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살로니카 후서 1장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가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어제로 데살로니카 전서를 끝내고 오늘 후서로 들어갑니다. 전서는 5장짜리 편지였구요. 후서는 3장짜리 조금은 짧은 편지입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전서가 쓰여진 게 주후 52년경이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후손은 언제 썼나 어떤 학자들은 1년 반 정도 걸렸을 것이다. 곧 텀이 그런데 또 어떤 학자들은 아니다. 2~3개월 만에 썼을 것이다라고 봅니다. 여러분 1년 반도 이 당시에 편지를 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이게 펜을 구하고 양피질을 구하고 어마어마한 일이고 비용도 들고 또 이걸 전해줄 사람도 필요하고 이게 편지를 쓴다는 게 요즘 같지 않아요. 굉장히 힘든 일인데 1년 반 만에 썼어도 정말 서둘러 쓴 거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정말 학자들의 연구가 맞다면 2~3개월만에 썼다 그러면 돌아서 또 쓴 거예요. 오늘 쓰고 내일 쓴 거예요. 우리로 보면 그 정도예요. 왜 그랬는가라고 하는 거죠. 왜 그랬나 우리가 전설에서 본 것처럼 대사노인과 교회는 바울과의 만남이 짧았잖아요. 3주밖에 안 만났는데 그들 속에 믿음이 역사가 있었고, 사랑의 수고도 있었고, 소망 인내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믿음소망 사랑이 그 안에서 거의 완전하게 구현되고 있는 교회 그러니까 바울이 꿈꿨던 교회죠 어찌 보면 이런 교회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 했던 교회가 데살로니까지 생긴 거예요. 그러니까 그 교회에 대한 이 사도바울의 애정은 뭐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겠죠. 근데 그 교회가 2~3개월 만에 다시 편지를 써야 될 상황이 생겼다는 거죠. 그건 무슨 말일까요? 두 가지죠 빠른 시간 동안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근데 그 변화는 좋은 면으로도 일어났고 또 안좋은 면으로도 일어났어요. 거기에 대한 사도바올의 즉각적인 반응이 바로 후소예요.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2가지 측면으로 봐요.
하나는 대설로니까 교회 측면에서 보고 또 하나는 이 사도바울의 측면에서 보는데 이 사도바울의 측면에서는 얼마나 급했으면 또 얼마나 귀했으면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 영혼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했으면 이들의 성장이 반갑고 그러면서도 또 이들이 자칫 잘못될까 걱정되고 그래서 정말 마치 갓난아이를 다루는 조심스러운 부모님의 마음처럼 다시 돌아서자마자 또 이 편지를 쓴 거죠. 그래서 이 편지가 너희에게 꼭 하나님의 마음으로 전달됐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심정을 가지고 이 편지를 쓴 거죠. 그리고 또 하나 대선의외과 교회 입장에서 이거 편지를 보자면 이게 얼마나 감사한 거예요.
서도발 간의 짧은 만남 3주밖에 안 됐지만 그러나 정말 지극정성으로 가르쳐줬고 복음의 진술을 전수해 줬고 또 그것을 열심히 배워서 그 복음을 바탕으로 지금 믿음이 쑥쑥 성장하고 있는데, 그렇게 몸을 피해 떠나갔던 사도바울이 1번 편지를 보냈잖아요. 근데 그 편지를 받고도 우리가 아직도 사랑이 고프고 아직도 우리는 좀 더 성장이 필요한데 편지가 돌아서자마자 또 왔단 말이죠. 그럼 얼마나 이것이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몸 된 교회로 세우셨다는 것을 확증해 주시는 확실한 증거처럼 보였겠냐고요. 그래서 대설노니과교회에 전서와 후소가 있다라고 하는 것은 이것을 사역자 입장에서 보면 1번 사랑했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1번 말씀을 가르쳤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계속해서 그 말씀을 확증하고 또 확증해주는 말씀을 올바로 선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올바로 전하는 적극적인 복음전도의 자세 적극적인 말씀 선포의 자세를 우리는 하나 알 수 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 하나님의 확실한 인도의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지금 다시 한번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이 2가지 입장을 다 갖기를 원해요.
마치 우리가 마치 처음 말씀을 받는 사람처럼 정말 이 말씀이 너무너무 새롭고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와서 정말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금 처음 본 사람처럼 가슴이 설레고 뜨겁고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나를 위해서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해주고 계신다 마치 대사로내과 교인들처럼 그런 뜨거운 마음도 우리는 필요하구요. 또 하나는 그러면 우리가 이제 무엇을 할 것이냐 우리도 이제 사도바올처럼 나보다 연약한 자에게 말씀을 전해주고 나보다 처음 믿은 사람 나보다 아직 믿음의 원수가 짧은 사람에게 올바른 하나님을 믿는 도리가 무엇인지를 거듭해서 반복해서 알려주는 이러한 열심과 정성이 필요한 거죠. 근데 그럴려면 뭐가 필요하겠어요. 알아야 돼요. 알아야 전할 수 있어요.
전설을 우리가 공부하면서 핵심적인 단어가 안다는 거였잖아요. 너희가 친히 안다 너희가 이미 안다 너희가 익히 안다 안다고 하는 자세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랬어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신앙에 대해서 모른다는 걸 늘 전제로 해요. 난 몰라 아유 나 모르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아뇨 모르지 않아요. 여러분들 많이 알아요. 아는 것을 행하면 돼요. 여러분 아는 것을 행할 때 은혜를 받는 거예요. 예 하나라도 더 알자 물론 좋은 자세죠 그런데 알았으면 행해야 돼요. 근데 우리는 아는 게 만족이 없어요. 끝까지 더 알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알고 싶고 행하진 않어 언제 행할 거예요. 어떤 분들은 천국 가문 행하실지 모르겠어요. 이 땅에서는 그냥 더 알고 더 알고 더 알고 귀만 만족시키는 걸로 끝나는 분들도 있단 말이죠.
우리가 지금 하루 1장을 창세기부터 시작했는데 이제 6년 차에 들어갔는데 얼마 안 있으면 이제 신구약 1189장이 끝납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점점 이게 다가오는데요. 벌써 대선로니까 후설 오늘 들어가는데요. 이게 다 한번 맞힌다 우리가 한 번을 다 봤다. 뿌듯한 일이고 좋은 일이죠. 저도 그날이 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보람 있을 거 같애요. 아 성경 1번을 전장을 1번 강행했다. 뿌듯하겠죠.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그래서 뭐가 달라졌는지 뭐가 달라졌는데 이게 더 중요한 거예요. 그 성경을 다 우리가 한번 봐서 그래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었냐 정말 우리 삶이 달라졌냐 그게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대선의 내과 전설을 받을 때와 후설을 받을 때가 똑같다면 사실 전서와 후서 그게 뭐 2~3개월 차이든 1년 반 차이든 똑같다면 그 편지 왜 받은 겁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강행하고 이 말씀 아침마다 받고 이 말씀을 묵상하고 이 말씀으로 살기로 다짐할 때 정말 중요한 건 내가 그 말씀을 아는 만큼 행하고 그 말씀을 소화해서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왜 드리냐면 우리가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 끝날 때 아차 하면 안 되거든요. 어 말씀 한번 다 봤는데 나는 별반 달라진 게 없어 아차 어떡하지 이러지 않기 위해서 미리 제가 여러분께 예고편으로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얼마 안 남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이제 여러분 내가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차분하게 한번 돌아보시길 바라고 또 앞으로의 말씀을 들을 때는 우리의 기도 제목은 하나님 달라지게 하옵소서가 필요한 거예요. 자 그러면 데살로니까 교회는 어떻게 달라졌나 한번 보겠습니다. 먼저 1절입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델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카인의 교회 편지하노니 자 1절은 똑같애요. 1절은 전수와 후서가 똑같습니다. 똑같아요. 2절 하나님 아버지와 주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자 똑같을까요? 다를까요? 같은데, 달라요. 네 은혜와 평강이 너에게 있을지어다는 똑같아요. 그런데 그 앞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예수 그리스도로부터는 추가되었어요. 전서에 없던 말이 후서에 들어갔어요.
여러분 노란색을 들고 하나님 아버지와 주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한번 표시해 보세요. 점서에 없는 말이 후소에 들어갔어요.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이제 바울도 조금 여유가 생겼고 또 데사로니과 교회에도 이제 뭔가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신앙의 연조가 생긴 거예요. 물론 짧은 시간이지만 이 데사로니과 교회가 워낙 빨리 성장하는 교회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사도바울은 꼭 알려주고 싶었던 게 뭐냐 너희가 은혜와 평강이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데, 그 은혜와 평강이 누구에게서 온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이걸 강조하는 거죠.
여러분 은혜와 평강이 카리스 카이 에이래는데 카리스는 기쁨에서 나온 것 하나님이 주시는 일회적인 우리가 믿고 구원받는 은혜라 그랬죠 그리고 평강은 에이레네는 반복해서 주어지는 계속해서 주어지는 매일매시가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그랬어요. 자 그런데 이것이 전서도 나오고 후서도 나오는데 중요한 건 전서에는 이게 어디서 오는 건지가 없었어요. 당장 은혜는 중요하고 평강은 고픈데 이게 어디서 오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근데 후손은 그게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거야라고 지금 풀어서 설명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성장하는 건 뭐냐면 여러분 성장이란 내가 하는 게 달라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하는 건 똑같아요. 말하는 거 행동하는 거 똑같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아는 게 성장이에요.
그게 어디서 유래된 것인지 아는 거 즉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은혜와 내 편강이 누구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확실히 아는 게 성장인거죠. 그래서 여러분 내가 예배를 1번 드리던 사람이 2번 드리는 게 성장이 아니고 내가 새벽 기도를 일주일에 3번 나오던 사람이 4번 나오는 게 성장이 아니고 1번을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아는 사람 이것을 해야하는 내 마음의 동기가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 성장한 거예요.
그래서 새벽기도를 이전에도 나오고 지금도 나오지만 이전에는 내가 내 마음과 소원과 내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그 도구로 이용해서 새벽을 나왔다면 이제는 내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동기와 소원을 얻어서 내가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가까워질까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마음을 품고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도전하는 마음으로 나오는 거 다른 거죠. 그래서 동기가 달라지는 게 성장이다 라고 하는 거예요. 성장이란 동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은혜와 평강 여기서 이제 1가지 복습을 할 텐데 우리가 지난주에 종교 개혁 특강 하면서 카톨릭에는 칠성례가 있는데, 개신교에는 송례가 2개밖에 없다고 그랬어요. 자 모아 뭐였죠 세례와 성찬이었죠. 세례와 성찬 2가지만 있다고 그랬어요.
자 그런데 이 세례와 성찬이 지금처럼 감염병 상태처럼 서로 만날 수가 없고 비대면에 대해서 세례를 할 수 없고 성찬을 할 수 없을 때 무엇으로 우리가 그것을 체험한다고 그랬죠 바로 은혜와 평강이었습니다. 자 세례를 못 줘요 새해를 못 주면 교회가 아니냐 아니요. 은혜가 있으면 교회다 은혜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 자료 삼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열로 구원하시는 역사를 경험하는 거 그게 은혜죠 그게 세례와 똑같은 하나님이 주시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죠. 은혜예요. 자 그러면 성찬은 반복해서 우리가 봤죠 세례는 1번 봤지만 성찬은 반복해 봤잖아요. 이 반복해서 받는 이 성찬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편강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비접촉의 시대에 언택트 시대에 성찬을 받을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교회인 이유는 뭐예요? 하나님의 반복적인 평강이 우리에게 임하기 때문에 그래서 세례와 성찬의 의미는 바로 은혜와 평강이다. 이것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예 여러분 다 알고 계신 거 맞죠. 네 눈빛이 지금 빛나고 있는 거 맞죠. 네 감사합니다. 자 그럼 또 하나 그럼 은혜와 평강이 이렇게 있는데, 그럼 뭐가 더 중요한 겁니까? 은혜가 중요해요. 평강이 중요해요.
여러분 여기서는 또 의견이 갈려요 어떤 분들은 아 은혜를 일단 받아야 편강이 있는 거지 예수를 믿어야 그다음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거지 은혜가 훨씬 중요해 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야 은혜가 있으면 뭐 해 예수 한번 믿었다가 괜히 신앙 버리고 떠나는 사람도 많고 얘 왕년에 믿었지만 지금은 믿음이 뭐 형편없는 사람도 있는데, 야 반복적인 우리에게는 이 반복적인 편강이 없으면 은혜 받은 거 다 소용없더라 그래서 1번 잘 믿은 건 소용없다. 계속 잘 믿어야지 편강이 중요하지 하는 분도 있어요. 여러분 어느 편에 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예 처음에 잘 믿는 게 중요해요. 아니면 꾸준히 잘 믿는 게 중요해요. 자 성경은 어딜 지지하는가? 똑같습니다. 똑같애요. 오늘 본문에 카리스 카이 에이랜이에요. 카이라는 단어는 앤드거든요.
앤드인데 이 카이는 앞과 뒤의 가치가 동일합니다. 똑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은혜와 평강은 똑같이 중요하다 우리가 처음에 변화되어 하나님을 아는 것도 중요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지속적인 은총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도 소중한 거예요. 그래서 은혜와 평강은 똑같이 소중한데 자 이제 3절로 들어가면 조금 더 이제 대사루미과 교회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했는지가 나와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자 이것은 흔히 나오는 표현이죠. 그다음이 중요한데 전서에서는 뭘 얘기했어요. 믿음의 역사 믿음이 역사하는 교회 그리고 사랑의 수고 사랑 때문에 수고하는 교회 그리고 소망의 인내 소망 가지고 인내하는 교회 얘기했었죠. 3가지 얘기했었어요. 그게 어떻게 성장을 했는가 지금 보시면 일단 믿음이에요.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잘하고 자 노란색 들고 표시합니다.
믿음이 더욱 잘하고 자 이 믿음이 그냥 역사한다. 믿음이 살아있다. 정도였어요. 전설에서는 근데 후서에서는요 더욱 잘한다는 말이 뭐냐면 무엇무엇을 초과하여 엄청나게 자라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성경에서 우리가 겨자CBUR잖아요. 겨자씨 비유는 씨가 정말 작은데 거기서 나온 이 풀이 점점 커서 풀인데 나무처럼 커지죠 어마어마하게 성장해버려요 그게 지금 여기서 말하는 똑같은 표현이에요. 믿음이 더욱 자라고 해요. 그러니까 믿음이 어느 정도는 크리라 예상을 했지만, 이 정도까지 클 줄 몰랐던 거예요. 확 커버렸어요. 3주밖에 복음을 안 들었고 또 전서 보낸 지 지금 2~3개월밖에 안 지났는데 믿음이 그 사이 쑥 커 버렸어요. 와 놀랍다 이게 지금 믿음이 더욱 잘하고 해요. 게다가 이 시제가 뭐냐면 계속 잘하고 있는 중이에요. 지금도 1번 잘하고 끝이 아니라 계속 지금 자라고 있는 어마어마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게다가 사랑은 어떻게 됐나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노란색 들고 표시합니다.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냥 사랑이 풍성한 게 아니구요. 다 각기 자 각기니까 뭐예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분량만큼 각자가 할 수 있는 방법대로 살아간다는 거예요. 다 다르게 여러분 이게 건강한 교회예요. 누군가가 나는 이렇게 하니까 너도 이렇게 해야 돼 한 방향으로만 한 방식으로만 해야 돼가 아니고 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누구는 시간으로 누구는 물질로 누구는 정성으로 누구는 말로 누구는 함께해 주므로 누구는 기도로 누구는 찬양으로 누군 말씀으로 다 각기 다 각자의 모습대로 그러나 중요한 건 서로죠 서로 서로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 혼자 사랑하는 게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사랑의 교재가 있는 거죠.
그래서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하다 여기서 말하는 풍성하다는 말은요, 남아돈다 그러니까 사랑이 딱 턱걸이에 맞춰서 그냥 딱 필요한 만큼만 살아가는 게 아니고 그 사랑이 계속 남아 돌아요. 남아돌아요. 남아돌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끼리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랑이 우리를 넘어서 공동체 밖으로 흘러넘쳐 나가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계속 좋은 소문이 나고 계속 하나님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거 그게 바로 사랑의 풍성함이죠. 그러니까 1절과 이 전서와 후저 후소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거예요. 전설은 그냥 믿음이 살아있어요. 역사만 해요. 그런데 이제는 무엇을 초과해 엄청나게 잘하죠. 그리고 사랑도 사랑의 수고 정도 그냥 아이구 사랑하니까 수고한다.
정도였는데 후서로 오면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하다 여기서 말하는 시제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현재 지금 계속해서 남아돌고 있어요. 계속 서로 사랑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모습의 교회가 지금 되다 보니까 교회예요. 어마어마한 성장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일 성장한 건 어디냐 바로 세 번째입니다. 소망의 인내입니다. 어떻게 됐을까? 4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란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 그냥 이 전서에서는 소망의 있네 끝이었어요. 소망 때문에 있네 하는 교회 그런데 지금은요,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란 중에서 자 이제 2~3개월 만에 또 편지 쓴 이유가 선명하게 드러나죠. 견디고 있는 박해가 있어요. 근데 그 박해가 모든 박해예요. 너무너무 힘든 박해가 많아요.
여기서 말하는 박해라는 말은 언어로 보니까 사냥개가 표적을 쫓는다는 뜻이에요. 사냥개가 표적을 쫓아서 죽어라 달리는 모습을 나타낸 말이 박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이들을 죽이려는 잡으려는 가두려는 로마 황제의 군대가 이들을 지속적으로 쫓고 있고 게다가 유대인 율법자 주의자들과 각종 이단들이 이들을 지금 넘어뜨릴려고 사냥개가 표적을 쫓듯이 그렇게 침을 흘리면서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단 말이에요. 그것을 그 모든 환례와 환란과 박해와 환란 중에서 어떻게 해요. 이걸 견디고 있는데, 너희의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즉 소망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전선에 나왔던 소망의 인내가 이젠 확장돼서 모든 박해와 혼란을 견디고 또 인내와 믿음으로 그것을 지금 버텨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어떡해요.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자 하나님의 여러 교회 노란색 쳐보세요. 하나님의 여러 교회 여러분 교회는 여기서 나온 교회는 다 누가 세웠어요. 바오리 세웠어요. 바오리 전도에 세웠어요. 그런데 이건 바울의 교회가 아니에요. 이건 우리 교회도 아니에요. 누구 교회예요. 하나님의 교회죠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즉 하나님의 여러 교회를 다닐 때마다 어떻게 한다고요.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우리가 친히 너희를 자랑한다. 예 3절에 나왔던 믿음이 더욱 잘하고 노란색 표시 하셨죠. 믿음이 점점 초과해서 엄청나게 잘하는 걸 지금 자랑하고 또 뭘 자랑해요.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각자애가 각자가 자기 모양대로 모습대로 재능대로 기질대로 서로를 사랑하고 이게 남아도는 거 이거 이거 자랑하죠. 또 하나 몰잖아요. 사절에 있는 표시해 보세요. 노란색으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란 중에서 너희 인내와 여기까지죠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란 중에서 너희 인내와 까지 이거를 자랑하는 거예요. 누가 친히 자랑한다. 친이라고 하는 말은 뭘 강조한 겁니까? 우리가 정말 진심으로 기쁜 마음으로 가는 곳마다 반복적으로 자랑한다. 여러분 성경에서는 자랑하라 그래요. 하지 말라고 그래요. 하지 말라고 그러죠 예 자랑 괜히 함부로 하다가 망신당한다. 이게 성경의 일반적인 이야기에요.
그런데 여기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너희는 친히 자랑한다. 그것도 하나님의 교회들마다 여러 교회 다니면서 다 자랑한다는 거예요. 왜 자랑할 만하니까 교회가 뭘 자랑하느냐 뭘 자랑하느냐 인원이 많은 걸 자랑하는 게 아니에요. 교회가 헌금 많이 걷히는 걸 자랑하는 게 아니고 우리 교회는 국회의원이 많고 우리 교회는 대학교수가 많고 뭐 이런 거 자랑하는 게 아니구요. 뭘 자랑하나 교회가 믿음이 계속 말도 안 되게 커져 이거 자랑하는 거예요. 그리고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해 이거 자랑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는 믿음 자랑하고 사랑 자랑하고 또 하나 뭘 자랑해요. 박해받는 거 자랑하는 거예요. 이런 박해를 우리가 지금 인내로 견뎌내고 있다. 이걸 자랑하는 게 참 자랑인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교회는 편안한 게 자랑거리가 아니구요.
교회는 얼마나 박해를 지금 이겨내고 있는가 어려움 가운데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가 이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교회생활은 편하게 할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근데 편하게 교회 생활하는 건 자랑이 아니에요. 아니에요. 힘들어도 바른 길을 가는 노력 여러분 요즘은 누가 박해를 해요. 우리를 교회 다닌다고 누가 박해예요. 네 안 믿는 사람들이 가끔 손가락질 하는 경우도 있고 요즘 감염병 때문에 모이지 마라 그런 건 있지만 그건 박해 수준도 아니죠. 원래 박해라는 게 뭐였어요. 목숨 걸고 믿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예수를 믿을 때 이게 정말 내가 믿을 만하게 믿으면 그거 박해 아닙니다. 이제 뭐 싫은 소리 좀 듣고 남한테 좀 오늘도 교회 가냐 이런 소리 듣는 거 그건 박해도 아닙니다.
진짜 박해라고 할 정도의 신앙은 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 내가 힘든 길을 자초하는 겁니다. 힘든 길을 자초하는 거 네 제 매번 저희 교육자들이 그래요. 담임 목사님은 무덤을 파신다고 네 늘 힘든 길 어려운 길을 가신다 안 해도 되는 사서 고생을 하신다 네 여러분 왜 그럴까요? 이유는 하나예요. 편하게 먹기 할 수 있어요. 근데 그건 제가 부름받은 이유가 아니잖아요. 제가 좀 힘들어서 교인들이 좋고 교인들의 신앙에 성숙해지고, 교인들의 믿음이 더 나은 성장하는 길이 있다면 저는 당연히 무덤 팔 겁니다. 당연히 힘든 길을 갈 겁니다. 정말 괴로운 길을 갈 겁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뭐예요? 같이 가자는 거예요.
같이 아 이왕 예수 믿는 거 편한 길 가려면 뭐하러 예수 믿어요. 예수 그리스도에 가신 그 길을 우리도 함께 걷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나도 성장하고 함께 천국의 길을 걸어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자랑은 믿음 사랑 그리고 인내 이 소망이 하나님 안에서 점점 커지고 점점 많은 것을 감당해 낸 거 그게 자랑거리죠 자 그런데 이 자랑이 그러면 정말 핵심은 그러면 그 고난을 왜 갚네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박해를 버티고 사는가 왜 믿음이 풍성해져야 하고 왜 그 사랑은 각기 서로 풍성해져야만 하는가? 그게 5절입니다. 그 이유 대사로내과 교회가 지금 이렇게 자랑할 만한 교회로 성장하고 있는 이유가 뭐냐 5절 인은 왜냐하면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역임을 받게 하려 함이니 노란색 들고 표시해 보세요.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그 나라를 위하여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것이 쉬운 말로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기도 하구요. 하나님의 이름이기도 하구요. 하나님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동기이기도 합니다. 이게 우리가 고난 받는 이유라는 거예요.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자 이게 너희가 성장한 모습이고 내가 가장 기뻐하는 모습이고 자랑하는 모습이 이거라는 거예요. 미성숙한 교회도 사랑할 수 있어요. 믿음 커질 수 있어요.
그런데 미성숙한 교회와 성숙한 교회의 차이는 뭐냐 그걸 왜 견디고 있는지를 아는 거예요. 아 그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 내 안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 내가 마침내 이루고 기뻐할 하나님 나라 내가 마침내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 나를 맞이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를 위하여 내가 지금 고난을 받고 있구나 이것을 깨달아 아는 것 그것이 성숙한 교회고 자랑할 만한 교회고 그것이 다시 한번 대살로니과 교회에 팬을 들게 만든 바울의 사랑과 관심과 믿음의 표시를 다시 한번 그들에게 보내게 만든 이유였던 거죠. 여러분 오늘 우리도 이 새벽에 나왔습니다. 왜 나왔냐가 중요한 거죠. 왜 나왔나 오늘 우리는 또 종교 개혁 특강 다섯 번째 시간을 가질 겁니다.
뭐 왜 공부하는가가 중요한 거예요. 내일은 수능시험이에요. 우리 수능생들이 기도하겠죠. 왜 시동수등 봐야 되는가 중요한 거예요. 이유가 뭐예요? 그 나라를 위해서 그 나라 우릴 위해서 예비된 하나님의 나라 그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동기 그것을 우리가 마음에 품고 그것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오늘도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오늘도 우리가 때로는 무덤을 팔 수도 있어요. 때로는 우리가 안 가도 되는 험한 길을 일부러 갈 수도 있어요.
왜 그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가 내게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는 편한 길이 아니라 가야 할 길을 간다 빠른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을 간다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시고 도우시고 역사하셔서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시는 놀라운 그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대단하니까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 후서를 시작합니다. 전서와 후서는 시기적으론 얼마 차이가 나지도 않는데 그들의 믿음은 참 놀랍게 성장해 있습니다. 자랑하고 싶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왜 고통을 감내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도 믿음 생활을 하되 이렇게 성장하게 하시고 서로 사랑하게 하시고 힘든 길을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 우리의 믿음을 더해 주셔서 이 소망의 인내 가운데 왜 이 어려움을 겪어내야 되는지를 분명히 알고 그 나라를 위하여 고난받는 그 나라를 위하여 수고하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보며 저희들 이 땅에서 기뻐하며 살아가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저희는 머리를 채우는 지식으로 끝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살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원합니다.
주신 말씀 붙잡고 오늘도 씨름하면서 이 말씀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 성민 가족들에게 하나님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동행하여 주시고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셔서 오늘도 우리가 성장하여 줄을 기쁘시게 하고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 가고 이 땅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죽기 돌아오게 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쓰임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나라를 위한 복된 하루가 되게 할 줄로 믿사오니 오늘 종교 개혁 특강 다섯 번째 시간 가운데도 함께해 주시고, 또한 내일 수능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모든 수험생들에게도 하나님 은혜 충만하게 부어주시고 하나님의 든든하신 인도를 경험하는 복을 우리 모든 수험생들에게 하나님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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