교회는 대사로니까 교회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근데 좋은 것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잖아요. 어떤 부작용이 있냐면 이번 시간에 말씀이 증거돼서 능력 있는 교회가 되었는데 힙박이 엄청 심하다 보니까 살기 싫죠 여러분 안 그래요. 

사람이 그렇잖아요핍박이 심하니까 한판에 끝내고 싶잖아요. 주인님 빨리 오세요. 그래서 재일임신앙에 대한 것들이 지나치게 크다 보니까 일은 안 하고 주님 재립만 바라보는 시한부 종말론 같은 그런 모습이 잠깐 보이더라는 거예요. 한마디로 얘기해서 일상을 포기하는 거 그래서 재림신앙이 옳은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에만 매달려 가지고 딴 거를 다 포기해버려 일상 에브리 데이 라이프를 포기한 거예요. 일상을 포기한 거 그러니까 이건 문제가 있다. 그래서 급하게 다시 편지를 쓴 겁니다. 그래서 전소와 후소 사이의 차이가 3달도 안 돼요. 초대교회 당시에는 편지 쓰는 게 지금같이 이렇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비용이 엄청 들었습니다. 왜냐 그 양피지 같은 거에 써야 되고 일단 돈도 엄청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엔 편지라는 게 그게 굉장히 충격을 줄 정도로 희생을 요구하는 거였습니다. 근데 또 편지를 보냈다라는 건 뭐냐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그렇게 급한 마음이 있었다라는 거예요. 

더 변질되면 안 돼 뭐 그런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대사내과 후속 3장 십절 우리가 많이 인용하는 말씀 중의 하나가 그거죠.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여기서 나온 거라고요. 왜 재림신앙 매달려 가지고 일도 하라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거 뭐하는 짓이냐 일상의 영성을 가져야지 그래서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사회 윤리같이 교회는 매일매일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마지막 같이 충성하고 살아가는 거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재림만 바라보고 있는 게 무슨 신앙이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이거 되게 중요한 거죠. 그러니까 믿음과 삶의 일치 똑같은 겁니다. 계속해서 성교육이 강조하는 것은 인테그리티예요. 일치 보나 안보나 또는 뭐 비상시나 일상이나 까 일상의 신앙이라는 게 인테그리티라니까요? 그죠 언제나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된다.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대사력과 후손은 이렇게 믿음을 교정해주는 그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또 접근하는 방법이 참 좋은 거 같은데, 1장은 좋은 소식에 대한 반응이에요. 그래서 1장에서 나오는 거는 감사 격려 기도 이런 게 나옵니다. 저는 그 일장 접근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왜 좋냐면 누구를 칭찬해 줄 때 이렇게 감사의 형태로 칭찬해주면 참 좋잖아요. 그죠 너 잘한다. 뭐 이러면 괜히 아부같기도 하고 또 과도한 칭찬이 사람을 스포일하게 이렇게 망치게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감사할 수 있잖아요. 참 이렇게 믿음과 성실성이 있고 예쁜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 잘 섬기고 해서 참 감사해 그거 하나에게 감사하는 거지만 칭찬할 거 다 있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젊었을 때 청년회 때 얼마나 잠이 많겠어요. 

할 일도 많은데 항상 새벽기도 나와 가지고 찬양하고 율동하고 참 그런 사람이 있다라는 게 그런 동력자가 있다는 게 감사해 그런 거 사실 칭찬도 되지만 그게 감사의 형태잖아요. 여러분들도 누구에게 이렇게 격려와 칭찬을 할 때는 감사의 형태로 하는 게 참 좋아요. 하나님 앞에 이게 감사해 남편이나 아내도 이렇게 칭찬해 줄라고 그러면 약간 민망하잖아요. 그때 감사의 형태로 한다고 그러면 달라지겠죠. 사도방울은 그런 능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능력이 있는데, 왜 장가를 안 갔는지 모르겠어 하여튼간에 그래요. 예 그래서 감사의 형태로 지금 하나님 앞에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런 모습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요 먼저 우리 서론적인 걸 보면은 사도 바울은 팀 미니스트리를 했다고 그랬죠 우리 사도 연결할 때 위 우리라는 거 위 섹션이 있다고 그러는데 위 섹션에 4명이 있다고 그랬죠 바울과 2차 전쟁 할 때 이게 지금 고린도에서 쓰여진 거거든요. 

바울 신라 그 다음에 로스트라에서 아들 삼았던 디모델 그리고 여기선 숨겨져 있어요. 자기 드러내는 걸 싫어했던 것 같아 의사 누가 누가 더 분명히 있었을 거라고 근데 아마 옆에서 뭐 쓰지 말라고 그랬든지 누가 하나 빠져있는데, 이렇게 팀으로 항상 다녔어요. 4명이 그게 되게 중요한 거죠. 우리도 좋은 팀이 있다는 게 하나님 앞에 감사한 거죠. 인사하는 걸 한번 읽어봅시다 1절과 2절입니다. 시작 바울가 실로아누아 디모델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론집 간의 교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의례와 평강이 너에게 있을 지어다 그러니까 좋은 팀이 하나님 앞에서 안부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란당하고 어려움 당한다는 것에서 먼저 1장에서는 칭찬한다고 그랬죠 감사의 형태로 격려하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환란이 가져다주는 3가지 감사 내용이 있다라는 게 바로 뭐죠 믿음 사랑 소망 그리고 고 순서로 지금 칭찬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3가지 감사인데 첫째, 감사는 뭐냐 믿음에 대한 감사예요. 

대단해 있고 애들의 참 믿음이 있더라 전서에도 나와요. 똑같이 1번 더 하는 거예요. 근데 그 믿음이 자라나고 있다. 라는 거예요. 믿음이 더욱 자라나는 것이 정말로 감사하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3절 우리 상반자 믿음 앞에까지만 읽겠습니다. 시작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잘하고 그러니까 믿음이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를 했지만, 이제 후소에서는 그 믿음이 잘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잘하고 있다. 우리 뭐 찬양도 있잖아요. 믿음에 믿음을 더하여 그 믿음은 사용하면 잘 하게 돼 있습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고 그러면 문제가 있는 거죠. 믿음은 활용하면 자꾸만 생명이기 때문에 자라나게 되어있다. 그걸 말하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언제 자라느냐 우리 상식하곤 다르다 라는 거예요. 

우리는 뭐 이렇게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할 수 있고 평탄하고 카펫 깔아주면은 믿음이 잘 자라고 우리 같으면 기도하면 응답이 이루어지고 가정도 잘되고 사업도 잘되고 막 이렇게 되면 믿음이 자랄 거 같죠 네 그럴 수도 있겠죠. 저는 그것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상식과는 이게 배치되는 일들이 벌어졌다는 거예요. 극심한핍박이 있었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약간 염려가 되죠. 야 대사를 하니까 왜 저렇게핍박이 많은데 인간적인 생각으로 계산해보면 위축될 것 같잖아요. 어 저렇게핍박당하니 이 예배도 못 드릴 것 같은데, 지금 예수님께 부인하는 사람 나올 거 같은데, 그리고 전도도 못 할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이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환란당하면 믿음을 저버린다 환란당하면 우리 소위 말하는 시험에 든다. 뭐 이런 걱정들을 하잖아요. 근데 대사르니까 교회는 그렇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환란이 그들의 믿음을 약화시킨 게 아니라 환란 중에 믿음이 더욱더 자라나게 되더라 이거죠. 진짜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보면 그래요. 믿음은 힙박을 먹고 사는 것 같아요. 믿음은 고난을 먹고 산다 맞는 거라구요. 환란이 오히려 우리 믿음을 더 자라나게 만든다. 똑같은 자극이지만 반응은 다른 거 뭐 진흙과 얼음 얘기하잖아요. 햇볕이 내려 쬐는데 동일한 자극이죠. 진흙은 굳어져 버리고 얼음은 녹고 어떤 사람은 동일한 환란이 왔는데 이렇게 마음이 강팍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녹아서 회괴하고 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변화되는 경우도 있다고 그래서 환런은 그게 진짜 믿음인지 아닌지를 보여주는 어떤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죠. 저는 이거 잘 몰랐는데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예배 중단되고 막 이런 과정을 쭉 보면서 야 이게 사람이 판단할 게 아니구나 그 속에 진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런 과정을 통과해보니까 숨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넘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믿음이 더 굳건해지는 사람이 있고 환란이 동일한 고라니였잖아요. 동일한 고라니였는데 달라요. 그래서 진짜 하는요 환란이 오면 성장합니다. 믿음이 성장하는데 뭐 가짜라 그럴까요? 믿음이 아닌 것들은 다 넘어지게 되더라 여러분들 스스로의 믿음을 이렇게 증명할 수 있는 그런 종결되길 바랍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북한 교회를 한번 생각해보고 싶어요. 북한은 환란이 많지 않습니까? 뭐 예수 믿으면 잡혀가고 죽고 수용소 가잖아요. 성경책 발견하면 수용소 가고 성경책 발견하면 수용소 20년 있는데요. 그전에 뭐 많이 죽는답니다. 뿌리가 다 포핑크 같이 보이잖아요. 근데 최근에 어떤 이제 보고서 같은 걸 보면은 그러더라구요. 탈북자들이 중국에 왔다가 어떤 사람들은 너무 예술 잘 믿어 가지고 한국으로 안 올라 그러고 다시 들어가는 경우가 있대요 왜 복음 증가한다. 

그래서 그런 지하교회들이 생각보다 꽤 많은가 봐요. 뭐 많이 보고되는 건 지금도 100만 명 정도가 있다느니 뭐 그런 얘기도 있고 최근에 우리 인터넷 같은 데 한번 보십시오. 거기 탈북자들 가운데 자기 어머니 할머니 믿음 고백하는 그런 것들 나와요. 나오는 거 보면은 이게 지금 교회가 폐쇄된지 뭐 70년 이상 됐지만 아직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니까요? 그리고 1분의 제가 표현을 들어보니까 참 놀라더라구요. 그때 북한의 교회가 많았잖아요. 교인들이 다 남한으로 피난 왔는데 그분들 뭐 나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외갓집도 피난 온 집 아니에요. 그분들은 그렇게 표현하더라고요. 교회를 버리고 도망간 성도들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는 교회를 지킨 성도라고 누구 믿음이 더 크겠어요. 핍박 중에서 교회를 지킨 정도죠 그렇죠. 아니 그러니까 시각에 따라서 지금 뭐 피난 내려온 사람이 더 나쁘다고 그러면 우리 외갓집에 맞아 죽어요. 

그건 아닌데 그것도 믿음이겠지만, 이분들은 그런 자부심이 있다라는 거예요. 그런 정도도 있지만 우리는 피로써 교회를 지킨 정도라고 그러니까 보통 믿음이 아니겠죠. 그래서 나중에 이렇게 다 열려지게 되면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기막힌 성도들을 보게 될 것이에요. 저는 분명히 그걸 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부끄러울 정도로 기막힌 성도들 야 저런 믿음의 성도들이 있었구나 그런 성도가 있다라는 거예요. 로마 때도 보십시오. 카타콤에 들어가서도 300년을 버텼던 게 믿음의 성도들인데 진짜 믿음이었잖아요. 사실은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믿음은 환란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여러분들 내 상황이 평탄한 거 아닌가 그거 판단하지 말고 믿음입니다. 믿음 내 믿음이 잘하고 있는가 잘하는 믿음이라 그러면 진짜고 아니라 그러면 무너지게 된다. 이거 좀 더 설명한다고 그러면 저 이란 교회도 그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79년도에 그 호메이니를 비롯해 가지고 이슬람 혁명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뭐 그 서구적인 이란이라는 페르시아잖아요. 여기가 페르시아 페르시아라는 나라가 이란으로 바꾸고 아리안의 후손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리고 엄청나게 그냥 뒷걸음질 친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란에서는 가장 강력하고 뭐 엄격한 이슬람으로 규율로 돌아갔기 때문에 기독교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이슬람 국가 중에 최고로 교회가 부흥하고 있어요. 제가 몇 년 전에 소개했죠. 200만이라구 거기 교인이 200만이에요. 근데 최근에 가장 최근에 보고 의하면 지금 엄청나게 기독교인들이 늘어나가지고 600만이 됐다고 만약에 600만이 많다 그러면요 맞다고 그러면은 우리 한국 기독교인보다 훨씬 많아요. 우리 한국 기독교인이 마지막 봤을 때가 뭐 600인 70억 예배 모으는 사람들이에요. 근데 우리보다 많을 수도 있다. 

거기가 인구가 좀 많기도 하겠지만, 그러니까 이랑교회 부흥을 보면서핍박과 환란이 진짜 믿음의 성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라는 거 그건 우리가 부인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여러의 삶에 환경에 관계없이 자라나는 믿음을 갖는 하나님이 종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마올이 3가지 환란 속에서 감사를 드렸는데 첫 번째 믿음인데 믿음이 잘하고 있다. 라는 거예요. 자라나는 믿음에 대해서 자랑했듯이 감사했듯이 우리의 믿음에서 자라나는 우리 하나님의 거룩한 종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1가지는 둘째, 감사는 뭐냐 하면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해지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3절 하반절 거기부터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니까 우리가 마태보고 22장기 보니까 율법의 선지자다 그랬던 게 내용이 뭐예요? 율법 중에 뭐가 겁니까?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라는 거 까 사랑이죠. 사랑의 내용이 뭐예요? 

희생하는 거죠. 한마디로 사랑을 주는 거거든요. 사랑을 주는 것 준다라는 건 뭡니까? 나를 넘어서는 거야. NIVC 낫 아이버 크라이스터 내가 죽고 예수로 산단 게 뭐예요? 나를 넘어서는 거죠. 그게 사랑이라구요. 사랑은 나를 통해서 흘러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주는 것이 핵심인데 주기 시작하면요 제일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입장의 변화가 일어나요? 요즘에 갑이냐 을이냐 맨날 그러는데 사랑하면 갑 되는 거예요. 갑이 뭐예요? 주장하는 게 아니라 주는 게 갑 아니에요. 그죠 이렇게 흘려보내는 거 갑 아니야. 영적으로 갑이 되는 거예요. 흘려보내는 거라고 없어도 괜찮아요. 흘려보내는 거라고 부모와 자식 간의 갑이 누구예요? 사실 뭐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부모죠 부모가 다 먹여주고 다 입혀주고 하잖아. 우리 주기 시작하면 우리가 부모 입장에 서게 돼요. 그리고 최고의 갑은 누굽니까 하나님 아니에요. 모든 은혜와 축복을 공급해 주신 게 하나님이잖아요. 까 하나님의 입장에 서는 게 뭐예요? 

사랑이라고 주는 거 그래서 교회도 뭘 가르쳐야 되냐면 주는 거 입장에 변화를 가르쳐야 돼요. 아무리 돈이 많아두요 그지근성 있으면은 받는 거 좋아하면요 입장이 받는 거로만 있으면요 그 사람 절대로 성장 못 해요. 그걸로 끝나요? 그냥 욕심부리다 끝나버린다고 근데 어느 순간인가 이게 방향이 바뀌어서 주는 쪽으로 가면 부모가 돼버리고 하나님의 입장이 돼버리고 하나님이 그런 사람에게 부어주시겠죠. 그래서 그걸 뭐라 그래요. 축복의 통로가 된다고 이게 사랑입니다. 사랑 그래서 사랑이 풍성함에요. 사랑의 풍성함 뭐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것도 사랑이 풍성하다는 게 그런 거 아니에요. 가난하지만 풍성할 수 있죠. 가난했습니다. 

남편은 금시계 여자는 긴 머리카락 선물 살 돈이 없으니까 금시계 팔아서 머리빗 사고 아내는 머리 잘라 팔아가지고, 시계줄 사고 그러니까 서로 선물 주고받았는데 내용은 어때요 쓸모없는 시깃줄 쓸모없는 머리빗 그렇지만 행복했다. 왜 행복하죠. 사랑이 남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요, 이 러브 스토리 사랑의 스토리를 갖고 있어야 돼요. 교회는 교회는 딴 거가 아니라 이 간증이 뭐냐 하면 사랑에 대한 간증이 있어야 된다구요. 우리가 이렇게 주다가 이런 감동받았어. 감동 먹었어죠 그냥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어 그러니까 간증이 없는 교회는 교회도 아니죠. 참 부끄러운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주는 얘기예요. 주는 얘기 러브 스토리거든. 그런 스토리가 있어야 되겠죠. 이런 것도 생각나는 게 그런 거래요. 옛날에 뭐 전쟁 중에 있었다고 그러죠 뭐 2차 대전 때 나치 포로 수용소 험난했잖아요. 

막 굶구 막 그러잖아요. 그거 보면 이렇게 빼짝 마른 사람들 보이고 그러잖아. 근데 독일군이 빵 갖고 장난쳤다고 그러죠 이제 포로들 있는 데 굶주리니까 예 빵 하나 던져주면 고 무슨 비둘기 모이 주듯이 그죠 개떼 모이듯이 서로 달려들어서 서로 먹겠다고 아비규환을 이룰 거를 기대했대요 실제로 그랬고 빵 하나 던지면 서로 싸우고 막 먹겠다. 그럴 것 아니에요. 근데 그 크리찬들이 많은 어떤 수영동에 있었는가 봐요. 거기 군목이라고 제가 들은 것 같은데, 던지니까 군목 님이 목사님이죠. 그걸 들고 높이 들었다고 그랬죠 높이 들고 그러면서 이 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 드리라고 그래서 다 같이 찬송 부르는 거예요. 감사 찬송 그죠 그다음에 감사 기도하고, 대표 기도하고, 그리고 그거 갖고 성찬했대잖아요. 조금씩 뜯어가지고 성찬식 그러니까 빵 하나를 가지고 다툼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하나됨을 이런 거죠. 

예수 안에서 하나됨을 이루는 것 그러니 독일군 공포에 떨지 않겠어요. 교회는 그런 곳이에요. 서로 내 것이다. 하면 다툼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주는 방향으로 바뀌면 성찬이 된다니까요? 하나됨 이게 뭐 능력이죠. 이게 사랑의 풍성함에요. 이런 능력이 있습니까? 제가 보니까 그래요. 모든 이 관계 속에서도 명절이잖아요. 가족끼리 싸우는 것도 보니까 다 자기 꺼 주장해서 그래요. 어느 순간 어떡하면 하나 되면 이럴까 어떡하면 사랑의 풍성함을 가질까 어떡하면 우리 가정에도 러브 스토리 사랑의 이야기를 남길까 그러면요 이렇게 주는 쪽으로 바뀌면 다 바뀌어요. 분위기가 바뀌어 버리고 한 사람이 주기 시작하면 서로 준다. 준다. 그래 가지고 천국으로 변화가 되더라구 근데 자기 거 주장하다 보면 이게 문제가 돼요. 원래 부잣집이 자기 거 주장하잖아요. 뭐 유산이 많거나 그러면 서로 자기 걸 하고 싸우고 그러는 거를 듣고 보지 않습니까?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거예요. 주기에 바쁘고 그죠 그러다 보면 풍성한 사랑이 있게 된다. 그런 거죠. 

그래서 사랑도 2종류예요. 인간적인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데, 아가페 사랑 인간적인 사랑은 환란이 오면 약해지죠 이건 뭐 서로 기브 앤드 테익이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주는 사랑이기 때문에 환란이 오면 더 강해요. 얘기했잖아요. 지금 크리스마스 선물 또 하나 수용소에서의 빵 1덩이 가난하기 때문에 이게 보통 때 빵 갖고 제가 예를 들어서 여기서 파리바게트 빵 하나 사가지고 찬송합시다. 그럼 찬성하겠어요. 여러분들이 전 목사가 미쳤나 그리고 기도 합시다. 하고 그러면 뭐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이거 빵 하나 갖고 나눠 먹읍시다 그러면 집에 가는 사람이 반일걸 집에 가면 먹을 거 많은데 지금 뭐하는 짓이야 그러니까 여러분들 그래서 한 1주일을 굶겨 놓을 필요성이 있다니까 1주일 굶고 난 다음에 빵 하나 들면은 그게 감동으로 남고 평생의 스토리로 남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이런 게 되게 중요하다고 그랬죠 이게 꼭 필요하다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내용은 셋째, 감사는 환란 중에 인내하는 거죠. 환란 중에 인내했다. 4절을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란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인내가 나오는데 환란 중에 인내 전세계는 소망의 인내 그랬잖아요. 까 소망하고 연관이 돼 있죠. 소망 없으면 어떻게 인내 하겠어요. 로마사법 8장 18절을 보니까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러니까 소망의 영광이 있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고난을 견딜 수 있는 거죠. 인내할 수 있는 거죠. 이게 중요한 거죠. 우리 얼마 전에 고린도 후소 살피지 않았습니까? 12장 12절 외우기도 쉽죠 12.12 사도의 표 내가 사도다 하면서 사도의 표 그러면 우리 능력인 줄 알았죠 능력보다 앞서는 게 뭐예요? 

모든 참음 사도에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 인내죠 인내 모든 참음 그리고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까 뭉뚱뜨려서 그걸 능력이라고 본다고 그러면 능력보다 앞서는 게 모든 참음이라구요. 내가 사도의 증거가 모든 참음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꾼의 증거 1순위가 뭐예요? 인내죠 인내 모든 참음 그리고 능력을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거다 그런 겁니다. 그래서 인내가 있어야 인내가 있으면 근육도 생기고 막 그러잖아요. 제가 얘기했잖아요. 인내 없이는 인내가 이게 시간 낭비가 아니에요. 기량과 스토리가 나온다니까 기량과 스토리 그죠 이게 게임하고 도박하고 차이점이 있다고 그랬죠 게임을 하면 지더라도 기량이 남고 스토리가 남잖아요. 우리 인생이 그래요. 우리 삶 속에서 세상 사람들 이겼다 졌다 그럴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과정 속에서 기량이 늘어요. 

실력이 는다고 그리고 또 하나가 스토리가 계속 나오잖아요. 사랑의 스토리도 나오고 인내의 스토리도 나오고 반증이 나온다고 그러니까 이게 엄청나게 강한 것이 될 수 있겠죠. 그래서 인내를 통해서 모든 부족한 거 다 주십니다. 야구부사 1장에 나오잖아요. 그저 환란당해도 기뻐하라고 참고 인내하는 가운데 모든 부족한 거 다 채워주신다고 조금 더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만드신다고 이런 사람 생각해보면 그 훗카이도 요즘엔 일본을 못 가니까 훗카이도 한번 가보고 싶네 이름이 뭐더라 아사히 카와든가 조그마한 도시 있는데, 거기 잘 안 가요 근데 저는 갔어요. 이유가 뭐냐 미우라 아야코 때문에 미우라 아야꼬 거기서 글 쓰고 그래서 빙점 길은 여기에 거기 썼던 것이에요. 거기 가면 이렇게 조그만 기념관 같은 것도 있던데 보면 뭐 책도 팔고 그래요. 영어로 된 것도 팔고 하고 요즘에는 한국책도 팔더라고. 거기 한국에서 번역된 것도 팔고 뮤라야코 미우르 아예코 어떤 분인지 아시죠. 

일본의 작가 중에 노벨상 노벨문학상 받았을 걸 아마 근데 움직이는 종합병원이에요. 폐결핵 폐결핵 폐 폐가 상해야 하듯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하여튼 간에 폐결핵 척추 카리에스라고 그러는데 이 척추 카리에스가 뭐냐 하면은 무슨 염증 같은 게 생겨 가지고 척추에 체격으로 나오거든. 그래서 목부터 이렇게 등까지 기브스를 해요. 그래서 13년 동안 누워 있었어 그러니까 대소변도 자기가 못하고 척추 카리에스 나 처음 들어봤어요. 카리에스 칼의 라이슨인 줄 알았다. 처음에 예 카리에스 그런 병이 있대요 그리고 파킨슨병 나중에 들고서는 파킨슨병 걸리고 근데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자기는 근데 우리 교인들도 종종 있는데, 자기 병 중에 최고 무서운 병이 대상포진이었대 대상포진 걸리신 분들 있잖아요. 

면역력 떨어지면 대상포진이 막 이렇게 물집이 생기는데 얼굴 생기고 눈까지 왔대요 그래서 의사가 그러더래 실명의 위험이 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더니, 실명은 면하게 됐고 하여튼 대상포진이 누워있을 때 진짜 힘들었는가 봐 그래서 그 뮤라야꺼의 글을 읽어보면은 대상포진이 무섭다라고 하는 게 느껴지고 막 그래요. 그런데 이분이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내가 병으로 잃게 된 것은 건강뿐이라고 참 많이 웃기죠 그 병으로 건강일지 병원이 전부라고 그러는데 어떤 사람 모르잖아요. 뭐 인생에서 건강이 전부라고 근데 미우라 아이 건 그렇게 얘기 안 했어요. 병으로 잃어버린 건 건강뿐이라고 얻은 게 뭐냐 13년 동안에 이렇게 누워 있으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두 번째 그 과정 속에서 미우라로 남편이거든요. 좋은 남편을 얻게 되었고 세 번째 그 과정을 통해서 영혼을 죽기로 이끌 수 있는 소설을 써서 많은 영혼들을 죽게를 이끌었다 제가 볼 때 미국은 아예 꼭 글을 읽고 난 다음에 제가 아는 분만 해도 여러 명이 예수 믿었어요. 

믿지 않다가 그 믿게 된 분들 되게 많아요. 그러니까 이런 전도자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다구요. 그래서 아픈 가운데 인내하신 분이에요. 인내가 이거 보세요. 기량이 생기고 스토리가 생기잖아요. 그다음에 전도의 능력이 생기잖아요. 미우라 야고의 시 중에 하나가 이런 게 있어요. 아프지 않으면이란 시가 있어요. 아프지 않으면 옛날에 외웠었는데 지금 못외워서 자고 왔어요.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보지 못할 거룩한 얼굴 성안이라고 그랬는데 거룩한 얼굴 그러니까 예수님의 얼굴이죠. 얼굴이 있다.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인간일 수 좋다. 참 이거 젊었을 때 제가 되게 좋아했던 시 중의 하나인데 아픔이 있었잖아요. 아픔이 거기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라는 거예요. 

아플 때만 할 수 있는 기도가 있고 아플 때만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있고 아플 때 광야죠 광야 그때만 이렇게 서무소로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 얼굴 보고 아프기 때문에 내가 인간이라니까 뭐 아프니까 청춘이다. 여기서 나온 거 같애 그죠 아프니까 인간이다의 아프니까 인간이다. 까 인간의 위대성은 아픔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아픔에서 하나님 예비하신 모든 좋은 것을 다 갖게 만드신다 데사리과 교회는 아픈 교회였습니다. 힙박 때문에 아픈 교회 근데 환란 중에 소망이 인내를 갖고 있잖아요. 그래서 모든 좋은 것들을 다 누리게 되었다라는 거예요. 우리 명절 오늘 뭐 마지막 날이고 한데 대사랑외과 교회에 주셨던 이런 감사의 내용들이 우리 삶 속에도 그대로 임하는 우리 축복의 종되기를 축원합니다.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해서 이런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믿음의 종대결을 축원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우리 일상 참여하겠습니다.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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